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훈민정음(訓民正音)/훈민정음기원설

한글의 기원에 대한 여러 논의와 그에 대한 고찰

유위자 2025. 11. 14. 07:57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4_1 : 훈민정음 기원] * 한글의 기원에 대한 여러 논의와 그에 대한 고찰 < 목 차 > Ⅰ 서론 Ⅱ 한글의 기원 1. “훈민정음은 다른 나라문자의 영향 또는 모방의 문자이다” 1-1.상고시대 한자의 전서기원설 1-2.인도의 산스크리트어 기원설 1-3.파스파문자 기원설 1-4.일본의 신대문자 기원설 1-5.히브리문자 기원설 2.“훈민정음 이전의 선대문자가 우리나라에 존재했다”(가림토문자를 중심으로) 3.그밖의 기원설 Ⅲ 결론 < 참고문헌, website > Ⅰ. 서 론 한글의 창제 즉, 훈민정음은 세종25년(1443년) 음력12월에 ‘예의’가 완성되고, 세종28년(1446년) 음력9월에 정인지가 ‘序’를 간행한 원본 훈민정음 (이 책의 집필자는 정인지,신숙주,성삼문,최항,박팽년,강희안,이개,이선노등 8人인데 해례본이 있다고 해서 책이름을‘훈민정음해례본’또는‘원본훈민정음’이라 한다. 이 논고 이하에서는 ‘원본훈민정음’이라 칭한다.)이 반포됨으로 부터이다. 이러한 사실은 1940년 경북안동에서 훈민정음의 해례본까지 갖춘 원본이 발견된 이래 증명되었으며 한글이 인류의 문자사상 유례가 없는 과학적이며 체계적인 문자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뛰어나고 탁월한 문자인 한글의 기원에 대한 의문은 훈민정음이 창제, 반포된이래 5백여년간 수시로 제기되어 왔고, 원본훈민정음이 발견된이후, 원본의 제자해에서 “正音二十八字 各象其形而制之”와 같이 ‘象形’을 바탕으로 한 것임을 밝히고 있어, 발음기관의 상태나 작용을 본떠 만들어진 것 이라고 설명하는 발음기관 상형설이 지배적인 견해였었다. 그러나, 최근 ‘世宗實錄’ 25년의 기사로부터 시작하여 정인지의 ‘訓民正音序’, 최만리의 상소문등 오백여년 전부터 논란이 되어 왔던 것을 들어 제자해의 상형설을 의심하고 여러기원설들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아울러 가획이론에 위배되는 일부글자의 존재가 최근의 의심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어왔다. 한글의 기원에 대해 제자해의 발음기관 상형설을 주장한다면 더 이상의 논의의 여지가 없게 될 것이므로 본 논고에서는 그동안 전개되왔던 여러기원설들을 살펴보고 그에대한 타탕성을 살펴보고자하므로 대전제 즉, 훈민정음은 그 이전에 선행문자가 있었다는 대전제를 세우고 그 가정아래 전개되는 여러기원설을 살펴볼 것이다. 본 논고에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첫째, 훈민정음의 창제는 다른나라문자의 영향또는 모방이라고 설명하는 기원설들이다. 이에는 상고시대 한자의 전서기원설, 원나라 세조대 파스파(pags-pa)문자기원설,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기원설, 일본의 신대문자기원설, 히브리문자 기원설등을 중심으로 살펴보게 될 것이다. 둘째, 우리나라에 훈민정음이전의 선행문자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견해들로서 이에는 몇가지가 있으나 논의의 가치가 있는 가림토문자를 중심으로 서술해 나갈 것이다. 세째, 위 두 항목에서 비교적 논의의 가치가 적어 제외시켰던 그밖의 견해를 간략히 살펴볼 것이다. 이와같은 순서로 필자로써는 대단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게 하는 위대한 훈민정음의 기원에 대한 논의를 그간 학자들의 견해를 바탕으로 부족하나마 전개해 나가고자한다. Ⅱ. 한글의 기원 1. 훈민정음은 다른나라문자의 영향또는 모방의 문자이다. 1-1.상고시대 한자의 전서모방설 훈민정음의 기원에대한 논의는 훈민정음이 창제된 사실을 처음으로 전하는 ‘世宗實錄’25년 12월의 기사 “是月上親制諺文 二十八字其字倣古篆”와, 정인지의‘훈민정음序’의 “字倣古篆”, 최만리의 상소문등에 한글의 글자모양이 상고시대 한자의 전서를 모방했다고 전하는 사실이 이 기원설의 발단이 되었다. 후대에 이르러 이덕무(李德懋,1741-1793년)는 그의 ‘靑莊館全書’ 제54권 훈민정음조에서 훈민정음초성 ‘ㄹ’과 전서의 ‘己(기)’가 글자모양이 비슷하고, 초성‘ㅅ’과 전서‘人(인)’의 글자모양이 비슷하여 고전기원설을 내세웠다. 이 고전기원설은 일부 서양학자의 저술에서 주장되었으며, 최근의 국내학자중에서도 이러한 견해를 피력하는자가 있는듯 하다. 