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 도 지(符 都 誌)
제 1 편 : 마고(麻故)의 시대(第一章 ∼ 第四章)
제 2 편 : 부도(不渡)의 시대(第五章 ∼ 第十章)
제 3 편 : 배달국 시대(第十一章)
제 4 편 : 임검(壬儉)씨 시대 (조선시대)(第十二章 ∼ 第十六章)
제 5 편 : 오행(五行)의 화(禍)(第十七章 ∼ 第二十四章)
제 6 편 : 잃어버린 부도의 법(第二十五章 ∼ 第二十六章)
제 7 편 : 삼한에서 삼국으로(第二十七章, 小符都誌)
제 8 편 : 어둠 속으로(第二十八章 ∼ 第三十三章)
부도지(符都誌) 제4편 : 임검(壬儉)씨 시대 (조선시대)(第十二章 ∼ 第十六章)
- 김은수 역, 양해전 편역, 부산민박사님 -
□ 第十二章 천웅의 도
환웅씨가 임검(壬儉)씨를 낳았으니
이때에 사해의 제족(諸族)이
천부의 이치를 익히지(講) 아니하고,
스스로 미혹(迷惑)속에 빠져 세상이 고통스러웠다.
임검씨가 천하에 깊은 우려를 품고
천웅의 도(天雄之道)를 닦아,
계불의식을 행하여 천부삼인을 이어받았다.
농사를 짓고, 누에를 치고, 뽕잎을 먹고, 그릇을 굽는 법을 가르치고,
교역(交易)하고, 결혼하고, 족보를 만드는 제도를 공포하였다.
임검씨가 뿌리를 먹고 이슬을 마시므로 몸에는 털이 길게 나가지고,
사해를 널리 돌아다니며 제족을 차례로 방문 하였다.
백년 사이에 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천부를 비추어서(照證) 수신(修信)하고,
미혹함을 풀고 근본으로 되돌아갈 것(解惑復本)을 맹서하며,
부도(符都) 건설을 약속함을 정하니,
이는 지역은 멀고 소식은 끊어져,
제족의 땅에 언어와 풍속이 점차로 변하여 서로 다르게 되었기 때문에,
함께 모여 화합(協和)하는 자리에서,
천부의 이치를 익혀(講) 분명하게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후일 (한 달에 한번씩) 모여 배우고 익히는(會講) 실마리가 되니,
사람들의 일이 번거롭고 바빠,
익히지 않으면 (천부의 이치를) 잊어버리기 때문이었다.
桓雄氏生壬儉氏
환웅씨생임검씨
時 四海諸族 不講天符之理
시 사해제족 부강천부지리
自沒於迷惑之中 人世因苦
자몰어미혹지중 인세인고
壬儉氏懷憂於天下 修天雄之道
임검씨회우어천하 수천웅지도
行禊祓之儀 繼受天符三印
행계불지의 계수천부삼인
敎耕稼蠶桑陶窯之法
교경가잠상도요지법
布交易稼聚譜錄之制
포교역가취보록지제
壬儉氏 啖根吸露 身生毛毿
임검씨 담근흡로 신생모삼
遍踏四海 歷訪諸族 百年之間 無所不往
편답사해 역방제족 백년지간 무소불왕
照證天符修身 盟解惑復本之誓 定符都建設之約
조증천부수신 맹해혹복본지서 정부도건설지약
此 地遠信絶 諸族之地言語風俗
차 지원신절 제족지지언어풍속
漸變相異故 慾講天符之地理於會同協和之席而使明知也
점변상이고 욕강천부지지리어회동협화지석이사명지야
是爲後日會講之緖 人事煩忙 不講則忘失故也
시위후일회강지서 인사번망 부강칙망실고야
주석 해설)
* 본문중 葛(칡)은 桑(뽕)으로 바뀌어야 한다.
[1] 임검씨란 무리들 즉, 인간들 중에 왕을 말하는 것으로 최초로 인간들 중에서 지도자가 나온 것을 말한다. 이때
를 조선으로 추정하는데 하늘이 주신 나라라 하여‘쥬신’이라 하였고 이의 이두식 표기가‘조선’이 되는 것이다.
[2] 인간들중에 왕이란 말이며 이전 한인 한웅때 까지는 마고성에서 나온 천손족중에서 왕이 나왔으나 이때 처음으
로 인간들중 왕이 나왔으니 이때야 비로서 천손족과 지손족의 완전한 결합이 이루워 졌다. 기록에서 보면 [단군 한
배검께서는 조선의 전체를 3한(三韓, 三王)이 나누워 다스리게 하고, 한배검 자신은 진임금(辰王)인 진한(辰韓)으
로써 마한(馬韓)과 변한(卞韓)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때 곰겨레(熊族)의 자손인 웅백다(熊伯多)란 사람을 마한(馬
韓, 마임금)으로 삼고 치우(蚩尤)의 후손 가운데 지혜와 슬기와 용기와 힘이 뛰여난 치두남(蚩頭男)을 변한(卞韓)
으로 삼았다]라 하여 이들이 완전하게 융화가 되었음을 말한다.
[3] 부도 : 단군조선의 수도. 천부의 도시라는 뜻이다. 그러나 부도는 단순히 단군조선의 수도만을 가리키지는 않
는다. 부도는 세계의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로서 온 천하의 공도公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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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 제12장 13.07.28
第十二章
桓雄氏生壬儉氏 時 四海諸族 不講天符之理 自沒於迷惑之中 人世因苦 壬儉氏懷大憂於天下 修天雄之道
行禊祓之儀 繼受天符三印 敎耕稼蠶葛陶窯之法 布交易稼聚譜錄之制 壬儉氏ㅣ啖根吸露 身生毛毿
遍踏四海 歷訪諸族 百年之間 無所不往 照證天符修信 盟解惑復本之誓 定符都建設之約 此 地遠信絶
諸族之言語風俗 漸變相異故 欲講天符之理於會同協和之席 而使明知也 是爲後日會講之緖 人事煩忙
不講則忘失故也.
환웅씨가 임검씨를 낳으시니, 이때는 사해의 모든 족속이
천부의 이치를 강론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미혹의 가운데 빠져 있는 때였다.
인간세상의 고통으로 인하여 임검씨가 괴로워하고 크게 걱정하였다.
이에 천하에서 천웅의 도를 닦고 계볼의 의례를 행하게 하며, 천부삼인을 계승하여 받고,
경작하여 농사짓는 법과 누에치고 칡을 쓰며, 그릇을 굽는 법 등을 가르쳤다.
