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단군(檀君)/『桓』선도사상

* 韓國仙道의 起源과 傳承 / <이승호>

유위자 2025. 8. 21. 19:25
* 韓國仙道의 起源과 傳承 / <이승호> 韓國仙道의 起源과 傳承 ―弘益人間思想과 人合一思想을 中心으로― 이 승 호* 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 일지사상연구소 연구원 【국문요약】 한국문화는 오랜 기간을 거쳐 주변의 문화와 사상을 흡수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런 한국 문화를 儒․佛․仙 혹 은 儒․佛․道 三敎가 통합된 문화라고 이야기하고, 특히 오늘날의 한국문화는 전통적인 삼교를 바탕으로 하여 서구문 화가 유입되면서 서로간의 충돌과 융합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삼교는 삼국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유입되었기 때문에 한국문화의 원형이라고 한다면 바로 고조선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그 당시의 문화와 사상을 韓 國仙道라고 하며, 한국선도는 한민족이 공동의 미래를 도모함에 있어 활용할 수 있는 역사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이 다. 우리 정신사에 있어서 한국선도의 弘益人間思想은 민족적 理想을 고취시키면서 민족사회의 통합과 각성을 매개 해왔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한민족 역사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한국선도의 정신적인 큰 물결을 일각에서는 국수 주의나 쇼비니즘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민족의 시원과 함께 하는 한국선도를 중국도교의 영향을 받은 조선시대 內丹思想의 한 분파로만 이해하거나, 심 지어 중국도교로 오해하는 현실이다. 이러한 태도로부터 해명 아닌 해명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한민족이기 때문 에 한국선도를 알아야 한다는 당위성보다는, 한국선도가 갖고있는 사상을 보다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교육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본 연구의 목적은 한민족 고대에서 현대까지 이어져 온 한국선도의 기원과 그 핵심사상의 전승과 정에 대한 고찰을 통해 기존의 한국선도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도모하고자 한다. 한국선도의 기원은 유․불․도 삼교가 수입되기 이전인 古朝鮮과 神市倍達國시대 그리고 桓仁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 가며 신시배달국시대에 와서 한국선도는 사상적으로 체계화 되었다. 고조선 이후의 전승과정에서는 고구려, 발해 등을 중심으로 國學으로써 역할을 한 북방계열과 신라를 중심으로 하여 주로 인물을 통해 전승된 남방계열로 구분 할 수 있다. 삼국시대에는 주로 국가적으로 인재양성 제도를 통해 교육, 전수되며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고려시대 에 妙淸이 주도했던 난이 사대주의를 대표했던 金富軾에 의해 진압됨으로서 한국선도는 기나긴 침체기로 들어서게 된다. 性理學을 國敎로 하는 조선시대에는 탄압을 받으며 변질되어 샤머니즘 또는 무속이라는 이름으로 일반 기층 민의 문화 속에 그 흔적만을 남기게 되었다. 한말에는 민족종교인 大倧敎를 통해 한국선도의 맥을 종교적으로 이어 갔으나 역시 일제치하에서 큰 빛을 보지 못했다. 이런 한국선도는 20세기에 와서 현대인에게 맞게 과학화, 체계화 하여 현대「단학」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겪게 된다. 한국선도의 기원과 전승은 符都誌 , 桓檀古記 , 揆園史話 등의 仙道史觀에 의한 仙道史書를 통해 살펴볼 수 있으 며, 특히 전승과정에 있어서의 정통성은 弘益人間思想의 계승여부를 살펴봐야 한다. 한민족의 건국이념이기도 한 홍익인간의 사상적 배경은 天符經 , 三一誥 를 중심으로 나타나며 人合一思想과 그 맥을 같이한다. ‘弘益人間思想’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우선 홍익인간에서 ‘人間’에 대한 字意를 한국선도에서는 어떻게 해석하 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홍익인간사상을 人本主義思想으로 부적절한 해석을 하는 경우가 많은 데, 그 이유는 현재까지 서양에서는 인간을 신과 떨어진 혹은 신으로부터 종속되거나 독립된 존재로 해석하는 경향 이 있기 때문이다. 즉 人本主義를 과거의 神本主義 시대와 대비되는 관계로 이해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을 ‘신’에 종속된 혹은 독립된 존재로 이해했다. 그러나 三一誥 「訓」에 ‘너(인간)의 머리 속에 신이 내려와 있다 (降在爾腦)’와 「眞理訓」에 ‘三眞을 회복하면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返眞一)’란 내용의 핵심은 인간에 性이 내재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이 한국선도에서 바라보는 인간은 신과 동떨어진 관계가 아니고, 신은 인간에 내재한 존재로 이해하고 있다. 삼일신고 에서는 인간 안에 性이 있고 그 性과 합일하는 방법은 三眞(性․命․精)을 회 복하는 것이고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止感․調息․禁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한국선도의 기원과 전승과 정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단순히 인물을 통한 전승과정을 살펴보는 것보다는 한국선도의 基底思想이 되는 ‘홍익인 간사상’과 ‘신인합일사상’에대한 고찰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주제어 : 韓國仙道, 현대 「단학」, 弘益人間, 人合一, 性, 三眞, 止感․調息․禁觸 Ⅰ. 머리말 어느 나라든지 먼저 그 나라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시대를 거듭하면서 타민족으로부터 유입된 문화와 서로 융화되고 혼재하기 마련이다. 특히 한국과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북 아시아권은 서로 비슷한 문화권을 형성 해왔다. 한국에서는 儒․佛․道 三敎가 三國時代에 수입되었기 때문에 순수 한국문화의 原形을 지니고 있던 시대는 삼 국시대 이전이라 할 수 있다.1) 그 문화의 원형을 신라의 崔致遠(857∼?)은 「鸞郞碑序」에서 風流道라 하였고2), 근 대 이후 申采浩(1880~1936)3)를 비롯하여 鄭寅普(1892~1950)4)와 安在鴻(1891~1965)5) 등 많은 민족주의 역사 학자들이 儒․佛․道 三敎 수입 이전부터 한국 고유의 仙敎가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고 했다.6) 본 논문에서도 이러한 선행연구를 기초로 하여 진행한다. 본 논문의 대주제인 韓國仙道란 중국으로부터 삼교가 들어오기 이전에 존재했던 한국 고유사상을 말하며, 그러한 사상을 계승․발전시킨 일련의 사상을 모두 포함하는 용어임을 밝혀둔다. 1) 윤내현, 1995 고조선연구 , 一志社, 9쪽. 2) 三國史記 卷4, 「新羅本紀」 眞興王三十七年條, “崔致遠鸞郞碑序曰 國有玄妙之道 曰風流 說敎之源 備祥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 且如入則孝於家 出則忠於國 魯司寇之旨也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3) 신채호는 한국 고유의 仙敎가 이미 道敎 수입 이전부터 형성되어 있었다고 했다. (申采浩, 1998 「東國古代仙敎考」, 단채신채호전집 , 단재신채호선생전집간행위원회, 48쪽) 4) 鄭寅普는 崔致遠 「鸞郞碑序」의 風流를 夫婁의 寫音으로서 ‘나라’의 뜻이다라고 하며 풍류도는 國學 또는 國敎 이라고 해석하고, 고조선의 최고 건국이념인 弘益人間을 잘 설명하는 글이라고 했다.( 鄭寅普 저 ․ 朴成壽 편역, 2000 鄭寅普의 조선사연구 , 서원, 88~89쪽) 5) 安在鴻은 崔南善(1890~1957)이 古神道를 ‘道’라고 한 내용을 ‘夫婁神道’와 ‘不咸文化論’으로 부연 설 명했다.(安在鴻선집간행위원회 편, 1992 民世 安在鴻 選集 4, 지식산업사, 102~113쪽) 6) 한국고유의 仙敎는 주로 古神道로 이해되고 있다. 실질적으로 고신도라는 명칭은 柳承國, 金炯孝, 柳炳德, 宋恒龍 등 한국사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한국 고대문화의 사유형에 관한 주 용어로써 사용하고는 있으나, 그 내용적 이해와 개념적 정의에 있어서는 명확한 해답을 얻기가 어려운 것이 지금의 현실 적인 사정이다.(韓國哲學會 編, 1987 韓國哲學史 上, 동명사, 13쪽, 154쪽) 한국선도는 삼국시대 이후 중국을 통해 들어온 유․불․도 삼교에 의해 古朝鮮 이후부터는 영향력이 점점 약해지면서 한국선도의 맥은 韓國史의 底流로 흘러가게 된다. 중국을 통해 들어온 道敎的 世界觀, 佛敎的 世界觀, 儒敎的 世界 觀은 한국선도를 이단시하게 되고, 더욱이 근대 이후 들어온 서구적세계관은 한국선도를 원시사회의 민속신앙으로 비하하였다.7) 20세기 초 大倧敎를 비롯한 民族宗敎를 중심으로 한국선도는 다시 부활하게 되었지만8) 일제치하에서 빛을 보지 못 하고 해방 이후 서구 근대문명이 들어오면서 한국선도는 다시 침체기를 맞게 된다. 1980년대 중반 무렵에 나온 소 설 丹 이 유행하면서 한국선도는 신비적으로 해석되었고, 현대에 와서 심신의 건강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어나면서 심신수련법의 방식으로 현대화된 한국선도는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고유 사상인 한국선도 를 단순한 심신수련법으로만 오해함으로써 養生을 중시하는 中國道敎의 아류로 치부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있다. 