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 도 지(符 都 誌)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제8장∼제14장)
제8장(第八章) 금척(金尺) 數理의 根本은 곧 天符의 法이라
제9장(第九章) 금척(金尺)의 형상은 삼태성(三台星)
제10장(第十章) 칠보산(七寶山) 금척(金尺)
제11장(第十一章) 당 소정방이 금척을 탐내다
제12장(第十二章) 금척이 당의 공격으로 부터 신라를 지키다
제13장(第十三章) 세종이 훈민정음 28자를 징심록에서 취본하다
제14장(第十四章) 영해박씨 문중의 전수 노력에 진심으로 감사
후기(後記)_부도(符都) 복건(復建)이 실패하다
□ 제8장(第八章) 金尺 數理의 根本은 곧 천부(天符)의 法이라
제8장
위에 기록한 모든 일은
가히“징심록”의 유래가 추측하여 알 수 있게 한다.
소위 입언(立言)1)이나 구언(求言)2)이란 것은
반드시 금척(金尺)의 수리(數理)에 있으나,
지금 공의 집 종가의 후손이 이미 세상을 달리하였고
집안사람들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 풀어볼 수 없게 된 지가 오래 되었다.
그러므로 지금 아는 사람이 없으니 애석할 따름이다.
내가 일찍이 “금척지(金尺誌)”를 읽으니
그 수사(數辭)가 매우 어려워서 알 수가 없었다.
대저 그 근본(根本)은 곧 천부(天符)의 법(法)이다.
그것을 금(金)으로 만든 것은 변(變)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요,
자로 제작(製作)한 것은 다 같이 오류(誤謬)가 없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변(變)하지 않고 오류(誤謬)가 없으면
천지(天地)의 이치(理致)가 다하는 것이다.
“금척지(金尺誌)” 중의
소위 일월성신(日月星辰)과 금토기수(金土氣水)의 근본(根本)이 한 가지로,
불변(不變)의 도(道)에 있다.
나는 새와 헤엄치는 물고기와 동물과 식물의
낳고 죽고 성(盛)하고 쇠衰(하)는 이치(理致)가
다 오류(誤謬)가 없는 법(法)에 매달려 있는 것이 이것이다.
(계속)
第八章
上記諸事 可以推知澄心錄之由來也
상기제사 가이추지징심록지유래야
其所謂立言求言者必在於金尺之數理
기소위입언구언자필재어금척지수리
而今則公家宗嗣已逝 諸家離散不講久矣 故今無知者惜哉
이금칙공가종사이서 제가이산불강구의 고금무지자석재
余嘗讀金尺誌其數辭甚難不可了解
여상독금척지기수사심난불가요해
大抵其本卽天符之法
대저기본즉천부지법
而製之以金者爲其不變也 作之以尺者爲其無誤也
이제지이금자위기불변야 작지이척자위기무오야
不變而無誤則天地之理盡矣
불변이무오칙천지지리진의
誌中所謂日月星辰金土氣水之本 一存於不變之道
지중소위일월성신금토기수지본 일존어불변지도
飛潛動植生滅盛衰之理 全系於無誤之法者 是也
비잠동식생멸성쇠지리 전계어무오지법자 시야
주석 해설)
1) 입언 : 후세에 모범이 될 만한 의견을 세움.
2) 구언 : 임금의 신하의 조언을 구함.
-----------<<<이하 부산 민박사님 https://cafe.daum.net/myh1117>>>-----------
부도지별책, 징심록추기 제8장 13.10.31
第八章
上記諸事 可以推知澄心錄之由來也 其所謂立言求言者必在於金尺之數理 而今則公家宗嗣已逝
諸家離散不講久矣 故今無知者惜哉 余嘗讀金尺誌其數辭甚難不可了解 大抵其本卽天符之法
而製之以金者爲其不變也 作之以尺者爲其無誤也 不變而無誤則天地之理盡矣
誌中所謂日月星辰金土氣水之本 一存於不變之道 飛潛動植生滅盛衰之理 全系於無誤之法者 是也
제8장
위에 적은 여러 일들은 <징심록>의 유래를 가히 미루어 알 수 있게 해준다.
그 소위 입언이나 구언이라 하는 것들은 반드시 금척의 수리에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은 곧 공의 집안 종사가 이미 선거하였고,
공의 여러 집안은 이산되어 이를 풀어볼 수 없게 된 지 오래되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아는 사람이 없으니, 애석하고 애석할 따름이다.
나 또한 일찍이 <금척지>를 읽어보았으나, 그 수리와 말이 심히 어려워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대개 그 근본은 천부의 법이며, 이를 금으로 만든 것은 그 불변의 이치를 위함일 뿐이다.
또 이를 자로써 제작한 것은 그 잘못과 오류를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변하지 않고 오류가 없다면, 천지의 이치를 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책 가운데서 말하는 바, 일월성신 금토기수의 근본이 오직 한[하나, 즉 一]로,
변하지 않는 하나의 도(道)에 있다 하였다.