교역을 베풀고 혼인하는 것과 족보를 기록하는 제도를 공포하였다.
임검씨가 뿌리를 먹고 이슬을 마시므로 그 몸에 난 털이 길게 드리워졌다.
사해를 두루 밟고 여러 족속을 차례로 방문하기를 거듭하니 백년 사이에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천부를 밝게 증명하여 믿음을 닦고, 해혹복본의 서약을 굳게 하며, 부도 건설의 약속을 정하였다.
이는 땅은 멀고 믿음은 끊어져 여러 족속들의 언어와 풍속이 점차 변하여 서로 다르게 된 까닭에,
천부의 이치를 함께 모여 협동하고 화합하는 자리에서 강론하여, 그 앎을 밝게 하고자 함이었다.
이것이 후일 회강, 즉 모여 강론함의 시발이 되었으니,
인간사의 일이 번거롭고 바빠서 강론하지 않은 즉 잊고 버리기 때문이었다.
오늘까지 임검씨의 이야기가 나왔네요.... myh1117 13.07.28
부도지의 전체 흐름은 신라의 역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환단고기가 고구려의 역대를 중심으로 하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죠...
이런 신라의 최대 무기는 금척이라는 해인입니다.
해인방장에 대해서는 무수한 이야기와 전설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 중에 어떤 것이 진실인지 또는 그 모든 이야기가 다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지금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학생부군신위라!
사람은 죽을 때까지 공부하다가 가는 것이겠죠....
그런 공부 가운데는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입시나 입사공부도 있을 수 있고,
사람답게 살기 위한 인간학 인문학 윤리학 같은 것도 있을 수 있고,
또 이상한 재주를 배워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며 살 수도 있고, 반대로 도우면서 살 수도 있죠....
나는 어떤 걸로 지금 배워 살고 있는 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한국철학을 전공하고 공부하며 학생들을 가르쳐 온 인생이라...
여전히 나는 한국인의 삶과 문화 가운데 생의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고대성의 해혹복본의 이치가 무엇일지 오늘도 곰곰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수계제볼이라, 옛 어른들은 무엇으로 천지에 대속하고자 하였는지 좀 더 알아가 보기로 합니다.
□ 第十三章 천부단
임검(壬儉)씨가 돌아와 부도(符都)를 건설할 땅을 택하였다.
즉 동북의 자석이 가르키는 방향(磁方)이었다.
이는 2와 6이 교감(交感)하는 핵심지역이요,
4와 8이 상생(相生)하는 결과의 땅이었다.
밝은 산과 맑은 물이 만리에 뻗어 있고,
바다와 육지가 서로 통하여 십방으로 갈리어 나가니,
즉 9와 1의 끝과 시작이 다하지 않는 터전이었다.
인삼(三根靈草)과
잣(五葉瑞實)과,
일곱가지 색깔의 옥돌(七色寶玉)이
금강(金剛)의 심장부에 뿌리를 내려,
전 지역에 두루 가득하니,
이는
1과 3과
5와 7의 자삭(磁朔)의 정(精)이 모여,
바야흐로 물체를 만드는 복된 땅이었다.
곧 태백산(太白山)1) 밝은 땅의 정상에
천부단(天符壇)2)을 짓고
사방에 보단(堡壇)을 설치 하였다.
보단의 사이에는 각각 세 겹의 도랑길로 통하게 하였다.
도랑길의 사이는 천 리였으며,
도랑길의 좌우에 각각 관문을 설치하여 지키게 하였다.
이는 마고본성(麻故本城)3)에서 그 법을 취한 것이었다.
壬儉氏 歸而擇符都建設之地
임검씨 귀이택부도건설지지
卽東北之磁方也
즉동북지자방야
此 二六交感懷核之域
차 이육교감회핵지역
四八相生結果之地
사팔상생결과지지
明山麗水 連亘萬里 海陸通涉 派達十方
명산려수 련긍만리 해륙통섭 파달십방
卽九一終始不咸 之其也
즉구일종시부함 지기야
三根靈草
삼근영초
五葉瑞實
오엽서실
七色寶玉
칠색보옥
托根於金剛之臟 遍滿於全域
탁근어김강지장 편만어전역
此一三五七磁朔之精
차일삼오칠자삭지정
會方成物而順吉者也
회방성물이순길자야
乃築天符壇於太白明地之頭
내축천부단어태백명지지두
設保壇於四方
설보단어사방
保壇之間 各通三道溝
보단지간 각통삼도구
其間이 千里也
기간이 천리야
道溝左右 各設守關
도구좌우 각설수관
此取法於麻故之本城
차취법어마고지본성
주석 해설)
1) 태백산(太白山) : 흑룡강성 백산. 완달산맥 끝부분 칠성산(七星山)에서는 세계최초이자 유일한 칠성재단이 발견
되었다. (6500년전 유물로 추정)
2) 천부단(天符壇) :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과 같은 것이다.
3) 마고본성(麻故本城) : 수미산 인근에서 발견된 100여개의 인공 피라미드를 확인하면 그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 자방 : 지자기地磁氣가 있는 곳, 지자계地磁界, 자기력의 장場, 즉, 자기력이 미치는 공간을 말한다. 고대인은
자기를 지구의 힘으로 생각했으며, 자기가 많은 곳을 가장 신성하게 여겨 신전 등을 건립했다.
[2] 삼근영초 : 인삼, 「시市에 온 사람들은 영주瀛州 대여산岱與山 계곡에서 삼영근三靈根을 얻으니 곧 인삼이었
다. 그것을 ‘영주 해삼海蔘’이라 하였으며, 능히 삼덕三德을 보전하고 돌아갔다.」(<부도지> 16장 참조).
[3] 자삭 : 북쪽 자장磁場.
[4] 태백산 : 단군이 도읍한 태백산은 지금의 백두산이 아니라 중국 섬서성에 있는 태백산이다. 단군이 이곳을 도
읍지로 정한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태백산이 옛 한웅의 도읍지라는 데에 큰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후에 단
군은 만주의 하얼빈으로 도읍지를 옮겼는데, <부도지>에 따르면 요의 습격 때문이었다. 《광주廣州 이씨 세가보世
家譜》는 단군의 도읍지가 태백산 아래라 하고, 23년 경인년에 평양, 지금의 만주 요양 또는 개평현으로 옮겼다고
했다. 태백산을 백두산으로 본 것은 옳지 않으나 도읍지를 옮겼다는 내용은 <부도지>와 일치한다.
[5] 천부단 : 천단天壇. 하늘에 제사지내기 위한 제단.
