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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4_17 : 월인석보(月印釋譜) 관련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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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석보
* 불경언해서 <월인석보(月印釋譜)>
보물 제745호. 세조가 세종 28년(1446)에 승하한 소헌왕후(昭憲王后)의 명복을 빌기 위해
수양대군(首陽大君)에 명해 세종29년 7월에 완성한 <석보상절(釋譜詳節)> 24권과
이를 보고 세종이 지은 가송체(歌頌體)인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3권을 합하여
세조 5년(1459)에 간행한 책. <월인천강지곡>의 각 절은 본문이 되고
그에 해당한 내용의 <석보상절>을 주석(註釋) 같이하여 편찬하였다.
이것은 그 당시의 글자나 말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서 국어사상 귀중한 문헌이다.
1459년(세조 5)에 세조가 세종이 지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본문으로 하고
자신이 지은 <석보상절(釋譜詳節)>을 설명 부분으로 하여 합쳐 펴낸 책이다.
초간본 10권(1, 2 , 7, 8, 9, 10, 13, 14, 17, 18권) 8책과
중간본 2권(21,22권) 3책이 보물 제 745호로 지정되었으며 2권(11, 12권) 2책이 보물 제935호로 제정되었다.
합편을 함에 있어서 조권(調卷)도 다르고 내용에도 많은 첨삭을 가하는 등 상당한 변개를 행하였다.
월인석보(月印釋譜)는 한글 창제 직후에 간행된 산문 자료로서 국어국문학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 책은 세종과 세조, 2대에 걸쳐 임금이 짓고 편찬한 것이다.
1459년(세조 5) 간행된 석가일대기(釋迦一代記). 보물 제745호(11, 12권은 보물 935호). 목판본.
세종이 지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과 세조가 지은 <석보상절(釋譜詳節)>을 개고(改稿)해 합편한 책이다.
1457년(세조 3년)에 왕세자였던 도원군(桃源君)이 죽자 임금은 이를 애통히 여겨
부왕과 죽은 아들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근 2년 동안에 걸쳐 증보(增補) 수정하여 간행하였다.
세조의 명으로 당시 편찬에 종사한 사람은 신미(信眉)ㆍ수미(守眉)ㆍ설준(雪竣)ㆍ
홍준(弘濬)ㆍ효운(曉雲)ㆍ지해(智海)ㆍ해초(海超)ㆍ사지(斯智)ㆍ학열(學悅)ㆍ학조(學祖) 등의 고승과
유학자인 김수온(金守溫) 등 11명으로, 이들은 당대의 불학(佛學)을 대표하는 선지식(善知識)들이었다.
내용은 <월인천강지곡>의 각절(各節)은 본문이 되고, 그에 해당하는 내용의 <석보상절>은 주석(註釋)같이 하여 엮어졌다.
<월인석보> 편찬은 세종 말엽에서 세조 초엽까지 양대에 걸친 약 13년 동안에 이룩된 사업으로,
석가일대기의 결정판일 뿐만 아니라,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 이후 제일 먼저 나온 불경언해서(佛經諺解書)이며,
당시의 글자나 말을 그대로 보전하고 있어 국어사상(國語史上) 매우 귀중한 문헌이다.
원본이 완전히 전하지 않아 당초 몇 권으로 되어 있었는지 명확하지 못하나, 30권 이내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전하는 것은 원간본(原刊本)과 중간본(重刊本)을 합하여
1ㆍ2ㆍ7ㆍ8ㆍ9ㆍ10ㆍ13ㆍ14ㆍ17ㆍ18ㆍ21ㆍ22권 등 모두 12권인데,
이 중에서 권 7(崔南善 소장본), 권 8(大同出版社 소장본), 권 9ㆍ10(梁柱東 소장본), 권 17ㆍ18(강원도 封陀寺 소장본)
이 연세대학 동방학연구소(東方學硏究所)에서 <국고총간(國故叢刊)> 제5ㆍ6ㆍ7로 1956년에 영인(影印) 간행되었고,
그 밖에 국어학회편 <고전선총(古典選叢)>에 권 1이 영인되어 있다.
