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 도 지(符 都 誌)
제 1 편 : 마고(麻故)의 시대(第一章 ∼ 第四章)
제 2 편 : 부도(不渡)의 시대(第五章 ∼ 第十章)
제 3 편 : 배달국 시대(第十一章)
제 4 편 : 임검(壬儉)씨 시대 (조선시대)(第十二章 ∼ 第十六章)
제 5 편 : 오행(五行)의 화(禍)(第十七章 ∼ 第二十四章)
제 6 편 : 잃어버린 부도의 법(第二十五章 ∼ 第二十六章)
제 7 편 : 삼한에서 삼국으로(第二十七章, 小符都誌)
제 8 편 : 어둠 속으로(第二十八章 ∼ 第三十三章)부도지(符都誌) 제8편 : 어둠 속으로(第二十八章 ∼ 第三十三章)
- 김은수 역, 양해전 편역 -
□ 第二十八章 선도산의 동신성모
이보다 먼저,
육부(六部)의 촌장(村長)들이 약(藥)을 캐는 날에 모여서,
선도산 단묘(仙桃山壇廟)1)의 성모(聖母)2)가 알을 낳다는 말을 듣고,
여러 사람이 가서 보았다.
동쪽의 우물을 보로 덮어 가리고, 껍질을 벗겨서, 남아를 얻었다.
몸에서는 빛이 나고, 귀가 부채만큼 컸다.
곧 박(朴)으로써 성을 삼고, 이름을 혁거세(赫居世)라 하였다.
박은 단의 어음이 박달이기 때문에, 그것을 취하여 성을 삼았으며,
혁(赫)은 빛이니, 즉 광명으로써 암흑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구원한다는 뜻이다.
육촌의 사람들이 함께 양육하니,
점차 자라면서, 신령스런 기운(神氣)이 빼어나게 밝고(秀明), 대인(大人)의 도가 있었다.
13살에 여러 사람이 추거(推擧)하여, 거서간(居西干)이 되니,
거(居)는 거(据)요,
간(干)은 방(防)이요, 장(長)이다.
즉
서방에 의거하여, 경계하는 방어장(防禦長)의 뜻이다.
서방은 즉 저들 서침(西侵)하여 사도(詐道)를 행하는 자들이다.
先時 六部村長 會於採藥之日 聞仙逃山壇廟之
선시 육부촌장 회어채약지일 문선도산단묘지
聖母生卵 諸人往見 設冪於東井剝剖而得男兒 身生光彩耳大如扇
성모생란 제인왕견 설멱어동정박부이득남아 신생광채이대여선
乃以朴爲姓名曰赫居世
내이박위성명왈혁거세
朴者 壇之語音曰朴達故取之爲姓
박자 단지어음왈박달고취지위성
赫者 光也
혁자 광야
卽以光明匡居暗黑世之意也
즉이광명광거암흑세지의야
六村之人 共扶養育 漸長 神氣秀明 有大人之度
육촌지인 공부양육 점장 신기수명 유대인지도
十三世諸人推擧 爲居西干
십삼세제인추거 위거서간
居者据也
거자거야
干者防也長也
간자방야장야
卽詰拒西方而防禦之長之意
즉힐거서방이방어지장지의
西方者 卽彼西侵而行詐道者也.
서방자 즉피서침이행사도자야.
주석 해설)
1) 선도산(仙桃山) : 중국에는 선도산(仙都山)이 있다.
2) 성모(聖母) : 동신성모(東神聖母),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 동신성모(東神聖母)
- 삼국사기에 나오는 동신성모(東神聖母) → 신라본기 권12 경순왕편 마지막 부분
사론(史論)
(중략)
정화(政和) 연간(1111년 ~ 1117년)에 우리 조정에서 상서(尙書) 이자량(李資諒)을 송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는데, 신
(臣) 부식(富軾)이 문한(文翰)의 임무를 띠고 보좌하여 따라갔다가 우신관(佑神館)에 나아가 한 집에 선녀상을 모
셔둔 것을 본 적이 있다. 관반학사(伴學士) 왕보(王)가 말하기를“이는 그대들 나라의 신(神)인데 공들은 그것을
아는가?” 하고는 마침내 일러주었다.“옛날에 황실의 딸이 남편 없이 임신하게 되었으므로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
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다 건너 진한(辰韓)에 이르러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해동(海東)의 첫 임금이 되었고 황
제의 딸은 지선(地仙)이 되어 오래도록 선도산(仙桃山) 있었으니 이것이 그의 상(像)입니다.” 나는 또 송나라 사
신 왕양(王襄)의 동신성모(東神聖母) 제문(祭文)을 보았는데, 『어진 이를 낳아 나라를 처음 열었다.』 는 구절이
있었으므로 동신(東神)은 곧 선도산의 신성(神聖)임을 알았다. 그러나 그 아들이 어느 때 왕노릇을 했는지는 알지
못하겠다.
(2) 한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 본기 내용중 일부 사로의 시왕은 선도산의 성모의 아들이다.
☞ 사로는 신라를 의미한다
☞ 시왕은 박혁거세를 의미
옛날 부여제실의 딸 파소가 있었는데 남편없이 아이를 배었으므로 사람들의 의심을 받아 눈수로부터 도망쳐 동옥저
에 이르렀다. 또 배를 타고 남하하여 진한의 나을촌에 와 닿았다. 때에 소벌도리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듣
고 가서 집에 데려다 거두어 길렀다. 나이 13세에 이르자 지혜는 빼어나고 숙성하고 성덕이 있는지라, 진한 6부의
사람들이 존경하여 거세간이 되니 도읍을 서라벌에 세우고 나라를 진한으로 하고, 또한 사로라고도 하였다
* 두가지를 종합해 보면 선도산 동신성모는 중국 절강성 선거현 선도산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1] 선도산 단묘 : 단壇은 천단天壇, 신단神壇 등의 단이며, 국가를 의미할 때도 있어서 ‘독단獨壇을 세웠다’는
말은 나라를 세웠다는 뜻으로 쓰인다. 단묘는 사당祠堂이다. 「선도산, 부의 서쪽 7리에 있다.」(《공경잡기東京雜
記》, <산천> 참조)
[2] 귀가 부채만큼 컸다 : 천부의 본음을 듣기 위해서는 귀가 커야 한다. 불상의 큰 귀나 귀를 꾸미는 장식도 이러
한 해석이 가능하다.
[3] 박 : 박은 박달 즉, 단壇의 뜻. 혁赫은 빛이므로 박혁거세라는 말에는 홍익인간, 광명이세光明理世의 뜻이 들
어 있다.
[4] 거서간 : 서방에 의거하여 경계하는 방어장. 왕을 칭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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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 제28장 13.08.22
第二十八章
先時 六部村長 會於採藥之日 聞仙逃山壇廟之
聖母生卵 諸人往見 設冪(幕)於東井剝剖而得男兒 身生光彩耳大如扇 乃以朴爲姓名曰赫居世 朴者
壇之語音曰朴達故取之爲姓 赫者 光也 卽以光明匡居暗黑世之意也 六村之人 共扶養育 漸長 神氣秀明
有大人之度 十三世諸人推擧 爲居西干 居者据也 干者防也長也 卽詰拒西方而防禦之長之意
西方者 卽彼西侵而行詐道者也.
이 이전에, 육부의 촌장들이 약을 캐는 날에 모여,
선도산 단묘의 성모가 알을 낳았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여러 사람들이 가서 보았다.
동쪽 우물에 장막을 치고 껍질을 벗겨 남자 아기를 얻었다.
몸에서는 광채가 빛나고 귀는 부채와 같이 컸다. 이에 박으로 그 성을 삼고 이름은 혁거세라 하였다.
박이란 단의 말과 음으로 박달을 말함인데, 고로 이를 취하여 그 성을 삼은 것이다.
혁이란 빛이니, 곧 광명으로 암흑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널리 구제한다는 뜻이다.
육촌의 사람들이 공히 tjk로 도와 양육하니,
자라면서 점차 신기가 밝고 빼어났으며 대인의 도량이 있었다.
십삼세에 여러 사람이 추대하고 천거하여 거서간이 되었다. 거란 경영한다는 것이요,
간이란 방어함이요 또 수장이란 뜻이다.
곧, 서방의 잘못을 꾸짖고 또 거부하며, 침략을 방어하는 대장이란 뜻이다.
서방이란 곧 저 서쪽의 침입자들과 사도, 즉 그릇된 도를 행하는 자들을 말한다.
박혁거세 이야기 myh1117 13.08.22
지난 27장 부터, 그 동안 국사 시간에 이런저런 들었던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또 박혁거세와 육부촌장, 화백 등과 같은 친숙한 이야기들이 다른 시각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부도지를 따르면 동해로 내려 온 연유가 소개되어 있으니, 신라는 경주를 중심으로 하는 것임을 알게 합니다.
결국 역사적 사실 자체를 부도지가 완전히 뒤엎어서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더욱이 나중에 나올 박제상의 부인과 여식들이 만들어 낸
망부석과 치술령의 이야기는 이들을 다룬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그것보다 더욱 생생한 장면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러다보니 철학적으로 제가 뭐라 군더더기를 더 붙일 대목이 없네요...
좀 더 번역을 진행해 가다 보면, 저의 개인적인 의견을 밝혀 볼 대목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만... 짧게 간단하게... 말을 줄이고자 합니다.
□ 第二十九章 백의제(白衣祭)
혁거세씨는, 천성(天性)은 신과 같고, 지혜는 성인과도 같았다.
또 어진 왕비(賢妃) 알영(閼英)을 맞이하니,
그 때 사람들이 그들을 가르켜 두 성인(二聖)이라 하였다.
능히 여러 부족을 통솔하여,
선세(先世)의 도를 행하며,
제시(祭市)의 법을 부흥하고,
남태백산(南太白山)1)에 천부소도(天符小都)를 건설하였다.
중대(中臺)에 천부단을 축조하고,
동서남북의 사 대에 보단(堡壇)을 설치2)하여,
계불(禊祓)3)의 의식(儀式)을 행하고,
대인(大人)으로 하여금, 금척(金尺)의 이치에 따라,
천지시원(天地始原)의 근본을 증리(證理)하며,
옥관(玉管)의 음을 내어 율여화생법(律呂化生法)을 수증(修證)하였다.
해마다 10월에 백의제(白衣祭)를 행하였으니,
이는 황궁(黃穹)씨의 속신백모지의(束身白茅之義)4)를 따르는 것이었다.
달구(達丘)5)에 조시(朝市)를 배풀고,
율포(栗浦)6)에 해시(海市)를 열어, 육해 교역의 제도를 수립하였다.
항상 순행(巡行)하여, 농상(農桑)과 방적(紡績)을 권장하니,
들에는 노적(露積)이 쌓이고, 집에는 베(布)가 저장되어 있었다.
이와 같이 착한 일을 크게 일으켜,
여러 사람과 함께 그 고락(苦樂)을 같이 하고,
밖으로 방패와 창을 쓰지 아니하며, 이웃과 더불어 평화를 보존하였다.
한 마음으로 복고(復古)하고, 중건(重建)하는 일에 전념하니,
경내가 도가 있어, 옛날과 흡사하였다.