[6] 보단 : 보堡는 ‘작은 성 보’로 새기며, 적을 막기 위하여 만든 견고한 구축물을 말한다. 단壇은 ‘제터 단’
으로 새기니, 즉, 신단神壇을 뜻한다. 천부단이 순수한 신단이라면 보단은 군사적 목적도 있는 것 같다. 마고성과
부도는 같은 형태로 지어졌는데, 중심에는 천단이, 주위 사방에는 보단이, 그 사이에는 소巢와 궁穹이 있었던 듯
하다. 그 주위를 삼조통구三條通溝, 즉, 세 겹의 도랑으로 둘러쌌으며, 다시 보의 좌우에는 관문을 설치하였다. 소
巢에는 ‘망루’라는 뜻이, 궁穹에는 ‘막는다’는 뜻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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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 제13장 13.07.29
第十三章
壬儉氏ㅣ歸而擇符都建設之地 卽東北之磁方也 此 二六交感懷核之域 四八相生結果之地
明山麗水ㅣ連亘萬里 海陸通涉派達十方 卽九一終始不咸之基也 三根靈草 五葉瑞實 七色寶玉
托根於金剛之臟 遍滿於全域 此一三五七磁朔之精 會方成物而順吉者也 乃築天符壇於太白明地之頭
設保壇於四方 保壇之間 各通三條道溝 其間千里也 道溝左右 各設守關 此取法於麻故之本城
劃都坊於下部之體 圜涵澤於三海之周 四津四浦ㅣ連隔千里 環列於東西 津浦之間 又設六部
此爲諸族之率居也 符都旣成 雄麗光明 足爲四海之總和 諸族之生脉.
임검씨가 돌아와 부도를 건설할 땅을 선택하니, 이곳은 동북의 자방, 즉 자기가 강한 곳이었다.
이는 이와 육, 즉 화수가 교감하여 그 정기를 품은 지역이요,
사와 팔, 즉 금목이 서로 상생하여 과실을 맺은 땅이었다.
밝은 산과 맑은 물이 만리에 걸쳐 이어져 있고,
바다와 육지가 서로 통하여 파도만 넘으면 십방, 곧 온 세상에 도달하는 곳이었다.
즉 구와 일, 곧 금수가 긑과 시작으로 이어져 다함이 없는 터였던 것이다.
삼근영초, 즉 세 뿌리를 지닌 신령한 풀과 오엽서실 즉 다섯 개의 이파리와 상서로운 열매,
그리고 일곱색깔의 보옥이 금강의 심장부에 그 뿌리를 맡기고, 이들이 두루 전 지역에 가득한 곳이었다.
이것은 일 삼 오 칠 자삭, 즉 자기가 처음 시작하는 그 정기가 함께 모여
마침내 사물을 만들어 내는 순하고 길한 것이었다.
이에 태백의 밝은 땅 그 꼭대기에 천부단을 쌓고, 사방에는 이를 지키는 보단을 건설하였다.
보단의 사이는 각각 세 가지의 길과 도랑으로 통하게 하니, 그 사이가 천리였다.
길과 하천의 좌우에는 각각 이를 지키는 관문을 설치하였으니,
이는 마고의 본성을 따라 그 방법을 취한 것이다. 그 아래의 몸체에는 도시와 저자거리를 구획하고,
세 바다로 물과 연못을 넣어 주위를 잠기게 하여 둘렀다.
사진사포, 즉 네 개의 나루와 네 물가가 천리를 떨어져 있으나 서로 연결되니,
동서로 반지처럼 늘어선 것이다.
진과 포의 사이에 또 육부를 설치하니, 이는 여러 족속들이 서로 모여 살게 함이었다.
부도가 이미 이루어지자 웅장하고 화려하며 밝고 빛나니,
사해의 총화가 되기에 충분하고 여러 족속들의 생맥, 즉 삶의 의미와 그 맥락이 되기에 족하였다.
부도란 신라의 옛 도읍을 의미한다. myh1117 13.07.29
신라 또는 사례, 서라벌, 사로 등
옛날 신라의 지명은 결국 부도로부터 유래하는 도읍의 명칭이며, 그 뜻은 한결같이 새로운 땅을 의미한다.
물론 부도란 하늘의 뜻에 부합한다는 뜻이며, 이로써 하늘과의 친연성을 드러낸 것이다.
멀리로는 황궁씨로부터 출발하는 복본의 의미를 쫓아
신라의 유민들은 항상 하늘의 뜻을 대신한다는 문명 개화의 자부심을 그 내면에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마고로부터 시작하는 부도지의 기사는 오늘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설명하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기록하고 세상에 남긴 이가 박제상 공이 틀림 없다면,
당시 신라인의 입장에서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았는가 하는 것을 충분히 짐작해 볼 수도 있는 일이다.
사실 오늘 낮에는 경주를 가서 황룡사터를 들러보고 왔다.
팔만제곱미터가 넘는 규모니, 대략 2만 5천평 이상의 부지이다.
그 곳에 9층 목탑을 지어 12제국의 조공을 받았다 하였으니, 이와 부도지의 기사는 각기 연결되는 바가 있다.
우리가 아는 신라와 당나라의 관계가 과연 어느 정도 진실일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신라방이란 것이 있었고, 담로 또는 다마국이란 것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삼국의 해외 영토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물론 이것을 제국주의적 시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는 마치 오늘의 한류와 같이, 문화적 동질성으로 함께 한 동맹이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존재함으로서, 신라 새벌 서라벌 부도 곧 서울은 국제적인 중심지였던 셈이다.
□ 第十四章 성황당
이에 황궁씨의 후예 6만을 (부도에) 이주시켜 지키게 하고,
곧 나무를 베어 뗏목 8만을 만들어서,
신부(信符)를 새겨 천지(天池)의 물에 흘려 보내,
사해의 제족을 초청하였다.
제족이 그 신부가 새겨진 뗏목을 얻어서 보고,
차례로 모여드니 박달나무 숲에 신시를 크게 열고,
계불로 마음을 깨끗이 하여(修禊淨心)하여,
하늘의 움직이는 모습(天象)을 살핀 후,
마고의 계보(系譜)를 살펴 그 족속(族屬)을 밝히고,
천부의 음에 준하여 그 말과 글을(語文)을 정리1) 하였다.
또 북극성(北辰)과 칠요(七耀)2)의 위치를 정하여
반석의 위에서 속죄의 희생물을 구워 제사(奠)를 올리고,
모여서 노래하며 천웅(天雄)의 악(樂)을 연주하였다.
