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왜 ≪배달9200/개천5901/단기4336/서기2003≫일까?
저는 반드시 ≪배달/개천/단기/서기≫를 쓰는데
궁금한 분들이 많으리라 사료되어 올리는 글이오니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결코 현학연(衒學然)하기 위하여 쓰는 글이 아닙니다.
골수 민족주의자나, 국수주의자의 궤변이 아닙니다.
우리의 것을 알고자, 조금이라도 알려드리고자
저도 공부하면서 올리는 글입니다.
㈎ 서언
이 말씀을 올리기 전에
우리나라 사학계의 통탄할 만한 흐름을 언급하지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왜곡된 역사를 우리의 역사로 알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저는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평소에 역사와 관련된 글들을 즐겨 읽던 중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고는 경악하여야만 하였습니다.
우리 배달 민족은 유구한 역사를 지녔음에도 갖은 외침에
철저히 말살되고 변질되어 왔습니다.
㈏ 죽은 역사, 잃어 버린 역사
그러면 그렇게 말살되고 변질된 원인은 무었일까요?
첫 번째로 찬란한 환국, 배달, 단군 조선의 역사를 계승한 고구려 역사가 신라와 당나라에 의해 소멸됨으로 해모수와 주몽이 일으킨 배달민족 북방의 역사가 변질 왜곡되었고, 중국, 왜에까지 영역을 둔 해상왕국 백제(百家濟海)가 역시 신라와 당나라에 의해 멸망함으로 인한 온조와 비류가 일으킨 배달민족 남방의 역사가 그들의 철저한 노략질과 파괴로 거의 남아나지 못하고 멸실된 사실에 있습니다. 유적, 유물은 철저히 초토화 되었고 왕궁은 메워졌으며 정통 국사서인 유기, 신집, 서기등은 불태워졌습니다. 겨우 그들의 역사를 호태왕비나 장군총, 벽화, 금동향로, 무녕왕능등 유물로 더듬어 볼 뿐입니다. 옛적에는 전쟁에서 패배하면 그 나라 백성은 거의 노예로 끌려가야 했습니다. 지금이야 기계와 장치(자동차, 전기, 가스등)가 인간생활을 편리하게 하지만 예전에는 노예가 그 모든 일을 해내야 했습니다. 로마제국의 역사는 노예의 역사라고까지 하지 않습니까? 곧 전승국은 패전국의 백성을 전리품으로 취하는 것이 당연한 권리의 시대였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백제가 멸망하면서 소정방은 의자왕과 태자 효, 왕자 태, 융, 연 및 문무 고관 88명과 백성 1만 2천 8백 7명을 포로로 잡아갔다고 하는데 일설에는 12만명 이상이 끌려갔다고도 합니다. 또한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당은 고구려인의 토착 기반을 와해시키기 위하여 보장왕과 왕자, 대신 등 20여 만명을 중국의 강남, 회남, 산남 등으로 끌고 가 여러 주로 강제 분산시켰다고 합니다. 백제에서 끌려간 의자왕은 울화병으로 죽어 북망산에 묻히고, 고구려에서 끌려간 보장왕의 뒷소식은 알 수 없고, 다만 고구려 포로의 후손중 고선지와 이정기 장군이 후에 중국에서 출세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배달족 포로들은 미개척지인 남방(안남)지방 개발에 동원 됐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변방의 개척도 필요했겠지만 무엇보다도 배달족을 당나라 수도 장안에 모아 놓음으로써 독립운동이 일어날 것을 염려한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들 중 일부가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 태국 메콩강 상류의 골든 트라이앵글이라는 오지에 씨족단위로 이어져 오는데 풍습, 습관, 언어가 우리와 너무나 유사하여 한국사람이 3일 정도만 머무르면 대화가 통할 정도라고 합니다. 그렇게 환국, 배달, 단군 조선의 계승국가인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하면서 상고시대의 역사가 사라졌습니다. 다만 극히 일부의 기록이 재가 사가들에 의하여 심산유곡에 메아리로 전해져 왔습니다.
