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0_14 : 한단고기 삼한관경본기]한 단 고 기 (桓 檀 古 記)
목차
- 범례(凡例)
- 삼성기(三聖紀) 상 : 안함로(安含老) 지음.
- 삼성기(三聖紀) 하 : 원동중(元董仲) - 신시역대기 포함.
- 단군세기(檀君世紀) : 이암(李嵒) 지음. 단군세기서(檀君世紀序), 단군세기
- 북부여기(北夫餘紀) : 복애거사 범장(伏崖居士 范樟) 지음.
: 북부여기(北夫餘紀)상, 북부여기(北夫餘紀)하, 가섭원부여기(迦葉原夫餘紀)
- 태백일사(太白逸史) : 일십당(一十堂) 이맥(李陌) 지음.
태백일사목록(太白逸史目錄)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
환국본기(桓國本紀)
신시본기(神市本紀)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 :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 마한세가(馬韓世家)상,
마한세가(馬韓世家)하, 번한세가(番韓世家)상, 번한세가(番韓世家)하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 : 천부경, 삼일신고 포함.
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대진국본기(大震國本紀)
고려국본기(高麗國本紀)
태백일사발(太白逸史跋)
- 환단고기발(桓壇古記跋)
* 太白逸史(태백일사)
일십당一十堂 주인主人 이맥李陌 찬撰
* 三韓管境本紀(삼한관경본기)
1. 환웅천황의 제천 행사
2. 비서갑의 초대 왕검이 된 웅족 여왕
3. 한족 시조 헌원은 웅씨족 소전의 후손
4. 구환을 통일하신 신인 왕검 : 국조 단군
마한세가 상
마한세가 상 서문
1. 황제헌원
2. 치우천황의 탁록 대전쟁
3. 선인 유위자
4. 고조선 마한의 역사
4-1) 삼랑성과 제천단을 쌓다
4-2) 3세 가륵단군의 중도 일심 정신에 대한 성훈
4-3) 살수에서 배를 건조함
4-4) 11세 단군 때 환도桓道 문명이 번성함
마한세가 하
1. 색불루 단군 백악산 아사달 천도
2. 삼한에서 삼조선으로
3. 협야후가 왜인의 반란을 평정함
4. 고조선의 몰락 - 우화충의 대역모와 기후의 반란
번한세가 상
1. 요·순은 단군조선의 제후
2. 도산 회의
3. 치우천황의 후손 치두남
4. 오행치수의 묘법 전수
5. 번한 왕 소전의 걸 정벌
번한세가 하
1. 색불루단군의 국가 제도 개편
* 고조선의 8조 금법
* 소련과 대련 형제를 군자로 섬긴 번한
2. 왕문의 이두법
3. 노자는 풍이족 혈통
4. 70세 번조선 왕이 된 수유 사람 기후
5. 해모수의 고조선 계승
* 三韓管境本紀 馬韓世家 下(마한세가 하)
삼한에서 삼조선 시대로 전환
檀君索弗婁가 承祖父功하사 手握重兵하시니
辰韓이 自潰하고 二韓도 亦未一勝而敗滅하니라
前帝가 使人傳玉册國寶하사 以讓하신대
新帝가 相都於白岳山이어시늘 諸褥薩이 執不可라
黎元興·蓋天齡等이 奉詔諭之하니 於是에 諸褥薩이 畢服하니라.
색불루단군께서 조부(우현왕 고등)의 공덕을 계승하여 병권을 장악하니,
진한이 스스로 무너지고 마한·번한 역시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패멸하였다.
이에 전제前帝(21세 소태단군)께서 사람을 보내어 옥책玉冊과 국보國寶를 전하고 선양하셨다.
새로 등극한 임금(색불루)께서 도읍터를 백악산으로 정하시자 모든 욕살이 불가하다고 하였다.
여원흥黎元興과 갑천령蓋天齡 등이 조칙을 받들어 설득하니 마침내 모든 욕살이 복종했다.
삼한에서 삼조선 시대로 전환
丙申元年正月에
遂卽位于鹿山하시니 是爲白岳山阿斯達也라.
三月에 下詔曰
邇者에 阿斯達이 使人傳玉册國寶하야 以讓하고
前帝가 今雖襲號以尊이시나
而其海內山川이 旣歸名帳하니
祭天之禮는 當在國典하야 不可濫也니
必須徵古實하야 以達誠敬者라
今當祭迎하야 前徃擇齊하야 審掃神域하고 潔備牲幣하야 用答三神이어다.