반면, 이에 대해 허웅(한글과민족문화,세종대왕기념사업회,1964)은 ‘세종실록’에 나타난 글이나 정인지의 서문의 뜻은 훈민정음이 바로 한자의 고전글자에서 왔다는 뜻이아니라, 고전의 꼴을 본떠서(象形) 글자를 만드어 놓았는데 그 상형한 것이 고전 글자모양과 비슷한 모양이 되었다는 것으로 보았고, 박종국(한국어발달사, 문지사, 1966)은 전술한 이덕무의 견해에대해 “몇 개의 글자 모양이 비슷하다고해서 바로 그것을 모방하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며, 이는 단순한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고 유기적 관련성이 없으므로 그 일치에 아무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고 하였다. 아울러 유창균(훈민정음, 譯註, 형설 출판사, 1996)은 훈민정음의 다각적인 기원설을 설명하면서 기본자형의 구성은 상형이 자형구성의 원리를 말하는데 대하여 자방고전은 글자의 형태를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위의 견해들을 종합해보았을 때 필자의 견해로는 音素문자인 훈민정음은, 表意문자인 한자와는 문자체계가 다르므로, 다만 그 제자의 기본방식은 한자의 제자법을 따를 수는 있을 것이다. 한자 제자법의 바탕이 되는 것은 육서법이며 그 중 상형과 지사가 기본이 되므로, 또한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가 한자와 마찬가지로 상형에 있으므로, 이렇게 해서 제자된 훈민정음의 자형이 고전과 비슷하게 되었음을 설명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강신항(훈민정음연구 증보판,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1994), 유창균(위의책, p161-171)등의 다수의 학자가 이와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고 또한 이것이 설득력 있는 견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1-2. 인도의 산스크리트어기원설 훈민정음의 인도문자에서 기원했다는설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먼저 살펴보면, 성현(成俔, 1439-1504년)은 ‘용재총화’제 7권 에서 “基字體依梵字爲之”라고 말한이후, 광해군대의 이수광(李睡光,1563-1628년)이 ‘지봉유설’권18에서 “我國諺書字樣 全倣梵字”라 하고, 또한 그 뒤 영조대의 황윤석이 ‘韻學本源’에서 “我訓民正淵源-而終不出於梵字範圍矣”라 하였고 1930년대 이능화의‘조선불교통사’등의 국내외 몇 학자들의 저서에서 이러한 설의 주장을 엿볼 수 있다. 샘슨(sampson)은 문자는 종교를 따라간다고 하였고, 이에 수긍을 할 만 한 것이 불교 발생지인 인도에서의 경전유포를 위한 기원전 6,7세기경에 만들어진 산스크리트어이다. 이 산스크리트어중 最古의 음성문자인 브라미 문자와 한글의 자,모음이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구자라트주의 중심지에 가면 어느 정도 표기와 발음이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불교의 역사는 인도로부터 직접 또는 중국을 거쳐 간접적으로 수입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음성문자인 브라미 문자와 한자는 문자 체계면에서 音素文字라는 공통점을 발견 할수 있지만 중국의 한자(表意文字)와는 문자체계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인도학자는 AD 10세기에서 11세기경 수도승이 인도로부터 불교경전을 직접 가지고 가서, 그에 영향을 받아 한글이 만들어 졌다는 추정을 하였다. 이에 대한 보충할만한 것이 ‘三國史記’ 기록 중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봐서, 그렇다면 언제부터 인도와 교류하였을까의 의문이 있게 된다. 또한 드라비다언어 (기원전 25년)와 한국, 일본어의 닮은 어휘를 400개 정도나 밝혀낸 연구가 있다는 것이다. 이 드라비다언어 지역과 구자라트주는 지역적 위치로도 근접한 지역이다. 그리하여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이설은 파스파문자 기원설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이 파스파문자와 산스크리트어와의 관련성은 파스파문자 기원설에서 설명하겠다. 1-3. 파스파 문자 기원설 한글의 기원이 이 문자였다는 설은 조선 실학시대 이후 수시로 거론 되어 왔었다.(송기중 1991,p 169-172) 조선 숙종때의 이익이 그의‘성호사설’에서 훈민정음이 몽고 글자와 같은 것이라고 하였고 순조때의 유희는‘언문지’에서“我世宗朝命使臣 依蒙古字樣 ……. 