날고 헤엄치는 것 그리고 동물과 식물, 낳고 죽으며 성하고 쇠하는 이치가
모두 틀리지 않는 법(法)에 온전히 매여 있다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그것이다.
징심록, 금척과 천부의 법! myh1117 13.10.31
이제 제7장이 끝나고 8장으로 넘어갑니다.
그런데 여기 추기에서 7장이 14절 까지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 부분은 전체적으로 박씨 문중과 김시습선생 본인의 인간적인 관계를 밝힘과 동시에
당대의 사건들을 동시에 기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역사적인 대목을 기록함으로써, 징심록에 대한 Text Critic, 즉 서지학적 논증을 제공하는 것이지요.
이를 보면, 청한자의 학문적 태도와 그 수준 및 깊이를 이해하게 합니다.
곧 당대의 수서 목록에 편입된 여러 기록들을 열람하고,
또 영해 박씨세가와 교유하면서 얻어보게 된 지식들이 토대가 되어, 당시 유학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려고 했던 조선초기의 지식사회와는 상당히 다른 학문적 성취를 얻으시게 된 것이지요.
사실 매월당집의 잡저나 기타의 시문 그리고 금오신화 등,
김시습 선생은 다양한 방면의 지식학적 활동을 하고 계심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대 성리학에 대한 태극음양이기론에 있어서도 여타의 다른 학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견해를 보이는데,
이 모든 사유의 핵심에 한철학 내지 한사상적인 사유체계가 들어있음을 보여주고 계시는 것이지요...
결국 이와 같은 선생의 철학적 사유와 자유분방한 문화예술 창착활동의 중심에는
바로 오늘 언급하고 있는 천부의 법과 금척의 이치가 들어있었던 것은 아닐까 합니다.
대개 학자가 추기를 쓴다함은 그로부터 영향 받은 그 감흥을
당신의 지적 능력을 통해 추론하고 기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종의 독후감 같은 것일 수 있겠지요..
더욱이 오늘은 당신이 일찍이 금척지를 보았다는 기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또한 만만한 부분은 아닙니다.
금척지, 이에 대해 청한자는 자신도 너무 어려워서 다 깨우치지를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료가 오늘에 남아 있다면 그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불행히도 그 원문은 고사하고 단편적인 일마저도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여기에 선생은 이것이 위서니 진서니 하는 쓰잘데기없는 사설을 늘어놓지 않습니다.
그 책을 보고 공부한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학문은 성취된 것이니까요!
그런데 오늘 한국의 학자들, 뭔 말만하면 위서니 진서니 나불대고 있는 것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학문적 성취를 이룬 것인지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나온 글의 마지막, "변하지 않는 하나의 道요, 오직 틀리지 않는 법"이었다 함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 제9장(第九章) 금척(金尺)의 형상은 삼태성(三台星)
제9장
그러므로 금척(金尺)의 유래(由來)가 그 근원(根源)이 매우 멀고 그 이치(理致)가 매우 깊어,
그 형상(形象)은 삼태성(三台星)1)이 늘어 선 것 같으니
머리에는 불 구슬을 물고 네 마디로 된 다섯 치(五寸)2)이다.
그 허실(虛實)의 수(數)가 9가 되어 10을 이루니, 이는 천부(天符)의 수(數)다.
그러므로 능(能)히 천지조화(天地造化)의 근본(根本)을 재고,
능(能)히 이세소장(理勢消長)3)의 근본(根本)을 알고,
인간만세(人間萬事)에 이르기까지 재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숨구멍, 마음, 목숨을 재면 기사회생(起死回生)한다고 하니,
진실(眞實)로 신비(神秘)한 물건(物件)이라고 할 것이다.
第九章
是故 金尺之由來 其源甚遠其理深邃
시고 금척지유래 기원심원기리심수
而其形象則如三台之例
이기형상칙여삼태지례
頭含火珠 四節而五寸
두함화주 사절이오촌
其虛實之數九而成十 此則天符之數也
기허실지수구이성십 차칙천부지수야
以故 能度天地造化之根 能知理勢消長之本
이고 능도천지조화지근 능지리세소장지본
至於人間萬事無不測察
지어인간만사무불측찰
而規矩於氣門 心窺 命根 則能起死回生云
이규구어기문 심규 명근 칙능기사회생운
眞可謂神秘之物也
진가위신비지물야
주석 해설)
1) 삼태성
2) 다섯치 : 한치는 약 3.3센치이므로 16.5센치
3) 이세소장(理勢消長) : 세력(勢力)이 소멸(消滅)되는 것과 성장(成長)하는 것의 이치(理致)
-----------<<<이하 부산 민박사님 https://cafe.daum.net/myh1117>>>-----------
부도지별책, 징심록추기 제9장 myh1117 13.11.02
第九章
是故 金尺之由來 其源甚遠其理深邃 而其形象則如三台之例 頭含火珠 四節而五寸 其虛實之數九而成十
此則天符之數也 以故 能度天地造化之根 能知理勢消長之本 至於人間萬事無不測察 而規矩於氣門
心窺 命根 則能起死回生云 眞可謂神秘之物也
제9장
이와 같은 까닭에 금척의 유래를 보면, 그 근원이 매우 멀고 그 이치가 깊고 심원하다.
