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 도 지(符 都 誌)
제 1 편 : 마고(麻故)의 시대(第一章 ∼ 第四章)
제 2 편 : 부도(不渡)의 시대(第五章 ∼ 第十章)
제 3 편 : 배달국 시대(第十一章)
제 4 편 : 임검(壬儉)씨 시대 (조선시대)(第十二章 ∼ 第十六章)
제 5 편 : 오행(五行)의 화(禍)(第十七章 ∼ 第二十四章)
제 6 편 : 잃어버린 부도의 법(第二十五章 ∼ 第二十六章)
제 7 편 : 삼한에서 삼국으로(第二十七章, 小符都誌)
제 8 편 : 어둠 속으로(第二十八章 ∼ 第三十三章)
부도지(符都誌) 제5편 : 오행(五行)의 화(禍)(第十七章 ∼ 第二十四章)
- 김은수 역, 양해전 편역, 부산민박사님 -
□ 第十七章 요가 반역하다
이 때에 도요(陶堯)1)가 천산(天山)2)의 남쪽에서 일어났다.
일차로 출성(出城)한 사람들의 후예였다.
일찍이 제시(祭市)의 모임에 왕래하고,
서쪽 보(堡)의 간(干)3)에게서 도(道)를 배웠다.
그러나 원래 수(數)에 부지런하지 못하였다.
스스로 9수5중(九數五中)의 이치를 잘 알지 못하고,
중5(中五) 이외의 8은 1이 즉 8이라고 생각하고,
내(內)로써 외(外)를 제어하는 이치라 하여,
오행(五行)의 법을 만들어 제왕의 도를 주창하므로,
소부(巢夫)와 허유(許由)4)등이 심히 꾸짖고 그것을 거절하였다.
요가 곧 관문 밖으로 나가 무리를 모아
묘의 후손(苗裔)5)들을 쫓아냈다.
묘예는 황궁씨의 후예였으며 그 땅은 유인(有因)씨의 고향이었다.
후대에 임검(壬儉)씨가 여러 사람을 이끌고 부도를 나갔기 때문에6),
(요가) 비어 있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그땅을 습격하니,
묘예가 마침내 동·서·북의 삼방(三方)으로 흩어졌다.
요(堯)가 그땅을 9주(九州)7)로 나누어 국(國)이라하고,
스스로 중앙에서(5중) 사는 제왕이라 칭하며
당도(唐都)를 세워 부도(符都)와 대립하였다.
때에 거북이 등에 지고 나왔다는 부문(負文)8)과,
명협(蓂莢)9)이 피고 지는 것을 보고,
신의 계시라 하여,
그것으로 인하여 역(曆)을 만들고,
천부(天符)의 이치를 폐하여 부도(符都)의 역을 버리니,
이는 인세 두번째의 큰 변이었다(人世二次之大變).(10)
是時 陶堯 起於天山之南 一次出城族之裔也
시시 도요 기어천산지남 일차출성족지예야
曾來往於祭市之會 聞 道於西堡之干
증래왕어제시지회 문 도어서보지간
然 素不勤數 自誤九數五中之理
연 소불근수 자오구수오중지리
以爲中五外八者 以一於(御)八
이위중오외팔자 이일어(어)팔
以內制外之理 自作五行之法 主唱帝王之道
이내제외지리 자작오행지법 주창제왕지도
巢夫許由等 甚責以絶之
소부허유등 심책이절지
堯乃出關聚徒 驅逐苗裔
요내출관취도 구축묘예
苗裔者 黃穹氏之遺裔
묘예자 황궁씨지유예
其地 有因氏之鄕也
기지 유인씨지향야
後代壬儉氏 率諸人出於符都而不在故
후대임검씨 솔제인출어부도이부재고
堯乘其虛而襲之
요승기허이습지
苗裔 逐散去東西北之三方
묘예 축산거동서북지삼방
堯乃劃地九州而稱國
요내획지구주이칭국
自居五中而稱帝 建唐都 對立符都
자거오중이칭제 건당도 대립부도
時見龜背之負文 蓂莢之開落 以爲神啓
시견구배지부문 명협지개락 이위신계
因之以作曆 廢天符之理 棄符都之曆
인지이작력 폐천부지리 기부도지력
此 人世二次之大變
차 인세이차지대변
주석 해설)
1) 도요(陶堯) : 삼황오제중 오제의 4번째 제요도당(B.C 2357~2284)을 말함
2) 천산(天山) : 신강성 천산산맥, 그 남쪽은 돈황, 청해호 인근 삼위산 부근을 말한다.
3) 서쪽 보(堡)의 간(干) : 간(干)은 방(防)이요 장(長)이다 (28장)
4) 소부(巢夫)와 허유(許由) : 기산영수의 고사에 등장하는 황궁씨의 자손이자 현자이다.
* 요 통치지역과 소부와 허유의 기산
5) 묘예(苗裔) : 황궁씨의 후예로 부도의 위치가 이동해 감에 따라 한웅씨를 보필하여 이동한 배달국의 백성으로
보여진다. 배달국 14대 치우한웅의 백성들이 묘(苗)로 나온다. 중국 남부의 묘족들이 치우한웅을 시조로 모시고 있
다. 천산의 남쪽 청해호 인근 삼위산에서 섬서성 태백산인근으로 이동하였다가 치우한웅때 산동성 태산 유역으로
이동한것 같다. 한웅씨를 측근에서 수행한 친위대로 보여진다.
6) 요의 공격 : 임검씨(단군왕검)가 자방(동북삼성)에 부도터를 찾기 위해 출궁한 사이 요가 삼위산 인근의 삼묘를
공격한 것으로 보여진다.
7) 9주(九州) : 요가 서토(중국) 전체를 9지역으로 분할하여 통치하였다고 하는 것은 허구다. 서토 학자들이 주장
하는 산서성 태원일대(당도)를 통치한 조그만 제후에 불과하다.
8) 부문(負文) : 거북이 등에 지고 나왔다는 글
9) 명협(蓂莢) : 역초(曆草)라고도 한다. 보름까지는 날마다 잎이 하나씩 나고 보름후부터 잎이 하나씩 떨어지는
데, 작은달에는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말라버렸다고 한다.
10) 인세이차지대변(人世二次之大變) : 백소씨족의 지소씨가 ‘오미의 난’을 일으켜 마고대성의 문이 닫힌 이래로
두 번째 지상의 대 변란이었다.
* 요는 본시 서쪽 보(堡)의 간(干)에게서 도(道)를 배우던 자인데 잘못된 ‘오행’을 만들어 서토에 퍼트린 장본인
으로 부도의 역(曆)을 폐한 장본인이다. 이제 제대로 된 역(曆)을 복원하여 그 후손들을 구제해 주어야 할 것이다.
[1] 도요 : 중국의 요임금. 《사기》에 의하면, 帝곡이 죽자 지摯가 제위에 올랐으나 불선不善했으며, 그가 죽자
동생 방훈放勛이 임금이 되었는데 그가 요라고 했다. 《18사략》은 「제요도당帝堯陶唐씨는 성은 이기伊祁, 일설에
는 이름은 방훈放勳이라고도 한다. 제곡의 아들이다.」라고 했다. 그는 산서성 평양부에 도읍지를 정했다.
[2] 간 : 「간干은 방防이요 장長이다. (<부도지> 28장 참조) 27장부터 33장까지는 소부도지(小符都誌)임.
[3] 9수5중 : 1부터 9까지 늘어놓으면 5가 중심이 된다.
[4] 오행 : 우주를 원행하는 원기로서, 만물의 주성분이 된다는 5원소 즉,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를 말한다. 목木은
육성育成의 덕德을 맡는다고 하며, 방위는 동쪽, 철은 봄에 해당한다. 화火는 변화變化의 덕을 맡아 방위는 남쪽,
여름에 해당한다. 토土는 생출生出의 덕을 맡아 방위는 중앙, 사시의 주가 된다. 금金은 형금刑禁의 덕을 맡아 방
위는 서쪽, 가을에 해당한다. 수水는 임양任養의 덕을 맡았으며 방위는 북쪽, 겨울에 해당한다. 또 목생화, 화생
토, 토생금, 금생수, 수생목을 상생相生이라 하고 목극토, 토극수, 수극화, 화극금, 금극목을 상극相剋이라고 한
다.(이흥식, 《국어대사전》, <오행 및 음양오행설> 참조) 그러나 <부도지>는 이와 같은 오행설에 대하여 천수天數
의 이치에 이러한 것이 없으며, 금목화수토를 수성數性에 짝지우는 것도 옳지 않다고 통렬하게 공격하고 있다(21장
참조). <부도지>는 음양오행설 대신에 허실기화수토설虛實氣火水土說을 말하고 있다(2∼3장 참조)......
[5] 묘예 : 묘족, 후예라는 뜻도 있음
[6] 9주 : 기주冀州, 연州, 청주淸(靑)州, 서주徐州, 양주楊洲, 예주豫州, 형주荊州, 옹주雍州, 양주梁州를 말함.
[7] 부문 : 거북이가 등에 지고 나왔다는 글.
[8] 명협 : 역초曆草라고도 한다. 보름까지는 날마다 잎이 하나씩 나고 보름 후부터는 잎이 하나씩 떨어지는데,
작은 달에는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말라버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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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 제17장 13.08.04
第十七章
是時 陶堯起於天山之南 一次出城族之裔也 曾來往於祭市之會 聞道於西堡之干 然 素不勤數
自誤九數五中之理 以爲中五外八者 以一御八 以內制外之理 自作五行之法 主唱帝王之道 巢夫許由等
甚責以絶之 堯乃出關聚徒 驅逐苗裔 苗裔者黃穹氏之遺裔 其地有因氏之鄕也
後代壬儉氏率諸人出於符都而不在 故堯乘其虛而襲之 苗裔遂散去東西北之三方 堯乃劃地九州而稱國
自居五中而稱帝 建唐都對立符都 時見龜背之負文 蓂莢之開落 以爲神啓 因之以作曆廢天符之理
棄符都之曆 此人世二次之大變.
이때에 도요가 천산의 남쪽에서 이러나니, 그는 일차로 성을 나간 족속의 후예였다.
일찍이 제시의 모임, 즉 제사를 드리기 위해 시장에 모이는 일로 내왕하다가
서쪽 보단의 수장 칸으로부터 도를 들었다. 그러나 원래 수를 익힘에 그리 근면하지 못하였다.
스스로 구수 오중의 이치를 잘못 알고 이를 중오의 밖에 팔자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일로써 팔을 제어하고, 안을 가지고 밖을 통제한다는 이치가 있다 하여,
스스로 오행의 법을 짓고, 이로써 제왕의 도를 주창하였다.
