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훈민정음(訓民正音)/월인석보_관련내용

석보상절(釋譜詳節) 개요 / 아미산

유위자 2026. 5. 6. 19:55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4_17 : 월인석보(月印釋譜) 관련내용 목차 * 석보상절(釋譜詳節) 개요 / 아미산 <아미산> 2025. 09. 28. https://blog.naver.com/ldh5111/224024221378 <석보상절(釋譜詳節)>은 세종의 명으로 1447년(세종 29) 수양대군과 신미(信眉) 대사 및 김수온(金守溫) 형제 등이 석가모니의 가계와 일대기, 그리고 주요 설법을 한글로 번역⋅편찬한 최초의 언해본 책이다. ‘석보(釋譜)’는 석가모니의 전기(傳記)를 의미하고, ‘상절(詳節)’은 종요로운 내용은 자세히[詳] 쓰고, 그렇지 않은 내용은 줄여서[節] 쓴다는 뜻이다. 1446년(세종 28) 세종의 정실이자 수양대군의 모후인 소헌왕후(昭憲王后)가 죽자, 수양대군은 크게 충격을 받고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중국 양(梁)나라의 승우(僧祐, 445-518)가 지은 <석가보(釋迦譜)>와 당(唐)나라의 도선(道宣, 596~667)이 지은 <석가씨보(釋迦氏譜)> 등에 나오는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설법들을 참조해 모은 뒤, 분류 편철해 처음 <석보(釋譜)>를 제작, 어머니의 제단에 올렸다. 이를 읽어본 세종이 수양대군에게 <석보>를 완성하라는 명을 내리자, 신미(信眉), 김수온(金守溫) 등의 도움을 받아 기존 <석보>에 <증수석가보(增修釋迦譜)>, <아미타경>, <무량수경>, <지장경>), <법화경> 등의 내용을 추가하고 원문들을 한글로 풀어쓴 것이 오늘날 전해지는 <석보상절>이다. 총 24권 24책이나 당시의 활자 인쇄술로 미루어 많은 부수가 간행되지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임진왜란⋅병자호란 등의 난리로 인해 그나마 전해지던 책도 없어져서 현재 초간본은 권6⋅9⋅13⋅19⋅23⋅24 등 6부가 각 1책씩 전할 뿐이고, 복각된 중간본도 권3⋅11의 2책만 전한다. ​ 간행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월인석보>에 실린 <석보상절 서문>이 세종 29년(1447)에 쓰인 것으로 돼있고, 또 9권의 표지의 기록으로 볼 때 세종 29년(1447)에서 세종 31년(1449) 사이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발견된 책 중에 마지막 권이 24권으로 30권에 가까운 방대한 것이라 짐작되지만 현재 8권만 남아있다. 문헌의 내용 자체만으로도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특히 한글로 번역한 것이라서 당시 쓰던 국어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전편(全篇) 24권 중, 현전하는 원간본으로는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 권6, 권9, 권13, 권19, 호암미술관 소장의 권20, 권21, 동국대학교 도서관 소장의 권23, 권24이 있다. 초간본 <석보상절>은 갑인자(甲寅字) 활자로 찍은 것으로, 현전 <석보상절>은 보물 제523호로 일괄 지정돼있다. 이후 세종이 <석보상절>을 읽어본 뒤 찬가(讚歌)로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지었고, 수양대군이 세조로 즉위한 뒤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합쳐 <월인석보(月印釋譜)>를 편찬했다. 책의 명칭 및 편찬 동기와 목적, 간행 시기, 그리고 편자에 대해서는 <월인석보> 권1 앞에 실려 있는 <석보상절 서(序)>와 <어제월인석보 서>에 자세히 기록돼있다. 인쇄에 사용된 한글 활자가 훈민정음 창제된 뒤 최초로 만들어진 점, <석보상절> 한국어 문장이 다른 언해 자료와 다르게 한문을 직역한 문체가 아닌 점, 최초로 <동국정운(東國正韻)>식 한자음을 부기한 점, 이 책의 표기법이 그 뒤의 한글 표기법의 전범(典範)이 된 점 등을 볼 때, 15세기 중엽의 한글과 한자음 번역 연구에 큰 도움을 주는 책이다. 또한 한글로 표기된 최초의 산문 작품이며, 문장 또한 세련되고 유려해 후대의 한글 고전소설 편찬에도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왕이 직접 제작에 참여한 불경 언해서로 세조와 그 주변 인물들이 지니고 있던 숭불의식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으며, 한국 최초의 국문 활자본 책으로서의 가치 또한 매우 높이 평가받는다. 