이 때에 변진(弁辰) 제족이 합동하여 협력하니,
비록 경계를 두고 방비하나, 나라를 칭하지 아니하고, 또 왕을 칭하지 아니하였다.7)
경내를 다스리는 일은 선세(先世)의 법을 준수하여,
제회(祭會)에서 의결되지 아니하면,
일찍이 한가지의 일도 행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우두머리를 이어받는 법(領首繼位法) 역시 혈계(血系)를 한정할 필요가 없었으며,
현명한 사람을 택하여 우두머리(領首)를 삼았다.8)
赫居世氏性神智聖 又迎賢妃閼英 時人謂之二聖
혁거세씨성신지성 우영현비알영 시인위지이성
能率諸部之族 行先世之道復興祭市之法 建天符小都於南太白
능솔제부지족 행선세지도부흥제시지법 건천부소도어남태백
築天符壇於中臺 設堡壇於東西南北之四臺 行禊祓之儀
축천부단어중대 설보단어동서남북지사대 행계불지의
使大人準金尺之理 證天地始原之本 調玉管之音 修律呂化生之法
사대인준금척지리 증천지시원지본 조옥관지음 수율여화생지법
每歲十月行白衣祭 此因黃穹氏束身白茅之義也
매세십월행백의제 차인황궁씨속신백모지의야
設朝市於達丘 開海市於栗浦 立陸海交易之制
설조시어달구 개해시어율포 립육해교역지제
常時巡行勸獎農桑紡績 野有露積 家有貯布
상시순행권장농상방적 야유노적 가유저포
如是內大興善事 與諸人 同其苦樂 外不行干戈 與諸隣 保其平和
여시내대흥선사 여제인 동기고락 외불행간과 여제린 보기평화
一意復古而專務重建 境內有道恰如昔世
일의복고이전무중건 경내유도흡여석세
於是 弁辰諸族合同協力 雖限境設防 不稱國又不稱王
어시 변진제족합동협력 수한경설방 불칭국우불칭왕
境內治事一遵先世之法 非祭會之通議 未嘗行一事
경내치사일준선세지법 비제회지통의 미상행일사
故 領首繼位之法 亦不必限於血系 擇賢者而立之
고 영수계위지법 역불필한어혈계 택현자이입지
주석 해설)
1) 남태백산 : 신시의 중경이 간직된 회계산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한웅시대의 신시와 단군조선의 아사달의 유습
을 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강원도 삼척에 태백산이 있다.
2) 4대의 보단 : 마고대성의 피라미드형 축성 유습이다.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참고
3) 계불(禊祓) : 수계제불(修禊除祓)의 줄임말. 삼세에 힘써 행한 수계제불은 천사(天祀 하늘에 올리는 제사), 지
제(地祭 땅에 올리는 제사), 인향(人享 조상에 올리는 제사)에 선행되는 계제(禊祭)인 바 이는 요사(妖邪 요망스럽
고 간사함)함을 제거하고, 제불(除祓 부정을 제거하여 깨끗하게 함)하여 삼신(三神)께 나아가는 길을 실현할 서약
을 이행한 것이다. 부연하면 천사(天祀), 지제(地祭), 인향(人享)에 선행(先行)되는 결례(潔禮)로 각 종교에서 목
욕재계(沐浴齋戒), 계욕(禊浴), 세례(洗禮) 등의 의식으로 남게 되었다. 이로 유추하여 살피면 모든 종교의 정결의
식(淨潔儀式)은 이 수계제불(修禊除祓) 즉 계불(禊祓)에서 유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역사교육원 정윤훈 원장
해설)
4) 백모지의(白茅之義) : 부도지 8장의 내용
“황궁(黃穹)씨가 모든 사람들 가운데 어른이었으므로, 곧 백모(白茅)를 묶어 마고(麻姑)의 앞에 사죄하여, 오미
(五味)의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고 복본할 것을 서약하였다.“
→ 황궁씨는 권속을 이끌고 춥고 위험한 땅 천산산맥으로 출성하였다.
* 백모(白茅)는 띠풀을 말한다. 머리에 묶으면 상처가 난다.
5) 달구 : 대구라 하나 재검토 되어야 한다.
6) 율포 : 월성군 양남면 하서리 라고 하나 재검토 되어야 한다.
7) 삼국사기에 나오는 307년 “복국호신라(復國號新羅)”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8) 세습이 아니라 무리중 현명한 사람을 추대하였다. 천손민족의 대표자. 모두가 평등한 가운데 하늘을 대표할 대
표자를 뽑은 것이다.
* 참고지도
- 신시의 중경을 간직한 회계산 (남 태백산?)
- 한단고기 고구려국 본기에 “회계산(會稽山)은 본래 신시의 중경이 간직된 곳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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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 제29장 13.08.25
第二十九章
赫居世氏性神智聖 又迎賢妃閼英 時人謂之二聖 能率諸部之族 行先世之道復興祭市之法
建天符小都於南太白 築天符壇於中臺 設堡壇於東西南北之四臺 行禊祓之儀 使大人準金尺之理
證天地始原之本 調玉管之音 修律呂化生之法 每歲十月行白衣祭 此因黃穹氏束身白茅之義也
設朝市於達丘 開海市於栗浦 立陸海交易之制 常時巡行勸獎農桑紡績 野有露積 家有貯布
如是內大興善事 與諸人 同其苦樂 外不行干戈 與諸隣 保其平和 一意復古而專務重建 境內有道恰如昔世
於是 弁辰諸族合同協力 雖限境設防 不稱國又不稱王 境內治事一遵先世之法 非祭會之通議
未嘗行一事 故 領首繼位之法 亦不必限於血系 擇賢者而立之.
혁거세씨의 성품은 신과 같고 지혜는 성인과 같았다.
또 현명한 왕비 알영을 맞이하니, 당시 사람들이 일컫기를 이성이라 하였다.
능히 여러부족을 통솔하고 선세의 도를 행하며, 제시의 법을 부흥시켰다.
천부 소도를 남태백, 즉 태백산 남쪽에 건설하고, 천부단을 중대에 축조하였다.
동서남북의 사대에 보단을 세우고 계볼의 의례를 시행하며,
대인으로 하여금 금척의 이치에 준하여 천지 시원의 근본을 증리토록 하였다.
또 옥관의 음을 조율하여, 율려 화생의 법을 닦게 하였다.
매년 시월에는 백의제, 즉 흰옷을 입고 제사지냄을 시행하였는데,
이는 황궁씨가 그 몸을 흰 띠로 결박하고 사조한 뜻을 따른 것이었다.
달구에 조시를 설치하고, 율포에 해시를 열어, 육지와 바다가 서로 교역하는 제도를 세웠다.
때마다 항상 순행하여, 농상과 방적, 즉 먹거리와 입을거리를 권장하였다.
들에는 노적, 즉 볏집과 쌀이 쌓이고, 집에는 저포, 즉 베와 비단을 저장하였다.
이와 같이 안으로는 착한 일을 크게 일으키면서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그 고락을 함께 하였으며,
밖으로는 간벌, 즉 창과 방패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며
모든 이웃들과 더불어 그 평화를 보존하였던 것이다.
한 뜻으로 옛 일을 회복하고 다시금 이를 세우는데 전념하였으니,
그 다스리는 지역 안에 도가 있음이 마치 옛날과 같았던 것이다.
이에 변과 진의 모든 족속이 같이 화합하고 협력하게 되었다.
비록 경계를 정하고 방책을 설치하기는 하였으나,
나라라고 칭하지도 아니하였으며 왕을 칭하지도 않은 것이다.
그 경내를 다스리는 일은 선세의 법과 동일하게 따르니,
제회, 즉 제사의 모임에서 통과되거나 의결하지 아니한 것은 하나의 일도 시행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영수, 곧 수령의 자리를 계승하는 법 또한 혈계, 즉 혈통 승계에 한정할 필요가 없었고,
오직 현명한 사람을 택하여 영수를 세웠던 것이다.
이제 본격적인 신라시대로 접어드네요 myh1117 13.08.25
박혁거세 이후로 새롭게 신라는 출발합니다.
금척과 율여 천부와 제시, 조시와 해시 등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영수와 왕의 문제가 나오는데요,
나라를 칭하지도 않았다는 것 등은, 육부촌장의 화백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곧 부도의 뜻은 사해통화이니, 어는 일방의 국가주의가 아니었음을 설명하는 것이지요...
족속과 지파의 이야기가 어디에는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도지의 기본 뜻은 오직 잃어버린 과거, 고대의 함께 살던 낙원을 되새기자는 의미가 강합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아름답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구축해야 하겠지요...
어떻게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 감감하기만 합니다만, 사람이 꿈을 버리지 않는 한 이루어진다고 하지요...
자본주의의 잔인함에 몸서리를 쳐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또 다시 이런 좋은 세상을 꿈꾸기도 하겠지요...
이론적인 유토피아가 아닌 진정으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보는 그런 날을 희망합니다.
□ 第三十章 마랑(馬郞), 사해(四海) 통화(通和)
남아 나이 20살이 된,
아름답고 말을 잘하는 사람을 택하여 마랑(馬郞)1)이라는 직을 주고,
명령을 받들어 원행(遠行)하게 하였다.
혹 성생월식의 옛 땅에 나아가며,
혹 운해천산의 여러 지역에 가니,2)
이 원행은 부도 수신(修身)의 유제(遺制) 였다.
동해에 피하여 산 지 천여년사이에 제시의 회(祭市之會)를 열지 못하여,
서로 내왕이 오래 끊어지고,
또
봉국쟁탈(封國爭奪)의 풍조가 사해에 만연하여,
제족이 각자 나라를 칭하고, 오랜 세월에 전란이 반복하니,
겨레(族)가 종횡으로 나뉘고, 말이 잡다하게 변하였다.3)
천부(天符)는 거의 망각하기에 이르고,
혹 그것을 아는 사람이 있어도, 다 변형(變形)하여, 음이 다르니,
마랑들의 원행이 심히 어려워, 순절(殉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마랑들이 만리(萬里) 원행에서도 절조를 지켜, 능히 굳은 뜻을 가지고,
백난(百難)을 극복하여 사명을 완수하니, 그 거룩한 인격이 진실로 호매(豪邁)하였다.
장하게도 귀환하면,
반드시 직사(職事)에 임명하여,
천문(天文)과 지리(地理)와 역수(曆數)와 박물(博物)을 공부하게 하니,
이는 즉
선세(先世)에 사해(四海)를 통화(通和)하여,
인세(人世)를 하나의 법에 맞추는 유업(遺業)이었다.