제족이 방장산(方丈山) 방호의 굴(方壺之堀)에서
칠보의 옥을 채굴하여 천부를 새기고
그것을 방장해인(方丈海印)3)이라 하여
칠난(七難)을 없애고 돌아갔다.
이로부터 매 10년마다 반드시 신시를 여니,
이에 말과 글(語文)이 같아지고,
천하가 하나로 되어 사람들이 크게 화합(太和)하였다.
인하여 바닷가에 성황(城隍)4)을 지어
천부에 제사를 올리고,
제족으로 하여금 머물러 집을 지어 살게 하니,
그 뒤에 천년 사이에 성황이 전역에 널리 퍼졌다.
於是 移黃穹氏之裔六萬 守之
어시 이황궁씨지예육만 수지
乃割木作桴八萬
내할목작부팔만
刻信符流放於天池之水 招四海諸族
각신부류방어천지지수 초사해제족
諸族 得見信桴 次第來集
제족 득견신부 차제래집
大開神市於朴達之林 修禊淨心察干天象
대개신시어박달지림 수계정심찰간천상
修麻姑之譜 明其族屬
수마고지보 명기족속
準天符之音 整其語文
준천부지음 정기어문
又奠定北辰七耀之位
우전정북진칠요지위
燔贖於盤石之上
번속어반석지상
會歌而奉天雄之樂
회가이봉천웅지악
諸族 棌七寶之玉於方丈方壺之堀
제족 채칠보지옥어방장방호지굴
刻天符而謂之方丈海印
각천부이위지방장해인
辟除七難而歸
벽제칠난이귀
自此 每十歲必開神市
자차 매십세필개신시
於是 語文同軌
어시 어문동궤
一準天下 人世太和
일준천하 인세태화
仍而(仍以)築城於海隅
잉이(잉이)축성어해우
奉奠天符
봉전천부
使駐留諸族 舘(館)而居之
사주류제족 관(관)이거지
爾來千年之間 城隍 遍滿於全域
이래천년지간 성황 편만어전역
주석 해설)
1) 어문(語文) : 단군세기에 보면 ‘3세 가륵 단군시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었는데 이를 가림토
라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2) 칠요(七耀) : 일월(日月)과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
3) 방장해인(方丈海印) : 산동성에 봉래라는 지역이 있으며(현재 등주) 봉래 앞바다에 삼산이라는 섬이 있는데 삼
신산으로 추정되고 있다. 봉래, 삼(신)산, 방장산 등은 발해만 인근을 지칭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영주라는
지명도 산동성 위쪽에 존재한다. 아니면 성스러운 땅이었던 한반도를 의미하는 것인가?
4) 성황(城隍) : 성황당의 의미를 짐작케하는 부분이다. 성황당은 아시아 전체에 널려져 있다. 성황당은 마고의 역
사를 전해주던 신성한 지역이었던 것이다.
* 성황당이 방방곡곡 마을 어귀에 있는 곳은 우리나라 뿐이다
성황당은 아시아 전체에 분포되어 있다. 성황당은 마고의 역사를 교육하던 곳이었으며, 주인공은 마고였다.
[1] 황궁씨의 후예 : 파미르고원의 마고성에서 천산주로 옮겨 유인씨의 시대를 보내고, 한인의 적석산積石山 시대
를 거쳐서 태백산의 한웅시대에 이른다. 배달국의 14대 자오지 한웅慈烏支桓雄 때 청구靑邱로 옮겼다가 다시 태백
산으로 돌아왔다.
[2] 천지 : 천지라면 일반적으로 백두산에 있는 천지를 가리킨다. 그러나 세 겹의 도랑이 부도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었다는 내용으로 보아 ‘천지’가 단순한 고유명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물은 고대인들에게 생명의 원천으로 받
아들여지며, 돌과 함께 기본 축성재임을 밝힌 바 있다.
[3] 신시 : 신국神國의 제천祭天 및 물품 교환 장소를 가리키며, 장소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한다. 정치적인 중심
지인 부도에서 행하는 것은 ‘신시’라 하고, 육산물의 중심지에서 행하는 것은 ‘조시朝市’라 했으며, 해산물의
중심지에서 행하는 것은 ‘해시海市’라고 했다. 그 목적은 첫째가 종족들 간의 연락과 화합이었으며 물품 교환은
부수적인 것이었다. 아마도 이것은 후에 조공으로 변한 듯하다. 신라에서는 남태백산에서 신시를, 달구에서 조시
를, 율포에서 해시를 열었다고 했다(<부도지> 29장 참조, 27장에서 33장까지는 <소부도지小符都誌>임). 신시와 조
시와 해시를 합하여 ‘제시 祭市’라고도 했다.
[4] 천부의 음 : 한국어의 음 또는 천부경의 음. 한국어는 종성이 가장 발달된 언어다. 일본어나 중국어는 원칙적
으로 종성이 없다. 서양의 여러 언어의 종성은 몇 개 되지 않는다. 한국어는 초성이 19자, 중성이 21자, 종성이 28
자로, 인류 역사에 이처럼 종성이 발달된 언어는 일찍이 없었다. 한국어는 초성 · 중성 · 종성을 합하여 11,172
개의 문자를 만들 수 있으며, 이들을 결합하여 20만개 이상의 어휘를 만들 수 있다.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발전한다는 문화발달이론에 비추어 볼 때 이처럼 월등하게 종성이 발달되어 있는 한국어는 그 기원이 가장 오래된
언어임을 알 수 있다.
[5] 말과 글을 정리하였다 : 《한단고기》의 3세 단군 가륵嘉勒 2년(서기 전 2181년) 조에, 「아직 풍속이 하나같
지 않았으며 지방마다 말이 서로 달랐다.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상형표의象形表意) 진서眞書가 있었으나, 열 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아니하고 백 리 되는 땅의 나라에서도 서로 글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때에 삼랑三郞
을보륵乙普勒에게 명하여 정음正音 38자를 만들어 이를 가림토加臨土라 하며…」라 했는가 하면, 《단기고사》에
도,「2년 봄에 박사 을보륵에게 명하여 國文正音을 정선精選하였다.」고 했다.(해설, <단군조선의 문화와 정치> 참조)
[6] 칠요 : 일월日月과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 칠정七政.
[7] 천웅의 악 : 옛 신들을 노래한 시가(고신가古神歌). 《한단고기》에는 ‘어아가於阿歌’ 등 4 편의 고신가가
전해지고 있다.