以製諺文誰始於蒙古成於我東” (강신항의 해석:“우리 세종조때 사신에게 명하여 몽고글자 모양을 본떠서 만들어 졌다. 언문은 비록 몽고에서 시작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졌다.) 라고 하여 몽고글자를 본받았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김형주(우리말 연구사, 1997 p,83)는 이익의 설명은 몽고글자(위그르계통의 문자)와 파스파문자를 구별함이 없이 혼동하여 말한 것으로 보아 몽고문자 기원설은 타당성이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유희의 언문지에서 말하는 몽고글자는 파스파문자를 설명한 것으로 훈민정음 자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주장은 최근 일부 학자에 의해 구체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는데, 그에 대한 예로서 유창균(훈민정음,譯註, 형설출판사,p161)은 양자의 대조에서 파스파 자형을 간략화한 것이 훈민정음의 기본 다섯자(ㄱ,ㄷ,ㄹ,ㅂ,ㅈ)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 이론은 동시에 인도문자 기원설이나 티벳문자 기원설과도 관련성을 가진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파스파문자는 티벳자를 개량해서 만든 것이고 티벳문자는 인도 문자에서 기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훈민정음의 기원설에 산스크리트어, 티벳자, 파스파문자 기원설을 낳게 할수 있는 이유가 충분하다고 하였다. 그렇지 않다면 혀뿌리가 목구명을 닫는꼴을 ‘ㄱ’과 같이 할수 있었을까 하는 것을 구체적인 이유로 들고 있다. 조두상(문자학,1998,p 211)은 성호사설의 기록을 들어 파스파 문자의 영향을 추정하였으며, 김진우(언어, 1985, p 302)도 어느정도의 유사성을 설명하고 있다. 언어 발달사는 역사전개와 무관하다고 볼 수만은 없다는 입장에 서면 1269년 원나라 세조때의 창제된 파스파문자가 몽고의 지배하에 있던 고려 말엽에 들어와 조선 초기까지는 어느 정도 영향이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이 파스파문자기원설은 국어학계에서 유력한 학설로, 위의 훈민정음 기본 초성자 ‘ㄱ,ㄷ,ㅂ,ㅅ’의 유사와 문자구성원리, 원용의 유사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에대한 실제의 구체적인 문헌자료가 없으므로 쉽게 단언할 수는 없는 것이다. 1-4. 일본의 神代文字 기원설 일본의 신대문자가 전해져온 시기는 에도막부 말기부터(1700년대 말)였다. 이런 견해는 백제의 왕인 박사가 일본에 한자를 전하기 이전에 일본의 신대문자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으로서 한반도의 가까운 곳에서 발견됨에 따라 다시 논의되고 있는 설이다. 그리하여 훈민정음이 신대문자에서 기원했다고 까지 주장했다. 그 당시(에도막부 말기시대)부터 일본내에서는 신대문자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위작이라고 하는 설이 있었으며, 한국에서는 일제시대의 국어학자 김윤경은 2,3백년전 위작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이에 대해 송호수(광장,제125호, 1월호, 1984년,p55)는 “단군 제3세, 가륵임금때에 만들어진 가림토 문자를 한글의 기원으로 보지 않으면 일본에서의 아히루문자(신대문자)를 모방하여 훈민정음이 되었다는 설을 배격할 통로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여 일본의 아히루문자를 인정하는 전제아래, 한글은 가림토 문자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재 일본에서는 아히루문자 존재가 부정당하고 있는 실정이며 이러한 가정은 무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관수(광장,제126호, 2월호)는 훈민정음이 세종 때 창조되었다는 설을 부정하는 것은 그에 뒷받침되는 논증이 있어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논증없이 주장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역사관과 언어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면서 신대를 긍정하는 사회에서 생성된 신대문자관은 현대 언어철학으로서는 본질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언어관이라고 반론하였다. 