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훈민정음(訓民正音)/훈민정음기원설

한글의 기원에 관한 諸理論 <김순애>

유위자 2025. 11. 14. 07:19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4_1 : 훈민정음 기원] * 한글의 기원에 관한 諸理論 <김순애> 목 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가림토문자 기원설 2. 아히루문자 기원설 3. 고전 기원설 4. 산스크리트문자 기원설 5. 몽고 파스파문자 기원설 6. 발음 기관 상형설 7. 히브리문자 기원설 Ⅲ. 결 론 ♣. 참고문헌 ♧. 참고 WEB SITE Ⅰ. 서 론 올해는 세종대왕 탄신 601돌이며, 한글을 반포한지 552돌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훈민정음’은 ‘언문’ 시대를 거쳐 ‘한글’이라는 國字로서의 자리를 잡게 되었지만, 훈민정음/한글에 대한 연구는 근래에 들어서 본격화하였다. 한 나라에서 공용어(共用語)로 인정되어 널리 사용되고 있는 언어를 국가어, 또는 국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국가와 언어와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한 국가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언어가 하나라는 보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여러 국가가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예도 非一非再하다. 우리 나라는 단일한 언어를 국어로 사용하는 나라로서 우리 국어는 인구로 보아도 전 세계의 언어들 중에서 20위 안에 드는 큰 언어의 하나이다. 이러한 우리 국어는 어떻게 발전하여 왔을까? 국어의 역사는 우리 민족과 더불어 유구하다. 우리 민족의 조상이 이 땅에 삶의 터전을 잡은 까마득한 옛날로부터 국어는 그 연맥을 이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 역사에 관하여 별로 아는 것이 없다. 다만 지금까지 연구된 것은 국어의 계통 정도이다. 물론 확실히 정해진 바는 없지만 우리 국어는 알타이어족이라는 가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 가설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는 모음조화(母音調和), 두음법칙, 문법체계, 교착어(膠着語), 부동사(副動詞)의 용법 등이다. 우리 韓民族은 半萬年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文化民族이라 자처하고 있지만, 방대한 遺物이 보존되고 있지 않은 것 뿐만 아니라, 國字인 한글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른다.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로 한자와 한문을 더욱 중히 여겨왔고, 近世에 와서는 서구 문화의 영향으로, 더욱이 일제의 한글말살정책으로 그 주체성을 잃고 말았다. 핀란드의 언어학자 람스테드는 우리가 엄두도 못내는 <한국어 어원 연구>라는 저서를 출판했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 “내가 동경 주재 핀란드 대사로 근무 중에 한 한국어 선생님에게 ‘mouth’가 한국어로 무엇이냐고 물었다. 대답은 ‘입’이었다. 다른 말은 없는지? 하고 물었다. ‘口’라고 대답했다. 그 외에는? 하고 물었다. ‘없다’고 답변했다.” 그는 한국어에‘아가리’가 순수한 우리말이라고 일깨워 주었다고 한다. 우리의 뿌리인, 이 민족의 역사와 언어가 얼마나 自己卑下 내지, 사대사상에 의해서 타락되고 유실되어 갔는가 하는 것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그리하여 이 보고서에서는 한글의 기원에 관한 여러 학자들의 이론을 검토해서, 그 근원지를 찾아 가고자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한 가지로 확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어떠한 학설들이 있는가를 확인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 Ⅱ. 본 론 1. 가림토문자(加臨土文字) 기원설 ‘가림토문자’는‘가림다문자’라고도 한다. 