석보체(釋譜體)라는 글꼴(폰트-font)은 여기의 글꼴을 참고해서 만들어졌고, 대한불교조계종 로고에도 쓰였다. 인쇄에 사용된 한글 활자는 한글 창제 이후 최초로 만들어진 것으로, 현대의 고딕체와 모양이 유사하다. 한글의 자형(字形)은 자음자의 획이 직선으로 되고, 방점과 아래 아(ㆍᆞ)가 둥근 점(點)으로 돼있어 한글 창제 당시의 모습을 보인다. 이 한글 활자는 <석보상절>을 간행하기 위해 주조한 것으로 보이고, 이후 <월인천강지곡>과 <사리영응기(舍利靈應記)>에도 이 한글 활자가 사용됐다. ――――각 권의 상태는 다음과 같다―――― 권6 ― 권말에 월인천강지곡 7장이 수록돼있음. 권9 ― 20장 뒷면 제1행 후반이 결락돼있음. 권13 ― 결락 없이 완전함. 권19 ― 26장 앞면 제1~4행이 결락돼있음. 권23 ― 1~2장이 낙장. 권24 ― 53장 이후 낙장. 중앙도서관 소장본(권6, 9, 13, 19)은 교정본으로, 한자음 표기를 중심으로 주필(朱筆)로 교정한 흔적이 남아있다. 복간본은 아래와 같은 목판본 2권 2책이 있다. 둘 다 새김이 조잡하고 약간의 오각이 있다. 권3 ― 아주대 천병식(千柄植) 교수 소장본. 1561년에 전북 무량사(無量寺)에서 개판(開版)된 복각본임. 권11 ― 영남대 심재완(沈載完) 교수 소장본. 간행 시기 불명. 16세기경으로 추정됨. 경기도 용인시 호암미술관 소장. ――――석보상절의 내용―――― <석보상절>은 조선 전기 수양대군이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설법을 담아 편찬한 불교 경전이다. 총 24권으로 추정되며, 갑인자와 한글 활자로 인쇄된 활자본이다. 왕비 소헌왕후가 돌아가자 그 명복을 빌기 위해 세종의 명으로 수양대군이 편찬했다. <석보상절>의 내용은 석가족의 연출(緣出)로부터 석가모니의 전세 이야기, 그리고 현세에서의 석가모니의 탄생, 성장, 출가, 성불, 멸도에 이르기까지의 일대기와 석가모니 사후의 경률(經律)의 결집(結集), 불법(佛法)의 유포 등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아미타경>, <약사경>, <법화경>, <지장경> 등 석가모니가 설법했다고 하는 주요 불경 내용이 석가의 일대기 속에 함께 실려 있어 기존에 중국에서 편찬됐던 <석가보> 등과 편찬 방식에서 차이를 보여 준다. 책의 편찬 순서는 이래와 같이 팔상도(八相圖)의 순서를 따랐다. ①도솔래의(兜率來儀 ; 부처님이 도솔천에서 내려옴. ②비람강생(毘藍降生 ; 룸비니 동산에서 이 세상에 태어남. ③사문유관(四門遊觀 ; 사대문으로 나가 봄. ④유성출가(踰城出家 ; 성을 넘어 출가함. ⑤설산수도(雪山修道 ; 설산에서 도를 닦음. ⑥수하항마(樹下降魔 ; 보리수 아래서 마귀를 항복시킴. ⑦녹원전법(鹿苑轉法 ; 녹야원에서 설법함. ⑧쌍림열반(雙林涅槃 ; 쌍림에서 열반에 듦의 순서를 따랐다. 그리고 <석보상절> 권11의 경우, 그 내용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째 석가모니 부처님이 석제환인(釋提桓因)의 청에 따라서, 도리천의 환희원(歡喜園)에 가서 어머니인 마야부인(摩耶夫人)을 위해 설법했다(제1장~제5장). 둘째, 석가모니 부처님이 지장보살에게 일러서, 사바세계에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후세의 모진 중생을 제도하라고 부촉했다(제5장~제10장). 셋째, 부처님이 인간 세계에 계시지 않은 것이 오래됐는데, 우전왕(優塡王)과 파사닉왕(波斯匿王)이 부처님을 그리워해 우두전단향(牛頭栴檀香)으로 불상(佛像)을 만들어서 공양했다(제10장~제11장). 넷째, 인욕태자(忍辱太子)가 병든 아버지를 위해 자기의 몸으로 약을 만들어 아버지께 바치고 자신은 죽었다(제11장~제24장). 다섯째, 사슴이 낳은 계집아이가 바라내국(波羅奈國)의 왕과 결혼해 왕비가 되었는데, 이 사람이 녹모부인(鹿母夫人)이다. 녹모부인은 500의 동자(童子)를 낳았는데, 500동자들이 모두 출가해 벽지불(僻支佛)이 됐다. 녹모부인은 다음 생에서는 오직 한 아들만 낳아 그 아들이 일체의 지혜를 얻게 해 달라고 서원했다. 그때의 녹모부인은 석가모니의 어머니인 마야부인(摩耶夫人)의 전세 몸이며, 마야부인이 다음 생에 낳은 한 아들이 지금의 석가모니 부처님이다(제24장~제43장). <석보상절>에는 석가모니의 행적과 석가모니와 관련된 인물에 관한 여러 일화가 소개돼있다. 따라서 이 책은 불교를 배우는 이들뿐만 아니라, 국어학자들이 15세기 국어를 연구하는 데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 특히 이 책은 한문 원문을 국어 문법 규칙에 맞게 번역했기 때문에 문장이 매우 자연스럽다. 