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한단고기(桓檀古記)/삼한관경본기

三韓管境本紀 番韓世家 下(번한세가 하)

유위자 2025. 10. 9. 06:42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0_14 : 한단고기 삼한관경본기] 한 단 고 기 (桓 檀 古 記) 목차 - 범례(凡例) - 삼성기(三聖紀) 상 : 안함로(安含老) 지음. - 삼성기(三聖紀) 하 : 원동중(元董仲) - 신시역대기 포함. - 단군세기(檀君世紀) : 이암(李嵒) 지음. 단군세기서(檀君世紀序), 단군세기 - 북부여기(北夫餘紀) : 복애거사 범장(伏崖居士 范樟) 지음. : 북부여기(北夫餘紀)상, 북부여기(北夫餘紀)하, 가섭원부여기(迦葉原夫餘紀) - 태백일사(太白逸史) : 일십당(一十堂) 이맥(李陌) 지음. 태백일사목록(太白逸史目錄)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 환국본기(桓國本紀) 신시본기(神市本紀)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 :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 마한세가(馬韓世家)상, 마한세가(馬韓世家)하, 번한세가(番韓世家)상, 번한세가(番韓世家)하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 : 천부경, 삼일신고 포함. 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대진국본기(大震國本紀) 고려국본기(高麗國本紀) 태백일사발(太白逸史跋) - 환단고기발(桓壇古記跋) * 太白逸史(태백일사) 일십당一十堂 주인主人 이맥李陌 찬撰 * 三韓管境本紀(삼한관경본기) 1. 환웅천황의 제천 행사 2. 비서갑의 초대 왕검이 된 웅족 여왕 3. 한족 시조 헌원은 웅씨족 소전의 후손 4. 구환을 통일하신 신인 왕검 : 국조 단군 마한세가 상 마한세가 상 서문 1. 황제헌원 2. 치우천황의 탁록 대전쟁 3. 선인 유위자 4. 고조선 마한의 역사 4-1) 삼랑성과 제천단을 쌓다 4-2) 3세 가륵단군의 중도 일심 정신에 대한 성훈 4-3) 살수에서 배를 건조함 4-4) 11세 단군 때 환도桓道 문명이 번성함 마한세가 하 1. 색불루 단군 백악산 아사달 천도 2. 삼한에서 삼조선으로 3. 협야후가 왜인의 반란을 평정함 4. 고조선의 몰락 - 우화충의 대역모와 기후의 반란 번한세가 상 1. 요·순은 단군조선의 제후 2. 도산 회의 3. 치우천황의 후손 치두남 4. 오행치수의 묘법 전수 5. 번한 왕 소전의 걸 정벌 번한세가 하 1. 색불루단군의 국가 제도 개편 * 고조선의 8조 금법 * 소련과 대련 형제를 군자로 섬긴 번한 2. 왕문의 이두법 3. 노자는 풍이족 혈통 4. 70세 번조선 왕이 된 수유 사람 기후 5. 해모수의 고조선 계승 * 三韓管境本紀 番韓世家 下(번한세가 하) 檀君索弗婁가 初并三韓하시고 大改國制하실새 殷主武丁이 遣使來하야 約貢하니라. 先是에 廢徐于餘하사 爲庶人이러시니 徐于餘가 潜歸坐原하야 與獵戶数千으로 謀起兵하니 蓋天齡이 聞하고 卽徃伐이라가 敗沒于陣하니라. 帝親率三軍하사 徃討之하실새 乃先遣勸降하시고 約封爲裨王하신대 再諭以聽이러니 至是하야 命徐于餘하사 爲番韓하시니라. 1. 