[8] 천부를 새기고 : 여기에서 말하는 천부는 천부경인 것 같다. 《구약성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돌
판 두 개를 처음 것처럼 다듬어 놓아라. 그러면 그 돌판에다 지난번에 네가 깨뜨린 첫 돌판에 써 주었던 글을 내가
다시 새겨 주리라……」(<출애굽기> 34장 참조).
[9] 방장해인 : 돌판에 천부경을 새긴 천부인의 하나.
[10] 성황 : 씨족이나 부족단위로 제천을 하던 장소로 소소도小蘇塗인 것 같다. 신시는 상소도上蘇塗, 조시나 해시
는 중소도中蘇塗에서 행해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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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 제14장 13.07.30
第十四章
於是 移黃穹氏之裔六萬 守之 乃割木作桴八萬 刻信符流放於天池之水 招四海諸族 諸族得見信桴
次第來集 大開神市於朴達之林 修禊淨心察于天象 修麻姑之譜 明其族屬 準天符之音 整其語文
又奠定北辰七耀之位 燔贖於盤石之上 會歌而奏天雄之樂 諸族 採七寶之玉於方丈方壺之堀
刻天符而謂之方丈海印 辟除七難而歸 自此每十歲必開神市 於是 語文同軌一準天下人世太和
仍以築城於海隅 奉奠天符 使駐留諸族 舘而居之 爾來千年之間 城隍遍滿於全域.
이에 황궁씨의 후예 육만이 이주하여 부도를 지켰다.
또 나무를 베어 뗏목 8만개를 만들어 신부, 즉 믿음의 징표를 새기고,
천지, 곧 하늘 연못의 물에 띄워 흘려보내며 사해의 모든 족속을 초청하였다.
모든 족속이 신부가 새져진 뗏목을 보고 차례로 모여 들어왔다.
박달, 곧 배달의 숲에 신시를 크게 열어,
수계정심, 즉 목욕재계하여 청정한 마음을 닦고, 하늘의 상을 살폈다.
또 마고로부터 유래한 족보를 수학하여, 그 족속이 어디에 속하는지를 밝혔다.
그리고 천부의 음에 기준하여 그 말과 글을 정리하였다.
또한 북진 칠요의 위치를 정하고, 반석 위에 속죄의 희생을 구워 제사하였며,
함께 모여 노래 부르고 천웅의 음악을 연주하였다.
모든 족속이 방장산 방호의 굴, 즉 각진 단지와 같이 생긴 굴에서 칠보의 옥을 캐어,
천부를 새기고, 이를 이름하여 방장해인이라 하였으며, 칠난을 제거하는 법으로 삼고 돌아갔다.
이로부터 매 십년마다 반드시 신시를 열었다.
이에 말과 글이 같아지고 천하가 한가지로 평평해지니, 인세가 크게 화락하였다.
거듭하여 바닷가에 성을 쌓고 천부를 받들어 제사지냄으로써,
머물러 거주하는 여러 족속들로 하여금 또한 객사를 지어 살게 하였다.
이로부터 천년이 지나는 동안 온 지역에 성황, 즉 성과 해자가 두루 널리 채워지게 되었다.
아득한 고대, 들어본 적 있는 옛날, 그리고 진실 myh1117 13.07.30
부도지는 참 난해한 역사입니다.
작품이라 해야할 지, 진실의 근원이라 해야할지,
역사도 아닌 것이 역사 임에 틀림없고,
이해하자니 지금까지 한국사학계에서 언설해 온 모든 것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느낍니다.
역사학자들이 어찌 이 글에 동조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오늘은 성황과 신시, 방장해인 등 많은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밝달 곧 배달의 이야기도 나오지요...
결국 밝은 땅, 신라는 양달 응달의 땅과 같이 밝은 땅으로 배달이 되고,
밝은 나라의 의미로 환국이 되며 이는 또 한국이 되고, 크게 밝은 나라로서, 대한민국이 되지요..
아! 민국이라 하였으니, 크게 환한 땅의 밝은 백성 또는 그 사람들에 의한 나라라는 의미가 되겠군요
이로부터 본다면, 백제 역시 밝은 땅이요, 고구려 역시 높고 밝은 나라라는 뜻이며,
조선과 부여는 아침의 밝고 맑음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고려는 화려 장엄이라는 화엄의 뜻도 가지고 있겠네요....
어제 저녁에 삼족오에 관하여,
에서 한류의 고대적 성격이라는 주제로 방영하는 것을 잠시 보았습니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나오시고, 대부분은 제가 아는 분들이었는데,
한결같이 황하문명에 앞선 홍산문화의 특이성이라고 말씀들 하시더군요...
또 삼족오를 삼수분화의 특성으로 보고, 이태극과 삼태극의 차이라고 하면서,
사실상 중국의 동북공정 역시 이러한 홍산문화의 발견과 더불어 일어나게 된 것임을 말하더군요....
그런데 이 분들과 단군할배 이야기를 하게 되면, 저는 그냥 바보 취급을 받게 됩니다. 참 억울하죠...
환단고기와 부도지가 무엇을 믜미하는 지를 모르는 한국의 역사학자들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말이 길어지는 것 같아..
오늘은 우선 삼족오란 결국 삼일철학의 고대적 상징이었음을 간단히 말해둡니다.
□ 第十五章 조선제
또 예(澧)1)와 양(陽)2)이 교차하는 중심지에 조시(朝市)를 설치하고,
팔택(八澤)3)에 해시(海市)를 열어 매년 10월에 조제(朝祭)를 지내니,
사해의 제족이 모두 지방 토산물을 바쳤다.
산악의 제족은 사슴과 양을 바치고,
해양 제족은 물고기와 조개를 바쳐 송축하기를
‘고기와 양을 희생으로 조제(朝祭)3)에 받들어 올리니(供進),
오미(五味)의 피를 신선하게 하여,
창생(蒼生)의 재앙(咎)을 그치게 하네“하였다.
이를 가리켜 ‘조선제(朝鮮祭)’라 하였다.
이때에 산악과 해양의 제족이 생선과 육(肉)고기를 많이 먹으니,
교역하는 물건의 대부분이 절인 어물과 조개와 가죽류였기 때문에,
곧 희생제(犧牲祭)5)를 행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반성하고 조상의 은공에 보답하게 하였다.
피에 손가락을 꽂아 생명을 성찰하고,
땅에 피를 부어 기른 공을 보답하니,
이는 희생으로서(代物) 대신 오미의 잘못을 보상하여 재앙을 멎게 하기 위함이다.
즉 육신고충의 고백이었다.