또 한 기존의 한국선도에 대한 연구의 대부분이 민속학적 또는 민족종교를 중심으로 종교학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 어 한국 고유의 심신수련법이자 보편적인 평화사상인 한국선도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본 논 문에서 한국선도의 기원과 그 전승과정을 살펴보고 基底思想인 弘益人間思想과9) 人合一思想에 대해 고찰함으로써 향후 한국선도연구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한다. 2장과 3장에서는 한국선도의 기원과 전승과정의 연구를 통해, 한국선도의 사상적 체계를 갖춘 神市倍達國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전승과정을 살펴보겠다. 한국선도의 기원은 仙道史書인 符都誌, 桓檀古記, 揆園史話 등을 통해 시대적 배경을 중심으로 논의하고 역사적인 관점보다는 사상적인 관점에 연구의 중점을 둔다.10) 또한 그간 학계의 연구논 문을 중심으로 한국선도의 기원을 살피는 핵심 키워드는 弘益人間思想임을 고찰하고 그 홍익인간사상이 어떻게 전 승되어왔는지를 한국선도의 전승과정에서 살펴본다. 7) 鄭景姬, 2004 「韓國仙道의 修行法과 祭天儀禮」, 道敎文化硏究 第21緝, 韓國道敎文化學會, 43쪽. 8) 大倧敎를 제외한 자생적인 민족종교가 한국선도의 정통성을 계승했는지에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본 논문 에서는 한국선도의 핵심사상인 弘益人間思想과 三元思想에 대한 사상적 계승과 檀君을 國祖로 하는 역사적계승 문 제를 중심으로 살펴본다면 大倧敎 이외의 민족종교는 韓國仙道의 정통적인 계승에 있어서 다소간 미흡한 측면이 있다. 9) 大倧敎총본사에서 발행한 譯解倧經四部合編 의 原文을 기본으로 한다. 본 논문에서는 신(神, )을 두 가지로 구 분하여 사용한다. 大倧敎에서는 은 神의 古字이며 大主宰를 指稱한다.(大倧敎총본사, 「會三經」 譯解倧經四部合編 113쪽) 이에 대해 현대「단학」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하나는 종교라는 신념체계를 구성하는 정보로서의 신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인류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지역신․민족신들의 실체이다. 이들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 고 인간의 믿음에 의해 그 생명이 유지되는 정보이고 관념이다. 이것을 ‘神(귀신 신)’이라고 한다. 또 다른 하나 는 종교로 정의할 수 없고 종교에 속박되지 않은 홀로 스스로 존재하는 영원한 생명으로서의 신이다. 이것은 누구 를 지배하려고 하지도 않고 누구의 섬김을 받으려 하지도 않는 신이다. 이것은 모든 생명이 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실현하도록 허락하는 조화의 법칙이다. 하늘과 땅, 해와 달을 포함한 글자로서 천지간에 있는 모든 것을 상 징하는 글자로서 ‘ (하나님 신)’이라고 한다.(李承憲, 2000 숨쉬는 평화학, 한문화 61~62쪽, 以下 평화학 으로 약칭함) 10) 符都誌, 桓檀古記, 揆園史話 등의 선도사서들은 僞書논쟁 중에 있지만, 본 논문에서는 그 사서들이 갖고있는 역사성에 대한 진위여부를 떠나 그 속에 내포된 사상을 중심으로 고찰한다. 4장에서는 한국선도의 홍익인간사상과 신인합일사상에 대해 살펴본다. 한국선도사상의 이론적 배경은 三元思想11) 이라고 할 수 있으나 구체적인 고찰은 본 논문에서는 제외한다. 홍익인간사상과 신인합일사상은 三一誥 12)를 중심 으로 살펴보고 삼일신고 의 해석은 한국선도를 현대적으로 계승․발전시킨 현대 「단학」13)의 견해에 따르고 부분적 으로 大倧敎의 해석 방식을 수용한다. Ⅱ. 韓國仙道의 기원 한국선도의 역사는 주로 符都誌 , 桓檀古記 , 揆園史話 등의 仙道史觀에 의한 仙道史書를 중심으로 한다. 符都誌 에서는 한국선도의 뿌리를 존재의 궁극 원리인 律呂로까지 소급을 하고 그 연원이 黃穹氏-有因氏-桓國-神市倍達國- 檀君朝鮮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하고 있다.14) 桓穹族과 有因氏를 거쳐 桓國으로 이어진 한국선도의 맥이 본격적으로 펼쳐진 시기는 신시배달국시대부터였다.15) 한국선도는 신시배달국시대에 사상적인 체계를 갖추고16) 고조선까지 이어진다. 揆園史話 「檀君記」에서 “단군 고열가는 德 있는 사람이 없이 더 이상 왕위를 물려줄 수 없어 아사달로 들어갔 다”17)고 하며 “후에 文朴氏와 永郞, 神女寶德이 단군의 道를 치우치게 얻었지만 단군이 萬民을 敎化하는 大義는 아니었다”18)라고 한 것으로 보아 한국선도는 삼국시대 이후에는 온전히 전승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삼국시대 에는 儒敎와 佛敎, 道敎가 중국으로부터 수입됨으로써 한국선도와 三敎가 習合되는 경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고구 려의 皁衣仙人제도19), 신라의 花郞道와 같은 국가적으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제도로 명맥을 유지하였다. 고 려 인종 13년(1135)에 한국선도와 불교에 입각하였던 妙淸(?~1135)이 주도했던 난이 儒學派의 대표인 金富軾 (1075~1151)에 의해 진압됨으로써 그나마 명맥을 유지했던 韓國仙道는 침체기로 들어서게 된다.20) 闢異端 성격이 강한 性理學을 國敎로 하는 조선시대에 한국선도는 탄압을 받으며 변질되어 샤머니즘 또는 무속이라는 이름으로 일 반 기층민의 문화 속에 그 흔적만을 남기게 되었다. 조선조 말엽 東學의 天心卽人心사상21), 姜甑山(1871~1909)의 後天開闢사상22), 大倧敎의 三眞歸一사상과 三一哲學23) 등의 민족종교에 의해 다시 한국선도의 맥을 이어갔으나 역시 일제치하에서 큰 빛을 보지 못했다. 그 중에 大倧敎와 東學은 항일독립운동에 많은 공헌을 하게 된다.24) 11) 졸저, 2004 韓國仙道 小考 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2) 大倧敎총본사에서 발행한 譯解倧經四部合編 의 原文을 기본으로 한다. 13) 국내에서 단학이란 용어는 李能和의 朝鮮道敎史 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朝鮮道敎史 에서 조선시대 도교사 상가를 중심으로 하는 일련의 무리를 ‘朝鮮丹學派’라고 설명하면서 丹學란 용어를 언급하고 있다. 현대 「단학」은 一指 李承憲이 1985년 서울 신사동에 단학선원을 처음 개설하여 대중들에게 보급하였으며, 1992년 단학 이란 책을 펴냄으로서 시작된 일련의 학문과 사상을 말한다. 氣를 학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구 한다는 면에서 ‘氣에 대한 학 문’을 다른 말로 氣學 혹은 丹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丹’이란 글자는 ‘붉다’ 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모든 생명의 근원이자 에너지의 핵’을 상징한다. 현대「단학」에서는 단학의 정의를‘인간이면 누구나 가 지고 있는 생체 에너지인 氣를 다루는 우리 민족의 고유의 학문’이라고 정의한다.(李承憲, 2003 단학 14쪽, 以下 단학 이라 略稱함) 14) 鄭景姬, 2004 앞 논문 60쪽, 61쪽. 15) 鄭景姬, 2004 위 논문 같은 쪽. 16) 桓檀古記 「太白逸史」 蘇塗經典本訓第五에 의하면, “天符經을 桓雄이 神誌 赫德에게 명하여 鹿圖의 글로 기록 케 했다(天符經天帝桓雄口傳之書也桓雄大聖尊天降後命神誌赫德以鹿圖文記之”)는 내용과 “삼일신고가 神市開天의 시대에 나와서 책으로 이루어졌다(三一神誥本出於神市開天之世)” 내용과 “홍익의 뜻을 받들었다(揭弘益之義)”는 내용을 보아서 神市倍達國시대에 韓國仙道는 사상적인 체계를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17) 揆園史話 「檀君記」, “壬儉與諸加諸曰 昔我皇朝肇基立業 爲萬世後孫之範 今王室衰微 諸家浸彊 方外諸侯始無奉 命者 雖圻內之民 懷列聖之化猶忠處 惟予凉德 不可以致 化立威 欲讓於有德則 遍觀聖裔叉無其人 予欲僻居於唐莊京 入 阿斯達” 18) 揆園史話 「檀君記」, “後有文朴氏居阿斯達韶顔方瞳頗得檀儉之道 其後 如何彌山之永郞 乃馬韓之神女寶德諸人 只 得基一 斑淸淨無爲逍遙鹿外 叉非檀祖用化萬民之大義也” 19) 桓檀古記 「太白逸史」 高句麗國本紀, “乙巴素爲國相 選年少英俊 爲仙人徒郞 掌敎化者曰參佺 衆選守戒 渭神顧托 掌武藝者曰皂衣 兼操成律 爲公挺身也” 20) 신채호는 妙淸의 거사를 儒敎的 事大主義와 仙家的 獨立事象과의 투쟁으로 보고 金富軾 중심의 사대주의자에의 하여 조선 古來의 독립사상이 꺾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朝鮮歷史上 一千年來 第一大事件> 「朝鮮史硏究草」 丹齋 申采浩全集 中 丹齋申采浩先生紀念事業會 103~124쪽) 21) 東學에서 弘益人間思想과 三元思想, 天符經 , 三一誥 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하지만, 安昶範 교수는 神仙道가 백두산 정상의 龍潭(天池)에서 桓雄天皇에 의하여 설파되었으며 동학이 山上의 용담과 開闢初의 天皇氏에 발생연원을 두고 있다는 점과 동학의 道․佛․儒 三敎一體 思想이 동양의 전통적인 도․불․유의 외래사상을 수용하여 종 합하거나 재구성한 것이 아니라, 先天開闢의 시조인 桓雄天皇이 설한 신선도의 도․불․유 삼교일체 사상을 계승하였 다고 주장한다.(安昶範, 2000 「神仙道와 東學의 起源」 東學學報 Vol.1 東學學會) 東學의 3 대 敎主인 孫秉熙에 天 道敎로 개편됨과 동시에 人心卽天心의 교리를 人乃天으로 정립하여 3․1운동의 주역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圓佛敎와 甑山敎는 민족국가의 광복을 위하기보다는 종교적 기반을 다지는데 중점을 두었다. (李乙浩, 1990 「한思想論」 한思想과 民族宗敎 一志社 39쪽) 22) 강증산은 “이 때는 元始返本하는 시대라. 