소부와 허유 등이 심히 책망하고 이로써 절교하니, 이에 요는 관문을 나아가 무리를 모은 것이다.
묘족의 후예를 몰아내니, 묘예는 황궁씨의 후예요 그 땅은 유인씨의 고향이었다.
후대에 임검씨가 여러 사람을 이끌고 부도를 나가 부재하였다.
이에 요가 그 빈틈을 노려 기습하니, 묘의 후예들이 동서북의 세 방향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 것이다.
요가 이에 땅을 구주로 분할하고 국, 즉 나라라고 칭하며,
스스로 오중에 거한다 하고 제, 즉 황제라 칭하였다. 또 당도를 건설하여 부도에 대립하였다.
이때에 거북의 등에 지고나온 부문, 즉 낙서와 명협의 풀이 피고 지는 것을 보고,
신의 계시라 생각하였다. 이로부터 새로 역수를 지어,
천부의 이치를 폐하고 부도의 역법을 버렸는데, 이는 인간세상 두 번째의 큰 변이었다.
당요의 등장, 역법이 바뀌고 인세의 변고가 일어나다 myh1117 13.08.04
오늘은 드디어 인세의 두 번째 큰 변화로,
당요가 등장하여 부도를 거역하는 무리들이 일어나는 사건이군요!
역법과 천수의 변경이 이루어지고,
하늘의 뜻을 따르는 부도에 대하여 인간의 욕망을 쫓는 당도가 대립하게 됩니다.
한국고대사를 말하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중국사가 되겠지요...
그리고 지금까지 동양사 전체를, 중원의 판 싸움과 그 영향 속에서 이해해 온 것이 통설이겠지요....
이제 당도가 들어서 중원의 제족들을 자신들의 세력권 안으로 집어넣게 됩니다.
그러나 중원의 정사라고 하는 것은 결국 화이교체의 역사입니다.
곧 중국인들이 오랑캐라고 부르는, 동이 북적 남만 서융의 여러 민족들과
그들이 스스로 자랑스레 주장하는 화하족과의 수천 년 각축전이 시작하는 것입니다.
중원을 차지했던 몽골의 원나라와 만주의 청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더 거슬러 올라가
오호16국과 오대 십국 그리고 연나라와 제나라로 알려진 동북쪽 9이, 즉 구이의 역사가 춘추전국시대에 나타나고
더 올라가 은탕의 상나라가 모두 우리 동이족과 여러 북방 민족들이었음은 상식적인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결국 인간의 삶과 문화가 어떠해야 하는 가를 찾았던
부도 이래의 한국문화의 철학 및 사상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하늘의 뜻을 찾고 그에 따라 생활한다.
공동체의 이념 역시 사람사는 원칙을 중심으로
제천 가무를 통해 성경신을 다하는 생활을 하기를 바랐던 것이지요..
이러한 한국문화의 생활 형식과 내용은 단 한마디 <살림살이>의 문화라 하겠습니다.
곧 살림으로 살이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역에서도 말하하고 있는 <生生之義>와 거의 같은 의미로 읽혀집니다.
낳고 또 낳아 사해에 번성하며, 또 서로 죽이지 말고, 다만 서로 살리고 상생하라는 것입니다.
부도의 뜻과 하늘의 가르침 또한 여기서 크게 벗어나 있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 第十八章 순이 배반하다
이에 임검씨(壬儉氏)1)가 그것을 심히 걱정하여,
유인씨(有因氏)의 후손 유호씨(有戶氏/有巢氏)의 부자(父子)2)로 하여금
환부(鰥夫)3)와 권사(權士)4)등 100여인을 인솔하고 가서 그를 깨우치도록 하였다.
요가 그들을 맞아, 명령에 복종을 하고,
공순하게 대접하여 하빈(河濱)5)에서 살게 하였다.
유호씨가 묵묵히 그 상황을 관찰하고,
스스로 사람들을 가르치며 여러 번 그 거처를 옮겼다.
이보다 먼저 유호씨가 부도에 있을 때에
뽕나무6)를 먹고 오미를 먹지 아니하였으므로,
키는 열 자요 눈에서는 불빛이 번쩍였다.
임검씨 보다 나이를 100여살 이나 더 먹었으며,
아버지와 할아버지(父祖)의 직업(業)을 이어
임검씨를 도와 도를 행하고 사람들을 가르쳤다.
이에 이르러 사자(使者)가 되어
완고하고 사리에 어두운(頑迷)한 세상을 구제하니,
그가 하는 일에 어려움이 많았다.
때에 요가 유호씨의 아들 유순(有舜)의 사람됨을 보고
마음 가운데 딴 뜻이 있어 일을 맡기고 도와 주며
두 딸로 유혹하니 순이 곧 미혹하여졌다.
유순이 일찍이 부도의 법을 행하는 환부가 되었지만,
마침내 (능력이) 미치지 못하니
이때 요의 꾀임에 빠져 요의 두 딸7)을 밀취(密娶)하고
어리석게도 요에 붙어 협조하였다.
於時 壬儉氏 甚憂之
어시 임검씨 심우지
使有因氏之孫有戶氏父子
사유인씨지손유호씨부자
率鰥夫權士等百餘人 往而曉之
솔환부권사등백여인 왕이효지
堯 迎之而服命恭順 使居於河濱요
영지이복명공순 사거어하빈
有戶氏 黙觀其狀
유호씨 묵관기상
自爲敎人 數移其居
자위교인 수이기거
先時有戶氏在於符都
선시유호씨재어부도
採桑而不食五味 身長十尺 眼生火光
채상이불식오미 신장십척 안생화광
年長於壬儉氏百餘歲
연장어임검씨백여세
承父祖之業 助壬儉氏而行道敎人
승부조지업 조임검씨이행도교인
至是爲使 濟度頑迷之世 其行 艱難
지시위사 제도완미지세 기행 간난
時 堯見有戶氏之子有舜之爲人
시 요견유호씨지자유순지위인
心中異圖 任事以示協
심중이도 임사이시협
以其二女 誘之 舜乃迷惑
이기이녀 유지 순내미혹
有舜 曾爲符都執法之鰥夫
유순 증위부도집법지환부
過不及而無節
과불급이무절
至時(是)爲堯之所迷
지시(시)위요지소미
密娶其二女 暗附協助
밀취기이녀 암부협조
주석 해설)
1) 임검씨(壬儉氏) : 단군왕검을 말한다.
2) 유호씨(有戶氏) 부자(父子) : 유호씨(有戶氏)는 유소씨(有巢氏)의 오기로 보여진다. 유호씨(有戶氏)의 아들이
유순(有舜)이다. 서토는 이를 순임금이라 한다. 요(堯)를 교화하기 위해 파견된 임검씨의 특사이다.
* 순임금 : B.C 2284~2224, 이때는 단군 왕검(B.C 2333~2240) 통치시절이다
3) 환부(鰥夫) : 결혼하지 않은 남자, 순행하며 마고의 역사를 전수하는 ‘제비’다.
4) 권사(權士) : 유호씨를 수행하는 수행원.
5) 하빈(河濱) : 산서성 남단 황하 인근을 말한다.
6) 뽕나무(桑) : 기존 해설서는 칡(葛)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뽕나무(桑)로 정정하였다. 자세한 근거는 추후에 밝히
고자 한다.
7) 두딸 : 요(堯)의 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말함이다.
* 서토에서는 순(舜)이
- 산동성 제풍에서 태어나 (산동성 제성현, 사기에는 요구 즉 곡부 인근이라 하였다)
- 산서성 뇌수산 유역에 살다가 (장님 아버지 고수瞽叟와 계모의 학대를 피해 옮겨간 곳, 하남성 우성현에 살았다고도 한다)
- 요(堯)의 두 딸 즉 아황(娥皇)과 여영(女英)과 결혼을 하였고 (요가 후계자로 삼음)
- 제위를 이어받아 남쪽 묘족을 정벌하러 가다가 창오(蒼梧)에서 병사하자 (호남성 영원현, 묘족은 배달국 백성)
-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은 상수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상수는 호남성 동정호에서 나오는 강이름이다)
그러나 부도지의 내용은 다르다.
- 부도의 뜻을 어지럽힌 요를 깨우치게 하기위해 임검씨(단군왕검)는
- 특사로 유인씨(有因氏)의 후손 유호씨(有戶氏) 부자 (아들 有舜)을 보냈는데 (장님 고수瞽叟의 아들이 아니다),
요라는 자가 두딸로 유순(有舜)을 회유하니 유순이 꾐에 넘어가 요와 손을 잡으니 (娥皇과 女英)
- 유호씨(有戶氏)가 그 죄를 물어 응징하였다 (부도의 뜻을 거역하니)
- 요(堯)는 유폐(幽閉)중에 감옥에서 병사하고 (유호씨가 가두었다)
- 유순(有舜)은 창오지방으로 도망갔다가 원한이 있었던 우(禹)에게 죽임을 당한다.
실로 부도의 뜻을 거역하고 잘못된 역을 퍼트린 죄에 대한 마고의 응징이었던 것이다. 부도지를 보면 '요.순의 태
평성대'는 허구다. 부도의 뜻을 거역한 집단에 대한 마고의 응징의 역사가 꺼꾸로 미화된 것이라는 것이다. 잘못
전래된 역사의 기록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종손민족은 오로지 우리뿐이므로 그 임무를 다하여야 할 것이다.
* 유소씨(有巢氏) = 유호씨(有戶氏) : 중국 고대의 전설적인 성인. 새가 보금자리를 만들고 사는 것을 보고 사람에
게 집을 짓는 것을 가르쳤다고 한다. 서토(중국) 역사 곳곳에 마고의 역사가 숨겨져 있으니 잘 확인해 보아야 한다.
[1] 유호씨 : 단군의 신하. 유우有虞 즉, 순舜의 아버지. 중국 측의 사료에는 고수로 되어 있다. <부도지>에 의하
면 유호씨는 이론가요 오교가로, 그의 논리는 정연하면서도 날카로웠다. 오행설의 오류를 지적하고 기화설을 제창
했다. 유호씨는 후에 월식 · 성생주로 들어가 전교했다. 《19사략》은 유호씨가 무도無道해서 정도正道를 어지럽
히므로 계啓가 섬서성의 감甘에서 싸워 그를 멸망시켰다고 했다.
[2] 하빈 : 물가. 하는 황하를 가리킨다.
