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훈민정음(訓民正音)/훈민정음기원설

왜노의 신대문자는 한자다 / <상선약수>

유위자 2025. 11. 14. 10:06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4_1 : 훈민정음 기원] * 왜노의 신대문자는 한자다 / <상선약수> 해신의 바다 수많은 흰 파도를 넘고 넘어서 여덟 섬나라에는 글이 전해졌노라. 943 년, 다치바나노 나오모토(橘尙幹)가 日本에 문자를 전해준 王仁 박사의 업적을 기려 읊은 와카(和歌)다. 日本의 漢詩集 가이후소(懷風藻)의 머리말에서도 문맹의 倭에 王仁이 처음으로 글을 가르친 것을 칭송하고 있다. 日本에는 405 년(? 日本에 漢字가 전해진 것은 420 년대이다)까지 문자가 없었다. 까막눈 이었다. 그래서 倭라는 국명이 가슴에 사무 치도록 싫었음에도 글자를 몰라 그대로 썼다. 그뿐인가. 왜노국(倭奴國)이라는 사실이 오늘날 까지 지상 최대의 자랑인 종족이다. 그 뒤로 다시 文盲時代로 회귀해서는 고작 몇 명만 글자를 읽을 줄 알아 책을 읽어주면 사무라이라는 인간들이 에토키(繪解)라는 그림책을 들여다 보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들었던 종족이다. 이게 가슴에 사무쳤던지, 에도(江戶) 시대에 國學 혹은 미도학(水戶學) 이라는 역사왜곡학이 발흥할 때, 고대, 아니 神代의 문자라며 또 날조를 해댔다. 金印[漢委奴國王(かんのわのなのこくおう) : 漢에 예속된 노예나라의 王, 시키노시마(志賀島)에서 출토 되었다고 한다]만으로는 모자랐던 것이다. ▲ 금인(金印) 일본 교과서에 등장하는 가장 일반적인 국보가 바로 후쿠오카시(福岡市)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금인이다. 이 금인의 특징은, 황금으로 만들어 졌다는 것과, 다섯글자(漢委奴國王)가 새겨져 있고, 손잡이가 뱀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 http://museum.city.fukuoka.jp/jb/jb_fr2.html 참조 ) ''아주 오랜 옛날(古事記나 日本書紀에 나오는), 神들이 살았던 때에 쓰인 글자''라고 해서 ‘神代文字’라고 부른다. 神의 詩歌와 죽이 잘 맞는가? 저 神들조차 韓國神이다. 한인 및 한웅이다. 너희 倭奴民族은 王仁을 文字의 神으로 섬긴다면서? 그럼 王仁이 가르쳐준 漢字가 너희민족의 神代文字가 아니냐? 列島에 나라가 들어선 것이 백제 아신제(阿莘帝) 4 년 즉 395 년이다. 日本書紀에는 應神 14 년, 百濟王이 재봉사 진모진(眞毛津)을 보내 주었는데, 衣縫의 始祖라고 했다. 그리하여 日本 侯王과 귀족만 옷을 입었으니, 5 세기의 일본은 옷조차 만들지 못해 벌거벗고 살았다. 18 세기의 일본 역사학자 토우테이칸(藤貞幹 : 1732∼1797)은 제 조상을 일러 ‘벌거숭이’라고 했다. 5 세기 말에도 “농사는 나무로 만든 괭이나 삽으로 밭을 갈았다. 벼가 익으면 손이나 돌로 만든 칼로 벼이삭을 땄다 (고대국가와 천황, 타무라 엔쵸 : 田村圓澄)." 6 세기 “대부분의 일반인은 땅을 판 구덩이의 움집에서 살고 있었다.”(田村圓澄) \이런 미개국에서 문자를 개발할 수 있는가. 日本書紀에도 王仁이 漢字를 가르쳐주기 전에는 文字가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문자가 없어서 역사기록도 못해, 겨우 우리나라 역사서를 보고 줄줄이 베낀 일본이다. 18 세기에 들어와서야 발견 했다며 난리치며 한다는 말이 “漢字가 들어오기 전에 日本이 쓰던 글자가 있다. 