두 번째는 고려의 숭불(崇佛)정책의 영향으로 인하여 우리 고유의 풍습, 문화가 불교화 되면서 왜곡이 이루어 졌습니다. 김부식, 일연등은 우리 고유의 풍월도(風月道)를 유교적으로, 불교적으로 변질시켰고 그 때까지 남아 있던 재가(在家) 사서(史書)를 무시하고 통일 국가인 신라 위주의 삼국사기, 삼국 유사를 저술하여 더욱 우리 역사를 중국의 변방으로 자처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일례로 47대, 2096년간 이어온 단군 조선을 삼국사기에서는 언급조차하지 않고 삼국유사에서는 그나마 언급은 하였지만 1500년간 단군왕검 일개인의 역사로 축소한 사실입니다. 삼국유사는 경북 경산사람 일연의 저술로 불교이야기가 90%이상인 점, 경상도 설화가 80%이상 편중되게 구성된 점으로 보아 이는 일연의 지역적 연고에 기인한 한계성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하여 약간 남아있던 우리의 역사는 더욱 신화적, 설화적인 요소로 단지 전설 속의 구전으로만 이어져 오게 된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전설이 곰과 호랑이에 얽힌 단군신화입니다. 이는 신화가 아닌 현실성을 비유화한 엄연한 사실입니다. 곰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소수 민족이 시베리아 지방과 몽골에 아직 많이 남아 있음이 그 증거입니다.
세 번째로 중국의 변방으로 소중화(小中華)로 자처하기에 이를 정도의 조선의 사대적 유교정책의 영향입니다. 사실 어느 나라든 중국(中國, 세계의 중심 국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를 중국이라 부른다는 것은 곧 내 나라는 변방의 나라라고 자처하는 행위일 것입니다. 지금은 중국이 China의 국명으로 굳어져 필자도 어찌 할 수 없이(알면서도) 중국을 中國으로 불러 줄 수 밖에 없는 모순에 빠져 있습니다. 실록에 보면 세조와 예종, 성종 때 8도 관찰사에게 수서령(收書令)을 내려 옛부터 전해져온 희귀서적을 전국에서 거두어들인 일이 있는데 지금 이 서적들은 전하지 않지만 중국의 역사에 반하는 그러한 민족사서의 존재가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조선역대 왕이 국가적 행사로 천제를 지낸 것을 보면 단군시대의 존재를 역사적 사실로는 받아 들이기는 한 것 같습니다. 강화 마리산, 태백산의 천제단은 지금도 남아 있지요. 하지만 극심한 사대주의는 그 때까지 남아 있던 극소수의 재가 사서는 더욱 심산유곡의 동굴로 숨어들고 도인(道人)들은 세상에 나오지 않고 산 속에서 숨어 살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조선말 실학사상이 발달하면서 조금 회복되었으며 그 때 산 속에서 단지 명맥으로만 이어져온 재가 사서들이 뜻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다시 망라되고 편집되어 오늘날 단지 몇 권만 전하게 되었는데 한단고기, 천부경, 삼성기, 참전계경, 태백일사, 규원사화, 삼일신고등이 그 것입니다.
네 번째는 당나라의 침략, 몽고의 침탈과 임진왜란, 그리고 일제 36년등 전란(戰亂)의 영향입니다. 그러한 전란은 재가 사서들이 남아나지 못하게 한 민족의 크나큰 손실이었습니다. 그 중 역사서를 가장 많이 불태우고 말살한 것이 일제로 조선총독부의 앞잡이 역할을 한 "조선사편수회"인데 그들은 조선인들에게 열등감을 심어주기 위해 우리의 역사를 반도로 축소시켰고, 고려는 무신들의 집권으로 난장판인 국가, 몽고의 노예국가로, 조선은 당쟁으로 나라를 망친 파당정신을 부각시키고 그 때까지 극소수로 남아 있던 우리의 찬란한 중원제패의 역사가 담긴 비서(秘書)들을 전국의 산간에서 들춰내어 불태웠습니다. 1910년 11월부터 14개월 동안 전국에서 거두어들인 책이 무려 51종 20만권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 때 거두어들인 귀중한 재가 사서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 후 일제 사관에 의하여 쓰여진 한국 역사는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인식을 신화로 축소시켰고 그 결과 조선사 편수회에 깊숙히 관여한 이병도, 신석호의 영향을 받은 한국 역사학자들은 왜곡된 한국 역사관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여 왔으며 이 결과 아직까지도 한국의 상고사가 인정되고 있지 않고 있으며, 구한말까지도 인정되던 단군의 존재도 실존 인물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최근에 고려는 지금 보다도 훨씬 개방적인 해상 상업 국가였음이 밝혀지고 있고 무신들의 집권은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왕권을 견제하는 긍정적인 면도 밝혀지고 있습니다. 조선의 당쟁 또한 그러합니다. 당쟁은 물론 일부 부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긍정적인 요소가 더 많았음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지금의 정당정치와 비견되는 근대적인 민주 제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무조건 천황에 복종하는 일본은 흉내도 못 낼 왕권 견제와 민주를 지향하는 제도라는 것 또한 밝혀지고 있는 것입니다.