[3] 유순 : 우순虞舜은 이름이 중화重華다. 중화의 아버지는 고수;. 고수의 아버지는 교우橋牛, 교우의 아버지는
구망句望, 구망의 아버지는 경강敬康, 경강의 아버지는 궁선窮蟬, 궁선의 아버지는 제전욱帝전頊, 전욱의 아버지는
창의昌意라고 했다(《사기》참조). 《단기고사》의 기록은 <부도지>와 매우 일치한다. 「고수高구는 중신 고시高矢
의 친형이다. 그의 아들 순舜이 단조檀朝에 벼슬하지 않고 이웃나라 당-요唐堯에게 벼슬하므로, 부자가 의견이 서
로 맞지 않아 마침내 화목하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고수는 작은 아들 상象을 사랑하고 일찍이 순을 죽이고자 하거
늘, 순이 아버지의 뜻을 알고 효성으로 봉사하여 끝까지 순복順服하니 당-요가 신임하고 왕위를 물려주었다. 에에
순이 중화의 천자가 되어 문명한 정치를 베풀므로, 사농공상에 각각 그 직업을 주고 우禹의 아버지를 우산羽山에서
치며 간사하고 흉악한 이들을 축출하니, 이로써 한족에게 미움을 사서 우의 덕망이 날로 높아져서는 순이 재위 61
년에 창오蒼悟의 들을 순행하다가 한족이 해하여 죽으니, 순의 처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 원한을 품고 소상강에서
익사하고, 그의 아들 상균商均은 다시 고국에 돌아와 단조에 벼슬하여 관직이 사도司徒에 이르렀다.」(《단기고
사》, 개마서원, 1981 참조) 《한단고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단군왕검은 당-요唐堯와 병세竝世하였다.
요의 덕망이 갈수록 쇠하여지자 너도나도 몰려들어 땅을 다투기를 쉬지 아니하였다. 천왕이 곧 우순에게 명하여 땅
을 나누어 다스리게 하고 군사를 보내서 주둔하게 하였다. 약속하고 당-요를 정벌하니 요가 힘이 다하여 우순에게
의지하여 목숨을 보전하고 나라를 넘기었다.」(앞의 책 《주해 한단고기》, 185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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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 제18장 13.08.05
第十八章
於是 壬儉氏甚憂之 使有因氏之孫有戶氏父子 率鰥夫權士等百餘人 往而曉之 堯迎之而服命恭順
使居於河濱 有戶氏黙觀其狀 自爲敎人 數移其居 先時有戶氏在於符都 採葛而不食五味
身長十尺眼生火光 年長於壬儉氏百餘歲 承父祖之業 助壬儉氏而行道敎人 至是爲使濟度頑迷之世
其行艱難 時 堯見有戶氏之子有舜之爲人 心中異圖 任事以示協 以其二女誘之 舜乃迷惑
有舜曾爲符都執法之鰥夫 過不及而無節 至是爲堯之所迷 密娶其二女暗附協助.
이때에 임검씨가 이를 크게 근심하였다.
그리하여 유인씨의 후손인 유호씨로 하여금 환부, 즉 홀아비와 장정, 권사
즉 역사와 무사 등 백여인을 이끌고 가서 그를 가르쳐 깨우치게 하였다.
요가 이들을 맞이하여 명령에 복종하고 공순하였으며, 그들을 하빈, 즉 황하의 물가에 거처하게 하였다.
유호씨가 말없이 그 상황을 관찰하면서, 스스로 그 교인이 되어
(사람들의 가르침이 되었으며), 여러 번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이보다 먼저 유호씨가 부도에 있을 때는 칡을 캐어 먹으면서 오미를 먹지 않았다.
그 신장은 십척이요, 눈에서는 불빛이 일었다. 임검씨보다 연장으로 백여살이나 더 먹었으나,
아버지와 조상들의 업을 계승하여 임검씨를 돕고 도를 행하고 사람들을 가르쳤다.
이에 이르러 완미한 세상을 제도하는 사신이 된 것이다.
그 행하는 것이 어찌 어렵지 않았으리오, 그 행이 어렵고 힘들었다.
때에 요가 유호씨의 아들 유순의 위인 됨을 보고 마음 속에 딴 뜻을 품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을 맡기고 협조하는 척 하면서,
자기의 두 여식으로 하여금 그를 유혹하게 하니, 순이 마침내 미혹되고 말았다.
유순은 일찍이 부도에서 법을 집행하는 환부, 즉 홀아비였는데,
지나치고 모자라는 것이 절도가 없었다. 이에 이르러 요에게 미혹당하는 대상이 되어
마침내 은밀히 그 두 여식을 취하고, 남 몰래 요에게 붙어 협조하게 된 것이다.
요순시대와 임검씨, 아황과 여영의 이야기 myh1117 13.08.05
오늘은 드디어 지극히 민감한 부분을 부도지가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요순의 성세를 말하는 유교사상의 중심되는 내용을 깡그리 무너 뜨리는 기사가 실려 있네요...
순의 아버지는 완고하고 우매한 앞 못 보는 봉사 노인이었다고 전하죠...
또 순은 요의 왕좌를 선양받아 중국 최초의 태평성대를 만든 전설적 인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더하여 요의 아들 단주는 천하의 패륜아로 설명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에게서 왕위를 물려 받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기록 상의 일치점은 순이 요의 두 딸을 취하여 아내로 삼았다는 것인데....
저간의 내용들은 모두 상서와 사기 및 십팔사략 등에 기록된 것들을 요약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부도지는 그 모든 텍스트와 컨텍스트, 즉 기록 자체부터 거짓이요,
또 이를 해석해 온 유가사상적인 역사 의식마저도 다 허위라고 말합니다.
결국은 부도에 대항하는 당도를 만들었다가,
아! 당요 우순이라고 말들을 하는데, 바로 요가 당을 순이 우를 세웠다는 뜻이며,
동시에 그 도읍의 명칭을 당과 우로 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곧 옛적 국명과 지명 심지어 인명 까지 이들은 서로 그 명칭을 공유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를 징벌하려는 유호씨에 이기지 못하자, 온갖 편법으로 그 자리를 보존하려 한 요임금이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여기에 더하여 <장자>에는 천하를 선양하려는 요에게
"세상에 가장 웃기고 더러운 말과 일"이라면서 자신의 귀를 씻었다고 하는 '허유'의 이야기가 전하고 있습니다.
홍산문화가 나오자 황하문명이 흔들리게 되었죠,
그러면서 동북공정을 통해 삼조당을 세우고 자신들의 조상들마저 바꾸고 있는 것이 오늘 북경입니다.
이것은 또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요...
여기서 역사를 더 말하면 또 온갖 정사와 야사, 강단사학과 민족사학 등등, 온갖 이야기가 번져 나오게 됩니다.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앞의 17장에서와 같은 맥락에서,
부도의 뜻은 결국 사해통화와 제족이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세상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배하고 침략하고 싸우고 헐뜯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서로 돕고 화해하며 용인하고 어울리는 세상을 하늘의 뜻으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부도지를 통해 홍익인간 재세이화는 결국
오늘 자본주의적 시장경쟁 체제에 대한 새로운 인류사회 공존 공영의 이념으로 주어지는 것임을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중국의 역사를 폄훼할 필요도 없고, 한국사를 더 이상 왜곡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역사를 통해 그 가르침을 철학적으로 생각해 보자는 것이지요....
결국 역사란 그 자체의 중요성보다 오늘의 우리에게 하나의 지침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 第十九章 요와 순을 처단하다
이 때 유호씨가 수시로 경계를 하였으나,
순은 ‘예, 예’ 하고 대답만 하고는 고치지 않았다.
그는 끝내 요의 촉탁을 받아들여
현자를 찾아 죽이며
묘족(苗族)을 정벌하였다.
유호씨가 마침내 참지 못하여 꾸짖고, 그를 토벌하니,
순은 하늘을 부르며 통곡하고,
요는 몸을 둘 땅이 없으므로
순에게 양위하고 자폐(自閉)하였다.
유호씨가 이르기를,
‘오미의 재앙이 끝나지 않았는데,
또 다시 오행(五行)의 화를 만들었으므로,
죄는 땅에 가득하고, 북두성(罡)1)은 하늘에 가리어 지고
수사(數事)가 많이 어그러져,
인간세상이 곤란하고 고통스러워(困苦) 졌다.
이는 불가불 바로잡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알지 못하고 범하는 자는 혹 용서하여 가르칠 수도 있으나,
알고 범하는 자는 비록 부자간이나 형제간이라도(至親)이라도 용서할 수가 없다‘
하고
이에 둘째아들(次子) 유상(有象)에게 명하여
권사(勸士)를 이끌고 무리를 모아 죄를 알리고,
그를 치게 하니 수년 동안 싸워서,
마침내 당도(唐都)2)를 혁파(革罷)하였다.
요는 갇혀 있던(幽閉) 중에 죽고,
순은 창오(蒼梧)3)의 들에 도망하여 도당(徒黨)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요의 무리 우(禹)4)가
순에게 아버지를 죽인 원한이 있으므로
이에 이르러 그를 추격하여 죽여 버렸다.
순의 두 처(妻)도 역시 강물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5)
우가 곧
‘정의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正命) 공을 세운다(立功) 말하고,
상의 군사를 위로하고 돌아가므로
유호씨가 물러나서 우의 소행을 관찰하니,
이 때에 우가 도읍을 옮기고,
무리를 모아 방패와 창을 보수하고 늘려
유호씨에게 항거하여,
자칭 하왕(夏王)6)이라 하였다.
是時 有戶氏 隨警隨戒
시시 유호씨 수경수계
舜 唯唯而不改
순 유유이불개
終受堯屬 追戮賢者 仍又伐苗
종수요속 추륙현자 잉우벌묘
有戶氏 遂不能忍耐
유호씨 수불능인내
論責討之
론책토지
舜 呼天哭泣
순 호천곡읍
堯 置身無地 遂讓位於舜而自閉
요 치신무지 수양위어순이자폐
有戶氏曰 五味之災末濟 又作五行之禍
유호씨왈 오미지재말제 우작오행지화
罪滿於地 罡蔽於天 數事多乘 人世困苦
죄만어지 강폐어천 수사다승 인세곤고
此不可不正之 且不知而犯者
차불가불정지 차부지이범자
容或誨之 知而犯者 雖至親 不可得恕
용혹회지 지이범자 수지친 불가득서
乃命次子有象 率權士聚衆 鳴罪而攻之
내명차자유상 솔권사취중 명죄이공지
戰及數年 遂革其都전급수년 수혁기도
堯死於幽閉之中
요사어유폐지중
舜逃於蒼梧之野 徒黨 四散
순도어창오지야 도당 사산
堯之徒禹 與舜有殺父之怨
요지도우 여순유살부지원
至是 追擊殺之
지시 추격살지
舜之二妻 亦投江自決
순지이처 역투강자결
禹 乃言正命立功 慰衆師而歸之
우 내언정명입공 위중사이귀지
有戶氏 退而黙觀禹之所行
유호씨 퇴이묵관우지소행
於是 禹 移都聚群
어시 우 이도취군
增修干戈而拒有戶氏
증수간과이거유호씨
自稱 夏王 자칭 하왕
주석 해설)
[1] 창오 : 지금의 광서성 창오현. 광서성은 중국의 서남단, 베트남과 접경을 이루는 성이다.
