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檀)’과 홍익인간에 대한 철학적 이해 一어원을 중심으로一 / <이찬구>
이찬구** / 주제어 : 단군, 홍익인간, 천지인, 우주의식, 텡그리
Ⅰ. 문제제기
Ⅱ. 단군과 단군민족주의
Ⅲ. ‘단(檀)’과 홍익인간
Ⅳ. 결론
* 이 글은 2017년 7월 7일 선도문화진흥회와 국학연구원이 개최한‘21세기 선도문화의 바른 인식과 생활화’학술대
회에서 발표한 논문이다.
* 이 논문은 저서인 『통일철학과 단민주주의』(한누리미디어, 2015)와 2017.1.12. (사)국학원 주최 정기학술회의
에서 발표한 논문“홍익인간과‘다다살리’단(檀)민주주의”에서 제기된 문제를 일부 수정, 보완하여‘단’과‘홍
익인간’에 대한 새로운 어원분석을 통해 인간의 주체적 존재를 서술하고 있다.
** (사)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국문요약】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단군과 홍익인간의 정신은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가? 단순히‘박달임금’이라거
나‘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것과 같은 기존의 해석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단군의 단(檀)과 홍익인간에 대
한 원초적인 해석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단군의 단(檀)과‘홍익인간(弘益人間)’의
어원을 분석하여 원초적 의미를 찾아볼 것이다.
일찍이 최남선은 단군(壇君)이란 텡그리(Tengri) 또는 그 유어(類語)의 사음(寫音)이라고 보았다. 또 원래 하늘을
의미하는 말에서 변전하여 하늘을 대표한다는 군사(君師)의 호칭이 된 말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와 비슷한 말로
우리말‘대갈’을 들었다. 이는 머리이며, 동시에 하늘이라 했다.『사기』(흉노전)에서도 하늘(天)을 탱리라 했다.
북한의 리지린은 단군의 단(檀)은‘다’를 한자로 음사(音寫)한 것으로 보고, 단군은 국왕으로서의‘단임금-다임금’
이라는 색다른 해석을 제시하였다. 고구려말에 骨大(골대)를‘고다’로 읽은 것에서 大(대)를‘다’로 독음하였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檀(단)은 본래‘다’의 소리였고, 하늘과 땅의 뜻을 지닌 말로 추정할 수 있다.
안호상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말이 홍익인간에 대한 바른 해석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홍(弘)을 넓을 광
(廣)이 아니라 큰 대(大)로 볼 것을 제안했다. 홍(弘)을 대(大)로 볼 경우, 단(檀)의 다(多)와 상통함을 알 수 있
다. 또 익(益)은‘더을(더할) 익’으로‘더’의 소리를 취할 때, 홍익은 ‘다더’가 되고, 이는 ‘다다’로도 통용
이 된다. 이상을 통해 단의‘다’와 홍익의‘다다’는 하늘과 땅에 근원한 말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천
지인(天地人)의 합일을 중요시한 조상들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고, 천지(天地)와 함께 살아온‘우주의식’도 느낄
수 있다.
Ⅰ. 문제제기
우리는 작년 연말부터 몇 달 동안 전혀 다른 체험을 하였다. 그동안 우리의 시위문화는 으레 폭력 내지는 폭력성을
수반하는 것이었으나, 평화집회로 일관하였다. 필자는 대통령 탄핵을 주제로 한 일련의 촛불집회를‘광화문의 평
화’라고 규정짓고 싶다. 이것은 광화문과 평화라는 두 개념의 절묘한 조합을 의미한다. 광화문 앞의 광장 명칭도
2009년에 ‘광화문광장’이란 이름으로 조성되었다. 광화문이라는 이름은 『서경』에 나오는 光被四表 化及萬方(광
피사표 화급만방; 빛이 사방을 덮고, 교화가 만방에 미친다)에서 따온 말이다. 이는 임금의 통치를 중심으로 한 말
이지만, 오늘날은 그 임금이 빛을 잃자 국민이 일어나 새로운 빛이 되고 있다. 그 빛이 평화의 빛이 되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고, 한국 민주주의 역사를 다시 쓰게 하고 있다.
우리 민족에게 깃든 평화의 빛은 오랜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다른 민족의 개국신화가 전쟁으로 얼룩져 있다면, 우
리의 개천신화는 비폭력적 평화의 정신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를 우리는 홍익인간이라는 개천이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화려한 이념에도 불구하고 우리민족은 현재 남북 분단이라는 비홍익적(非弘益的)이고 비평화적 체제
에 살고 있다. 지금 세계는 미국과 중국이 강대강(强對强)구조를 이루고 있고, 남과 북도 강대강(强對强)으로 적색
경보가 켜져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과 북한, 중국과 한국도 강대강(强對强)의 구조로 극한 대결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세계 열강에 둘러싸여 있던 조선에 특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바로 민족적 고유종교
(이하 ‘민족종교’로 통칭함)의 등장이었다. 동학과 대종교라는 민족종교의 등장은 민족의 암울기에 혜성처럼 나
타나 민족해방의 등대가 되었고, 민족운동의 선구가 되었다. 동학운동과 단군운동은 다 같이 민족의 고유성에 바탕
을 두고 이를 지키기 위해 민족적 투쟁에 적극적이었다. 그 고유성의 바탕은 홍익인간 정신의 근대적 부활이었다.
그러면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단군과 홍익인간의 정신은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가? 단순히 ‘박달임
금’이라거나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것과 같은 기존의 해석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홍익인간에 대한 원
초적인 해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단군의 단(檀)과‘홍익인간(弘益人間)’의 어원을 분석하여 원
초적 의미를 찾아보고, 『단군세기』에 나오는 ‘염표문’과 비교하여 재해석하려고 한다. 나아가 이 연구를 통해
단군의 이야기가 불교의 전설에서 나왔다는 식민지시기 일제의 주장을 반박할 것이다. 아울러 홍익인간의 의미를
손성태가 멕시코 원주민(동이족의 일파인 맥이족)의 언어에서 찾 ‘다다살리’(tlatlazali)01)와도 비교하려고 한
다. 이‘다다살리’라는 말은 그들의 고수레 풍습에서 나온 것으로‘모두 함께 살자’는 뜻인데,02) 홍익인간의 의
미를 이해하는데 새로운 시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01) Bernandino de Sahagun, Primeros Memoriales, Vargas Rea, 1950, p.11. 이 말의 원어는 Tlatlazaliztli이다.
T 다음의 l은 빼고 읽는다. 원번은 1580년경에 집필되었다(손성태 교수 자료제공).
02) 손성태, 『우리민족의 대이동』(멕시코편) 코리, 2014, 115~116쪽
Ⅱ. 단군과 단군민족주의
1. 한말 단군운동과 민족사학
1909년 1월 15일 자시, 홍암 나철은 서울 재동 취운정 아래 육칸 초옥에서‘단군대황조신위’(檀君大皇祖神位)를
모시고 제천의식을 거행한 뒤‘단군교포명서’를 공포함으로써 단군교를 중광하였다. 이 자리에는 나철을 비롯하여
오기호, 강우, 유근, 정훈모, 이기, 김윤식 등 수 십인이 참례하였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이 친일행위를 하므로 나
철은 1910년 7월 30일 교명을‘대종교’(大倧敎)로 개칭하였다. 교명을 바꾼 직후 나라가 일제에 의해 강점되자 그
는 활동지역을 만주로 넓히고 1914년 5월 13일에는 총본사를 만주 화룡현 청파호로 이전하였다. 아울러 서울에 남
도본사, 청파호에 동도본사를 설치하는 한편, 백두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4도 교구와 외도교구를 선정함으로써 교
구제도를 확대·개편하였다.
대종교는 종교활동과 교육을 모두 항일운동에 초점을 맞추었다. 1918년 중광단을 중심으로 한 무오독립선언, 이듬
해 3.1운동의 영향으로 활기를 띈 중광단은 대종교에서 범종교적인 단체로 승화하여 새로운 대한정의단을 결성하였
다. 기독교를 제외한 유림들이 참여하였고, 일제에 혈전을 주장하였다. 김좌진, 이범석 등이 가담한 대한정의단은
무기를 구입하여 군정부(軍政府)의 기능을 수행하였고, 임정의 명령으로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라 개칭함으로써
이름 그대로 정부의 공인 군사기관이 되었다.
한말 민족운동은 크게 동학운동과 단군운동으로 대별된다. 신용하는 이 중에 단군운동에 주목하여, 한말 애국계몽
운동기의 하나의 큰 사상 흐름으로서‘단군민족주의’(檀君民族主義) 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우리가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은 韓末(한말) 애국계몽운동기의 하나의 思想으로서 「檀君民族主義」「檀君내셔널리즘」이라고 부를 수
있는 思潮가 사상계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전개되다가 그 한 흐름은 歷史로 흘러들어가 申采浩(신채호) 등의 「古
代史」의 설명에 投射(투사)되고, 다른 한 흐름은 宗敎로 흘러들어가서 羅寅永(나인영) 등의 「大倧敎(대종교)」의
창건으로 投射되었다고 볼 수 있다는 점이다.03)
이 단군민족주의는 두 가지 흐름으로 나타났는데, 그 중의 하나가 역사로 흘러들어가 신채호 등의 고대사 연구에
투사되고, 다른 한 흐름은 종교로 흘러들어가 나인영(나철) 등의 대종교 창건으로 투사되었다고 보았다.
한편 근대적 민족주의 사학04) 운동가로 박은식, 장지연, 신채호를 들 수 있다.05) 신채호는 같은 민족주의 사가
(史家)라 하더라도 독특한 위치에 있다. 이를 두고 유교적 사학과는 다른 단재사학(丹齋史學)이라고 명명하기도 한
다.06) 신채호는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신(神)이나 혼(魂) 또는 얼 대신에 구체적인 고유한 사상체계를 중요시하였
다. 즉 그는 화랑도의 사상을 한국의 고유한 것으로 보고, 이 낭가(郎家)사상의 성쇠가 곧 민족사의 성쇠를 좌우한
다고 믿었다.
