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文字, writing system / script)의 역사1 라경준 <프린팅코리아> 2004.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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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3_5 : 문자의 기원]* 문자(文字, writing system / script)의 역사1 라경준 <프린팅코리아> 2004.2월호
문자의 역사 2004 / 라경준 청주고인쇄박물관 학예사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 인류의 최초 의사전달 표현
의사소통은 인간의 기본 욕구 중 하나다. 우리 선조들이 생활주변에서 얻어지는 갖가지 재료를 가지고
의사전달의 표현도구로 삼았던 것은 바로 이러한 근원적인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인류가 발전함에 따라 감정과 생각을 좀 더 쉽고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한 단계 더 심화된 욕구가 발동되었고 그에 따라 표현방법도 다양하게 모색되었다.
더 나아가 표출된 의사소통 내용을 기록해 두어 오래 보존하고자 하는 욕망도 생겨났는데,
앞으로 우리가 함께 더듬어 볼 한국인쇄술의 발명 역사도 결국은 이러한 맥락과 상통되고 있는 셈이다.
인류사에 남겨진 의사전달의 첫 표출은 구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연에 대한 인식을 표현하고자 했던 인간의 잠재욕망은 생활근거지에 인접하면서 보존이 용이했던 곳,
즉 땅 속 깊은 곳이나 동굴의 벽화를 통해 표출되었다.
프랑스의 쇼베동굴, 라스코동굴, 스페인의 알타미라동굴에 그려진 벽화들을 그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겠다.
이들 동굴에 그려진 정교한 동물 그림들은 하나의 상징적인 의사전달 표현법으로 볼 수 있다.
선사학자 구란은 이들 동굴 벽화들이 암시하는 메시지를 밝혀 내고자 연구를 했는데,
이들 동굴 벽화들은 인류역사에 나타나는 첫 의사 표현법이었다고 한다.
구석기인들은 바위나 갑골 등을 통해서도 의사표현을 시도했다.
한반도에서는 1973년 발굴된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포전리 점말의 용굴 동굴에서
구석기시대의 동물 뼈, 골기, 석기 등이 발견됐는데
기원전 약 66000여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슴 뼈에 사람 얼굴로 추정되는 흔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영일, 고령, 영주, 경주, 울주 등 기타 경상북도 지방 등지에서도
종교적인 메시지를 담거나 일상생활 모습을 담은 바위그림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선사시대의 말엽에 이르러 의사를 표출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더욱 구체화되었다.
와스버톤의 표현에 의하면 “그림문자”라 불리는 그림 기호나 암석 조각 문자가 나타난다.
암석에 그려진 것이든, 조각해 넣은 것이든, 이들 그림 문자들은
대상을 나타내는 도형이나 몇 개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하나의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사용되었다.
1972년 12월에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와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에서
3000년 전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바위에 그린 그림이 발견되었는데,
이 암각화에는 800여개 그림 문자들이 새겨져 있다.
동물그림, 점선, 기하학적인 그림들이 새겨져 있고,
이 바위 아래쪽에는 신라시대의 명문인 화랑서석이 첨부되어 있다.
인류의 발달과 더불어 그림 문자들은 더욱 체계화되고 관념화되었으며 머지않아 표의문자로 대체된다.
이에 따라 옮겨 쓰기가 더욱 용이해지고 문자가 내포하는 의미도 다양해졌다.
이들 표의문자들은 표시, 표적을 통해 의미를 전달할 뿐이지 말이나 음성까지 전달하는 것은 아니었다.
표의문자는 활발한 상업교류가 이루어지던 집단취락의 발달과 함께 전개되었다. 신석기시대에 이르러
흩어져 있던 인간 집단들이 국가체제를 이루면서 문자는 권력의 도구로 이용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문자를 표기하는 도구로는 암반, 석판, 동물 뼈, 상아, 조개 껍질, 나무 껍질 혹은 나뭇잎 등
각 지역의 생활권에서 쉽게 얻어지는 갖가지 재료들이 사용되었다.
이들 표기 도구들과 문자의 발달은 서로 밀접한 상호관계를 지니며 발전해 갔다.
문자의 시초는 상형문자
문자의 시초는 사물의 형상을 본떠 그것과 관련이 있는 관념을 나타낸 상형문자였다.
상형문자는 문명 발상지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로 발전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지역에서는 설형문자로,
에집트 문명지역에서는 신성문자로,
중국 문명지역에서는 갑골문자로,
아메리카 지역에서는 인면 상형 문자로 나타난다.