권 1ㆍ2는 경북 영주(榮州)의 희방사(喜方寺) 소장이고,
권13ㆍ14ㆍ23은 연세대학 도서관 소장,
권21은 초간본 외에 경북 안동(安東)의 경흥사판(慶興寺板)과 충남 논산(論山)의 쌍계사판(雙溪寺板) 등 2종이 있고,
권 23은 낙질(落帙)하여 63장(張) 이후만 전한다.
완질(完帙)이 24권으로 알려졌으나, 1995년 12월 전남 장흥 보림사 사천왕상 복장에서 제25권이 발견되었다.
권 머리 부분에 월인천강지곡을 비롯하여 탈락되어 있다.
편찬 동기는 죽은 부모와 일찍 죽은 아들을 위한다고 되어 있지만,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 죽이고 왕위에 올라 사육신 등 많은 신하를 죽인 끝에 당하는 정신적인 고통,
회한과 무상(無常)의 깊은 수렁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기 위하여 추진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석보상절>로 미루어서 모두 24권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전하고 있는것은 중간본까지 합쳐도 완질이 되지못한다.
전하는 간본의 종류와 소장자, 영인사항은 다음과 같다.
(1) 권1ㆍ권2 2권1책
:초간본이 서강대학교에 소장되어 있으며, 1972년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에서 영인, 간행하였다.
중간본으로는 1568년(선조 1) 희방사(喜方寺: 경상북도 풍기)의 것이 전하는데,
책판(冊版)이 6ㆍ25 이전까지 보존되었다. 이 간본의 권1은 1960년 국어학회(國語學會) 고전총서로 영인되었다.
(2) 권7ㆍ권8 2권2책
:초간본(낙장 있음)이 동국대학교에 소장되어있으며, 1981년 동국대학교출판부에서 영인,간행하였다.
중간본은 1572년 비로사(毘盧寺: 경상북도 풍기)의 것이 전하는데,
1957년 청사진본(靑寫眞本)을 연세대학교 동방학연구소(東方學硏究所)에서 축소 영인하였고,
권7을 1978년 동국대학교 동악어문학회(東岳語文學會)에서 영인하였다.
한편, 16세기 중엽의 복각(覆刻)으로 보이는 권8의 중간본이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육당문고(六堂文庫)에 있다.
(3) 권9ㆍ권10 2권2책
:초간본(낙장있음)이 양주동가(梁柱東家)의 구장(舊藏)으로 전하는데,
1957년 연세대학교 동방학연구소에서 영인하였다. 서울의 김민영이 소장하고 있다.
(4) 권11ㆍ권12 2권2책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5) 권13ㆍ권14 2권2책
:초간본(낙장 있음)이 있으며, 1982년 홍문각(弘文閣)에서 영인하였다. 연세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다.
(6) 권17ㆍ권18 2권1책
:초간본(낙장 있음)이 수타사(壽陀寺: 강원도 홍천)에 소장되어 있는데,
1957년에 연세대학교 동방학연구소에서 간행하였다. 또한, 초간본으로 보림사(寶林寺: 전라남도 장흥)에
권17만 소장되어 있는데, 수타사본의 낙장부분만 1972년 [한글] 150호에 영인되었다.
(8) 권22 1권1책
:서울의 김종규 소장으로 삼성출판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16세기 중엽 한 사찰에서 복각하였다.
(9) 권23 1권1책:서울의 김종규소장으로 삼성출판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 책은 <월인천강지곡> 기(其) 497∼524까지 28수가 실려 있고
여기에 해당하는 <석보상절>의 내용을 해설처럼 싣고 있는데 <석보상절> 권23의 내용과는 다르다.
1559년 무량굴에서 복각한 것이다. 1963년 [동방학지(東方學志)] 6집에 영인되었다.
(10) 권25 1권 1책 : 전라남도 장흥 보림사에 소장되어 있다.
<월인석보>의 전체 권수가 몇 권으로 구성된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는데,
보림사 사천왕상 복장에서 새로 제25권이 발견되어 <월인석보>가 전체 25권으로 편찬된 것임이 밝혀졌다.
권 머리 부분에 월인천강지곡을 비롯하여 탈락되어 있다.
