26. ≪훈민정음≫ 하루 아침에 배울 수 있는 문자의 가치 / 김슬옹교수 <충청리뷰> 2024.07.25
유위자2026. 5. 20.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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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4_22 훈민정음 탐구_김슬옹]* 26. ≪훈민정음≫ 하루 아침에 배울 수 있는 문자의 가치 / 김슬옹교수 <충청리뷰> 2024.07.25
26. ≪훈민정음≫ 하루 아침에 배울 수 있는 문자의 가치
세종이 만든 문자에 대한 과학적 평가와 최고의 찬사 /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김슬옹의 훈민정음 해설] 입력 2024.07.25
해례본 낭독용 최초 번역문 읽어보기
7. 정인지서(정인지 꼬리말)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자연의 문자가 있다.
그러므로 옛사람이 소리를 바탕으로 글자를 만들어서 만물의 뜻을 통하고,
하늘·땅·사람의 세 바탕 이치를 실었으니 후세 사람들이 글자를 바꿀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사방의 풍토가 구별되고 말소리의 기운 또한 다르다.
대개 중국 이외의 다른 나라 말은 그 말소리에 맞는 글자가 없다.
그래서 중국 글자를 빌려 소통하도록 쓰고 있는데, 이것은 마치 모난 자루를 둥근 구멍에 끼우는 것과 같으니,
어찌 제대로 소통할 때 막힘이 없겠는가?
중요한 것은 모두 각각 놓인 곳에 따라 자연스럽게 할 것이지, 억지로 같게 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동방의 예악과 문장이 중화[중국]와 같아 견줄 만하다.
다만 우리말은 중국말과 같지 않다.
그래서 한문으로 된 글을 배우는 이는 그 뜻을 깨닫기가 어려움을 걱정하고,
범죄 사건을 다루는 관리는 자세한 사정을 파악하기가 어려운 것을 근심했다.
옛날 신라의 설총이 이두를 처음 만들어서 관청과 민간에서 지금도 쓰고 있다.
그러나 모두 한자를 빌려 쓰는 것이어서 매끄럽지도 아니하고 막혀서 답답하다.
이두 사용은 오로지 몹시 속되고 일정한 규범이 없을 뿐이니, 실제 언어 사용에서는 그 만분의 일도 소통하지 못한다.
계해년 겨울(1443년 12월)에 우리 임금께서 정음 스물여덟 자를 창제하여,
간략하게 설명한 ‘예의’를 들어 보여 주시며 그 이름을 ‘훈민정음’이라 하셨다.
훈민정음은 꼴을 본떠 만들어 글꼴은 옛 ‘전서체’와 비슷하지만,
말소리에 따라 만들어 그 소리는 음률의 일곱 가락에도 들어맞는다.
하늘·땅·사람의 세 바탕 뜻과 음양 기운의 신묘함을 두루 갖추지 않은 것이 없다.
스물여덟 자로 끝없이 바꿀 수 있어,
간결하면서도 요점을 잘 드러내고,
정밀한 뜻을 담으면서도 두루 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아침이 다 가기도 전에,
슬기롭지 못한 이라도 열흘 안에 배울 수 있다.
훈민정음으로 한문을 풀이하면 그 뜻을 알 수 있다.
훈민정음으로 소송 사건을 기록하면, 그 속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글자 소리로는 맑고 흐린 소리를 구별할 수 있고,
음악 노래로는 노랫가락을 어울리게 할 수 있다.
글을 쓸 때에 글자가 갖추어지지 않은 바가 없으며,
어디서든 뜻을 두루 통하지 못하는 바가 없다.
비록 바람소리, 두루미 울음소리, 닭소리, 개 짖는 소리라도 모두 적을 수 있다.
드디어 임금께서 상세한 풀이를 더하여 모든 사람을 깨우치도록 명하시었다.
이에 신이 집현전 응교 최항과 부교리 박팽년과 신숙주, 수찬 성삼문과
돈녕부 주부 강희안, 행 집현전 부수찬 이개와 이선로 등과 더불어
삼가 여러 가지 풀이와 보기를 지어서, 그것을 간략하게 서술하였다.
바라건대 이 책을 보는 사람은 스승 없이도 스스로 깨치도록 하였다.
그 근원과 정밀한 뜻은 신묘하여 신하 된 자들로서는 감히 밝혀 보일 수 없다.
공손히 생각하옵건대
우리 전하는 하늘이 내리신 성인으로서
지으신 법도와 베푸신 업적이 모든 임금들을 뛰어넘으셨다.