血統줄이 바로잡히는 시대이니 換父易祖하는 자와 換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라고 한 말을 살펴보면 뿌리와 근원을 찾는 사상, 즉 主體적 민족사상이라 할 수 있다. (배용덕, 1983 「증산교의 후천개벽사상」 韓國近代民衆宗敎思想 학민사 99쪽) 23) 吳恩均, 1983 「三一思想을 通해 본 信仰의 對象論-佛敎, 基督敎, 大倧敎를 中心으로-」 圓佛敎硏究 Vol. 13 圓光大學校 圓佛敎硏究會 49~66쪽. 24) 朴永錫,1982「大倧敎의 民族意識과 抗日民族獨立運動-壬午敎變을 中心으로-」 건대사학Vol.6 건국대학교사학회. 20세기 초 大倧敎團의 활동을 중심으로 부활하던 한국선도는 다시금 수난을 맞이하게 되고 서구적 근대화로 치달아 가는 세계사적 추세에 한국선도는 다시 한 번 밀려나게 된다. 이러한 과도기를 거쳐 1980년경부터 한국선도에 대한 관심이 재차 되살아나기 시작하였다. 이는 1세기여 동안 몰가치적으로 추구해온 서구화를 반성하는 의미를 지닌 것 이다. 현재의 한국선도는 특히 심신이 지친 현대인들에게 효과적인 심신 수련법의 방식으로 접근, 현대사회 時宜性 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현대화되었다.25) 이제까지 한국선도의 기원을 큰 시대적 흐름에서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한국선도의 기원에 대한 보다 명확한 고 찰을 위해서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개괄적인 변천사뿐만 아니라, 신시배달국시대부터 현대까지 일관되게 지켜왔던 한국선도의 핵심사상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핵심사상의 고찰은 한국선도의 사상적 특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崔三龍은 우리나라의 仙家는 대체로 양분하여 구별지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중국의 도교가 정식으로 도입 되기 이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仙家로 단군신화를 비롯한 부족국가들의 시조 신화들은 그 주인공이 仙人의 모습으로 나타나 있으며, 대체로 靑鶴集 에는 이러한 선인의 계보를 상고시대로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나열하고 있다. 다음에는 통일신라시대 唐의 鍾離權, 呂純陽의 仙流가 留唐신라인에 의해서 들어온 一脈이 한국에 유전하여 내려온 자취를 엿볼 수 있으니 이 계보는 대체로 海東傳道錄 에 所載되어 있다. 한국에는 일찍이 고유의 신앙으로 神敎 또는 仙敎의 성격을 지닌 원시적 사상이 전래하고 있다고 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전통신앙은 매우 저 급하고 미신적 巫俗으로 간주되어, 한갓 토속신앙으로서 외래종교의 저변에 붙어 그 명맥을 유지하여 왔다고 말한 다. 한국 仙人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 도피적 은둔자들이 아니요, 그들이 터득한 生命哲學으로 인간을 바 르게 이끌려는 이념을 가진 道人들이였다.26) 25) 鄭景姬, 2004 앞논문 42쪽. 26) 崔三龍, 1987 「仙人 說話로 본 韓國 固有의 仙家에 대한 硏究」 道敎와 韓國思想 韓國道敎思想硏究叢書1 아세아문화사 373~374쪽. 또한 崔三龍은 李能和(1868~1945)의 朝鮮道敎史 에 기록된 白岳叢說 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고유의 仙家는 弘益人間에 대한 휴머니즘적 治民思想을 찾아볼 수 있으니, 선가 본래의 면목은 현실을 도피하여 일 신만을 保命하자는 것이 그 목적이 아니었던 것 같다. 특히 단군신화는 개국하여 우리 민족을 교화하고 蒼生들에게 그의 덕화로써 바른 삶을 인도해 주려는 홍익인간의 이념을 구현한 설화임을 감안할 때 仙道는 보다 적극적이요, 利他의 정신을 고양하여 국가 민족이나 그가 소속되었던 사회에 投身奉公하고자 하는 이념을 지닌 道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27) 이처럼 최삼룡은 한국선도의 핵심사상을 弘益人間思想으로 귀결시키고 있다. 그리고 중국도교는 老子 이후 莊子로 이어지는 후세의 道家는 春秋戰國時代라는 난세를 배경으로 하고, 儒家에 대립하여 현실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 고 초연한 자세로 생을 영위하려는 處世哲學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中國 道家의 성격은 소극적이고 은둔적이며, 爲我的이며 超世的이고, 현실도피적 정신의 방향으로 흘렀다고 지적하고 있다.28) 趙芝薰은 우리 고유 종교였던 仙敎와 중국도교와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중국의 도교 즉 선교류의 태반도 우리의 同系인 東夷系 사상이었던 듯하면서 우리의 선교는 그 바탕이요 그것이 나아가서 중국의 선교가 되 어 다시 들어온 것이라 할 수 있다.29) 李能和(1868~1945)는 朝鮮道敎史 에서 廣成子가 거주한 崆峒山은 靑丘의 영토였다고 말하고, 靑丘란 遼東을 중심 으로 한 東夷의 영토였음을 논증하였다.30) 최삼룡이 한국 고유의 선가 즉 한국선도를 生命哲學이라고 말하는 근거 는 어디에 있을까? 그 해답의 단초를 鄭寅普(1892~1950)의 조선사연구 에서 ‘단군의 가르침의 宗旨는 弘益人間이 다’라고하는 문구를 통해 찾을 수 있다. 광개토대왕 비문의 “동명왕이 세자에게 유언하기를 도로써 정치를 일으키라.(顧命世子儒留王以道興治)”의 ‘以道 興治’와 崔致遠의 鸞郞碑序의 ‘玄妙之道’는 단군의 가르침인 弘益人間을 말하는 것이다. 풍류는 두말할 것도 없 이 우리 고유의 도였다. 이 도는 중국에서 유입된 노자의 도교로 착각하는 이가 많으나 그렇지 않다. 그것은 단군 의 가르침인 弘益人間의 도인 것이다.31) 27) 崔三龍, 1987 위 논문 380쪽. 28) 崔三龍, 1987 위 논문 같은 쪽. 29) 趙芝薰, 「累石壇 神樹 堂집 信仰硏究」 文理論集 7집 고려대학교. 30) 李能和 輯述 ․ 李鍾殷 譯註, 2000 朝鮮道敎史 普成文化史 23쪽. 31) 鄭寅普 저 ․ 朴成壽 편역, 2000 정인보의 조선사연구 서원 84쪽. 신라 화랑도의 世俗五戒의 종지는 먼 상고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은 언제나 인간 중심의 법이었다. 弘益人 間의 가르침에는 불교의 淨土나 도교의 紫府와 같은 인간 이외에 대한 羨望이 없었다. 바로 하늘과 사람이 하나라 는 天人合一의 굳은 신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32) 이제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한국선도의 핵심사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揆園史話 에서는 ‘萬民을 敎化 하는 大義’라고 했으며, 최삼룡은 ‘고유의 仙家는 인간을 바르게 이끄는 生命哲學이며 弘益人間에 대한 휴머니즘 적 治民思想이며 사회에 投身奉公하는 이념의 道였다’라고 논증하였으며, 정인보는 ‘광개토대왕 비문의 以道興治 와 崔致遠 난랑비문의 玄妙之道는 단군의 가르침인 弘益人間이다’라고 한 내용을 통해 한국선도의 사상적 핵심은 바로 弘益人間思想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하나같이 모두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33) 揆園史話 「檀君記」에서 말한 대의가 곧 홍익인간사상이라고 한다면 문박씨와 영랑과 신녀 보덕이 단군 고열가로부 터 선맥을 이었다고는 하나, 그 대의는 아니었다고 한 이유는 바로 한국선도의 홍익인간사상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선도의 여러 사상적 특징 중의 핵심인 홍익인간사상은 한국선도의 기원을 살피는 데 있어 주요한 키워 드가 된다. 바꾸어 말하면 현대에 와서 한국선도의 선맥을 따지는 핵심 키워드는 바로 ‘弘益人間思想의 계승여 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Ⅲ. 韓國仙道의 전승 앞의 2절에서 개괄적인 시대적 흐름에 따른 한국선도의 기원을 살펴보았고,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면면히 이어 온 핵심사상이 홍익인간사상이라고 논증했다. 3절에서는 주로 한국선도사서인 符都誌 , 桓檀古記 , 揆遠史話 , 靑 鶴集 을 중심으로 한국선도의 전승과정을 살펴본다. 符都志 에서 나타난 한국선도의 전승과정은 律呂34)에서 黃穹氏→有因氏→桓仁→桓雄→檀君→朴赫居世로 이어졌다 고 설명하고 있다.35) 桓檀古記 「三聖記全」下篇에서는 7대의 桓仁36)과 18대의 桓雄37), 47대의 檀君38)을 기록하 고 있다. 靑鶴集 에서는 한인이 東方仙派의 宗이라 하며 한국선도의 전승과정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32) 鄭寅普 저 ․ 朴成壽 편역, 2000 위 책 85쪽. 33) 2장에서는 홍익인간사상이 주로 실천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한국선도의 기원에 대해 살펴보았다. 홍익인간사상 의 구체적인 의미와 신인합일사상의 의미 그리고 두 사상 간의 관계는 4장에서 다룬다. 34) 符都志 에서는 ‘律呂’에서 만물이 창조되어 나왔다고 설명하였다. 律呂의 化現인 인류의 시조, 天人들은 자 신들의 터전인 麻姑城의 중앙에 天符壇을 만들어 天符를 모셨으며 항상 천음에 귀 기울였다고 한다. 천부는 어떤 실체에서의 물건이나 대상이 아니라 만물을 있게 한 원리, 곧 律呂였다.(鄭景姬, 2004 앞 논문 60~61쪽) 35) 符都誌 에 보이는 韓國仙道의 전승과정은 단군에서 고구려가 아닌 신라 박혁거세로 넘어가는 것은 符都誌의 저 자가 신라의 名宰相 朴堤上(363~419)이라는 점과 깊은 연관이 있는 듯하다. 뒤에서 언급되겠지만 韓國仙道의 전승 은 고조선-고구려-발해로 하여 주로 국가철학을 중심으로 전승되었다. 36) 桓檀古記 「三聖記全」下篇, “初 桓仁 居于天山 … 傳赫胥桓仁 古是利桓仁 朱于襄桓仁 釋提壬桓仁 邱乙利桓仁至 智爲利桓仁 或曰檀仁” 37) 桓檀古記 「三聖記全」下篇 神市歷代記, “倍達 桓雄定有天下之號也 其所都曰神市 後徒靑邱國 傳十八世 歷一千五 百六十五年” 38) 桓檀古記 「檀君世紀」 및 揆遠史話 「檀君記」에는 47대 단군의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桓仁眞人이 동방선파의 조종이고, 桓雄天皇은 桓仁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뜻을 이어 風雨와 五穀등 360여 가지 일 을 주재하고 동방백성을 교화시키더니 단군이 또 그 업을 이어 교화를 편 지 1,000년에 九夷가 함께 받들어 천왕으 로 모셨다. 