이 <월인천강지곡>에 해당되는 <석보상절>은 권24의 내용인데,
이 <석보상절>의 내용을 <석가보> 권5와 <경덕전등록> 등에서 수정 보완하여 싣고 있다.
이어서 나오는 주석 부분에는 사분률(四分律)ㆍ현우경(賢愚經)ㆍ분별공덕론(分別功德論)ㆍ다론(多論)ㆍ
계단경(戒壇經)ㆍ대품(大品)ㆍ지론(智論)ㆍ갈마소(鞨磨疏)ㆍ십송률(十誦律) 등에서 인용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실린 <월인천강지곡>은 권 머리 부분과 마지막에 탈락되었기 때문에
몇 수가 실렸었는지 알 수 없으나 현재 기 577부터 583까지 7수가 실려 있다. 이 책의 권말에는
<월인천강지곡> 기 582와 583을 싣고 여기에 대한 주석(註釋)이 한 장 분량만 남아있고 나머지 부분은 탈락되었다.
제일 끝에 실린 <월인천강지곡> 기 583은 내용상 결론 부분이 아닌 것으로 생각되고,
이 부분의 설명이 <석가보> 권5의 내용 가운데 아육왕조팔만사천탑기(阿育王造八萬四千塔記)까지만 실려 있고
석가획팔만사천탑숙연기(釋迦獲八萬四千塔宿緣記)ㆍ석가법멸진연기(釋迦法滅塵緣記)ㆍ석가법멸진상기
(釋迦法滅塵相記)의 내용이 빠져 있다.
그러므로 전체 내용 구성상
뒷부분에 월인천강지곡 4∼5곡을 포함하여 상당량의 내용이 탈락된 것(약 30여 장)으로 추정된다.
<월인석보>는 한글 창제 직후에 간행된 산문 자료로서 국어국문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특히, 권1 앞에 <훈민정음> 언해본(諺解本)이 실려 있어서 그 가치가 더욱 크다.
이 책은 세종과 세조의 2대에 걸쳐 임금이 짓고 편찬한 것으로,
현존본에 나타난 판각기법이나 인출(印出) 솜씨 등을 보면 조선 초기 불교문화의 정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세종의 훈민정음 반포 당시에 편찬, 간행되었던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세조 때 다시 편집하였기 때문에,
초기의 한글 변천을 살피는 데 있어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조선 초기에 유통된 중요경전이 취합된 것이므로 당시 불교 경전의 수용태도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월인석보 권 1⋅2】보물 제745-1호. 소재지 : 서울특별시 마포구 백범로 35(신수동 서강대학교 도서관).
<월인석보> 권1⋅2는 <월인석보>첫 권인 권 1과 권 2의 합본인데 이것은 세조 5년(1459) 당시에 간행된 것이다.
책의 크기는 가로 22.8㎝, 세로 33.8㎝이다. 권 1, 2는 1568년에 희방사(喜方寺)에서 다시금 복각한 일이 있는데,
이 책은 그 기초본이 된다. 내용은 <월인천강지곡>기(其) 1에서 기(其) 29까지 실려 있고,
책머리에 <훈민정음>, 그 다음에 <석보상절서(序)>와 <월인석보서(序)>가 있다.
【월인석보 권 7⋅8】보물 제745-2호.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1길 30(장충동2가, 동국대학교도서관).
<월인석보> 권7⋅8은 역시 세조 당시에 최초로 간행된 본으로, 2권 2책으로 되어 있다.
책의 크기는 가로 22.2㎝, 세로 32.2㎝이다. 권 7은 첫 장에서 제5장까지 떨어져 없어지고,
그밖에 부분적으로 떨어져나가, 베껴서 보충해 놓은 곳이 있다. 내용은 <월인천강지곡> 제177장에서 제201장까지이고,
권 8에는 <월인천강지곡> 제202장에서 제250장까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월인석보 권 9】
보물 제745-3호.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9(용산동6가 한글박물관).
<월인석보> 권 9⋅10은 세조 당시에 최초로 간행된 것으로, 2권 2책으로 되어 있다.
책의 크기는 가로 22.5㎝, 세로 30㎝정도이다.
권 9는 첫 장에서 제3장까지 없어졌고 제35, 36장은 상 ·중 ·하 3장씩 분류되어 있다.