언제나 새해맞이 제사(歲祭)때에는
물화(物貨)가 폭주하므로 네 나루와 네 포구에 해시를 크게 열고,
몸을 깨끗이 하여 지리(地理)를 거울 삼아 교역의 법을 시행하여,
그 값과 분량을 정하며
물성(物性)의 근본을 분별하여 이용하는 법을 밝혔다.
또 부도에 있는 여덟 개의 연못(八澤) 모양을 본떠서 못을 파고,
굽이굽이 흐르는 물(曲水)의 사이에서
추수감사제(報賽)6)를 지내고,
모여서 잔치(會燕)하여
모든 물자를 구제하는(濟物) 의식(儀式)을 행하였다.
제족이 봉래산 원교봉(圓嶠峯)7)에서
오서(五瑞)의 열매를 얻으니,
즉 잣나무 열매였다.
‘봉래 해송(海松)’이라 하여,
은혜로운 다섯가지 행운(五幸)을 얻고 돌아갔다.
이로부터
사해에 산업이 일어나서
교역이 왕성해지므로
천하가 넉넉하여 부족함이 없었다.
又設朝市於澧陽交地之復(腹)
우설조시어례양교지지복(복)
設海市於八澤 每歲十月 行朝祭
설해시어팔택 매세십월 행조제
四海諸族 皆以方物 供進
사해제족 개이방물 공진
山岳諸族 供之以鹿羊
산악제족 공지이록양
海洋諸族 供之以魚蚧
해양제족 공지이어개
乃頌曰 ‘朝祭供進魚羊犧牲五味血鮮休咎蒼生’
내송왈 ‘조제공진어양희생오미혈선휴구창생’
此謂之朝鮮祭
차위지조선제
是時 山海諸族 多食魚肉
시시 산해제족 다식어육
交易之物 擧皆包具皮革之類故
교역지물 거개포구피혁지류고
乃行犧牲之祭 使人反省報功也
내행희생지제 사인반성보공야
揷指于血 省察生命
삽지우혈 성찰생명
注往血于地 環報育功
주혈우지 환보육공
次代物而償五味之過 願其休咎
차대물이상오미지과 원기휴구
卽肉身苦哀之告白也
즉육신고애지고백야
每歲祭時 物貨輻溱 廣開海市於津浦
매세제시 물화복진 광개해시어진포
除祓禊身 鑑于地理 行交易之法
제불계신 감우지리 행교역지법
定其値量 辨物性之本 明其利用
정기치량 변물성지본 명기이용
又象鑿符都八澤之形
우상착부도팔택지형
報賽於曲水之間
보새어곡수지간
會燕而行濟物之儀
회연이행제물지의
諸族 取五瑞之實於蓬萊圓嶠之峰
제족 취오서지실어봉래원교지봉
卽栢子也
즉백자야
謂之蓬萊海松
위지봉래해송
惠得五幸而歸
혜득오행이귀
自此 四海興産
자차 사해흥산
交易殷盛 天下裕足
교역은성 천하유족
주석 해설)
1) 예(澧) : 호남성을 흘러 동정호에 들어가는 강, 하남성 동백현에서 발원하여 서북으로 흐르는 당하의 지류
2) 양(陽) : 한수의 북쪽. 예와 양이 교차하는 곳은 무당산이 있는 무산일 가능성이 있다.
- 동정호를 중심으로 한양, 한강(태백산), 강릉 등등 한반도 지명배치와 동일하다.
3) 팔택(八澤) : 양자강 좌우의 아홉 개의 연못 또는 그 연못들이 있는 지역
* 구택(九澤) : 대륙(大陸), 뇌하(雷夏), 맹제(孟諸), 하택(荷澤), 영택(榮澤), 대야(大野), 팽려(彭蠡),
진택(震澤), 운몽(雲夢)
4) 조제(朝祭) : 조선제의 준말. 소도제천 행사를 말함
5) 희생제(犧牲祭) : 이슬람 등 중동의 ‘희생제’는 조선제의 유습이다. 서쪽 중근동 지방으로 나간 백소씨의 후
예들인 것이다.
6) 보새(報賽) : 해마다 가을에 농사를 마치고 신의 공덕과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서양의
추수감사제의 원형이 아닌가 생각한다. 서쪽으로 출성한 백소씨의 씨족들 말이다.
7) 교(嶠) : 교는 발해의 동쪽에 있는 산 이름
<1> 고기(魚)와 양(羊) 합하면 선(鮮)이란 글자가 된다. 우리나라를 말하는 조선(朝鮮)글에서 보면 조(朝)란 해
(日)와 달(月)의 밝음이 합하여 완성이 되는 것을 형상화 시킨 글자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조(朝)란 광명, 하늘
(天)을 뜻하고 선(鮮)이란 위에서 보듯이 제사를 말하는 것으로 합하면 천제(天祭)를 뜻하여 조선만이 하늘에 제사
를 지내는 자격이 있는 것을 뜻한다.
<2> 마야나 잉카 등의 고대문명에서는 이가 변질되어 인신공양의 제사가 된 것으로 추정.
[1] 예 : 물 이름
1. 호남성湖南省을 흘러 동정호에 들어가는 강. 수원水源이 셋 있는데, 남쪽 수원은 영순현永順縣, 북쪽 수원은 용
산현 龍山縣 , 가운데 수원은 상식현桑植縣이며, 이 세 흐름이 상식현 서북에서 합쳐진다.
2. 하남성河南省 동백현棟柏縣에서 발원하여 서북으로 흐르는 당하唐河의 지류.
[2] 양 : 한수漢水의 북쪽. 한수는 섬서성陝西省 영강현寧姜縣에서 발원하여 호북성湖北省을 관통하여 흐르는 양자
강의 지류. 섬서 · 호북 두 성을 ‘한중漢中’이라 하며, 줄여서 ‘한漢’이라고도 함. 예와 양이 교차하는 중심
지란 무산巫山이 아닐까?
[3] 조시 : 제사를 지내고 물품을 교환하기 위한, 육지에서의 모임.
[4] 팔택 : 양자강 좌우의, 우임금이 만든 아홉 개의 연못 또는 그 연못들이 있는 지역을 가리킴. 팔택이란 말은
부도 팔택에서 유래되었음. 구택의 명칭은 대륙大陸, 뇌하雷夏, 맹제孟諸, 하택荷澤, 영택榮澤, 대야大野, 팽려 彭
蠡, 진택震澤, 운몽雲夢 임.
[5] 조제 : 조선제의 준말. 소도제천 행사를 말함.
[6] 보새 : 해마다 가을에 농사를 마치고 신의 공덕과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지내는 제사.