男兒年二十質美而善辯者 擇授馬郞職 奉命遠行
남아년이십질미이선변자 택수마랑직 봉명원행
或出於星生月息之古地 或往於雲海天山之諸域 此行符都修信之遺制也
혹출어성생월식지고지 혹왕어운해천산지제역 차행부도수신지유제야
自避居東海 千有餘年之間 未得開祭市之會 彼此來往久爲杜絶
자피거동해 천유여년지간 미득개제시지회 피차내왕구위두절
又封國爭奪之風蔓延四海 諸族 各自稱國 悠久歲月 反覆戰亂 族分縱橫 語訛雜多
우봉국쟁탈지풍만연사해 제족 각자칭국 유구세월 반복전란 족분종횡 어와잡다
至於天符 殆乎忘却 或有知之者 皆變形音異 馬郞之行 甚爲艱難 殉節者多
지어천부 태호망각 혹유지지자 개변형음이 마랑지행 심위간난 순절자다
然 馬郞者 萬里持節 能勵勁志 克除百難 遂行使命 其風度眞豪邁也
연 마랑자 만리지절 능려경지 극제백난 수행사명 기풍도진호매야
壯而歸還則 必任職事 修天文地理曆數博物
장이귀환칙 필임직사 수천문지리역수박물
此則先世 通和四海 一準人世之遺業也.
차칙선세 통화사해 일준인세지유업야.
주석 해설)
1) 마랑 : 환부(鰥夫), 단군조선의 천지화랑, 신라의 화랑으로 전수된 것 같다. 결혼하지 않은 남자, 순행하며 마
고의 역사를 전수하는 ‘제비’다.
* 환부의 수행원이 권사(權士)이다.
* 마랑(馬郞)은 또한 중국 묘족들이 미혼의 남성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2) 성생 월식 운해 천산
- 생성주 : 별이 뜨는 곳. 파미르고원(티벳)의 남쪽. 인도 및 동남아 지역
- 월식주 : 달이 지는 곳. 파미르고원의 서쪽. 중근동 지역
- 운해주 : 파미르고원(티벳)의 동쪽. 중원 지역
- 천산주 : 파미르고원(티벳)의 북동쪽, 천산산맥 박격달봉 인근
3) 5호 16국 시대를 말하는 것 같다.
* 천지화랑(天指花郞)
한단고기 단군세기 13세 단군 흘달(屹達), 재위 61年(BC 1782 ~ BC 1772)
戊戌二十年 多設蘇塗 植天指花 使未婚子弟 讀書習射 號爲國子郞 國子郞出行 頭揷天指花 故時人 稱爲天指花郞
무술이십년 다설소도 식천지화 사미혼자제 독서습사 호위국자랑 국자랑출행 두삽천지화 고시인 칭위천지화랑
무술 20년(BC 1763)
소도(蘇塗)를 많이 설치하고 천지화(天指花)를 심었다. 거기에서 아직 결혼하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독서와 활쏘기
를 익히게 하였다. 이들을 국자랑(國子郞)이라 하였다. 국자랑(國子郞)은 길을 다닐 때 머리에 천지화(天指花)를
꽂고 다녀서 사람들은 이들을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고도 불렀다.
- 천지화 : 동북삼성에서는 진달래를 지금도 천지화라고 한다.
- 천지화랑 : 고조선의 천지화랑이 신라의 ‘화랑(花郞)’으로 전수되었다
* 환부 : 부도지 제11장
한(환)인(桓因)씨의 아들 환웅(桓雄)씨1)는 태어날 때부터 큰 뜻을 가지고 있었다. 천부 삼인을 계승하여, 계불의
식을 행하였다.(修禊除祓)
웅대한 하늘의 도(天熊)를 수립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그 유래한 바를 알게 하였다.
어느덧 사람들이(人世)가 의식(衣食)의 일(業)에만 편중하므로, 환웅씨는 무여율법(無餘律法)의 4조(四條)를 제정
하여, 환부(鰥夫)2)로 하여금 조절하게 하였다.
1조는,
사람의 행적(行蹟)은 항상 깨끗하게 하여 모르는 사이에 생귀(生鬼)가 되지 않게 하고 번거롭게 막혀 마귀(魔)가
되지 않도록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툭 트여 장애가 하나도 없게 하라
2조는,
사람이 살아오면서 모으고 쌓은(聚積) 것은, 죽은 뒤에 공을 제시하여 생귀의 더러움을 말하지 않게 하고, 함부로
허비하여 마귀가 되지 않도록 하여, 사람들이 두루 화합하여 유감이 하나도 없게 하라.
3조는,
고집이 세고 간사하고 의심이 많은(邪惑) 자는 광야(曠野)에 귀향을 보내 수시로 그 사혹(邪惑)함을 씻게 하여, 사
악한 기(邪氣)가 세상에 남지 않게 하라.
4조는,
죄를 크게 범한 자는 섬도(暹島)에 유배시켜, 죽은 뒤에 그 시체를 태워서, 죄업(罪業)이 지상에 남지 않게 하라는
것이었다.
또 궁실(宮室)을 짓고 배와 수레(車)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거주(居住)하고 여행하는 법을 가르쳤다. 이에 환웅씨
가 처음으로 바다에 배를 띄워(始承) 사해(四海)를 순방하니, 천부를 비추어서(照證) 수신(修信)하고, 모든 종족의
소식을 소통하여 근본을 잊지 않을 것을 호소하고, 궁실을 짓고 배와 차를 만들고, 화식(火食)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
환웅씨가 돌아와 8음 2문(八音二文)을 수학하고, 역법(曆法)과 수리(數)와 의약술(醫藥術)을 정리하고, 천문(天文)
과 지리(地理)를 저술하여,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였다. (弘益人世)
이는, 세대는 멀어지고, 법은 해이하여져서, 모든 사람들이 몰래 거짓(詐端)을 모색하는 일이 늘어났기 때문에, 날
마다 쓰는(日用) 사물 사이에서 근본의 도를 보전하여 분명하게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
이로부터 비로소 학문을 하는 풍조가 일어나니, 인성(人性)이 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워서 (昏眛)하여, 배우지 아니
하고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1) 환웅(桓雄)씨 : 한단고기 삼성기 등에 의하면 한웅(桓雄)시대(倍達國)는 18대 1565년 (BC 3897 ~ 2333)의 역사
를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2) 환부(鰥夫) : 결혼하지 않은 남자, 순행하며 마고의 역사를 전수하는 ‘제비’다.
* 환부의 수행원이 권사(權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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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 제30장 13.08.27
第三十章
男兒年二十質美而善辯者 擇授馬郞職 奉命遠行 或出於星生月息之古地 或往於雲海天山之諸域
此行符都修信之遺制也 自避居東海 千有餘年之間 未得開祭市之會 彼此來往久爲杜絶
又封國爭奪之風蔓延四海 諸族 各自稱國 悠久歲月 反覆戰亂 族分縱橫 語訛雜多 至於天符 殆乎忘却
或有知之者 皆變形音異 馬郞之行 甚爲艱難 殉節者多 然 馬郞者 萬里持節 能勵勁志 克除百難 遂行使命
其風度眞豪邁也 壯而歸還則 必任職事 修天文地理曆數博物 此則先世 通和四海 一準人世之遺業也.
남자 나이 스물이 되면, 그 자질이 아름답고 말이 착한 자를 선택하여,
마랑의 직책을 주어, 명을 받들어 원행하게 하였다.
그 중 혹은 성생월식의 옛 땅에 나아가기도 하고, 혹은 운해 천산의 여러 지역을 다니기도 하였다.
이는 부도 수신, 즉 부도의 뜻을 익히고 그 믿음을 닦는, 예부터 남겨진 선세의 제도를 행한 것이었다.
스스로 피하여 동해에 산 지 천년도 더 넘은 기간이 되었다.
그러나 다시 제시의 모임을 갖지 못하였으니,
이는 피차가 왕래한 지가 너무 오래되어 서로의 관계가 끊어지고,
또 나라를 봉하고 서로 쟁탈하는 풍습이 사해에 만연하게 된 때문이다.
모든 족속이 각자 나라를 칭한 기나 긴 세월 동안 전란이 반복되었다.
족속은 종횡으로 나뉘어졌고 말은 바뀌어 잡다해졌다.
천부의 일에 이르러 보면, 이미 망각되어 사라져버린 것이다.
혹 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더라도 모두 그 형태가 변하고 음이 달라져 있었다.
이에 마랑의 원행 또한 그 어려움을 이루 말할 수가 없으니, 순절한 자가 많았다.
그러나 마랑은 만리 밖에서도 그 지조와 절개를 지키고,
능히 굳은 뜻을 격려하면서 백난을 극복하고 이겨내면서 사명을 수행하였던 것이다.
그 기풍과 도량은 참으로 호걸의 나아감이었던 것이다.
장도에 올라 다시금 귀환한 즉 반드시 그 일과 직무를 맡겨, 천문 지리 역수와 박물을 닦게 하였다.
이는 곧 선세에 사해를 통화, 즉 통하고 화합했던 일과 한결같은 것으로,
인세에 남겨진 마지막 업이었던 것이다.
이제 보수와 진보가 갈리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myh1117 13.08.27
뜻은 하나라도 방법은 다를 수 있습니다.
나와 다른 타인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더 좋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저 자신 남들과 다른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저 역시 쉽게 그리하지를 못합니다.
부도의 뜻을 지키는 것과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대하는 것 사이에 간극이 생기게 됩니다.
한비자는 수주대토라 하였고,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하였죠...
어느 하나만을 가지고 이 복잡 다단한 세상을 다 살아내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수운은 각자위심이라 하였습니다. 사람 사람마다 다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말이지요...
이런 가운데 사람이 하늘이라는 인간존중의 뜻이 있었고, 그 속에 시천주 양천주 하라고 하였습니다.
부도복본 사해통화 그 본 뜻을 찾아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공자는 역을 가지고 남은 생을 조금만 더 준다면, 내 이를 공부하여 이룩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였는데...
평생을 살아도 다 모를 것이 진리요 진실이겠지요...
하물며 세상에 넘쳐나는 지식들을 어찌 다 감당하겠습니까?
하지만 죽음에 이르러 만나는 것이 결국은 <학생부군신위>라, 어
쩌면 인간은 영원히 배우고 익히다 이 세상을 하직해야 하는 존재일 것 같기도 하군요....
이런 식으로 죽음을 말해버리면, 너무 얕아지는 것일까요?
그러나 배우고 익히며, 살고 사랑한다는 것은 사실상 영원한 진리에 해당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부도지는 말하고 있지요...
잃어버린 고향 낙원 마고성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음과 향으로 이루어진 수리와 하늘의 이치 등등이 있다고 말입니다.
결국 이것은 인간이 살며 익혀 가야 할 천지의 원리 또는 이치와 관계되는 것이라 합니다.
□ 第三十一章 부도(符都) 복건에 무력을 동원하다
서례벌(西禮筏)을 창도(創都) 한 후로, 어느덧 삼세(三世)를 지나니, 백여년이 되었다.
세상의 풍조가 크게 변하여 보수하기가 어려워졌다.
이에 국왕(國王)을 세워, 대권을 행사 하게 하자는 여론이 대두하여,
이러니 저러니 하고 시끄러웠다.
그 반대자들은
"선세의 유법이 밝고 밝게 천부를 비추니,
지금 비록 시대가 어려우나, 보수하고 튼튼히 방비하여, 그 때를 기다리는 것이 옳다.
어찌 사단(詐端)에 굴종하여 스스로 소자(小子)가 되어,
사리에 어긋난 가운데(悖理之中) 모독을 당하는 것을 참을 수가 있겠는가.
