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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4_22 훈민정음 탐구_김슬옹]* 34. ≪훈민정음≫ ‘정인지 서문’의 진실과 감동 / 김슬옹교수 <충청리뷰> 2024.10.03
34. ≪훈민정음≫ ‘정인지 서문’의 진실과 감동
천지자연의 소리 표현 문자는 훈민정음 뿐 /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김슬옹의 훈민정음 해설] 입력 2024.10.03
인류 문명의 기적(훈민정음)을 해설한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종과 8인의 공저이고
8인의 대표는 세종보다 한 살 많았던 정인지이다.
정인지는 세종의 신하였고, 학문의 동지였으며 당시 대제학으로 덕망 있는 사대부였다.
세종의 수학 스승이었을 만큼 수리, 천문,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정통한 융합 학자이기도 했다.
그가 해례본의 마지막 부분에 남긴 이른바 ‘정인지서(정인지 서문)’는
훈민정음의 감동과 진실을 가장 정확하면서 논리정연하게 풀어내고 있다.
나는 감히 이 서문을 단군 이래 최고의 명문으로 추켜세우고자 한다.
정인지서의 전문 번역은 앞서 소개한 바 있으므로
(26회, ≪훈민정음≫ 하루 아침에 배울 수 있는 문자의 가치) 여기서는 주요 쟁점만을 소개하기로 한다.
정인지서는 앞머리에서 ‘천지자연의 소리와 문자의 가치’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무릇 진정한 문자는 천지자연의 소리와 그 이치를 그대로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대 문자가 그런 의도로 만들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함을 말소리의 다양성과 중국 한자를 빌려 쓰는 우리 문자생활의 모순을 통해 밝히고 있다.
우리말소리에 맞는 글자가 아닌 중국 글자(한자)를 빌려 쓰는 모순은
몹시도 커 글을 제대로 배울 수 없고, 범죄 사건의 속사정조차 제대로 기록할 수 없다.
제대로 우리말을 적고자 만든 이두는 모순을 더할 뿐임을
“옛날 신라의 설총이 이두를 처음 만들어서 관청과 민간에서 지금도 쓰고 있다,
그러나 모두 한자를 빌려 쓰는 것이어서 매끄럽지도 아니하고 막혀서 답답하다. 이두 사용은 오로지 몹시
속되고 일정한 규범이 없을 뿐이니, 실제 언어 사용에서는 그 만분의 일도 소통하지 못한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정인지 집필 상상도. / 이무성 화백
정인지는 세종이 이런 문자 모순을 바로잡고자
1443년 12월에 창제를 마무리했다는 실록 기록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곧 말소리에 따라 만들어 소리는 음률의 일곱 가락에도 들어맞고
하늘·땅·사람의 세 바탕 뜻과 음양 기운의 신묘함을 두루 갖추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스물여덟 자로 끝없이 바꿀 수 있어, 간결하면서도 요점을 잘 드러내고,
정밀한 뜻을 담으면서도 두루 통할 수 있는 놀라운 새 문자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더군다나 이런 놀라운 문자를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아침이 다 가기도 전에,
슬기롭지 못한 이라도 열흘 안에 배울 수 있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훈민정음으로 한문을 풀이하면 그 뜻을 알 수 있다. 훈민정음으로 소송 사건을 기록하면,
그 속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코 단 0.1%의 과장도 없는 사실이었고 진실이었다.
1443년 실록 기록을 거의 그대로 전달하면서
훈민정음이 천지자연의 이치를 그대로 담았으면서도 학문의 문자로도 실생활의 문자로도 매우 뛰어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뛰어난 문자 기능을 가졌는지 ‘훈민정음의 효용성’이 곧바로 이어진다.
“글자 소리로는 맑고 흐린 소리를 구별할 수 있고, 음악 노래로는 노랫가락을 어울리게 할 수 있다.
글을 쓸 때 글자가 갖추어지지 않은 바가 없으며, 어디서든 뜻을 두루 통하지 못하는 바가 없다.
비록 바람소리, 두루미 울음소리, 닭소리, 개 짖는 소리라도 모두 적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세종의 지시에 따라 8인이 책을 보는 사람은 스승 없이도 스스로 깨치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해례본의 저술을 마치게 되었으니
훈민정음 창제자, 해례본 저술의 책임자인 세종에게 헌사를 바치지 않을 수 없다.
“훈민정음의 근원과 정밀한 뜻은
신묘하여 신하 된 자들로서는 감히 밝혀 보일 수 없다.
공손히 생각하옵건대 우리 전하는 하늘이 내리신 성인으로서
지으신 법도와 베푸신 업적이 모든 임금들을 뛰어넘으셨다.”