작은 정자와 버들대궐에 살면서 머리를 땋아 드리우고, 소를 타고 다니면서 백성을 다스린 지 1,048년 에 阿斯達山에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 자손이 번성하여 그 때 大國 아홉, 小國 열둘이 다 檀氏의 나라였다.39) 삼국시대 이전의 한국선도 전승과정은 율려→황궁씨→유인씨→7대 한인→18대 한웅→47대 단군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고조선의 사회조직은 神政組織으로 되어 있었으며40). 한국선도의 전승과정은 주로 최고 통치자이면서 제사장인 사 람을 중심으로 국가이념으로서 전승되었다. 고조선시대까지는 한국선도를 계승한 주체는 주로 단군을 위시한 仙人 으로 불리는 종교 지도자 신분이었다는41) 것을 고려한다면 국가 전반적인 사회, 경제, 문화 등은 한국선도사상의 배경에서 형성되어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靑鶴集 에서는 고조선 이후 선도의 전승에 대한 기록이 실려 있다. 단군 이후의 전승과정을 文朴氏→永郞→寶德→ 瓢公→旵始仙人→勿稽子→大世, 仇柒→崔致遠→李茗,郭輿, 崔讜, 韓惟漢으로 정리하고 있다.42) 李能和의 朝鮮道敎史 제2장에서 白岳叢說 을 인용하여 상고의 仙人 文朴氏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白岳叢說 에 向彌山人43)이 말하기를 仙道가 천하에 있다면 중국은 황제가 광성자에게 배운 것이고, 우리 동방은 문박이 桓仁의 연원을 얻음으로써 깨끗하고 맑은 학문(淸潔之學)을 전하게 된 것이 라고 하였다.44) 淸潔之學이란 淸靜을 근본으로 하는 중국도교의 취지와 유사한 면이 있다. 이어서 이능화는 백악총설을 계속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南石行은 말하기를 桓仁眞人이 大往氏에게 시켜서 始書를 짓게 하고 終書 一卷을 自作하였는데 始書는 風雨五穀․飮 食鍊養의 道를 主宰함에 있어 誠과 信으로서 최고로 하여 다투지 말고 음란하지 말며 사람을 위하여 착한 일을 하 라는 것이요. 終書는 日月星辰․ 天地山川의 理致와 性命의 근원과 神道妙德의 가르침을 쓴 것으로서 大往氏로 하여 금 이를 中外 仙官에게 펴게 하였다. 大往氏는 그 무리들과 함께 桓仁을 文祖氏라고 하니 그 글은 文朴으로부터 乙 密, 永郞, 晏留, 普德聖女에게 전해졌다. 내가 전일에 태백산인에게 이 글을 얻어 본 지가 오래되었다.45) 39) “桓仁 爲東方仙派之宗 桓雄天王 桓仁之子也 繼志述事 叉主風雨五穀三百六十餘事 以化東民 檀君繼業 化行十年 九夷共尊之 立爲天王 蓬亭柳闕而居 綯髮跨牛而治 主世一千四十八年 入阿斯山仙去 子孫蕃衍 當其時大國九 小國十二 大抵皆檀氏也”(李鍾殷 譯注, 1998 海東傳道綠․靑鶴集 보성문화사 218쪽) 40) 윤내현, 1995 앞 책 552쪽. 41) 윤내현, 1995 앞 책 649쪽. 42) “金蟬子曰 卞沚 記壽四聞錄者 記吾東道流之叢 … 崔讜 韓惟漢 是亦同德也”(李鍾殷 譯注, 1998 앞 책 218~ 219 쪽) 43) 靑鶴集 에서 永郞은 向彌山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것을 통해 向彌山人은 永郞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44) 李能和 輯述․李鍾殷 譯註, 2000 앞 책 32쪽. 45) “南石行 曰 桓仁眞人 使大往氏述始書 自作終書一卷 始書者 主風雨五穀 飮食鍊養之道 最以誠信 不鬪不淫 爲人 間善事 終書者 主日月星辰天地山川之理 性命之源 神道妙德之訓 使大往氏 頒告終書于中外 仙官大往乃與其徒 稱桓因 爲文祖氏 其書傳自文朴 乙密 永郞 晏留 普德聖女之流焉 余嘗得見於太白山人 藏之久矣” (李能和 輯述․李鍾殷 譯註, 2000 앞 책 359쪽) 위의 글에 따르면 始書는 飮食鍊養의 道라고 하며 誠과 信을 始書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내세우고 終書는 天地自 然의 理致와 性命46)의 근원과 神道妙德의 가르침이라고 한다. 誠과 信을 강조하는 것은 한국선도의 주요한 경전 중의 하나인 參佺戒經 의 8대 綱領47) 중에서 性과 信을 첫 번째와 두 번째 강령으로 설정하여 중요시하는 것과 일 맥상통한다.48) 또한 사람을 위하여 착한 일을 한다(爲人間善事)는 의미는 바로 홍익인간사상을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49) 飮食鍊養의 道가 있었다고 하는 부분을 통해서 한국선도 역시 중국도교의 養生術과 유사한 수행법 이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50) 그러한 한국선도의 수행법을 삼일신고 「진리훈」에서 止感․調息․禁觸 三修行으로 설명하고 있다. 신라 말기 金可紀 등의 留唐學者로부터 수입된 중국의 수련도교가 쉽게 수용된 것도 바로 한국고유의 선도 속에 수련적인 측면이 있 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선도가 수행에 있어서 誠과 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수행법을 三元思想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51), 그리고 수행의 궁극적인 목적52)에 대한 부분을 중국도교와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 앞의 문박씨가 淸潔之學을 전수받았다고 하는 것은 한국선도의 홍익인간사상이 내포하고 있는 사회적 실천을 강조 하기 보다는, 다투지 않고 음란하지 않은 청정한 생활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백악총설 의 내용을 통해 규 원사화 에서 문박씨와 영랑, 신녀보덕이 단군의 道를 치우치게 얻었으며 淸淨無爲한 생활을 하며 逍遙하였지만, 단 군이 萬民을 敎化하는 大義는 아니었다는 부분을 더욱 선명하게 설명할 수 있다. 이능화의 조선도교사 에서 백악총설 을 인용한 문구를 통해 한국에는 고대로부터 弘益人間思想 뿐만 아니라 본체 론, 인간론, 수행론, 실천론과 같은 사상적인 체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문박씨가 淸潔之學을 계승했다는 내용 을 통해 청정을 중시하는 측면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랑은 新羅四仙 중의 한 명53)으로서 勝地를 찾아다 니며 逍遙하는 기록이 전해져 온다.54) 永郞의 이러한 행적을 통해 문박씨의 淸潔之學을 계승했다고는 볼 수 있겠 으나 사회적․국가적인 실천적 측면보다는 개인적인 수양을 중시하게 됨으로써 사회적인 실천을 강조하는 한국선도 의 홍익인간사상과는 멀어지게 된다. 46) 여기 말하는 性命이 三一誥 의 三眞(性․命․精) 중의 性․命을 가르키는 것인지 아니면 중국 수련도교의 性命雙修 의 性․命을 가리키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47) 제1강령 誠, 제2강령 信, 제3강령 愛, 제4강령 濟, 제5강령 禍, 제6강령 福, 제7강령 報, 제8강령 應. 48) 졸저, 2004 韓國仙道 小考 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41~57쪽 49) 朝鮮道敎史 에서 인용한 白岳叢說 의 내용이 弘益人間思想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은 崔三龍의 앞 논문을 빌어 논증하였다. 50) 太白逸史 「神市本紀」에 ‘태우의 桓雄이 사람들에게 調息保精을 가르쳤다’고 하며 ‘이것이 長生久視의 術이 다’라고 하였으며, 太白逸史 「蘇塗經典本訓」에 ‘紫府先生이 軒轅에 준 三皇內文經을 후세에 부연하여 周나라․秦 나라 이래로는 道家의 鍊丹服食하는 법이 나와서 세상을 미혹케 했다’라고 한 것을 보면 中國道敎는 韓國仙道를 기원으로 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51) 졸저, 2004 韓國仙道 小考 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2~29쪽. 52) 韓國仙道의 경전과 선도사서류에는 수행의 목적을 弘益人間․在世理化와 性通功完에 두고 있고, 中國道敎는 不 老長生이나 得仙하고자 하는 데 있다. (졸저, 2004 韓國仙道 小考 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41~57쪽) 53) 靑鶴集 에서는 文朴에서 永郞으로, 永郞에서 馬韓時의 普德神女로 이어졌다는 내용으로 보면 永郞이 新羅四 仙 중의 하나로 보기에는 시대상으로 맞지 않다. 이에 대한 논증은 崔三龍, 1987「仙人 說話로 본 韓國 固有의 仙家 에 대한 硏究」에 잘 나타나 있다. 허나 본 논문에서는 海東異蹟 에 나타난 내용을 인용한다. 54) 海東異蹟 「四僊」, “…皆四僊所遊處…” 영랑과 달리 勿稽子는 신라 奈解王(196~230)때55)의 仙人으로 수행함에 있어서 얼의 앉을 자리를 닦는 것과 숨쉬 는 것을 강조했다.56) 한국선도의 사상적 특징 중 수행론의 핵심은 魂을 키우는 것이고, 魂은 곧 얼의 다른 말이 다.57) 물계자가 얼을 닦는 것과 숨쉬는 것뿐만 아니라 忠孝를 중시하였다는 내용58)은 영랑과 다른 일면이라고 할 수 있다. 靑鶴集 에서는 大世․仇柒이 물계자의 선맥을 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三國史記 와 海東異蹟에서는 신라 眞平王 (579~632)때 사람인 대세와 구칠이 함께 도를 배워 신선이 되어 볼 생각을 가지고 眞平王 9년(587)에 吳․越로 스 승을 찾아 떠났다59)고 한다. 