그 형상은 곧 삼태성이 늘어선 것과 같으니, 머리에는 불구슬을 머금었으며,
네 마디와 다섯치로 이루어져 있다.
그 허실의 수는 아홉(9)이나 열(10)을 이루었으니, 이는 곧 천부의 수이다.
이로부터 능히 천지조화의 근원을 재고 또 능히 이치와 세력이 쇠하고 성하는 근본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인간 만사에 이르러서는 측량하여 통찰하지 못하는 것이 없고,
기문 심규 명근에 대해서는 그 이치와 규범을 재고 맞추어 능히 기사회생 한다 하였다.
이는 진실로 신비한 물건이라 할 것이다.
오늘은 금척에 대한 기록이 나오네요.. myh1117 13.11.02
금척! 아직까지 이의 실체에 대한 이야기는 다만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었던 것인데요..
청한자는 이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의 내용과 형식에 대해서는 정확히 이해하기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낍니다.
설명을 통해 그려보면 자와 같이 어떤 물건을 재는 도구같기도 하고,
그 효능을 말한 부분을 가지고 유추해보면, 마치 마법사의 지팡이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요...
아무튼 청한자 선생께서는 이를 눈 앞에 두고 보는 것처럼 설명하고 있습니다.
좀 더 호기심이 많으신 분들이라면,
여기에 나온 설명을 토대로 이를 한 번 만들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네요..
다만 여기서 몇 가지 수리와 해석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일종의 상수학적인 동양 형이상학의 한 축이 설명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이러한 천지의 법칙에 맞추어 살게 되면, 그 올바름을 얻을 수 있다고나 해야 할까요?
오늘은 그 분량도 짧아서 읽기에는 크게 무리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논평을 해보려는 저에게는 오히려 더 힘든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 제10장(第十章) 칠보산(七寶山) 금척(金尺)
제 10장
역사 기록에 의하면, 혁거세왕이 미천할 때에
신인(神人)이 금척을 주면서 이 금척을 가지고 금사발(금구 金甌)1)을 바로잡으라고 말했다 하고,
일설에는 금척과 옥피리가 칠보산에서 나와 혁거세왕에게 전해졌다고도 한다.
칠보산2)은 영해의 명산이요,
백두산 아래 명천부(明天府)에 또 칠보산이 있으니,
어느 산인지 알 수가 없다.
만약 후자라면 이는 반드시 옛날의 일이리라.
신라 창시의 근본이 이미 부도에 있었으니,
금척의 법이 또한 단군의 세상에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혁거세왕이 선도산(仙桃山) 단묘(壇廟)의 성모(聖母) 파사소(婆娑蘇)에게서 출생하여
13세의 어린 나이로 능히 여러 사람의 추대를 받은 것은,
그 혈통의 계열이 반드시 유서가 깊었기 때문이며,
금척이 오래된 전래물 임을 또한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이 세상에 전해지지 않고 제상공의 집에만 홀로 전한 것은,
이것이 반드시 파사왕가에 전하였기 때문이요,
또 공의 문중의 후예가 엄중하게 비밀에 부쳐 그것을 감춰 두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본문 “징심록”을 세상에 보이지 않았음에랴.
第十章
據史錄則神人 授金尺赫居世王微時日持此金尺
거사록칙신인 수금척혁거세왕미시일지차금척
以正金甌云 一設則金尺玉笛 出於七寶山 傳於赫居世王云
이정금구운 일설칙금척옥적 출어칠보산 전어혁거세왕운
七寶山 寧海之名山
칠보산 영해지명산
白頭山下明天府 又有七寶山 未知何山
백두산하명천부 우유칠보산 미지하산
若後者則此必昔世之事
약후자칙차필석세지사
新羅創始之本 已在於符都則金尺之法 亦在於檀世者可知也
신라창시지본 이재어부도칙금척지법 역재어단세자가지야
赫居世王 出於仙桃山壇廟之聖母婆娑蘇
혁거세왕 출어선도산단묘지성모파사소
以十三之年少 能爲衆人之所推則基
이십삼지년소 능위중인지소추칙기
血系 必有由緖而金尺之爲傳來之古物 亦可以推知也
혈계 필유유서이금척지위전래지고물 역가이추지야
然而此法 不傳於世而 獨傳於提上公者 此必婆娑王家傳故也
연이차법 부전어세이 독전어제상공자 차필파사왕가전고야
又公家之後裔 嚴秘而諱之故也
우공가지후예 엄비이휘지고야
況其本文澄心錄 不可開示於今世者乎
황기본문징심록 불가개시어금세자호
주석 해설)
1) 금구 : 금구무결(金甌無缺)이란 말이 있다. 국세가 금단지같이 견고하여 다른나라의 모욕이나 침략을 받지 않음
을 뜻한다. 금구는 나라를 비유한 것이다.