於是에 帝擇齊七日하시고 授香祝于黎元興하사
至十六日하야 早朝에 敬行祀事于三韓大白頭山天壇하시고
帝는 親祭于白岳山阿斯達하시니라.
1. 색불루 단군 백악산 아사달 천도
재위 원년 병신년(단기 1049, BCE 1285) 정월에,
색불루단군께서 마침내 녹산鹿山에서 즉위하시니 이곳이 백악산 아사달이다.
3월에 조칙을 내려 이렇게 말씀하셨다.
“근자에 아사달(수도)에서 사람을 보내 옥책과 국보를 짐에게 전하여 제위를 선양하였느니라.
전제前帝(21세 소태단군)께서 아직 존호를 사용하고 계시지만
해내海內의 산천과 백성의 명부[名帳]가 이미 짐에게 돌아왔으니,
하늘에 제사 지내는 예법은 나라의 전례典禮에 합당하게 하여 너무 지나치게 하지 말지어다.
반드시 옛 전통을 잘 헤아려서 정성과 공경을 지극히 하라.
이제 천제일(대영절大迎節, 3월 16일)을 맞이하여 먼저 가서 몸과 마음을 재계하며,
천제 지낼 장소[神域]를 살펴 잘 청소하고, 희생과 폐백을 깨끗하게 준비하여 삼신께 보답토록 하라.”
이때에 임금(색불루 단군)께서 7일을 택해 재계하시고, 향과 축문을 여원흥에게 내려 주시며
16일 이른 아침에 삼한의 대백두산 천단天壇에서 제사를 봉행하게 하고,
임금께서는 몸소 백악산 아사달에서 제사를 지내셨다.
삼한에서 삼조선 시대로 전환
其白頭山誓告之文에 曰
「朕小子檀君索弗婁는 拜手稽首하나이다.
自天帝子之修我以及民은 必自祭天以敬이니
皇上이 受三神明命하사 普恩大德이
旣與三韓五萬里之土境으로 共享弘益人間인 故로
遣馬韓黎元興하야 致祭于三神一軆上帝之壇하나이다.
神其昭昭하사 軆物無遺하실새 潔齊誠供하오니
降歆默佑하사 必能賁飾新帝之建極하시고
世保三韓千萬年無彊之祚業하시며
年穀豊熟하고 國富民殷하야 庶昭我聖帝空我存物之至念하소서.」
그 백두산 「서고문誓告文」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소자 단군 색불루는 두 손 모아 머리를 조아려 절하나이다.
천자天子의 수신修身이 백성에게 미침은 반드시 공경스럽게 하늘에 제사 지냄에서 비롯하나,
황상皇上(시조 단군)께서 삼신의 밝으신 천명을 받아 보은대덕으로
이미 삼한의 5만 리 강토와 더불어 다 함께 ‘홍익인간’의 큰 뜻을 누려 왔습니다.
그리하여 마한 여원흥을 보내 삼신일체 상제님의 제단에 제사를 올립니다.
상제님의 성신은 밝고 밝으시어 만유에 그 은혜를 베푸심이 빠뜨림이 없으십니다.
이에 심신을 깨끗이 재계하고 정성스럽게 제물을 바치오니
강림하여 흠향하시고 말없이 도우시어
반드시 새로 보위에 오른 임금의 건극建極을 보살펴 주옵소서!
세세토록 삼한의 왕업을 천만 년 무궁토록 보존케 하옵시고,
매년 풍년이 들어 나라는 부강해지고 백성은 번영하게 하여
우리 성제聖帝(시조 단군)께서 품으셨던,
나를 비우고 만물을 살리는[空我存物] 지극한 생각을 밝혀 주옵소서.
삼한에서 삼조선 시대로 전환
五月에 改制三韓하사 爲三朝鮮하시니 朝鮮은 謂管境也라
眞朝鮮은 天王이 自爲하시니 而地則仍舊辰韓也며
政由天王하야 三韓이 皆一統就令也라.
命黎元興하사 爲馬韓하사 治莫朝鮮하시고
徐于餘로 爲番韓하사 治番朝鮮하시니
總之하야 名曰檀君管境이니 是則辰國이오
史稱檀君朝鮮이 是也라.