이에대한 논의의 일종으로써 가림토문자에 대한 논의는 뒤에 상술하겠거니와, 가림토 문자가 그 존재의 존부에 관계없이, 신대문자에 대한 주장은 어떠한 과학적․역사 발전사적 증명이 없으므로 논의의 의미가 없다 할 것이다. 위에 설명하였듯이 이와는 다르게‘桓檀古記’나‘檀君世紀’의 가림토문자의 전제를 인정하고 우리나라 선조가 일본으로 건너가 최조의 천황이 될 때에 가림토가 건너갈 것이라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으며 그에 대한 증명으로 최초의 神寺 3개중 2개가 한국의 神寺였다는 것을 주장하고 ‘桓檀古記’의 태백산과 같은 일본에서의 히코산‘桓雄’이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1-5. 히브리문자 기원설 히브리문자 기원설은 가장 최근에 주장된 훈민정음 기원에 대한 견해로, 이 기원설을 주장하는 조철수 교수의 견해를 살펴보자. 첫째, 가림토문자의 존재를 긍정하는 전제 아래, 훈민정음이 본떳다는 글자(字倣古篆)는 「檀君世紀」에 기록된 가림토문자이고 이 가림토문자는 히브리문자에서 기원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훈민정음 기원이 히브리문자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둘째, 가림토문자의 제작연대를 고려시대라고 주장하면서 이 시대에 히브리어를 모방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단군시대에 가림토문자가 있었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생각컨데, 가림토문자는 고려시대의 위작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셋째, 조철수 교수가 구체적 증거로 드는 것은 훈민정음의 음운체계와 히브리 음운학(중국 유태인의 음운서였던 「창조서」)의 음운체계가 비슷하다는 것으로 이상이 조철수 교수가 드는 견해이다. 이에 대해 국어학계의 여러견해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주장된 많은 견해들이 형태의 유사성만을 가지고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이 견해 또한 그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 하고, 다만, 특이할 만한 것이 훈민정음의 음운체계 면에서 거의 정설로 되어 있는 중국성운학에서의 영향에 대해 히브리 음운학과의 관계를 설명한 것이다. 다음으로 가림토문자의 존재를 긍정하고 훈민정음이 이의 영향을 받아 창조되었다고 하면서 가림토의 창제 연대를 고려시대로 보고 있는 것은, 가림토문자에 대한 기존학자의 연구를 아무런 고증없이 빌어와 기존학자의 연구와는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것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문자 기원설을 주장하는 조철수 교수의 견해는 그가 말한대로 아직 체계화되어 정리되지는 못했으므로 진행의 추이를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할 것이다. 히브리문자 기원설은 후술하는 가림토문자와 깊은 연관을 가진다 할 것이므로 신중하게 숙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히브리기원설은 가림토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것으로 보인다. 2. 훈민정음 以前의 先行文字가 우리나라에 존재했다. 영조때 신경준(1712-1780)은‘훈민정음 韻解’서문에서“東方舊有俗用文字”라고 한 것과 기타 碑文(김윤경은 새로지은‘국어학사’에서 9가지 문자, 삼황문자, 왕문문, 각목문, 고구려문, 백제문자, 발해문자, 고려문자 및 향찰등이라고 했다.)등의 글을 가지고 훈민정음 창제 이전에도 고대문자가 있었으며 훈민정음은 이를 이어받아 개량한 것이라고 주장하게 이른 것이다. (강신항,훈민정음연구, p86참조) 고려시대의 이암(1363)‘檀君世紀’에서 단군시대에 한글과 같은 글자가 있다는 주장을 하였고 조선 연산군 때의 이맥‘太白逸史’,‘桓檀古記’, 발해국 대야발의‘단기고사’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중 한글과 비슷한 정음 38자가 있었다는‘환단고기’를 중심으로 전개해 보면 이 기록에 대한 진위는 이 논의의 초점이 될 것이다. 