03) 신용하, 「신채호의 애국계몽사상」, 『한국학보』20집, 1980, 111쪽
04) 민족사학과 민족주의 사학이라는 말을 구별할 것을 주장한 분도 있다. 조동걸은 민족사학이란 식민사학에 대칭
하는 용어이고, 민족주의사학은 민족사학의 분류상의 호칭이라고 보았다. 예컨대 마르크스주의 사학은 민족사학이
기는 해도 민족주의 사학은 아니라는 말이다.(「민족사학의 분류와성격」,『한국민족주의의 발전과 독립운동사연
구』 지식산업사, 1993)
05) 신용하, 「한말애국계몽사상과 운동」, 『한국사학』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 289쪽
06) 이만열, 「단재사학의 배경」, 『한국사학』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 296쪽
그렇기 때문에 그에 의하면 한국사는 고유사상이 외래사상과 투쟁하는 역사로 파악하였다.07) 역사란 무엇이뇨? 인
류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부터 발전하며 공간부터 확대하는 심적(心的) 활동의 상태의 기록이
니, 세계사(世界史)라 하면 세계 인류의 그리되어 온 상태의 기록이며, 조선사(朝鮮史)라면 조선민족의 그리 되어
온 상태의 기록이니라.08)
신채호는 당시의 세계정세를 제국주의 시대로 보고 있다. 그는 서구열강이 추구하고 있는 제국주의 본질을 잘 파악
하고 있었다. 저 열강이 문명은 날로 번창하고 인구는 날로 늘어 자기나라의 토지만으로 그 생활을 하기가 어려우
며, 자기 나라의 생산물만으로 그 발전을 꾀하기 어려우니, 이에 나라 밖으로 영토를 확대하고 이익을 얻으려고 미
발달지역을 개척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하니, 자기보다 열등한 나라는 물론 동등한 힘을 가진 나라에 대해서도
경제싸움을 걸어 승부를 겨루는 것이다.09) 당시 제국주의가 자본주의 발달과정에 따라 겪게 되는 약육강식의 경제
전쟁은 필연적이었다. 이 필연적 제국주의 경제전쟁을 목도한 신채호는 역사를 나와 나 아닌, 아(我)와 비아(非我)
의 투쟁으로 보았던 것이다. 신채호의 민족주의는 바로 이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한 유일한 투쟁노선이다.
이 투쟁에서 일본도 예외는 아니었다. 을사늑약 이후 국권을 상실한 우리 대한을 표현하기를,
07) 이기백, 「한국근대사학의 발전」, 『근대한국사론선』삼성문화재단, 1973, 247쪽
08) 신채호, 『조선상고사』(총론)
09) 신채호, 『단재 신채호전집』별집 「20세기 신민국」
“삼림(森林)이 유(有)하건마는 아(我)의 유(有)가 아니며, 광산이 유하건마는 아의 유가 아니며, 철도가 유하건마
는 아의 유가 아니다”10)라고 통탄하면서 국가는 있으나 국권이 없는 나라를 시급히 바로잡기 위해서는 부국강병
을 통한 독립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의 부국강병론은 서구문물의 모방에는 비판적이다. 그는 서양의 경제, 법률, 상업 및 부국도 결국 그들의
애국심과 국사에 대한 사상에 기초한 것으로 보고, 우리도 민족주체성과 정신적 대아(大我)를 바탕으로 애국심을
고취하고 산업과 교육을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그 중에 신채호는“역사가 없으면 국민의 애국심이
어디서 나오겠느냐”11)면서 민족사의 서술 작업을 통해 애국심을 고취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존 역사서술이 사
대주의에 빠져 있다고 비판하고, 역사중심의 민족주의 사관정립에 몰두한다. 그는 우리 민족사의 사통(史統)을 세
움에 있어, 아래와 같이 단군을 시조로 분명히 하고 2천만 민족은 그의 자손이라 하였다.
始祖檀君(단군)이 太白山에 下하사, 此國을 開創하고 後世子孫
에 貽(이)하시니, 三千里疆土(강토)는 其産業也며, 四千載歷史는
그 譜牒(보첩)也며, 歷代帝王은 其宗統(종통)也며,12)
이어 신채호는 단군을 고구려 왕조의 직접 조상이라는 관점에서 ‘단군 → 부여·고구려로 양분 → 부여 멸망, 고
구려 재통합’13)으로 보았으며, 특히 묘청을 진압한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지을 때에 우리의 옛 사서를 없앤
후에, 조선의 강토를 줄이고, 조선의 문화를 유교화 하며, 외국에 구걸이나 하는 외교가 전부인 양하여 철저히 사
대주의로 꾸며놓았다고 지적하였다.
10) 신채호, 『단재 신채호전집』별집 「대한의 희망」
11) 신채호, 『단재 신채호전집』 「역사와 애국심과의 관계」
12) 신채호, 『단재 신채호전집』 「국가는 즉 일가족」
13) 신채호, 「독사신론」
신채호는 우리 역사에서 김부식에 의해 자주적인 국풍파(國風派)가 패하고, 사대주의가 승리한 것을‘1천년 이래
제1대사건’이라고 비탄해 하였다.14) 신채호는 초기에는 국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파악했으나, 3·1운동 이후 민중
의 위대한 힘을 발견하였다. 여기서 신채호 사상은‘신국민설(新國民說)’과 뒤에 나오는‘민중혁명론’으로 구체
화된다. 1923년에 나온 그의 「조선혁명선언」은 민중을 혁명의 대본영으로 삼은, 민중에 의한 무력혁명론이며, 민
중에 의한 무장독립전쟁론이다. 그렇지만 그는 무력주의를 절대적이 아닌 제한적인 의미에서 정당한 것으로 생각하
였으며, 결국에는 민족주의와 인류공영을 양립시키고자 하였다.15)
2. 대종교의 단군민족주의
김동환은 대종교와 단군민족주의에 대해 ‘대종교의 성립과 단군민족주의’와대종교의 독립운동과 단군민족주의’
라는 두 측면에서 대종교의 단군민족주의를 거론하고 있다. 특히 대종교의 성립에 있어서 「단군교 포명서」가 지
니는 의의를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16)
첫째, 대표적인 민족종교이자 한말, 일제기에 전개된 단군민족주의 운동의 주역의 하나였던 대종교의 중광을 견인
한 공헌이다.
둘째, 후대에 와서 민족상징들로 정립된 관점들이 많이 나타나는 점이다. 즉 단군 건국에서 비롯된 단기연호라든
가, 10월 3일 개천절이 이 포명서에 제시되어 있다.17)
14) 신채호,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
15) 『한국철학사상사』 한울아카데미, 1997, 381쪽
16) 정영훈,「단군교포명서와 그 사상사적 가치」,『국학연구』13집, 국학연구소, 2009, 90~92쪽에 상세한 설명이
있다.
17) 김동환, 「한국종교사 속에서의 단군민족주의」, 『선도문화』15권, 2013, 159쪽
이 「단군교포명서」에는 종교적 단군민족주의의 토대가 되는 종교적 체제, 즉 교조관, 교리관, 교사관 등을 엿볼
수 있는데, 교사관적 측면에서 「단군교포명서」에는 단군신앙의 흐름이 단군시대로부터 부여와 고구려, 발해와 고
려를 거쳐 조선의 이태조에게 까지 금척을 내린 주체가 단군임을 연결시킴으로써 조선조까지 연면히 지속되고 있음
을 확인시켜주고 있다는 면에서 값진 의의를 갖는다.18)
또한 10월 3일을 단군개극입도지경절(檀君開極立道之慶節)이라 한데서 개천절이 부활하는 계기가 된다. 개천절은
종교적 기념일을 넘어 범민족적 기념일로 승화되어 독립정신을 일깨웠다. 다음은 「단군교포명서」의 마지막 단락
이다. 4천여 년 오랜 가르침의 숨겨졌던 것이 다시 돌아와 나타나는 밝음이 또한 오늘에 있을 지며 천만억 형제 자
매의 화가 물러가고 복이 돌아옴이 역시 오늘에 있으니, 오호라! 모든 우리의 형제자매들이여! 단군개극입도 4237
년 대한 광무 8년 갑진 10월 3일 「단군교포명서」는 단군 탄강의 역사, 단군교의 신앙유습, 단군교를 신봉하여야
할 이유 등을 설명하고, 우리 민족은 같은 민족으로서 같은 운명을 지니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우리 겨레가 하늘
의 자손임을 강조하고, 단군교를 오로지 정성으로 믿고 받들어서 구교의 중광은 물론, 천만 형제자매가 복록을 누
리게 되기를 호소하고 있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서기 1904년을 단기 4237년이라고 분명히 밝힌 점이다. 이는 『동
국통감』에서 말한 단군의 무진년 건국과 일치한다.
18) 앞의 책, 159~160쪽
그 다음은 대종교의 무장독립운동에서 단군민족주의를 발견할 수 있다. 양대 독립기구인 북로군정서와 서로군정서
에 참여한 독립군들이 모두 단군성조를 받들고 단군민족주의로 철저히 무장하여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는 점19)은
앞에서 열거한 중광단 등의 활약에서 본 바와 같다. 특히 단군민족주의는 문화적 투쟁의 배경으로 작용하여 혁혁한
문화민족주의 운동을 전개하였다. 주시경, 이극로, 최현배의 한글운동, 이병기의 시조운동, 김교헌의 신교사관에
의한 역사복원운동, 신채호의 낭가사상, 박은식과 정인보, 신규식의 국혼운동 등등에서 대종교인이 앞장서 펼친 것
은 단군민족주의의 투영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대종교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홍익인간 재세이화이다.