[2] 우 : 하우夏禹, 이름은 문명文命, 우의 아버지는 곤鯀, 곤의 아버지는 帝전頊, 전욱의 아버지는 창의昌
意, 창의의 아버지는 황제皇帝다. 우는 황제의 고손高孫이자, 전욱의 손자다.(《사기》 참조. 《사기》에서 순은
황제의 8대 손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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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 제19장 13.08.06
第十九章
是時 有戶氏隨警隨戒 舜唯唯而不改 終受堯囑追戮賢者仍又伐苗 有戶氏遂不能忍耐 論責討之
舜呼天哭泣 堯置身無地 遂讓位於舜而自閉 有戶氏曰 五味之災未濟又作五行之禍 罪滿於地罡蔽於天
數事多乖人世困苦 此不可不正之 且不知而犯者容或誨之 知而犯者 雖至親不可得恕 乃命次子有象
率權士聚衆 鳴罪而攻之 戰及數年 遂革其都 堯死於幽閉之中 舜逃於蒼梧之野
徒黨四散 堯之徒禹與舜有殺父之怨 至是追擊殺之 舜之二妻 亦投江自決 禹乃言正命立功慰衆師而歸之
有戶氏 退而黙觀禹之所行 於是 禹移都聚群 增修干戈而拒有戶氏 自稱夏王.
이때에 유호씨가 누차 경고하고 또 징계하였으나, 순이 예예라고 말만 하고 고치지 아니하였다.
종래에는 요의 부탁을 받고 현자들을 추격하여 도륙하고 거듭하여 묘족을 침략하였다.
유호씨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그 책임을 논하며 그를 토벌하니, 순이 하늘을 부르며 통곡 읍소하였다.
요는 몸을 둘 땅이 없어 마침내 순에게 양위하고 스스로 폐위하였다. 유호씨가 말하기를,
“오미의 재앙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또 오행의 화를 지으니, 그 죄가 땅에 가득하고, 하늘의 천강성(북두가)이 가리어졌다.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어그러져 인세가 인세가 곤곤해 졌으니, 이는 불가불 바로잡지 않을 수 없다.
또 모르고 범한 자들은 혹 용서하고 이를 가르쳐 바르게 인도할 수 있으나,
알고도 범한 자들은 비록 지친, 즉 친자식이라도 용서할 수 없다”하였다.
곧, 둘째 아들 유상에게 명하여, 권사들을 이끌고 무리를 모아 죄를 알리고 순을 공격하게 하였다.
전쟁이 수년을 끌고 난 뒤 마침내 그 도읍, 즉 당도를 혁파하였다.
요가 유폐된 가운데 죽었고, 순은 창오의 벌판으로 도망쳐,
그 무리들과 작당한 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요의 무리 중에 우가 있었는데,
우는 순에게 그 아버지를 살해당한 원한이 남아 있었다.
이에 이르러 우가 순을 추격하여 살해하이, 순의 두 처는 또한 강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우가 이에 정명(즉, 바른 명령을 쫓아)으로 공을 세을 세웠다고 말하면서,
무리들과 군사들을 위로하고 돌아갔다. 이에 유호씨가 물러나 묵묵히 우의 행하는 바를 관찰하였다.
이에 우가 무리들을 모아 도읍을 옮기며,
창과 방패를 증수하고 유호씨에게 항거하며, 자칭 하왕이라 하였다.
요순의 이야기가 계속되고, 하우가 나왔네요 myh1117 13.08.06
진리와 진실!
역사는 어차피 승자의 기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지식이란 언제나 패자도 기억해야 하는 법입니다.
세상에는 이긴 자들만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처럼 힘없고 패배한 사람들 역시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반 쪽의 진실이 아니라 우리는 온전한 사실을 원합니다.
승자들에 의해 왜곡되고 가리워진 비참한 세계를 우리는 또 기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이기고, 언제나 진다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변화하고, 잊혀진 것들 역시 누군가는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든 진실과 함께 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 第二十章 우가 부도를 배반하다
우(禹)가 마침내 부도(符都)를 배반하고
도산(塗山)1)에 단(壇)을 설치하였다.
서남 제족을 정벌하여 제후(諸候)라 하고,
도산(塗山)에 모이게 하여 조공을 받았다.
이는 부도제시(符都祭市)의 제도를 본받은 것이었으나
매우 갑작스러운(暴突) 것 이었다.
이에 천하가 시끄러워,
부도로 도망하여 오는 자가 많았다.
우가 곧 수륙(水陸)의 길을 차단하여,
부도와 연락을 끊고 내왕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감히 부도를 공격하지는 못하였다.
이 때에 유호씨가 서방에 살면서
묘의 후손(苗裔)3)를 수습하여,
소부와 허유(巢許)4)가 사는 곳과 통하고,
서남 제족과 연락하니
그 세력이 심히 왕성하여 스스로 읍(邑)을 이루웠다.
유호씨가 곧 권사(權士)를 보내, 우에게 타이르기를(諭示),
‘요는 천수(天數)를 몰랐다.
땅을 쪼개서 천지를 제 멋대로 하였다.
기회를 틈타 홀로 단을 만들고(獨壇),
사사로이 개나 양을 기르기 위하여
사람을 몰아낸 후 자칭 제왕이 되어 혼자서 처리 하였다.
세상은 토석(土石)이나 초목처럼 말이 없고,
천리(天理)는 거꾸러 흘러 허망(虛妄)에 빠져버렸다.
이것은 거짓으로 천권(天權)을 훔쳐(窃),
사욕의 횡포를 자행한 것이다.
제왕이 만약 천권을 대행하는 것이라면,
능히 일월(日月)을 개폐(開閉)하여
만물을 조작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제왕이란 수의 요체(數諦)요, 사람이 거짓으로 칭하는 것이 아니다.
거짓으로 칭하면, 다만 사기와 허망의 나쁜 장난이 될 뿐이다.
사람의 일이란 증리(證理)요,
세상의 일이란 그 증리한 사람의 일을 밝히는 것이니,
이 이외에 다시 무엇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부도의 법은 천수(天數)의 이치를 명확하게 증명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그 원래임무(本務)를 수행하게 하고,
그 본복(本福)을 받게 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말하는 자와 듣는 자는 비록 선후는 있으나,
높고 낮음이 없으며,
주는 자와 받는 자는 비록 친숙하고 생소한 것은 있으나,
끌어들이고 몰아내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사해가 평등하여 제족(諸族)이 스스로 행하는(自行) 것이다.
오직 그 오미(五味)의 죄를 속죄(報贖)하는 것과,
대성(大成)의 일을 회복하는 것은,
언제나 일인 희생의 주관 아래 있는 것이요,
여러 사람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니,
이 일은 예로부터 세상 일(人世之事)에 섞이지 아니하였다.
황궁(黃窮)씨와 수인(燧因)씨5)의 예가 바로 이것이다.
禹遂背反符都 設壇於塗山
우수배반부도 설단어도산
伐西南諸族而謂之諸侯
벌서남제족이위지제후
驅聚於塗山而受朝貢
구취어도산이수조공
此効符都祭市之制而暴突者也
차효부도제시지제이폭돌자야
於是 天下騷然 走符都者多
어시 천하소연 주부도자다
禹乃遮斷水陸之路
우내차단수륙지로
孤隔符都而使不得來往
고격부도이사부득래왕
然 不敢攻符都
연 불감공부도
是時 有戶氏 居於西方而收拾苗裔
시시 유호씨 거어서방이수습묘예
通於巢許之鄕 連結西南諸族 基勢甚盛 自成一邑
통어소허지향 연결서남제족 기세심성 자성일읍
有戶氏乃送權士論禹曰
유호씨내송권사론우왈
‘堯誤天數 割地爲自專天地
‘요오천수 할지위자전천지
制時爲獨壇利機
제시위독단이기
驅人爲私牧犬羊 自稱帝王而獨斷
구인위사목견양 자칭제왕이독단
人世黙黙爲土石草木
인세묵묵위토석초목
天理逆沒於虛妄
천리역몰어허망
此 假窃天權 恣行私慾之暴也
차 가절천권 자행사욕지폭야
帝王者 苦代行天權則亦能開閉日月
제왕자 고대행천권칙역능개폐일월
造作萬物乎
조작만물호
帝王者 數諦 非人之所假以稱之者
제왕자 수체 비인지소가이칭지자
假稱則徒爲詐虛之惡戱而已
가칭칙도위사허지악희이이
人之事 證理也
인지사 증리야
人世之事 明其證理之人事也 此外 復有何哉
인세지사 명기증리지인사야 차외 복유하재
故 符都之法 明證天數之理
고 부도지법 명증천수지리
使人遂其本務而受其本福而已
사인수기본무이수기본복이이
故 言者聞者 雖有先後
고 언자문자 수유선후
無有高卑 輿者受者
무유고비 여자수자
雖有熟(료)疎 無有牽驅故
수유숙(료)소 무유견구고
四海平等 諸族 自行
사해평등 제족 자행
唯其報贖五味之責
유기보속오미지책
恢復大成之業
회복대성지업
常在於一人犧牲之主管
상재어일인희생지주관
非人人之所能爲者故
비인인지소능위자고
此事 自古不雜於人世之事
차사 자고불잡어인세지사
黃穹氏有因氏之例 是也
황궁씨유인씨지례 시야
주석 해설)
1) 도산(塗山) : 안휘성 회원(懷遠)시 인근에 있다. 절강성 회계산(우릉이 있음)을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도산은
안휘성에 있다.
* 결국 우(禹)도 부도의 뜻을 받드는 듯 하다가 결국 배반을 하고 만다. 요나 순이나 우나 동일한 부도의 배반자들이다.
3) 묘예(苗裔) : 치우한웅을 수행하여 산동성 태산 유역의 부도로 따라온 황궁씨의 후예들이다.
4) 소허(巢許) : 소부(巢夫)와 허유(許由)를 말한다.