㈐ 한단고기의 가치
그 "조선사편수회"의 멤버 중 한 사람이 유명한 와세다 대학 출신 이병도씨인데 최근까지도 우리의 사학계는 그 이병도씨의 인맥이 아니고는 사학계에 발붙일 수도 없었습니다. 그가 지은 "한국사 대관"은 불후의 명저로 알고 있지만 기실 엄청난 해악을 끼친 역사의 왜곡의 표본이라 하겠습니다. 최근에는 젊은 사학자를 중심으로 우리의 역사를 찾자는 운동이 불길처럼 일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분이 송호수, 문정창, 임승국, 이도학씨등 입니다. 그러한 소장 학자들에 의하여 우리의 역사의 재조명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한단고기는 구한말 계연수라는 분이 일제의 조선사편수회가 민족사서들을 말살하기 전에 입수한 비서(秘書)들인 안함로.원동중의 삼성기, 이암의 단군세기, 범장의 북부여기, 이맥의 태백일사를 망라하여 편수한 민족 정통사서라 합니다. 그 진위 여부를 떠나서 잃어버린 민족의 역사를 복원한다는 정신으로 접근함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 한단고기가 일본에서 출판된 것이 다시 우리에게 역수입되었고, 일본학자들과 수메르 언어를 연구하는 불란서 학자들에게 더욱 각광을 받고 연구되어 진다는 부끄러운 사실입니다. 서구 문명의 모태가 된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가의 문명을 일으키고 어느날 갑자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수메르인들의 미스테리를 풀 수 있는 단초를 한단고기에서 찾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정작 주인공들인 우리들은 위서라고 배타시하는 데 말입니다.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단고기에 10여 군데 기록된 천문현상이 천체 과학자들이 시뮬레이션 기법으로 역추적해보니 놀랍게도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BC1733년 홀달 단제 시대에 오행성 결집(五星聚婁, 목성.화성.토성.금성.수성이 일렬로 늘어섬)현상이 기록되어 있는데 서울대 박창범 교수와 표준 연구원 천문대의 라대일 박사가 컴퓨터 합성 기법을 이용해 역으로 추적하여 시각화해 보니 그 해에 그러한 현상이 실재 일어났슴을 증명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한단고기에 수 없이 언급되는 큰 썰물현상, 일식현상등도 일치하고 있슴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 확증적 접근
역사에는 두 가지 접근방법이 있다 합니다. 그 하나는 유적, 유물이 확인될 때에만 인정하는 실증사학이고, 다른 하나는 서적, 전설, 언어, 풍습까지 포함시켜 실증적인 사실과 혼합하여 추론하는 확증사학입니다. 이전에는 실증사학만 정설로 인정하는 경향이었는데 요즈음에는 확증사학도 인정하는 경향이라 합니다. 민간에서 한단고기가 위서라느니 아니라느니 논란이 많습니다. 그러나 역사에 완벽한 사실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양사람들은 성서가 진리 그 자체라고 여기지만 과연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만들었을까요? 성서에 의하면 BC3,100년에 하느님의 천지창조가 행하졌다고 하는데 과연 사실일까요? 예수 탄생을 기점으로 BC(Before Christ), AD(Anno Domini)로 나누지만 일부에서는 예수는 서기 1년에 탄생한 것이 아니고 BC4년이라느니 BC7년이라고도 하고 BC6년이라고도 합니다. 성서에 예수의 행적 중 공생애(公生涯, 30세 이후)이전의 기록이 전무하다 시피하여 추적 결과 인도에서 수행했다느니 티벳에서 수행했다느니 합니다. 예수 탄생일을 12/25일로 오늘날 기념하지만 일부 종파에서는 1/6 혹은 1/17일로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석가의 탄생일도 4/8일로 알고 있지만 남방 불교에서는 2/8일을, 그리고 일부에서는 4/15일을 기념한다고 합니다. 노자는 혹자는 81세까지 살았다고 하지만 생몰(生沒) 연대를 알 수 없다고도 하고 공자가 예(禮)를 물으러 갔다느니 아니라느니 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류의 역사는 200만년을 넘지 않고 아프리카 동부가 발생지라고 하였으나 최근 투마이원인이라는 유골의 발견으로 인류의 역사가 700만년이나 되고 아프리카 서부가 그 시원(始原)이라고 흥분하더니 인간복제로 지구촌을 용광로처럼 달구는 라헬리언 무브먼트에 의하면 인류는 외계인의 DNA조작으로 탄생된 외계인의 후손이라 합니다. 