따라서 <석보상절>은 훈민정음으로 지은 초기의 문헌임에도 불구하고, 당대에 간행된 그 어떤 문헌보다도 자연스러운 우리말 문장으로 지은 문헌이라고 할 수 있다. ――――<석보상절>에 대한 연구 방향―――― 현대에 들어 <석보상절>에 대한 연구는 중세 국어에 대한 학습자들이 <석보상절>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한다는 취지를 살려,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연구와 책의 편집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첫째, 현재 남아 있는 <석보상절>의 권수에 따라서 이들 문헌을 현대어로 옮겼다. 이에 따라서 <석보상절>의 3, 6, 9, 11, 13, 19, 23, 24 등의 순서로 현대어 번역 작업이 이루어졌다. 둘째, <석보상절>의 원문의 영인을 페이지별로 수록하고, 그 영인 바로 아래에 현대어 번역문을 첨부해 나갔다. 셋째, 그리고 중세 국어의 문법을 익히는 이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원문의 텍스트에 나타나는 어휘를 현대어로 풀이하고 각 어휘에 실현된 문법 형태를 형태소(形態素) 단위로 분석했다. ※형태소(形態素)----뜻을 가진 가장 작은 말의 단위임.‘이야기책’의 ‘이야기’,‘책’ 따위이다. 우리가 하나의 문장을 얘기할 때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독립적 단위로서의 단어를 말한다. 문법적, 관계적 요소를 구분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의미의 단어를 말한다. 넷째, 원문 텍스트에 나타나는 불교용어를 쉽게 풀이함으로써, 불교의 교리를 모르는 일반 국어학자도 <석보상절>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다섯째, 편집되는 논문 혹은 책의 말미에 [부록]의 형식으로 [원문과 번역문의 벼리]를 실었다. 그리고 <석보상절>의 텍스트에서 주문장의 사이에 삽입돼있는 협주문(夾註文)을 생략해 본문 내용의 맥락이 끊이지 않게 했다. 여섯째, 여기에 쓰인 문법 용어와 약어(略語)의 정의와 예시를 책 머리의‘일러두기’와 [부록]에 수록해서, 이를 통해 중세 국어를 익히려는 독자에게 도움을 주었다. ――――석보상절>의 역사적 가치―――― <석보상절>이 학문적으로 갖는 두드러진 가치는 몇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불교학적인 면에서 당시의 불교를 조직화한 것으로 조선초기의 불교학 수준을 말해 준다. 둘째, <석보상절>이 최초의 한글 번역 불경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셋째, 문학적인 면에서 국문으로 된 최초의 산문 작품이지만, 세련된 문장이 유려해 후대의 고전 소설 등의 문체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넷째, 국어학적으로는 풍부한 어휘와 이에 따른 어법⋅음운 표기법 등 15세기 중엽의 국어 연구 및 한자음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다섯째, 서지학적으로는 <월인천강지곡>과 함께 최초의 국문활자본이란 점에서 값진 문화재로서 가치가 인정된다. <석보상절>은 한글로 표기된 최초의 산문 자료로서, 특히 15세기의 다른 언해 서적들과는 달리 한문 원문이 없고, 또한 문체도 자연스러운 점에서 당시의 언어 사실을 더 잘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돼왔다. <석보상절>이 최초의 한글 불경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문학적인 면에서도 국문으로 된 최초의 산문 작품이다. 그리고 조선 초기 국어와 한자음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며, 또한 문체도 자연스러운 점에서 당시의 언어 사실을 더 잘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표기법에 있어서도 같은 세종대의 문헌인 <용비어천가>와 <월인천강지곡>과는 달리 부분적인 표기법의 혼란은 있으나, 이는 정음 창제 초기에 아직 확정되지 않은 몇 가지 표기법에 한정되는 문제이다. 또한 이 표기법의 혼란은 전체 24권이라는 분량의 방대함에서도 그 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면서 <석보상절>의 표기법은 그 이후의 한글 표기법의 전범(典範)이 됐다. 한자음 부기(附記)의 방식도 그러하다. 15세기 한글 문헌들은 각 한자별로 그 아래에 동국정운(東國正韻)식 한자음을 부기하는데, 그러한 방식의 최초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다만 이 책에 부기된 한자음 가운데에는 <동국정운>의 한자음과 일치하지 않는 것도 소수 존재한다. -----------------------------------성불하십시오. 작성자 아미산(이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