그런데 한영우는 김교헌의 『신단실기』를 지적하며, “단군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무리하게 날조하지 않고,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밝혀낸 단편적인 연구 성과를 광범하게 수집 정리하고, 여기에 대종교적인 단군민족주의 세계관을
투영시켜 새로운 상고사의 체계를 수립”20)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단군민족주의를, “단군을 민족사의 출발점으로
상정하고 ‘단군의 자손’으로의 단일민족의식을 기본으로 하여 민족정체성을 구성하며, 그 같은 인식 밑에 민족적
통합과 발전을 도모하던 일련의 의식-사상 또는 문화적-정치적 운동을 가리킨다”21)고 규정할 수 있다. 또 권덕
규의 『조선사』(초판은 1920년대 『조선유기』임)를 단군민족주의 관점에서 그의 민족주의 사관을 분석하기도 한
다.22) 권덕규의 『조선사』는 조선의 영역을 태백산(백두산)의 북쪽인 송화강을 중심으로 하여 중국 동북부 지역
의 대부분과 반도 전체를 조선의 영역으로 포함시켰다. 그리고 조선의 종족은 상고시기 6대 문명을 시작한 환족(桓
族)이라고 하고 이 환족을 천족(天族)이라 규정했다.23)
19) 앞의 책, 163~164쪽
20) 한영우, 「1910년대의 민족주의적 역사서술」, 『한국문화』1,1980, 123~124쪽
21) 정영훈, 「단군민족주의의 前史」, 『단군학연구』8호, 2003, 148쪽
22) 정민지, 「권덕규의 조선사에 나타난 한국사 인식」, 『역사교육연구』17, 2013.5, 28쪽
23) 권덕규, 『조선사』 정음사, 1945, 1쪽
Ⅲ. 단(檀)과 홍익인간
1. 단(檀)의 어원에 대한 재해석
1894년 일본의 백조고길(白鳥庫吉)은 “단군의 사적은 원래 불교에 근거한 가공의 선담(仙譚)”24)이라고 비하했
다. 환인과 단군이라는 왕호가 다 불교에서 차용한 말이라는 것이다. 이에 필자는 단군이라는 명호가 불교설화의
차용이 아니라, 우리말 고대어에서 나온 것임을 입증하고자 한다.
안호상은 『계림유사』25) 등 전통적인 해석에 따라 단군(檀君)의 단(檀)은 밝달이고, 단군은‘밝달임금’이며, 밝
달나라는 배달나라라고 했다.26)
양주동도 단군왕검은 ‘박달 님ᄀ·ᆷ’, ‘ᄇ·ᆰ달 神君(신군)’으로 보았다.27) 북한의 강인숙은 단군을 ‘박달임
금’으로 보고, 그 박달을 ‘불산’으로 보았다.28) 이와 같이 단군(檀君)을 박달임금이라 한 것에서 먼저 단(檀)
의 훈독(訓讀)인‘박달나무’에서 박달(朴達)이라고 적으면 훈차(訓借)한 것이고, 박달에서 다시‘밝다’의 소리를
빌리고 음차(音借)가 된다. 이 뒤에 임금 군(君)의 훈(訓)과 결합하여 ‘밝은 임금’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예를
훈음차법(訓音借法)이라 할 수 있다. 또 웅주(熊州, 곰 마을)를 공주(公州)라 적은 것은 공(公)으로써 ‘곰’의 소
리를 음차(音借)한 것이다. 『삼국사기』(34권,지리1)에 의하면, 신라에서 서울 경(京)을 서라벌(徐羅伐), 서벌(徐
伐)이라 적은 것은 훈차(訓借)한 것이다.
24) 白鳥庫吉/김창겸 외 번역「단군고(檀君考)」,『식민사관 형성 기초 자료 번역』(사)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
부, 2015, 11쪽
25) “檀은 倍達, 君은 任儉” (『계림유사』)
26) 안호상, 『겨레역사 6천년』 배영출판사, 1989, 29~30쪽
27) 양주동, 「國史古語彙借字原義考」, 『명대논문집』1권, 1968, 79쪽
28) 강인숙, 「단군신화와 력사」, 『단군과 단군조선』 살림터, 1995, 297쪽
백제에서 여미(餘美)를 해미(海美)로 적은 것은 남을 여(餘)의‘남을’에서‘나’를 반훈(半訓)하여 곧‘나미’가
되니‘바다’를 뜻한다.29)
그러면 밝달 이전 최초의 단군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고, 또 단군을 어떻게 불렀을까?
북한의 리지린은 단군의 단(檀)이나 단(壇)은 모두‘다’를 한자로 음사(音寫)한 것으로 보고 단군은 국왕으로서의
‘단임금-다임금’이라는 색다른 해석을 제시하였다.30) 리지린은 그 근거로 ‘다’를 따(地)의 고어로 보았다. 과
연 이 주장은 타당한가?
그러면 단(檀)의 소리는 어디서 왔는가? ‘단’의 반음(半音)인 ‘다(多)’에서 ‘단’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고구려말에 骨大(골대)를‘고다’로 읽은 것31)에서 大(대)를‘대’라고 하기 이전에 또한‘다’로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어로 大同(대동)을‘다퉁’이라 소리내고, 일본어의 大山을‘다이센’이라 소리내고, 高을‘다
까’라고 소리내는 것에서 檀(단)은 본래 ‘다’의 소리였고, 많다(多,다), 크다(大, 대), 높다(高,고)의 뜻을지
닌 말로 분화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예컨대, 고구려의 지명에 개백(皆伯)을 또는 왕봉(王逢)32)이라고 일컬었
다는 것은 ‘다 皆(개)’를 ‘王(왕)’의 뜻으로 썼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王(왕)으로서의 檀
(단)은 다(多, 皆)에서 왔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 따라서 단(檀) 소리의 근원은 ‘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단군의 어원이 되고 있는 다는‘단군’또는‘단군왕검’은 어떤 관게에 있는가? 정인보는 왕검의 ‘검’은
천왕, 천가한(天可汗), 탱리선우처럼 당시의 지존을 가리키는 칭호로 보았다.33) 儉(검)이전에 檀(단)의 多(다)에
天(천)과 王(왕)의 뜻을 동시에 함의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과연 그러한가.
29) 도수희, 『백제어 어휘연구』 제이앤씨, 2005, 520쪽
30) 리지린, 『고조선연구』 열사람, 1989, 114쪽 (이 책은 도쿄 학우서방에서 1964년에 첫 영인본이 나왔다. 평양
에서는 1963년에 출간됨)
31) 류열, 『세나라 시기의 리두에 대한 연구』 한국문화사, 1995, 124쪽
32) 『삼국사기』 (권37, 잡지 6, 지리4): 도수희『백제어 어휘연구』 제이앤씨, 2005, 506쪽 참조
최남선은 “단군(壇君)이란 텡그리(Tengri) 또는 그 유어(類語)의 사음으로서, 원래 하늘을 의미하는 말에서 변전
하여 하늘을 대표한다는 군사(君師)의 호칭이 된 말”34)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군장(君長)의 이름에 하늘을 씌워
부른 것은 조선 고대문화의 특색의 하나라고 설명하고 있다. 탕그리와 텡그리와 비슷한‘대갈’은 곧 머리이며, 동
시에 하늘이라 했다. 탕그리(tangri)를 하늘의 뜻으로 소개한 사람은 백조고길(白鳥庫吉)이다.35) 이는 『사기』
(흉노전)에서도 입증된다.「색은」에“선우(單于)의 성은 연제(攣鞮) 씨(氏)이고 그 나라에서 탱리고도 선우라 칭
했다. 흉노에서는 하늘(天)을 탱리라 하고 자식(子)을 고도(孤塗)라 한다. 선우는 광대한 모양으로 그가 하늘을 닮
았음을 말하니 이 때문에 탱리고도 선우라 하였다”36)고 했다. 흉노말 탱리는 이 텡그리가 변한 말일 것이다.
흉노족이 한자로 하늘(텡그리, 탱리)을 닮은 지도자(또는 아들)를 單于(선우)라고 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單于(단
우)라는 원발음을 간직하고 있다. 단우는 앞에서 말한‘다누’일 것이다.‘다누’이전에는‘다’였을 것이고, 이
‘다누’가 축약하여 ‘단(檀)’이 되었을 것이며, 여기서 하늘(天)을 닮은 아들, 지도자[子]로서 단군(檀君, 壇
君, 다나+니시거미)이 출현하였다고 본다.37) 따라서 단(檀)의 근원은 하늘이다. 단은 텡그리의 이칭인‘TIAN’과
흡사한 것으로 본다.
33) 정인보, 『조선사연구』(상), 문성재 역주, 우리역사연구재단, 2012, 181쪽
34) 최남선, 지음/전성곤 옮김, 『불함문화론/살만교차기』경인문화사, 2013, 55쪽
35) 白鳥庫吉/김창겸 외, 번역 「조선고대지명고」, 『식민사관 형성 기초 자료 번역』(사)겨레얼살리기 국민운동
본부, 2015, 39쪽. 이 논문의 원문은 1895~6년 사이에 발표한 것이다.
36)“索隱案 單于姓攣鞮氏, 其國稱之曰 撐黎孤塗單于. 而匈奴謂天爲 撐黎, 謂子爲孤塗, 單于者, 廣大之貌也. 言其
象天,故曰O黎孤塗單于”(『사기』 「흉노전」)
37) TENGRI의 이칭들: “TIAN”, “TIANDI”, “RANGI”, “SHANGDI”, “SHADDAI”, “DINGIR” OR “TENGERE”
김규승은 壇君(단군)의 壇(단)자는 그 반음(半音)‘다’로 읽고, 君(군)자는 마루[宗]의‘말’로 읽어 壇君(단군)
의 古訓(고훈)은 하늘을 뜻하는‘다말’이 된다고 했다.38) 이때의 하늘은 태양의 인격적 표현에 가깝기 때문에 천
신(天神)이라 할 수 있다. 또「삼한관경본기」에도 王儉(왕검)은 大監(대감)이라고 했다. 이 대감의‘대’에는 앞
에서 말한 것처럼 본래 천(天)의 뜻이 들어 있다. 大(대)란 글자는 머리, 손, 발을 다 갖춘 것을 의미한다고 했
다.39) 이 大(대)는 ‘크다’는 훈독(訓讀)일 뿐만 아니라,‘대’이전의 음독‘다’였다고 본다. 또‘다 皆(개)’
의‘다’는 머리, 손, 발로써 몸의 전체를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단군의 ‘다’에는 하늘의 뜻을 원초적으로 지녔
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최남선의‘대갈’(다갈)이나 김규승이‘다말’이 본래‘하늘’또는‘천신’의 뜻이었다는
말은‘대’와‘다’가 하늘을 뜻하고,‘갈’이‘대갈박’이라는 우리말에서 곧 머리임을 알 수 있으며, 다말의
‘말’도 머리, 마리의 줄임말 ‘말’인 것에서 인격적인 천신(天神)을 상징한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하늘을
뜻하는 ‘다’에서 천신을 뜻하는 다말(대갈)이 되었듯이, 하늘을 대신해 땅을 다스린다는 뜻의‘다누+니무가마’,
‘다나+니시거미’의 단군(檀君)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삼한시대의 천군(天君)이라는 호칭이 이를 반영한 말로
보인다. 천군도 같은 소리를 냈을 것이다.