이밖에 부분적으로 훼손된 것은 베껴서 써놓았다. 권 10은 첫 장에서 제122장까지 되어 있으나
문장이 완전히 끝나지 않아 몇 장이 떨어져나갔을 것으로 보인다.
권9의 내용은 <월인천강지곡> 제251장에서 제260장까지이고,
권 10은 <월인천강지곡> 제261장에서 제271장까지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월인석보 권 11】
【월인석보 권 12】보물 제935호.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55길 60-16 삼성미술관 리움(한남동).
<월인석보> 권 11, 12는 그 동안 알려진 10권 8책에는 없는 부분에 해당되는 것으로
세조 5년(1459)에 간행된 초판본이다. 권 11에는 <월인천강지곡> 제272부터 275까지 실렸고,
<석보상절>은 <법화경> 권1의 내용이 실려 있다.
권 12에는 <월인천강지곡> 제276부터 278까지 실렸고 <석보상절>은 <법화경> 권2의 내용이 실려 있다.
이 책은 훈민정음 창제 이후 제일 먼저 나온 한글불교대장경으로,
조선 전기의 훈민정음 연구와 불교학 및 서지학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월인석보 권 13】보물 제745-4호.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 중앙도서관 (신촌동 연세대학교).
<월인석보> 권 13⋅14는 역시 세조 때 처음으로 간행된 것으로, 2권 2책으로 되어 있다.
책의 크기는 가로 22.6㎝, 세로 32.8㎝이다.
권 13은 첫 장이 없어졌고 부분적으로 훼손이 심하다. 권 14는 제82장 이하가 다 떨어져나갔고,
보존 상태로 보아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탑 속에 들어있던 것으로 짐작된다.
권 13의 내용은 <월인천강지곡> 제281장 하부에서 제282장까지이며, 권 14는 제282장에서 제293장까지 수록되어 있다.
【월인석보 권 15】보물 제745-10호. 소재지 : 전북 순창군 복흥면 봉덕길 131-144 구암사(봉덕리).
순창(淳昌) 구암사(龜巖寺)에서 발견된 <월인석보> 권15는 그 동안 완전한 상태로
전존(傳存)되는 판본이 없었다는 점에서, 초간본(初刊本)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1998년에 소개된 바 있는 성암본(誠庵本)이 모두 30장에 불과한 점으로 보아, 구암사본(龜巖寺本)은 비록 앞뒤의
표지(表紙)가 결락되어 있으나, 본문에는 낙장(落張)이 전혀 없는 완전한 상태여서 학술 및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더욱이 월인석보 권15는 완전한 초간초쇄본(‘初刊初刷本’)이라는 점에서 그 진가가 높다.
【월인석보 권 17】
【월인석보 권 18】보물 제745-5호. 소재지 : 강원 홍천군 동면 수타사로 473 수타사(덕치리).
<월인석보> 권17⋅18은 세조 때 처음 간행된 초간본으로, 2권 1책이다.
본래 강원도 홍천의 수타사 인왕문에 있는 사천왕상의 배부분에서 발견되었다.
권 17은 전부가 완전하며, 권 18은 제87장 하부가 없어졌으나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내용은 권 17은 <월인천강지곡> 제311장에서 제317장까지이며 권 18은 제318장에서 제324장까지 해당되는 내용이다.
【월인석보 권 20】보물 제745-11호.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자로 12 국립고궁박물관.
<월인석보>는 전체 25권으로 추정되는데 <월인석보> 권 20이 새로 지정됨으로써 현재 18권이 확인된 셈이다.
이 책은 <석보상절>과 함께 한글창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고 우리나라 최초의 찬불가(讚佛歌)이며
국역대장경(國譯大藏經)이라 할 정도로 조선 초기 불교경전 연구와 한글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이 책은 현재까지 발견된 <월인석보> 전 25권 중에 아직까지 복본이 없는 유일본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월인석보 권 21】보물 제745-6호.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55길 60-16, 삼성미술관 리움(한남동).
<월인석보> 권21은 세조 때 처음으로 간행된 본을 바탕으로
명종 17년(1562) 전라도 순창 무량굴에서 복각한 1권 2책의 중간본이다.