2) 칠보산 : 칠색보옥(七色寶玉)의 산의 약칭인 듯하다. 방장방호(方丈方壺)의 굴에서 칠보의 옥을 캐서 천부를 새
겨 그것을 방장해인(方丈海印)이라 했다고한다.(부도지) 함경남도 남부 동해안에 위치한 명천에 있는 산.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에 있는 산. 산동성 청도에는 칠보산촌이 있다.
* 발해(渤海) 삼신산(三神山) : 渤海中有蓬萊方丈瀛洲三神山(발해중유봉래방장영주삼신산) 바로 배달국 14세 치우
한웅의 청구국이 있었던 곳이며 공자가 가서 살고싶어 했던 구이 즉 동이의 땅 '군자불사지국' 있던 땅입니다.
-----------<<<이하 부산 민박사님 https://cafe.daum.net/myh1117>>>-----------
부도지별책, 징심록추기 제10장 myh1117 13.11.05
第十章
據史錄則 神人授金尺於赫居世王微時曰 持此金尺以正金甌云 一說則金尺玉笛 出於七寶山
傳於赫居世王云 七寶山寧海之名山 白頭山下明天府 又有七寶山 未知何山 若後者則此必昔世之事
新羅創始之本 已在於符都則金尺之法 亦在於檀世者可知也 赫居世王出於仙桃山壇廟之聖母婆娑蘇
以十三之年少 能爲衆人之所推則其血系必有由緖 而金尺之爲傳來之古物 亦可以推知也 然而此法
不傳於世而 獨傳於堤上公家者 此必婆娑王家傳故也 又公家之後裔 嚴秘而諱之故也 況其本文澄心錄
不可開示於今世者乎
제10장
사록에 의거한 즉, 신인께서 혁거세왕이 미천하던 시절에 금척을 주면서 이르기를,
“이 금척을 가지고 금구, 즉 나라를 바로 잡으라”고 하였다 한다.
또 일설에는 금척과 옥적이 칠보산에서 나와 혁거세왕에게 전해졌다고 한다.
칠보산은 영해의 명산이요, 백두산 아래 명천부에도 또 칠보산이 있으니, 어느 산인지는 알 수가 없다.
만약 후자가 맞다면, 이는 반드시 저 옛날의 일일 것이다.
신라를 창시한 근본이 이미 부도에 있었으니,
곧 금척의 법 역시 단군의 세상에 있었음을 가히 알 수 있는 일이다.
혁거세왕이 선도산 단묘의 성모 파사소 로부터 나와, 열 세 살의 어린 나이로
능히 뭇사람들의 추대를 받은 것은 곧 그 혈통과 계열이 반드시 유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금척이 전래되어 내려 온 오래된 물건임을 이로부터 또한 미루어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 법이 세상에 전해지지 않고 오직 제상공의 집에만 독전한 것은,
이것이 반드시 파사왕 집안에서만 가전된 까닭일 것이다.
또 공의 집안의 후예들마저 이를 엄중하게 비밀에 부치고 이를 숨겼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 본문인 <징심록>마저도 세상에 열어 보이는 것을 허가하지 않았음에야!
금척,옥적,칠보산, 선도산 성모와 파사왕, 그리고 징심록 myh1117 13.11.05
오늘은 전설처럼 떠도는 많은 이야기들이 청한자 선생의 글 속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네요..
여기에 기록된 것을 토대로 억측해 봅니다.
금척이란 그 자체로 세상의 법도를 재고 시행하였던 기준과 같은 법이었던 것 같고...
그 형상은 물론 그 어떤 물상이나 사상을 재고 평가하는 도구였으리라 생각됩니다.
다만 이를 제작하는 어떤 원칙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도 하구요...
다음으로 옥적이란 그 유명한 만파식적을 말하는 것 같은데,
이는 삼국유사나 기타 여러 곳(?) 아니 구전상으로 전하는 바에 따르면, 신라를 구한 신물로 알려져 있지요.
동해 용왕의 가호 역시 이와 관련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종의 수호신적인 신물이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칠보산이 나오는데, 청한자선생께서도 이 곳이 어디를 지칭하는지 정확하게 비정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보산 태소암에서 <한단고기>와 그 자료들이 소장되어 있었다고 하니,
이것이 또 칠보산과 어떤 관련을 가지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칠보산이란 이름 그 자체로 추정하자면, 여기에는 단순히 나라의 보물로서
국보가 아닌 천지의 보물을 감추어 놓은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부도지 자체가 나라로서의 대한민국을 위한 것만이 아닌,
사해만방의 모든 인류를 위한 기록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선도나 도교사상에서 전설적인 인물인 선도산 성모님이 등장합니다.
여기에서는 박혁거세가 그 아들인 것처럼 기록하고 있네요...