또 예를 들어 고구려 지명‘多知忽(다지홀)’을 나중에‘대곡(大谷)’40)으로 호칭한 것에서‘대’는‘다’의 소리
에서 나온 것임을 거듭 알 수 있다. 도(道)는 중국어‘다오’에‘다’의 소리가 남아 있다. 또 『광주판 천자문』
(1575년)에 ‘긔ᄌᆞ’ 王(왕)이라 했고, ‘님굼’ 君(군)이라 했다. ‘긔ᄌ·’ 王(왕)이 ‘다 皆(개)’에서 나왔음
을 분명히 알 수 있다.
38) 김규승, 『동이고사연구의 초점』 범한서적, 1974, 15쪽
39) “天大,地大,人亦大。故大象人形”...大文則首手足皆具(『설문』 大部)
40) 『삼국사기』 (권37, 잡지 6, 지리4)
이 때의 다 개(皆)는 본래의 뜻이 하늘의 해를 뜻하고, 또 사람을 뜻한다. 날씨가 ‘개’다고 할 때의 ‘개’는 해
를 뜻하고, 아무‘개’라고 할 때의 ‘개’는 사람이다. 사람에서 왕으로 그 뜻이 옮긴 것이다. 天(천)과 地(지)는
더 말할 것이 없다. 천지(天地)와 인(人, 아무 개의 ‘개’)과 왕(王)의 소리는 ‘다 皆(개)’의 ‘다’로 통한다.
이처럼 단군의 단(檀)은 ‘다’의 어근에서 나온 말로 천지인과 왕을 다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41) 결론적으로
‘다’는 ‘하늘’과 ‘땅’을 뜻하다가 점차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여 마침내 ‘왕’의 뜻을 지닌 말로 발전 되었
다고 보는 것이다. 어의의 발달과정상 처음에는 하늘과 땅의 뜻으로 쓰이다가 어느 순간에 ‘왕’의 뜻으로까지 전
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다’는 다시 ‘다나’ ‘다누’ 등으로 ‘ㄴ’첨가현상이 일어나 변해가기 시작
했다. 신라 말에 檀溪(단계)는 ‘다나구루’로 소리 냈다. ‘다나’는 檀(단)의 소리를 옮긴 것이고, 구루는
‘내’의 뜻을 옮긴 것이다.42) 강상원은 단군을 산스크리트어로 ‘다누 나자’(Dhanu raja; hero, king)로 해석
했다.43) ‘다’의 다양한 변화상을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삼국시기에 天干(천간)을 ‘더가나/더하나/다가나/더하나’로 읽은 근거에서 天(천)을‘더’, ‘다’
로 소리 낸 것을 확인할 수 있다.44) 아울러 ‘다’는 ‘닫>달>다>따>땅’45)으로 변한 것에서 리지린의 주장처럼
땅(地)의 뜻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라에서 지리산(地理山)을 ‘디리모로’, ‘더러모로’46)
라고 한 것에서 지(地)는‘다’‘더’‘디’로 소리 낸 것을 알 수 있다.‘달(地), 딜(土), 들(野)’47)에서도 그
의미의 상관성을 유추할 수 있다.
41) 『노자』 (25장)의 “道大, 天大,地大,王亦大”(도도 크고,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왕(사람)도 크다)와
『설문』(大)의 “天大,地大,人亦大。故大象人形”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사람도 크다. 사람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도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천지(天地)와 왕(王)도 ‘다’의 소리가 나고, 인(人;개)도
‘다’의 소리가 나므로 『노자』와 『설문』의 표현이 우리 말 ‘다’에 근원한 ‘대(大)’라고 할 수 있다.
42) 류열, 앞의 책, 451쪽
43) 강상원, 『사라진 무제국』 조선세종태학원, 2013, 331쪽
44) 류열, 앞의 책, 464쪽
45) 서정범, 『국어어원사전』 보고사, 2000, 213쪽
46) 류열, 앞의 책, 509쪽
그러면 君(군)은 무엇인가? 리지린은 단(檀)자가 고조선어를 음사한 것이라면 군(君)자는 한문식 기록으로 추정하
고, 단군(檀君)보다는 본래‘다임검(檀王儉)’일 것으로 보았다.48) 하지만 고구려말로 君(군)은‘그므’로 그므
(今勿)>검(黑)으로부터 나왔다는 주장도 있다.49) 양주동은『지봉유설』(권16)을 인용하여‘君(군)은 尼音今(니음
금)’이라고 했다.50) 니음금을 줄이면 ‘님금’ ‘님검’이 된다. 신라의 왕칭인 尼師今(니사금)도 이‘님’에서
나온 말이다. 님(壬)의 상고음이‘니엄’, 고대음이‘니무(nimu)’로 되고, 님검은‘니무가마’,‘니무거머’로 된
다.51) 북한의 류열은 尼師今(니사금)을‘니시기미, 니시거미’로 읽었다.52) 서정범은 님은‘닏>닐>닐임>니임>
님’의 변화를 거쳐 왔으며,‘닏’의 근원적 어원은 사람으로‘나, 너, 누’와 같은 말이라고 했다.53)
그리고 오늘날의 ‘단군’이라는 소리가 생기기 이전에‘다+그므’,‘다나+그므’,‘다누+그므’로 결합하거나,
‘다나+니시거미(니사금)’ 또는‘다누+니무가마’로 결합이 시도되었을 수 있다. 의미상으로‘다(多)+니(尼)+
검(今, 金, 儉)’또는‘니’가 생략되어‘다(多)+검(黑)’이 되었을 것이다. 즉 多(다)는 天(천)의 뜻, 尼(니)는
日(일)이므로‘다(多,皆)+그므(今,君)’,‘다(多)+니(日)+금(今,儉)’이 된다. 결국‘다(天)+니(日)+금(今,儉)’
이 되면서 檀君(단군)이란 말이 생긴다. 이 단군의 뜻은 오늘날로 보면 천일군(天日君), 또는 천일왕검(天日王儉)
이다. 즉 하늘의 태양 같은 임금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있어서는 다(多, 皆)가 처음의 天(천)의
뜻이 약화되고 地(지)와 王(왕)의 뜻으로 강조되면서 단군은 천지대왕(天地大王)으로서 檀王儉(단왕검) 또는 檀君
王儉(단군왕검)이란 말이 나온 것으로 본다.
47) 서정범, 앞의 책, 213쪽
48) 리지린, 앞의 책, 115쪽
49) 최남희, 『고구려어 연구』 박이정, 2005, 61쪽
50) 양주동, 「故言硏究抄」, 『명대논문집』5집, 1972, 180쪽
51) 정연규, 『언어속에 투영된 한민족의 고대사』 한국문화사, 2002, 131~132쪽
52) 류열, 앞의 책, 1995, 451쪽
53) 서정범, 앞의 책, 159쪽
그동안 단군을 어떻게 이해하였는가? 윤내현은 고조선은 건국부터 붕괴될 때까지 왕이라는 칭호는 없고 최고 통치
자를 단군이라고 불렀으며, 단군과 한(韓, 汗)은 함께 사용되었으나 단군이라는 칭호에는 신 또는 종교지도자의 의
미가 강하고,‘한’이라는 칭호에는 정치적 의미만 있었다고 보았다.54) 그런데 리지린이 단군이 산신(山神)이 되
었다는 말에 근거하여 천군(天君)보다는 ‘지상의 군주’로서의 단군으로 국한하여 인식하였으나,55) 신용하는 천
왕이 곧 단군의 뜻이라고 보고, 『삼국유사』에서 흙 토(土)의 단군(壇君)이라 표기한 것은 지상의 천왕임을 강조
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했다.56) 사실상 삼한의 천군은 제사의 주관자였기 때문에 단군보다 하위개념이다. 『설문』
도 『춘추번로』를 인용하여 王(왕)자의 뜻을 분명히 밝혀주고 있다. 이것을 보면, 단군은 태왕(太王)으로서의 천
군(天君)이었음을 알 수 있다.
王(왕)은 천하가 모두 돌아가는 곳이다. 동중서는 “옛날에 문자를 만든 사람이 세 번 획을 긋고 그 가운데를 이어
서 왕이라 하였다. 세 획은 천지인이다. 이 셋을 관통하여 다스리는 자가 왕이다. 공자도 하나로써 세 가지를 관통
하는 것이 왕이라고 했다.57)
54) 윤내현, 『고조선 연구』 일지사, 1994, 126쪽
55) 리지린, 앞의 책, 114쪽
56) 신용하, 『고조선 국가형성의 사회사』 지식산업사, 2010, 159쪽
57) “天下所歸往也。董仲舒曰:“古之造文者,三畫而連其中謂之王。三者,天、地、人也,而參通之者王也。”
孔子曰:“一貫三爲王”(『설문』 王)
이런 의미에서 최고의 왕은 단군이고, 단군의 檀(다>단)의‘다’가 천지인의 관통자로서 왕호(王號)개념을 함의한
최초의 글자임을 알 수 있다. 일반의 왕(王)자보다 더 포괄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말이 바로 다ꠓ단(檀)이다.
그럼에도 일부 식민사학자들은 우리 역사에 왕호의 출현이 중국보다 늦다는 것을 구실 삼아 고조선의 후진성을 강
조하려고 한다. 김정배는 『삼국지』(동이전)에 나오는 것처럼, 주(周)나라가 쇠약해지자 연(燕)나라가 칭왕(稱王)
하는 것을 보고, 조선후도 스스로 칭왕(稱王)하였다는 구절에 근거하여 B.C. 4세기경까지는 고조선이 왕호를 쓰지
못했다고 지적한다.58)
김부식은 최고운을 지적하며 이르기를 “신라왕을 거서간이라 칭한 이가 하나요, 차차웅이라 칭한 이가 하나요, 니
사금이라 칭한 이가 열여섯, 마립간이라 칭한 이가 넷이다. 그런데 나말의 명유 최치원은 帝王年代曆(제왕연대력)
을 지을 때, 다 무슨 무슨 왕이라 칭하고, 거서간 등의 칭호는 말하지 않았으니 이는 혹 그 말이 야비하여 족히 칭
할 것이 못 된다는 까닭일까?”59)라고 반문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좌전(左傳)』과 『한서(漢書)』는 중국
의 역사책인데도 오히려 초(楚)나라 말인‘곡오도(穀於菟)’60), 흉노(匈奴) 말인‘탱리고도(撑犁孤塗)’61) 등을
그대로 보존하였다. 신라의 일들을 기록함에 그 방언을 그대로 쓰는 것이 또한 마땅하다 본다”고 덧붙이고 있다.