이 환단고기의 위작설을 주장하는 견해 즉, 가림토문자를 부정하는 견해에 따르면 이 책에서 사용하는‘經濟’라는 말은 19세기 이후에야 지금의 뜻으로 쓰이고 있음에도 단군때부터 지금의‘經濟’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위서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인정하는 견해에 따르면 위와 같은 증명은 부분적인 비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인정론의 견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동이족이 세운 고조선은 만주 전지역과 한반도를 차지한 강력한 국가였으며 이 견해는 한층 더 나아가 한자가 우리 민족의 옛조상인 동이족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가림토 정음38자와 훈민정음의 기본자가 상당히 유사하다. 여기서 한자의 연원과 동이족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먼저 동이족에 대한 중국학자들의 견해를 보면 중국의 선조는 동이집단이 융합하여 형성되었음을 인정하고 있으며 동이족이 갑골문자를 만들어 냈고 그 중심이 산둥반도에 그치지 않고 광범위한 지역이 동이지역에 속한다고 설명한 것들을 볼수 있었다. (진태하,동방문자뿌리,1998,p3-13) 이런 설명에 대한 구체적인 예로써 진태하는(위의 책 참고) 한자는 중국의 한대에 만들어진 글자가 아니라 秦代와 周代를 거슬러 이미 약 3400년전에 殷代에 거북이나 짐승의 뼈에 글자를 새겼던 ‘갑골문’이 쓰여졌고 殷代에는‘漢’이라는 글자가 없었으며 한자라는 명칭은 원나라 때에 와서야 생겼다는 것이다. 또한 殷代 갑골문 중에는‘글’자의 뜻으로 쓰인 것은‘契’라는 글자이며 그 당시 ‘文,字,書’ 라는 것은 다른 뜻으로 쓰이거나 후대에야 나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契丹”을 “글단-글안-거란”으로 변천되어와 칭한 바와 같이 “계”를 “계, 설”외에 “글”이라고 읽어 왔다. 이러한 자료는 北宋시대 (1103년) 고려어를 표기한 계림유사에‘글’이라고 하였음을 볼 수 있고 ‘삼국사기지리지’에도“글”이라는 말이 문헌상으로도 삼국시대부터 이미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문자를 글이라 일컫는 민족은 우리 한민족 뿐이라는 것을 염두할 때에 “계”자를 처음으로 만든 민족도 곧 우리 조상임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글”자 외에도 갑골문을 통하여 일치하는 여러 자료가 있다.(구체적인 사례는 진태하,동방문자뿌리,1998) 지금의 산둥지역과 수메르지역에 동이족 도자기의 특징을 나타내주는 흑도가 있으며 세계 최초의 문자인 수메르 문자와 가림토 문자의 어느 정도 유사성(고유명사, 단어사이의 토 등)이 보임으로서 동이족이 문자의 기원이라는 설까지 나오게 되었다. 이에 대한 역사적 고증으로는 산둥지역에 단군신화의 내용이 보이며 ‘桓檀古記’와‘三國遺事’에 아유타國에 가서 그 나라 사람을 교화했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만약‘桓檀古記’나‘檀君世紀’에 나타난 가림토문자의 진실성이 규명되고, 한글과 가림토의 관계가 밝혀지면 한글의 기원에 대한 논의는 쉽게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히브리문자설을 주장하는 견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겠다. 이는 앞으로 우리가 해야할 숙제로 남겨둔다. 3. 그 밖의 기원설 이상 설명한 기원설 외에도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이는 참고할 만한 가치가 적은 견해들로서 대강을 살펴보면 ① 周易의 河圖기원설 - 훈민정음 중성의 기원이 역학의 삼제라고 하는 견해이다. ② 티벳문자(西藏문자)기원설 - 티벳문자는 인도문자에서 기원한 것으로서 역사적 이동통로로 보아 훈민정음의 체계와 어느정도 유사성이 있어 기원의 가능성을 제기 하는 설이다. ③ 인도 pali 문자 기원설 - 테일러는‘알파벳의 역사’에서 한국의 문자는 인도의 문자에서 파생하였다고 하였다. 결국 그의 견해는 알파벳에서 기원한 인도 문자에서 한글이 기원했다고 한 것이다. ④ 거란, 여진문자 기원설 - 거란 여진 문자는 한자를 변개하여 새로운 문자를 창제하는 자민족어의 표기였는데 우리나라 고려시대에 금나라와 같은 강대국을 형성하였고 이런 역사적 사실과더불어 그들의 문자는 한자를 변개하여 만든 문자이므로 우리 문자체계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추정하는 설이다. ⑤ 악리(樂理)기원설 ⑥ 태극사상 기원설 ⑦ 송대等 韻學기원설 - 훈민정음 제자해에서의 발음기관과 조음원리가 여기에서 기원했다는 설로써 제자해의 음운체계에 대한 기원설이다. 아울러 등운학은 인도 음성학에서 기원했다. Ⅲ. 