가림토문자설은 1983년 10월에 열린 제2회 한국사 학술회의에서 제기되었다. 이 회의에 참석한 안호상 박사가“단군시대에 한글이 창제되었다는 기사가『환단고기』에 있다.” 고 이야기했다. 그후 송호수 박사(개천학회 회장)가 『광장』지 1984년 1월호에 “한글은 세종 이전에도 있었다.”라는 글을 발표해 본격적인 가림토문자 기원설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홍익대 국어교육과 이근수 교수가 『광장』2월호에 “한글은 세종 때 창제되었다”라는 제목의 글로 송박사의 주장을 반박하자, 송박사가 『광장』 3월호에 재반론을 펴는 열띤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가림토문자 기원설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원래 한글은 신치(神誌)가 사슴의 발자국을 보고, 이를 문자화하여 짐승가죽에 기록한 데서 출발한다. 바로 이것이 태고 문자의 시조인 녹도문(鹿圖文)이었다. 이 문자는 훗날 가림토(加臨土. 가림은 사물을 분명히 가린다는 뜻이고 토는 사물의 뜻을 분명히 한다는 뜻임)의 원조가 되는 글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3세 가륵 단군(檀君 嘉勒)이 BC 2181년 즉위 2년에 이르러 삼랑 을보륵(三郞 乙普勒)으로 하여금 이전의 문자를 다시 정리해 정음(正音) 38자를 만들었는데 이를 가림토문자라 했다. 이는 후진적인 상형문자를 알기 쉬운 표음문자로 바꾸어 만드는 한편, 조선의 강역 내에서조차 녹서(鹿書)는 물론 여러 서로 다른 문자가 사용되고 말이 잘 통하지 않자 이를 통일하고자 만든 것이다. 고려 말기의 학자 이암이 쓴 「단군세기」에 가림토문자 기원설이 다뤄지고 있다. 가림토문자 38자에서 10자를 제거한 것이 곧 28자인 훈민정음이라고 본다. 한자문화의 팽창으로 가림토문자가 우리 나라에서는 거의 사라진 반면, 상대적으로 안전지대였던 일본에서는 가림토문자를 모방한 아히루문자(신대문자의 일종)가 남아 있다.』 하지만 가림토문자설은 국어학계에서 전혀 인정을 받지 못했다. 반론자들의 근거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문자 발달사의 원리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것이다. 문자는 일반적으로 그림문자와 상형문자의 단계를 거쳐 표의문자나 표음문자로 발전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서기전 2181년이면 수메르상형문자와 이집트상형문자나 존재할 정도이고, 중국 갑골문자도 아직 나타나기 전이다. 그런 시대에 음소문자인 가림토문자가 있었다는 것은 문자학의 상식과 맞지 않는다. 두 번째로 가림토문자의 출전인 「단군세기」가 1911년 계연수가 편찬한 「桓檀古記」에 들어 있다는 점이다. 즉, 「환단고기」에 들어 있는 「단군세기」가 고려시대의 원본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지적이다. 「단군세기」의 저자 이암도 「古記」에 의지해 쓴 것으로 돼 있다. 이근수 교수는 “원래 이암이 쓴 「단군세기」에는 가림토문자가 없었는데, 후대에 한글의 자형을 가필첨가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교수는 그외에도 단군시대에 창제되었다는 가림토문자가 무려 3천 2백년이 지난 고려초까지 단 한 조각의 언어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조철수 박사도 “가림토문자가 단군시대에 창제되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중국유태인이 쓰던 히브리문자의 영향을 받아 고려시대에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영남대학교 정연규 교수는 가림토문자의 실체를 인정했다. 그의 주장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가림토 정음의 모음체계는 훈민정음과 같다. 그러나 자음은 ㄱ, ㄴ, ㄹ, ㅁ, ㅇ, ㅈ, ㅿ 등의 음성표기체가 같으니 1911년 계연수가 「환단고기」를 쓰면서 가림토문자를 거짓으로 史實을 펴냈느냐하는 것이 의문으로 남는다. 