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3_5 : 문자의 기원]* 문자(文字, writing system / script)의 기원1 <무명씨><
문자의 기원은 구석기 중기인 BC5만년경 돌이나 뼈에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새긴 조각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그 후 점차 흔해져 BC1만년경에는 선사인류(先史人類) 문명인이 흔히 사용하던 그림문자가 된다.
초기의 그림문자는 단지 기억을 보조해 주는 수단에 불과했으며, 의사소통의 대상으로 사용된 것은
인류의 문명이 크게 발달한 중국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마야 등의 문자를 들 수 있다.
문자가 아닌 의사소통의 수단으로는 매듭이나 막대, 조가비띠 등을 들 수 있다.
옛날 중국의 고대기록에 의하면 “
옛날에는 매듭을 매어서 다스렸는데, 뒤에 성인의 서계(書契)로 바뀌었다”고 하여, 일정한 약속 아래
매듭을 맴으로써 서로의 언약이나 중의(衆意)에 의해 결정된 사항을 보존해 두는 방법이었으리라 추측된다.
10세기경의 잉카문명에도 매듭제도가 존재했다. 한다. 막대가 기억을 돕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 것은
용건의 수대로 나뭇가지 ·막대 등을 가지고 있다가 이것을 서로 주고받음으로써 가능했으며,
조가비띠 또한 이와 유사한 기능으로 이용되었다. 이러한 것 모두를 글자라고 볼 수는 없으나
글자의 선도적 구실을 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쓰던 시대를 ‘기억돕기시대(memory stage)’라고 한다.
↑ 알래스카 원주민들이 나무 조각 위에 남긴 일종의 그림 문자
↑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의 원주민들이 나무 껍질에 남긴 그림 문자
(1) 문자의 발생
오늘날에는 문자가 인간 상호간에 의사전달 수단으로 보편화되어 있지만
문자가 언제부터 생겨나 사용되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문자가 생기기 전에도 사람들은 음성이나 몸짓 등으로 의사를 소통시켜 왔다.
그리고 문명이 점차 발달됨에 따라 음성은 일정한 체제를 갖춘 언어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언어는
음성이 전달되는 범위 내에서만 소통이 가능하고 불완전한 인간의 기억력 범위 내에서만 유지될 뿐이다.
따라서 사회가 점차 발달하고 복잡해지면서 서로 간에 전달하거나 소통시켜야 할 의사의 질과 양이 많아지자
전달성과 보존성이 보다 확실한 방법을 찾게 되었다.
이러한 필요에 따라 생겨나게 된 것이 문자이지만, 문자는 짧은 시일 안에 쉽게 형성되지는 못했다.
문자가 사용되고 기록물이 등장하는 시점에서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구분되는데, 인류는
이미 문자가 생겨나기 전인 선사시대에도 의사의 전달과 보존을 위한 여러 가지 표현 방법을 고안해 사용하였다.
그 중에서 오래 전부터 가장 널리 사용된 것이 결승의 방법이었다.
천이나 양털로 만든 새끼로 적당한 간격마다 일정한 매듭을 지어 상호 간에 의사 표시를 했던
결승문자(結繩文字)는 고대 중국, 페르시아, 잉카제국 등에서 사용되었으며,
지금도 그 흔적이 페루나 멕시코의 원주민들에게는 남아 있다.
새끼의 개수나 간격에 따라 수(數)를 나타내고 빛깔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나 추상적인 관념까지도 표현했는데,
소유 재산의 기록과 연대기 등을 보존할 목적으로도 사용되었다.
즉, 커뮤니케이션의 전승성과 보존성을 지닌 문자 이전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승문자는
하나의 약속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뜻을 나타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사전교육이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학자들이 인류 문자의 기원을 결승문자에서 찾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여기에서 보다 발달되어 그림문자가 생겨났다.
나무나 돌 등에 선이나 그림을 그려 좀더 편리하고 합리적인 의사소통 수단을 개발한 것이다.
그림문자는 보다 직접적이면서도 구체적이고 다양성이 있으며, 무엇보다 기록성이 있었다.
이러한 그림문자가 등장함으로서 인류 문화 발달단계에 있어 하나의 전환기가 되었다.
기원전 5천년 경 동굴에서 살았던 원시인들은 동굴 벽면 등에 원과 선을 새기거나 그림을 그려 기록으로 남겼다.