정음 창제는 앞선 사람이 이룩한 것에 따른 것이 아니요, 자연의 이치를 따른 것이다.
참으로 그 지극한 이치가 없는 곳이 없으니, 사람의 힘으로 사사로이 한 것이 아니다.
무릇 동방에 나라가 있은 지가 꽤 오래 되었지만,
만물의 뜻을 깨달아 모든 일을 온전하게 이루게 하는 큰 지혜는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정통 11년(세종 28년, 1446년) 9월 상순.
자헌대부 예조판서 집현전 대제학 지춘추관사 세자우빈객 정인지는 두 손 모아 머리 숙여 삼가 쓰옵니다.
<현대말 번역 연재를 마치며>
6회에 걸쳐 ≪훈민정음≫ 해례본 한문본의 현대말 번역 연재를 마쳤다.
1940년 7월 30일부터 8월 4일까지 5회에 걸쳐 조선일보에 방종현의 이름으로
‘원본 훈민정음의 발견’이라는 최초 현대말 번역이 연재된 이후 84년만의 신문 연재이다.
해례본에 들어 있는 옛글자를 대중 매체에서 그대로 구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종이신문 연재는 편집자의 노력으로 옛글자까지 보기 좋게 구현해 연재할 수 있었다.
다만 온라인판은 디지털 환경과 유니코드 문제로 옛글자가 들어간 부분은 이미지로 연재할 수밖에 없었다.
가독성은 떨어지지만 해례본의 글꼴을 온전하게 보여주는 현대말 최초 번역 연재가 되었다.
해례본은 한자 4,790자, 한글 547자 모두 5337자로 이루어졌다. 각 분야별 글자수는 표와 같다.
훈민정음 햬례본 분야별 글자 수.
연재한 현대말 번역은 글자 수로는 대략 14,000여자이고 200자 원고지 분량으로는 150장 정도 된다.
중고등 학생들의 평균 낭독으로 한 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해례본은 한문본이다 보니 일반인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조차 접근이 어려워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 입체강독본(개정증보판)≫(박이정, 2017-2023)을 개발하여 선보인 바 있다.
이번 번역은 필자의 이 책을 바탕으로 일부 표현만 좀 더 다듬었다.
♣ 일러두기 ♣
≪훈민정음≫ 해례본은 15세기 한문으로 되어 있어 전문가들도 독해가 어렵다.
그래서 현대말 번역이 매우 중요하다.
1940년 이후 해례본 전문의 최초 번역은 방종현(1946)의 ≪(원본해석) 훈민정음≫(진학출판협회),
홍기문(1946)의 ≪정음발달사≫(상·하 합본. 서울신문사 출판국)에서 이루어졌다.
1940년에 조선일보에 7월 30일부터 8월 4일까지 5회에 걸쳐 연재한,
홍기문과 방종현이 번역하고 방종현 이름으로 발표한 해례본 최초 번역문에는
세종이 직접 저술한 정음편 번역과 맨 끝의 정인지서문 번역이 빠져 있다.
이후 지금까지 나온 40여 종의 번역은 이러한 초기 번역의 수정과 보완이다.
필자의 번역 또한 그런 맥락에서 벗어나지 못하나 다음과 같은 다른 점이 있다.
첫째, 세종 서문(어제 서문) 번역을 15세기 언해본 번역과 같이 108자 번역으로 하였다.
꼭 108자로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15세기에 108자로 기울인 정성스러운 태도를 우리도 음미하듯 이어갈 필요가 있다.
둘째, 이 번역은 자음자를 제대로 읽게 만든 최초 번역이다.
모음자는 그대로 읽으면 되지만 자음자는 모음의 도움을 받아야 읽을 수 있으므로 쉽지 않다.
해례본은 초성자의 경우 ‘ㅣ’를 붙여 ‘기니디’ 식으로 읽었다.
그러나 기존 번역들은 현대 방식인 ‘기역, 니은, 디귿’ 식으로 읽게 되어 있다.
이럴 경우 원문의 의도를 제대로 살릴 수 없다. 종성자의 경우는‘ㅡ’를 붙여‘윽, 은, 읃’식으로 읽는 것이 좋다.
필자의 번역은 모든 자음에 대괄호로 이런 발음을 적어 넣어 누구나 쉽게 낭독할 수 있도록 했다.
셋째, 중학생 이상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용어와 문체를 지향하였다.
일부는 내용 자체가 어려워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래서 최대한 쉬운 번역을 지향해야 한다.
그것이 누구나 쉽게 배우라고 만든 훈민정음 정신이기 때문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책 제목은 문자 이름과 같은‘훈민정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