가림토문자의 실체를 인정하는 편에서 다음 몇가지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1) 그림문자→상형문자→표의문자→기호문자 등 세계언어의 문자발달의 과정으로 보아서 ‘녹서, 우서, 용서, 화서, 신전(가림토문자)’ 로의 발전과정이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2) 만약 가림토문자가 허위라면 일본의 신대문자, 양사호 문화권의 빤포유적기호, 리우완유적기호, 인도 구자르트주의 간판에 새겨진 글자, 남미 볼리비아에서 발견된 이와 비슷한 문자 등의 연구가 널리 되어서 가림토문자와 한글의 기본적인 관계에 대한 논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1) 3세 단군 가륵 경자 2년(B.C. 2181) 時俗이 같지 아니하고 방언이 서로 달라 상형표의문자(즉 녹서, 우서, 용서, 서 등을 지칭함)가 있었으나 멀리 떨어진 나라 끼리의 이해가 어려웠다. 그러므로 正音 38자를 을보륵에게 명하여 찬하게 했다. 이를 가림토라 했다. --- 「환단고기」中 2) 정연규, 「언어로 풀어보는 한민족의 뿌리와 역사」, 한국문화사, 1997, p.p. 156~157 2. 아히루문자(神代文字) 기원설 일본의 사학자 吾鄕淸彦氏에 의하면 가림토의 글 모양이 비슷한 소위 신대문자라는 [アヒル](아히루)문자가 대마도 및 그외의 神社에서 발견되었다. 일본에 한자가 들어가지 이전에 이 [アヒル]문자가 사용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일본학자 鹿島昇씨는 가림토문자가 海南島의 설형문자 및 [오루메가]의 신성문자와 비슷하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구주지방에도 A.D. 700~800년 경에 존재하였다고 추정되는 [アヒル](아히루)문자가 있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神社의 이 文字 앞에 절을 하고 복을 비는 풍습이 있다. 문자체계를 보면 가림토문자와 비슷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신대문자1 신대문자2 신대문자3 신대문자4 케이블 TV에서 방영한 적이 있는 ‘한글, 그 비밀의 문’이라는 한글날 특집 프로그램에서는 일본의 신대문자를 추적해서 한글의 기원을 밝히려고 했었었다. 내용을 보면 ‘이세신궁’에 신대문자라고 추정되는 고대문자가 있는데, 한글과 무척 비슷하며, ‘아타노 거울’에 새겨진 신대문자를 비롯해서 5백여점 이상의 신대문자가 존재한다고 한다. 708년에 세워진 비석에 신대문자가 새겨진 것으로 보아 일본인들은 나라시대 이전 즉, 약 5~6세기부터 신대문자가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신대문자가 고대부터 있었다는 확실한 근거는 찾기 어렵다. 더욱 한글이 일본의 신대문자를 모방했다는 설이 의심스러운 것은 일본이 신대문자를 공개하지 않고 꼭꼭 숨긴다는 것이다. 3. 古篆 기원설 「세종실록」 제102권 세종 25년(1443) 음력 12월 30일 그믐 조에, “이달에 임금이 몸소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는 古篆을 모방하였고,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룬다. 무릇 문자에 관한 것과 우리 말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되었지마는 전환 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이른다.” 라고 하고, 정인지의 「훈민정음」 해례 서문에서도, “글자는 고전을 모방하였다(字倣古篆)” 라고 하였으니, 이는 훈민정음이 중국 옛글자인 고전을 본받았음을 말해 주는 유력한 고전 기원설이다. ‘古篆’이라는 것은 옛날 한자(전서체)이다. 세종대왕 때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의 훈민정음 반대 상소문에서도, “설혹 말하기를,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본받은 것이고, 새로된 글자가 아니라 하지만, 글자의 형상은 비록 옛 篆字를 모방하였다 할지라도 소리로써 글자를 합하는 것이 모두 옛 것에 반대되니, 실로 의거할 때가 없사옵니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중국 옛 글자를 모방하였음을 시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덕무도 그의 「청장관전서」 제54권 훈민정음조에, “훈민정음에 초성․종성이 통용되는 8자는 다 古篆의 형상이다. ㄱ ‘古文의 及자에서 나온 것인데, 물건들이 서로 어울림을 형상한 것이다.’ ㄴ ‘匿자에서 나온 것인데, 隱과 같이 읽는다.’ ㄷ ‘물건을 담는 그릇 모양인데, 方자와 같이 읽는다.’ ㄹ ‘篆書의 己자이다.’ ㅁ ‘옛날의 圍자이다.’ ㅂ ‘전서의 口자이다.’ ㅅ ‘전서의 人자이다.’ ㅇ ‘옛날의 원자이다.’ 또 ㅣ‘위 아래로 통하는 것이니, 古와 本의 번절이다.’ 翻切 ‘세속에서는 언문으로 反切이라 하여 反자를 배반한다는 反자로 읽고 反切의 反자 음이 翻인 줄은 알지 못한다. 1행에 각각 11자이다.’ 모두 14행인데 글자를 좇아 횡으로 읽으면 ‘가(可)․나(拿)․다(多)․라(羅)의 유와 같다.’ 자연히 梵呪와 같다. 대체로 글자의 획은 篆籒(전주)보다 더 좋은 것이 없으니, 성인이 아니면 어떻게 여기에 참여 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하여, 고전 기원설을 세웠으나, 「세종실록」의 글이나 정인지의 「훈민정음해례」 서문에서는 구체적으로 이러한 설명이 전혀 없으니, 이 이덕무의 설명은 믿을 수가 없다. 훈민정음 초성의 ‘ㄹ’과 전서의 ‘기(己)’가 글자 모양이 비슷하고, ‘ㅅ’과 전서의 인(人)이 글자 모양이 비슷하다고 해서, 바로 그것을 모방하였다고 단정하여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는 단순한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여 유기적 관련성이 없으므로 그 일치에 아무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 유창균 교수는 1966년에 쓴 논문을 통해 ‘字倣古篆’을 글자의 형태에 국한시켜 ‘篆書體의 각이 진 모양(角形)’을 본떴다는 견해를 폈다. 그리고 허웅은 「한글과 민족문화」에서 「세종실록」에 나타난 글이나 정인지의 「훈민정음해례」 서문의 글의 뜻은 훈민정음이 바로 고전 글자에서 왔다는 것이 아니라, 꼴을 본떠서(象形) 글자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 象形한 것이 古篆의 글자와 비슷한 모양이 되었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 산스크리트 문자(Sanskrit) 기원설 = 梵字 기원설 成俔(성현)은 「용재총화」 제7권에서, “세종께서 언문청을 설치하여 신숙주, 성삼문들에게 명하여 언문을 짓게 하니, 초․종성이 8자, 초성이 8자, 중성이 12자였다. 그 글 자체는 梵字에 의해서 만들어졌으며, 우리 나라와 다른 나라의 語音文字로써 표기하지 못하는 것도 모두 막힘없이 기록할 수 있었다.” 라고 하여, 글 자체는 梵字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최초로 말하였고, 이수광은 「지봉유설」에 “우리 나라 언서는 글자 모양이 전적으로 범자를 본떴다. (我國諺書字樣全倣梵字).” 라고 하여, 역시 범자 기원설을 주장하였다. 황윤석은 「운학본원」에서, “우리 훈민정음의 연원은 대저 여기에 근본하였으되, 결국 범자의 범위 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이능화는 「조선불교통사」에서 언문 글자법이 원래 범자에 근원한 것임을 말하고, 범자와 언문 글자의 꼴과 소리가 서로 비슷한 것 몇 가지를 들어 보였다. 한국어와 드라비디언 어족과의 친연성을 주장한 사람은 Homer BezaIeeI Hulbert(1863~1949)였다. 그는 20년(1886~1905) 한국 문교부의 고문으로 일했으며, 1905년 「한국어와 인도 드라비디언 방언의 비교 문법」을 한국 감리교 출판부에서 간행했다. Hulbert는 이 두 언어의 어휘, 형태, 유형의 유사성을 주장하고, 다음과 같이 한국어와 타밀어 어휘를 대응 시켰다. 한국어 : Sal ‘to live’ + am(Nom) → Salam ‘사람’ 타밀어 : Nil ‘to stand’ + am(Nom) → Nilam ‘땅’ 한국어 : Khal Kajigo(knife - having) ‘with a knife’ 타밀어 : Kadi Kamdu(knife - having) ‘with a knife’ A.D.1285년경 충렬왕 11년경 보각국사 일연이 撰한 「삼국유사」에 보면 수로왕이 인도의 아유타국의 공주를 맞이하였는데, 그녀의 이름이 ‘허황옥’이다. 이 「삼국유사」의 기록은 과연 인도의 드라비디언 인종이 배를 타고 한반도에 이주해 왔느냐? 라는 문제, 중앙아시아에서 있던 몽골인종이 인도반도로 남하하였느냐? 그러면 인도의 남쪽에 이 어족이 왜 분포되어 있을까? 1996년 3월 8일자 중앙일보 ‘한국문화 닮은 문화, 아세아 10만리 19’에 유엔 FAO 아프카니탄 고문인 김병호 박사가 쓴 기사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인도의 구자라타주의 간판에 새겨진 글자가 우리 한글과 닮고, 서낭당 곁 돌무더기, 여인들이 냇가에 모여 정겹게 빨래 방망이질 하는 모습, 우리 선조들이 타고 다녔던 果下馬를 보고 그들은 감탄하고, 우리의 선조들이 인도에 체류했다고 추정했다. 