차라리 이와 같이 된다면,
의롭게 목숨을 바쳐, 진도(眞道)를 뚜렷하게 나타내어,
후세에 남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그 찬성하는 사람들은,
"외세가 긴박하여 파동이 격심하니, 어떻게 방비를 하겠는가.
담장 안에서도 이반하여 시끄러움이 그치지 아니하는데, 어떻게 지켜낸단 말인가.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같이 경쟁하는 마당에 뛰어들어,
부강하게 된 후에, 유업(遺業)을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지금 사해 제족이 거짓 도(詐道)에 미쳐 날뛰어, 봉사(瞽盲)가 된 지 오래 되었다.
우리가 지금 자멸하여 버리면 누가 참다운 도를 드높이며(顯彰)하며,
후세에 누가 있어, 이를 알 것인가.
만약 능히 방비하여, 보수한다 하더라도,
오랫동안 고립되면, 새 백마리 가운데 백로 한 마리가 되어,
오히려 이도(異道)가 되고 세상에 존립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니,
장차 또 그를 어찌한단 말인가.
이 같은 것은 다 옳지 못하여,
오직 택할 바는, 나라를 세우고 왕을 높여, 대권(大權)을 집행하며,
군마를 호령하여, 파죽지세로 전진하고, 부도(符都) 전역을 회복하는 것 뿐이다.
부도(符都)를 다시 세워, 그 근본을 명시하면,
제족이 비록 완강하더라도, 반드시 각성하여, 근본으로 돌아올 것이다."
詐禮筏創都之後 於焉經三世 百有餘年
사례벌창도지후 어언경삼세 백유여년
世潮大變 保守艱難
세조대변 보수간난
於是 王國行權之論擡頭 可否紛紜
어시 왕국행권지론대두 가부분운
其否者曰 先世遺法 昭昭於天符
기부자왈 선세유법 소소어천부
今雖有時艱 保守堅防 以待其時可也
금수유시간 보수견방 이대기시가야
何忍屈從於詐端 自爲小者而瀆於悖理之中乎
하인굴종어사단 자위소자이독어패리지중호
寧有如是 不苦殉義自滅 顯彰眞道而遺於後世也
녕유여시 불고순의자멸 현창진도이유어후세야
其可者曰 外勢緊迫 波動激甚 如何以堅防乎
기가자왈 외세긴박 파동격심 여하이견방호
墻內離反騷然不能止 如何而保守乎
장내이반소연불능지 여하이보수호
事已至此則不如並立於追逐之場 圖得富强以後恢復遺業 未有不可也
사이지차칙불여병립어추축지장 도득부강이후회복유업 미유불가야
今四海諸族 狂奔於詐道 化作瞽盲久矣
금사해제족 광분어사도 화작고맹구의
我今自滅 眞道由誰而顯彰 後世有誰而知此乎
아금자멸 진도유수이현창 후세유수이지차호
若能堅防保守 久爲孤立則如鳥千之一鷺
약능견방보수 구위고립칙여조천지일로
反爲異道而不得存立於世 將又何之乎
반위이도이부득존립어세 장우하지호
如是者 皆不當也 唯有所擇者 立國尊王執行大權
여시자 개부당야 유유소택자 입국존왕집행대권
號令軍馬破竹前進而恢復符都之全域而已
호령군마파죽전진이회복부도지전역이이
符都得建而明示其本則
부도득건이명시기본칙
諸族 雖頑必覺醒而返本矣.
제족 수완필각성이반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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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 제31장 13.08.30
第三十一章
詐禮茷(筏)創都之後 於焉經三世 百有餘年 世潮大變 保守艱難 於是 王國行權之論擡頭 可否紛紜
其否者曰 先世遺法 昭昭於天符 今雖有時艱 保守堅防 以待其時可也 何忍屈從於詐端
自爲小者而瀆於悖理之中乎 寧有如是 不苦殉義自滅 顯彰眞道而遺於後世也 其可者曰 外勢緊迫
波動激甚 如何以堅防乎 墻內離反騷然不能止 如何而保守乎 事已至此則不如並立於追逐之場
圖得富强以後恢復遺業 未有不可也 今四海諸族 狂奔於詐道 化作瞽盲久矣 我今自滅 眞道由誰而顯彰
後世有誰而知此乎 若能堅防保守 久爲孤立則如鳥千之一鷺 反爲異道而不得存立於世 將又何之乎
如是者 皆不當也 唯有所擇者 立國尊王執行大權 號令軍馬破竹前進而恢復符都之全域而已
符都得建而明示其本則 諸族 雖頑必覺醒而返本矣.
사례벌을 창도한 이후로 어언 삼세, 백여 년이 지났다.
세상의 물결이 크게 변하여 보수하기가 심히 어려웠다. 이에 왕과
나라로서 권한을 행하자는 여론이 대두되었는데, 그 가부를 가지고 시끄럽고 소란스러웠다.
이를 반대하는 사람은 말하기를, “선세의 남은 법이 천부에 밝고 또 밝다.
지금 비록 어려운 시기가 되었다 하더라도, 굳게 지키고 보수함으로써 그 때를 기다리는 것이 옳다.
어찌하여 진실을 속이는 사단에 굴종함을 참을 수 있겠는가.
또한 어찌하여 스스로 작은 놈이 되어 이치를 벗어 난 시궁창 가운데로 빠질 수 있단 말인가?
만일 일이 이와 같다면 괴로워하지 말고, 의를 따라 스스로 죽어
참된 도를 밝게 드러내어 후세에 남김이 옳을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이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외세가 긴박하고 그 파동이 격심하다. 하니
어떻게 하여 이를 굳게 방어할 수 있겠는가. 담장 안에서도 서로 이반하고 시끄러워서
능히 그치게 할 수가 없다. 여하히(어떻게 능히) 보수할 수 있겠는가.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른 즉 추축의 장, 즉 쫓고 쫓기는 경쟁의 마당에 함께 서는 것만 못하다.
부강함을 얻을 것을 도모한 이후에 유업을 회복함이 불가하다고는 못할 것이다.
지금 사해의 모든 족속이 사도, 즉 그릇된 도에 속아 미쳐 날뛰고(광분하여)
눈 없는 봉사가 되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우리가 지금 자멸하여 버리면,
누구로부터(누가 있어) 참된 도를 밝고 빛나게 드러내게 할 것이며,
또 후세에 누가 있어 이를 알게 될 것인가?
만약 능히 굳게 방비하고 보수한다 하더라도 고립된 것이 오래되면 곧 천마리 까마귀 가운데
한 마리 백로가 되어, 도리어 우리가 이도가 되고 세상에 존립하지 못할 것이다.
장차 이를 또한 어찌할 것인가? 이와 같은 일은 모두 부당한 것이니,
오직 택할 수 있는 것은 나라를 세우고 왕을 존숭하여 대권을 집행하고,
군마를 호령하며 파죽지세로 전진하여 부도의 전 지역을 회복하는데 있을 뿐이다.
부도를 건립하여 그 근본을 밝게 보이면, 모든 족속들이 비록 어리석을지라도
반드시 각성하여 근본에 되돌아오게 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어언 사례별 창도 이후, 삼백년이 지나고 있군요 myh1117 13.08.30
신라의 국가 기원 및 고대 고구려 백제의 고대국가론에 대하여, 의미 있는 관점이 오늘은 처음을 엽니다.
그것은 창도하였다라고 하는 도읍의 문제입니다.
결국 부도를 말한다는 것은 당도와 다르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곧 도시를 세워 국가를 일으켰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례벌, 즉 새나라의 땅이라는 도시의 의미로 <벌 市>가 되죠...
서라벌, 신라, 밝달, 서울, 이 모든 말들이 사실상 <새땅>이라는 우리말에서 기원하는 것이지요...
양산이나 백산, 양지몰 같은 것은 밝은 땅의 마을 이라는 뜻이 되겠지요.
그래서 이를 밝문화 또는 최남선이 말한 불함의 문화가 되는 것입니다.
박혁거세의 경우 삼국유사에는 <불구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불그스레하게 밝아오는 아침의 여명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훗날 최치원 선생은 동인의식을 말하면서,
세계 문명의 처음이자 시발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동방이요,
동쪽의 어진사람이란 동인의 참된 뜻이 된다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부도지는 이러한 한민족의 역사적 책임을 한결같이 근본으로 돌아감이라는 의미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즉 모든 것이 돌고 도는 가운데 새로운 시작이 바로 이 땅 이 민족에 의해서 새롭게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오늘 한류라는 문화적 현상에 하나의 철학과 이념을 연결시켜 본다면,
바로 이 동인의 의식과 철학 그리고 근원을 향한 한민족의 올바른 정신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네요....
그렇습니다. 바른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이 험악한 <현대 시장 자본주의의 경쟁사회>를
좀 더 사람 사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바꾸어야 할 책무가 우리 한민족에게는 있는 것입니다.
즐겁고 아름답게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세상을 하루라도 빨리 만들어야,
우리 후손들 역시 무한한 민족적 자긍심과 나라에 대한 애정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장산 마고당·천제단 (萇山 麻姑堂·天祭壇) myh1117 13.09.02
정말, 참으로... 반갑습니다!
이 카페를 열고 언제쯤 손님이 와 주실까 늘 궁금했는데
더욱이 천자님께서 방문해 주시니, 놀랍고 황망하기만 합니다.
게다가 장산 마고당 천제단까지 소개해 주시니....재삼 고마움을 드립니다.
알고보면 부산의 역대 지명과 해륙을 연결하는 온갖 내용들이
삼신과 신선 낭가의 전통으로 전부 구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정작 우리 동네 사는 분들은 이 곳이 어떤 곳인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저도 어려서 영문학을 전공하다가 한국철학으로 전공을 바꿔서 박사학위 따고 지금까지...
해 놓은 일은 없고, 먹고 사는 논문 쓰는데 세월 다 보내고 그러다 뭔가는 해놓고 가야하지 않을까 하는
절박함 때문에 그동안 공부해 놓은 것들을 정리해 보고자 이렇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출판을 해 볼려고 작업을 해 놓은 이 자료를, 받아주는 출판사가 별로 없어서.....
사실 출판의 목적도 역시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근본적인 뜻이 있는 관계로 차라리 전체 오픈해서
많은 분들이 봐 주실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제 뜻과 부합되지 않겠는가 하여 이렇게....
자주 찾아주시면 고맙고 황송하겠습니다...
한 날 부산에 오시게 되면,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싱싱한 회라도 한접시 대접해 드릴테니...ㅎㅎㅎ
제 연락처는 <016-571-1715>입니다....
□ 第三十二章 부도(符都) 복건 노력
이에, 마침내 중론(衆論)이 결정되었으므로
인망(人望)이 왕국 수립을 주장하는 석(昔)씨에로 돌아 왔다.
석씨는 동쪽 작은성(東堡) 유배인의 후예로,
옛날부터 바닷가(海濱)에서 살아오던 사람이었다.
체격이 장대하고 지략이 있었으므로, 남해씨(南海氏)가 딸을 주어 아내가 되게 하였다.