5) 수인(燧因)씨 : 유인(有因)씨는 수인(燧因)씨의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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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 제20장 13.08.07
第二十章
禹遂背反符都 設壇於塗山 伐西南諸族而謂之諸侯 驅聚於塗山而受朝貢 此効符都祭市之制 耳暴突者也
於是 天下騷然走符都者多 禹乃遮斷水陸之路 孤隔符都而使不得來往 然不敢攻符都 是時
有戶氏居於西方而收拾苗裔 通於巢許之鄕 連結西南諸族 其勢甚盛自成一邑 有戶氏乃送權士論禹曰
堯誤天數割地爲自專天地 制時爲獨壇利機 驅人爲私牧犬羊 自稱帝王而獨斷 人世黙黙爲土石草木
天理逆沒於虛妄 此假窃天權 恣行私慾之暴也 帝王者 若代行天權 則亦能開閉日月造作萬物乎
帝王者數諦 非人之所假以稱之者 假稱則徒爲詐虛之惡戱而已 人之事證理也 人世之事明其證理之人事也
此外復有何哉 故 符都之法 明證天數之理 使人遂其本務而 受其本福而已 故言者聞者 雖有先後無有高卑
與者受者 雖有熟疏無有牽驅故 四海平等 諸族自行 唯其報贖五味之責 恢復大城之業
常在於一人犧牲之主管 非人人之所能爲者故 此事 自古不雜於人世之事 黃穹氏有因氏之例是也.
우가 마침내 부도를 배반하고 도산에 단을 세웠다.
서남의 여러 족속들을 쳐서 제후라 부르고, 강압하여 도산에 모이게 하고 조공을 받았다.
이것은 부도 제시의 제도를 본받은 것이나, 다만 사납고 난폭한 것일 뿐이다.
이에 천하가 시끄러워져 부도로 도망쳐 오는 자가 많았다.
우가 이에 수륙의 길을 차단하고 부도를 고립 격리시키며, 왕래를 할 수 없도록 하였다.
그러나 감히 부도를 공격하지는 못하였다.
이때에 유호씨가 서방에 기거하면서 묘족의 후예들을 수습하고 있었다.
소부와 허유의 고향에 서로 통하고 서남의 여러 족속들과 연결하고 있었으니,
그 세력이 심히 왕성하여 스스로 하나의 읍을 이루고 있었다.
유호씨가 이에 권사를 보내고, 우에게 논하여 말하기를,
“요가 천수에 잘못을 일으켜 땅을 나누면서 천지를 제멋대로 하였다.
때를 틈타 독단을 세우고 기회를 이용하며, 사람들을 몰아쳐 사사로이 개나 양처럼 부려 먹었다.
자칭 제왕이라 칭하며 독단적으로 행동한 것이다.
인세는 묵묵히 토석과 초목처럼 말이 없고, 천리는 도리어 허망한 데로 빠져 들어 버렸다.
이는 거짓으로 하늘의 권세를 훔쳐 개인적인 욕망을 위하여 방자하게 행동한 폭거일 뿐이다.
제왕이란 것이 만일 하늘의 권력을 대신한 즉
또한 능히 일월을 열고 닫으며 만물을 조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제왕이란 다만 수를 살펴 밝히는 존재일 뿐, 사람의 거짓된 바로 칭할 것이 아니다.
거짓으로 칭한 즉 헛된 사기와 허망한 나쁜 장난에 다름 아니다.
인간의 일이란 오직 증리, 즉 이치를 드러내는 것이요,
세상의 일이란 다만 그 증리한 사람의 일을 밝히는 것일 뿐이다.
이 외에 다시 또 무엇이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부도의 법은 천수의 이치를 밝게 증명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 본래의 의무를 따르게 하여, 그 본래의 복을 받도록 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말하는 자와 듣는 자는 비록 그 선후는 있을지라도 높고 낮음은 있지 아니한 것이며,
주는 자와 받는 자가 비록 친밀함과 소원함은 있을지라도 끌어들이거나 몰아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사해는 평등하고 모든족속은 스스로 행하는 것일 따름이다.
오직 그 오미의 책임을 지고 속죄하며 보답하여 대성의 업을 회복하는 일은,
항상 한 사람이 그 희생으로 주관함에 있을 뿐이다.
여러 사람들이 그 능한 바를 따라 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 일은 예로부터 인간 세상의 일과는 서로 섞이지 않는 것이니,
황궁씨와 유인씨의 예가 바로 그것이다.
하우가 나와서 중화가 되니, 사해가 소란스럽다. myh1117 13.08.07
오늘은 또 다른 상고사의 이야기가 있네요...
더하여 부도의 뜻에 관한 하나의 정의가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부도의 법은 천수의 이치를 밝게 증명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 본래의 의무를 따르게 하여,
그 본래의 복을 받도록 할 따름이다."
하늘의 뜻과 부도의 뜻은 같은데 있다 합니다.
그것은 오직 사납지 않게 서로 화합하여 삶의 즐거움을 누리게 한다는 것이지요...
참으로 이상사회, 행복한 낙원의 뜻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인간세상이 이렇게 치열한 전장이 되어 버린 것일까요.
그것은 소유와 귀천을 나누어 서로 싸우고 부딪치게 만든 인간사회의 법칙 때문일까요.
아니면 약육강식이라는 기본적인 자연의 법칙 때문에 그런 것일까요...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다만 부도지는 오늘 인세 '증리'의 일이 있음을 말하고,
이는 모든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한사람의 희생의 주관으로 그리 한다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하면서 오늘 밤은 잠들어야 할 것 같군요....
□ 第二十一章 천수의 이치
또 그 소위 오행(五行)이라는 것은,
천수(天數)의 이치에 이러한 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방위(方位)의 중앙 5는 교차(交叉)의 뜻이요,
달라진 움직임(變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변하는 것은 1로부터 9까지 이므로 5는 언제나 중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9가 윤회하여 율(律)과 여(呂)가 서로 조화를 이룬 후에
만물이 생겨나는 것이니,
이는 기수(基數)1)를 이르는 것이요,
그 5, 7이 크게 번지는 고리(大衍之環)에 이르면
그 자리가 5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또한 4, 7이 있는 것이다.
또 그 순역(順逆) 생멸(生滅)의 윤멱(輪冪)은 4요 5가 아니니,
즉 원수(原數)의 9는 불변수이기 때문이다.
또 윤멱(輪冪)2)이 한 번 끝나는 구간은 2×4=8 사이의 7이요, 5가 아니다.
또 그 배성지물(配性之物)3)은
금(金)목(木)수(水)화(火)토(土)의 다섯 중에서
금(金)과 토(土)를 왜 따로 구별하는가.
그 약간의 차이 때문에 구별을 하고자 한다면,
기(氣)풍(風)초(草)석(石) 따위는 어찌 같이 들지 않는가.
그러므로 다 들자면 수가 없는 것이요,
엄밀히 구별해서 들자면, 금, 목, 수, 화 혹은 토, 목, 수, 화의 넷이요,
다섯이 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그 물성(物性)을 어떤 이유로 수성(數性)에 짝지우는가,
수성지물(數性之物)은 그 원수가 9요, 5가 아니다.
그러므로 5행의 설은, 참으로 황당무계한 말인 것이다.
이로써 인간세상을 증명하여 밝히는(證理) 일을 속여서
미혹하게(誣惑)하여,
곧 하늘의 화(天禍)를 만드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인가.
且其所謂五行者 天數之理 未有是法也
차기소위오행자 천수지리 미유시법야
方位五中者 交叉之意 非變行之謂也
방위오중자 교차지의 비변행지위야
變者 自一至九故 五者不得常在於中而九者輪回
변자 자일지구고 오자불득상재어중이구자윤회
律呂相調然後 萬物 生焉 此 基數之謂也
율여상조연후 만물 생언 차 기수지위야
至其五七大衍之環則其位 不限於五而亦有四七也
지기오칠대연지환칙기위 불한어오이역유사칠야
且其順逆生滅之輪冪 四也 非五也
차기순역생멸지륜멱 사야 비오야
卽原數之九 不變故也
즉원수지구 불변고야
叉輪冪一終之間 二八之七也 非五也
차륜멱일종지간 이팔지칠야 비오야
又其配性之物
우기배성지물
金木水火土 五者之中 金土 如何別立乎
금목수화토 오자지중 금토 여하별입호
以其小異
이기소이
亦將別之則氣風草石之類 豈不共擧耶
역장별지칙기풍초석지류 기불공거야
故 皆擧則無數也
고 개거칙무수야
嚴擧則 金木水火或 土木水火之四也 不得爲五也
엄거칙 금목수화혹 토목수화지사야 부득위오야
尤其物性 由何而配於數性乎
우기물성 유하이배어수성호
水性之物 其原 九也 非五也
수성지물 기원 구야 비오야
故 五行之說 眞是荒唐無稽之言
고 오행지설 진시황당무계지언
以此 誣惑證理之人世
이차 무혹증리지인세
乃作天禍 豈不可恐哉
내작천화 기부가공재
주석 해설)
1) 기수(基數) : 기초로 하여 쓰는 수. 곧 1에서 9까지의 정수
2) 윤멱(輪冪) : 멱은 같은 수를 여러번 곱한 상승적인 수를 말함.
3) 배성지물(配性之物) : 수성에 맞춰 배당한 물질
1) 기수 : 기초로 하여 쓰는 수, 곧 1에서 9까지의 정수(整數).
2) 윤멱 : 멱은 같은 수를 여러 번 곱한 상승적인 수를 말함. 9×9×9=93 또는 a3 따위.
3) 배성지물 : 수성(數性)에 맞춰 배당한 물질 즉, 금;목;화;수;토(金;木;火;水;土). 화(火)는 열기, 빛, 팽창하
는 힘, 상승하는 힘, 발산하거나 흩어지는 힘 등을 말하는 것이고, 수(水)는 냉기, 어둠, 수축하는 힘, 하강하는
힘, 뭉치는 힘 등을 상징 할 것이고, 토(土)는 재료요 형상을 뜻하는 것일 것이다. 기(氣)란 생명력, 에너지등을
상징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중국의 신화에 여와가 흙으로 인간을 빗 는 것이 나오는데 이는 흙과 물을 이용하여
형상을 이루고 열과 기로 생명을 만들어 넣은 것으로 해석이 된다. 고대 그리스 철학 중 만물을 이루는 4대 원소로
공기, 물, 불, 흙을 들었는데 당시에는 공기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던 것으로 볼 때 공기란 기(氣)를 말하는 것이라
생각이 된다. 그렇다고 보면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일치하는 것이 되어 고대 철학의 근간이 이것이 아니었나 하는
추측도 가능하리라 생각이 된다. 현재까지 발견된 고인돌은 세계에 15만개가 있다고 한다. 그 중 10만개가 우리나
라 안에 있는데 그 속에서 발견되는 부장품을 보면 누구나 다 만들었고 계층별 차이가 거의 없어 우리 고대 사회
가 평등사회였다는 것을 충분히 예측을 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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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 21장 13.08.08
第二十一章
且其所謂五行者天數之理 未有是法也 方位五中者 交叉之意 非變行之謂也 變者 自一至九故
五者不得常在於中 而九者輪回 律呂相調 然後萬物生焉 此 基數之謂也 至其五七大衍之環
則其位不限於五 而亦有四七也 且其順逆生滅之輪冪 四也非五也 卽原數之九l不變故也 叉輪冪一終之間
二八之七也非五也 叉其配性之物 金木水火土 五者之中 金土如何別立乎 以其小異亦將別之則
氣風草石之類 豈不共擧耶 故皆擧則無數也 嚴擧則金木水火或 土木水火之四也 不得爲五也
尤其物性由何而配於數性乎 數性之物 其原九也非五也 故五行之說 眞是荒唐無稽之言
以此 誣惑證理之人世乃作天禍 豈不可恐哉
또 그 소위 오행이라는 것이 천수의 이치라 하나, 이러한 법은 있지 아니하였다.
