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상사 월인천강지곡 .. 학명 스님부터 정산 종사까지
<부안인터넷신문> 2025. 07. 29 조봉오기자
부안군 변산면 실상길 122에 전라북도 기념물 제77호 실상사지實相寺址가 있다.
실상사實相寺가 불교계는 물론 학계에서까지 관심을 받았던 것은
국보 320호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卷上이 최초 실상사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
조선 태종의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은 1462년, 1466년 실상사 삼존불 조성과 중창 발원문을 직접 작성했다.
효령대군이 이 시기에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불복장佛腹藏 한 것으로 학계에서는 주장하고 있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은 세종대왕이 석보상절을 읽고 직접 지었다는 찬불가이다.
따라서 실상사는 세조의 원당願堂으로 왕실 사찰이었다.
실상사 규모를 가늠하게 하는 그림은 강세황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것을 법보신문에서 선보였다.
출처:디지털부안문화대전 캡처(국보 320호 월인천강지곡 상)
출처:법보신문 기사 캡처(강세황 작 실상사 전경)
부안군 변산면 실상사지
이러한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이 소장된 곳도 부안 실상사이고,
1894년 무렵 일부 세력의 사찰 난입과 훼손으로 복장유물이 나온 곳도 실상사이다.
하지만 포털에서 월인천강지곡이나 실상사를 검색하면 이러한 연유를 찾기 힘들다.
2014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안승준 박사와 미래엔교과서박물관장 유학영 박사가 발표한 논문
‘월인천강지곡의 부안 실상사 소장 경위와 그 전래 과정’을 통해 실상사 월인천강지곡 이동 경로가
외부에 알려지게 되었다. 2017년 월인천강지곡 권상月印千江之曲 卷上이 국보 제320호로 지정된다.
부안 실상사와 효령대군 그리고 1914년 내소사 주지 학명 스님이 실상사에서 발견한 월인천강지곡,
또한 학명 스님과 원불교 정산 종사로 이어지는 인연은 부안을 이채롭게 만드는 중요한 자산이 된다.
현재 실상사는 실상사지實相寺址 상태 그대로이며,
회주 지안 스님과 보광, 보정 스님들이 실상사 찾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1400년대 실상사가 제대로된 대접을 받게 될 때 부안 불교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출처 : 부안인터넷신문(http://www.buan114.com)
※ 실상사에 관련된 아래의 글은 국회 전자도서관에 있는 글을 퍼온 것입니다
사찰에 소장되었던 고서는 그 출처와 소장내력을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월인천강지곡 또한 마찬가지이다. 필자는 평소
사찰 문헌이 원래의 소장처와 그 전래 경위가 밝혀지지 않은 것에 대해 많은 의문을 품어왔다.
이 글에서는『월인천강지곡』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기탁을 계기로 본
도서의 이동 경로 및 그 원인과 배경을 구명하였다.
"세종대왕이 지은 歌詞 월인천강지곡이 어떻게 외진 전라도 변산반도의 실상사에 보관되어 있었는가?
실상사와 월인천강지곡, 그리고 효령대군과는 어떠한 因果가 있었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에서부터 동학농민전쟁, 일제 강점기, 6·25전쟁이라는 근대사 전개과정에서
월인천강지곡의 소장 경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요컨대 이 글은 월인천강지곡이란 책자가 1462~1466년 실상사 奉安된 이후
1960~1970년대까지 약 500년간 역사적 공간을 추적해 그 傳存 과정을 살펴본 것이다.
그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15세기 중엽 효령대군에 의해 부안 실상사에 월인천강지곡이 佛腹藏됨
20세기 초, 1462년과 1466년에 작성된
실상사 三尊佛 조성을 위한 普勸詞(勸善文) 2건과 실상사 중창 發願文 1건이 발굴되었다.
이 3건의 고문서를 통해 효령대군에 의해 실상사 삼존불이 조성되었고,
4년 뒤에 실상사가 중창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삼존불 조상과 사찰의 重建을 계기로 월인천강지곡이 효령대군에 의해 佛腹藏되었다.
실상사에 월인천강지곡이 소장된 것은 이 절이 바로 세조의 願堂으로서 사회·경제적 위상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② 19세기 말 동학농민이 실상사 불상을 파괴하면서 월인천강지곡이 세상에 나오게 됨
1894년 동학농민들은 실상사 부처의 몸에 금은보화가 숨겨져 있다는 말을 믿고 불상을 파괴하였다.
이 때 금은보화는 발견되지 않고 다수의 고서와 고문서가 불복장 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때 월인천강지곡이 세상에 나왔으나 이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③ 1914년 白鶴鳴 스님이 부안 實相寺 불복장에서 월인천강지곡을 발견함
1914년 봄, 부안 來蘇寺에서 20리 거리에 있는 실상사의 법당이 퇴락하고 本尊佛도 더 이상 수리할 수 없게 되자
당시 내소사 주지였던 백학명 스님이 불상의 腹中에 봉안된 월인천강지곡 상권 1책을 발견하였다.
④ 1918년 鞠黙潭 스님 인수함
1918년 10월, 국묵담(1896~1981) 스님이 내소사에서
당시의 실상사 주지 金性連 스님에게서 '월인천강지곡 상’을 인수해 왔다.
이후 국묵담 스님의 주석처를 따라 백양사 청류암, 담양 용화사에서 보관, 관리하였다.
⑤ 1961년 光州遞信廳 陳錤洪 청장 인수함
1961년 1월 23일, 국묵담 스님이 「월인천강지곡을 陳遞信廳長님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서한과 함께
월인천강지곡을 당시 광주체신청 청장이었던 진기홍 씨에게 인계하였다.
1963년 9월 2일, 문화재청은 진기홍 씨가 소장하던 월인천강지곡을 보물 제 398호로 지정하였다.
⑥ 1972년 大韓敎科書 주식회사 金光洙 사장 인수함
1972년 7월 21일, 대한교과서 주식회사(현 ㈜ 미래엔) 김광수 사장이
진기홍 청장으로부터 월인천강지곡을 인수하여 회사에서 收藏하였다.
⑦ 2013년 韓國學中央硏究院 藏書閣에서 위탁 관리함
㈜미래엔에서 월인천강지곡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寄託, 2013년 6월 26일 기탁식 거행하였다.
이때 ㈜미래엔 김영진 사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정길 원장 등이 참석하였고,
이때부터 장서각이 관리의 주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