이에 이르러, 대중의 여망에 따라, 자리를 이어 탈해왕(脫解王)이라 칭하니,
즉 보수(保守)의 질곡(桎梏)에서 벗어난다는 뜻이었다.
또 서라국(徐羅國)이라 칭하고, 비로소 방패와 창을 사용하여 경내(境內)를 평정하였다.
용병(用兵)을 과도하게 하여, 필경은 배척당하였다.
중론이 다시 박씨의 보수계로 돌아오니,
이에 박씨가 다시 계승하고, 왕국의 칭호를 폐지하였다.
4세를 지나, 중론이 또 석씨(昔氏)1)에게로 돌아 갔으나,
단 정벌하는 일을 원하지 않으니, 이에 석씨가 다시계승하여
무리에게 서약하고 정벌을 행하지 않으니, 이가 벌휴씨(伐休氏)였다.
석씨 4세 사이에 정벌을 다시 시작하니, 중론이 김씨의 중화(中和)로 돌아왔다.
김씨는 원래 부도(符都)에서 동쪽으로 옮겨와 살던 씨족으로,
따뜻하고 겸손하고 후덕(溫讓德厚)하여, 지마씨(祗摩氏)가 손녀를 주어 아내가 되게 하였다.
이에 이르러 자리를 이으니, 이가 미추씨(味雛氏) 였다.
이 때를 당하여 서북에서 계속해서 우환이 일어나되,
하나도 조치된 바가 없으므로, 중론이 다시 석씨에게로 복귀하였다.
이에 석씨가 다시 자리를 이어,
3세 사이에 전쟁이 허다하여 백성과 물자를 탕진하므로
크게 시대의 배척을 받았다.
중론이 다시 김씨에게로 돌아가니, 이에 김씨가 다시 이어 오늘에 이르렀다.
於是 衆論遂定 人望歸於王國主張之昔氏
어시 중론수정 인망귀어왕국주장지석씨
昔氏者 東堡謫人之裔 自昔世住居於海濱者也
석씨자 동보적인지예 자석세주거어해빈자야
壯大而有知略 南解氏以女妻之
장대이유지략 남해씨이여처지
至是依於衆望而繼位 稱脫解王 卽脫解於保守桎梏之意也
지시의어중망이계위 칭탈해왕 즉탈해어보수질곡지의야
又稱徐羅國 始用干戈 平定境內 用兵過度 畢竟受斥
우칭서라국 시용간과 평정경내 용병과도 필경수척
衆論 復歸於朴氏之保守 於是 朴氏復繼 廢王國之稱
중론 복귀어박씨지보수 어시 박씨복계 폐왕국지칭
經四世 衆論再歸於昔氏 但不願征伐之事 於是 昔氏復繼
경사세 중론재귀어석씨 단불원정벌지사 어시 석씨복계
誓衆以不行征伐 是爲伐休氏也
서중이불행정벌 시위벌휴씨야
昔氏四世之間 征伐又作 衆論 歸於金氏之中和
석씨사세지간 정벌우작 중론 귀어김씨지중화
金氏者 元來符都東遷之族 而溫讓德厚 祗摩氏以孫女妻之
김씨자 원래부도동천지족 이온양덕후 지마씨이손녀처지
至是繼位 是爲味雛氏也
지시계위 시위미추씨야
當此之時 西北之患繼作一無所措 衆論 復歸於昔氏
당차지시 서북지환계작일무소조 중론 복귀어석씨
於是 昔氏又復繼位 三世之間 征事許多 蕩盡民物 大受時斥
어시 석씨우복계위 삼세지간 정사허다 탕진민물 대수시척
衆論 再歸於金氏 於是 金氏復繼 至于今日也.
중론 재귀어김씨 어시 김씨복계 지우금일야.
주석 해설)
1) 석씨 :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신라 제4대 국왕, 재위 57∼80
→ 언제 한반도로 들어온 것일까? 503년 그래서 동진하여 경주로 들어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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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 제32장 13.09.02
第三十二章
於是 衆論遂定 人望歸於王國主張之昔氏 昔氏者 東堡謫人之裔 自昔世住居於海濱者也 壯大而有知略
南解氏以女妻之 至是依於衆望而繼位 稱脫解王 卽脫解於保守桎梏之意也 又稱徐羅國
始用干戈 平定境內 用兵過度 畢竟受斥 衆論 復歸於朴氏之保守 於是 朴氏復繼 廢王國之稱 經四世
衆論再歸於昔氏 但不願征伐之事 於是 昔氏復繼 誓衆以不行征伐 是爲伐休氏也 昔氏四世之間 征伐又作
衆論 歸於金氏之中和 金氏者 元來符都東遷之族 而溫讓德厚 祗摩氏以孫女妻之 至是繼位 是爲味雛氏也
當此之時 西北之患繼作一無所措 衆論 復歸於昔氏 於是 昔氏又復繼位 三世之間 征事許多 蕩盡民物
大受時斥 衆論 再歸於金氏 於是 金氏復繼 至于今日也.
이에 대중의 여론이 마침내 결정되었다.
사람들의 신망이 왕국을 주장하는 석씨에게 돌아갔다.
석씨는 동보, 즉 동쪽 보에 보낸 사람의 후예로, 옛날부터 바닷가에서 살아왔던 사람이었다.
몸이 장대하고 지략이 있었으며, 남해씨가 그 딸로서 처를 삼게 하였다.
여기에 대중의 신망이 귀의함에 따라 그 자리를 승계시키고 탈해왕이라 칭하였으니,
이는 즉 탈해 곧, 보수질곡, 즉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속박과 부자유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다.
또 서라국이라 칭하고 처음으로 간벌, 즉 무기를 사용하였다.
그는 경내를 평정하였으나, 병사를 지나치게 사용하여 마침내 배척당하였다.
중론이 박씨의 보수로 귀의하였다. 이에 박씨가 다시금 승계하며 왕국의 칭호를 폐지하였다.
4세가 경과한 후 중론이 다시금 석씨에게로 돌아갔다. 다만 정벌의 일은 원하지 아니하였다.
이에 석씨가 다시 승계하면서, 정벌 전쟁을 벌이지 않기로 대중에게 맹세하였다. 이가 벌휴씨가 된다.
석씨 4세 사이에 정벌이 다시 시작되었다. 중론이 김씨의 중화, 즉 정벌과 보수의 절충으로 귀의하였다.
김씨는 원래 부도에서 동쪽으로 옮긴 씨족의 자손으로 마음이 따뜻하고 양보심이 있으며 덕이 두터웠다.
지마씨가 그 손녀로 처를 삼게 하였다. 이에 이르러 왕위를 계승하니, 이가 미추씨이다.
이 때를 당하여 서북의 환란이 계속해서 일어났으나 단 하나도 조치된 바가 없었다.
중론이 석씨에게로 복귀하였다. 이에 석씨가 다시금 왕위를 승계하였는데,
삼세를 지나는 동안 허다한 전쟁으로 백성과 물자를 탕진하니, 크게 시대의 배척을 받았다.
중론이 다시금 김씨에게로 돌아갔다. 이에 김씨가 다시금 계승하여, 금일에 이른다.
박 석 김, 신라 초기의 역사가 박씨 문중의 입장에서 myh1117 13.09.02
부도지의 기본적인 인식은 결국 신라 역대의 박씨 문중의 역할과 그 내용을 중심으로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 개입된 한국 고대 내지 상고사의 이야기들은 신화나 전설로도 전해 내려오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비록 마고대성이나 삼신 할미의 이름은 전해져 온다 하여도,
그 이름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는 분들은 많지 않은 것이지요...
여기에 김지하 선생은 한 때 부도지를 보고 감격하여 삼남 네트워크 같은 작업을 진행한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 곳곳에 이와 같은 민족의 고대적 실체를 통하여
새롭게 그 길을 개척해보고자 하는 많은 분들이 계시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괜히 단군할배를 중심으로 자본주의적 돈벌이에 관심을 기울이는 분들 역시 적지 않습니다.
그 순수성이 의심받는 것이지요...
하지만 지금 온 나라가 돈벌이에 미쳐 세상이 어지럽게 돌아가는 형국이다보니,
사실상 단군할배 이야기도 잘 모르는 다음 세대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옛날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그래서 우리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른 채,
무작정 돈과 자본, 권력과 힘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요...
세상의 뜻이 이와 같으니 이런 일에 매진하는 젊은이들을 탓할 것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고,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는 불신지옥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결코 해혹복본 사해통화를 말하는 부도의 뜻은 아닐 것입니다.
제가 부도지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극우 민족주의가 아닙니다.
이후 <징심록추기>에서 말하게 되겠지만, "옛날 조선은 결코 한 지역에 국한하여 봉함받은 나라가 아니요,
단군의 자손들은 결코 한 임금의 사사로운 백성이 아니다"라고 하는 말은
사실상 부도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그 뜻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제 신라의 왕권이 오고 가는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그 옛날 부도의 참 뜻이 사라지고
헐뜯고 싸우는 투쟁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 第三十三章 부도(符都) 복건(復建), 사해(四海) 통화(通和)
오직 근본을 지키는 우리 종족들이 동해에 피하여 살면서,
방비하고 보수한 지 삼백여년 사이에,
중론의 번복이 이와 같으니,
가히 바깥지역(域外)의 풍운이 어떠한지를 살필 수 있을 것이다.
또 가히 천부(天符)의 진리가 사단(邪端)의 세상에서도
의연하게 살아 있음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세 중론이 반드시 이 도가 무너지지 않는 것에 근거하여,
역대 영수가 오히려 중론의 소재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과격하지도 느슨하지도 않게 능히 조절하여, 보수를 크게 전하였으니,
마침내 오늘의 사람들로 하여금 가히 천부(天符)의 실재를 알게 하며,
또 장차 후인으로 하여금 때를 만나 그것을 행하게 하여,
능히 부도(符都)를 다시 건설하고, 사해(四海)를 통화(通和) 하며,
인세가 복본(復本)하여, 진리를 명증(明證)하게 하면,
당시 석씨의 주장이
과연 불행 중에서 행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 제시(題詩)1)
관설당(觀雪堂)
아지랑이 초초하게 흐르는 걸 바라보니
나그네의 마음도 가을처럼 지는구나
세간의 견백(堅白)2)도 유유한 일도
징강(澄江)3)을 대하고 앉아 근심을 잊는다
唯我守本之族 避居於東海 設防保守三百餘年之間
유아수본지족 피거어동해 설방보수삼백여년지간
衆論之飜覆 如是則可以察域外風雲之如何
중론지번복 여시칙가이찰역외풍운지여하
又可以知天符眞理之 毅然不滅於邪端之世也
우가이지천부진리지 의연불멸어사단지세야
故 世世衆論 必根據於斯道之不墜
고 세세중론 필근거어사도지불추
歷代領首猶恐不副於衆論之所在
역대영수유공불부어중론지소재
不激不緩 能得調節而保守大傳
불격불완 능득조절이보수대전
竟使今人 可得聞而知天符之在
경사금인 가득문이지천부지재
又將使後人 及其時而行之 能得符都復建 通和四海
우장사후인 급기시이행지 능득부도복건 통화사해
人世復本 明證眞理
인세복본 명증진리
則當時昔氏之論 果成就於不幸之幸歟.