현재 이라크에 해당되는 우르와 니퓌르, 니니브 그리고 시리아 지방에 위치한 엘바에서
점토판에 새겨진 설형문자들이 발견되었다.
지리학적으로 터어키에 해당되는 힛티이트 왕국의 문헌도서관에서도 설형문자의 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설형문자는 기원전 2천∼3천년에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기원전 6∼7세기경까지 사용되었다.
시리아인,수메르인,아카드인,힛티이트인,바빌로니아인,엘브라이트인들이 거주했던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문자이다.
이들의 문자모양이 못 형태를 지닌다 해서 설형문자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못 한 개의 형태를 다양하게 변형시켜 2백∼3백 여 개의 새로운 기호들이 발생되었다.
설형문자는 이란의 케르만샤 부근에 위치한 베히스툰 바위에 새겨진 문자들을 단서로 해독이 되었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 제국정벌에 관한 기록을 새겨둔 베히스툰 바위는
1800년대에 집중적으로 조사·연구되었으며
독일인 죠르루 프리데리쉬 그로테판드, 영국인 헨리스 C 롤린슨, 프랑스인 쥘 오페 등이 문자 해독을 연구하였다.
점토판은 당시 문자를 새겨 넣는 도구로서 최적의 재료였을 것이다.
물렁물렁한 점토판에 날이 뾰족한 쇠 끝으로 문자를 새겨 넣은 후에
햇볕에 말리거나 화덕 속에 넣어 건조시키면 문자들은 단단한 점토판에 고정되었다.
문자 점토판은 대부분 15㎝×20㎝ 크기의 직사각형 모양이었다.
간혹 30㎝×40㎝ 크기의 보다 큰 점토판들도 있었다.
점토는 지중해 주변에서 쉽사리 구할 수 있었던 천연자원이었다.
따라서 크레타섬의 미노스시대와 시리아 지역에 걸쳐 점토판이 문자표기 도구로서 널리 이용되고 있었다.
점토판은 저렴하게 만들 수 있었고, 앞뒤, 양쪽 면에 글자를 기입할 수 있었으며,
문자 형체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었다. 반면, 다소 무겁고 깨지기 쉽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점토판에 새겨진 문자 내용들은 아주 다양하다. 어휘수록, 상업 매매 거래들을 기입해 놓은 장부,
왕의 칙령, 국제협약, 법률, 종교,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있었다.
기원전 3100년 경 이집트에서는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가 나타난다.
그리스인들은 이집트 상형문자를 두고 ‘신성하게 새겨 넣다’라는 뜻에서 신성문자라고도 했다.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는 1822년 프랑스인 고고학자 쟝-프랑소와 샹폴리옹이 해독하였다.
그는 1799년 나일강 어귀에서 발견된, 세계적으로 유명한 로제타 석을 통해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의 암호를 푸는데 성공하였다.
로제타 석에는 기원전 196년 이집트왕 프톨레마이 5세의 칙령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집트의 민용문자, 그리스어,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 등 세 언어로 새겨져 있다.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에는 무려 5천 여 개의 기호가 존재하고 있으며,
단어마다 개념, 음성, 음절 기호들을 담고 있는데. 이들은 보통 불가사의한 수수께끼를 담고 있다.
이들 불가사의한 상형문자들은 비슷한 음을 지니는 사물들을 가르키고 있었다.
그러나 상형 문자는 당시 이집트 사회의 표현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따라서 기원전 2400년경에 초서체 승용문자가 새로 발생되기에 이르렀다.
고대 이집트의 법률, 행정, 문학을 오늘날 해독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승용문자를 통해서이다.
기원전 7세기에 다시 민용문자가 새로이 탄생되었으며,
기원전 5세기에 이를 때까지 이집트에서는 승용문자와 민용문자가 함께 사용되었고,
점점 두 문자의 사용법도 단순화되었다. 사용되지 않는 기호들을 삭제하고
문자기호를 그려내는 속도를 더 빠르게 하면서 문자가 좀 더 단순화되었던 것이다.
돌덩이 이용 많아
이집트 유적지나 세계 곳곳의 박물관에 소장된 고대 유물들을 통해 알 수 있듯,
큰 바위나 돌덩이들이 글자표기 도구로도 이용되었다.
또한 고대 이집트인들은 파피루스로 만든 종이에 잉크를 묻혀 글을 쓰기도 했다.
파피루스는 나일강 삼각주의 습지에서 잘 자라는 일종의 갈대인데,
파피루스로 만든 종이는 가볍고 부드러워 손쉽게 다룰 수 있었다.