색불루단군의 국가 제도 개편 색불루단군(22세)께서 일찍이 삼한을 아우르고 나라의 제도[國制]를 크게 고치실 때, 은나라 왕 무정이 사신을 보내 와서 조공을 바칠 것을 약속하였다. 이에 앞서 서우여徐于餘를 폐하여 서인으로 만드셨다. 서우여가 몰래 좌원坐原으로 돌아가 사냥꾼 수천 명과 함께 군대를 일으키려고 모의하였다. 갑천령이 그 소식을 전해 듣고 즉각 가서 쳤으나, 패하여 진중에서 죽었다. 색불루단군께서 친히 3군을 거느리고 가서 치려 하실 때, 먼저 사람을 보내 항복할 것을 권하고 비왕裨王으로 봉할 것을 약속하셨다. 다시 설득하시자 말씀을 따랐다. 이때 서우여를 (30세) 번한 왕으로 임명하셨다. 四年己亥에 眞朝鮮이 以天王敕文으로 傳曰 爾三韓은 上奉天神하고 接化羣生하라 하신대 自是로 敎民호대 以禮義田蠶織作弓矢字書오 爲民設禁八條하니 색불루단군 4년 기해(단기 1052, BCE 1282)년에, 진조선眞朝鮮이 천왕(색불루단군)의 칙문을 전하였다. 그 칙문에서 말하기를, “너희 삼한은 위로 천신을 받들고, 아래로 뭇 백성을 맞아 잘 교화하라”라고 하였다. 이로부터 백성에게 예절과 의리, 농사, 누에치기, 길쌈, 활쏘기, 글자를 가르쳤다. 또 백성을 위하여 금팔조禁八條를 정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相殺에 以當時償殺하고 相傷에 以穀償하고 相盜者는 男沒爲其家奴오 女爲婢하며 毁蘇塗者는 禁錮하고 失禮義者는 服軍하고 不勤勞者는 徵公하고 作邪淫者는 笞刑하고 行詐欺者는 訓放이러니 欲自贖者는 雖免爲公民이나 俗猶羞之하야 嫁娶에 無所售라 是以로 其民이 終不相盜하야 無門戶之閉오 婦人은 貞信不淫하며 闢其田野都邑하며 飮食以籩豆하니 有仁讓之化러라. * 고조선의 8조 금법 ◇제1조: 살인한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 ◇제2조: 상해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보상한다. ◇제3조: 도둑질 한 자 중에서 남자는 거두어들여 그 집의 노奴(남자 종)로 삼고 여자는 비婢(여자 종)로 삼는다. ◇제4조: 소도를 훼손한 자는 금고禁錮 형에 처한다. ◇제5조: 예의를 잃은 자는 군에 복역시킨다. ◇제6조: 게으른 자는 부역에 동원시킨다. ◇제7조: 음란한 자는 태형笞刑으로 다스린다. ◇제8조: 남을 속인 자는 잘 타일러 방면한다. 자신의 잘못을 속죄한 자는 비록 죄를 면해 공민이 될 수 있었지만, 당시 풍속이 이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시집가고 장가들 수 없었다. 이리하여 백성이 마침내 도둑질하지 않았고, 문을 닫고 사는 일이 없었으며, 부인은 정숙하여 음란하지 않았다. 전야田野와 도읍을 개간하고, 음식을 그릇에 담아 먹었으며, 어질고 겸양하는 교화가 이루어졌다. 辛丑에 殷主武丁이 因番韓하야 上書天王하고 獻方物하니라. 丙申에 徐于餘가 薨하니 丁酉에 阿洛이 立하니라 薨하니 丁丑에 率歸가 立하니라 薨하니 甲子에 任那가 立하니라 辛未에 以天王詔로 築天壇于東郊하고 祭三神할새 衆이 環舞擊鼓以唱하니 曰 精誠乙奴 天壇築爲古 三神主其祝壽爲世 皇運乙 祝壽爲未於 萬萬歲魯多 萬民乙 睹羅保美御 豊年乙 叱居越爲度多 신축(단기 1054, BCE 1280)년에 은나라 왕 무정이 번한 왕을 통해 천왕에게 글을 올리고 방물을 바쳤다. 