그림문자는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우리 나라에도 현재 암각화(岩刻畵)의 형태로 여러 곳에 존재하고 있다.
처음에는 언어로만 전해지던 신화나 주변에서 본 것들을 사실적인 그림의 형태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그림이 점차 진화하여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기록을 남기는 방법이 되었고,
그림 또한 점차 간략화 되어 여러 가지 기호를 사용하는 단계로까지 진보하면서 그림문자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림문자의 의미를 보다 구체화하고 보편성을 갖게 하기 위해 고대 사람들은 상형문자(象形文字)를 고안해 냈다.
이 상형문자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최초의 문자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의 신성문자,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 중국의 한자(漢字) 등은 모두 그림문자에서 진화된 상형문자들이다.
상형문자 중 가장 오랜 것은 바빌로니아와 앗시리아에서 사용된 설형문자(楔形文字)이다.
이는 그림문자에서 발달한 것이지만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되던 신성문자와는 다소 달랐다.
이들은 서사 재료로 점토판을 사용했는데,
그림문자를 정교하게 새기기 어렵자 이를 쐐기형[楔形]으로 간소화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기원전 1천년 경에 페니키아 사람들은 이러한 설형문자를 더욱 간소화시켜
오늘날 알파벳의 기원이 되는 문자를 만들어 냈다.
이집트인의 상형문자는 기원전 3천년 경에 생긴 것으로 처음에는
그것이 묘사하는 사실 이상의 것을 표현하지 못했으나 점차 넓은 의미나 개념을 전달하는 수단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이집트인들은 이들 문자를 초기에는 돌에 새겼지만 점차 파피루스에 기록하게 되었다.
이처럼 그림문자는 점차 발전하여 설형문자나 한자와 같은 상형문자인 표의문자로 진화되었고,
설형문자는 더욱 간소화되면서 발전되어 오늘날의 알파벳과 같은 표음문자로 변천해 왔다.
문자의 발생은 이처럼 오랜 과정을 거쳐 형성되면서 세계 각지에서 필요에 따라 다양한 문자가 생겨났다.
문자가 생겨남으로서 인간은 비로소 거리나 장소에 관계없이
보다 명확하게 의사를 표시하거나 전달할 수 있게 되었고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2)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의 문자의 발달
모든 문자의 기원은 회화에서 비롯되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자는 BC6000∼BC5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의 회화문자는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총체적으로 뭉뚱그려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이 회화문자는 언어와는 직접 관련을 가지지 못한다.
이러한 단계를 지나면 추상화의 단계에 도달한 문자가 나타나는데,
이것이 이집트의 신성문자(神聖文字:hieroglyph)로 표의문자에 가까운 것이다.
신성문자의 경우, 도구 ·식물 ·동물 등 주변에 있는 것으로 수를 나타냈는데,
이를 보면 고대이집트인의 발상을 잘 엿볼 수 있다.
주로 고왕조의 분묘나 기념비에 나타나는 상형문자(象形文字)로 돌에 새겨져 있다.
해 ·산 ·물 등을 나타내는 그림을 각각 그렸으며, 추상적인 관념을 표시하기 위하여 상징적인 방법을 사용했는데,
가령 다리 둘을 그려서 ‘가다 ·걷다’를 표시하고,
두 팔과 방패, 창을 든 모양으로써 ‘전쟁’을, 말과 물의 그림을 합쳐서 ‘목마름’을 표시하였다.
그리고 악기의 일종인 류트(lute)의 그림은 ‘착함’을 나타내게 되었고,
또한 이것과 ‘∼까지, ∼하는 한(as far as)’이 이집트 말에서는 [nefer]로 발음이 같은 것을 이용하여,
악기 그림 하나로써 그 악기 및 ‘착함’과 전치사 ‘as far as’를 다 같이 표기하는 글자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혼합적 적용법 때문에 일어나는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소리로 표시하는 글자 위에 그 뜻을 설명하는 한정부를 붙이게 된다. 가령 보는 것이나
아는 것에 관한 말을 표기하는 데는 그 소리를 표기하는 글자에 ‘눈’의 그림을 덧붙임으로써 분명히 한다.
이러한 단계를 거쳐 점점 소리글자에 가깝게 발전한다.