따라서 점토판에 비교하면 훨씬 실용적인 서사 도구였다.
따라서 파피루스가 점토판 대신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파피루스는 옷이나 장막의 원단 재료가 되기도 했다.
파피루스를 종이로 만들기 위해서는 줄기의 껍질을 벗겨내어
얇고 섬세하게 찢어놓은 조각들을 판판하게 여러 겹 깔아놓고 그 위에 다른 조각을 덮어씌워 서로 엮어 놓는다.
이들 엮어놓은 파피루스 조각들을 강물에 담갔다가 꺼내어 놓은 후에
천으로 감싸고는 평평해질 때까지 방망이로 다듬이질을 하면
파피루스 섬유질들이 서로 뒤섞여지고 엉겨지면서 판판하고 부드러운 표면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종이에 필생들이 갈대를 펜촉처럼 비스듬히 잘라 글을 썼다.
이러한 갈대 붓은 검정이나 붉은 잉크에 적시어 사용했는데,
이 때 사용된 용액은 아라비아고무를 주원료로 해 만들었다고 한다.
같은 크기의 여러 파피루스종이를 서로 연결해 두루마리 형태로 만들었는데
이 두루마리를 로마시대에는 볼뤼멘이라 불렀다.
두루마리 한 가운데에 축을 끼워 종이를 말았을 경우에는 옴비리퀴스(Ombilicus)라 지칭했다.
두루마리는 일반적으로 너비는 10㎝∼15㎝, 길이는 5m∼10m 사이로 각각 달랐다.
파피루스종이는 근동지방으로 전파되었고 그리스와 로마제국으로까지 보급되었다.
파피루스종이는 4세기경까지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 종이는 오래가지 못하고 습기를 피해 건조한 곳에만
보관해야 되는 단점을 지니고 있었던 까닭에 차츰 사용이 줄어들었다.
고대 인도문자도 이집트 상형문자와 메소포타미아 상형문자와 같은 무렵에 출현했다.
기원전 2300년경 인더스 강 유역에서 인도문자가 나타났음을 증명하는
여러 인장들이 서쪽 파키스탄 모핸조다로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이들 인장에는 많은 동물그림과 부호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데 약 4백 개의 다른 모양을 보여주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들 고대 인도문자들은 해독되지 않은 상태이다.
브라미와 드바나가리등의 인도문자는 새로운 음절체계를 지닌 문자로 볼 수 있다.
극동아시아에서 한자 출현에 대한 첫 흔적은 기원전 2278년 우황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황제가 홍수재난을 방지하기 위해 실시했던 대대적인 공사에 대한 기념비가 후난 산맥지역 흥창산에 세워졌는데,
그 비문을 통해서 고대한자의 기원이 입증되고 있다. 문자가 지니는 난해한 구조로 미루어보아
한자의 출현과 사용은 우황제 시대보다 훨씬 이전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 한자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2200년으로 추정된다.
중국 산동대학 고고학과는 1991년 산동성 추평현 원성향 정공촌의 신석기시대 문화 유적에서
글씨가 새겨진 토기 파편(길이 4.6㎝∼7.7㎝, 너비 3.2㎝, 두께 3.5m)을 발굴해 이를 용산도서라 불렀다.
중국 고고학계는 1992년 12월29일 이 토기 조각의 글씨가
지금부터 4200년 전에 쓰여진 중국 최초의 문자라고 공식 발표하였다.
초기한자는 표의문자
토기조작에 새겨진 글자는 모두 11자로 다섯줄로 나뉘어 새겨져 있는데
독립된 글자 형태를 지니면서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고
일정한 구성법이 있어 기존의 부호나 그림 문자의 단계를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 발표가 나오기 전까지는 중국 최초의 문자는 기원전 1400년 무렵 상나라 때 만들어진 갑골문자라고 공인돼 왔었다.
중국에서 문자 이전의 형태인 부호, 상형문, 그림 등
각획부호라 부르는 형태는 기원전 4000∼5000년 전의 토기에 새겨진 채 발견된 것이 더러 있었지만
이런 것들은 문자가 아니라 한자의 기원으로 믿어졌던 것들이다.
오랫동안 가장 오래된 한자로 여겨졌던 갑골문자는 거북의 등과 소의 뼈에 새겨진 것으로 1899년에 발견되었다.
이 갑골문자는 기원전 1400년∼1100년에 존재했던 은 왕조시대의 문자로 알려졌다.
갑골문자는 하나의 글자가 하나의 뜻을 나타내는 표의문자로서,
물체의 형태를 본 떠 만든 그림문자와 기호화해 발음기호로 사용한 것 등 여러 가지가 혼합되어 있었다.