병신(단기 1109, BCE 1225)년에 서우여가 세상을 떠났다. 정유(단기 1110, BCE 1224)년에 아락阿洛(31세 왕)이 즉위하였다. 아락이 세상을 뜨니 정축(단기 1150, BCE 1184)년에 솔귀率歸(32세 왕)가 계승하였다. 솔귀가 세상을 뜨자 갑자(단기 1197, BCE 1137)년에 임나任那(33세 왕)가 즉위하였다. 신미(단기 1204, BCE 1130)년에 천왕(25세 솔나단군)의 조칙으로 동쪽 교외에 천단天壇을 쌓고 삼신께 제사 지낼 때, 많은 사람이 둥글게 모여 춤을 추고 북을 치며 노래를 불렀다. 정성으로 천단을 쌓고 삼신님께 장수를 축원하세. 황운皇運을 축수함이여! 만만세로다. 만민을 돌아봄이여! 풍년을 즐거워하도다. 任那가 薨하니 丙申에 弟魯丹이 立하니라 北漠이 入寇어늘 遣路日邵하야 討平之하니라. 薨하니 己酉에 子馬密이 立하니라 薨하니 丁卯에 子牟弗이 立하고 乙亥에 置監星하니라. 牟弗이 薨하니 丁亥에 子乙那가 立하고 甲午에 周主瑕가 遣使朝貢하니라. 임나任那가 세상을 떠나고 병신(단기 1229, BCE 1105)년에 아우 노단魯丹(34세 왕)이 즉위하였다. 북막北漠이 침범하므로 노일소路日邵를 보내어 쳐서 평정하였다. 노단이 세상을 뜨니 기유(단기 1242, BCE 1092)년에 아들 마밀馬密(35세 왕)이 즉위하였다. 마밀이 세상을 뜨자 정묘(단기 1260, BCE 1074)년에 아들 모불牟弗(36세 왕)이 즉위하였다. 을해(단기 1268, BCE 1066)년에 천문을 관측하는 감성監星을 설치하였다. 모불이 세상을 떠나고 정해(단기 1280, BCE 1054)년에 아들 을나乙那(37세 왕)가 즉위하였다. 갑오(단기 1287, BCE 1047)년에 주나라 임금 하瑕가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쳤다. 乙那가 薨하니 丁卯에 子麻維庥가 立하니라 薨하니 己巳에 弟登那가 立하니라 李克會가 啓請建少連大連之廟하고 定行三年喪한대 從之하니라. * 소련과 대련 형제를 군자로 섬긴 번한 을나가 세상을 떠나고 정묘(단기 1320, BCE 1014)년에 아들 마유휴麻維庥(38세 왕)가 즉위하였다. 마유휴가 세상을 떠나자 기사(단기 1322, BCE 1012)년에 아우 등나登那(39세 왕)가 즉위하였다. 이극회李克會가 소련少連과 대련大連8)의 사당을 세우고, 3년상을 정하여 시행하기를 청하니 왕께서 이를 따랐다. 薨하니 戊戌에 子奚壽가 立하니라 壬寅에 遣子勿韓하야 徃九月山하야 助祭三聖廟하니 廟在常春朱家城子也라 奚壽가 薨하니 己未에 子勿韓이 立하니라 薨하니 己卯에 子奧門婁가 立하니라 薨하니 丁卯에 子婁沙가 立하니라 戊寅에 入覲天朝하야 與太子登屼과 少子登里로 閑居別宮이라가 乃獻歌太子兄弟하니 曰 등나가 세상을 떠나고 무술(단기 1351, BCE 983)년에 아들 해수奚壽(40세 왕)가 즉위하였다. 임인(단기 1355, BCE 979)년에 아들 물한勿韓을 구월산에 보내어 삼성묘三聖廟에 제사 지내는 것을 돕게 하였다. 삼성묘는 상춘常春의 주가성자朱家城子에 있다. 해수가 세상을 뜨자 기미(단기 1372, BCE 962)년에 아들 물한勿韓(41세 왕)이 즉위하였다. 물한이 세상을 떠나자 기묘(단기 1392, BCE 942)년에 아들 오문루奧門婁(42세 왕)가 즉위하였다. 오문루가 세상을 떠나자 정묘(단기 1440, BCE 894)년에 아들 누사婁沙(43세 왕)가 즉위하였다. 