결 론 본론에서 살펴 본 바와같이 한글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며 이에 대한 설명들중 일부는 어느정도 타당성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결론에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전술한 견해들의 간략한 요점들과 그에 대한 평가를 서술하고자 한다. 첫째, 훈민정음이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되는 외국문자는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파스파문자, 한자의 전서, 일본의 신대문자, 히브리문자등이 있으며, 이들중 신대문자를 제외한 다른 문자에서의 모방이 아닌 어느 정도의 영향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본론에서는 논의 되지는 않았지만 훈민정음 기원에 대해 향가문자에서 구결문자로, 구결문자에서 정음문자로 발달했다고 한 김선기(명지대 논문집 제 3집, 1970)의 주장이 있었지만 조두상(문자학,부산대학교출판부,1998)은 향찰, 이두, 구결등은 차용표기법에 불과하다고 본 견해가 있고, 또한 이 견해가 타당하다는 데 학설이 귀일하여 있으므로 설명치 않았다. 문제가 되는 것은‘桓檀古記’등에서의 가림토 문자이다. ‘桓檀古記’와 더불어 동이족의 세력과 관련해서 설명되었던 가림토 문자의 존재가 긍정된다면, 또한 한글과의 연관성이 밝혀진다면 이는 동이족 즉, 우리 선조가 여러문자의 시초가 되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것은 또한 고조선을 신화에서 역사로 끌어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한글의 기원에 대한 어떠한 설도 타당한 역사적 고증이나 과학적인 설명, 체계적인 논리를 충족하지 못함으로 인해 현재, 이 시점에서 한글의 기원에 대한 모든 견해 (본 논고에서 제외되었던 제자해를 포함하여)를 비교, 검토하여 결론을 내려보도록 하겠다. 현재 인류가 사용하는 문자는 30종 내외에 불과하다. 그것도 대부분 아시아 지역에서 사용하는 문자들이다. 이러한 문자들의 기원에 대해, 單一기원설은 설득력 있는 단서들을 제시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오늘날은 대개 복수기원설로 정착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문자들의 시초는 이미 존재하는 문자의 영향을 어떠한 형태든 영향을 받았음이 이미 밝혀 졌으며 보편적인 현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문자 발달사는 갑골문자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는 인접 민족들에게 전파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문자들을 만들어 냈다. 우리의 훈민정음도 여느 문자 발달사에서와 같이 기존의 어느 문자이든 간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며, 그 영향을 바탕으로 독창적이고 과학적인글 즉, 초성의 발음기관과 중성의 삼제를 상형하여 기본글자를 만들고 그 외의 글자들은 국어의 음운 대립체계에 따라 기본글자에 획을 가하거나 합성하여 만든 점은 지금까지 알려진 동서고금의 모든 문자 중에서 오직 한글만이 가진 고유한 특성임에 틀림없다. 이에 따라, 한글에 기원에 대한‘世宗實錄’과 정인지의‘훈민정음’ 序, 최만리의 상소문등의 기록에 의하여 5백여년간 논란이 되어온 “字倣古篆”은 글자의 모양(字形)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겠고 그리하여 훈민정음은 그 당시 선행문자로부터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받았지만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문자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허웅. 한글과 민족문화. 세종대왕기념사업회.1964 송호수. 광장1호,세계평화교수협회.1984 강신항. 훈민정음연구. 증보판. 성균관대학교출판부.1990 송기중. 세계의 문자와 한글. 언어16권 1호.한글언어학회.1991 유창균. 훈민정음.역주.형설출판사.1996 박종국. 한국어 발달사.문지사.1996 진태하. 동방문자뿌리. 이화문화사.1996 김형주. 우리말연구사.세종출판사.1997 임승국. 한단고기.번역주해.정신세계사.1991 박기용. 말. 규장각.1997 조두상. 문자학.부산대학교출판부.1998 이관수. 광장.126호.2월호.세계평화교수협회. 배달말 학회. 배달말 제22호.1997,2월 http://www.hangeul.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