2. 삼한에서 삼조선으로
5월에 제도를 고쳐 삼한을 삼조선이라 하셨는데, 조선은 관경管境(영토 관할)을 말한다.
진조선은 천왕(22세 단군)께서 친히 다스리고, 통치 영역은 옛날 진한의 땅 그대로이다.
정치는 천왕에게서 나오니 삼한이 모두 하나로 통일되어 명령을 받았다.
여원흥을 마한 왕(20세)으로 삼아 막조선莫朝鮮을 다스리게 하고,
서우여를 번한 왕으로 삼아 번조선番朝鮮을 다스리게 하셨다.
이를 총칭하여 단군 관경檀君管境이라 하니 이것이 곧 진국辰國이다.
역사에서 일컫는 단군조선은 바로 이것을 말한다.
삼한에서 삼조선 시대로 전환
元興이 旣受大命하야 鎭守大同江하니 亦稱王儉城이라.
天王이 亦以每年仲春에 必巡駐馬韓하사 勤民以政하시니
於是에 藉供厚斂之弊가 遂絶하니라.
先是에 有詔曰
惟朕一人之養으로 煩民以斂이면
是乃無政也니 無政이면 而君이 何用哉아 하시고 嚴命罷之하시니라.
戊子에 馬韓이 承命入京師하야 諫以寧古塔遷都로 爲不可라 한대 從之하시니라
元興이 薨하니 己丑에 子阿實이 立하니라
阿實이 薨하니 弟阿闍가 立하니라
원흥이 임금의 명을 받고 대동강을 굳게 지키니, 이곳을 왕검성이라고도 불렀다.
천왕께서 매년 중춘仲春에 반드시 마한을 순행하여 머물며 백성을 위해 부지런히 정사에 힘쓰셨다.
이에 지나치게 많이 올리고, 많이 거둬들이는 폐단이 마침내 없어지게 되었다.
이에 앞서 조칙을 내려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직 짐 한 사람을 봉양하기 위해 거두는 일로 백성을 번거롭게 한다면,
이는 바른 정사가 아니니라. 바른 정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임금이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그러고는 엄명을 내려 이를 그만두게 하셨다.
무자(단기 1101, BCE 1233)년에, 마한 왕이 명을 받들어
천자의 수도[京師]에 들어가 영고탑으로 천도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간하니 이를 따르셨다.
원흥이 세상을 떠나고 기축(단기 1102, BCE 1232)년에 아들 아실阿實(21세 왕)이 즉위하였다.
아실이 세상을 뜨자 아우 아도阿闍(22세 왕)가 즉위하였다.
삼한에서 삼조선 시대로 전환
己卯에 殷이 滅하니
後三年辛巳에 子胥餘가 避居太行山西北地이어늘
莫朝鮮이 聞之하고 巡審諸州郡하야 閱兵而還하니라
阿闍가 薨하니 庚戌에 子阿火只가 立하니라
阿火只가 薨하니 丙戌에 弟阿斯智가 立하니라
阿斯智가 薨하니 檀君摩休丁亥에 兄之子阿里遜이 立하니라
阿里遜이 薨하니 子所伊가 立하니라
所伊가 薨하니 丁亥에 子斯虞가 立하니라
기묘(단기 1212, BCE 1122)년에 은나라가 멸망하였다.
3년이 지난 신사(단기 1214, BCE 1120)년에,
자서여子胥餘(기자)가 태항산太行山 서북 땅에 피하여 사는데,
막조선莫朝鮮 왕이 전해 듣고 모든 주군州郡을 순행하여 살피고 군대를 사열하고 돌아왔다.
아도가 세상을 뜨자 경술(단기 1243, BCE 1091)년에 아들 아화지阿火只(23세 왕)가 즉위하였다.
아화지가 세상을 뜨고 병술(단기 1279, BCE 1055)년에 아우 아사지阿斯智(24세 왕)가 즉위하였다.
아사지가 세상을 뜨니 마휴단군(29세) 정해(단기 1400, BCE 934)년에
형의 아들 아리손阿里遜(25세 왕)이 즉위하였다.
아리손이 세상을 뜨자 아들 소이所伊(26세 왕)가 즉위하였다.
소이가 세상을 뜨고 정해(단기 1580, BCE 754)년에 아들 사우斯虞(27세 왕)가 왕위에 올랐다.