방위에서 오중이란 서로 교차하는 뜻이요 변하고 행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변이란 것은 일에서부터 구로 나아가는 것이므로, 오가 항상 가운데 자리하여 있다고는 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구, 즉 아홉 개의 수가 돌고 돌아감에 따라 율여가 서로 조화하며,
이런 연후에 만물이 생하는 것이다. 이는 기수, 즉 기본적인 수에 대해 말해본 것이다.
또 그 ‘오칠(5,7) 대연의 고리’, 즉 오칠이 크게 순환한다는 말에 대해 본 즉,
그 자리가 오에서 끝나지 아니하고 또한 사칠(4,7)에 있는 것이다.
또 그 순역과 생멸하는 윤회의 장막이란 4요, 5가 아니다.
이것은 곧 원수, 즉 원래 수의 9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윤회의 장막이 한 번 끝나는 사이는 28의 7이요, 5가 아니다.
더하여 그 성품을 배당한 사물을 보더라도,
금목수화토의 다섯 개 가운데 금과 토를 어찌하여 따로이 각각 세운단 말인가?
그 작은 차이로써 이들을 구별한 즉, 기․풍․초․석의 종류는 어찌하여 같이 차이를 두지 않는 것인가?
만일 이들을 위와 같이 다루게 되면, 그 종류가 무수하게 많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엄밀하게 거론하자면 곧, 금목수화이거나 혹은 토목수화의 4개요, 5를 얻지는 못할 것이다.
또 그 물성, 즉 사물의 성질은 대체 어떤 연유로 수성, 즉 수의 성질에 배당한 것인가?
수성의 물이란, 그것이 원래 구에서 비롯한 것이요, 오가 아니다.
그러므로 오행의 설이란 참으로 황당무계한 말일 뿐이다.
이로써 증리의 인세, 즉 바른 이치를 닦아 밝히고자 하는
인간세상을 속이고 미혹하여 하늘의 화를 지어내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오행과 사상의 이야기, 천수와 역수 myh1117 13.08.08
동양철학을 공부해 오면서, 아직도 풀기 힘든 상수와 천리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 사주 팔자도 보고 있지만, 여기에서 최고의 원리는 결국 태극음양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명리를 추측해가는 술수의 법 가운데 또 기문둔갑이란 것이 있다. 9궁8괘가 나오는 것이다.
또 4수와 5수의 문제에서 다시금 9수가 나오는데, 인세증리 천도부합의 이치란 과연 어떤 것인가?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모든 수리는 다 사용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그것이 4수든 5수든, 이들은 다 사용 가능한 것이요, 하나의 이치로서 풀이해 볼 가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부도지> 이 부분의 기사는,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몰아간 느낌이 있다.
그 자체의 원문이라기보다, 박금씨의 기억에 의존하여 기록되는 과정에서 뭔가 빠져 있다는 느낌인 것이다.
사실 중국 중심의 문화권에는 음양대대의 2수 논리가 발달해 있고,
한단을 중심으로 한 우리문화권에서는 천지인 삼원을 바탕으로 한 3수 논리가 보다 발달해 있다.
그러나 이러한 2 또는 3수의 형이상 내지 상수학적 논리가 어느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수학에서도 정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유리수 소수 무리수 등이 있지 않은가?
물론 세상에서 현실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생각하면,
수학자가 아닌 이상 먹고 사는데 산수만 할 줄 알면 크게 문제될 일은 없다.
그러나 수학자가 아니라고 수에는 정수만 있다고 말해서는 곤란할 것 아닌가.
사실상 철학적 형이상학을 말하자면, 이의 내용을 모른다고 사는데 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를 알고 이해하게 되면, 삶의 풍부함이라 할까
또는 좀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고나 할까. 그런 것이 있다.
오늘 부도지의 기사는 사실상 마고성의 문제보다도 더 어려운 과제를 안겨준다.
그리고 하늘의 뜻에 부합한다는 것은 무엇일지? 또 다른 생각을 불러오게 만든다.
어쨌든 이후 동양문화사의 큰 틀과 축은 중원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 또한 근본을 잃어버린 한민족의 아픔이라 해야할런지.
다만 자본주의가 들어오고 난 후,
우리 민족의 삶이 점점 더 근본에서 멀어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ㅠㅠㅠ
□ 第二十二章 정역
또 그 역제(曆制)는 천수(天數)의 근본을 살피지 못하고,
거북이나 명협1)의 미물(微物)에서 근본을 취하였으니,
요는 또 무슨 속셈인가.
천지의 만물이 다 수에서 나와 각각 수를 상징하고 있는데
하필 거북과 명협 뿐이겠는가?
그러므로 모든 사물에 각각 그 역(曆)이 있으니, 역이라는 것은 역사(歷史)다.
그러므로 요의 역제는 즉 거북과 명협의 역이요 인간의 역이 아니니,
그것이 인간세상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진실로 당연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삼정(三正)2)을 번복하여,
구차스럽게 맞추고자 하였으나 얻지 못하여 마침내 하늘의 죄를 끌여 들였다.
역(曆)이라는 것은, 인생증리(人生證理)의 기본이므로,
그 수는 몸소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역이 바르면 천리(天理)와 인사(人事)가 증합(證合)하여 복이 되고,
역이 바르지 못하면 천수에 어긋나 화가 되니,
이는 복은 이치(理)가 존립(存立)하는데 있고,
이치는 바르게 밝히는(正證)데에 존립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역이 바르고 바르지 못한 것은,
인간세상의 화복(禍福)의 발단이니, 감히 삼가 하지 않을 것인가.
옛날 오미(五味)의 화(禍)가
한사람의 미혹에서 나와서
만대의 산사람(生靈)에게 미치고 있는데,
지금 또 다시 역의 화가
장차 천세(千世)의 진리에 미치고자 하니
두렵기만 하구나.
且其曆制 不察乎天數之根本
차기역제 불찰호천수지근본
取本於龜英之微物 堯且何心哉
취본어구영지미물 요차하심재
天地之物 皆出於數 各有數微
천지지물 개출어수 각유수미
何必龜英而已哉
하필구영이이재
故 於物於事 各有其曆 曆者 歷史也
고 어물어사 각유기력 역자 역사야
故 堯之曆制 卽龜英之曆 非人世之曆
고 요지역제 즉구영지력 비인세지력
其不合於人世者 固當然也
기불합어인세자 고당연야
以故 飜覆三正 將欲苟合而不得 遂致天禍也
이고 번복삼정 장욕구합이부득 수치천화야
大抵曆者 人生證理之其本故 其數無不在躬
대저역자 인생증리지기본고 기수무불재궁
是故 曆正則天理人事 證合而爲福
시고 역정칙천리인사 증합이위복
曆不正則乖離於天數而爲禍
역부정칙괴리어천수이위화
此 福在於理存 理存於正證故也
차 복재어리존 이존어정증고야
故 曆之正與不正 人世禍福之端 可不愼哉
고 역지정여부정 인세화복지단 가불신재
昔世五味之禍
석세오미지화
出於一人之迷惑
출어일인지미혹
及於萬代之生靈
급어만대지생령
今且曆禍 將欲及於千世之眞理 懼矣哉
금차역화 장욕급어천세지진리 구의재
주석 해설)
1) 명협(蓂莢) : 역초(曆草)라고도 한다. 보름까지는 날마다 잎이 하나씩 나고 보름후부터 잎이 하나씩 떨어지는
데, 작은달에는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말라버렸다고 한다.
2) 삼정(三正) : 1, 4, 7 성수(性數)와 2, 5, 8의 법수(法數)와 3, 6, 9의 체수(体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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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 제22장 13.08.11
第二十二章
且其曆制 不察乎天數之根本 取本於龜莢之微物 堯且何心哉 天地之物 皆出於數 各有數徵
何必龜莢而已哉 故 於物於事 各有其曆 曆者歷史也 故 堯之曆制卽龜莢之曆 非人世之曆
其不合於人世者 固當然也 以故 飜覆三正 將欲苟合而不得 遂致天禍也 大抵曆者 人生證理之其本故
其數無不在躬 是故 曆正則 天理人事證合而爲福 曆不正則 乖離於天數而爲禍 此 福在於理存
理存於正證故也 故 曆之正與不正 人世禍福之端 可不愼哉 昔世五味之禍 出於一人之迷惑
及於萬代之生靈 今且曆禍 將欲及於千世之眞理 懼矣哉.
또 그 역법의 제도를 보면, 이는 천수의 근본을 살피지 아니하고,
그 근본을 거북이와 명협이라는 미물에서 취한 것이다. 도대체 요는 어떤 마음을 품은 것인가?
천지의 만물은 모두가 수에서 나와, 각각 수의 성징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거북이와 명협풀에 제한한단 말인가?
진실로 만물과 만사에는 각기 그 역, 즉 시간이 있다. 따라서 역이란 곧 역사이다.
그러므로 요의 역제는 곧 구협의 역이요, 인세의 역은 아니다.
그것이 인간세상에 합치되지 않음은 진실로 당연할 뿐이다.
이러한 까닭에 삼정을 번복하여 장차 이를 구차하게 맞추고자 하였으나
얻지 못하고, 마침내 하늘의 화를 이르게 하였다.
대저 역이란, 인생증리, 즉 인간의 삶에서 이치를 깨달아 가는 일의 기본인 까닭에
그 수가 그 몸에 있지 아니한 것이 없다.
다시 말해 증리의 모든 수는 오직 자신의 몸에 있을 따름인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역이 바른 즉 천리와 인사가 증합, 곧 합을 증명함으로 복이 될 것이요,
역이 바르지 못한 즉 천수에 괴리되어 화가 될 것이다.