바로 神代文字다”고. 그럼 저급한 漢字는 왜 썼나? 계속 神의 문자를 쓰지. 神의 문자를 버리고 漢字를 썼다는 것 부터가 이상 하지 않은가. 왜 저급한 가나(假名)를 만들어 썼냐구? 너흰 저급한 것만 선호하는 민족이냐? 왜 그처럼 소중한 문자로 역사책 조차 기록하지 않아서 新羅의 천문기록까지 다 베꼈느냐? 日本의 神代文字 날조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간단하다. 한글보고 베꼈다. 하지만 한글을 그대로 쓰진 못하고 한글 아닌 문자도 고심해서 몇 개인가 만들었다. 子音 으로만 배열했다. 자음, 모음을 따로 떨어뜨려 놓았다. 이제 좀 있으면, 한글을 그대로 사용 하면서 神代文字라 우길 날이 오리라는 걸 예상할 수 있지 않은가. 1419 년 이종무(李從茂 : 1360~1425) 장군이 對馬島를 정벌 했는데, 항복한 對馬島主와 倭寇들이 무역을 허락해 달라고 애원해서 三浦까지 열어주어 朝鮮에서 살게 해줬다. 이때부터 倭奴들이 건너와 朝貢貿易을 하면서 高麗時代에 개발한 한글을 배웠다. 교과서도 남아 있다. 對馬島 민속자료관에 가보라. 漢字에다 한글과 가나인지 뭔지 하는 왜(倭)말로 적어뒀을 테니까. 일본에서 “일본은 한자가 들어오기 전에는 신대문자(神代文字)를 썼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때는 에도시대(江戶時代)인 18 세기 때 부터이다. 이때는 일본에서 ''일본 제일주의''를 주장하는 국수주의적 학문인 ''국학(國學)''이 싹터서 자라나던 때이다. 신대문자를 발견하고 신대문자를 알리는 책을 찍어내서 신대문자를 널리 알린 국학자가 나온 때도 이 무렵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18 세기 이전에는 신대문자를 아는 사람도, 신대문자를 쓰는 사람도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당시 일본은 한자와 가나를 쓰고 있었는데, 18 세기쯤 되어서 국학자들이 신대문자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널리 퍼뜨렸다는 것이다. (PRKOREA 웹진, 한글과 일본의 "신대문자"의 수수께끼, 2002. 12. 12) 가림토(加臨土)를 보고도 베꼈다. 百濟 유민들이 이주 하면서 한단 역사서도 가져갔기 때문이다. 온갖 유물을 날조해 증거랍시고 남겨놓았다. 칸무(桓武)의 焚書 사건을 두고 “神代文字는 이 불태워 버린 책들에 쓰여 있었을 것”이라고 횡설수설 하는가 하면, 구석기 날조 사건을 연상케 하는 온갖 증거를 제시한다. 神代文字 탁본과 함께 古事記를 지은 사람인 태안만려(太安萬侶)와 비전아례(裨田阿禮)의 이름이 나와 있는 탁본을 증거랍시고 제시한다. 나라(奈良) 시대 이전 것이라고 우기는 탁본에는 세금을 낼 때, 돈 대신 소금을 낸다는 내용을 적어 놓았다. 神代文字와 漢字로 병용해서 써 놓았는데, 돈 대신 물건을 세금으로 낸다는 것은 日本에 통일된 고대국가가 나타나기 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奈良時代 이전으로 보인다고 우긴다. 통일국가가 되면, 왜노 민족이 돈을 사용한 줄 알았는가? 天武 金多遂(新羅の王は、沙トク部沙サン金多遂を派遣して質とする)가 부본전(釜本錢)이라는 新羅 돈을 도입 했지만, 미개 사회라 통용은 못 했다. 멀쩡한 비석의 비문도 서슴없이 깎아내는 농간도 마다하지 않는 民族이다. 