예를 들어 ‘의자’를 표시하던 사각형 모양의 그림은 pi 외에 pa나 pu로도 읽을 수 있는데,
여기에서 모음이 떨어지게 되자 [p] 음만을 나타내게 된 것이다. 똑같은 방법으로
‘사자 ·물결 ·입 ·뱀’이 [l] [n] [r] [z]로 대응하게 되어 자모를 형성하게 되었다.
수메르문자도 처음에는 그림글자였으며,
그림의 선이 차차 간단해지자 이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문자를 만들기도 하였다.
따라서 동일한 문자에서 몇 개의 다른 문자가 파생되기도 하였고, 서로 다른 문자들이 동화되기도 했다.
‘입’과 ‘빵’을 조합해서 ‘먹는다’의 뜻을 나타내었으며,
태양은 ‘날(日) ·빛(光) ·밝다(明) ·희다(白)’ 등에 두루 쓰이게 되었다.
이름은 [mu]라 하였는데, 이것을 [mu] 소리를 포함하는 다른 음절에도 적용하여
차차 뜻을 나타내는 의부(意符)와 소리를 나타내는 음부(音符)가 구별되어 병용되기에 이르렀다.
이를 물려받은 아카드인은 이것을 훈(訓)과 음(音)으로 이용하였다.
이 지방에서는 진흙이 많아서 그것으로 판을 만들어 글자를 기록했기 때문에 글자의 모양이 쐐기 모양이 되었다.
이것을 설형문자(楔形文字:cuneiform letter:쐐기글자)라고 하는데, 후에 바빌로니아 ·아시리아로 전파되었다.
이들에게서도 또한 점차 소리글자로 발달해 가는 과정을 볼 수 있는데,
일례로 ‘하늘’을 표시하는 문자는 별 모양을 본뜬 것이었으며, 이것이 ‘신(神)’을 가리키게 되었고,
신을 표시하는 말이 [ana]이었으며, 뒤에 한 음절로 줄어들어 [an]이 되었는데,
이것이 나중에는 [an]이란 소리가 들어 있는 음절에서 쓰이게 되었다.
(3) 상형문자의 해독
약 15세기 동안이나 사람들은 이집트의 신성문자에 대하여 흥미진지한 눈으로 보아왔다.
그러나 그 문자가 대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신성문자를 제일 마지막으로 사용한 것은 기원전 4세기경의 이집트 신관들이었다.
그러한 그의 행동은 4천년동안의 오랜 전통에 종지부를 찍었고, 1500년 동안에 고대 이집트어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집트언어는 로제타스톤의 발견과 샹폴리옹*(1790~1832)의 노력에 의해서 다시 깨어나게 되었다.
오늘날 광대한 그들의 문학작품에 의해서 우리는 대부분의 고대 이집트문화와 사회에 관하여 알 수 있게 되었다.
이집트문자를 "히에로글로픽(Hieroglyphics)"이라는 부른다. 이 뜻은 고대가 끝나갈 무렵의 그리스인들이
"사제 -새김(Prist-Carving)"혹은 "신성문자(Sacred Writing)"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집트 상형문자는 오로지 그림으로만 이루어져있다.
그러나 그 기호가 묘사하는 대상이 무엇인가를 전부 알 수있는 것은 아니고,
판독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상형문자의 표본들은 그림문자가 아니라,
음가를 지닌 실제로 사용된 문자로 쓰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형문자의 기원과 발전
상형문자(상형문자)란 고대 이집트의 히에로글리프를 비롯해서
마야, 아즈테카 문자, 지중해 고대문자를 그림에서 성립되었다고 보는 표의문자(표의문자) 등을 말한다.
상형문자가 최초로 사용된 예로 거론된 것은
기원전 3200년경 전쟁에서 승리한 왕, 즉 어둠의 세력을 물리친 파라오들을 기념하는 내용의
"나르메르 왕의 팔레트" 또는 "전갈왕의 곤봉"이다. 그러나 상형문자 체계는
그 이전에도 존재했 던 것으로 추정되며 따라서 그 등장 시기는 적어도 5천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상형문자가 모두 750개 정도였다.
그 기본적인 체계는 처음 태어난 모습 그대로 어떠한 변형도 겪지 않았다.
마지막 신전이었던 필레사원이 폐쇄될때까지 상형문자들의 모양은 한결 같았다. 전무후무한 일이다.
상형문자들은 그 기본원칙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도 나름대로 발전을 거듭했다.
고대 이집트어라 함은 고대왕국시대의 언어를 일컫는 말로서 [피라미드의 서(書)]도 고대 이집트어로 쓴 것이다.