이 모두가 전설적인 시대로 알려져 있어서, 학계에서는 대개 이 전부를 신화나 전설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파사왕의 이름이 보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역사에 기록된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이 분이 바로 박씨 문중의 계보와 만나고 있음을 알게 합니다. 바로 이러한 인연으로 인해서
징심록의 비록과 기이한 일들이 전부 영해박씨세가와 만나게 됨을 밝혀놓은 것이지요...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이치와 자료들이 지금 현재에도 남아 있어야 그 실제적인 가치를 논할 수 있을텐데,
이 모두가 한민족 역사의 흥망성쇠 가운데 무너지고 사라져 남아 있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이런 가운데 신라 입국의 근본이 바로 부도요,
그 법과 진리가 전해지지 못한 것은 엄중히 비밀에 부친 때문이라고 합니다.
비밀이라! 과연 이 세상에 밝혀진 것은 얼마이고, 또 감추어진 것은 얼마일까요?
어쨌든 전해지지 않는 역사의 비밀을 찾아서 오늘도 우리는 탐험가가 되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 제11장(第十一章) 당 소정방이 금척을 탐내다
제 11장
금척의 소재는 “금척지”에서 밝히지 않았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혁거세왕이 땅 속에 묻고 30개의 언덕을 만들어 그것을 감춰버렸다고 하였다.
신라 무열왕 대에 당나라의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평정한 공으로
당나라 황제의 명령을 빙자하여 이 물건을 찾아내기 위하여 금척원(金尺院)지역을 파내므로,
때에 최씨라는 사람이 몰래 감추어서 바다를 건너가 땅 속에 묻었다가
몇 년 뒤에 다시 가지고 돌아와서 그 스승에게 반환하므로,
그 스승이 금강산 바위굴 속에 깊이 감추어버렸다고 하였다.
일설에 최씨라는 사람은 귀단(鬼團)1)의 두목으로,
도둑과 마귀를 높은 산과 바다 가운데 있는 섬으로 몰아내고,
(금척을) 금강산으로 몰래 가지고 들어가서 깊이 감추어버렸다고도 하였으니,
이 또한 기설(奇說)인 것이다.
옥피리는 이미 땅 속에서 나왔으니 금척도 역시 다시 나타날 때가 있을 것인가.
第十一章
金尺之所在 誌中無擧
금척지소재 지중무거
據於史錄則赫居世王 埋於地中 作三十餘八丘而秘之云
거어사록칙혁거세왕 매어지중 작삼십여팔구이비지운
新羅武烈王時 唐將蘇定方 以平濟之功
신라무열왕시 당장소정방 이평제지공
憑唐帝之命 索求是物 掘起金尺院地域
빙당제지명 색구시물 굴기금척원지역
時 有崔氏者 泌持渡海 埋於地中
시 유최씨자 비지도해 매어지중
數年後 持歸返於其師
수년후 지귀반어기사
其師仍以深藏於金剛岩堀中云
기사잉이심장어금강암굴중운
一說則崔氏者 鬼圍之頭目而遂賊魔於高山海島
일설칙최씨자 귀위지두목이수적마어고산해도
泌持入於金剛而深藏云 此亦奇說也
비지입어금강이심장운 차역기설야
玉笛則已出於地中 金尺亦有再現之時耶
옥적칙이출어지중 금척역유재현지시야
주석 해설)
1) 귀단 : 삼국유사 제 1권 ‘도화녀(桃花女)와 비형랑(鼻荊郞)’ 참조
-----------<<<이하 부산 민박사님 https://cafe.daum.net/myh1117>>>-----------
부도지별책, 징심록추기. 제11장. myh1117 13.11.13
第十一章
金尺之所在誌中無據 據於史錄則 赫居世王埋於地中 作三十餘八丘而秘之云 新羅武烈王時 唐將蘇定方
以平濟之功 憑唐帝之命索求是物 倔起金尺院地域 時有崔氏者密持渡海埋於地中 數年後持歸返於其師
其師仍以深藏於金剛岩掘中云 一說則崔氏者 鬼團之頭目而逐賊魔於高山海島 密持入於金剛而深藏云
此亦奇說也 玉笛則已出於地中 金尺亦有再現之時耶
제11장
금척의 소재는 <금척지>에도 밝히지 않았다. 사록에 의거하면,
곧 혁거세왕이 땅 속에 이를 묻고 서른여덟 개의 언덕을 만들어, 감추어 버렸다고 한다.
신라 무열왕 때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평정한 공을 내세우고,
당 황제의 명령을 빙자하여 이 물건을 찾고자 하여, 금척원의 지역을 마구 파내었다.
이 때 최씨라는 사람이 있어, 이를 몰래 감추어 바다를 건너가 땅 속에 묻어버렸다.
수년 후 그가 이를 가지고 다시 돌아와 그 스승에게 반환하였는데,
스승은 이를 금강산의 암굴 가운데 깊이 감추어 버렸다고 전한다.
일설에는 곧 최씨라는 사람은 귀단의 두목인데, 적마를 고산과 해도로 쫓아내고,
금척을 은밀히 소지하고 금강산으로 들어가 깊이 감춰 버렸다고도 한다. 이 또한 기이한 이야기이다.
옥적이 이미 땅 속에서 나왔으니, 금척 역시 세상에 다시 나올 때가 과연 있을 것인지…!
옥적은 나왔는데, 금척은... myh1117 13.11.13
오늘은 또 신비의 이야기가 다시금 전개되고 있습니다.