그러나 원시적인 상형문자보다는 진보된 형태였다.
갑골문자 뿐만 아니라, 비단 끈으로 연결된 대나무 다발에서도 문자 기록이 발견되었다.
초기 한자는 200여 자의 표의문자를 지니고 있었다.
음을 표시하는 상징그림과 기호들이 체계적인 조합을 이루어 다양한 문자들을 만들어냈는데,
214자의 핵심 표의문자를 기본으로 해 문자들이 만들어졌다.
다시 은나라 때는 문자수가 4500자, 한나라 때는 문자수가 10,000자,
12세기까지는 문자수가 23,000자, 18세기에는 문자수가 49,000자로 증가하였다.
한자는 단음절어이므로 위에서 아래로, 혹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을 쓸 수 있다.
일본에서는 히라가나와 가타카나가 새겨진 갑골문자가 뒤늦게 발견되었다.
중남미 기원전 8세기 등장
지중해 연안의 에게 문명 지역에서는 크레타 문자와 힛티이트 문자가 사용됐다.
크레타문자는 A 선상 문자와 B 선상 문자로 분리된다.
A 선상 문자는 기원전 1700년경에 발생된 문자로 페스토스 지방의 원반에서 발견되었다.
A 선상 문자 보다 2세기 후에 출현된 B선상 문자는 미노스 문자라고도 불리는데,
점토판에 새겨진 미노스 문자가 크노소스에서 발견되었다.
양호한 보존 상태의 점토판에서 대량으로 발견된 이들 크레타문자들은
1953년에 영국인 벤트리스에 의해 문자해독이 이루어졌다.
반면에 힛티이트 문자는 여전히 해독이 되지 않고 있다.
중남미에서는 기원전 8세기경 마야문명과 더불어 상형문자가 출현했다.
오늘날 마야의 상형문자는 콜럼버스 발견 이전의 계곡문자라고도 불린다.
아직까지 마야의 상형문자는 제대로 해독이 되지 않고 있는데, 이에 관련된 유물들이 파손된 탓이다.
단지 달력과 날짜 계산, 숫자를 의미하는 문자가 사용된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이다.
마야인들의 필사본을 통해서 그들이 무화과나무의 일종인 플로에마 껍질에 글을 기록하였음이 밝혀졌다.
플로에마 나무에서 추출된 껍질은 길이가 약 6미터에 이르고 있다.
마야인들은 추출된 나무껍질을 물에 적셔 놓고는 섬유질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다듬이질해 평면으로 만들어 글을 썼다.
마야인들처럼 멕시코 원주민인 아즈테크 인도 멕시코산 알로에인 용설란 껍질에 글을 썼다.
기원전 1천년 경에 출현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즈테크 문자는 표의문자로 간주된다.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은 문자의 단순화를 추구했다.
단어를 여러 부분으로 나누고 자음과 모음으로 언어의 기본음을 분리했다.
여러 차례의 연구를 통해서 음과 글자의 일치를 이루는 자모 즉 알파벳이 고안되었다.
이때부터 각각의 문자 기호는 고유한 발음을 지니게 된다. 단어 하나가 지니는 의미는
기호 형태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지 않고 언어의 내용적인 의미를 담는 개념 용어가 되었다.
알파벳은 기원전 14세기경에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 지역에 거주했던
셈족인 가나안 인들이 사용했던 페니키아 문자에서 탄생되었는데,
기원전 14세기경에 30자의 문자 기호가 쓰이고 있었다. 이들은 낙타 뼈에 문자를 새겨 넣었다.
문자는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각 민족은 고유의 문자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해상무역이 활발했던 페니키아인들이 여러 민족과 교류하면서 알파벳이 대표적인 문자로 자리잡게 되었다.
페니키아 알파벳은 고대 이집트의 민용문자와 앗시리아의 설형문자에서 영향을 받아
기원전 12세기경에 22자의 음성기호가 완성되었다.
반듯한 고딕체나 흘림체의 문자형태에 따라 파피루스 종이나 토기조각에 잉크와 붓, 혹은 깃털로 글을 새겨 넣었다.
중동지역에서는 기원전 1000년경 히브리어와 아랍어를 사용하였는데,
셈족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을 썼다. 아랍글자의 이색적인 특징은
한 단어 속에서 문자가 앞부분, 중간부분 혹은 끝 부분 중 어느 쪽에 위치하는가에 따라서 형태가 달라진다.
월간 프린팅 코리아 2004년 2월호 통권 2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