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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4_21 : 훈민정음 關聯기사]* 한글 전용론 비판 / <벽운 이경숙> 2010.04.011. 한글 전용론자들의 무지와 편견 그리고 어거지
말이 나온 김에 한글전용론자들의 무지와 편견, 그리고 오해에 대해서 조금 더 살펴보자.
한글은 우리글, 한자는 남의 글이라는 이들의 주장은 사실 무지의 소치요, 편견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한자는 그 기원이 옛 은나라 사람들이 점을 칠 때 썼던 갑골문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사용하는 한자의 대부분의 원형이 은허의 갑골에서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 은나라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갑골과 함께 출토된 사람들의 유골을 유전적으로 조사해본 결과
갑골문을 만든 은나라 사람들은 지금의 중국인인 한족(漢族)이 아니라
동이족에 가장 혈통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이며 산동지방의 성자애에서 흑도문화를 일으킨 사람들과 혈통이 같았다.
이들은 모두 우리 동이족이다.
은나라의 주왕이 달기와 방탕한 생활을 하고 학정을 할 때
주나라가 이에 반란을 일으키는데 백이와 숙제가 주나라 땅에서 나는
곡물을 먹을 수 없다 하여 수양산에서 고사리만 먹다가 죽었다.
이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당시 은나라 사람들은 주나라 사람들과는 혈통이 다른 귀족이요,
천신족으로서 감히 이에 거역하거나 반역하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런 지배계층이 만든 문자가 갑골문이며 은나라를 타도하고
처음으로 한족의 왕조를 세운 주나라가 이를 계승하여 발전시킨 것이 한자이다.
이렇게 볼 때 한자는 중국인이 만든 문자가 아니라
동이족의 창작물이며 한글과 함께 찬란하게 빛나는 우리 민족의 발명품이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표의문자인 한자와 표음문자인 한글을 모두 발명한 주인공인 것이다.
설사 갑골문을 만든 은나라 사람들이 우리 동이족이 아니라 하더라도
한자는 우리 민족이 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제1의 문자로 사용해 온 것이다.
한자를 우리 민족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남의 글자로 치부하는 것은
영어를 미국말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과 진배 없는 소리다.
한자는 어떤 시각으로도 부인할 수 없는 우리 민족의 문자이며
그 사용기간과 우리말에서 차지하는 비중, 그리고 문화적 가치에 있어서
오히려 한글보다 더 중요시되어야 옳은 것이다.
굳이 순위를 멕인다면 한자는 제1국어요, 한글은 제2국어라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의 문화적 지적 유산이 문자화되어 남아있는 것을
자산 가치로 따진다면 한자자산이 80% 이상을 차지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민족이 한글이라는 용기에 우리의 생각을 담기 시작한 것은 겨우 100년이 될까말까이다.
한글이 창제된 것은 5백년이 더 되었지만
사실상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문자로 기능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부터인 것이다.
그 이전에 전하는 한글 저작물은 실로 손꼽을 정도이다.
한자를 버리면 100년 이전까지의 모든 문화적 유산은 소실되며, 그 전승의 맥은 끊긴다.
이것은 역사가 단절되는 것을 말하고 우리 민족의 역사를 100년으로 줄이게 된다.
이보다 더한 역적질이나 망국의 패악은 달리 찾을 수 없다.
또 한 가지 한글전용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한글전용이 한글을 아끼고 사랑하고 더 잘 가꾸는 길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도 황당무계하고 어처구니없기는 한자를 남의 글자라 하는 소리보다 더 심하다.
우리의 문자생활을 발달시켜 언어를 풍족하고 윤택하게 만들고자 하면
우리 말을 담아내는 두 가지 그릇인 한자와 한글의 양쪽 모두를 연마해야 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한글을 전용하는 것은 우리말을 반신불수로 만들고 우리의 언어자산 중 80%를 훼손하여
우리 민족의 사고능력 자체를 극단적으로 저하시키고 퇴보시킬 것은 명약하기가 관화와 같다.
한자를 연마하는 것은 한글이라는 그릇에 상감을 입히고 금칠을 하는 것이나 같다.
한글을 제 아무리 다듬고 가꾸고 사랑한다 해도 한글 자체로는 질그릇밖에 못 만든다.
결코 전세계인이 부러워할 청자는 만들 수 없다. 한글 전용은 한글을 가꾸고 사랑하는 행위가 아니라
한글을 병신을 만들고 조잡한 기호로 전락시키는 짓임을 알아야 한다.