58) 김정배, 『고조선에 대한 새로운 해석』 고려대, 2010, 559~560쪽
59)“論曰 新羅王稱居西干者一 次次雄者一 尼師今者十六 麻立干者四 羅末名儒崔致遠作 帝王年代曆 皆稱某王 不言居
西干等 豈以其言鄙野不足稱也”(『삼국사기』(권4, 신라본기4 지증마립간)
60) 초(楚)나라의 방언(方言)으로‘곡(穀)’은‘젖’또는‘젖먹이다’라는 말이고,‘어도(於菟)’는‘호랑이’라
는 말로 “호랑이가 젖을 먹인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초나라의 영윤(令尹)인 자문(子文)이 불륜관계로 태어나자
외할머니가 연못가에 버렸는데, 호랑이가 와서 젖을 먹였으므로 자문을‘투곡어도(鬪穀於菟)’라고 칭하였다는 것
에서 나온 말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선공(宣公) 4년 참조.(한국사데이터 베이스 재인용)
61)‘탱리(撑犁)’는 하늘[天]이라는 뜻이고,‘고도(孤塗)’는 아들[子]이라는 뜻의 흉노(匈奴) 말이다. 즉 탱리고
도(撑犁孤塗)는 천자(天子)라는 뜻으로 흉노의 선우(單于)를 칭하는 말이다.《한서(漢書)》 권94, 열전(列傳) 흉노
(匈奴) 참조. (한국사데이터 베이스 재인용)
흉노조차도 천자(天子)를‘탱리고도’라고 고유한 방언을 쓰는데, 왜 우리가 ‘마립간’이라는 고유어를 못 쓰겠느
냐고 주체성을 강조한다. 이런 차원에서 고조선 시기에 왕이라는 말을 쓰지 않은 것은 철저하게 고유어를 쓰는 원
칙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단군의 이름도 불교의‘전단(栴檀)’에서 따온 말이 아니고 우리의 고유어인
하늘을 뜻하는‘다나, 다누(단)’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단군의‘다’는 소리로는 天(천), 地(지),
大(대), 王(왕)의 뜻이다. 또 뜻으로는 ‘많을’다이므로‘많’의‘마’는 크다, 신성하다의 뜻이 들어있다. 예컨
대, 麻姑(마고)의‘마’는 크다, 신성하다, 나아가 신(神)을 지칭하고, 고(姑)는 골, 고을로 성(城)을 뜻한다.
2. 홍익인간의 어원에 대한 재해석
여기서 단(檀)과 왕(王)의 관계를 반증이라도 하듯이, 『송사(宋史)』(卷490 열전 第249)에 층단국(層檀國)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층단국은 셀주크투르크(Saljūk Turks)인들이 건립했다고 알려지고 있으
며, 아라비아반도에 있었다고도 하는데, 1071년에 처음으로 중국과 교역이 이루어졌다. 당시 층단(層檀)은 Al-Sultan
(蘇丹)의 음역으로, 왕(王)이라는 의미였다고 한다.62) 단(檀)에 천지인 삼재관통의 왕호개념이 이미 들어있었음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김정배의 칭왕설은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신채호가 단군을 대단군(大壇君)왕
검이라고 칭했던 이유를 알 수 있다.63)
62) http://contents.nahf.or.kr/id/NAHF.jo_018r_0050_0060_0010
63) 신채호, 『조선상고사』(제2편 수두시대)
앞에서 우리는 이 단(檀)의 어근이 되고 있는 ‘다’가 하늘, 땅, 사람, 왕의 뜻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필자는 홍익인간의 의미를 단의 어근인‘다’와 연계하여 새롭게 설명할 필요성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홍익인간도 이 하늘, 땅, 사람, 왕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고, 그 범주 안에서 해석되지 않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홍익인간은 완전한 해석이 아니라는 지적이 있다.
안호상은 홍익인간의 뜻으로 알려진‘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기’가 너무나 잘못된 해석이라고 보고, 이를‘사람을
크게 유익하게 하기’로 바꾸어야한다고 주장한바 있다. 그의 논지는 弘(홍)을 넓을 광(廣)의 弘(홍)이 아니라, 큰
대(大)의 弘(홍)어야한다는 것이다.64) 아무튼 홍(弘)을 대야(大也)로 본 것은 당시로써는 새로운 해석이었다. 이
에 착안하여 필자는 훈음차법(訓音借法)으로 새로운 해석을 하려고 한다. 특히 표기는 한자로 하였으나 실질적인
호칭은 고대로 올라 갈수록 고유명(固有名)이 대세를 이루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65) 예를 들어 고마성
(固麻城)은 고유명이나 백제시대에 들어와 熊津(웅진)이 되고 다시 公州(공주)가 되었다. 이처럼 삼국시대 이전에
더 많이 고유지명인‘고마나루’를 보존하며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公州(공주)에서 어떻게‘고마나루’를
찾을 수 있을까?
이제 홍익인간의 弘益(홍익)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강희자전』에 홍(弘)은 대야(大也), 대지(大之)66)라 했고,
익(益)은 요야(饒也), 가야(加也)라고 했다.67) 이에 대해 우리의『전운옥편』에 홍(弘)은 대야(大也)라 하였고,
익(益)은 증야(增也), 진야(進也), 요야(饒也), 가야(加也)라 하였다.
64) 안호상, 『사람을 크게 유익케하기의 본바탕과 가치』 배달학회, 1997, 44쪽
65) 도수희, 앞의 257쪽
66) “《廣韻》《集韻》《韻會》胡肱切,或平聲。《說文》弓聲也 又《爾雅·釋詁》大也。
《疏》弘者,含容之大也。《易·坤彖》含弘光大。又《正韻》大之也。《論語》人能弘道”(『강희자전』 弘)
67) “《唐韻》《集韻》伊昔切,嬰入聲。饒也,加也。《廣韻》增也,進也。《書·大禹謨》滿招損,謙受益。
《詩·邶風》政事一益我。《左傳·昭七年》三命茲益共。《禮·曲禮》請益則起。《論語》益者與”(『강희자전』 益)
홍(弘)을 대(大)라 한 것은 뜻으로 본 훈독(訓讀)이다. 여기서 이 대(大)를 앞의 단(檀)의 설명에서 말한 바와 같
이 다(多)의 통음(通音)으로 볼 수 있다. 즉 홍(弘)은 대(大)이며, 다(多)임을 알 수 있다. 『만한사전』에 의하
면, 大(대)는 da와 dai로 각각 소리 난다. da로 소리날 경우는 大(대), 達(달), 打(타)의 음사이며,68) dai로 소
리 날 경우는 大(대), 待(대), 玳(대), 戴(대)의 음사이다.69) 여기서도 大(대)는 da와 dai의 통용임을 알 수 있
다. 만주어에는 dae발음이 없다. 만주어 da에는 수장(首長), 우두머리, 뿌리, 근원, 본원, 처음의 뜻이 들어 있
다.70) 시조(始祖)를 damafa라고 하는 점에서 da(檀-大-多)에서 지도자의 의미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다음은 익(益)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1804년 『주해 천자문』에 익(益)을 ‘더을 익’이라고 했다. 이는 증야
(增也)를 우리말로 번역한 말이다. 더을(더할) 익의‘더’는‘더을’의 반훈(半訓)이다. 『삼국사기』(권35, 잡지)
에 익성군(益城郡)이 금성군(金城郡)으로 개명되었고, 또 백제의 금마(金馬)가 고려에는 익주(益州)로 바뀌었다.
류열은 이에 대해 금마(金馬)의 뜻글자는 대문(大文)이고, 중간의 실복(悉伏)이 익주(益州)로 되었다고 했다.71)
그러면서 실복(悉伏)이 어떻게 익주(益州)로 되었는지 똑똑히 알 수 없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실복
은 다 실(悉), 엎드릴 복(伏), 굴복할 복(伏)이므로 다 실의‘다’와 대문(大文)의‘대’는 통용이라는 사실을 거
듭 발견할 수 있고,‘더라’,‘다라’가‘도라’의 변종으로 쓰이듯이72)‘더’을 익(益)이 또는‘다’을 익(益)으
로도 통용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따라서 공주, 웅진의 고유지명이‘고마나루’이듯이, 홍익의 고유어는
‘대다’, 대더’,‘다다’,‘다더’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홍(弘)의 대(大)는 결국 다(多)로부터 나온
것으로 하늘을 뜻한다고 본다. 그러면 익(益)은 무엇인가? 지리산(地理山)을‘디리모로’,‘더러모로’로 소리 냈
다는 것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다.