[7] 회연 : 연燕은 연宴과 같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여는 잔치. 그러나 회연會燕을 서술어와 보어로 볼 때는 ‘연
燕(지명)에 모여서’가 된다.
[8] 원교봉 : 교는 발해의 동쪽에 있는 산 이름. 《열자列子》탕문湯門에 ‘기중유오산언其中有五山焉’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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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 제15장 13.08.01
第十五章
又設朝市於澧陽交地之腹 設海市於八澤 每歲十月行朝祭 四海諸族 皆以方物供進 山岳諸族
供之以鹿羊 海洋諸族 供之以魚蚧 乃頌曰 朝祭供進魚羊犧牲 五味血鮮休咎蒼生 此謂之朝鮮祭
是時 山海諸族 多食魚肉 交易之物擧槪包貝皮革之類 故 乃行犧牲之祭 使人反省報功也 揷指于血
省察生命 注血于地 還報育功 此代物而償五味之過 願其休咎 卽肉身苦衷之告白也 每歲祭時 物貨輻湊
廣開海市於津浦 除祓潔身 鑑于地理 行交易之法 定其値量 辨物性之本 明其利用 又象鑿符都八澤之形
報賽於曲水之間 會燕而行濟物之儀 諸族取五瑞之實於蓬萊圓嶠之峰 卽栢子也 謂之蓬萊海松
惠得五幸而歸 自此 四海興産 交易殷盛 天下裕足.
또 조시를 예와 양이 교차하는 땅의 중심에 설치하고, 팔택에는 해시를 설치하였다.
매년 10월에 조제를 거행하니, 사해의 여러 족속이 모두 지방의 토산물을 진상하였고,
산악의 여러 족속들은 사슴과 양을 제공하였으며, 해양의 여러 족속들은 물고기와 조개를 제공하였다.
이에 송축하여 이르기를,
“조제를 당하여 물고기와 양을 희생물로 진상하여 제공하니,
오미의 피를 맑게 하고, 창생의 근심을 이에 그치게 하소서”
이는 이름하여 조선제라 하였다. 이때에 산과 바다의 여러 족속들이 생선과 육고기를 많이 먹었다.
교역의 물건은 대개가 어포와 조개, 가죽의 종류들이었다.
이에 곧 희생의 제사를 행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반성하고 그 은공에 보답하도록 한 것이다.
피에 손가락을 꽂아 생명을 성찰하고, 땅에 그 피를 부어 길러 주신 공에 보답하였다.
이는 희생물로써 오미의 화를 대신 보상하고, 재앙이 멈추기를 기원한 것이다.
곧 육신의 고충을 고하여 맑게 한 것이니, 삶의 어려움을 고백한 것이다.
매년 제사를 드릴 때는 물건과 재화가 수레와 배로 몰려들므로 진과 포에 해시를 크게 열었다.
청정한 마음으로 몸을 깨끗이 하고, 땅의 이치를 거울로 삼아 교역의 법을 시행하니
그 가치와 수량을 일정하게 하고(도량형) 물건의 근본과 성질을 변별하여
그 쓰임과 이로움을 명확하게 하였다.
또 부도 팔택의 형상을 본 떠서 연못을 파고,
곡수, 즉 물이 굽이 드는 사이에서 보새, 즉 보은의 굿을 행하며,
함께 모여 기뻐하며 사물을 구제하는 의례를 행하였다.
여러 족속들이 봉래산의 원교, 즉 둥글고도 뾰족한 봉우리에서 오서,
즉 다섯 가지 상서로운 열매를 얻었으니, 이는 곧 잣나무의 씨였다.
이를 일컬어 봉래산의 해송이라 하고, 다섯 가지 행운을 얻는 은혜가 있다 하였다.
이로부터 사해의 산업이 흥하고 교역 역시 왕성하므로 천하가 넉넉하고 풍족하였다.
왜 부도와 환단의 철학을 말하는가? myh1117 13.08.01
역사는 어차피 기록의 산물이다.
과거의 사건을 기록하고 이를 새롭게 이해함으로써, 오늘의 삶과 내일의 방향을 가늠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기록하고 하지 않을 것인지는 온전히 기록자, 즉 역사가의 판단에 따르게 된다.
이로써 오늘에 주어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야기 즉 story가 되고,
이러한 가운데 정사라고 하는 것은 결국 승리한 자들의 기록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이름도 Hi-story가 된다.
그러나 패자들의 이야기 또는 전해지지 않은 이야기들은 야사나 비사가 되며 결국 Her-story로 남게된다.
이러한 Her-story의 대부분은 기록물로 남게 되기 보다는 구전으로 전해지고 전설이 되며, 민담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기지 못한 자들의 이야기 대부분은 인물열전이나 잡저 또는 외전의 형태로 기록 속에 남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것은 때로 정사보다 훨씬 더 흥미있고, 심지어 인간적이기까지 하다.
부도지의 전편은 권력자들의 승리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기에 한국의 정사 속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 기록의 진위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 들어 있는 사관과 그 역사철학적 언설은 분명한 성격을 드러낸다.
바로 해혹복본, 곧 어리석음을 풀고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며,
한민족의 출발이 다른 민족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다 사람다움을 회복하는데 삶과 인생의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공동체를 바라보면서도 개인의 수련과 수양을 중시하는,
이런 양수겸장의 철학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연구해야만 할 것이다.
곧, 모든 민족이 하나의 근원을 가진 것이라는 사해통화의 이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어쨌든 오늘, <부도지>는 번성했던 시절의 이야기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신성함에 대한 대속의 뜻을 알려주고 있다.
□ 第十六章 하늘의 은혜를 받은 땅
시(市)에 온 사람들은 영주(瀛州) 대여산(岱與山)1) 계곡에서
삼영근(三靈根)을 얻으니 곧 인삼이었다.
그것을 ‘영주 해삼’이라 하였으며
능히 삼덕(三德)2)을 보전하고 돌아갔다.
모든 인삼이 그 수와 격(數格)을 갖추어,
자삭방(磁朔方)에서 난 것은 반드시 장생하니
40세(歲)를 1기로 휴먼하고,
13기를 1삭(朔)으로 정기를 쌓고(蓄精),
4삭을 경과하여 씨(子)를 맺어 화(化)하니,
이러한 것은 부도의 지역이 아니고는 얻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방삭초(方朔草)라 하니, 세상에서 불사약이라 하는 것이 이것이다.
혹 작은 뿌리라도 부도의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은
모두 신령한 효험(영효:靈效)가 있으므로,
시(市)에 온 사람들은 반드시 그것을 구하였다.