그 기사를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탐사팀은 인도 수라스트란반도 구자라타주 바도다라시에 우리 조상들의 흔적을 찾고자 갔다. 그 도시의 박물관장을만났는데, 그는 “옛날부터 수라스트란 사람들이 인도네시아․수마트라․태국․베트남을 거쳐 한국이나 일본으로 많이 흘러갔으니까요.” 라고 말했다. 바도다라시의 길가에 즐비하게 걸려 있는 간판마다 씌어 있는 글자들은 한국 사람이면 60% 이상은 읽을 수 있는 낯익은 글자들이었다. 뜻은 비슷하지 않았지만, 글자 모양은 틀림없이 우리 한글과 닮아 있었다. 탐사팀은 이것을 밝혀내기 위해 이 고장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MS대학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지금으로부터 2천백여년전 아쇼카대왕 시절부터 현대에 이르는 문자의 변천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차트로 작성해 두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 우리 한글 자모와 같은 모양의 글자를 찾아보니 놀랍게도 ‘ㄴ, ㄷ, ㅌ, ㅇ, ㅁ, ㅂ, ㄹ, ㅓ, ㅗ, ㅣ’가 같았다. 그리고 인도에서 유명하다는 산스크리트어 학자를 찾아갔는데, 그가 읽는 산스크리트어 알파벳은 우리가 초등학교 때 배운 한글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꺼커거, 쪄쳐져, 떠터더, 뻐퍼버, 셔허” 게다가 산스크리트어의 알파벳은 우리 한글처럼 ‘ㄱ’으로부터 시작해, ‘ㅎ’으로 끝난다고 했다. Brahmi 문자의 자모 -- 산스크리트어중 가장 오래된 문자임 더욱이 산스크리트어는 음성까지도 무척 한글과 닮았다. 그 학자의 설명에 따르면 산스크리트어 알파벳 발음은 입과 목구명의 모양에 따라 구분된다고 한다. 즉 ‘커’처럼 목구멍에서 나는 소리, ‘처’처럼 입천장에서 나는 소리, ‘뻐’처럼 입술에서 나는 소리로 구분된다고 했다. 탐사팀의 관심은 모은 것은 세종대왕이 창제했다는 한글 글자꼴을 인도에서 가져왔다는 움직일 수 없는 옛 기록이다. 이와같이 인도 구자라트에 한글의 모양이 닮은 것은 자음가운데,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등이고, 모음은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ㅡ, ㅣ’의 열자가 똑같다. 외국학자의 의견을 더 들어보면, 라쿠페리(Lacouperie 1892)는 훈민정음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한 음소문자라는 점에서 그 기원을 직접적인 원천은 불확실하지만 궁극적으로 인도 문자 계통으로 판단하고, 훈민정음의 몇몇 특정한 자형, 예를 들어 ‘ㄹ’과 같은 것은 티베트 문자와 같은 중간 매개를 거쳐서만 파생될 수 있다고 보았다. 스코트(Scott 1893, 1895)는 훈민정음의 기원이 산스크리트 문자임을 주장하면서, 산스크리트 문자가 인도에서 티베트와 중국을 거쳐 한국에 도달할 때까지 자형에 있어 많은 변화와 수정을 겪은 뒤, 훈민정음에서는 문자 다음에 문자를 쓰는 방식이 아닌 음절 형태로 바뀌었다고 보았다. 3) 전게서, p.p. 22~29. 4) 김민수외 5명 공저, 「외국인의 한글 연구」, 태학사, 1997, p.44. 5. 몽고 파스파(Phasgspa 八思巴)문자 기원설 = 팍파(hPagspa)문자 기원설 파스파 문자는 원나라 세조(쿠빌라이칸) 때 제정된 문자로 훈민정음보다 약 1백70년 앞섰다. 미국의 역사학자 레드야드(Ledyard 1966)는 그의 학위논문에서 한글 자체(字體)에, 1269년 몽고의 쿠빌라이칸 왕이 hP‘ags-pa(八思巴)라는 티베트의 명승을 시켜 제작한 몽고문자(이른바 八思巴文字)의 본을 받은 흔적이 보인다는 의견을 제출하였다. 옆의 ‘파스파 자음’을 살펴보면, 한글 자음과 몽고 자음 사이에 꽤 뚜렷한 유사점이 보인다. 우연적인 유사성이라고 단언하기도 힘들지만, 체계적인 유사성이라고 주장하기도 어렵다. 레드야드는 훈민정음과 파스파문자의 연관성을 문자의 형태적인 면과 역사적인 면에서 설명을 하였다. 근대시기에 유희, 이수광 등의 실학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된 한글의 파스파문자 기원설을 인용하고 있는데, 파스파 문자의 자음 특히 정인지 서문 가운데 ‘字倣古篆’의 가사에 나오는 古篆을 문자 그대로의 古篆이 아니라 蒙古篆으로 해석하는 독특한 면을 보이고 있다. 