이는 곧 복은 이치가 있는 곳에 있음이니, 바른 것을 증명함에는 이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의 바른 것과 바르지 못한 것은
인간세상에서 화복의 단초가 되는 것이니, 가히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오랜 옛날 오미의 화가 한 사람의 미혹됨으로부터 출발하여,
만대의 생령들에게 그 해악이 미친 것이 되었다. 지금 또 역화, 즉 역의 잘못으로
장차 천세의 진리를 해치고자 하는 것이니, 두렵고 또 두려울 뿐이다!
천지의 이치를 몸에서 구한다. myh1117 13.08.11
옛 글에 이르기를 '近取諸(저)身 遠取諸(저)物'이라 하였습니다.
곧 세상의 이치는 결국 내 몸에 모두 갖추어져 있는 것이니, 가까이에서 그 올바름을 찾으라는 것이지요.
달리 사물에서 이치를 찾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이치'라기 보다는, 좀 더 '보편적인 뜻'을 구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학에서도 수신제가 이후에 격물치지 한다 하였습니다.
격물치지가 소홀한 것이라기 보다는, 내 마음을 먼저 안정시키는 것이 급선무라는 뜻이겠지요....
오늘 역과 관련된 부도지의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천부경과 관련된 '한역'이 있었다는 주장이 새삼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주역의 음양론이 틀렸다는 것이라기 보다, 음양을 이해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태극의 흐름을 따라 삼일의 철학을 구성하는 것과
음양대대의 관점에서 세계를 파악하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해 통화의 관점에서 사상의 분화가 이루어지면
사방팔방 이 안정되는 사해동포의 코스모폴리타니즘이 설 수 있지요...
이에 반해 허기에 속하는 중토를 오행의 중궁에 자리시키면,
중심을 둘러싼 센트리즘(center-ism), 중앙집중형이 나오게 됩니다.
그만큼 세계 이해의 방식과 태도가 변화한다는 것이지요...
이러다보니 중국은 항상 구주팔황의 중심에서 천하를 본다는 식으로, 그들만의 천하사상을 발전시키게 됩니다.
이에 반해 우리는 삼일의 원환주의를 중심으로 어울림과 조화의 사상을 추구하게 됩니다.
이러한 우리 만의 사유가 하나의 생활원리로 자리 잡은 것이 바로 '홍익인간 재세이화'요,
'접화군생'의 철학적 사유체계가 바로 그런 것이라 하겠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한국사상의 문화정신은
역대로 고대 한국의 국가나 제왕들에게는 그대로 불문률처럼 전해지고
그대로 지켜 내려 온 바의 정치철학이요, 생활사상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고려 태조 왕건의 십훈요라고 하겠지요...
하지만 조선왕조의 성립과 더불어 이러한 민족사상의 정수는 왜곡되게 됩니다.
□ 第二十三章 천도
천도(天道)가 돌고 돌아 종시(終始)가 있고,
종시가 또 돌아 4단씩 겹쳐 나가 다시 종시가 있다.
1 종시의 사이를 소력(小曆)이라 하고,
종시의 종시를 중력(中曆)이라 하고,
네 번 겹친 종시를 대력(大曆)이라 한다.
소력의 1회(回)를 사(祀)라 하니 사에는 13기(期)가 있고,
1기에는 28일이 있으며 다시 4요(曜)로 나뉜다.
1요에는 7일이 있고 요가 끝나는 것을 복(服)이라 한다.
그러므로 1사에 52요복이 있으니 즉 364일이다.
이는 1, 4, 7성수(性數)요,
매 사의 시작에 대사(大祀)의 단(旦)이 있으니,
단과 1은 같기 때문에 합하여 365일이 되고,
3사의 반(半)에 대삭(大朔)의 판이 있으니,
판은 사의 2분절이다. 이는 2, 5, 8법수(法數)요,
달이 긴 것이 1일과 같기 때문에,
제 4의 사는 366일이 된다.
10사의 반(半)에 대회(大晦)에 구가 있으니,
구는 시(時)의 근원이다.
* 구(咎) : 머리에 가로왈 변이 있는 글자이다.
300구가 1묘가 되니, 묘는 구가 눈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9633묘를 지내서 각(刻), 분(分), 시(時)가 1일이 되니,
이는 3, 6, 9의 체수(體數)다.
이와 같이 끝나고 또 시작하여 차차 중력(中曆)과 대력(大曆)에 미쳐서
이수(理數)가 곧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저 요의 이 세가지 잘못은 허위(虛僞)의 욕망에서 나온 것이니,
어찌 가히 부도 실위(實爲)의 도에 비할 수가 있겠는가.
허위는 안에서 이(理)가 불실하여 마침내 멸망에 이르고,
실위는 이(理)가 나를 언제나 만족하게 하여 스스로 함께 존립한다.
天道回回 自由終始
천도회회 자유종시
終始且回 疊進四段而更有終始也
종시차회 첩진사단이경유종시야
一終始之間 謂之小曆 終始之終始 謂之中曆 四疊之終始 謂之大曆也
일종시지간 위지소력 종시지종시 위지중력 사첩지종시 위지대력야
小曆之一回曰祀 祀有十三期
소력지일회왈사 사유십삼기
一期有二十八日而更分爲四曜
일기유이십팔일이갱분위사요
一曜有七日 曜終曰服故
일요유칠일 요종왈복고
一祀有五二曜服 卽三百六十四日
일사유오이요복 즉삼백육십사일
此 一四七之性數也 每祀之始 有大祀之旦
차 일사칠지성수야 매사지시 유대사지단
旦者與一日同故 合爲三百六十五日
단자여일일동고 합위삼백육십오일
三祀有半 有大朔之 昄者 祀之二分節
삼사유반 유대삭지 판자 사지이분절
此 二五八之法數也 昄之長 與一日同故
차 이오팔지법수야 판지장 여일일동고
第四之祀 爲三百六十六日
제사지사 위삼백육십육일
十祀有半 有大晦之咎 咎者 時之根
십사유반 유대회지구 구자 시지근
三百咎爲一眇 眇者 咎之感眼者也
삼백구위일묘 묘자 구지감안자야
如是經九六三三之眇刻分時爲一日
여시경구육삼삼지묘각분시위일일
此 三六九之体數也
차 삼육구지체수야
如是終始 次及於中大之曆而理數乃成也
여시종시 차급어중대지력이이수내성야
大抵堯之此三誤者 出於虛爲之欲
대저요지차삼오자 출어허위지욕
豈可比言於符都實爲之道哉
기가비언어부도실위지도재
虛爲則理不實於內 竟至滅亡
허위칙리부실어내 경지멸망
實爲則理常足於我 配得自存
실위칙리상족어아 배득자존
주석 해설)
1) 사(祀) : 연(年)과 같은 개념
2) 기(期) : 월(月)에 해당하는 개념. 음력으로 윤달이 든 해는 13개월이 된다.
3) 4요(曜) : 1기 28일의 1/4 즉 7일
[1] 사 : 연年과 같음.
[2] 기 : 월月에 해당함. 음력으로 윤달이 든 해는 13개월이 됨. 1년을 13달로 나눠 사용을 하는데 그 달력의 정밀
도가 매우 높아 천년이 지나도 몇 초 틀리지 않아 현대의 달력보다 그 정확도가 훨씬 더 높다. 서양에는 권력자가
역(曆)을 정리를 하여 율리시스력이나 그래고리력이라 하며 만든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데 마야와 같이 천체의 움직
임을 체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사욕이 들어가 많이 변조가 되었다. 예를 들어 그들이 12진법을 사용을
하여 12개의 달로 나눴으나 1월(30), 2월(31), 3월(30), 4월(31), 5월(30), 6월(31), 7월(30), 8월(30), 9월(31),
10월(30), 11월(31), 12월(30)로 나누면 365일이 되나 율리시스가 자신의 생일(2월28일)에 맞춰 2월을 28일로 만
들고 1월(31), 2월(28), 3월(31), 4월(30), 5월(31), 6월(30), 7월(31), 8월(31), 9월(30), 10월(31), 11월(30),
12월(31)로 만들었다.
[3] 4요 : 1기 28일의 4분의 1 즉, 7일.
* 중국에는 頊욱曆, 삼통력三統曆, 사분력四分曆이라는 것이 있다. 또 갑골문의 해독으로 밝혀지게 된殷의 역이 있
으나 한국역처럼 정교하고 치밀한 계산법을 가지고 있는 역은 없다. 이 점에서는 서양역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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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 제23장 13.08.14
第二十三章
天道回回自有終始 終始且回 疊進四段而更有終始也 一終始之間 謂之小曆 終始之終始 謂之中曆
四疊之終始 謂之大曆也 小曆之一回曰祀 祀有十三期 一期有二十八日而更分爲四曜 一曜有七日
曜終曰服故 一祀有五二曜服 卽三百六十四日 此 一四七之性數也 每祀之始 有大祀之旦 旦者與一日同故
合爲三百六十五日 三祀有半 有大朔之昄 昄者 祀之二分節 此 二五八之法數也 昄之長 與一日同故
第四之祀 爲三百六十六日 十祀有半 有大晦之晷 晷者時之根 三百晷爲一眇 眇者 晷之感眼者也
如是經九六三三之眇刻分時爲一日 此 三六九之體數也 如是終始 次及於中大之曆 而理數乃成也
大抵堯之此三誤者 出於虛爲之欲 豈可比言於符都實爲之道哉 虛爲則理不實於內 竟至滅亡
實爲則理常足於我 配得自存.
천도가 돌고 도니 스스로 그 끝과 처음이 있고,
종시가 또 돌아서 4단으로 겹쳐 나아가니, 다시금 종시가 있게 된다.
하나의 종시가 이루어지는 시간을 소력이라 이른다.
종시의 종시, 즉 두 번의 종시를 중력이라 하고, 종시가 4번을 거듭한 것을 대력이라 부른다.
한 번의 소력을 사라 이르고, 사에는 13기가 있다.
한 기에는 이십팔일이 있고, 다시금 이를 나누어 사요가 된다.
따라서 일요에는 칠일이 있으니, 요가 끝나면 다시 돌아가는 까닭에, 일사에는 오십이요의 복이 있다.
곧 삼백육십사일이다. 이것은 일,사,칠의 성질을 가진 성수이다.
매 사의 처음에는 대사의 단, 즉 첫날이 있으니, 단이란 1일과 같다.
그러므로 합하여 삼백육십오일이 된다.
삼사에 반이 있고 대삭의 판이 있다. 판은 사의 이분절이다. 이것은 곧 2,5,8의 법수이다.
판의 길이는 하루와 같다. 그러므로 4번 째의 사는 삼백육십육일이 된다.
십사에 반이 있고, 대회의 구가 있다. 구란 시의 근원으로, 삼백 구가 일묘가 된다.
묘란 구의 시간이 눈으로 감지되는 것이다. 이것이 경과하여 곧 9633의 묘가 각,분,시로 하루가 된다.