대저 삼근영초(三根靈草)의 인삼과,
오엽서실(五葉瑞實)의 잣과,
칠색보옥(七色寶玉)의 부인(符印)은
진실로 불함삼역(不咸三域)3)의 특산이요,
사해제족(四海諸族)에게 하늘의 은혜(天惠)였다.
來市者 又取三靈之根於瀛州岱與之谷 卽人蔘也
래시자 우취삼령지근어영주대여지곡 즉인삼야
謂之瀛州海蔘 能保三德而歸
위지영주해삼 능보삼덕이귀
盖人蔘 具其數格 生於磁朔之方者 必長生
개인삼 구기수격 생어자삭지방자 필장생
以四十歲謂(爲) 一期休眠
이사십세위(위) 일기휴면
以一三期爲一朔而蓄精
이일삼기위일삭이축정
經四朔而結子乃化
경사삭이결자내화
如是者 非符都之域卽(則)不得也
여시자 비부도지역즉(칙)불득야
故 曰方朔草 世謂之不死藥 是也
고 왈방삭초 세위지불사약 시야
其或小根 産於符都之域者 皆有靈效故
기혹소근 산어부도지역자 개유영효고
來市者 泌求之也
래시자 필구지야
大抵三根靈草之人蔘
대저삼근영초지인삼
五葉瑞實之栢子
오엽서실지백자
七色寶玉之符印
칠색보옥지부인
眞是不咸三域之特産
진시부함삼역지특산
四海諸族之天惠
사해제족지천혜
주석 해설)
1) 영주 : 산동성 위쪽에 영(瀛)이라는 지명이 있다.
2) 삼덕 : 하늘과 땅과 사람의 덕
3) 불함삼역 : 방장의 방호(方壺), 봉래의 원교봉(圓嶠峰), 영주의 대여산(岱與山)
* 이땅에 나는 인삼(산삼)과 잣과 뽕나무는 하늘의 은혜를 받은 것이니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1] 대여산 : 《열자列子》 탕문湯門에는 바다 가운데에 있는 선산仙山으로 발해의 동쪽에 있는 다섯 선산 중 하나
라고 했다.
[2] 부인 : 천부인天符印, 방장해인方丈海印.
[3] 불함삼역 : 방장의 방호方壺, 봉래蓬萊의 원교봉圓嶠峰, 영주瀛州의 대여산岱與山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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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 제16장 13.08.02
第十六章
來市者l又取三靈之根 於瀛州岱輿之谷 卽人蔘也 謂之瀛州海蔘 能保三德而歸 盖人蔘具其數格
生於磁朔之方者l 必長生 以四十歲爲一期休眼(眠) 以一三期爲一朔而蓄精 經四朔而結子乃化
如是者 非符都之域則不得也 故曰方朔草 世謂之不死藥是也 其或小根産於符都之域者
皆有靈効 故來市者ㅣ必求之也 大抵三根靈草之人蔘 五葉瑞實之栢子 七色寶玉之符印
眞是不咸三域之特産 四海諸族之天惠.
시장에 온 사람들이 또 삼령근, 즉 영험한 세 뿌리를 가진 식물을
영주산 대여, 즉 수레가 들어갈 만큼 큰 계곡에서 얻으니, 곧 인삼이었다.
이를 영주해삼이라 하였는데, 능히 삼덕을 보전하고 돌아갔다.
대개 인삼은 그 수의 품격을 갖춘 것인데, 자삭의 지방에서 생한 것은 반드시 장생한다 하였다.
사십년을 한 주기로 하여 쉬게 되는데, 13주기를 일삭으로 하여
그 정기를 축적하고, 4삭을 지나 씨앗을 맺고 이루어진다.
(도합 오백이십년에 이천팔십년이 걸리는 셈이다.)
이와 같은 것은 부도의 지역이 아니면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이를 방삭초라 하였고, 세상에서 불사약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 중에 혹 비록 작은 뿌리라도 부도의 지역에서 생겨난 것은 모두가 영험한 효과가 있었다.
고로 시장에 온 사람들이 반드시 이를 구하고자 하였다.
대저 삼근영초의 인삼과 오엽서실의 잣과 칠색보옥의 부인, 즉 방장해인은,
참으로 불함의 세 지역에서 나는 특산물로, 사해의 여러 족속들에게는 하늘의 은혜였던 것이다.
오늘은 삼령근과 방삭초의 이야기가... myh1117 13.08.02
진시황은 불로초를 찾아 해중 삼신산을 뒤지고 헤매었다죠...
서불이란 양반은 이런 진시황의 욕심을 눈치채고 드디어 동남동녀 일천명을 데리고
삼신산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진시황을 등쳐 먹습니다.
이 모든 것은 부도의 영역 내에 있는 신령함의 뜻과 관계된 것입니다.
실로 한국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늘상 강조되어 왔는데,
이런 대한민국의 놀라운 기상을 최치원 선생은 '동인' 즉 동쪽의 사람들과 그 세계의 위대함으로 보고,
신라의 <동인의식>을 강조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일어나는 새벽과 함께, 문명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타고르가 말한 <동방의 등불> 역시, 이와 별로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그러다보니 새 천년의 시간이 왔는데, 새로운 문명과 문화의 기틀을 어디에서 구해야 할까요?
오늘 <한류>라고 하는 것이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춤과 노래와 드라마로 <한류>의 모든 것이 완성될 수 있을까요?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정신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잘 났으니 우리를 따라오라고 주장하는 것, 또한 한 순간이겠죠....
저는 생각해 봅니다.
20세기 이래, 아니 산업혁명 이후로, 현재 물질문명의 시대는 만개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이런 물질문명 만으로 인간과 삶의 모든 것을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시대의 정신 그리고 정신문화의 깊이와 넓이에 또 다른 방점이 찍혀야 한다는 것이지요...
보여주는 것과 보이는 것들의 세계가 물질과 현상의 문명이라 한다면,
보이지 않고 감추어져 있는 내면의 깊이와 인생에 대한 통찰의 넓이 같은 것들이 정신의 문화라 할 것입니다.
정신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가치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인간에 대한 배려와 마음 씀씀이의 보이지 않음이 우리를 더욱 우리답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살아오면서 종교와 관계된 많은 분들, 특히 성직에 계시는 분들과도 여러 교류를 해 왔습니다만,
진정으로 소통하기에는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정신과 물질의 현실적 균형을 기대하기 어려웠다고나 할까요...
물질을 포기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정신을 차리고 물질을 바라 보자는 것이지요...
균형과 절제, 그로써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한국의 정신문화,
더 나아가 한류가 지닌 문화의 본질이라고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