세종은 하늘이 내린 성인 참 지혜의 세상을 열다
여기서 충격적인 고백이 노출된다. 세종을 하늘이 내린 성인이요 모든 임금을 뛰어넘는다고 했다.
중국 황제에게만 할 수 있는 말을 거리낌 없이 했다. 우리 임금보다 중국 황제를 더 받들어야 하는 당시
사대 문화에서는 매우 충격적인 헌사이다. 이런 헌사를 바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어진다.
“정음 창제는 앞선 사람이 이룩한 것에 따른 것이 아니요,
자연의 이치를 따른 것이다. 참으로 그 지극한 이치가 없는 곳이 없으니,
사람의 힘으로 사사로이 한 것이 아니다.
무릇 동방에 나라가 있은 지가 오래지 않음이 아니로되,
만물의 뜻을 깨달아 모든 일을 온전하게 이루게 하는 큰 지혜는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의 뜻을 받은 세종이 자연의 이치에 따라 만든 훈민정음!
이 문자로 인해 이제 진정한 지혜의 세상이 열리게 되었다는 가슴 벅찬 선언으로 정인지서의 감동 서사는 마무리된다.
지식은 나누고 실천할 때 지혜가 된다.
한자와 한문으로 기록된 지식은 훌륭하나 평등하게 두루두루 나눌 수 없으니
진정한 지혜가 되는 지식이 되지 못한다.
이제 훈민정음으로 인해 진정한 지혜의 세상을 열게 되었다는 이 감동.
이것이 인류 문명의 큰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 기적이며
이런 감동을 기술한 “훈민정음” 해례본이 인류 최고의 고전이 아니면 무엇이 고전이겠는가?
정인지는 중국 황제를 뛰어넘는 우리 임금, 세종에 대한 무한한 존경을 숨기지 않았다.
이런 내용이 담긴 “훈민정음 해례본”을 중화 사대주의 찌든 대부분의 양반들이 받아들이기는 어렸웠을 것이다.
* 35. 훈민정음은 문학의 원천 / 김슬옹교수 <충청리뷰> 2024.10.09
35. 훈민정음은 문학의 원천 /《훈민정음》 해례본은 문학의 집
[김슬옹의 훈민정음 해설] 입력 2024.10.09
우리 겨레가 우리 민중들이 오랫동안 부르고 보듬어온 이야기와 노래와 시가 있었다.
수많은 전설과 설화가 그렇고 백제 가요가 그렇고 신라의 향가, 고려 말에 형성된 시조가 그랬다.
“아리아리 아라리요.”“얄리얄리 얄라” 등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소리들이 세종대왕이 한글(훈민정음, 언문)을 반포할 때까지
집글을 찾지 못해 입에서 입으로 떠돌았다. 입으로 떠돌고 입으로 나누기에 깔 맞춤한 소리요 말이지만,
머물 집이 없으니 때로는 허공 중에 사라져갔다. 대다수는 살기 바빠 사라져간 줄도 몰랐다.
일부는 한문으로 번역해 적기도 하고 일부는 한자의 훈과 음을 빌려 억지로 적기도 하였으나 온전치 못했다.
우리 집이 없으니 진정한 우리 문학이 있을 리 없었다.
일부 상류층은 아예 중국식으로 이야기를 짓고 시를 지어 한문학을 즐겼다.
이 또한 우리나라 사람이 지었으니 우리 문학임은 분명하지만, 당연히 진정한 우리 문학이라 할 수 없었다.
우리의 소리가 우리의 느낌과 이 땅의 섬세한 감성들을 반은 빼버린 반쪽 문학이기 때문이다.
훈민정음 덕에 글꽃으로 피어난 시조, 가사, 이야기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은 한문학, 이를테면 박지원이 지은
<열하일기>, <양반전> 등이 국문학이냐 아니냐 논쟁이 있었으나 부질없는 논쟁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정서를 바탕으로 지었으니 그것이 중국식 한문으로 적혀 있다고 해서 우리 문학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어(한문)로 번역된 번역문학으로서의 국문학일 뿐이다.
훈민정음 반포 이전에 한문으로 문학 활동을 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박지원 같은 대문호가
18~19세기에 우리 글이 있는데 굳이 모든 작품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문학 활동을 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문학 가치는 크게 세 가지로 짚어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바로 훈민정음이라는 우리다운 문자로
우리말과 소리를 온새미로 적게 하여 온전한 문학이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래서 사라져갈 뻔한
신라 향가, 백제 노래, 고려 가요 등이 안다미로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더욱 오달지게 꽃피게 되었다.