이들은 ‘나라 말쌈이 뒹국에 달라 문자와르 서로 사맛디 아니할 새
백성이 니르고자 할 배 있어도 쉬이 펴지 못할 노미 하니라’ 는 한글 창제문을 들이대면서
세종대왕께옵서 한자는 우리글이 아니라서 한글을 만드셨다 하지 않았느냐 하고 나발을 분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로 한번 더 살펴보자. 과연 나랏 말쌈이 뒹국에 달랐는지....
2. 나라말쌈이 둥귁에 달라.
한글을 창제하게 된 이유를 세종대왕께서
‘나랏말쌈이 뒹국에 달라서’였다고 하신 때문에 많은 오해가 있게 되었다.
물론 세종대왕은 한자의 원형인 갑골문을 발명한 사람들이
조선사람들의 조상인 동이족 혈통의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고
(은허의 발굴은 1910년대에 이루어졌고 은인들의 유골에 대한 유전자 검사는 50년대에 이루어짐)
한자는 당연히 상국인 중국의 문자이며 중국에서 전해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때문에 세종대왕을 비롯한 집현전 학사들 전부가
한자는 중국의 문자이고 남의 나라 문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 맥락에서 창제문은 조선사람들에게 새 글자의 필요성과 창제의 당위성을 설명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일 수 있고, 더 이상의 설명은 대단히 복잡한 여러 문제를 야기했을 것이다.
우리가 쓰는 말이 중국사람의 글과 다르기 때문에
백성들이 글에 뜻을 실어펴는데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으므로
우리 말과 일치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쉽게 익힐 수 있는 글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창제이유가 집약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말이 중국의 문자인 한자와 서로 달라서 불편했다면,
중국사람의 말은 중국의 문자라는 한자하고 같아서 쓰기에 편했느냐 하는 것이다.
조선말이 한자와 다른 것이라면 중국말은 한자와 같은 거냐 이 말이다.
한자라는 문자와 다르기로 치면 조선말이나 중국말이나 왜말이나 그 점에서는 도낑대낑이다. 아무 차이가 없다.
말이라는 것은 입을 통해 소리라는 것으로 전달되어진다.
그런데 소리라는 것은 들리는 순간이 지나면 바로 사라지는 것이어서
듣는 순간 이해하고 기억하지 않으면 영원히 되살릴 수가 없다.
보존과 기록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순간적으로 존재했다가 곧바로 소멸되는 정보인
소리를 영구히 보존하기 위한 기록수단으로 문자가 생기게 되는데 이것이 표음문자이다.
표음문자는 하나의 소리를 하나의 기호에 대응시킨 것이다.
따라서 표음문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이 입으로 낼 수 있는 소리가
몇 가지나 되는지 구분해야 하고 음소와 음절의 구성요소를 파악해야 한다.
한글로 표현할 수 있는 소리의 가짓수는 약 200개이지만 히라가나는 고작 50여개 뿐이다.
한글은 초성, 중성, 종성이라는 소리의 구성요소를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음소를 결합하는 문자이지만 히라가나는 거저 소리마다 각기 다른 기호를 만든 것이다.
때문에 일본말은 소리의 가짓수가 너무나 작다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말이 문자에 의해 제한되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런데 한자라는 문자는 이런 의미의 문자와는 본질적으로 커다란 차이가 있다.
표음문자가 귀에 들린 소리를 기호로 변환하는 것인데 비하여
한자는 귀로 들은 소리가 아니라 눈으로 본 것을 그림으로 변환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한글이나 라틴어, 히라가나와 같은 표음문자가 청각정보의 기록수단인데 반해
한자는 시각정보의 기록수단인 것이다.
눈으로 본 것을 무엇을 보았는지 그림으로 그려서 남기자는 것이
한자라는 상형문자의 본질이고 그것이 바로 표의문자이다.
사람의 말은 개가 짖는 소리나 자연의 소리들과 달라서 미리 약속된 규칙을 갖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 미리 정해진 약속이 없으면 사람의 말은 소리가 된다.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닌 것이다. 이것이 청각정보의 특성인데 시각정보는 사전의 약속이 아니라 사후의 약속이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약속을 하지 않아도 누구의 눈에도 닭은 닭이고 소는 소로 보인다.