한글 자음중 기본자의 형태는 파스파 문자의 자형을 모방하여 축약하고 단순화시킨 것으로 주장하였다. 이런 점의 보충 근거로 중국어의 음 체계에 상당한 관심과 조예를 가지고 있던 세종이 한국어 음의 정확한 기록과 동시에 중국 한자음을 표기하기에 적합한 간단하고 효과적인 문자를 창제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에, 파스파 문자의 범주와 배열이 중국 어휘 - 음성적 체계와 꽤 근사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주목하고 파스파 문자의 자형에 끌렸을 것이라고 보았다. 김진우(1985)의 견해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어진 세종임금이나 그의 총명한 집현적 학자들은 분명 몽고문자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당시 사역원(司譯院)에서 취급한 네 언어가 중국어, 일본어, 여진어 및 몽고어이었던 것으로 알 수 있다. 쿠빌라이칸의 명령으로 hP‘ags-pa승이 문자를 고안해 냈다는 사실에서 가능성에 대한 격려나 자신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또, Ledyard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한글 자모가 그 당시 유행했던 붓으로 쓰기에는 너무 불편하고 부적할 정도로 네모지고 각이 졌다는 사실도 주의해야 할 것이다. 또, 실상 어진 세종이 문자를 창제하면서 이웃 나라말의 음운과 문자를 참작하지 않았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이것은 신숙주로 하여금 요동반도에 귀양와 있던 중국의 음운학자 황찬(黃讚)을 열세번이나 찾아가서 상담케 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세종의 천재성은 無에서 有를 창조해 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자료를 다 참작하고 이용한 다음, 그 간결성과 체계와 과학성에 있어서 세계의 어느 문자도 따라갈 수 없는 문자를 창제해 냈다는 데에 있다.󰡕 세종 당시 잘 알려진 창제문자라는 점, 字形이 方形으로 유사하고 특히 ‘ㄱ, ㄷ, ㅂ, ㅅ’ 등의 글자가 비슷한 점, 문자의 구성원리와 운용이 유사한 점 등이 파스파 문자기원설의 강점이다. 5) 전게서, p.47. 6) 김진우, 언어, 탑출판사, 1985, p.p.301~302. 6. 발음 기관 상형설 「훈민정음 해례본」의 제자해에 따르면, “초성글자의 기본자는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고, 중성글자의 기본자는 天․地․人의 三才를 본떠 만들었다.”고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를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이후 ‘발음 기관 상형설’이 정설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훈민정음에 수록되어 있는 한글 제자의 해설은 다음과 같다. (1) 牙音 ㄱ 象各根閉喉之形 舌音 ㄴ 象各附上齶之形 (2) 脣音 ㅁ 象口形 齒音 ㅅ 象齒形 (3) ㅋ比ㄱ,聲出稍厲,故加畫. ㄴ而ㄷ ㄷ而ㅌ ㅁ而ㅂ ㅂ而ㅍ ㅅ而ㅈ ㅈ而ㅊ ㅇ而ㆆ ㆆ而ㅎ 其因聲加畫之義皆同. (4) 半舌音ㄹ 半齒音ㅿ 亦象舌齒之形而異其體無加畫之義焉 (5) ㆍ : ․․․形之圖 象乎天也 ㅡ : ․․․形之平 象乎地也 ㅣ : ․․․形之立 象乎人也 한글 字形의 특징은, (1) 圖點 : ㆍ 直線 : ㅣ ㅡ 一角 : ㄱ ㄴ ㅅ 圖 : ㅇ (2) 圖點과 直線의 組合: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 ㆎ ㅢ ㅐ ㅔ ㅒ ㅖ ㅚ ㅟ ㅘ ㅝ ㅙ ㅞ 圖點, 圖, 直線의 組合 : ㆆ ㆁ 角, 直線, 圖點의 組合 : ㅋ ㅌ ㅁ ㅂ ㅍ ㅈ ㅿ ㅇ ㅊ 극도로 단순화된 조합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며, 5劃을 넘지 않는 이상적인 字形이다. 위 ㆍ ㅡ ㅣ 즉 天地人의 상징은 天地人一體의 천부경의 사상에서 철학적 개념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7. 