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한단고기(桓檀古記)/삼한관경본기

三韓管境本紀(삼한관경본기)

유위자 2025. 10. 9. 05:52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0_14 : 한단고기 삼한관경본기] 한 단 고 기 (桓 檀 古 記) 목차 - 범례(凡例) - 삼성기(三聖紀) 상 : 안함로(安含老) 지음. - 삼성기(三聖紀) 하 : 원동중(元董仲) - 신시역대기 포함. - 단군세기(檀君世紀) : 이암(李嵒) 지음. 단군세기서(檀君世紀序), 단군세기 - 북부여기(北夫餘紀) : 복애거사 범장(伏崖居士 范樟) 지음. : 북부여기(北夫餘紀)상, 북부여기(北夫餘紀)하, 가섭원부여기(迦葉原夫餘紀) - 태백일사(太白逸史) : 일십당(一十堂) 이맥(李陌) 지음. 태백일사목록(太白逸史目錄)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 환국본기(桓國本紀) 신시본기(神市本紀)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 :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 마한세가(馬韓世家)상, 마한세가(馬韓世家)하, 번한세가(番韓世家)상, 번한세가(番韓世家)하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 : 천부경, 삼일신고 포함. 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대진국본기(大震國本紀) 고려국본기(高麗國本紀) 태백일사발(太白逸史跋) - 환단고기발(桓壇古記跋) * 太白逸史(태백일사) 일십당一十堂 주인主人 이맥李陌 찬撰 * 三韓管境本紀(삼한관경본기) 1. 환웅천황의 제천 행사 2. 비서갑의 초대 왕검이 된 웅족 여왕 3. 한족 시조 헌원은 웅씨족 소전의 후손 4. 구환을 통일하신 신인 왕검 : 국조 단군 마한세가 상 마한세가 상 서문 1. 황제헌원 2. 치우천황의 탁록 대전쟁 3. 선인 유위자 4. 고조선 마한의 역사 4-1) 삼랑성과 제천단을 쌓다 4-2) 3세 가륵단군의 중도 일심 정신에 대한 성훈 4-3) 살수에서 배를 건조함 4-4) 11세 단군 때 환도桓道 문명이 번성함 마한세가 하 1. 색불루 단군 백악산 아사달 천도 2. 삼한에서 삼조선으로 3. 협야후가 왜인의 반란을 평정함 4. 고조선의 몰락 - 우화충의 대역모와 기후의 반란 번한세가 상 1. 요·순은 단군조선의 제후 2. 도산 회의 3. 치우천황의 후손 치두남 4. 오행치수의 묘법 전수 5. 번한 왕 소전의 걸 정벌 번한세가 하 1. 색불루단군의 국가 제도 개편 * 고조선의 8조 금법 * 소련과 대련 형제를 군자로 섬긴 번한 2. 왕문의 이두법 3. 노자는 풍이족 혈통 4. 70세 번조선 왕이 된 수유 사람 기후 5. 해모수의 고조선 계승 * 三韓管境本紀 第四(삼한관경본기 제4) 환단고기의 태백일사 中 삼한관경본기는 천지인 삼계를 다스리시는 삼신 상제님의 우주관에 따라 옛 조선(고조선)을 진한, 번한, 마한의 삼한(三韓)으로 다스린 단군조선의 역사이다. 太白山이 北走하야 屹屹然立於斐西岬之境하야 有負水抱山而又回焉之處하니 乃大日王祭天之所也라 世傳桓雄天王이 巡駐於此하사 佃獵以祭하실새 風伯은 天符刻鏡而進하고 雨師는 迎鼓環舞하며 雲師는 佰劒陛衛하니라. 盖天帝就山之儀仗이 若是之盛嚴也라 山名曰不咸이오 今亦曰完達이니 音近也니라 1. 환웅천황의 제천 행사 태백산(백두산)이 북쪽으로 달려가 우뚝 솟은 장엄한 모습이 비서갑斐西岬 경계에까지 이어졌고, 그곳에 물을 등지고 산을 안고서 다시 꺾어져 감돈 곳이 있는데, 바로 대일왕大日王(환웅천황)께서 천제를 올리시던 곳이다. 세상에 이런 말이 전해 온다. 환웅천황이 이곳에 순행하여 머무시면서 사냥하여 제사 지내실 때, 풍백은 『천부경天符經』을 거울에 새겨 진상하고, 우사는 북에 맞추어 둥글게 춤을 추고, 운사는 백 명을 칼로 무장시켜 제단 밑에 늘어서서 지켰다. 