때문에 시각정보는 사전의 약속이 필요 없다. 닭을 닭과 비슷하게 그려놓으면
이렇게 그린 그림을 닭이라 한다는 사전약속이 없더라도 누구의 눈에도 닭을 그린 그림은 닭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사람의 눈을 그려놓으면 누가 봐도 눈이라고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상당히 정교하고 복잡하게 그려져야 알아볼 수 있었지만
이런 그림들이 점차로 도안화되는 과정을 그쳐 그림에서 형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표음문자는 소리정보의 기록이고 표의문자는 시각정보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너무나 다른 차원의 정보이다.
만약에 사전에 약속된 소리정보를 가지고 닭이라는 짐승을 소리로 설명한다고 하자.
이것은 닭을 말로 설명하는 것과 같다. 표현력이 뛰어나고 어휘가 충분하다면
닭에 대한 설명을 들은 사람은 그것이 닭이라는 짐승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닭을 그려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소리정보가 불완전하면 닭이 아니라 오리를 그려서 보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단어와 어휘를 사용해서 설명한 닭이라는 대상은 그림으로 그리면 하나의 그림이 된다.
도안이 있다면 아주 빠르게 그릴 수도 있다.
이것은 하나의 그림에는 아주 많은 의미가 포함됨을 말한다.
닭의 그림 속에는 닭이라는 짐승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특징이 들어있다.
한자라는 문자를 사용하는 것은 많은 의미와 개념이 복합되어 있는 사물을 하나의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과 같다.
때문에 말로 하면 장황하게 길어질 내용을 함축하고 압축하는 사고의 발달을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된다.
동양의 뛰어난 정신문화는 한자라는 문자를 사용함으로서 야기된 추상적 사고능력의 배양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근본적으로 시각정보의 기록인 한자는 청각정보인 말과 같을 수가 없기 때문에
표의문자를 쓴다는 것은 말이라는 청각정보와 글이라는 시각정보의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하여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표음문자만을 사용하는 사람들과는 요구되는 사고능력이 대단히 다른 것이다.
표음문자는 소리와 대응되는 기호의 나열이기 때문에
기호대로 소리를 내면 바로 말이 되고 바로 정보가 재생되지만 표의문자는 그렇지가 않다.
시각정보인 그림을 보고 전혀 다른 정보체계인 소리정보의 형태로 다시 한 번 변환을 해주어야 한다.
이것은 서로 다른 정보체계로의 번역과정과 같다.
그래서 그림을 소리로, 다시 소리를 그림으로 바꾸는 대단히 정교하고 복잡한 사고활동을 요구한다.
나라말쌈이 둥귁과 다른 것이 아니라 나라말쌈이 한자라는 문자와 다른 것이며,
이것은 중국도 조선과 똑 같은 처지였다.
말쌈이 글자하고 다르기는 중국이나 조선이나 일본이나 매한가지였다는 것이다.
이것을 간과하면 중국사람들은 자기들 말과 글이 다 자기 것이라서
말과 글이 똑같고 아무나 쉽게 배워 누구나 쓰는 반면에
우리나라만 말쌈이 둥귁에 달라 불편했던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한자가 다소 불편하고 익히기 힘든 글자인 이유는
한자가 우리 글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표의문자이기 때문이고
본래 그림으로 시작된 상형문자이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중국사람들도 말과 글이 다른데서 오는 괴로움과 고통은 우리하고 똑 같아서
말을 소리나는 대로 적는 방법을 찾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오늘날까지도 중국은 이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고,
일본인들은 극히 불편하고 불완전한 방법밖에 안 가지고 있지만
우리 한국사람들은 퍼펙트한, 그야말로 완벽한 해결책을 갖고 있다.
그것이 훈민정음이고 한글이다.
한자와 한글은 본질에서 전혀 다른 두 개의 문자이기 때문에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서로 상보적이다.
표음문자인 한글과 표의문자인 한자의 양자를 다 능수능란하게 구사한다면 문자생활에서는 최고의 경지가 된다.
한국사람은 그런 점에서 축복받은 사람들이며,
사고능력과 사유의 차원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흉내낼 수 없는 세계에 노니는 으뜸가는 지성인들인 것이다.
한국인의 우수한 두뇌는 바로 한자와 한글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두 가지 문자의 혼용과 병용에서 나온다고 나는 믿는다.
중국은 한글과 같은 뛰어난 표음문자를 가지고 보완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양자택일을 해야하는 불행에 직면해 있다.
즉 말과 글이 서로 다른 체계를 유지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거나
아니면 표의문자를 폐기하고 한자를 소리를 적는 기호처럼 사용하거나이다.
근래 중국은 컴퓨터시대를 맞이하여 어쩔 수 없이 후자를 선택하고 있다.