삼한에서 삼조선 시대로 전환
戊子에 周主宜臼가 遣使賀正하니라
斯虞가 薨하니 甲辰에 子弓忽이 立하니라
甲寅에 命陜野侯하사 率戰船五百艘하야 徃討海島하야 定倭人之叛하시니라
弓忽이 薨하니 子東䄫가 立하니라
東䄫가 薨하니 檀君多勿癸酉에 子多都가 立하니라
多都가 薨하니 壬辰에 子斯羅가 立하니라
斯羅가 薨하니 子迦葉羅가 立하니라
迦葉羅가 薨하니 甲寅에 子加利가 立하니라
乙卯에 隆安獵戶數萬이 叛하야 官兵이 每戰不利라
賊이 遂迫都城甚急일새 加利가 亦出戰이라가 中流矢而薨하니라
3. 협야후가 왜인의 반란을 평정함
무자(단기 1581, BCE 753)년에,
주周나라 임금 의구宜臼가 사신을 보내 새해 축하 인사를 올렸다.
사우가 세상을 뜨자 갑진(단기 1657, BCE 677)년에 아들 궁홀弓忽(28세 왕)이 즉위하였다.
갑인(단기 1667, BCE 667)년에
협야후陜野侯에게 명하여 전선 500척을 거느리고 가서 해도海島를 쳐서
왜인의 반란을 평정하게 하셨다.5)
궁홀이 세상을 뜨고, 아들 동기東䄫(29세 왕)가 즉위하였다. 동기가 세상을 뜨자
다물단군(38세) 계유(단기 1746, BCE 588)년에 아들 다도多都(30세 왕)가 즉위하였다.
다도가 세상을 뜨니 임진(단기 1825, BCE 509)년에 아들 사라斯羅(31세 왕)가 즉위하였다.
사라가 세상을 뜨고 아들 가섭라迦葉羅(32세 왕)가 즉위하였다.
가섭라가 세상을 뜨자 갑인(단기 1907, BCE 427)년에 아들 가리加利(33세 왕)가 즉위하였다.
을묘(단기 1908, BCE 426)년에 융안隆安 사냥꾼 수만 명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관병이 이들과 싸울 때마다 이기지 못하였다.
드디어 반란군이 도성을 공격하여 상황이 매우 위급해지자,
가리가 출전하였다가 날아오는 화살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
삼한에서 삼조선 시대로 전환
丙辰에 上將丘勿이 遂斬獵戶頭目宇和冲하고 移都藏唐京할새
先以加利之孫典奈로 入承莫朝鮮하니 自是로 國政이 益衰하니라
典奈가 薨하니 子進乙禮가 立하니라
進乙禮가 薨하니 乙卯에 子孟男이 立하니라
戊戌에 須臾人箕詡가 兵入番韓하야 以據하고 自稱番朝鮮王이러니
燕이 遣使하야 與我로 共伐之라 한대 莫朝鮮이 不從하니라
癸亥에 檀君高烈加가 遂棄位하시고 入阿斯達이어시늘
眞朝鮮이 與五加로 從政이러니 終未復而終焉하니라.
4. 고조선의 몰락 - 우화충의 대역모와 기후의 반란
병진(단기 1909, BCE 425)년에 상장上將 구물丘勿(후에 44세 단군으로 즉위)이
마침내 사냥꾼 두목 우화충宇和冲을 죽이고 도읍을 장당경으로 옮겼다.
먼저 가리의 손자 전내典奈로 하여금 막조선을 계승(막조선 34세 왕)하게 하였는데,
이때부터 국정이 더욱 쇠퇴하였다.
전내가 세상을 떠나고, 아들 진을례進乙禮(35세 왕)가 즉위하였다.
진을례가 세상을 뜨자, 을묘(BCE 366)년에 아들 맹남孟男(36세 왕)이 즉위하였다.
무술(단기 2011, BCE 323)년에
수유須臾 사람 기후箕詡가 군사를 이끌고 번한에 들어가 웅거하고 스스로 번조선 왕이라 하였다.
연燕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아군과 함께 이를 정벌하자고 하였으나 막조선이 응하지 않았다.
계해(단기 2096, BCE 238)년에 고열가단군(47세)께서 마침내 제위를 버리고 아사달에 은둔하셨다.
진조선은 오가五加가 공동으로 집행하는
공화정共和政 체제(단기 2096, BEC 238~단기 2102, BEC 232)를 (6년 동안) 유지하다가
끝내 국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종말을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