가짜 廣開土境大勳跡碑의 비문을 여기저기 다 긁어내고 석회칠을 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탁본쯤 위조하는 것이야, 日本軍이 수십 만 명을 생체실험하는 것보다 훨씬 쉽지 않나? 생체실험을 했을 때처럼 자긍심을 가지고 임했을 것이 틀림없다. 拓本 날조는 저 노예민족의 독자적인 학문, 즉 國學, 미도학(水戶學)이라 부르는 歷史歪曲學의 필수과목이다. 증거라는 拓本에는 漢字와 神代文字가 나란히 나와 있다. 神代文字가 새겨진 비문 이라면서 증거로 내세운 비석에도 저 倭奴民族이 날조한 문자와 함께 漢字도 새겨져 있다. 神들의 시대에 사용해서 神代文字라며? 漢字는 405 년(실제로는 420 년대)에 우리나라에서 보내 주지 않았는가. 405 년 이후가 神들의 시대인가? 우리나라에서는 9200 년 전부터 인간의 국가가 성립 했는데, 倭奴 땅에서는 405 년 부터가 神들의 시대면, 대체 인간의 시대는 언제부터인가? 神代文字와 漢字가 병존하는 상황에서 漢字가 그 신성한 神代文字를 밀어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漢字가 神代文字보다 우수해서? 神들이 사용한 문자가 외부종족이 사용하는 문자보다 열등했다는 것인가? ▲ 이세신궁(伊勢神宮)의 정전 이제 여러분은 남몰래 몇 명이 동원되어 비지땀을 흘리면서 종이인지 종이묶음 인지에 한글을 자음, 모음 분리해서 적고, 혹은 자음만 모아서 적어 이세신궁(伊勢神宮) 이라는 날조 유물 모아두는 장소에 감춰두는 일본민족이 떠오를 것이다. 규슈(九州) 지역 神社들이 보관하고 있는 유물 가운데에 청동창과 청동검을 골라 날 양쪽에 한글을 새기는 일본민족의 모습도 선연히 떠오를 것이다. 百濟 皇帝가 韓半島를 침공한 新羅를 물리치기 위해 列島에 植民地를 만들면서 최초의 侯王 應神에게 하사한, 日本의 신보라는 七支刀 銘文도 쪼개서 날조한 인간들이다. 고작 수백 년 된 유적, 유물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七支刀를 날조한다 해서 한 번이라도 주저한 적이 있었겠는가. 한글을 베끼면서 한글이 오히려 베꼈다고 억지를 부릴 수 있으니, 이 정도쯤이야 무엇이 아깝겠는가. 원래부터 그런 민족인 것을. 그 열성으로 무엇 인가를 개발 했으면, 왜노국(倭奴國, 순종해야 하는 노예들이 모여 사는 나라) 소리는 안들었을 텐데. 무엇 하나 버리지 않고 다 모아두는 저 민족이 神代文字로 쓰여진 책은 모조리 焚書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倭奴民族은 칸무(桓武)가 분서한, 三韓과 同族 이라고 쓰여진 책에 神代文字로 써 있었다고 우기는데, 그 책도 漢字로 되어 있었다. 中國倭가 이주해 항해술과 조선술을 전수해주자, 더 이상 新羅에 기댈 필요 없다고 焚書했던 것이다. 桓武가 神代文字로 된 책이라서 焚書했다면, 神代文字가 日本의 文字가 아니라는 것밖에 더 되는가. 어이없게도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터넷상에서 倭奴民族의 날조문자 비슷하게 쓰면서 한글을 아무렇지도 않게 파괴하고 있다. 특히 채팅창을 들여다 보면 가끔씩 아무런 의식없이 쓰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다 (예를 들면 ㄱ ㅏ ㄴ ㅏ 하는 식) 심지어 실생활에서 조차 그런다고 한다. 배울 것을 배워야지,,,, 加臨土에서 아히루(阿比留)인지 神代文字인지 하는 것이 파생 되었다고 주장하는 우리나라 사람들까지 있다. 