혁거세왕께서 이미 금척을 묻었다 하였고, 무열왕 때 소정방은 이를 찾아 금척원을 뒤졌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이를 최씨란 분이 은밀히 수습하여 이후 다시금 금강산에 묻었다는데,
결국 마지막 자취를 감춘 곳은 금강산이 된다는 이야기지요...
과연 금강산은 이로써도 민족사적인 아니 세계사적인 지역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불현듯 금강산 관광사업이 재개되면 한 번 갔다 와 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또 그 날은 언제일런지...
민족의 통일과 부도의 뜻, 이는 또 어떤 상관관계에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부도복본과 사해통화의 뜻이 하늘의 뜻과 다르지 않다면,
이는 결국 한민족의 책임 소재가 되겠지요...
올바른 사람의 길과 세상의 바른 정의가 이 땅에서 실현되는 그 날을 기다려 봅니다.
하지만 오늘의 상황을 보면, 어느 한 가지도 자신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도대체 이 땅과 이 민족과 이 나라가 어쩌다 이렇게 자본주의의 타나토스, 죽음의 원리가 지배해 버리게 되었는지
참으로 역사의 신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착한 사람은 멍청한 놈이 되고, 약삭빠르고 잔인한 놈들은 잘난 사람이 되어
인간의 도리가 무엇인지, 세상 사는 법칙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말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으니까요...
금척이 나와 그 삶의 양과 질을 재고, 옥적이 머-얼리 천음을 날려야 비로소 그 날이 올 것인지...
참으로 알 수 없고 힘든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 제12장(第十二章) 금척이 당의 공격으로 부터 신라를 지키다
제 12장
신라가 백제를 평정한 후에 당나라 황제가 신라를 침범하고자 출병하였으나,
국경의 해역(海域)에 당도할 때마다 싸워보지도 못하고 번번이 스스로 패하었으니,
이는 기후가 괴상하여 군졸들이 병이 들어 군사력이 스스로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당나라 황제가 이 일을 괴상하게 여기고
사신을 보내 신라에 이상한 물건이 있는지 살펴보게 하였다.
사신이 와서 그 일을 시험하니
이상한 기운이 항상 신라 서울의 산천에 떠 있으므로 마침내 군사를 돌렸다고 하니,
이것은 금척에 관계된 설이 아닌가.
기타 신라 때의 허다한 이설이 천부금척에 관계된 것이 많으나
승려의 무리가 자가(自家)에 억지로 끌어다 붙여 설교의 도구로 제공하고
흐리게 하였으니(뒤섞었으니), 그것을 가려낼 여유가 없는 것이 애석할 따름이다.
第十二章
新羅平濟之後 唐帝欲犯新羅
신라평제지후 당제욕범신라
出兵海到境海則不戰而自敗
출병해도경해칙불전이자패
此天候乖常 軍卒病而勢自弱故也
차천후괴상 군졸병이세자약고야
唐帝怪之 遺使審異物之在於新羅
당제괴지 유사심이물지재어신라
使來驗之 有異氣 常浮於羅都山川故
사래험지 유이기 상부어라도산천고
遂返師云 此非金尺所聞之說也
수반사운 차비금척소문지설야
其他羅代之許多異說
기타라대지허다이설
有聞於天符金尺者多而僧輩
유문어천부금척자다이승배
附會於自家 供於說敎之具而淆之 可惜未遑辯之
부회어자가 공어설교지구이효지 가석미황변지
-----------<<<이하 부산 민박사님 https://cafe.daum.net/myh1117>>>-----------
부도지별책, 징심록추기 제12장 myh1117 13.11.16
第十二章
新羅平濟之後 唐帝欲犯新羅 出兵每到境海則不戰而自敗 此天候乖常 軍卒病而勢自弱故也
唐帝怪之遣使審異物之在於新羅 使來驗之 有異氣常浮於羅都山川故 遂返師云 此非金尺所關之說耶
其他羅代之許多異說 有關於天符金尺者多 而僧輩附會於自家 供於說敎之具而淆之 可惜未遑辯之
제12장
신라가 백제를 평정한 이후, 당의 황제는 다시 신라를 침범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출병하여 국경의 해역에 이를 때마다 싸워보지도 못하고 번번이 스스로 패하고 말았다.
이는 하늘의 기후가 괴상하여, 군졸들이 병들어 스스로 그 세력이 약화된 때문이었다.
당제가 이를 괴이하게 여겨 사신을 보내면서, 신라에 기이한 물건이 있는 지를 찾아 확인하게 하였다.
사신이 와서 이를 시험해보니, 기이한 기운이 항상 신라의 수도와 산천의 하늘에 떠 있으므로,
마침내 군사를 돌렸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이는 실로 금척과 관계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이 외에 신라 때의 허다한 다른 이야기들도 있으니, 천부 금척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그러나 승려의 무리들이 자신들의 학설에 부회하여, 이를 설교의 도구로 제공하고
또 뒤섞어 흐리게 하였으니, 이것을 가려내고 변별할 겨를이 없음이 다만 애석할 뿐이다.
