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훈민정음》 훈민정음 언해본 해례본의 가치를 더 빛내다 / 김슬옹교수 <충청리뷰> 2024.12.11
유위자2026. 5. 20.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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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4_22 훈민정음 탐구_김슬옹]* 44. 《훈민정음》 훈민정음 언해본 해례본의 가치를 더 빛내다 / 김슬옹교수 <충청리뷰> 2024.12.11
44.《훈민정음》 훈민정음 언해본 해례본의 가치를 더 빛내다
훈민정음이 진정으로 백성들의 삶으로 퍼져 나가다 /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김슬옹의 훈민정음 해설] 입력 2024.12.11
《훈민정음》 언해본(이하‘언해본’)은《훈민정음》 해례본(1446이하‘해례본’) 가운데
세종대왕이 직접 저술한 정음편인 서문과 예의 부분의 한문본을 한글로 음을 달고
특정 글자와 낱말 주석을 한 뒤 언해(번역)하고
한자음 윗잇소리(치두음)와 아랫잇소리(정치음)의 정음 표기법을 덧보태어 간행한 것이다.
언해본은 해례본에 뿌리를 둔 해례본의 종속 문헌이면서도
내용과 유통 방식에서 독자성을 갖는 문헌이기도 하다.
현재 전하는 언해본이 해례본에 뿌리를 둔 것은 너무도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종속문헌이라고 할 수 없다.
이른바 해례본에 없는‘한음 치성’부분이 보태졌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훈민정음 정음편 언해본’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기존 관례대로 ‘훈민정음 언해본’이라 부르기로 한다.
지금 전하는 언해본은 훈민정음으로 편찬한 불경 앞에 실었기에
훈민정음 불경을 보급하기 위한 보조 문헌이면서도 세종의 훈민정음 반포 의도를 최대한 살린 문헌이기도 하다.
훈민정음 언해본 위치도.
언해본의 정확한 현대어식 제목은‘세종어제훈민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
원 표기법으로는 ‘世솅宗조ᇰ御ᅌᅥᆼ製젱訓훈民민正정音’(방점 생략)이다.
이 언해본은 세종대왕 때에 나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언제 누가 번역했는지는 알 수 없다.
세종대왕 운명 후, 세조는 세종대왕이 지은, 한자보다
한글 표기를 앞세운《 월인천강지곡》을 한자 표기를 앞세운 체제로 바꾸고 그의 《석보상절》을 합본한 뒤
권1·2 앞에 이 언해본을 붙여 세조 5년(1459년)에 《월인석보》라는 제목으로 간행하였다.
《훈민정음》(1446) 해례본은 한문본이라 한자(한문)를 모르는 백성들은 읽을 수 없었고
또한 일찍 희귀본이 되었으므로 언해본을 통해 훈민정음 보급과 확산이 이루어졌을 것임은 명확해 보인다.
언해본은 해례본의 한자가 그대로 병기되었으므로
한문 문해력이 뛰어난 양반들조차도 해례본보다는 언해본을 통해 훈민정음을 익혔을 확률이 높다.
언해본 짜임새의 특징과 의미 그리고 명칭 문제
언해본은 다음과 같이 세겹 짜임새(삼중 구조)로 되어 있으므로
이에 대한 적절한 명칭이 연구나 교육 차원에서 매우 필요하다.
음토부는 해례본 한자에 음과 토(입겿, 구결)를 단 것이고,
주석부는 글자 또는 단어에 대해 뜻풀이를 한 것이며, 언해부는 언문(훈민정음)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러한 삼중 구조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는 언해가 매우 차분하고 치밀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원문 한자에 음을 달고 개별 한자나 단어에 주석을 달고 그리고 언해를 했다. 주석은 쌍행으로
최종 언해는 한 칸 아래 배치해 삼중 구조의 짜임새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편집의 묘미도 살렸다.
언해본이 중요한 것은 새 문자 훈민정음이 한자나 한문이란 권위적인 문자의 기능을 충분히 대체함과 동시에
자세히 풀어낼 수 있는 메타언어적 기능을 갖고 있음을 입증해 보인 것이다.
이는 해례본에서 “훈민정음으로 한문을 풀이하면 그 뜻을 알 수 있다.
(以是解書, 可以知其義. 정음해례28ㄱ:3-4_정인지서])”라는 것과
“글을 쓰는 데 글자가 갖추어지지 않은 바가 없으며, 어디서든 뜻을 두루 통하지 못하는 바가 없다.
(無所用而不備, 無所往而不達. [정음해례28ㄱ:6-7_정인지서])”라는 내용을 입증해 보인 사례이기도 하다.
이런 취지에 대해 최현배(1942)에서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이제 그 서술의 체재를 보면, 전편을 통하여,
먼저 한문에 한글 토를 단 국한문체로써 설명하고, 다시 그것을 일일이 순 배달말체로 새기었다.
그리하여, “訓民正音”은 두 겹으로 되어 있는 셈이다.
그리고 모든 한자는 낱낱이 배달말로 그 뜻을 새기어 놓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글로써 저 빌어온 글자, 한자를 완전히 대신하게 하시려는
세종 대왕의 먼 혜아림의 계셨음을 살필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따는 그렇다.
한글의 첫시험으로 지은 “龍飛御天歌”에서는, 한글의 노래를 먼저하고 다음에 한자 뒤친 노래를 붙였으며,
세종의 몸소 지은 “月印千江之曲”에도 이와 같이 한글을 먼저 쓰고 그 다음에 한자를 달았으니,
이는 실로 특히 깊이 마음에 새겨 둘만한 글자사실이다.
_ 최현배(1942/1970: 고친판: 349-350)
언해본의 이러한 삼중 언해 구조가 이후 각종 언해본의 표준이 됨으로써
훈민정음과 훈민정음으로 쓰여진 각종 지식 확산의 모범 틀이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글자 수와 세종 서문 108자 의미
언해본은 모두 15엽 30쪽으로 이루어졌다.
각 쪽별 글자 수는 앞뒤 제목을 포함하여 한자는 638자 한글은 2402자이고 모두 3040자이다.
언해본 쪽별 글자 수
이 가운데 세종 어제 서문만의 글자 수가 108자이다.
언해본보다 먼저 나온 해례본의 정음편 한자의 단순 출현 글자 수도 108자이다.
108이 불교를 상징해주는 대중적인 숫자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본지 연재 17회 “《훈민정음》 해례본에 담긴 불교 관련 숫자” 참조)
15세기에도 불교 신도가 아니더라도 108은 불교의 108번뇌로 각인 되었을 것이고 지식 중심의 이해와 표현에서
일반 백성들의 문자 번뇌나 한자로 인해 교화 정책을 맘껏 펼칠 수 없는 세종의 번뇌는 같았을 것이다.
108은 이런 번뇌에서 헤어 나오게 하려는 염원을 담은
숨겨진 상징 기호이지는 않았을까 역시 조심스러운 추론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