68) 이훈, 『만한사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7, 165쪽
69) 앞의 책, 172쪽
70) 앞의 책, 163쪽
71) 류열, 앞의 책, 343쪽
72) 류열, 앞의 책, 375쪽
『삼국사기』(동명성제)에 나오는 고구려 말인 다물(多勿:復舊土)73)에 대해 정인보도 ‘다(多)’는 땅의 ‘따’를
번역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先世(선세)의 “땅”을 “물르”는 첫 功績(공적)임을 紀(기)하기 爲(위)하야 “復舊土
(복구토)”의 義(의)로 “多勿(다물)”이라 하엿으니 “多(다)”는 “地(지)”의 義(의) “따”를 譯(역)함이오
“勿(물)”은 “還買(환매)”의 義(의) “물르”를 譯(역)한 것이다. 일헛던 땅을 물러온 이 事(사)가 高句麗建國
(고구려건국)의 最初業蹟(최초업적)일 뿐 아니라, 일헛던 땅을 물르자는 것이 곳 高句麗立國(고구려립국)의 根本宗
旨(근본종지)다.74)
73) “二年 夏六月 松讓以國來降 以其地爲多勿都 封松讓爲主 麗語謂復舊土爲多勿 故以名焉”
(『[삼국사기』 권제13,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
74) 정인보, 『동아일보』 「오천년간 조선의 얼」 1935.6.27
결국 홍익의 고유어는‘다다’나 ‘다더’가 되고, 고어에서‘다’와 ‘더’는 통용되므로 ‘다다’라고 볼 수 있
다. 따라서 홍익의 훈독 말인‘다다’는 하늘과 땅의 뜻에 공통되므로 결국 홍익의 훈음차인‘다다’는 천지(天地)
와 같은 뜻이다. 여기에 인간이란 말이 결합하여‘천지인’을 합일한 뜻이라고 본다. 이처럼 홍익인간의 홍익이 대
익(大益)이 아니라, 천지(天地)의 뜻일 때, 홍익인간은‘천지와 함께하는’곧‘천지인간’이 된다. 이‘천지+인
간’이 곧 천지와 함께 사는 인간’ 또는 ‘천지를 모시는 삶’이 된다. 이것이 홍익+인간의 원뜻이라고 보는 것이
다. 삶의 목적이 천지인합일에 기원을 둔 우주의식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후대인들이 한자어로 재해석한
말이‘弘益人間(홍익인간)’이다. 그래서 그 뜻도 2차적 의미로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자’가 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유의할 것은 인간(人間)의 간(間)75)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예기』(악기)에 이르기
를, “쉼없이 움직임을 크게 드러낸 것이 하늘이고, 움직이지 않음을 크게 드러낸 것이 땅이다. 한번 움직이고 한
번 고요한 것은 천지의 사이(간격)이다. 고로 성인이 말하기를 예와 악이라 이른 것이다.”76)고 했다. 이처럼 천
지의 간(間)이 있다면 인의 간(間)도 있다. 특히 소강절은 일동일정지간(一動一靜之間)에 주목하였다. 사람들은 천
지가 천지인 것을 알지만, 천지가 왜 천지인지는 알지 못한다. 천지가 왜 천지인가를 알고자 하지 않는다면 그만이
지만, 반드시 천지가 천지로 된 까닭을 알고자 한다면, 동정(動靜)을 버리고 어디로 갈 것인가라고 반문한다. 또
일동일정은 천지의 지극히 신묘한 것이며, 일동일정지간(一動一靜之間)이라는 것은 천지인의 지극히 또 신묘한 것
이라고 찬탄하였다.77) 일동일정과 일동일정지간이 가지고 있는 차이를 강조한 것이다. 주회암이 천지인을 至妙(지
묘)라고 거듭 강조한 것은 “하늘은 다만 움직일 뿐이고, 땅은 다만 고요할 뿐이나 사람에 이르러서야 곧 움직이고
고요함을 겸하였기 때문이다”78)고 말했다. 다시 말해 천, 지, 인은 이 일동일정지간(一動一靜之間)에서 만나는
것이다. 그 중에 인(人)은 이 간(間)중의 간(間)을 간직하고 있다. 사람은 하늘의 움직임과 땅의 고요함을 다 겸비
(兼備)한 특별한 존재이다. 천지의 일동일정지간(一動一靜之間)을 모두 겸하였기 때문에 인간이 곧 천지이며, 천지
인합일체이다. 그러므로 우리 고대사에서‘인’이 아닌,‘인간(人間)’이란 말에홍익’을 붙여 ‘홍익인간’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인(人)이 천지의 일동일정지간(一動一靜之間)을 겸수(兼受)한 존재이기 때문이며, 그래서
인간은 근본적으로‘천지의 인(人)’이므로‘천지인간’인 것이다. 이 말 한마디에‘홍익인간’의‘인간’이라는
말이 우주적 개념임을 알 수 있다.
75)“〔古文〕《唐韻》古閑切《集韻》《韻會》居閑切《正韻》居顏切,音蕑。《說文》隙也。从門从月。會意,亦形。
《徐鍇曰》門夜閉。閉而見月光,是有閒也。《禮·樂記》一動一靜者,天地之閒也。《莊子·山木篇》
周將處夫材不材之閒”(『강희자전』 間)
76) “著不息者天也,著不動者地也。一動一靜者天地之間也。故聖人曰禮樂云”(『예기』(낙기))
77) “人皆知天地之爲天地 而不知天地之所以爲天地...夫一動一靜者 天地至妙者歟 夫一動一靜之間者 天地人之至妙至
妙者歟”(소강절 『황극경세』 내편 5장)
78) “蓋天 祗是動 地 祗是靜 到得人 便兼動靜 是妙於天地處”(『황극경세』 「관물내편 5장」 주자注)
한편 『논어』나 『맹자』에도 ‘인간’이란 말은 등장하지 않는다. 중국의 문헌 중에 가장 이른 것은 서한(西漢)
시기의 『설원』(잡언)에 나오는 “故君子居人間則治,小人居人間則亂”이란 구절이다. 이는 단순히‘사람들 사
이’라는 뜻으로써 인간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일찍이 안재홍은 「신민족주의」를 설명하면서‘다사리’ 즉‘다사리주의’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 말은‘다사리
어’(모두 다 말씀하게 하여)와 ‘다살린다’(모든 사람을 다 살게 한다)의 뜻을 가진 말로 해석된다.79) 그런데
손성태는 멕시코 원주민(동이족의 일파인 맥이족)이 사용한 말들을 분석하여 발표한 바 있다. 다메메, 다마틴이,
‘다다살리’(tlatlazali)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보듯이 모두 ‘다’로 시작한다. 특히 ‘다다살리’(tlatlazali)
라는 말은 그들의 고수레 풍습에서 나온 것으로‘모두 함께 살자’는 뜻이라는데,80) 이 말은 우리의 홍익인간과
대비하여 흡사함을 느낄 수 있다. 옛 사람들이 천지자연과 함께 살려는 의식의 작은 표현이 고수레였다. 또 고수레
는 음식을 매개로 서로의 생명을 동일한 존재로 대한다. 그래서 사람끼리 음식을 나누는 나눔 의식을 한다. 고수레
는 인간이 아닌 대상에게도 음식을 나누어주는 행위이다. 당연히 동네에서 가까운 사람이나, 찾아온 손님에게도 음
식을 나누어 준다. 고수레는 욕심을 더는 덞 의식이다. 고수레는 단시간에 어디서나 누구나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신앙행위이자, 대자연을 사랑하는 열린 마음이다. 모든 것에 감사하고, 하찮은 동식물이나 무생물까지도 인격체로
대하는 생명 존중의 마음이다. 이것이 진정한 홍익인간의 모습이다.81)
79) 정윤재, 「민세 안재홍의 다사리이념 분석」, 『한국동양정치사상사 연구』 11(2), 2012, 97쪽
80) 손성태, 앞의 책, 115~116쪽
81)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59075&cid=50222&cate ꠓgoryId=50229
고수레 (한국민속신앙사전: 가정신앙 편, 2011. 12. 15., 국립민속박물관)
그러면 어찌하여 ‘다다살리’(tlatlazali)를 홍익인간과 비교할수 있는가?
우선 고수레의 풍습처럼 원초적인 공동체의식으로부터 나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중에‘다다’는 앞에서 열거
한대로 하늘의‘다’, 땅의‘다’의 뜻을 모두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또‘살’은 사람의 어근이다.82)‘살
리’는‘더부살이’처럼‘삶의 형태’또는‘그런 사람’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다다살리’는 홍익
인간과 같은 공동체적 의식과 관계있다고 볼 수 있다.
3. 단(檀)과 홍익인간으로 본 인간존재
앞에서 논의된 홍익인간의 의미를 단(檀)과의 관계에서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홍익인간은 우리 민족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 정체성을 일깨워준다. 이런 정체성의 문제제기는 민족적인 것을 뛰어넘어 우주적 관계로 까지
물음을 갖게 한다.
박용숙은 사람을 인(人), 인(仁), 인간(人間), 홍익인간(弘益人間)으로 구별하면서, “니르바나의 체험을 통하여
아트만이 성립되고, 범(梵) 아(我)로 발전한다는 불교의 논리와 마찬가지로 인(人)의 체험을 통해 인(仁, ᄇᆞᆰ, 부
루)이 되고, 그것이 홍익인간(弘益人間)으로 발전”83)한다고 했다. 이는 니르바나를 통해 새롭게 변화하듯이 사람
이 인(人)의 체험을 통해 최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마지막 인격체로 홍익인간을 제시한 것이다.