역사가 전설이 되고, 또 다시 기이함이 서리니... myh1117 13.11.16
신라가 백제를 평(平)하였다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역사인식에 있어 하나의 관점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운위하는 것은 크게 바람직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늘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와 있습니다. 하나의 사건을 갖고 다양한 관점이 가능하다는 것!
그것이 역사의 즐거움이고 또 재미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
러나 우리 역사는 어째서 늘 소중화의 수준에서 못 벗어 나는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합니다.
드디어 당의 제가 신라를 노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늘 번번이 실패하게 되지요...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한 중국의 역대 왕조들이 늘상 추구했던 것은
천부 부도의 본향인 이 진한의 여러 영역들이라 하겠습니다.
땅 가진 지주가 끝없이 꿈꾸는 영토에 대한 야욕,
그리고 비록 작으나 그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약소민족과 국가들,
이제 부도가 지향했던 사해통화, 부도복본의 뜻은 깡그리 사라진 시기로 접어들게 됩니다.
호시탐탐 주변국을 괴롭히고 침범하며 지배를 통한 이익을 꾀하는
약육강식의 시대, 제국주의와 힘의 논리, 타나토스의 잔인함이 역사의 주인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이제 민족의 역사 또한 끝없는 혼란의 시대로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 내부의 적 또한 끝없이 나타나게 되지요.. 아마도 이 모두는 권력을 향한,
그리고 정의나 올바름이 아니라 현실적인 힘을 추구하는 투쟁과 갈등의 시대가 출발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때때로 개인적으로 생각해보는 것은 인류의 역사 자체가 사실상
그 무엇인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것입니다.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저는 여전히 부도복본, 원시반본의 뜻이 있다고 봅니다. 순환함으로 영원한 것이지요...
언젠가는 이 민족, 우리 한민족이 세계 문화의 시원에서 말하던
아름다움과 선함과 진실함의 세계를 만나지 않을까 꿈꾸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 해야할 일은 너무나도 많겠지요...
신의 뜻과 천지의 외침, 그리고 우주의 운동과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날이 과연 올 것인지....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인간 진화의 뜻을 내표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좀 더 연구하고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 제13장(第十三章)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28자를 징심록에서 취본하다
제 13장
금척의 소재와 척도의 측법을 지금 비록 알 수 없으나,
“금척지”만이라도 남아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만약에 후인이 있어 연구하여 그것을 아는 자가 있게 된다면,
어찌 금척을 복제할 길이 없을 것인가.
만약 복제하지 못하더라도 그 법리를 알면 족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법이 역대 우리나라에 공이 있었다고 할 수 있으며,
특히 본조(조선조) 태조의 회군에는 그 공이 현저하였다.
태조가 꿈에 금척을 얻은 것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그러므로 영묘(英廟, 세종대왕)가 공가의 후예에게 은근히 대한 것은 당연한 바가 있으니,
하물며 훈민정음(訓民正音) 28자의 근본을 “징심록”에서 취했음에야.
第十三章
金尺之所在 尺度之測法 今雖未知 誌在者幸也
금척지소재 척도지측법 금수미지 지재자행야
如有後人 究而通之者則尺豈無復製之道
여유후인 구이통지자칙척기무복제지도
如不得復製 知基法理則足矣
여불득복제 지기법리칙족의
故 是法之於歷代邦家
고 시법지어역대방가
可謂有功而殊於本朝太祖回軍之事則基功 著矣
가위유공이수어본조태조회군지사칙기공 저의
太祖之夢得金尺 豈基偶然者哉
태조지몽득금척 기기우연자재
然則英廟之慇懃於公家之裔
연칙영묘지은근어공가지예
有所當然而況訓民正音二十八字 取本於澄心錄者乎
유소당연이황훈민정음이십팔자 취본어징심록자호
-----------<<<이하 부산 민박사님 https://cafe.daum.net/myh1117>>>-----------
부도지별책, 징심록추기 제13장 myh1117 13.11.18
第十三章
金尺之所在 尺度之測法 今雖未知 誌在者幸也 如有後人 究而通之者則尺豈無復製之道 如不得復製
知其法理則足矣 故 是法之於歷代邦家 可謂有功 而殊於本朝太祖回軍之事則其功 著矣 太祖之夢得金尺
豈其偶然者哉 然則英廟之慇懃於公家之裔 有所當然 而況訓民正音二十八字 取本於澄心錄者乎
제13장
금척의 소재와 척도의 측법을 지금 비록 알 수는 없으나,
<금척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한 일이다.
만약 뒤에 사람이 있어 이를 연구하고 통하는 자가 나타나게 되면,
금척을 다시금 제작할 길이 어찌 없겠는가!
혹 이를 복제하지 못한다 하여도 그 법도와 이치를 아는 것으로도 족할 일이다.
그러므로 이 법이 역대로 우리나라에 공이 있었음을 가히 말할 수 있으며,
특히 본조 이태조의 회군의 일에 있어 그 공은 현저하였던 것이다.