그 근거로 檀君世紀의 “협야노(陝野奴)라는 자가 바다로 도망쳐 삼도(三島)에 웅거하면서 (토벌될 때까지) 스스로 天王이라 불렀다(陝野奴者渡於海上據三島僭稱天王)”는 구절을 내세운다. 三島가 日本列島라고 하는데, 이 당시는 韓半島人들이 북큐슈(北九州)에도 정착하기 훨씬 전이었다. 韓半島人들이 列島로 이주한 것은 고작해야 기원전 3 세기로 그나마 植民地 왕조가 들어선 것은 4 세기 말(百濟)이다. 이때 까지도 벌거벗고 흙바닥에서 뒹굴었다. 이전까지는 아이누族의 땅으로 三島가 아니라 四島이다. 陝野奴가 列島로 도망쳐 보았자, 죠몬인(繩文人)들이나 지배할까, 종국에는 자신도 벌거벗고 살아야 했다. 衣, 食, 住 해결이 선결문제였던 陝野奴가 한가하게 列島 여기저기에다 加臨土나 새기고 앉아 있었을까. 列島의 유적들도 모두 5 세기 이후에 百濟人과 新羅人이 만든 것이다. 三島라는 섬 이름만 있지, 방위나 거리, 지형 등 그 장소를 특정할 어떤 설명도 안나온다. 三島가 동남아시아 지역에 있는 필리핀이나 보르네오 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어떻게 장담 하는가. 중국 대륙 남부나 동부에 있는 섬이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 하는가. 제 나라 지명조차 알지 못해 광대한 大陸史를 半島史로 축소 시키는 민족이 우리민족 아니던가. 위대한 韓民族에서 고작 “혈거생활을 하고, 변소를 주거의 한가운데 두어 오줌으로 세수를 하고, 짐승의 지방을 몸에 발라 추위를 막으며 산 濊貊族”이 되기를 원하는 民族이 아닌가. 陝野奴는 기원전 723 년에 사벌단제(沙伐檀帝)가 보낸 언파불합(彦波弗哈)에 의해 웅습(熊襲)에서 평정 되었다 (戊午五十年帝遣將彦波弗哈平海上熊襲 檀君世紀). 가공인물 神武의 즉위 연대보다 무려 63 년이나 앞선다. 정말 陝野奴가 日本列島로 갔다면, 왜(倭)는 그것이 아까워서라도 陝野奴가 初代 天皇이라고 우겼을 그런 민족이다. 정말 陝野奴가 倭奴 땅으로 가서 加臨土를 문자로 사용했다고 하면, 왜(倭)는 陝野奴 이후에 한번, 中國倭 이주 후 한 번 해서 두 번씩이나 문자를 잊어먹은 世界史에 다시 없는, 다시 없을 그런 未開民族인 것이다. 대마도(對馬島)의 복부(卜部) 아히루(阿比留) 가문(家門)에서 전해지는 아히루(阿比留, アヒル) 문자는 거의 한글 이라고 할 수 있으며, 구주(九州)의 구가미(九鬼) 가문(家門)에서 전해지는 까스가(春日, カスガ) 문자는 선보다는 원을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이밖에도 시마네현(島根縣)에서 발견된 이즈모(出雲) 문자, 나라현(奈良縣) 동쪽의 이세시 (伊勢市)에서 발견된 이세신궁고자(伊勢神宮古字), 미야자끼현(宮崎縣) 천암호신사(天岩戶神社)에서 발견된 도요쿠니(豊國) 고문자(古文字), 그리고 상까(山窩, サンカ) 문자 등이 발견 되었는데, 이 가운데 일부는 메이지유신(明治維新) 당시에 신대문자의 유행이 일면서 위작(僞作)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倭奴民族은 朝鮮通信使가 학문을 가르쳐준 직후부터 날조와 왜곡을 일삼아 왔다. 그것이 金印, 神代文字 등을 거쳐서 오늘날 舊石器 날조에 이르고 있다. 한 마디로 日本民族은 어제도 날조했고 오늘도 날조하고 있으며 내일도 날조할 민족이다. 捺造王國인 것이다. 日本民族에게는 歷史捺造가 千年之大計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