82) 서정범, 앞의 책, 356쪽
83) 박용숙, 『한국의 시원사상』 문예출판사, 1985, 39쪽
여기서 인(人)의 체험이란 사람이 사람다움의 거듭된 체험을 의미한다. 박용숙은 인(人)이란 보통의 사람이 아니
라, 고도의 수행자로서 지도자의 자격을 갖춘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84) 곰과 범이 쑥과 마늘을 먹고 이루고자
한 그 사람 즉 모든 사람이 간절히 기원하는 원화위인(願化爲人)의 그 인(人)인 것이다. 안함로의 『삼성기』는 이
를 환웅의 성선(成仙), 즉 신선이 되는 것이라 하였다. 이것이‘인(仁)’이며,‘밝’이다. 선(仙)이다. 환인시대에
는 인(人)의 체험을 통한 영성의 근본적 변화를 인(仁) 또는 인(因)이라고 했다가, 환웅시대에는 선(仙)이 되고,
단군시대에는 단(檀),‘밝’으로 달라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중용』에 修道以仁(수도이인), 仁者人也(인자인야)
라 했다. 즉 수도는 인(仁)으로써 하는데, 이 인(仁)이 이루어진 자가 곧 가장 인(人)다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중용』의 이 말은 고조선 이전의 수도문화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시간상으로 인(仁)에서 선
(仙), 선(仙)에서 단(檀)으로 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인(人)이 보통사람이 아닌 특별한 뜻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천지인(天地人)을 표현할 때, 천일(天一), 지
일(地一), 태일(太一)로 표현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이 인(人)이 단순히 생물학적인 사람이 아닌 특별히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태(太, 泰)의 존재라는 것이다.85) 중국 자료에, “천신 가운데 가장 귀한 자가 태일신(泰一神)이며,
태일신을 보좌하는 것이 오제(五帝”86)라고 했으며, 굴원(屈原)의 「구가(九歌)」에도 “동황태일(東皇太一)”이
나온다. 전자는 신적(神的) 존재로서의 태일신을 의미하고, 후자는 최고지도자로서의 동방의 태일 임금을 상징한다
고 본다. 이와 같이 인이 밝(檀)이 되고, 다시 그 밝이 우주적인 것과 하나가 되는 실천을 통해 ‘큰 밝’이 된다
는 것이 박용숙의 인간관이다.87) 이 ‘큰 밝’을 필자는 홍익인간과 유사한 개념으로 본다. 이런 관점에서 『삼국
유사』(고조선조)의 홍익인간의 의미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84) 앞의 책, 37쪽
85) 앞의 책, 36쪽
86) “天神貴者泰一 泰一佐曰五帝 古者 天子以春秋祭泰一...”(『사기』 효무본기)
87) 박용숙, 앞의 책, 46쪽
다음은 전통적인 최남선의 해석이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아래로 삼위 태백을 내려다보니 널리 인간을 이롭
게 할 만 하기에 천부인 세 개를 주고, 가서 그곳을 다스리게 하였다.88)
父知子意 下視 三危太白 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個 遣往理之
대개 홍익인간을 최남선, 이병도89) 이래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로 해석해 왔다. 그러나 이를 재음미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는 천부인 3개를 수수한 사실에 있다. 아버지의 목적은 이지(理之, 다스리게 하다)에 있고, 그 이
지의 증표로 천부인을 주는 것인데, 환웅이 이제 천부인으로 세상을 다스릴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
자격을 말해주는 것이 홍익인간이다. 가이홍익인간(可以弘益人間)에서 환웅이 가히 홍익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천부
인을 받게 된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다시 말해 삼위 태백의 공간이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이 아
니라, 환웅이 홍익인간이기 때문에 삼위태백으로 내려 보낸다는 뜻으로 재해석한다는 말이다. 전통적인 해석은 삼
위태백=홍익인간지처(弘益人間之處)가 되지만, 필자의 해석은 환웅=홍익인간이다. 환웅이 홍익인간이므로 그에게
천부인 3개를 주어 세상을 다스리게 하는 것이다. 이 때의 홍익인간은 곧‘큰 밝’이다. 이런 의미에서 홍익인간이
란 앞에서 언급한대로 “천지+인간, 곧 천지를 모시고 함께 사는 인간”인 동시에 그런‘최고의 인격(지도자)’을
의미하는 것으로 새롭게 해석할 수가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홍익인간이 우주적 인격존재임을 암시받을
수 있다. 따라서 천지와 하나 된 천인일체(天人一體)의‘큰 밝’의 인격이 곧 홍익인간이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88) 최남선, 『단군론』 경인문화사, 2013, 270쪽
89) 이병도 역,「삼국유사」,『한국의 민속 중교사상』삼성출판사,1988,46쪽.“인간을 널리 이롭게할 만한지라”.
이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원동중의 『삼성기』(하)에 있다. 환국 말기에 안파견께서 삼위 태백산을 내려다
보시며, “모두 다 가히 홍익인간으로써 보낼만한지라. 과연 누구를 보내는 것이 좋은가?” 이에 오가의 무리들이
대답하였다. “서자 마을에 환웅이란 인물이 있는데 용기와 어짊과 지혜를 겸비하고 일찍이 홍익인간이 되어 세상
을 개혁하려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그를 태백산 쪽으로 보내 다스리게 하십시오.”
이에 환인께서 환웅에게 천부인 세 종류를 주시며 명하셨다. “이제 인간과 만물이 이미 제자리를 잡아 다 만들어
졌으니, 그대는 노고를 아끼지 말고 무리 3천 명을 이끌고 가서, (천부인의 말씀으로) 새 하늘을 열어 가르침을 세
우고 세상을 다스리매 만세 자손의 큰 규범으로 삼을지어다.”90)
이 구절에서 주의할 것은 ‘皆可以弘益人間 誰可使之’이다. 그동안 개가(皆可)를 삼위산과 태백산의 두 곳 모두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다, 만약 그렇게 해석한다면 뒤에 나오는 대로 태백산으로 간 것이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개
가(皆可)는 지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임을 수가사지(誰可使之)로써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오가의 무리들마다 다 홍익인간의 자격(인격)을 갖추었는데, 그 중에 서자마을에 사는 환웅이 용인지를 겸비
한 홍익인간으로서 세상을 바꿀 훌륭한 자격이 있기 때문에 추천한다는 말이다. 환웅이 안파견으로부터 선택되어
간 곳은 삼위산이 아니라 태백산 방향이다. 안파견은 삼위산과 태백산이 인간을 이롭게 할만한 곳임을 발견하여 기
쁜 것이 아니라, 천부3인으로 태백산을 다스릴 자격자를 어떻게 고를까 하는 일이 고민이었던 것이다.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삼국유사』처럼 안파견과 환웅을 부자(父子)관계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안파견은 오가 중에
서 어느 무리의 누구를 선택할지로 고민이 깊었을 것이다.
90)“桓國之末安巴堅下視三危太白 皆可以弘益人間 誰可使之 五加僉曰庶子有桓雄勇兼仁智 嘗有意於易世以弘益人間
可遣太白而理之 乃授天符印三種仍 勅曰如今人物業已造完矣君勿惜厥勞率衆三千而往 開天立敎在世理化爲萬世子孫之洪
範也”(원동중 『삼성기』(하편))
천부3인으로 태백산을 다스릴 자격자는 최종적으로 홍익인간인 환웅이다. 환웅이 지도자로서의 홍익인간의 자격을
이루었고, 그 홍익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천부3인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천부3인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홍익인간
의 인격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천부3인에는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가? 지금 이 천부3인의 내용을 알 수 없
다. 추측컨대, 천부3인은 어떤 물건이 아니라, 천지인을 각각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 3개의 천부인의 말씀을 하
나로 모아 정리한 글이 현재의 천부경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현존 천부경으로써 천지인과 인(人)의 의미를 다시
찾아보고자 한다. 천부경에서 인(人)을 설명한 곳은 3곳이다.
㉠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천지인은 우주의 근원적인 삼재를 의미한다. 삼재를 표현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원,방,각이라고 쓰거나, 1,2,3이라
쓰는 것도 삼재 표현의 하나일 것이다. 이 구절은 천지인이 동일한 우주적 존재로서의 천극(天極), 지극(地極), 인
극(人極)을 이루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
천일(天一)이 하늘의 본체수라면, 천이(天二)는 음양의 작용수이고, 천삼(天三)은 음양중의 생성수라고 할 수 있
다. 여기서 삼(三)은 생성력을 의미한다. 이 생성력이 천지인에게 모두 똑같이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궤화삼의 그 천화삼(天化三), 지화삼(地化三), 인화삼(人化三)으로 표현할 수 있다.
㉢ 人中天地一(인중천지일)
사람이 천지의 종속이 아니라, 유기적이고, 주체적 관계임을 말해주고 있다. 하늘 땅과 똑같은 자격을 갖추고 있는
사람의 존재를 강조해준 것이다. 또 우주의 창조적 질서에 참여하는 인간의 주체성을 의미한다. 이를 한마디로 요
약한 말이 인중(人中)이다. 천부경이 가지고 있는 핵심사상이다. 인중을 다른 말로 하면 인간(人間)이다. 중(中)이
나 간(間)은 천지에 있는 사람의 존재의 성격을 의미한다. 앞에서 말한 일동일정지간(一動一靜之間)의 간(間)과 같
다.
한편, 오영환은 화이트헤드의 철학으로 인간 존재를 우주 안에서 문제 삼을 수 있고, 또 문제 삼는 것이 가능하다
고 보았다. “우주는 새로움으로 향해 나아가는 창조적 전진의 과정이며, 인간은 우주의 창조적 과정에 참여해야할
각별한 책임을 지고 있는 존재이다. 동시에 인간은 다른 존재자와 더불어 우주의 한 요소이며, 우주와의 유기적 관
계에 의해서만 논의될 수 있는 존재이다”91)라는 인식을 우리는 화이트헤드의 철학에서 얻을 수 있다. 화이트헤드
는 인간의 실체적 사고를 부정하고 유기적 과정으로 보며, 인간중심적 사고로부터 해방을 안겨준다. 그 전형을 우
리는 홍익인간에서 찾을 수 있다. 홍익인간은 비록 인간을 중심적으로 말하고 있으나, 천지를 모시며 함께 사는 유
기적 존재임을 말해준다. 우주와 유기적 존재이므로 홍익인간은 비로소 우주의 창조적 전진에 참여할 자격을 갖게
된다. 이는 유교적 이상과도 흡사하다.
대인(大人)은 천지만물을 한 몸으로 여긴다.~~대인이 천지만물과 한 몸을 이룰 수 있는 것은 그가 의도적으로 그렇
게 하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그의 마음의 인(仁)에 자연스럽기 때문이다,92)
91) 화이트헤드 저, 오영환 역, 『관념의 모험』 한길사, 1996, 33쪽
92)“大人者 以天地萬物爲一體者也 大人之能 以天地萬物爲一體者也 非意之也 其心之仁本若是”(王陽明 『大學問』)
왕양명은 이 『대학문』에서 인간과 우주의 동형동성적(同形同性的) 시각을 간결하게 일러주고 있다.93) 이는 인간
중심적 사고를 배제하고 유교적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런데 두유명은 우리 자신을 이기주
의,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을 하늘의 동반자에 합당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마음 속
에 있는 옳음과 원리를 찬란하게 빛나도록 만드는 조용한 빛과 항상 관련을 가져야한다”94)고 지적한다. 이것이
사람이 인류라는 제약을 초월할 수 있는 길이다. 인류라는 제약을 벗어나는데 있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내면의
빛이다. 나아가 이 빛을 통해 우리는 자아, 사회, 하늘로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 빛을 전통철학에서는 성
통광명(性通光明)이라고 한다. 성통광명과 홍익인간을 동시에 연계하여 언급한 문헌으로는 『단군세기』의 ‘염표
문’이 있다. 이 염표문을 통해 천지인 삼재가 완전하게 성취되어 가는 대원일(大圓一)의 단계를 볼 수 있다.