칙당시석씨지론 과성취어불행지행여.
* 제시(題詩)
관설당(觀雪堂)
煙景超超望欲流
연경초초망욕류
客心搖落却如秋
객심요락각여추
世間堅白悠悠事
세간견백유유사
坐對澄江莫說愁
좌대징강막설수
주석 해설)
1) 제시 : 징심헌시(澄心軒詩) 신라 눌지왕 2년에 박제상이 왜국에 들어갈 때 지은 것이라고 했다. (영해 박씨 세감)
2) 견백(堅白) : 중국 춘추전국시대 공손룡(公孫龍)이라는 사람이 내건 일종의 궤변. 단단하고 흰 돌은 눈으로 보
면 흰 것을 알수 있으나 단단한 것은 모르며, 손으로 만지면 단단한 것만 알수 있을 뿐 흰줄은 모르므로, 단단한
것과 흰 것은 다르다는 이론. 곧 억지를 써서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그른 것을 옮다 하며, 같은 것을 다르다고 하
는 궤변. 견백석(堅白石)과 같은 말이다.
3) 징강(澄江) : 징심헌(澄心軒) 앞에 앞에 흐르는 강. 박제상 생전 당시의 신라영토는 무궁화 자생산지(근화향)와
관련이 있고 그 지역은 양자강의 중심 도시 무한 인근이다. 징강이 어디인지는 연구대상이다. 징강이 한강(漢江)이
나 장강(長江)으로 바뀌면 모든게 해결된다. 그 유명한 황학루가 있지 않은가?
-----------<<<이하 부산 민박사님 https://cafe.daum.net/myh1117>>>-----------
부도지 제33장. 오늘로써 부도지의 내용은 마무리됩니다. 13.09.03
第三十三章
唯我守本之族 避居於東海 設防保守三百餘年之間 衆論之飜覆 如是則可以察域外風雲之如何
又可以知天符眞理之 毅然不滅於邪端之世也 故 世世衆論 必根據於斯道之不墜
歷代領首猶恐不副於衆論之所在 不激不緩 能得調節而保守大傳 竟使今人 可得聞而知天符之在
又將使後人 及其時而行之 能得符都復建 通和四海 人世復本 明證眞理 則當時昔氏之論 果成就於不幸之幸歟.
오직 우리 근본을 지키는 족속이 피하여 동해에 살아오면서,
방책을 설치하고 보수한 지 삼백여 년 동안에 중론이 여러 번 바뀌었다.
이와 같은 것으로도 가히 역외의 풍운이 어떠했는지를 살필 수 있으며,
또한 헛된 사단의 세상에서도 천부 진리가 얼마나 의연하고 불멸했는지를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세로 중론이 반드시 이 도의 떨어지지 않음에 근거하였던 것이다.
역대로 영수가 된 사람들이 도리어 중론의 소재에 부합되지 못함을 두려워하였다.
과격하지도 않고 느슨하지도 않게 능히 조화와 절도를 얻었고, 지키고 보존함을 크게 전하였으니,
마침내 오늘의 사람들로 하여금 가히 얻어 듣게 하고 천부의 있음을 알게 하였다.
또 장차 후인들로 하여금 그 때를 당하여 이를 행하며,
능히 부도복건과 통화사해 그리고 인세복본과 명증진리를 얻게 하였다.
그런 즉 당시 석씨의 논설이 과연 불행 중에서 행을 성취한 것은 아니겠는가 한다?
題詩
煙景超超望欲流
客心搖落却如秋
世間堅白悠悠事
坐對澄江莫設愁
觀雪堂
제시
“아지랑이 초초하게 흘러감을 바라보자니,
나그네의 마음 또한 가을처럼 가라앉는 구나,
세간에서 말하는 견백의 일 또한 유유한 일이요,
징강을 대하고 앉아 근심을 말하지 아니할 뿐…”
관설당
謹告
音信誌, 曆時誌, 天雄誌, 星辰誌 繼續出刊中
編纂者 白.
寧海朴氏大宗會
드디어 마지막 장입니다. myh1117 13.09.03
박제상 공에 의해 쓰여졌다는 부도지의 본문은 오늘로써 끝납니다.
다음에는 제시가 붙어 오는데요...
이는 관설당 제상공의 소회 내지 문장의 필력과 관계하는 문학적 작업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후기처럼, 딸려있는 다른 여러 서적들에 대한 소개 및 출간예정과 같은 알림이 있는데...
애석하게도 이들 자료는 지금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영해군 박씨 문중에 확인한 바, 이를 자료를 소장하고 있지 않다는 답변만 듣게 되었습니다.
향후에라도 이들 자료들이 발견된다면, 곧바로 번역해서 올려볼 예정으로 있습니다만,
그런 행운이 있게 될 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지금까지 <부도지>는 많은 것을 말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특히 오늘 끝 부분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천부의 있음, 부도복건, 통화사해, 인세복본, 명증진리와 같은 내용들입니다.
결국 마고성으로부터 출발한 인류의 분화와 발전 과정을 기술한 것인데,
이런 부도지의 내용을 보고 있으면, 에덴에서 퇴출된 아담과 이브 그리고 12지파와 같은
기독교 성경의 전체 맥락과도 유사함을 느끼게 됩니다.
다만 <부도지>는 황궁씨와 유인씨로 이어지는 동방 장손의 뜻 속에서 '부도복본'의 중책은 결국,
한민족에게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곧 세계 만민이 하나되는 문명과 문화 개벽의 새로운 날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다음에는 징심록추기가 이어지겠네요...13.09.07
오늘은 그리 분량이 많지 않군요...그러나 의미 있기는 다른 날보다 더한 것 같습니다.
마침내 <부도지> 만으로는 종착역에 이르러, 엔딩을 올리는 순간이기 때문이죠...
돌아보면 부도지의 기사는 상당히 힘든 이야기가 됩니다.
학술적으로만 이야기하자면, 우선 이 글이 박금 씨의 기억에 의존하여 기록되었다는 점인데,
상식적으로 이 정도의 분량을 다 기억하고 계셨다는 것 자체가 쉽게 믿어지지 않는 부분이 되구요...
기억만으로 보다는 차라리 틈틈이 필사를 한 것과 종합되었다고 하면 좀 더 믿음이 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구요...
다음으로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황궁씨와 유인씨의 옛이야기가 나옵니다.
마고 할머니는 어차피 우리 삼신신앙의 모태적 원형을 간직한 신화와 전설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하겠지만,
임검씨에 앞서는 옛 어른들에 대해서는 과연 어떻게 역사적인 추적이 가능할까?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이건 순적히 학문적인 입장에서의 역사학적 어려움과 관계할 뿐입니다.
실로 <부도지>의 자료적 가치는 그 철학적 입장과 언설에 따릅니다.
우선 기본적인 시각은 우리 한민족은 동방 장자의 후예로 하늘의 뜻을 이었다는 것이지요,
이는 민족사상의 특징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러한 까닭에 우리에게는
사실상 부도복본의 인류사적 과제가 주어진다는 막대한 사명이 있음을 말합니다.
단순히 선택받은 유대민족의 선지적 사명과 다른 것입니다.
또한 요순과 결부한 이야기 속에서 당도의 오행중심의 철학과 사해통화를 따르는 사상보편의 철학을 대비시킵니다.
이는 전에도 말씀드린 것과 같이 중심주의와 평등주의의 차이를 노정시킵니다.
결국 부도지는 코스모폴리탄과 같은 인류 평등의 사상을 주창하는 것이지요.
이는 확실히 중화가 주장하는 중화중심주의와는 그 류를 달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평화에 대한 시각은 조시와 해시를 통한 개방과 자유의 정신에서 불거집니다.
물론 이 모두는 부도의 뜻으로 말해지는 천부의 원리와 관계합니다.
다시 말해 사람의 길은 결국 그 근본을 회복하여 하늘의 뜻에 이르는 것이라는
동양전통의 천입합일의 이론과 연결되며, 삼일신고의 성통공완이라는 대목으로 이어진다는데 있습니다.
인류 미래의 하나되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라면,
부도지에 기록된 많은 이야기들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부도의 뜻을 이은 신라는 변방으로 변방으로 향합니다.
스키타이 계열의 문화가 신라에서 발견된다고 하죠...
중요한 의미를 던져줍니다. 그리고 보수와 진보의 사이에서 결국 신라는 후대의 역사로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 한민족 역시 무수한 역사의 부침 속에서 마침내 나라를 빼앗기고 새로이 대한민국의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일일까요?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떠해야 할까요?
숱한 의문들이 던져지고, 그 속에서 우리는 답을 찾아내야만 합니다. 비록 힘들고 어렵더라도 말이지요...
종합주기)
[1] 부도지에서는 마고성이 실달성(물질계)위에 허달성(정신계)와 나란이 있다 하였다. 그러나 인간이 마고성에서
나온 뒤 마고성을 허달성위로 올려 놓았다 하였으니 이는 물질계에서 접근을 할 방법이 없고 오로지 수련을 통해서
정신계를 통해서만이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2] 마고성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성경에서의 에덴동산과 유사한점을 발견을 할 수가 있다. 우리민족은 천산 태백산
을 거쳐 삼신산인 백두산에 정착을 하게 되는데 이 산들의 공통점은 모두 산 정상에 물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부
도지에서는 단군(임검씨)에 이르러 마고성을 세상에 복원을 하였다 하였는데 백두산 정상의 물이나 주위에 흐르는
4개의 강이 에덴동산의 주위 풍경이랑 일치를 한다.(산정상에 물이 있고 주위에 4개의 강이 흐르는 것은 석가모니
의 출생지 이야기에도 나오는데 세상에 이런 장소는 백두산이 유일하다 하겠다.)
[3]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을 받고 있는 인도의 성자 ‘사티아 사이바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나는 신이다, 마
찬가지로 당신들도 신이다. 다만 다른점이 있다면 내가 그것을 알고 있는데 여러분은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적을 보이는 것은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에 불과 하다. 신과 인과과의 다른점은 욕망의 유무에 있다. 인간은 세
속의 욕망을 버릴 때 마음속에 있는 신성을 발견 할 것이다.”
[4] 지상에서 가장 높다는 말은 하늘과 가장 가깝다는 말이고 이는 하늘의 뜻에 가장 충실하게 이행하는, 즉 본성
으로서 살아가는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5] 불교나 고대 그리스 철학을 살펴보면 사원소성이 나와 부도의 흔적을 볼 수 있다.
[6] 황궁씨(黃穹氏)를 말함
[7] 흑소씨(黑巢氏)를 말함
[8] 청궁씨(靑穹氏)를 말함
[9]백소씨(白巢氏)를 말함
[10] 부도지 13장에 보면 마고성을 지을 터전을 설명하기를
[2와 6이 교감(交感)하는 핵심지역이요, 4와 8이 상생(相生)하는 결과의 땅이었다. 밝은 산과 맑은 물이 만리에 뻗
어 있고, 바다와 육지가 서로 통하여 십방으로 갈리어 나가니, 즉 9와 1의 끝과 시작이 다하지 않는 터전이었다.