히브리문자 기원설 훈민정음의 히브리문자 기원설은 최근에 나온 학설로 이색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 기원설을 주장한 학자는 조철수 박사로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을 남긴 수메르어를 전공한 아시리아 학자이다. 동아일보 매거진 신동아 1997년 5월호의 “이색논단 한글의 비밀을 밝힌다”에 소개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훈민정음이 본떴다는 옛글자(古篆)는 「단군세기」에 기록된 가림토문자다. 그리고 이 가림토문자는 11~15세기에 중국유태인들이 쓰던 히브리문자를 모방한 것이다. 따라서 훈민정음은 가림토문자를 바탕으로 중국음운학과 히브리어 문자․히브리어 음운학을 참조해 창제했을 가능성이 높다.” 조철수 박사(위 사진)는 “훈민정음이 가림토문자를 매개로 히브리문자를 모방해 창제됐다”는 요지의 글을 발표했다. 조박사의 ‘히브리문자 기원설’은 여러 측면에서 충격적이다. 7) 정연규, 전게서, p.p.157~159 우선 한글과는 인연이 전혀 없어 보이는 히브리문자를 훈민정음의 모델로 상정했다는 점이다. 히브리문자는 페니키아문자에 기원을 둔 문자로 현재 이스라엘에서 사용되고 있는 문자다. 조박사의 주장대로라면 훈민정음 창제 당시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히브리문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둘째, 「단군세기」에 기록된 가림토문자의 실제를 인정한 점이다. 47대 단군의 역사를 기록한 「단군세기」는 역사학계에서 위작 여부로 논란을 빚은 책이다. 가림토문자 역시 국어학계에서는 훈민정음 후대에 만들어진 한글의 변체(變體)로 보고 있다. 일부 재야사학자들에 의하면 가림토문자는 3대 단군시대(지금으로부터 4500년 전)에 만들어진 문자로 훈민정음의 기원이 됐다고 한다. 하지만 조박사는 “가림토문자가 훈민정음의 모델이 된 것은 인정하지만, 가림토문자의 창제 연대는 고려시대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시 원나라 지배하에 있던 고려 말, 민족의식의 발흥으로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중국 유태인의 히브리문자를 모방한 가림토문자를 만들어 넣은 것이라는 이야기다. 셋째, 훈민정음의 음운체계와 히브리 음운학의 관계를 설정한 점이다. 조박사는 중국 유태인의 음운서였던 「창조서」와 훈민정음의 5음체계 순서가 같은 점을 들어 히브리 음운학의 영향을 주장했다. 그간 국어학계에서는 훈민정음의 음운체계는 전적으로 중국 성운학을 원용한 것으로 보아왔다. 그러나 국어학자 대부분은 조박사의 글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중에는 “논리적으로 비약이 심하다”는 지적이 가장 많았다. “히브리문자 기원설의 논거로 제시한 사항들이 잘못되었거나 불확실하다”거나 심지어 “논문으로서 가치가 없다”는 혹평도 있었다. 조박사의 주장이 국어학계의 정설과 상치하는 것이니만큼 어느 정도 예상됐던 반응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히브리문자와 한글의 유사성에 주목한 평도 나오고, 중국유태인의 음운서로 알려진 「창조서」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등 분분적으로 긍정적인 반응도 있었다. 조박사의 히브리문자 기원설은 최소한 훈민정음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논의의 장을 펼쳤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히브리 음운서와 중국 음운학의 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져야 히브리 기원설이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Ⅲ. 결 론 이외에도 서장(西藏 Tibetan)문자 기원설, 고대문자 기원설, 창호상형(窓戶象形) 기원설, 태극사상 기원설, 거란․여진문자 기원설, 팔리(巴里 Pali)문자 기원설, 악리(樂理) 기원설 등이 있다. 사실 훈민정음의 기원에 대한 논란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한글학회 허웅 이사장은 “1940년 경북 안동에서『훈민정음 해례』가 발견되기 전까지 훈민정음의 기원에 대해 무려 28가지의 설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설이 구구했던 것은 이유가 있었다. 1940년 전까지 훈민정음의 기원에 대한 기록은 세종실록에 나오는 “자방고전(字倣古篆:글자는 고전을 본떴다)” 한 구절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의 기원에 관한 연구는 크게 상형설과 외국문자 기원설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는 그 연구 서술의 대상이 문자의 字形에 관한 것인지 아니면 문자의 계통에 관한 것인지에 따라 다시 세분되어져야 한다. 