둘째는 완벽한 소리문자, 음소문자로 누구나 문학 활동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지은“金樽美酒 千人血(금준미주 천인혈)”로 시작하는 한시를 양반들이 즐겼다고 하나
그런 시를 실제 지을 수 있는 이는 과거 시험을 볼 수 있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지금 말로 하면 “사랑하고(괴여), 사랑받아(괴ᅇᅧ)”,
“콩, 뱀, 범” 등 맛깔스럽고 감칠맛 나는 우리 일상어가 124개(조사 포함 126개)가 실려 있다.
당연히 남녀노소 우리 겨레가 몇천 년 어쩌면 몇만 년 써온 말들이다.
누구나 문학가가 되는 길이 열린 것이다. 물론 소설 같은 경우는 타고난 재주가 있어야겠지만
시나 수필은 타고난 재질이 없어도 노력으로 창작이 가능하다.
문학을 즐기는 것이 어찌 창작에만 있을쏜가.
읽고 나누는 문학 활동이야말로 누구나 함께 즐기고 나누는 것이니 그 또한 소중하지 아니한가.
타고난 재주에 따라 문학을 갈라치기로 하자는 것은 아니라 누구나 문학이라는 달보드레한 감성 세계에
참여할 수 있다는 평등과 민주스러운 문학 활동.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필자가 훈민정음에 나오는 낱말로 개발한 한글 옷. 배경은 해례본 낱말 124개의 청농 문관효 한글서예가 글씨.
셋째는 해례본 표현 자체가 문학적 수사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제자해 갈무리 시에서 아래아(·)를 묘사하기를
“·는 하늘을 본떠 소리가 가장 깊으니 둥근 꼴이 총알 같네.”라고 글자를 총알에 비유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비유인가?
또 ‘ㄱㅋㄲ ’에 대해서는
“ㄱ[기]는 나무가 바탕을 이룬 것이고,
ㅋ[키]는 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것이고, ㄲ[끼]는 나무가 오래되어 굳건해진 것이니,
이는 한결같이 모두 어금니를 본뜬 데서 비롯된 것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예사소리, 거센소리, 된소리의 모양새를 나무에 빗대 찰진 문학 표현으로 기술해
같은 곳에서 소리나는 글자의 짜임새와 생김새를 비유적으로 표현해 놓았다.
획을 더한 거센소리 글자는 나뭇가지가 무성한 나무요
탁한 된소리는 고목 같은 굳건한 나무라 하였으나 이보다 더 멋진 표현이 어디 있을까?
해례본은 모두 366문장으로 이루어졌다.
우연인지는 모르나 고대 역학에서 1년을 366일로 보았으므로 아마도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 순환의 이치가 온전히 담긴 1년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일부러 366문장으로 맞춘듯하다.
그래서인지 366번째 마지막 문장이 가슴 벅찬 감흥으로 다가온다.
“무릇 동방에 나라가 있은 지가 오래지 않음이 아니로되,
만물의 뜻을 깨달아 모든 일을 온전하게 이루게 하는 큰 지혜는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문학은 배달문학을 연구하고 꽃피우셨던 김수업 선생님 말씀처럼 말꽃이다.
말이 말답게 꽃을 피우게 한 훈민정음!
그래서 우리의 소리와 이 땅의 모든 풍경, 토박이들의 그 풍성한 감성들과 울고 웃는 애환들,
우주를 품을 수 있는 이야기와 그 이야기의 꽃이 된 상상들이 글꽃을 피우게 되었으니
그것이 어찌 큰 지혜의 누리가 아니던가? 문학 없이 사람다운 누리를 가꾸고 보듬을 수 없다.
문학이 있어 우리의 삶은 살가운 삶이 되고 사랑을 나눌 수 있고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다.
시옷이란 글자는 날카로운 직선으로 우리 곁에 왔으나
그것은 “사람, 사랑, 삶”과 같은 말들을 누구나 쉽게 적으며 서로를,
그리고 지식과 지혜를 사랑하며 살라는 세종대왕의 백성사랑과 백성존중의 간곡한 정성이 깃든 직선이었다.
문학은 직선을 바탕으로 직선의 가치를 곡선의 아름다움으로 표현하고 나누는 일이다.
형식으로 수정ㆍ보완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 이 글은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의 2023년 복간본의 필자 해설서인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의 탄생과 역사≫(가온누리)”를 신문 연재 방식으로 다듬은 것이다.
김슬옹 :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한국외대 교육대학원 객원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간송미술관 요청으
로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을 직접 보고 최초 복간본을 해설했다.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훈민정음 해례본만의 순
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훈민정음학과 세종학 연구 업적으로 세종문화상 대통령상(학술)과 외솔상(학술), 연
문인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세종학과 융합인문학’ 등 우리 말글 관련 111권(70권 공저)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