청학집 의 내용에 의하면 대세․구칠이물계자의 선맥을 이었다면 굳이 스승을 찾으러 중국에 갈 필요성이 있었을까 하는 부분과 최치원에게 어떤 경로로 선맥을 전수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60) 청학집 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신라의 金庾信(595~673)이 神異한 老人으로부터 비법을 전수받고 齊戒․燒香 告天하고 設壇하여 神術을 닦았다는 내용61)은 固有의 禱天 祈祝의 방법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되며62) 이때까지 신 라에 유행했던 일련의 神仙思想은 한국선도를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김유신의 손자인 金巖이 唐에 들어가 陰陽家의 術法과 遁甲立成法을 배웠다는 내용63)을 통해 신라말기에는 중국도교의 영향을 받아 신라에 方述 이 유행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청학집 에서 元曉(617~686)와 道詵(827~898)은 물계자의 여운을 받았지만 불교에 의탁했다64)는 내용과 惠勒․阿 道․黑胡․翯仙은 모두 釋門의 사람이 대세․구칠의 영향을 받았다65)라고 표현하는 것은 대세․구칠이 활동했던 진평왕 이후부터는 한국선도가 불교와 습합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66) 이러한 한국선도와 신라불교의 습합과정을 趙明基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리 檀君始祖의 弘益人間의 理想 에 釋尊의 中道思想이 加勢되어 人間 및 宇宙의 가치를 認知하는 總和의 思想이 발생된 것이 곧 우리나라 문화의 發展相일 것이다.67) 55) 三國遺事 避隱第八, “勿稽子 第十奈解王卽位十七年壬辰” 56) 金凡父, 1981 花郞外史 以文社 122쪽 123쪽 130쪽. 57) 졸저, 2004 韓國仙道 小考 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41~58쪽 58) 三國遺事 避隱第八, “稽謂其妻曰 吾聞仕君之道 見危致命 臨難忘身 仗於節義 不顧生死之謂忠也 夫保羅竭火之役 誠是國之難 君之危 而吾未曾有忘身致命之勇 此乃不忠甚也 旣以不忠而仕君 累及於先人 可謂孝乎 旣失忠孝 何顔 復遊朝市之中乎” 59) 三國史記 卷第6 新羅本紀 第4 眞平王條, 海東異蹟 「大世仇柒」, “在此新羅山谷之間 以終一生 則何異池魚籠鳥 吾將乘桴 浮海以至吳越 追師訪道 若凡骨可換神僊可學” 60) 신라의 도교수입 시기는 三國遺事 卷第 44 列傳 第4 金仁問條에 보면 신라 제29대 太宗 武烈王(654~661)의 次男인 金仁問이 儒家의 책을 많이 읽고, 아울러 莊老와 浮屠의 학설까지 두루 섭렵하였다는 내용과 三國遺 事 卷第 9 新羅本紀 第9 孝成王條에 孝成王 2年(738) 4월에 당나라 사신이 老子 道德經 등의 서책을 왕에게 바쳤다는 내용을 통해 신라에 중국 도교유입은 통일신라이후에 수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金后稷이 진평왕의 狩獵이 지나침을 諫하는 말에서 노자를 언급하는 부분( 三國史記 卷第45 列傳 第5 金后稷條, “老子曰 馳聘田 獵 令人心狂”)과 고구려의 도교수입시기( 三國遺事 3 寶藏奉老條에 인용된 高句麗本記에 의하면 武德․貞觀年間 (618~649)에 고구려 사람들이 다투어 五斗米道를 신봉했다고 한다)인 고구려 營留王 1년(618)~寶藏王 9년 (649)과 비교한다면 삼국 중에서 중국문물의 수입이 가장 늦었던 신라에 고구려보다 먼저 도교가 수입되었다 고 보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金后稷이 언급한 말은 道敎라기 보다는 중국 諸子百家 중의 道家의 영향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당시 中國道敎가 신라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면 大世․仇柒이 중국으로 神仙術이나 道家를 배우기 위해 吳․越로 갔다는 내용은 논의의 여지가 있다. 61) 三國史記 卷第40~卷第43. 62) 車柱環, 1997 韓國道敎思想硏究 서울대학교출판부 117쪽. 63) 三國史記 卷43 列傳 第3 金庾信 下條. 64) 靑鶴集 , “元曉道仙 託身西敎 是乃勿稽子餘韻” 65) 靑鶴集 , “惠勒 阿道 黑胡 翯仙 皆釋門之高人 取襲其影光者” 66) 靑鶴集 에서는 韓國仙道의 영향을 받은 승려를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다. 67) 趙明基, 1982 新羅佛敎의 理念과 歷史 經書院 23쪽. 고조선의 건국이념이며 한국선도의 주요사상인 홍익인간사상은 후에 수입된 불교와 습합되어 신라의 圓光法師(56 5~630)의 世俗五戒로 발전하였다고 논증하고 있다.68) 최치원에서 李茗에게로 이어진 부분과 관련하여, 李嵒(1297∼1364)69)이 太白眞訓 에서 李茗과 范樟, 鄭之祥과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으며70), 李嵒의 현손인 李陌(1455~1528)이 엮었다는 太白逸史 「高句麗國本紀」에 이르기를, 행 촌선생이 일찍이 天寶山에 노닐 때 太素庵에 묵었던 바, 한 거사가 있어 말하기를 “素佺은 많은 기이한 옛날 책을 가지고 있다. 이에 李茗, 范樟과 함께 神書를 얻으니 모두 옛 桓檀의 眞訣이라.71) 이라고 했다. 李茗이 얻었다는 神書가 어떤 책을 말하는지 현재로서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桓檀의 眞訣이라고 말한 점을 보아 李茗은 한국선도 를 전승했다고 볼 수 있다. 청학집 에 보이는 한국선도 전승과정은 신라를 중심으로 하여 소략하나마 고려시대까지 전승과정에 대한 설명을 주로 하고 조선시대의 전승과정은 자세하지 않으며, 특히 고구려나 백제에 대한 한국선도 의 전승과정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72) 海東異蹟 에서는 단군에서 赫居世, 東明王으로 계승되어, 신라 사선을 거쳐 玉寶高, 金蘇二仙, 大世․仇柒, 旵始를 거친다. 상호간의 전승과정에 대한 자세한 언급 없이 개개인에 대한 행적만 나열하므로 그 전승과정을 일목요연하 게 도식화할 수는 없으나 단군을 始祖로 인식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73) 그러나 해동이적 에 인용된 書名을 살펴보면 중국도교의 대표적인 문헌들로서74) 한국선도사상이라고 추측할 문헌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桓仁을 眞 人으로 지칭하고 광성자-명유-한인 이라는 계통을 설정한다는 점은 한국선도의 선맥과 중국도교의 도교을 혼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75) 최삼룡은 홍익인간이라는 이념구현을 목표로 삼았던 단군계의 선파를 北方仙派로 명명하고, 삼한지방을 중심으로 한 영랑계의 선파를 南方仙派로 구분하는 견해76)에 따르면 청학집 과 규원사화77)는 주로 영랑계의 전승과정을 나 타낸다고 볼 수 있다. 남방선파는 단군으로부터 문박씨와 영랑, 신녀보덕으로 한국선도가 전승되었다고는 하나 홍익인간사상이 국가적 이 념으로 전승되지 못했으며, 삼국시대에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유․불․도 삼교가 사회의 중심역할을 담당하게 됨에 따 라 남방계통에서의 한국선도는 불교와 습합되거나 중국의 수련도 교와 습합되어 전승된다. 68) 趙明基, 1982 위 책 30~32쪽. 69) 桓檀古記 「檀君世紀」의 저자. 70) “嘗言於李茗范樟鄭之祥曰…”(李嵒, 太白眞訓 ) 71) 太白逸史 「高句麗國本紀」, “杏村先生嘗遊於天寶山 夜宿太素庵 有一居士曰素佺 多藏奇古之書乃與李茗范樟同得 神書 皆古桓檀傳修之眞訣” 72) 崔三龍은 靑鶴集 에 고구려나 백제의 선가에 대하여는 언급한 바를 찾을 수 없으니, 이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 한 후 문헌이 소멸된 까닭이라고 설명한다. (崔三龍, 1987 앞 논문 388쪽) 73) 姜全燮 編, 1998 홍만종연구 민속원 131쪽 132쪽. 74) 車柱環, 1988 「羅末의 留唐學人과 道敎」 道敎와 韓國文化 韓國道敎思想硏究叢書 2 亞細亞文化史 131쪽. 75) 鄭景姬,2005「조선의 선도사상과 문화」 한국仙道의 역사와 문화 제1회 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학술대회논문집 130쪽. 76) 崔三龍, 1987 「仙人 說話로 본 韓國 固有의 仙家에 대한 硏究」 395쪽. 77) 揆園史話 「檀君記」, “檀君旣徒居阿斯達而 國人猶推尊之 諸侯亦無敢逼者 或曰 朴氏 白氏 皆其後裔而 赫居世亦 出 於 檀君之後云 今文獻無微末知其確矣” 한국선도의 전승과정을 북방과 남방으로 구분한다면 북방은 단군→북부여→고구려를 통해 발해로 전해졌다. 이 전 승과정은 주로 환단고기 를 중심78)으로 하고, 청학집 처럼 인물을 통해 淸淨을 중시하는 淸潔之學 또는 수련법을 중심으로 전수되었다기 보다는 국가적 이념인 國學으로서 한국선도가 전승되었다. 桓檀古記 「太白逸事」〈三神五帝 本紀〉에서는 한국선도의 핵심사상인 三元思想이 잘 드러나 있으며,〈蘇塗經典本訓〉에서는 한국선도의 3대 경전 중에서 天符經 三一誥 의 내용이 자세히 실려 있어 한국선도사상의 전통적인 전승은 북방계를 중심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79) 환단고기 와 청학집 과 같은 선도사서류는 조선시대의 한국선도 전승과정은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다. 그 이유 는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이 한국선도나 도교 방면으로 관심을 가지게 될 때 대체로 중국도교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한국선도의 잠복으로 한국선도를 접하기는 매우 어려운 조건이었지만 유교와 도교는 역사적으로 오랜 친연성을 가 지고 있었으며, 더욱이 많은 자료와 인맥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80) 조선후기 韓無畏(1517~ 1610)가 편찬한 海東傳道綠 81)은 이런 경향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해동전도록 에는 신라 말기에 金可紀, 崔承祐, 慈惠 등 三人이 入唐하여 鍾離權이란 인물로부터 도맥을 전수받았다 고 기록하고 있다. 이들 중 김가기는 계속 당에 남아 수련을 계속하였고82), 최승우와 자혜가 신라로 돌아와서 종 리권의 도맥을 전했다고 한다. 삼인의 행적을 문헌상으로 고려하면 시대적 배경이나 활동 영역의 상이함이 있다. 