무인(단기 1451, BCE 883)년에, 누사가 천조天朝(진조선 조정)에 들어가 천왕(30세 내휴단군)을 뵙고, 태자 등올登屼과 소자少子 등리登里와 함께 별궁에서 한가롭게 지내다가 태자 형제에게 이렇게 노래를 지어 올렸다. 兄隱伴多是 弟乙 愛爲古 弟隱味當希 兄乙 恭敬爲乙支尼羅 恒常毫毛之事魯西 骨肉之情乙 傷巵 勿爲午 馬度五希閭 同槽奚西 食爲古 鴈度 亦一行乙 作爲那尼 內室穢西非綠 歡樂爲那 細言乙良 愼聽勿爲午笑 형은 반드시 아우를 사랑하고 아우는 마땅히 형을 공경할지니라. 항상 작은 일로써 골육의 정을 상하게 하지 마소. 말도 오히려 같은 구유에서 먹고 기러기도 역시 한 줄을 지어 가니 방 안에서는 비록 즐거우나 이간하는 말일랑 삼가 듣지 마소. 婁沙가 薨하니 乙未에 子伊伐이 立하니라 丙申에 漢水人王文이 作吏讀法하야 以獻한대 天王이 嘉之하사 命三韓하사 如敕施行케 하시니라. 2. 왕문의 이두법 누사가 세상을 떠나자 을미(단기 1468, BCE 866)년에 아들 이벌伊伐(44세 왕)이 즉위하였다. 병신(단기 1469, BCE 865)년에 한수漢水 사람 왕문王文이 이두법을 만들어 올리니 천왕(31세 등올단군)께서 기뻐하시고 삼한에 명하여 시행하게 하셨다. 己未에 遣上將高力合하사 與淮軍으로 敗周하니라. 伊伐이 薨하니 辛酉에 子阿勒이 立하니라 丙寅에 周二公이 遣使하야 獻方物하니라. 阿勒이 薨하니 己丑에 子麻休一云麻沐이 立하니라 薨하니 丙辰에 子多斗가 立하니라 薨하니 己丑에 子奈伊가 立하니라 薨하니 己未에 子次音이 立하니라 薨하니 己巳에 子不理가 立하니라 薨하니 乙巳에 子餘乙이 立하니라 薨하니 甲戌에 奄婁가 立하니라 기미(단기 1492, BCE 842)년에 상장上將 고력합高力合을 보내어 회군淮軍과 합세하여 주周나라를 격퇴하였다. 이벌이 세상을 뜨니 신유(단기 1494, BCE 840)년에 아들 아륵阿勒(45세 왕)이 즉위하였다. 병인(단기 1499, BCE 835)년에 주나라의 이공二公(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이 사절을 보내어 방물을 바쳤다. 아륵이 세상을 떠나고 기축(단기 1522, BCE 812)년에 아들 마휴麻休(일명 마목, 46세 왕)가 즉위하였다. 마휴가 세상을 떠나자 병진(단기 1549, BCE 785)년에 아들 다두多斗(47세 왕)가 즉위하였다. 다두가 세상을 뜨니 기축(단기 1582, BCE 752)년에 아들 내이奈伊(48세 왕)가 즉위하였다. 내이가 세상을 떠나자 기미(단기 1612, BCE 722)년에 아들 차음次音(49세 왕)이 즉위하였다. 차음이 세상을 떠나자 기사(단기 1622, BCE 712)년에 아들 불리不理(50세 왕)가 즉위하였다. 불리가 세상을 떠나니 을사(단기 1658, BCE 676)년에 아들 여을餘乙(51세 왕)이 즉위하였다. 여을이 세상을 떠나고 갑술(단기 1687, BCE 647)년에 엄루奄婁(52세 왕)가 즉위하였다. 戊寅에 匈奴가 遣使番韓하야 求見天王하고 稱臣貢物而去하니라. 奄婁가 薨하니 子甘尉가 立하니라 薨하니 戊申에 子述理가 立하니라 薨하니 戊午에 子阿甲이 立하니라 庚午에 天王이 遣使高維先하사 頒桓雄蚩尤檀君王儉三祖之像하사 以奉官家하시니라. 무인(단기 1691, BCE 643)년에 흉노9)가 번한에 사신을 보내어 천왕을 뵙기를 구하고, 스스로 신하라 칭하고 공물을 바치고 돌아갔다. 