이것은 3,6,9의 체수, 즉 몸의 수이다. 이와 같이하여 종시는 다음의 중과 대의 력에 미치는 것이다.
이치와 수가 이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저 요가 이 세 가지 잘못을 저지르게 된 것은 모두가 허위의 욕망에서 나온 것이다.
이를 어찌 가히 부도 실위의 도에 비교하여 말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허위라는 것은 곧 그 이치가 안에서부터 부실한 까닭에 마침내 멸망에 이르게 되고,
실위라는 것은 그 이치가 항상 나에게 충족되는 까닭에
이를 밖에 적용하여도 마침내 자존하게 되는 것이다.
삭과 판의 역법과 계산, 특이한 시간계산법이지요... myh1117 13.08.14
판으로 보아야 할 지, 반으로 읽어야 할 지, 주저되는 대목입니다.
어디에서도 오늘 부도지가 설명하는 역법을 본 기억이 없네요...
주역의 역법은 기본적으로 태극음양에 4절을 넣고, 다시금 계토를 써서 4계를 만드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부도지는 사와 단을 써서 13기의 소력, 중력, 대력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든 오늘날 쓰고 있는 양력이나 음력과는 다소 다르지요...
결국 한 해가 오고 가고, 그 이치를 맞추는 것은 태양계 내에서 지구가 공전 자전하는 법칙과 관계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맞다 틀리다 하는 것보다, 고대의 역법 또한 천체의 움직임을 쫓아서 형성되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여기에는 28수를 중심으로 측량하는 방법을 쓰고 있는데, 147, 258, 369의 수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연구해 보아야 할 대목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특히 인간의 삶과 운명을 다룬다는 동양의 역법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더욱 조심스러운 부분이군요...
이 이치의 원칙은 기본적으로 하도낙서의 하락수를 따르지 않고,
천부경을 중심으로 하는 1과 3의 수리가 중심된다는 것입니다.
다만 수리적인 문제를 다룰 때, 어느 것은 옳고 다른 것은 그르다라고 단정짓는 것에는 조심스러워 집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인간사에서 수리란 모든 곳에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의 또 다른 계산방식으로 이해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러한 기사의 내용이 또 다른 위작론으로 연결되어 그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기본적으로 부도지는 신라를 중심으로 한 역사기록의 형태를 지닌 것이기 때문에
그 같은 사정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첨성대를 지어 하늘을 측량해 온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 부분은 또 다른 해석을 가능케 할 수도 있을 것 같군요....
□ 第二十四章 우를 처단하다
유호(有戶)씨가 이와 같이 단단히 타일러서,
제법(諸法)을 폐지하고 부도로 돌아 올 것을 권하였으나,
우(禹)가 완강하게 듣지 아니하고,
반대로 위협이자 모욕이라 하여 곧 무리를 이끌고 유호씨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수차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모산(茅山)1) 진지(陣地)에서 죽었다.
이에 하중(夏衆)들이 비분하여 죽기를 원하는 자가 수 만이였다.
이는 거의가 우와 함께 치수(治水)를 한 무리들이었다.
우의 아들 계(啓)2)가 이 대군을 이끌고
유호씨의 읍(邑)으로 진격하여 오니, 유호씨의 군은 불과 수 천이었다.
그러나 하나라 군사가 싸우면 반드시 패하여 한번도 전적을 드높이지 못하였다.
계(啓)가 마침내 두려워서 퇴진하고 다시 공격하지 못하자 그 무리가 격양되었다.
이에 유호씨가 하나라 백성이 눈이 먼 것을 보고 고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여,
장차 서남제족(西南諸族)2)을 가르치기 위하여 그 무리를 이끌고 가니
그 읍(邑)이 자연히 없어졌다.
有戶氏 如是叮嚀告戒
유호씨 여시정녕고계
勸廢諸法而復歸於符都
권폐제법이복귀어부도
禹 頑强不聽 反爲威侮 乃率衆攻有戶氏
우 완강불청 반위위모 내솔중공유호씨
數次未勝 竟死於茅山之陣
수차미승 경사어모산지진
於是 夏衆 悲憤 願死者數萬
어시 하중 비분 원사자수만
此盖輿禹治水之徒也
차개여우치수지도야
禹之子啓 率此大軍 進擊有戶氏之邑
우지자계 솔차대군 진격유호씨지읍
有戶氏之軍 不過數千
유호씨지군 불과수천
然 夏軍 戰則必敗 一無擧績
연 하군 전칙필패 일무거적
啓 遂懼而退陣 不復再擧 其衆 激昻
계 수구이퇴진 불복재거 기중 격앙
於是 有戶氏 見夏衆之爲瞽盲 以爲不可速移
어시 유호씨 견하중지위고맹 이위불가속이
將欲敎西南諸族 率其徒而去 基邑 自廢
장욕교서남제족 솔기도이거 기읍 자폐
주석 해설)
* 녕(寧) : 앞에 口가 붙은 글자이다.
1) 모산(茅山) : 강소성 구용시 율양 지역에 있다. 도교 상청파의 발원지라고 한다. 구곡산(句曲山) 이라고도 한
다. 사기에는 우가 10년 동안 동으로 순행을 하다가 회계산에서 죽었다고 하는데 이는 후대 사가들의 곡필이다.
2) 계(啓) : 하왕조 우왕의 아들로 하왕조의 2대 왕이다. 서토의 기록은‘우는 익(益)에게 왕위를 넘겨주려 했으나
계(啓)가 백성들의 신임을 얻고 있음을 알고 계에게 물려 주었다. 왕위에 오르자 제일 먼저‘유호부락’이 반기를
들고 독립을 선언하였다. 계가 군사를 이끌고 유호부락을 토벌함으로서 자신의 기반을 튼튼히 하였으며 또한 왕위
세습제를 확립하였다. 9년간 재위하다 죽었다‘라고 왜곡된 기록을 하고 있다. 어찌하였건 부도지에 나오는 유호씨
의 역사가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3) 서남제족(西南諸族) : 서남제족이라 함은 서남이를 말하는 것으로 오늘날 운남, 귀주, 광서, 광동지역을 의미하
는 것 같다. 구제불능의 서토는 포기하고 서남이를 교화하기 위해 순행을 떠나니 그곳이 바로 현재 치우한웅을 시
조로 모시는 묘족 집단 거주지역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하 부산 민박사님 https://cafe.daum.net/myh1117>>>-----------
부도지 제24장 13.08.15
第二十四章
有戶氏如是叮嚀告戒 勸廢諸法而復歸於符都 禹 頑强不聽 反爲威侮 乃率衆攻有戶氏 數次未勝
竟死於茅山之陣 於是 夏衆悲憤願死者數萬 此盖與禹治水之徒也 禹之子啓率此大軍 進擊有戶氏之邑
有戶氏之軍 不過數千 然 夏軍戰則必敗 一無擧績 啓遂懼而退陣 不復再擧 其衆激昻 於是 有戶氏見
夏衆之爲瞽盲 以爲不可速移 將欲敎西南諸族 率其徒而去 其邑自廢.
유호씨가 이와 같이 정성스럽고 간곡하게, 고하고 타일렀다.
또 모든 법을 폐지하고 부도로 다시 돌아올 것을 권하였다. 그러나 우가 완강히 이를 듣지 아니하고
도리어 위세로 모욕하며, 곧 무리를 이끌고 유호씨를 공격하였다.
여러 차례 공격하였으나 마침내 이기지 못하고, 모산의 진영에서 사망하였다.
이에 하의 무리들이 비분하여 죽기를 원하는 자가 수만이었는데,
이들은 대개가 우와 더불어 치수를 도왔던 무리들이었다.
우의 아들, 계가 이들을 모아 대군을 이끌고 유호씨의 읍으로 진격하였다.
유호씨의 군대는 겨우 수천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하나라의 군대가 싸우면 반드시 패하여 한 번도 전적을 내세우지 못하였다.
계가 비로소 두려워하여 마침내 퇴진하고, 다시 재차 거병하지 못하니, 그 무리들이 격앙되었다.
이에 유호씨가 보니, 하의 무리들이 어리석고 눈이 멀어 이들을 조속히 고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장차 서남의 여러 족속들을 가르치고자
그 무리를 이끌고 가 버리니, 그 읍은 자연히 폐지되고 말았다.
구이와 12족속 myh1117 13.08.15
역사에서 진실을 알아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부도지를 번역하면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한 번 잘못 각인된 사실은 또 얼마나 바꾸기가 힘들 것인지 상상이 되질 않습니다.
철학에서는 이런 잘못된 선입견을 이도라, 즉 우상이라 하지요...
요, 순, 우는 전설적인 성왕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 역대의 선조들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이들에 대해서는 누구나 한 번 쯤은 들어서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온 부도지의 기록과 어떠한가요! 너무나 다른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니 어떻게 이를 한국사의 강의 과정 중에 집어 넣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러다보니 학생들이 배울 수 있는 우리 역사 또한 도대체가 진실인지 아닌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유호씨란 분을 배워본 적이 있었던가요? 한국사에서 이 분은 단 한 번도 거론되질 않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알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그래도 여기 부도지에는 분명히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 12제국, 12지파, 족속들이 나뉘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 아득한 옛날, 마고의 이야기는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되고, 아니 잊혀져 간 더 옛날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각 족속들이 살아가면서 서로 싸우고 부딪히고 생존을 건 투쟁의 시기로 접어들게 되는군요.....
드디어 하늘의 이치로 살아가는 인간세상이 아니라
사람들의 앎과 능력으로 아니 머릿수로 밀어 붙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한단고기>에는 치우천황께서 황제와 탁록의 대전을 벌인 이후
중국의 인민들과 그 문화적 차이를 드러내게 됨을 말합니다만,
여기에서는 하우를 멸망시키고 떠나는 이야기가 기록됩니다.
늘 생각해보는 이야기이지만, 이 대목은 결국 인류 역사의 변용이란 측면에서 이해해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어느 날 에덴동산에서 축출된 인간들이 그 족속의 분화가 이루어지면서
점점 더 하늘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이야기이지요..
자본주의가 득세하고 난 이후, 이제 신의 존재는 거의 잊혀지고 그 자리에 物神의 존재가 등장합니다.
우리는 지금 돈과 물건 이외에는 믿지를 않습니다.
인간의 진심을 알지 못하고 돈의 역량만을 최선으로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하늘의 뜻과 이치에서는 멀어지고, 오히려 싸우고 헐뜯는 존재들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언제쯤 이런 짐승같은 상황에서 벗어나, <천지에서 가장 귀한 인간>이란 성스런 존재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이 삶이 끝나고 나 죽은 뒤에나 가능한 일이 되어버린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