"중기이집트"또는 "고전기 이집트어"는 중왕국시대의 언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문법학자들이 주로 연구하 는 언어도, 이집트학의 계기가 된 상형문자도 이 시기에 속해 있다.
유명한 〔시누혜 이야기〕도 중 왕국 시대에 쓰여진 것이다. 문자의 양이 꽤 많이 늘어난
신 왕국(제18왕조∼제21왕조)시대의 상형문자도 중 왕국 시대의 원칙을 그대로 유지해 간다.
한참 뒤인 이른바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는 사제들이 엄청난 양의 상형문자 기호들을 새로 만들어냈다.
이때 만들어진 상형문자들 중 에는 해독이 어려운 것도 꽤 있다.
그러나 그 때까지도 그 언어의 기능만은 여전히 전통에 충실했다.
그런데 왜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 상형문자가 그렇게 늘어난 것일까? 사제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세상에서 고립된채, 갈수록 사나워지는 점령자들의 적대감에 시달리던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감추기 위해 암호와 암호 사용법, 그리고 복잡한 서채를 개발해 내야 했다.
상형문자가 맨 마지막으로 새겨진 것은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통치하던 394년 8월 24일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로부터 2세기도 지나지 않은 551년 '이집트의 경이'라 불리우는, 이집트 남단의 필레 신전마저 폐쇄되고 말았다.
토드 신이 이집트의 현자들에게 누설한이래 4천년 가까이 사용된 이 신성한 문자는,
1822년 샹폴리옹 덕분에 다시 부활하여 오 늘날 새로운 청춘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샹폴리옹이 상형문자의 실마리를 얻은 것은 그가 콥트어를 알고,
콥트어 중에는 상형문자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형문자가 그리스어의 영향을 받아 알파벳만을 써서 기록할 수 있게끔 변형된 것이 콥트어이다.
상형문자를 정보화하려는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진다면 상형문자는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새로운 천 연도 가뿐히 뛰어넘을 것이다.
이집트 문자의 기원과 발전
고대이집트 문자의 기원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집트 제 1왕조 이전시대의 말기(BC1300직전)에 생겨난 것이 분명하다.
그 당 시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사이에 접촉이 있었고,
이집트인이 수메르인 한테서 문자라는 개념을 빌려온 것으로 여겨져왔다.
고대이집트언어에 단계별로 다르게 변화되었다.
대부분의 이집트역사에서는 히에글릭픽이나 필기문자, 성용문자 등 문어체가 실질적으로 쓰였고,
구어체는 중왕조(Ⅸ & ⅨⅠ왕조, 213-1786)시기부터사용되었다. 이것을 "중기이집트어"라고 부른다.
그래서 히에글릭픽이나 성용문자는 초기어형식이나 중기어형식에 겹치는 경향이 보인다.
고대 이집트어는 아카드시대(Ⅰ&Ⅱ왕조, 3100-2680)와 고왕조(Ⅲ&Ⅳ왕조,2690-2159)시기에 사용되었다.
또한 중기 이집트어의 문자, 구어체, 문어체는 계속적으로 변화하였다.
신왕조 (ⅩⅧ &ⅩⅩ왕조, 1575-1087)로부터 보다
더 후기의 왕조(ⅩⅨ &ⅩⅨⅤ왕조, 1087-715) 언어를 "후기이집트어"라고 부른다.
후기이집트어의 구문은 Amarna있는 아케나톤과 AmenhotepⅢ의 정치적 문서에서 찾아볼 수 있고,
몇몇 후기이집트어의 문법 또한아케나톤지역에서 히에글로픽비명에서 드러난다.
중기이집트어의 구어체는 간단히 바뀌어갔다. 중기이집트어에서는 뚜렷한 관사가 없었으나,
후기 이집트에서는 p3가 있었고, 후에 콥트어에서 "pa"로 발음되었다.
따라서 후기 이집트어의 구어체에서는
민용어(Demotic)(c.715 BC-470 AD)와 콥트어(Coptic)(c. 400 AD-c. 1600)의 두 단계가 나타났다.
이것은 이집트 단어들을 빌려서 초기 그리스에 민용어가 반영되었을 것이다.
민용문자는 초서문서로 쓰여진 것으로 그래서 이형식으로 쓰여진 언어를 "민용문자"라고 부른다.