엄루가 세상을 떠나고 아들 감위甘尉(53세 왕)가 즉위하였다. 감위가 세상을 뜨자 무신(단기 1721, BCE 613)년에 아들 술리述理(54세 왕)가 즉위하였다. 술리가 세상을 떠나자 무오(단기 1731, BCE 603)년에 아들 아갑阿甲(55세 왕)이 즉위하였다. 경오(단기 1743, BCE 591)년에 천왕(37세 마물단군)께서 사신 고유선高維先을 보내어 환웅천황·치우천황·단군왕검 세 분 성조의 상像을 반포하여 관가에서 받들게 하셨다. 阿甲이 薨하니 癸酉에 固台가 立하니라 薨하니 丁亥에 子蘇台爾가 立하니라 薨하니 乙巳에 子馬乾이 立하니라 薨하니 丙辰에 天韓이 立하니라 薨하니 丙寅에 子老勿이 立하니라 薨하니 辛巳에 子道乙이 立하니라 癸未에 魯人孔丘가 適周하야 問禮於老子李耳하니 耳父의 姓은 韓이오 名은 乾이니 其先은 風人이라 後에 西出關하야 由內蒙古而轉至阿踰佗하야 以化其民하니라. 3. 노자는 풍이족 혈통 아갑이 세상을 뜨고 계유(단기 1746, BCE 588)년에 고태固台(56세 왕)가 즉위하였다. 고태가 세상을 떠나자 정해(단기 1760, BCE 574)년에 아들 소태이蘇台爾(57세 왕)가 즉위하였다. 소태이가 세상을 떠나고 을사(단기 1778, BCE 556)년에 아들 마건馬乾(58세 왕)이 즉위하였다. 마건이 세상을 떠나자 병진(단기 1789, BCE 545)년에 천한天韓(59세 왕)이 계승하였다. 천한이 세상을 떠나고 병인(단기 1799, BCE 535)년에 아들 노물老勿(60세 왕)이 즉위하였다. 노물이 세상을 떠나자 신사(단기 1814, BCE 520)년에 아들 도을道乙(61세 왕)이 즉위하였다. 계미(단기 1816, BCE 518)년에 노나라 사람 공자가 주나라에 가서 노자 이이李耳10)에게 예를 물었다. 이耳의 아버지는 성이 한韓이고 이름이 건乾인데, 선조는 풍이족 사람[風人]이다. 노자는 후에 서쪽으로 관문을 지나 내몽고를 경유하여 여기저기 전전하다가 아유타阿踰佗에 이르러 그곳 백성을 교화하였다. 道乙이 薨하니 丙申에 子 述休가 立하니라 薨하니 庚午에 子沙良이 立하니라 薨하니 戊子에 子地韓이 立하니라 薨하니 癸卯에 子人韓이 立하니라 薨하니 辛巳에 子西蔚이 立하니라 薨하니 丙午에 子哥索이 立하니라 薨하니 庚辰에 子解仁이 立하니 一名山韓이라 是歲에 爲刺客所害하니라. 도을이 세상을 떠나고 병신(단기 1829, BCE 505)년에 아들 술휴述休(62세 왕)가 즉위하였다. 술휴가 세상을 떠나자 경오(단기 1863, BCE 471)년에 아들 사량沙良(63세 왕)이 즉위하였다. 사량이 세상을 떠나자 무자(단기 1881, BCE 453)년에 아들 지한地韓(64세 왕)이 즉위하였다. 지한이 세상을 떠나자 계묘(단기 1896, BCE 438)년에 아들 인한人韓(65세 왕)이 즉위하였다. 인한이 세상을 떠나자 신사(단기 1934, BCE 400)년에 아들 서울西蔚(66세 왕)이 즉위하였다. 서울이 세상을 떠나고 병오(단기 1959, BCE 375)년에 아들 가색哥索(67세 왕)이 즉위하였다. 가색이 세상을 떠나자 경진(단기 1993, BCE 341)년에 아들 해인解仁(68세 왕)이 즉위하였는데, 일명 산한山韓이라 한다. 이 해에 해인이 자객에게 살해되었다. 辛巳에 子水韓이 立하니라 壬午에 燕이 倍道入寇하야 攻安寸忽하고 又入險瀆이어늘 須臾人箕詡가 以子弟五千人으로 來助戰事하니 於是에 軍勢稍振이라 乃與眞番二韓之兵으로 夾擊大破之하고 又分遣偏師하야 將戰於薊城之南이어늘 燕이 懼하야 遣使乃謝하고 以公子로 爲質하니라. 