이 책은 최초에 간행된 본은 아니라도 복간이므로 원형에 가깝고 또 권 21은 다른 곳에 없는 유일본이다.
내용은 <월인천강지곡> 제413장에서 제445장까지 해당한다. 책머리에는 도솔래의상과 쌍림열반상의 변상도가 있다.
【월인석보 제21(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32-7호. 소재지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봉림동 봉림사.
본서의 판식, 글자체, 지질 등을 자세히 살펴보면 1542년(중종 37) 안동의 광흥사(廣興寺)에서 간행한 책과 흡사하다.
광흥사판은 간기에 ‘가정이십일년임인삼월(嘉靖二十一年壬寅三月) 경상도(慶尙道) 안동(安東) 하가산(下柯山)
광흥사(廣興寺) 개판(開板)’이라 되어 있는데, 본서 역시 16세기 중엽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80년 1월 강원도 철원의 심원사(深源寺) 승려 효공(曉空)이 현재 봉림사 회주인 승려 시진(始眞)에게 기증한 것을
다시 승려 응산에게 기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목판본이며 황색표지에 붉은 끈을 묶었다. 크기는 가로 22.5㎝, 세로 32㎝이며,
판심제(版心題)는 <월인석보(月印釋譜)>이다. 첫 장과 마지막 장에는 가로 7㎝, 세로 7㎝의 주인(朱印)이 찍혀 있다.
전체 222장으로 되어 있는 책이나, 본서는 상권에 해당하는 앞부분으로 총 110장이다.
간기가 기록되어 있을 하권이 없어 간행 시기, 간행 지역, 간행처 등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첫 장에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제이십일(第二十一)’이라 제(題)하고,
그 아래에‘석보상절(釋譜詳節) 제이십일(第二十一)’이라 제(題)하였다.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가족에 대해 기록하고 이를 한글로 번역하였다.
【월인석보 권 22】보물 제745-7호. 소재지 : 서울의 김종규 소장으로 삼성출판박물관에서 보관.
<월인석보> 권 22는 세조 때 처음으로 간행된 본을 바탕으로, 복각하여 간행한 중간본이며, 1권 1책이다.
책의 크기는 가로 22.2㎝, 세로 32㎝정도이다. 간행된 때는 정확치 않지만 희방사, 갑사 무량굴 등에서
복각한 것과 비교하여 거의 비슷한 시기일 것으로 짐작되며, 임진왜란 이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월인석보 권 23】
【월인석보 권 23 권말】보물 제745-8호. 소재지 : 서울의 김종규 소장으로 삼성출판박물관에서 보관.
<월인석보> 권 23은 세조 때 최초로 간행된 본으로, 1권 1책이다. 책의 크기는 가로 21.5㎝, 세로 31.2㎝이다.
이 권 23의 판본은 권머리와 뒷부분에 결실이 있어 현재 제16∼106장이 남아있고 판본 전체를 배접하여 수리하였다.
이 판본은 <월인천강지곡> 기(其) 497∼524까지 28수가 실려 있고,
여기에 해당하는 <석보상절>의 내용을 해설부분으로 싣고 있다.
【월인석보 권 25】보물 제745-9호. 소재지 : 전남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45 보림사.
<월인석보> 권 25의 편찬 체제는 먼저 <월인천강지곡>을 배열하고
이어 여기에 해당하는 <석보상절>의 내용을 해설형식으로 실었다.
그렇지만 <월인석보> 편찬 때 기존의 <석보상절>의 내용을 그대로 수록한 것이 아니라
이를 수정, 보완하여 여러 경전에서 내용을 첨삭하여 싣고 있다.
이 권 25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는데 권의 2장과 일부가 탈락되어 있다.
전체분량 5분의 2에 해당되는 전반부는 2∼4수로 추정되고,
후반부는 <월인천강지곡> 577∼583까지의 7수와 <석보상절> 권 24의 내용을 중심으로 싣고 있다.
<월인석보>의 총 권수는 24권 혹은 25권으로 추정되어 왔는데 이번에 권 25가 새로이 발견됨에 따라
『월인석보』가 전체 25권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밝혔을 뿐만 아니라,
조선 전기 한국불교 및 문헌학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맞는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