일견 불합리하게 보이는 도맥 전수 과정을 제시하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83) 해동전도록 에 의하면 승려인 大珠로부터 도맥을 이은 鄭 (1506~1549)84)의 龍虎秘訣에서 參同契 를 단학의 鼻祖 로 받아들이고 있음85)을 살펴볼 때 조선시대 내단사상의 근거를 중국도교에 두고 있다.86) 그러나 그가 중국에 가 서 중국인과 담론할 때 한국에 三神山이 있고 독자적으로 유구한 선맥의 흐름이 있음을 강조한 사실이 있고87) 그 가 남긴 詩88)에서 자신이 신라 사선의 맥을 이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89) 78) 桓檀古記 「三聖紀」「檀君世紀」「北夫餘紀」「太白逸史」에 보이는 韓國仙道의 계승은 桓國→神市倍達國→古朝鮮→北 夫餘→高句麗→大震(渤海)→高麗으로 연결된다. 79) 1917년에 太白眞敎의 桂延壽가 묘향산에서 修道 중 天符經 을 어느 석벽에서 발견했다고 한 것(全秉薰, 1983 精神哲學通篇 명문당 1쪽, 29쪽)과 앞에서 언급한 김염백의 신교가 묘향산에서 개창한 것 등을 살펴보면 韓國仙道 의 선맥이 백두산 계보와 합쳐서 주로 북방에서 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80) 鄭景姬, 2005 「조선의 선도사상과 문화」 앞 책 131쪽. 81) 한무외의 행적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海東傳道綠 에 기술된 내용에 의하면 사대부 출신으로서 도교 수련끝 에 득도한 인물이라고 한다. 80년대에 海東傳道綠 의 전문이 규장각에서 발견됨으로서 한국 도교에 대한 새로운 연 구 성과가 나타난다. (金洛必, 1987 「海東傳道綠에 나타난 道敎思想」 道敎와 韓國思想 韓國道敎思想硏究叢書1 亞細亞文化社 136쪽) 82) 雲笈七籤 권103 「續仙傳」에 의하면 金可紀는 신라인으로서 입당하여 관직에 근무하다가 服氣煉形 등의 도교적 수련을 거쳐 당 대중 11년(857)에 登仙하였다고 한다. 83) 이에 대해 김낙필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中國道敎인 全眞敎의 도맥을 계승하려는 의도와 三敎合一的 포용성을 가지고 성리학과 선불교에 필적할 만한 이론적 근거를 세우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金洛必, 1987 「海東傳道綠에 나타난 道敎思想」 위 책 139~140쪽) 84) 鄭 의 자는 士溪, 호는 북창北窓이며, 그 외에도 靑破, 淸溪道人, 陽井道人 등으로 불리어졌다. 북창은 유․불․선 삼교에 폭넓은 식견을 지녔으며 天文, 醫藥, 卜莁, 律呂 등에도 두루 해박하였다고 전해진다.(姜德在, 2001 「北窓 鄭 의 內丹思想 硏究」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석사논문) 그의 가계도에 의하면 북창 가문에는 대대로 내단수련가 들이 배출되었으며 특히 북창은 桂香堂 鄭礎(1495~1539), 古玉 鄭碏(1533~1603)고 함께 一家三仙으로 불리어졌 다고 한다.(梁銀容, 1994 「新出 丹學指南과 北窓 鄭 의 양생사상」 道敎의 韓國的 變容과 轉移 韓國道敎思想硏究叢 書10 寒國道敎思想硏究會편 亞細亞文化社 377쪽) 85) 海東傳道錄 「龍虎訣」, “修丹之道 至簡至易 而今其爲書 汗牛馬充棟宇 且其言語太涉 恍惚難了 故今今學者 不知 下手之方 欲得長生 反致夭折者多矣 至於參同契一篇 實丹學之鼻祖 顧亦參天地比卦爻 有非初學之所能測.” 86) 김낙필, 2000 조선시대의 내단사상 , 한길사, 94쪽. 87) “東國有三神山 白日昇天 尋常見之 何足貴乎”(許穆 撰, 「北窓先生行蹟」 溫城世稿 ) 88) 四仙飛上白雲端 사선은 흰 구름을 타고 비승하였으며 壁上靈書不改端 벽에 쓰인 신령스런 글에는 새로이 단청을 칠하지 않았네 陳跡偶尋千載後 지난 자취 천년 후에 우연히 찾아드니 前身疑是舊仙班 아마도 전생의 도반인 듯 의심되네 ( 北窓先生詩集 「四仙亭」) 89) 鄭 의 후손인 東溟 鄭斗卿(1597~1673)이 海東異蹟 서문에 “我東山水雄於六合 自檀箕以來 服氣練形吸風飮露 之輩 必多矣”의 내용과 비교한다면 鄭 의 가문에서는 한국 고유의 선맥을 확신하고 이를 계승하려는 사명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정재서, 1997 「溫城世稿를 통해본 조선조 단학파의 이념적 성격」 道家思想과 韓國道敎 道敎 文化硏究 제11집, 韓國道敎文化學會 362쪽) 그렇다면 정렴이 해동전도록 에서 말하는 중국 全眞敎의 도맥만을 전승한 것으로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조선 시대 內丹思想家들 사이에 한국선도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해 동전도록 처럼 한국도교의 기원을 단순히 중국도교에서만 찾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 1850년도 이후 의 민족종교의 자생적 출현90)은 한국인의 정신적 사유의 근간이 되는 신앙심을 근대적으로 발현시켰다는 데 의미 가 크다. 그러나 그러한 민족자생종교들의 배경에는 불교나 유교의 사상적 영향91)이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이것 은 단군 이래 면면히 흘러온 한국선도를 줄기로 古神敎의 근대적 계승과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92) 또 한 위의 민족종교들은 한국선도의 경전인 천부경 , 삼일신고 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홍익인간사상과 삼원사상에 대 한 부분도 보이지않는다. 한국선도의 경전과 사상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종교는 金廉白의 神敎와 백두산의 白峯神師에 영향을 받은 羅喆 (1863~1916)의 大倧敎이다. 金廉白의 神敎는 儒敎的 陰陽論과 五行思想을 바탕으로 한 善惡論에 토대를 두고 있어 93) 한국선도의 홍익인간사상과는 거리가 있다. 나철은 1906년 백봉신사의 제자인 伯佺으로부터 삼일신고 와 神事 記 를 받았고 1908년 일본에서 역시 백봉신사의 제자인 杜一白으로부터 「檀君敎佈明書」와 「古本神歌集」과 「入敎節 次」 등 여러 책과 大倧敎 靈戒를 받아94) 1909년에 大倧敎를 重光하였다. 羅喆이 당시 創敎가 아니라 重光하였다함 은 바로 단군 이후의 한국선도를 다시 세웠다는 의미라고 봐야 할 것이다. 나철의 대종교 중광은 동학의 創敎로 나타나는 水雲思想과 증산교의 창교로 대두되는 甑山思想을 비교함에 있어서 도 차이가 크다. 즉 나철은 창교가 아닌 중광을 택함으로써 사상적․시간적․공간적 특성을 두루 갖춘 순수 國學的 요 소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자생종교라는 동질성을 가진 水雲思想과 甑山思想에서는 시간적 연속성과 사상적 정체성이 결여된 불완전한 國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95) 90) 後天開闢思想과 三敎合一을 강조하며 등장한 崔濟愚(1824~1864)에 의해 창도된 東學, 三敎融合的인 성격과 예 언사상 그리고 彌勒사상 등이 혼합된 金恒(1826~1898)의 正易은 甑山敎의 성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황선명, 1983 「後天開闢과 革世思想-조선 말기 民衆宗敎運動을 중심으로-」, 韓國近代民衆宗敎思想 , 학민사,12~ 15쪽) 김항과 최제우의 영향 속에 나타난 증산교의 姜一淳(1871~1909)은 1902년 三敎合一의 표방과 민간전래의 眞 人思想을 끌어안으며, 스스로 彌勒佛을 자처하고 나서며 후천개벽사상을 더욱 발전시켜 天地公事와 神人合德을 주 장했다.(김동환, 2005「근대의 선도사상과 문화」 한국仙道의 역사와 문화 제1회 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학술대회논문 집 171쪽) 一圓相法身佛을 우주의 궁극적 진리로 들고 나온 朴重彬(1891~1943)의 圓佛敎는 토착불교의 미륵불사상 과 연관된 것으로 崔濟愚나 姜甑山이 내세운 후천개벽사상과 흡사한 것이다. 91) 崔濟愚나 金恒, 金光華의 스승인 이운규는 道敎(필자 주)를 승계하여 東學을 창도케 했고 金光華에게도 佛道를 본받아 南學을 개창케 했으며 감항으로 하여금 儒敎를 이어 正易을 완성케 했다는 것이다. (김동환, 2005 「근대의 선도사상과 문화」, 위 책 170쪽) 92) 김동환, 2005 「근대의 선도사상과 문화」, 위 책 173쪽. 93) 김동환, 2005 「근대의 선도사상과 문화」, 위 책 175쪽. 94) 朴成壽, 2002 「弘巖 羅喆과 弘益人間思想」, 홍익문화 통일강연 시리즈 02-3호 홍익문화통일협회, 10~11쪽. 95) 김동환, 2005 「근대의 선도사상과 문화」 앞 책 201쪽. 나철은 神理大全 을 통해 한국선도의 삼원사상에 해당하는 三一思想을 천명하였고,96) 홍익인간이라는 말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弘巖이란 그의 호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 바와 같이 그는 弘益弘濟97) 또는 弘濟98) 그리고 弘 濟一世, 拯濟天下, 篤誠弘布99) 등을 사용하여 홍익인간의 의미를 대신했다.100) 나철은 天祭를 올리고 중광을 선포함으로써 개인적 수련으로 비전되어 오던 전통 수행을 종교적․집단적․제의적 성격 을 가진 한국선도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았다는 점이 그 의미가 남다르다. 