하늘은 아득하고 고요함을 크게 여기니(爲大),
그 도는 원의 정신을 널리 펴는 것이요(普圓),
그 하는 일은 참됨을 하나(제일)로 삼는다[眞一].
땅은 기운을 모으고 감춤을 크게 여기니(爲大),
그 도는 원의 정신을 본받는 것이요(效圓),
그 하는 일은 쉼 없이 기름을 하나로 삼는다[勤一].
사람은 알고 능한 것을 크게 여기니(爲大),
그 도는 원의 정신을 가려내는 것이요(擇圓),
그 하는 일은 서로 도움을 하나로 삼는 것이라[協一].
그러므로 일신께서 참마음을 내려 주시고
사람의 성품을 대광명에 통하게 하시어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홍익의 인간이 되게 하소서.95)
93) 두유명(杜維明) 지음, 나성 옮김, 『문명간의 대화』 철학과 현실사, 2007, 190쪽
94) 앞의 책, 192쪽
95) “天以玄黙爲大其道也普圓其事也眞一 地以蓄藏爲大其道也效圓其事也勤一 人以知能爲大其道也擇圓其事也協一
故 一神降衷 性通光明 在世理化 弘益人間”(『단군세기』‘염표문’(단군 11세 도해). 대개 이 마지막 구절을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라’고 해석하나, ‘홍익인간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로 고쳤다. 弘益濟人 光明理世
(「환국본기」) 와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필자는 홍익인간의 뜻을 기존의 해석과 달리 ‘홍익의 인간(인간격)이 되게 하소서’로 새겼다. 이 염표문
이 11세 도해단군의 발원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염표문에는 하늘, 땅에 이어 인간의 자격에 관해 언급하고 있
는 점이 특이하다. 하늘 땅에 비해 사람은 택원(擇圓)96)이라 했다. 하늘은 온전히 양성적이고, 땅은 온전히 음성
적이다. 반면에 사람은 이 둘의 성정을 모두 받아야 온전해질 수 있다. 자식이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이치와도 같
다. 다만 남성은 여성보다 좀 더 양성적이고, 여성은 남성보다 좀 더 음성적이다. 이것이 택원이다. 이 택원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서로 협조, 협력할 수밖에 없다. 이는 남녀 관계가 서로 협조적인 것에서 알 수 있다. 택원에 이
어 나오는 협일(協一)이란 말은 곧 남녀가 협조, 협력하는 일을 제일의 가치로 여긴다는 뜻이다. 남녀 간의 협일이
다시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협일로 발전하여 하나의 협력적 공동체 사회를 이룬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영돈이 이 협
(協)을 ‘어울림’으로 본 것은 참고할 만하다.97)
그런데 천지인에 대한 진일(眞一), 근일(勤一), 협일(協一)이란 염표문의 표현은 또 다른 천지인의 표현인 천일(天
一), 지일(地一), 태일(太一)과도 비유될 수 있다. 「삼신오제본기」는 이를 삼신(三神)이라 칭하고, 천일을 조화
의 주관자, 지일을 교화의 주관자, 태일을 치화의 주관자로 보았다.
96) 『강희자전』의 《緯略》에 圓은 옛 卵(난)字라고 말했다. 동그라미의 샘풀은 ‘알’이었다. 알문화가 원문화이다.
97) 김영돈, 『홍익인간과 한단고기』 유풍출판사, 1995, 67쪽
생각해보건대, 삼신은 천일과 지일과 태일이다. 천일은 조화를 주관하고, 지일은 교화를 주관하고, 태일은 치화를
주관한다. 稽夫三神曰 天一曰地一曰太一 天一主造化 地一主敎化 太一主治化(「삼신오제본기」)
이처럼 인간을 인일(人一)이라 하지 않고 태일(太一)이라 한 것은 “인간이 하늘땅의 뜻과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거룩한 존재”로 보았기 때문이며, 인간이 하늘땅의 정기를 그대로 전수받은 존재로서, 몸은 비록 사람이나 정신
그 자체는 우주의 영성(靈性) 안에서 신(神)과 동격이기 때문이다.
『주역』에는 삼신관 같은 구체적인 표현은 없지만, 앞의 『대학문』에 나오는 대인(大人)이라는 이상적 인격이 처
음으로 등장한다. 무릇 대인(大人)은 천지와 더불어 그 덕에 합하며, 일월과 더불어 그 밝음에 합하며, 사시와 더
불어 그 질서에 합하며, 귀신과 더불어 그 길흉에 합해서, 하늘보다 먼저 해도 하늘이 어기지 않으며, 하늘을 뒤따
라해도 하늘의 때를 받드나니, 하늘도 또한 어기지 아니할진대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며 하물며 귀신에 있어서랴!
夫大人者 與天地合其德, 與日月合其明, 與四時合其序, 與鬼神
合其吉凶, 先天而天弗違 後天而奉天時, 天且弗違 而況於人乎, 況於鬼神乎(『주역』 「건문언」)
여기서 주의할 점은 천지인(天地人)에게는 반드시 따라야 할 네 가지 공통의 덕목이 있다는 것이다. 덕(德), 밝음
[明], 질서[序], 길흉(吉凶)이 그것이다. 사람이 천지의 덕에 합하는 것이 아니라, 천지와 더불어 사람이 그 공통
의 덕에 합일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인간의 주체성이 강조된다. 이를 대인(大人)이 따를 때, 성덕(聖德), 명지(明
智), 질서(秩序), 선악(善惡)으로 해석하기도 한다.98)
Ⅳ. 결론
박용숙은 인간이란 개념을 영적(靈的) 능력자로 보고,99) 인(人), 인(仁), 인간(人間), 홍익인간(弘益人間)으로 구
별하였다. 환인시대에는 인(人)의 체험을 통한 영성의 근본적 변화를 인(仁) 또는 인(因)이라고 했다가, 환웅시대
에는 선(仙)이 되고, 단군시대에는 단(檀),‘밝’으로 달라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아가‘단’은 아시아 지역에
서 하늘과 태양을 뜻하는 탱그리(Tangri), 텡그리(Tengri)와 우리말 ‘대가리’,‘대갈박’과 같고, 또 단군(檀
君)의 단이며, 단국(檀國), 밝달·박달·배달의 단이며, 환단(桓檀)의 단이며, 하늘의 광명과 함께하는 땅의 광명
인‘밝’으로서의 단이다. 이 밝달·박달·배달이 신라에 와서 풍류도(風流道)나 풍월도(風月道)가 된 것이다. 이
는 흉노족을 기록한 『사기』에서도 입증된다. 한자로 하늘(텡그리, 탱리)을 닮은 지도자(또는 아들)를 單于(선우)
라고 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單于(단우)라는 본 발음을 간직하고 있다.
단우는‘다누’일 것이다.‘다누’ 이전에는‘다’였을 것이고, 이‘다누’가 축약하여‘단(檀)’이 되었을 것이
며, 여기서 하늘(天)을 닮은 아들, 지도자[子]로서 단군(檀君다누 나자, 다나 니시거미)이라는 이름이 출현하였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본래 ‘다’에는 고구려 말인 다물(多勿:復舊土)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늘(天) 뿐만 아
니라 땅(地)의 뜻도 있으며, 여기에 모든 것[全]이라는 의미까지 합해 모두 3가지 의미로 재해석할 수있다.
98) 今井字三郞, 『易經』(上), 明治書院(東京), 1987, 134쪽
99) 박용숙, 앞의 책, 39쪽
『환단고기』(「신시본기」)는 하늘로부터의 밝음을 환(桓, 한)이라 하고, 땅으로부터의 밝음을 단(檀)이라 했
다.100) 이성조는 이를 ‘있되 없음’(有中無)의 ‘한’과 ‘없되 있음’(無中有)의 ‘밝’으로 풀이하였는데,101)
이는 인간의 정신사가 한과 밝 사이를 오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동일정지간(一動一靜之間)의 간(間)과 같다. 이
사이를 오가는 정신의 중심이 홍익인간이다. 홍익인간의 삶은 천지(天地)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우주와의 유기체적
관계 안에서 형성된다. 단(檀)의‘다’는 다다살리의‘다’와 일치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다’는 하늘과 땅의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따라서 홍익인간의 홍익(弘益)이 대익(大益)이 아니라, 천지(天地)의 뜻일 때, 홍익인간은 ‘천지(天地)와 함께 하
는 사람’ 또는 ‘천지를 모시는 삶’으로서의 ‘우주공동체의식’을 반영한 말로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홍익
인간은‘다다인간’,‘천지인간’으로 재해석 될 수 있고, 이 말을 통해 천지인의 합일을 중요시한 조상들의 지혜
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천지인간은 『천부경』의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 따라서 오늘날 홍
익인간을‘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라는 의미로 한정해서 쓰는 것은 우주 공동체의식에서 멀어진, 2차적 파생 개
념이라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그러므로 홍익인간과 단(檀)은 하늘과 땅을 공유하고, 인간이 우주와 뗄 수 없는 유기적 관계임을 철학적으로 밝혀
주고 있다는 면에서 이 둘은 고대에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인간의 존재를 태일(太一)
이라 본 것은 한민족의 고유한 삼신사상의 극치점이라 할 수 있다.
100) “自天光明 謂之桓也 自地光明 謂之檀也”(『환단고기』「신시본기」)
101) 이성조, 『한밝이즘』 월계관, 2002, 156쪽
인간이 하늘땅의 정기를 그대로 동시적으로 전수받았기 때문에, 몸은 비록 사람이나 그 정신은 신(神)과 동격으로
써 도리어 삼신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태일의 홍익인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홍익인간은 곧 환
인의 인(仁)이며, 단군의 단(檀)인 ‘큰 밝’의 사람이고, 『주역』에서 말한 대인(大人, 天人)이며, 삼신관에서
말한 태일(太一)이며, 천부경의 인중(人中)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곧 단(檀)의 ‘다’와 ‘밝’, 홍익인간, 태
일(太一), 인중(人中)이 우주적 신성(神性)을 간직한 인간의 참모습을 표현한 같은 말이라고 보는 것이다. 우주의
영성 안에서 천, 지, 인은 같은 신격(神格)이 되는 것임을 거듭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