마지막 히에글로픽비문은 Philan AD394년에 만들어졌으나
오래되지 않아 로마황제인 데오도시우스(379-395)황제가
이교도의 사원을 폐쇄하라는 명령을 내려서 마지막 민용문자는 470년에 있었다.
이집트인들이 기독교로 전환하면서 민용어를 쓰는 것이 사라지고 고대문서를 작성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대신 그들은 그리스 알파벳을 쓰기 시작했고,
그들은 그리스어에 존재하지않은 7가지 민용문자의 음가를 빌려서 사용하였다.
그리스어에는 모음들이 존재하였고 마지막단계의 이집트언어에서는 단어들을 완전히 모음화할 수 있었다.
이것이 "콥트어(Coptic)"라고 불리어지는 것이다.
콥트어는 서서히 이집트인들이 이슬람어와 아랍어로 전환하면서 구어체가 되었다. 비록 17세기에
구어체 사용을 중지했지만, 콥트어는 이집트인의 10%에 속하는 콥트교회의 예배식 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신성문자는 석기시대의 동굴에서 발견된 것과 마찬가지로 선사시대에 그림문자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초기 이집트인은 그림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려운 개념에 부딪쳐
필요한 말을 음으로 엮는 수수께끼 그림 같은 것을 고안해 냈으리라는 생각한다.
마치 영엉에서 벌(Bee)의 그림과 잎(Leaf)의 그림을 연결시켜 신앙(Belief)라는 개념을 표현하는 식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이집트 문자는 우리들이 말하는 알파벳에까지는 진화하지 못했으나
말속에서 나타나는 자음은 전부 그 기호가 정해져 있었다.
이 방법은 외국의 명칭을 음으로 표현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음기호를 만들지 않아도 충분했다.
즉 음을 나타내는 그림을 짝 맞추어 어떤 말이라도 뼈대만을 만들어낼 수가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집트인은 신성문자를 사용할 때 실용성과 함께 아름다움을 의식하고 장식적인 효과를 고려했다.
문장을 쓸 때 단어의 흐름을 막는 공간도 마침표도 없고, 또 가로로 쓰기도 하고 세로로 쓰기도 했다.
생물의 그림은 보통문장의 출발점에 놓여져 문자는 거기에서부터 읽혀졌다.
읽는 순서는 상부에 있는 기호가 각 그룹은 어울리게 또는 대칭된 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3) 중국에서의 문자의 발달
또한 중국의 한자(漢字)도 원래 그림글자에서 출발하여 오늘날 보는 것과 같은 뜻글자의 대표적인 글자가 되었다.
거북의 등에 나타나는 갑골문자(甲骨文字)와 그 이전의 구리 그릇 따위에 나타나는 문자는 완전한 그림글자이며,
지시대상을 거의 완전히 그린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단이 관습화되면
지시대상과 표시방법 사이의 완전한 일치는 필요 없게 된다. 따라서 표시방법도 점차 간략해지고 추상화하여
문자로서 다양성을 갖추게 되었다. 이와 같이 그림으로 표시한 것을 상형(象形)이라 한다.
이 밖에 문자를 다양화해 가는 방법으로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 ·가차(假借) ·전주(轉注)의 5가지가 있으며,
상형과 합쳐서 이를 6서(六書)라고 일컫는다.
한 낱말의 대상이 상형처럼 구체적이 아닌 경우, 예를 들어
‘위 ·아래’와 같은 말은 평선(平線) 위아래에 점을 찍어 ‘?, 萸’와 같이 표시하였는데, 이를 지시사라 한다.
회의는 앞의 이집트문자 등에서 보았듯이 기존의 두 문자를 합쳐서 새로운 개념을 표시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풀 ·해 ·반달을 이용하여 해가 풀밭에서 올라오면서 아직 달이 남아 있는 ‘아침[朝]’을 표시한다.
가차의 방법은 어떤 단어와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가 이미 문자를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만(萬)은 본래 전갈을 상형한 것이나, 그와 동음이었던 수(數)의 만을 가리키게 된 것과 같은 것이다.
또한 동음어의 동일문자화를 피하기 위해 그 한편에 표의적(表意的)인 변(邊)을 사용한 글자가 형성문자이며,
동일한 글자를 파생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전주(轉注)라 하는데,
‘도(途)’가 길[道]을 나타내게 되는 것과 같은 예가 이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