상제님께 천제天祭를 올리러 산에 가실 때 의장이 이처럼 성대하고 엄숙하였다. 이 산의 이름이 불함不咸이다. 지금은 완달完達이라 하는데, 그 음이 비슷하다. 後에 熊女君이 爲天王所信하야 世襲爲斐西岬之王儉하니 王儉은 俗言大監也라 管守土境하고 除暴扶民하야 以天王이 諭國人之意로 戒之曰 父母는 可敬也며 妻子는 可保也며 兄弟는 可愛也며 老長은 可隆也며 少弱은 可惠也며 庶衆은 可信也라 하고 又制醫藥工匠養獸作農測候禮節文字之法하니 一境化之하야 遠近之民이 皆不相疑也러라. 2. 비서갑의 초대 왕검이 된 웅족 여왕 후에 웅족 여왕[熊女君]이 천황께 신임을 받아 비서갑의 왕검을 세습하였다. 왕검王儉을 세속 말로 대감大監이라 한다. 왕검은 영토를 관장하고 지키며, 포악한 것을 물리치고 백성을 보살폈다. 일찍이 천황께서 백성에게 유시諭示한 뜻을 받들어 자기 백성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부모를 공경하고, 처자를 잘 보호하여라. 형제를 사랑하고 아끼며, 노인과 어른을 잘 받들어라. 어린아이와 약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뭇 백성은 서로 믿어야 하느니라.” 또 의약과 물건 만드는 법, 짐승을 기르고 농사짓는 법, 기후 관측과 예절과 문자의 법을 만드니, 맡아 다스리는 땅이 교화되어 원근 백성이 모두 서로 의심치 않게 되었다. 熊氏之所分을 曰少典이니 安夫連桓雄之末에 少典이 以命으로 監兵于姜水하고 其子神農이 嘗百草 制藥하고 後에 徙列山하야 日中交易하니 人多便之라 少典之別派를 曰公孫이니 以不善養獸로 流于軒丘하니 軒轅之屬이 皆其後也라. 3. 한족 시조 헌원은 웅씨족 소전의 후손 웅씨족에서 갈려 나간 후손 중에 소전少典이 있었다. 안부련환웅(8세) 말기에 소전이 명을 받고 강수姜水에서 군병을 감독했다. 소전의 아들 신농神農은 온갖 풀을 맛보아 약을 만들었다. 후에 열산列山으로 이주하여 한낮에 시장을 열어 물건을 교역하게 하였는데, 백성이 이를 매우 편리하게 여겼다. 소전에서 갈라진 파로 공손公孫이란 인물이 있었다. 짐승을 잘 기르지 못해 헌구軒丘에 귀양가서 살았는데, 헌원軒轅의 족속이 모두 그 후손이다. 斯瓦羅桓雄之初에 熊女君之後를 曰黎니 始得封於檀墟하야 爲王儉하야 樹德愛民하니 土境이 漸大하고 諸土境王儉이 來獻方物하야 以歸化者가 千餘數라 後四百六十年에 有神人王儉者가 大得民望하사 陞爲裨王이라가 居摂二十四年에 熊氏王이 崩於戰하고 王儉이 遂代其位하사 統九桓爲一하시니 是爲檀君王儉也시니라. 4. 구환을 통일하신 신인 왕검 : 국조 단군 사와라환웅(13세) 초기에 웅족 여왕의 후예를 여黎라 하였는데, 처음으로 단허檀墟에 봉함을 받아 왕검이 되었다. 왕검이 덕을 베풀고 백성을 사랑하므로 영토가 점점 넓어졌다. 여러 지역 왕검이 와서 방물을 바쳤고, 귀화하는 자가 천여 명이었다. 그 뒤 460년이 지나 신인神人 왕검이 출현하여 백성에게 신망을 크게 얻어 비왕裨王(부왕)에 올라 24년간 섭정하였다. 웅씨 왕이 전쟁에서 죽자 왕검이 드디어 그 자리를 계승하여 구환九桓을 통일하였다. 이분이 단군왕검이시다. 乃召國人하사 立約曰 自今以後로 聽民爲公法하노니 是謂天符也라 夫天符者는 萬世之綱典이오 至尊所在니 不可犯也라 하시고 遂與三韓으로 分土而治하실새 辰韓은 天王自爲也시라 立都阿斯達하시고 開國하사 號朝鮮하시니 是爲一世檀君이시오 阿斯達은 三神所祭之地로 後人이 稱王儉城하니 以王儉舊宅이 尙存故也니라. 이때에 나라 사람들을 불러 이렇게 공약하셨다. “오늘 이후로는 백성의 뜻을 들어 공법을 삼노니, 이를 천부天符(하늘의 법)라 이르노라. 무릇 천부는 만세불변의 기본 경전이요, 지극한 존엄성이 담겨 있으니 범해서는 아니 되느니라.” 마침내 삼한으로 영토를 나누어 다스릴 때 진한辰韓은 천왕께서 친히 맡아서 통치하셨다. 도읍을 아사달에 세우고 나라를 열어 조선이라 하니, 이분이 바로 1세 단군이시다. 아사달은 ‘삼신께 제사 지내는 곳’으로 후세 사람들이 왕검성王儉城이라 불렀는데, 그 까닭은 왕검의 옛 집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