30년 전 대만이나 홍콩영화에 한자 자막이 나오는 경우 우리는 자막을 보고 대충 뜻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중국영화의 한자 자막을 보면 우리는 단 한줄도 못 읽는다.
간자가 표현하는 것이 본래의 의미가 아니라 소리이기 때문이다.
자막의 한자들은 우리가 아는 것도 있고, 처음 보는 생소한 기호같은 것도 있는데
어느 쪽이던 우리가 알고 있는 한자의 뜻하고는 관계없이 그 자리에 쓰이고 있다.
단지 소리를 나타내는 기호로써. 이것이야말로 현대중국의 가장 근본적인 불행이며,
미래 중국 문명의 한계를 보여주는 척도이며
상대적으로 한글을 갖고 있는 우리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 주는 단초가 아닌가 한다.
한글로서 한자를 대체하자고, 또 대체할 수 있다고 우기는 사람들은
세종대왕이 왜 고마운지 한글이 왜 소중한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3. 한글은 중국과 일본의 유일한 선택
한글전용론자들이 주장하는 또 한 가지 전용론의 근거는
한자의 발명국인 중국이 한자를 포기하고 있다는 것과
일본 역시 원형으로서의 한자는 폐기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그렇다면 왜 그런가를 살펴보자.
중국은 현대화 과정에서 디지털화가 불가능한 한자라는 문자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받아야 했다.
한자를 키보드로 입력하는 작업은 마치 옛날 인쇄소에서 사식 작업을 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었고
이것은 고도로 숙련된 기능에 속하는 일이었다.
더구나 한자는 배우고 익히는 것 자체가 일정 수준 이상의 지적능력과
학습취미를 요구하는 것이어서 중국의 문맹률은 해결이 난망한 과제였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수천 년의 문화유산과 지적자산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문자생활의 대중화와 디지털화를 달성하는데 문자정책의 최우선을 두게 된다.
그래서 간자를 만들어 글자의 모양을 단순화시키고 간자를 이용하여
한자로서 소리를 표기하는 방법을 찾게 된 것이다.
물론 키보드 입력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절박한 해결과제였다.
일본도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컴퓨터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졸렬한 문자생활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다.
한글은 워낙 우수한 표음문자이고 세계 공용의 발음기호로 선택하자는 제안들이 나올 만큼
소리를 옮기는 기능이 탁월하다. 사실 그동안 사라진 몇 가지 자모음을 복원하거나 새로운 음소를 추가로 개발하여
보완하기만 하면 한글로 표기할 수 없는 음성은 거의 없는 상태까지 표음기능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를 갖고 있다.
(영어로 개 짖는 소리나 오리 우는 소리를 어떻게 표기하는지 보라,
그리고 우리 한글의 그 다양한 의성어들을 생각해 보라).
사람이 입으로 내는 소리를 그대로 옮기는 기능과 표음의 영역이 워낙 넓기 때문에
한글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자를 병기하지 않아도 의사소통에 별 혼란이 없다.
물론 한자의 병기가 반드시 필요한 문장과 표현이 있기 때문에
한자 없는 한글만의 표현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나 일상의 대화 정도라면
한자 없이도 얼마든지 소통이 가능하다. 오늘날 신문이 100% 한글로만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은 바로 한글의 완벽한 표음기능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반면에 일본의 히라가나는 표음기능이 워낙 제한되고
묘사할 수 있는 소리의 가짓수가 작아서 한자를 병기하지 않으면 올바른 의사소통이 힘들게 된다.
한자의 의미를 이용하여 만든 단어를 소리 나는 대로 히라가나만으로 옮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은 컴퓨터와 문자를 접목시키는 데 있어서 중국과 다름없는 고민에 빠지게 되고
그 해결책은 역시 한자의 단순화와 간략화였다.
그래서 일본은 중국과 다른 독자적인 간자의 개발에 들어가게 된다.
간자의 개발과 사용이라는 것은 이전까지 써왔던 한자와의 결별을 의미한다.
즉 간자를 배운 새로운 세대들은 이전의 조상들이 썼던 한자를 해독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형 한자와 간자는 전혀 다른 문자이며 두 가지를 한꺼번에 배우지 않는다.
다 배워야 된다면 간자를 만들 이유가 없을 것이다.
수천 년의 문화유산은 남의 나라 사람들이 만든 것으로 변하고 만다.