문자의 字形에 있어서의 기원은 말 그대로 한 문자의 표면적․시각적 형태가 어떤 문자의 형태에 기원을 두고 있는가를 말하는 것이고, 문자 계통에 있어서의 기원은 세계 문자발달사의 흐름에서 한 무자가 어디에 연결되어 있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훈민정음의 기원에 관한 연구는 자형의 기원이라 면에서 주로 접근돼왔다. 기존의 古篆, 梵字(Sanskrit), 파스파, 한자의 약자, 거란, 티베트, 팔리문자 등 외국 문자 기원설은 자형의 기원에 근거한 연구로 분류되어져 왔다. 그러나, 이렇게 나뉘어진 연구들은 실제에 있어서는 문자의 계통이란 면에서 각 외국 문자들을 언급한 경우가 상당수에 달한다. 물론 발음기관, 태극, 고대문자, 창호 기원설은 분명히 字形의 기원이란 점에서 주장된 것이다. 국내 학자들의 훈민정음 기원에 대한 연구는 근세 조선을 특징짓는 사상인, 脫中國的 자아인식에서 출발한 실학에 힘입어 17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져, 이수광의 「지봉유설」(1614)의 범자 기원설, 이익의 「성호사설」(18세기초)의 파스파문자 기원서, 신경준의 「운해」(1750)와 홍양호의 「경세정운도설 序」(18세기 후반)의 발음기관상형설, 황윤석의 「이재유고」“자모변”(18세기 후반)의 범자 기원설, 이덕무의 「앙엽기」(18세기 후반)의 고전 기원설, 유희의 「언문지」(1824)의 몽고자 기원설, 강위의 「동문자모분해」(1869)의 발음기관상형설 등이 주장되었다. 그러나 훈민정음의 자형 기원이 기존의 외국 문자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 국내 학자들의 여러 견해들은 1940년, 세종 때 발간된 「훈민정음」의 발견 이후 약화되고, 일반적으로 발음기관상형설을 인정하게 되었고, 이러한 연구 경향은 외국인들의 연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이런 연구 경향에도 불구하고 외국 문자 기원설들이 제기되고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자형의 기원이란 면에서의 주장이 아니라 문자의 계통면에서의 훈민정음과 외국 문자와의 연관성을 설명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한글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의 독창적인 면이 있지만, 문자발달의 유산을 이어 받았을 것이며, 알타이 언어들의 문자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에 서투른 결론을 내지 말고 더욱 깊고, 넓게 연구할 우리의 과제로 여겨야 하며, 잃어버린 한글의 뿌리를 찾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 참 고 문 헌 ※ 1. 정연규, 「언어로 풀어보는 한민족의 뿌리와 역사」, 한국문화사, 1997 2. 김민수외 5명 공저, 「외국인의 한글 연구」, 태학사, 1997 3. 김진우, 언어, 탑출판사, 1985 4. 박종국, 「한국어 발달사」, 문지사, 1996 ☆ 참고 WEB SITE ★ 1. http://www2.dongailbo.co.kr/docs/magazine/new_donga/9705/index.html 2. http://www.hangeul.or.kr/ 3. http://www.postech.ac.kr/~hopemini/Course/report_korea/node2.html 4. http://cc.kangwon.ac.kr/~sulb/kl-data/hunbib.htm 5. http://www.choongang.co.kr/love/9804/윤석준/dan.htm 6. http://www.hahnnet.org/hahnnet/han1_9.html 7. http://members.iworld.net/hahngoon/hanron/pro213.html 8. http://atom.kyunghee.ac.kr/STSweb/Report/Streport/bbs176.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