삼근영초(三根靈草)와 오엽서실(五葉瑞實)과, 칠색보옥(七色寶玉)이 금강(金剛)의 심장부에 뿌리를 내려, 전 지역
에 두루 가득하니, 이는 1과 3과 5와 7의 자삭(磁朔)의 정(精)이 모여, 바야흐로 물체를 만드는 복된 땅이었다.]
[11] 사방(동 서 남 북)과 사계(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말함
[12] 24절기와 6개의 절기가 모여 1개의 계절이 이루워 지는 것을 뜻함
[32] 앤드류 콜린스가 지은 <금지된 신의 문명>에서 보면 고대문명의 시작으로 알려진 문명을 조사하며 그들보다
훨씬 뛰어난 문명을 가진 뱀을 닮은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뱀이란 성경을 비롯하여 고대문명의 흔적을 이야기 할 때 반듯이 나오는 테마이다.
[33] 앤드류 콜린스가 지은 <금지된 신의 문명>에서 보면 고대문명의 시작으로 알려진 문명을 조사하며 나오는 이
야기중 뱀과 함께 항상 나오는 것이 새의 형상을 한 인간이 나온다.
[34] 여러 부족을 뜻한다.
[35] 마고성에는 청궁(靑穹)씨, 황궁(黃穹)씨, 백소(白巢)씨, 흑소(黑巢)씨와 소희(巢姬)와 궁희(穹姬)가 낳은
4쌍의 남녀 해서 총 12명의 천인이 있다.
[36] 부도지 18장에서 보면 유호씨까 칡을 먹고 오미를 취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지유 대신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칡을 설정한 것 같음.
[37] 한단고기에 의하면 800명의 무리를 이끌고 내려 왔다 함. 일부에서는 3천의 무리라고도 하나 이는 한웅씨의
무리와 착오가 있는 것으로 추정 800이 맞을 것이다.
[38] 분거(分居)해 나간 여러 부족
[39] 지금으로부터 약 11000~12000년 정도 전으로 추정한다. 초고대문명(아틀란티스나 뮤, 레무리아등)의 흔적도
이때 무렵 없어 진것으로 추정하니 어떤부분에 있어 유사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40] 뮤는 원래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이 같이 발전을 한 곳인데 아틀란티스는 뮤로부터 물질문명만 받아들여 뮤우와
자주 전쟁을 하였다. 시대적 배경이 그때 무렵이니 뭔가 연관이 없을까 추정한다. 또한 슈메르나 주변 국가의 기
록 또는 에록의서에서 보면 네피림이야기와 같이 천상에서 쫗겨온 천사가 인간과 결혼 높은 문명의 힘으로 惡을 행
하다 천상의 신과 싸우는 장면이 나온다. 이들이 생김새는 뱀과 같았다고 하고 성경의 창세기에서는 이들을 뱀으로
묘사를 한다.
[41] 정신계를 뜻하며 이때부터 물질계(실달성)와의 접촉이 끊어져 육체의 힘으로는 갈수가 없고 오로지 정신계(수
련)의 힘으로만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다.
[42] 약 1만년전의 홍수를 말하는 것으로 노아의 방주도 이때 무렵이다.
[43] 시베리아(사백력, 斯白力) 하늘 밑 바이칼 호수의 동쪽으로 흐르는 흑룡강(黑龍江, 龍江, 天河, 天海)을 중심
으로 한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추정 됨
[44] 음(音)이 조화로울 수 있도록 잡아주는 기준 음을 말하는 것으로 후손들의 길을 밝혀 스스로 모범이 되어 부
도의 법을 확립 했다는 뜻으로 해석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45] 단군신화에 나오는 천부인과 동일한 것을 말하는 것 같으며 이를 혹자는 북과 칼과 거울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데 부인(符印)이란 종이가 없던 시절 사용하던 대나무로 만든책을 말하는 것으로 고대 문서를 상징한다
고 본다.
즉 천부삼인이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세가지 경전을 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지 않으면 문맥상으로 세가지
의 악기를 이야기 하는 것 같다.
[46] 이는 한단고기에 나오는 7대 환인의 환인과 다른 말을 가르키는 것으로 추정 된다.
[47] 안창범의 <잃어버린 배달사상과 동양사상의 기원>을 보면 불교가 우리나라에서 유래가 되었는 것으로 말하는
내용이 있음. 거기에 나오는 내용중 7세 한인중 석제임한인(釋提壬桓因)이 있으나 불교의 33천 중 주신중에선 석제
한인(釋提桓因)있다고 함.
[48] 슈메르나 바벨로니아 에록의서에서는 이때 나타나는 문명족에 대해 뱀의 형상을 닮아 있다고 표현을 하였다.
[49] 혹자는 한인의 한국 3301년을 말한다 하여 이를 오천년으로 해석을 하는 사람이 있으나 여기에 이렇게 분명하
게 삼천년으로 명시가 되어 있다.
[50] 부도지에서는 한명이 천년을 다스린 것으로 나와 있으나 이것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고 한단고기의 내용과
도 상반된다. 내가 보기에는 이는 한명의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법을 말한다고 본다. 자세한 것은 뒤에 다시 보
충 설명을 하겠다.
[51] 황궁씨와 청궁씨, 흑소씨와 백소씨를 말한다.
[52] 부도지 2장에 보면 [궁희와 소희는 네 천인과 네 천녀를 낳아, 지유를 먹여 그들을 기르고, 네 천녀에게는 여
(呂)를, 네 천인에게는 율(律)을 맡아보게 하였다.]
[53] 부도지 8장에 그 이야기가 나온다.
[54]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구다천국, 일군국, 우루국(또는 필라국), 객현한국, 구모액국, 매구여국(또는 직
구다국), 사납아국, 선비이국(또는 시위국, 통고사국이라 함), 수밀이국 합하여 12개의 연방국가 이다.
[55] 부도지 10장에 그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사람은 한국(桓國)이 3301년이니 셋을 합하여 5천년이라 해석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황궁씨, 유인씨 환인씨 셋이 1000년씩 합이 3천년이라는 것은 부도지에도 명시가 되어 있고 한국의
한인이라는 것은 하느님이라는 말의 고어로 세상에 있는 미개한 부족인 지손족(地孫族)의 눈에서 봤을 때 뛰어난
문명을 하지고 있는 이들 천손족(天孫族)이야 말로 하느님일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한인이라 불렀고 이는 부도지
에서의 환인씨와는 구별이 되어야 할 것이다.
[56] 임검씨란 무리들 즉 인간들 중에 왕을 말하는 것으로 최초로 인간들 중에서 지도자가 나온 것을 말한다. 이때
를 조선으로 추정하는데 하늘이 주신 나라라 하여 ‘쥬신’이라 하였고 이의 이두식 표기가 ‘조선’이 되는 것이다.
[57] 환웅에서 환이란 하늘을 뜻하는 말이고 웅이란 고어로 땅을 말하는 것이므로 이는 천손족과 지손족이 합하기
시작했음을 말하며 이때를 하늘을 열어 지손족을 받아들였다 하여 개천(開天)이라 한다. 단군신화에서 환웅할아버
지와 웅녀와의 결합은 이를 말하는 것이다.
[58] 이집트의 대피라미드가 약 1만년 전에 내린 큰 비(돌에 깊은 자국을 남길 정도이니 엄청난 비로 추정이 된다)
로 돌이 침식된 흔적이 있다 하니 만약 오미(五味)의 화(禍)로 인해 쫓겨난 지소(支巢)씨의 일부 세력이 여기에 흔
적을 남기고 그 뒤 큰 변혁이 왔다고 가정하면 시기적으로 일치를 한다.
<신의 지문> 참조
참고로 대피라미드는 이집트의 그 어느 피라미드보다 정교하고, 거대하면서, 전혀 다른 양식으로 만들어 졌고 시대
적인 차가 크므로 이집트인이 만들었다기 보다 다른 문명이 만들고 이집트인은 그것을 모방한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부장품이나 미이라가 있었던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무덤이 아님 다른 용도로 쓰지 않았나 생각을 하게 만
든다. (<신의 지문> 참조) 또한 안에 거대한 배가(장시간동안 바다를 건너 먼 곳까지 여행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진
배다.)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이 다른 먼 곳으로부터 이주를 해온 것으로 보이며 주변에 큰 인공연못과 길이 어우
러져 있고 옆에 비슷한 규모의 피라미드가 있어 사이에 바람이 지나 갈수 있게 만들어 놓았고 이 주변은 당시에는
초원이었을 것으로 가정을 한다면 마고성에서 세상을 구성하는 4가지 원소 기(氣,바람), 나무, 흙(돌), 물이 다 있
는 것이니 마고성에서의 여건을 조성을 해 놓았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이 성립하게 된다. 이집트에 보면 아주 옛적부
터 주술인들 사이에 내려오는 신비의 수가 있다 그런데 이 수는 천부경의 원리로 만들어 져 동양철학에도 자주 나
오는 수 이다.
[59] 한단고기의 삼성기편에 보면 이때 동녀동남 800명이 흑수와 백산의 땅에 내려왔다고 되어 있다.
[60] 마고가 마고성을 허달성 위로 올려 놓았음으로 복본을 위해서는 정신수련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후세에
게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제시 법을 이어나가게 함.
[61] [흠정만주원고]에서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조선(朝鮮)의 나라인 숙신의 나라(肅愼國)가 남녘으론 한밝
산(太白山)을 포함하고, 북녘으론 흑룡강(黑龍江)에 닿아 있고, 또 그 안에 길림성 영고탑(寧古塔)이 있다. 숙신의
나라가 서녘으론 구막한국(寇莫汗國)에 닿았는데, 이나라에서 양운국(養雲國)까지는 말을 타고 100일을 가야 하며,
이 나라에서 비리국(卑離國)까지는 말을 타고 50일을 가야 한다. 숙신 나라의 서북녘에 있는 비리국까지는 200일을
가야 다 지날 수가 있다.
[62] 안파견(安巴堅)한인, 혁서(赫胥)한인, 고시리(古是利)한인, 주우양(朱于襄)환인, 석제임(釋堤壬)한임, 구을
리(邱乙利)한인, 지위리(智爲利)한인
[63] 혹자는 단군이 개천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 이도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64] 마야나 잉카등의 고대 문명을 살펴보면 6천년 전에 사람이 와 자신에게 문명을 전파 했다는 대목이 있고 이때
와 한웅께서 사해 일족을 다니시던 때와 시기적으로 일치를 함 <신의 지문> 참조
[65] 한단고기 상성기에 보면 [뒤에 한웅씨가 계속하여 일어나 천신(天神)의 뜻을 받들어 백산과 흑수 사이에 내려
왔다. 사람이 모이는 곳을 천평(天坪)에 마련하고 그곳을 청구(靑邱)로 정했다. 천부(天符)의 징표를 지니시고 다
섯가지 일을 주관하시며 세상에 계시면서 교화를 베푸시니 인간을 크게 유익하게 하였더라. 또 신시(神市)에 도읍
을 세우시고 나라를 배달(倍達)이라 불렀다.