역사에는 이와 같이 실증적으로는 도저히 진실을 밝힐 수 없는 것도 확증사학적으로 접근하면 진실은 아니라도 근처에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한단고기가 위서라는니 역사서로서의 가치가 없다는니 논란이 많습니다. 그러나 오랜기간 필자의 추적 결과로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재야사서를 저본으로 한 잃어버린 우리의 역사의 일정부분을 복원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한단고기에 인용된 사서들에 가필(加筆)은 이루었을 지언정 전혀 새로운 허구의 창작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느 나라든 정통 사서들이라고 있지만 자의적인 가필이 이루어지지 않은 역사서는 없다고 단언 합니다. 중국의 25사, 사마천의 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는 아무리 객관성을 확보한다고 해도 저술자와 승리자의 관점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불경,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집단의 논리로 수 없는 가필이 이루어 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객관적 사실을 도출해내는 혜안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한단고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조건 타부시함은 잘못이라고 봅니다. 실재로 천문 현상이나 신화적 현상, 상고사의 의문점을 명쾌하게 한단고기는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역사의 용광로 한가운데에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9,200년의 역년(歷年) 동안 파미르 고원을 넘어 바이칼호를 거쳐 반도의 구석에 까지 다다른 배달민족의 역정이 그 어떤 이론과 확증보다도 자랑스럽습니다.
㈒ 배달, 개천, 단기의 진실
잃어버린 배달민족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소개하면
① 마고 할미의 마고성에서 시작된 짐세 시대(BC63,182 ~ BC7,197)로 4대의 왕조가 54,000년간 다스렸다 합니다. 인류의 시원을 신화적으로 묘사한 설화는 어느 민족이든 공통된 현상으로 역년의 자료로 보다는 설화의 새로운 해석에서 그 의의를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② 한인들이 다스린 한국12연방시대(BC7,197 ~ BC3,898)로 7대의 한인이 3,300년간 다스렸다 합니다. 신석기로부터 청동기 초입으로 부족국가에서 연맹체 국가의 형성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즉 배달 = BC7,197 + AD2003 = 9,200년으로 한인 천제들이 배달민족을 다스린 배달을 역년으로 삼았습니다.
③ 한웅들이 다스린 배달국(청구국)시대(BC3,898 ~ BC2,333)로 18대의 한웅들이 1565년간 다스렸다 합니다. 청동기에서 철기 초입으로 국가형성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즉 개천 = BC3,898 + AD2003 = 5,901년으로 배달국의 연호 개천을 역년으로 삼았습니다.
④ 단군들이 다스린 단군 조선시대(BC2,333 ~ BC238)로 47대의 단군들이 2096년 간 다스렸다 합니다. 수 많은 배달민족 중 단지파(밝달파) 일족의 역사라 생각됩니다. 이 시기는 진한, 변한, 기자조선, 마한등의 4개 국가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역년은 중심국가인 진한을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즉 단기 = BC2,333+AD2003 = 4336년으로 단기의 역년(歷年)을 삼았습니다.
이후의 역사는 5가(五加) 통치시대, 북부여, 가섭원 부여, 사국(四國 :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시대로 이어져 오게 되는데 자세한 내용은 "한단고기"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배달9200/개천5901/단기4336/서기2003/1/7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