戊戌에 水韓이 薨하니 無嗣라 於是에 箕詡가 以命으로 代行軍令하니 燕이 遣使賀之하니라. 是歲에 燕이 稱王하고 將來侵이라가 未果하고 箕詡도 亦承命正號하야 爲番朝鮮王하고 始居番汗城하야 以備不虞하니라. 4. 70세 번조선 왕이 된 수유 사람 기후 신사(단기 1994, BCE 340)년에 아들 수한水韓(69세 왕)이 즉위하였다. 임오(단기 1995, BCE 339)년에 연나라가 이틀 길을 하루에 달려 쳐들어와 안촌홀安寸忽을 공격하고 험독險瀆까지 쳐들어왔다. 이때 수유 사람[須臾人] 기후가 젊은 청년[子弟] 5천 명을 거느리고 와서 전쟁을 도우니 군세가 조금 진작되었다. 이에 진한·번한의 군사와 함께 협공하여 크게 격파하였다. 또 한 무리의 군사를 나누어 보내 계성薊城 남쪽에서 싸우려 하니, 연나라가 두려워하여 사신을 보내어 사죄하고 공자公子를 인질로 보냈다. 무술(단기 2011, BCE 323)년에 수한이 세상을 떠나니 후사가 없었다. 그리하여 기후가 명을 받들어 군령을 대행하였다. 연나라가 사신을 보내 하례하였다. 이 해에 연이 왕이라 칭하고 장차 침범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기후도 명을 받들어 왕호를 써서 (70세) 번조선 왕11)이 되고, 비로소 번한성番汗城에 머물면서 뜻밖의 사태에 대비하였다. 箕詡가 薨하니 丙午에 子箕煜이 立하니라 薨하니 辛未에 子箕釋이 立하니라 是歲에 命州郡하야 擧賢良하니 一時被選者가 二百七十人이라 己卯에 番韓이 親耕于郊하고 乙酉에 燕이 遣使納貢하니라. 箕釋이 薨하니 庚戌에 子箕潤이 立하니라 薨하니 己巳에 子箕丕가 立하니라 初에 箕丕가 與宗室解慕漱로 密有易璽之約하고 勤贊佐命하니 使解慕漱로 能握大權者는 惟箕丕其人也라. 箕丕가 薨하니 庚辰에 子箕準이 立하니라 丁未에 爲流賊衛滿所誘敗하야 遂入海而不還하니라. 5. 해모수의 고조선 계승 기후가 세상을 뜨자 병오(단기 2019, BCE 315)년에 아들 기욱箕煜(71세 왕)이 즉위하였다. 기욱이 세상을 떠나고 신미(단기 2044, BCE 290)년에 아들 기석箕釋(72세 왕)이 즉위하였다. 이 해에 각 주와 군에 명하여 어질고 현명한 인재를 추천하게 하였는데, 일시에 선발된 자가 270명이었다. 기묘(단기 2052, BCE 282)년에 번한 왕이 친히 교외에서 밭을 갈았다. 을유(단기 2058, BCE 276)년에 연나라가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쳤다. 기석이 세상을 떠나고 경술(단기 2083, BCE 251)년에 아들 기윤箕潤(73세 왕)이 즉위하였다. 기윤이 세상을 뜨자 기사(단기 2102, BCE 232)년에 아들 기비箕丕(74세 왕)가 즉위하였다. 일찍이 기비가 종실宗室 사람 해모수와 함께 몰래 옥새를 바꿔치려는 (새 나라를 열자는) 약속을 하고, 힘을 다해 천왕天王이 되는 것을 도와 주었다. 해모수로 하여금 능히 대권을 잡을 수 있게 한 사람은 오직 기비 그 사람이었다. 기비가 세상을 떠나고 경진(단기 2113, BCE 221)년에 아들 기준箕準(75세 왕) 이 즉위하였다. 정미(단기 2140, BCE 194)년에 떠돌이 도적[流賊] 위만에게 속아 패하여 마침내 배를 타고 바다로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