小我的 신선의 꿈이 아니라 홍익인 간 구현이라는 大我的 실천논리를 체계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한국선도의 본질과 방향을 가장 웅글게 드러냈다는 것 이다.101) 이제까지 살펴본 바로는 대종교는 근대에 와서 한국선도를 종교적으로 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종교를 중심으로 부활한 한국선도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 문제를 고민하던 한국인들에게 삶의 지표 를 제시하였고, 또 항일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었다.102)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따라 민족의식이 강해졌 고, 민족주의 사학자들인 朴殷植(1859~1925), 申采浩(1880~1936), 鄭寅普(1892~1950), 安在鴻(1891~1965) 등 을 중심으로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한국선도에 대한 역사적 및 사상적 인식이 새로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103) 한국선도가 한말-일제기에는 유력한 사상적 흐름으로 자리잡았고, 근대 한국민족운동과 근대화운동을 견인한 동력 의 하나가 되었다.104) 그러나 해방이후 서구적 근대화로 치달아가는 시대 추세에 따라 서양 사상 및 기독교의 영향력이 강화되면서 한국 선도의 가능성은 다시 한 번 꺾이게 되었다.105) 이러한 경향은 1930․40년대에 시작되어 해방 이후에 더욱 심화되 었고 결국 한국선도는 다시 민속․무속 등으로 저류화되고 말았다.106) 1970년대 말~1980년대 초 많은 한국인들이 한동안 잊고 있던 한국선도에 재차 주목하면서 한국 선도수련법이 널리 보편화되었다. ‘丹田呼吸’ 이나 ‘氣’를 표방한 많은 선도수련단체가 등장하게 된 것으로, 이들은 우리의 전통수련법인 한국선도의 맥을 잇고 있으며 그 기 원을 단군에 두고 있는 점에서 공통된다.107) 96) “大倧之理 三一而已”, “有一無三 是無其用 有三無一 是無其體 故一爲三體 三爲一用” (羅喆, 「神理大全(神敎)」 譯解倧經四部合編(全) 大倧敎총본사 65쪽) 97) 羅喆, 1971 「重光哥(41章)」 大倧敎重光六十年史 大倧敎총본사 239쪽. 98) 羅喆, 1971 「重光哥(52章)」 위 책 244쪽. 99) 羅喆, 1971 「與日本總理大隈書」 위 책 245~246쪽. 100) 김동환, 2005 「근대의 선도사상과 문화」 앞 책 185쪽 186쪽. 101) 김동환, 2005 「근대의 선도사상과 문화」 위 책 181쪽. 102) 鄭景姬, 2005 「현대의 선도사상과 문화」 앞 책 230쪽. 103) 한말 이후부터 대중화되기 시작한 단군 자손의식을 학계에서는 ‘檀君民族主義’ 혹은 ‘檀君運動’이라고 한 다. 단군을 민족공동의 조상으로 간주하고 그 같은 인식에 토대하여 민족적인 정체성을 확인하고 결속과 발전을 도 모하던 일련의 사상-의식 또는 정치적-문화적 운동을 가리킨다. 특히 신채호 등의 民族主義史學과 羅喆 등이 주도 한 단군교-大倧敎 ‘重光’은 한말 단군민족주의의 대표적 양상들이었고, 동시에 단군민족주의를 강화시킨 주역들 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비록 학문적이고 종교적인 모습을 띠기도 했지만, 그 본질은 대중을 계몽시키고 움직이게 해서 자주적 민족-민주국가로의 정치사회적 변혁을 기도했던 하나의 사회운동이다. (정영훈, 1998 「21세기를 향한 단군운동의 과제」 國學硏究 第4輯 국학연구소 82쪽) 104) 정영훈, 1998 위 논문 83~87쪽. 105) 구체적인 이유로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해방 후 좌우대결의 중도에서 좌우의 대결을 화해시키는 정치투 쟁과정에서 패배한 것이고, 둘째로는 대표적인 반대세력인 기독교와 실증주의학풍, 그리고 공산주의에 의해 배척되 었으며, 셋째로는 민족적 동질성보다는 이념적 동질성을 중시하던 냉전논리에 의해서이다. 넷째는 냉전과 함께 심 화해간 정신문화적 대외 종속에 의해서이고 마지막 다섯째로는 이기주의․배금주의․향락주의 같은‘反공동체적’가치 관이 우리사회 저변에서 확산돼갔던 것이 韓國仙道가 해방이후 침체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정영훈, 1998 위 논문 90~93쪽) 106) 鄭景姬, 2005 「현대의 선도사상과 문화」 앞책 230쪽 107) 鄭景姬, 2005 「현대의 선도사상과 문화」 위 책 243쪽 우선 1970년대까지 저조하던 國仙道가 한국선도사상의 일부와 수련법 체계를 정비하면서 크게 성장하였다. 1985년 에는 一指 李承憲 大仙師108)가 丹學仙院(2002년 단월드로 개칭)을 설립하고 1992년에 한국선도를 체계화, 현대화 한 단학 을 저술하여 단학수련을 대중화하였다. 현대 「단학」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1980 년대 이후 한국선도의 대중화 및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 276개, 미국, 일본, 캐나다 등에 200여개의 센터를 운영하는 최대 규모의 선도수련단체이다. 1997년에는 ‘뇌호흡’을 개발하여 韓國仙道의 과학화에 앞장서고 있다. 2005년에는 뇌과학 기반의 첨단 명상법인 HSP (Heightened Sensory Perception)명상을 개발하여 대중에게 보급 하고 있으며 HT(Human Technology)운동으로 전개하고 있다.109) 현대 「단학」은 韓國仙道를 과학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현대화시키면서 대중에게 보급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현대「단학」에 보이는 주요내용은 3대 경전을 주로 하여 ‘弘益人間思想’과 더불어 韓國仙道의 사상에 대해 철학적이면서 체계적인 설명뿐만 아니라 체계화되고 과학 화된 여러 수련방법도 아울러 함께 제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韓國仙道의 弘益人間思想을 ‘지구인운동’, ‘힐 링소사이어티운동’ 등의 범지구적인 실천운동으로 전개하면서 지구평화를 위한 구체적인 비젼을 제시하고 있다. Ⅳ. 弘益人間思想과 人合一思想 앞의 2장과 3장에서는 한국선도의 기원과 전승과정을 홍익인간사상을 중심으로 고찰했다. 4장에서는 홍익인간사상 은 어떤 사상이며 한국선도의 신인합일사상은 홍익인간사상과 어떻게 연결되며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일 반적으로 홍익인간사상을 人本主義思想으로 부적절한 해석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현재까지 서양에서는 인간을 신과 떨어진 혹은 신으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즉 人本主義110)를 과거의 神 本主義시대와 대비되는 관계로 이해하고 있다.111) 다시 말하면‘인간’을 ‘신’에 종속된 혹은 독립된 존재, 즉 서로 분리된 존재로 이해했다.112) 한국선도는 신이 인간 안에 신성으로서 내재하고 있으며 신인합일이란 바로 내재한 신과 하나됨 을 의미하고 그런 일을 통해 외재한 신과 하나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113) 이러한 논리는 「天訓」, 「訓」, 「天宮訓」, 「世界訓」, 「眞理訓」으로 구성된 三一誥 에 잘 나타난다.114) 108) 一指 李承憲 大仙師(1950~현재)는 충남 천안 출신으로 母岳山에서 21일 간의 수행을 통해 우주와 하나임을 깨닫고 그 깨달음이 天符經 의 이치와 같다는 것을 알고 한국 고대로부터 기를 통해 몸과 마음을 닦는 수행법 즉 韓國仙道가 있었고, 자신의 깨달음이 韓國仙道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단학 220쪽) 109) BR Consulting. 한국뇌과학연구원, 2005 HSP 현상과 명상 23쪽. 110) 르네상스를 계기로 신본주의가 퇴조하고 인간의 합리적 사고와 이성을 중시하는 인본주의 또는 인간중심주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개인의 합리적 사고와 이성을 중시하는 인본주의가 지배적인 사조로 자리잡게 되었고, 우주의 비밀과 사물의 본성, 그리고 인류의 존재 목적을 체계적으로 밝혀내기 위한 수단으로서 과학이라는 새로운 권위가 창조되었다. (김광린, 2000 「弘益人間思想과 민족통일(Ⅰ)」 홍익문화통일강연시리즈 00-4호 홍익문화통일협회 31~32쪽. 111) 현대 「단학」에서는 ‘현재까지의 인류 의식의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차원의 시대는 인류의 영적인 자각과 더 불어 시작되며, 그것은 신본주의 시대를 넘고 인본주의 시대를 지나 세 번째로 맞이하게 될 人合一의 시대이며, 영 적인 자각은 자신 안에 감추어진 性을 발견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평화학 60쪽) 112) 이 부분은 한국선도의 인간론에서 보다 깊은 논의가 진행되어야 하지만 본 논문에서 논외로 한다. 113) 졸저, 2004 韓國仙道 小考 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30~40쪽. 114) 天符經 과 三一誥 를 굳이 철학의 범주로 구분하자면, 天符經 은 본체론 중에 우주본체를 存在論的 세계관으 로 설명한 경전이며, 이에 비해 三一誥 는 주로 認識論的 세계관으로 설명할 수 있다.( 평화학 129 쪽) 三一誥 에 서 「天訓」을 포함한 5개 訓은 天符經 의 본체론을 인식론적 시각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마지막의 「眞理訓」에서는 인 간론과 수행론, 실천론을 三元論 중심으로 일관성 있게 풀어내고 있다. (졸저, 2004韓國仙道 小考 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삼일신고 「신훈」 서두에서 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느님은 시작도 끝도 없는 근본 자리에 계시며, 큰 사랑과 큰 지혜와 큰 힘으로 하늘을 만들고 온누리를 주관하여 만물을 창조하시되 아주 작은 것도 빠진 게 없으며 밝고도 신령하여 감히 사람의 언어로는 표현할 길이 없다.115) 신은 사람이 인식할 수 없는 존재로서 설명하고 「천훈」116)에서 天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신훈」 의 신은 근원적이며 절대적인 존재를 擬人化하여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말하는 절대 신의 개념 은 이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신훈」의 첫 부분은 모두 근원적이며 인식영역 밖의 절대적 존재로서 신을 표 현하며 「천훈」에서의 天을 의인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신훈」 말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언어나 생각을 통해 하느님을 찾는다고 해서 그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통해 하 느님을 찾아라, 그리하면 너의 머리 속에 이미 내려와 계시니라117) 사람이 절대적인 존재인 신을 인식할 수 있게 되는 이유는 뇌 속에 降在爾腦한 신이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생각이나 오감과 같은 외부의식으로는 신을 인식할 수 없고 단지 내부의식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118) 그 것은 바로 인간 뇌 속에 신을 인식할 수 있는 메커니즘119)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신이 이미 뇌에 내려 와 있다’는 것은 바로 인간의 뇌 속에 신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한국선도사상의 주요 특징 중의 하나인 신인합일사상에 대한 단초를 제공한다. 