[66] 지위리(智爲利)한인
[67] 여기서 서자란 첩의 자식이 아닌 여러 자식 중 하나를 말하는 것 일 것이다. 어떤 이는 서자촌의 자식이다,
다른 이는 서자를 출현 시키므로 장자 우선이 아닌 기회균등을 말하는 것이라 하나 좀 현실성이 없을 것 같다.
[68] 이때를 개천(開天)이라 하였고 우리가 매년 지내는 개천절 행사는 이를 기념하는 것이지 절대 조선의 건국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다.
[69] [예기(禮記)]의 왕제편에 따르면 , 동이의 9겨레(九韓) 또는 9이겨레(九夷族)는, 견이(?夷), 우이(于夷),
방이(方夷), 황이(黃夷), 백이(白夷), 적이(赤夷), 현이(玄夷), 풍이(風夷), 양이(陽夷)가 이다.
[70] 거발한, 거불리, 우야고, 모사라, 태우의, 다이발, 거련, 안부련, 양운, 갈고, 거야발, 주무신, 사와라,
자오의, 치액특, 축다리, 혁다세, 거불단
[71] 부도지에서 천부삼인(天符三印)이라 한것과 동일한 것으로 추정되며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세가지 경전을 말하
는 것으로 보인다.
[72] 곡식, 생명, 형벌, 병, 선악을 말하는 것으로 우가(牛加)는 농업을, 마가(馬加)는 목숨을, 저가(猪加)는 병,
구가(拘加)가 형벌, 양가(羊加)가 선악을 담당했다.
[73] 부도의 법을 말하는 것으로 한단고기 내용중 교화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74] 밝은 땅이라는 뜻의 고어로 배달이란 이두식 표현이다.
[75] 인간들중에 왕이란 말이며 이전 한인 한웅때 까지는 마고성에서 나온 천손족중에서 왕이 나왔으나 이때 처음
으로 인간들중 왕이 나왔으니 이때야 비로서 천손족과 지손족의 완전한 결합이 이루워 졌다. 기록에서 보면 [단군
한배검께서는 조선의 전체를 3한(三韓, 三王)이 나누워 다스리게 하고, 한배검 자신은 진임금(辰王)인 진한(辰韓)
으로써 마한(馬韓)과 변한(卞韓)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때 곰겨레(熊族)의 자손인 웅백다(熊伯多)란 사람을 마한
(馬韓, 마임금)으로 삼고 치우(蚩尤)의 후손 가운데 지혜와 슬기와 용기와 힘이 뛰여난 치두남(蚩頭男)을 변한(卞
韓)으로 삼았다]라 하여 이들이 완전하게 융화가 되었음을 말한다.
[76] 고기(魚)와 양(羊) 합하면 선(鮮)이란 글자가 된다. 우리나라를 말하는 조선(朝鮮)글에서 보면 조(朝)란 해
(日)와 달(月)의 밝음이 합하여 완성이 되는 것을 형상화 시킨 글자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조(朝)란 광명, 하늘
(天)을 뜻하고 선(鮮)이란 위에서 보듯이 제사를 말하는 것으로 합하면 천제(天祭)를 뜻하여 조선만이 하늘에 제사
를 지내는 자격이 있는 것을 뜻한다.
[77] 마야나 잉카등의 고대문명에서는 이가 변질되어 인신공양의 제사가 된 것 으로 추정.
[78] 조선의 정식 명칭은 ‘쥬신’으로 조선(朝鮮)이란 쥬신의 이두식 표기이다.
[79] 마한(馬韓, 마임금)의 첫임금으로는 곰겨레(熊族)의 자손인 웅백다(熊伯多)를 임명하였다.
[80] 변한(卞韓)의 첫임금으로는 치우(蚩尤)의 후손 가운데 지혜와 슬기와 용기와 힘이 뛰여난 치두남(蚩頭男)을
으로 삼았다
[81] 지금의 백두산을 말한다. 백두산의 명칭으로는
개마대산(蓋馬大山), 개마산(蓋馬山), 구월산(九月山), 궁골산, 금미산(今彌山), 단단대령(單單大嶺),
도태산(徒太山), 도태백(徒太白), 도산(塗山=발산), 방골산, 백아강(白牙岡), 백역산(白亦山), 백운산(白雲山),
백주(白州), 부산(釜山), 불함산(不咸山), 신산(神山), 비백산(鼻白山), 삼신산(三神山), 삼성산(三聖山),
삼위산(三危山), 설산(雪山), 아사달산(阿斯達山), 두산(頭山), 대박산(大朴山), 단산(丹山=붉산=발산),
목단봉(牧丹峰=한밝재), 박달산(朴達山), 백계산(白階山), 백산(白山), 백악산(白岳山), 백악(白岳), 백달(白達),
증산(甑山), 천산(天山), 천백산(天白山), 천조산(天祖山), 천신산(天神山), 천성산(天聖山), 천등산(天登山),
태박산(太博山), 태백(太伯), 태백산(太伯山), 태황산(太皇山), 풍산(風山), 장백산(長白山), 조백산(祖白山),
조산(祖山), 함박산(咸朴山), 환산(桓山, 丸山)
[82] 우리나라는 12지지중 인(寅, 陽木)에 해당하는 것으로 우리의 풍습에 신목(神木)이라 하여 마을마다 가장 큰
나무를 정해 신성시 하는 풍습이 있는데 이에 연유를 한 것 같다.
박달나무란 밝은땅에서 나는 나무라는 뜻으로 당시 우리민족을 신성시하는 나무가 아니었나 추측을 한다.
[83] 화(火)는 열기, 빛, 팽창하는 힘, 상승하는 힘, 발산하거나 흩어지는 힘등을 말하는 것이고, 수(水)는 냉기,
어둠, 수축하는 힘, 하강하는 힘, 뭉치는 힘등을 상징 할 것이고, 토(土)는 재료요 형상을 뜻하는 것일 것이다.
기(氣)란 생명력, 에너지등을 상징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중국의 신화에 여와가 흙으로 인간을 빗는 것이 나오는
데 이는 흙과 물을 이용하여 형상을 이루고 열과 기로 생명을 만들어 넣은 것으로 해석이 된다. 고대 그리스 철학
중 만물을 이루는 4대 원소로 공기, 물, 불, 흙을 들었는데 당시에는 공기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던 것으로 볼 때
공기란 기(氣)를 말하는 것이라 생각이 된다. 그렇다고 보면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일치하는 것이 되어 고대 철학
의 근간이 이것이 아니었나 하는 추측도 가능하리라 생각이 된다.
[84] 현재까지 발견된 고인돌은 세계에 15만개가 있다고 한다. 그 중 10만개가 우리나라 안에 있는데 그 속에서 발
견되는 부장품을 보면 누구나 다 만들었고 계층별 차이가 거의 없어 우리 고대 사회가 평등사회 였다는 것을 충분
히 예측을 할 수 있다고 한다.
[85] 1년을 13달 나눠 사용을 하는데 그 달력의 정밀도가 매우 높아 천년이 지나도 몇 초 틀리지 않아 현대의 달력
보다 그 정확도가 훨씬 더 높다.
[86] 서양에는 권력자가 역(曆)을 정리를 하여 율리시스력이나 그래고리력이라 하며 만든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데
마야와 같이 천체의 움직임을 체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사욕이 들어가 많이 변조가 되었다. 예를 들어
그들이 12진법을 사용을 하여 12개의 달로 나눴으나 1월(30), 2월(31), 3월(30), 4월(31), 5월(30), 6월(31),
7월(30), 8월(30), 9월(31), 10월(30), 11월(31), 12월(30)로 나누면 365일이 되나 율리시스가
자신의 생일(2월28일)에 맞춰 2월을 28일로 만들고 1월(31), 2월(28), 3월(31), 4월(30), 5월(31), 6월(30),
7월(31), 8월(31), 9월(30), 10월(31), 11월(30), 12월(31)로 만들었다.
[87] 一始無始一에서 시작하여 一終無終一로 끝나는 것에서 보듯 시작과 끝은 하나로 서로가 맞물려 순환하는
원리를 표현하였다.
[88] 종시(終始)로 표현, 시작과 끝이 하나로 연결이 되어 하루 하루가 끝까지 가서 다시
[89] 1년(年)을 말함
[90] 오늘날의 1주일을 말하는 것으로 오늘날의 요일(曜日)이란 것은 여기서 유래를 한 것이다.
[91] 요(曜)가 끝나는 것을 복(服)이라 하니 요복(曜服)이라 함은 각 요일의 시작에서 끝까지 그러니까 7일을 뜻하
는 것이다.
[92] 오늘날의 윤년을 말한다
[93] 단기고사에 보면 43세 단군 때 융안(隆安)의 사냥꾼 우화충(于和沖)이 장군을 자칭하며 무리를 모아 서북 36
군을 함락 시키며 난을 일으키고, 46세 단군 때에 한개(韓介)가 수유의 군대를 이끌고 궁궐을 침입하였고, 47세
단군 때는 해모수가 웅심산(熊心山)을 내려와 군대를 일으키는등 삼한(조선)의 말기에는 크고 작은 반란이 곳곳에
서 일어 나게 된다.
[94] 우화충(于和沖)의 반란을 진압하고 단군이 되어 나라의 이름을 대부여(大夫餘)로 고치고 삼한(三韓)을 삼조선
(三朝鮮)으로 바꿔 불렀다. 삼조선이란 신조선(辰韓), 불조선(卞韓), 번조선(馬韓)을 말한다.
[95] 낙랑(樂浪), 진번(眞番), 임둔(臨屯), 현도(玄 )
[96] 사마천은 조선과 한의 전쟁을 하던 B.C 108년에 한무제에 의해 태사령(太史令)에 등용된다. 태사령이란 비록
그 지위는 낮으나 조정의 문서, 역사, 천문, 역법 등을 관장하는 부서의 최고 책임자였다. 그는 당시의 상황을 누
구보다 잘 알 수가 있는 위치였고, 이것을 기록으로 남기니 이것이 사기(史記) 115권 조선열전(朝鮮列傳)이다. 따
라서 당시의 이 기록은 후세의 어느 기록보다 신뢰성이 있는 기록이라 하겠다. 만약 한나라가 조선을 이겨 한사군
을 설치를 했으면, 이 중요한 기록이 사기에 빠졌을 이유가 없다.
[97] 번조선의 유민인 조선족 장수 최(最)가 우거를 죽이고, 우거가 죽자 다시 반항하던 성기(成己)를 죽였는데 이
일의 주역이 모두 조선족이다.
[98] 강단사학자들이 주장하는 국사에서는 조선의 강역을 한반도로 한정을 했는데 여기에서 보면 최소 발해 연안에
서 산동반도까지 인 것을 알 수 있다.
[99] 신라를 세운 인물로 부도지(符都誌)를 만든 박제상의 직계 조상이 된다.
[100] 금(金)이란 고귀한 성스러운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척(尺)이란 자로서 사물을 재는 척도로 사용하는 도구로
바른 법도(法道)나 기준(基準)을 뜻하는 것이다. 해서 금척이란 고귀한, 또는 성스러운 법도 즉 부도의 법을 상징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