특별하게 타국의 문자를 배우고 익힌 소수의 사람들이
자기나라 글로 번역해주지 않으면 읽을 수 없는 문서들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문화와 역사의 단절이며 엄청난 손실로서 일종의 재앙에 가까운 사태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일본이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른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이 오리지널 한자를 포기하는 것은 그야말로 울며 겨자먹기요, 독배를 마시는 일로 궁여지책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에 명태조나 청태종이 문자생활의 불편함을 알아서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면
아마도 중국은 전 세계의 영구적 지배자가 될 것이 틀림없고 지난 역사는 전부 달라졌을 것이다.
누구도 중국에 맞서지 못한다고 나는 장담할 수 있다.
한글이 없다는 사실은 중국과 일본에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우리는 훈민정음이 있어서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구태여 간자를 만들 필요도 없고, 한자를 기피할 이유도 없으며
컴퓨터시대에 전 세계에서 가장 편리하고 쉬운 문자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문자전송 시합을 하면 한글로 전송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조건 1등을 하게 마련이다.
입력과 음소조합의 편리함에서 한글을 따라올 문자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문자 입력은 가히 신기에 가깝다.
두 손도 필요 없이 엄지손가락 하나로 그야말로 번개처럼 글을 찍어 보낸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한자라는 가장 고도의 지적사유가 요구되는 의미글자를 수천 년 경험에 의한 발전을
그대로 계승하여 아무런 훼손이나 변형 없이 우리 것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며 감사한 일인가 말이다.
만약에 중국이 이런 표음문자를 개발해서 한자와 병용할 수 있다면
중국이 간자를 만들고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소리는 씨도 안 먹힐 것이고
만약에 한글전용론을 주장하는 자가 있으면 역적으로 치죄될 것이다.
중국과 일본이 원형한자를 포기하고 간자를 만드는 것은 우리와 달리
한글이라는 탁월하고 우수한 표음기호가 없기 때문이다. 저들은 눈물을 머금고 독배를 마시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복받은 민족인지도 모르고 한자를 버리자고 우기는 바보들이 있다.
가만히 놔두면 동양의 모든 정신유산은 전부 우리 민족의 것이 된다.
한자를 버린 중국과 일본은 문화와 역사의 상속권을 포기한 놈들이다.
그 방대하고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오직 이 세상에 한민족뿐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만이 한자를 고유한 그대로 계승하고 앞으로도 발전시키고 더욱 가꾸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다 한글의 덕분이다. 한글 없이는 꿈도 꿀 수 없다.
사정도 모르는 자들이 중국과 일본이 버리고 있는 한자를 왜 우리가 배우고 가르쳐야 하느냐고 오두방정을 떤다.
중국과 일본이 궁한 대로 편법과 임기응변으로 디지털시대에 맞추어서 문자생활을 왜곡하여
구겨 넣고 있는 중이지만 저것이 결코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간자는 어디까지나 임시변통이며 불완전한 땜질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중국과 일본에 희망은 없는 것일까?
있다. 오직 한 가지 유일한 길이 있음이다.
그것이 바로 중국과 일본이 간자와 히라가나를 버리고 한글을 선택하는 것이다.
일본은 히라가나 대신 한글을 표음기호로 쓴다 해서 전혀 문제될 것이 없고 그 순간 모든 문자생활의
고민과 불편함은 한방에 끝이 난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한글을 약간 보완하면 중국말을 소리 나는 대로 옮기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사성조차도 한글을 이용하여 표기할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이 첨단의 과학기술과 산업력을 총동원해도 한글보다 더 우수한 문자를 발명해낼 수는 없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는 사실 불가능한 기적이 실현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미 한글이 있기 때문에 새로 고생할 이유도 없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중국과 일본이
한글을 한자와 병용하는 문자로 선택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한국의 경제력이 커지고 위상이 높아지고
동북아 3국이 점차로 하나의 문화권 경제권으로 통합되어 가면
언젠가는 한글이 그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해결책으로 부각될 것이다.
한중일 3국이 한자와 한글로 문자가 통일되면 이것은 세계사의 분수령이 된다.
진실로 아시아의 시대가 열릴 것이며 서구문명은 동양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 날이 오리라고 확신한다. 우리가 한글과 함께 한자를 보존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것이야말로 한민족이 다시 한 번 세계의 주인이 되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미래세의 개벽을 한민족이 주도하게 되고, 주도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한자와 한글이라는 위대한 정신유산의 주인이 우리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 다른 이유가 있으면 말해 보라. 오직 그것밖에 없다.
한자와 한글은 한민족의 생명이며, 혼이며, 세계정신이다.
둘 중 하나를 버리면 우리민족은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