신을 찾기 위해서는 ‘自性求子’를 통해야 한다는 내용에서 ‘性’은 「진리훈」에서 인간이 지니고 있는 三眞 중의 하나인 性을 가르키는 말이다. 삼진의 성은 절대적인 존재인 (天)이 아니라, 인간이 신으로부터 신의 성질(性質)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엄밀하게 말하면 근본(天, )으로부터 인간은 삼진을 받고 그 삼진은 ( )性과 命과 精을 의 미한다.120) 따라서 「신훈」의 서두에서 말한 근원적이며 절대적인 존재로서의 신이 인간 안에 내려왔을 시에는 신 성 즉 성으로 표현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에 내재한 신성을 찾을 때 비로소 인간은 외재한 신과 하나가 될 수 있 다는 것이다. 115) 三一誥 「訓」, “ 在無上一位 有大德大慧大力 生天 主無數世界 造甡甡物 纖塵無漏 昭昭靈靈 不敢名量” 116) 三一誥 「天訓」, “제曰 元輔彭虞 蒼蒼非天 玄玄非天 天無形質 無端倪 無上下四方 虛虛空空 無不在 無不容” 117) 三一誥 「訓」, “聲氣願禱 絶親見 自性求子 降在爾腦” 118) 단학 91~93쪽 119) 현대「단학」의 뇌호흡에서 뇌를 3층 구조(신피질, 구피질, 뇌간)로 파악하며 뇌통합을 통해 인간의 인식(의식) 이 性이 있는 뇌간까지 확장함으로서 인간과 性이 합일하는 人合一에 대한 구체적인 수련법을 제시하고 있다. 120) 三一誥 「眞理訓」, “人物 同受三眞 曰 性命精 人 全之 物 偏之” 한국선도에서의 신인합일은 여타 종교에서 말하는 ‘인간이 외재한 신과 하나됨’을 의미하는 신인합일이 아니라 ‘인간에 내재한 신(성)과 하나됨으로서 외재한 신과도 하나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리훈」에서 ‘인간은 착하고 악함과, 맑고 탁함과, 넘쳐남과 모자람을 서로 섞어서 이 여러 상태의 길을 마음대 로 달리다가 나고 자라고 늘고 병들고 죽는 고통에 떨어진다’121)고 하여 인간은 본래 삼진을 받은 완전한 존재이 지만 三妄과 三途로 빠지면서 완성에 길에 이르지 못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더불어 인간이 삼진을 회복하기 위해서 止感, 調息, 禁觸 수행법을 제시하면서 수행해야하는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 三修行(止感, 調息, 禁觸)을 통해 인간은 삼진을 회복하여 우주의 본체인 신과 하나되어 완성할 수 있다는 내용은 人合一의 사상적 기본구조를 이루고 있다. 삼일신고 의 ‘너(인간)의 머리 속에 신이 내려와 있다(降在爾腦)’와 ‘삼진을 회복하면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返 眞一)’란 내용의 핵심은 ‘인간에 내재한 신성과 하나됨으로 외재한 신과 하나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듯이 한국선도에서는 바라보는 인간은 신과 동떨어진 관계가 아니고, 신은 신성으로서 인간에 내재한 존재로 이해하고 있다. 다른 말로 인간 안에 신성이 있고 그 신성과 합일하는 방법은 삼진을 회복하는 것이고 구체적인 방 법으로는 지감․조식․금촉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122) 한국선도에서는 인간과 신은 함께 하는 존재이지 서로 동떨어지거나 각각 독립된 존재로서 이해하고 있지 않다. 인 간 안에 신(신성)과 사람(인성)이 함께 공존하는 상태(삼망과 삼도의 상태)에서 삼수행을 통해 삼진을 회복하여 내 재한 신(성)과 인간이 합일( 人合一)하는 것을 삼일신고 에서는구체적으로 ‘性通’123)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홍익인간에서 인간이란 ‘ 性과 人性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존재’로 이해해야 하며,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 는 의미는 ‘인간이 삼진을 회복하여 본래의 인간성을 회복하여 내재한 신과의 합일을 통해 외재한 신과 하나됨, 즉 신인합일에 이르게 한다’라고 이해할 수 있다. 곧 ‘우주의 본질을 깨달은 신인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121) 三一誥 「眞理訓」, “衆 善惡淸濁厚薄 相雜 從境途任走 墮生長消病歿 苦 哲止感調息禁觸” : 「眞理訓」에서는 인간이 완전성을 잃어버리고 타락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122) 단군신화에서 곰과 호랑이가 동굴에서 三七日동안 하였던 수련이 바로 止感․調息․禁觸 三修行에 해당한다. 熊 族의 공주가 三修行을 통해 性을 회복한 인간으로 거듭나서 이미 性을 회복한 한웅과 결혼하여 단군왕검을 낳았다 라는 단군신화의 내용은 韓國仙道의 인간론과 수행론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123) 三一誥 「眞理訓」, “哲 止感調息禁觸 一意化行 返妄卽眞 發大機 性通功完是” Ⅴ. 맺음말 본 논문에서 홍익인간사상과 신인합일사상을 중심으로 한국선도의 기원과 전승에 대해 고찰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 론을 지을 수 있다. 첫째, 한국선도의 기원은 유․불․도 삼교가 수입되기 이전인 고조선과 신시배달국시대 그리고 환인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선도가 사상적으로 정립이 된 시기는 신시배달국시대였다. 둘째, 한국선도의 전승과정을 살펴보는 핵심 키워드는 홍익인간사상의 전승여부에 있으며 고조선이후 홍익인간사상 은 온전히 전승되지 않았다. 삼국시대 이후 한국선도가 국학으로서 역할을 한 북방계열이 있으며, 개인적인 수련을 중심으로 전승된 백제와 통일신라에 해당하는 남방계열이 있다. 남방계열의 전승과정은 주로 한국선도의 핵심사상 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주로 인물을 중심으로 전승되었다. 그 이후 조선시대의 지식인들 사이에 유행했던 수련도교 는 한국선도의 남방계열과 중국도교에 그 연원을 두고 있는 까닭에 한국선도와 변별하기가 쉽지 않다. 삼국시대에 는 주로 고구려의 조의선인, 신라의 화랑도, 발해의 태학과 같은 인재 양성 제도를 통해 교육, 전수되며 명맥을 유 지하게 된다. 고려시대에 한국선도계열을 대표했던 묘청이 주도했던 난이 사대주의를 대표했던 김부식에 의해 진압 됨으로서 그나마 면면히 명맥을 유지했던 한국선도는 기나긴 침제기로 들어서게 된다. 성리학을 국교로 하는 조선 시대에는 탄압을 받으며 변질되어 샤머니즘 또는 무속이라는 이름으로 일반 기층민의 문화 속에 그 흔적만을 남기 게 되었다. 한말에는 민족종교인 대종교를 통해 한국선도의 맥을 이어갔으나 역시 일제치하에서 큰 빛을 보지 못했 다. 이런 한국선도는 20세기에 와서 현대인에게 맞게 과학화, 체계화하여 현대「단학」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겪게 된 다. 셋째, 한국선도에서는 신과 인간이 서로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신은 신성으로 인간에 내려와 있고 그 신성과 하나 되고 외재한 신과 하나됨을 신인합일이라고 한다. 이러한 내용은 삼일신고 「진리훈」에 ‘返眞一’, ‘性通功完’으 로 표현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수련법으로 지감, 조식, 금촉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다. 홍익인간의 ‘인간을 널리 이 롭게 한다’는 의미는 ‘인간이 삼진을 회복하여 본래의 인간성을 회복하여 내재한 신과의 합일을 통한 외재한 신 과 하나되게 함, 즉 신인합일에 이르게 한다’라고 이해할 수 있다. 본 논문을 통해 한국선도의 홍익인간사상과 신인합일사상을 중심으로 그 기원과 전승과정에 대해 살펴보았다. 향후 한국선도사상의 중심이 되는 경전인 천부경 , 삼일신고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한국선도가 지닌 존재론, 인간론, 수행론, 실천론과 같은 구체적인 사상적인 체계를 연구함으로써 단순히 한민족 고대사상으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에 있어서 어떤 時宜性이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논문투고일: 2005년 10월 10일 심사완료일: 10월 30일 게재확정일: 10월 30일 【참고문헌】 1. 단행본 姜全燮 編, 1998 홍만종연구 민속원. 김낙필, 2000 조선시대의 내단사상 한길사. 김범부 저, 1981 花郞外史 이문사. 김은수 번역․주해, 박제상 저, 2002 符都志 한문화. 대순종교문화연구소, 1994 증산의 생애와 사상 대순진리회 출판부. 大倧敎총본사, 譯解倧經四部合編(全) . 朴成壽 편역, 鄭寅普 저, 2000 鄭寅普의 조선사연구 서원. 북애자 저, 신학균 역, 1973 揆園史話(단군실사) 명지대학교 출판부. 申采浩, 1998 단채신채호전집 단재신채호선생전집간행위원회. 안재홍선집간행위원회 편, 1992 民世 安在鴻 選集 4 지식산업사. 李能和 輯述 ․ 李鍾殷 譯註, 2000 朝鮮道敎史 普成文化史. 李承憲, 1998 運氣丹法 한문화. 李承憲, 1998 천지인 한문화. 李承憲, 2002 숨쉬는 평화학 한문화. 李承憲, 2002 뇌호흡 한문화. 李承憲, 2003 단학 한문화. 李鍾殷 譯註, 1998 海東傳道錄․靑鶴集 普成文化史. 이석호 역, 홍만종 저, 1982 海東異蹟 을유문화사. 임승국 번역․주해, 2003 桓檀古記 정신세계사. 윤내현, 1995 고조선연구 一志社. 趙明基, 1982 新羅佛敎의 理念과 歷史 經書院. 車柱環, 1997 韓國道敎思想硏究 서울대학교출판부. 한국정신철학회 편, 1987 韓國哲學史 上․中․下 동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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