이태조가 꿈에 금척을 얻었던 것이 어찌 우연이기만 하겠는가!
그런 즉 영묘(세종대왕)께서 공의 집안의 후예들에게 은근하였던 것은 그 마땅한 바가 있었던 것이다.
하물며 훈민정음 28자의 근본을 여기 <징심록>에서 취했음에야…!
금척지, 측법과 훈민정음의 유래! myh1117 13.11.18
세종대왕께서도 이 집안에 은근함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훈민정음이 여기서 나왔다고 하네요
일찍이 한단고기 단군세기에는 3세 단군 가륵 재세시에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드시니 이것이 가림다 또는 가림토 문자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금척지에는 이와 관련된 더욱 상세한 고증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추측이 생깁니다.
결국 훈민정음이 유래한 것은 기본적으로 옛 문헌의 우리말 성음 체계를 따른 것이라는 말인데요...
물론 오늘에 전해지고 있는 훈민정음은 <어제: 곧 임금께서 창제 하셨다>는 것과,
<반포문: 곧 나랏 말쌈이 듕귁에 달라...>라고 하는 익숙한 글귀와 만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우리 한글학자 또는 국어학자 누구도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신숙주와 성삼문 등 당대의 학자들과 집현전의 학사들을 중심으로
이 문자가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을 통설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청한자 김시습 선생께서는 이것이 바로 금척지에 그 근원을 두고 있는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할까요!
기실 기록으로 남겨진 것들도 역사의 시간대를 지나다보면 그 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변형되고 왜곡되게 됩니다.
지금 훈민정음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들이 의존하고 있는 것 역시
과거의 어느 한 시대에 기록된 문건을 토대로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만약 이것이 잘못 기록된 것이라면....
하물며 기록으로 전해지는 것 또한 이럴진대, 기록이 남겨져 있지 않은 저 고대의 이야기들이
과연 오늘 얼마나 온전히 전해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아마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한다면, 오히려 신화와 전설
그리고 구전으로 전해져 온 할머니들의 옛날 이야기가 훨씬 더 진실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제14장(第十四章) 영해박씨 문중 전수 노력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 14장
슬프다!
바꿀 수 없는 진리의 법이 안개에 싸여
인간세상 풍파 중에 배태되어 있으면서 숨어버린 듯 징조가 있고,
백성이 태어난 시원의 역사가,
누누이 세대가 잇달아 끊이지 않는 사이에
비밀스럽게 전해져서 쓸쓸하게도 들을 수 없으니,
허구한 세월 속에서 제상공 후예 일가는 진실로 천고 세외(世外)1)의 족(族)이며,
세세로 숨어 흔적을 감춘(晦迹)2) 사람을 많이 낸 것은 참으로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것으로 가히 백결 선생의 도풍가법(道風家法)을 볼 수 있으며,
또한 상고(上古)에 있었던 도가 이어 내려온 세상 일부분의 모습(樣子)을 엿보기에 족하니,
읍루씨3)가 산에 들어 나오지 않으며 혼탁한 세상에 이름을 끊어버린 것이
역시 까닭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청한(淸寒)3) 씀
第十四章
噫 眞理不易之詮
희 진리불역지전
靄靄然胚存於人世風派之中而潛然有徵
애애연배존어인세풍파지중이잠연유징
生民始原之史
생민시원지사
縷縷然密傳於世代連綿之間而寂然無聞
루루연밀전어세대연면지간이적연무문
處於大塊之載 提上公裔之一家
처어대괴지재 제상공예지일가
眞是千古世外之族而世世多出晦跡之人 固非偶然也
진시천고세외지족이세세다출회적지인 고비우연야
於斯
어사
可以見白結先生之道風家法而亦足以窺上古有道之世之一端樣子則婁氏入山不出
가이견백결선생지도풍가법이역족이규상고유도지세지일단양자칙루씨입산불출
絶命於濁世者 亦將有所以然也
절명어탁세자 역장유소이연야
淸寒 記
청한 기
주석 해설)
1) 속외 : 속세의 밖
2) 회적 : 피하거나 도망쳐서 흔적을 감춤
3) 읍루 : 3세 단군을 말한다. 한단고기에는 가륵 단군으로 나온다.
4) 청한 : 김시습의 호. 청한자(淸寒子)라고도 함.
-----------<<<이하 부산 민박사님 https://cafe.daum.net/myh1117>>>-----------
부도지별책, 징심록추기 제14장 myh1117 13.11.19
第十四章
噫 眞理不易之詮靄靄 然胚存於人世風波之中 而潛然有徵 生民始原之史縷縷 然密傳於世代連綿之間
而寂然無聞 處於大塊之載 堤上公裔之一家 眞是千古世外之族 而世世多出晦跡之人 固非偶然也
於斯可以見百結先生之道風家法 而亦足以窺上古有道之世之一端樣子 則浥婁氏入山不出
絶命於濁世者 亦將有所以然也
淸寒 記
제14장
슬프다! 진리와 바꿀 수 없는 법도가 안개 속에 흐릿하다.
그러나 비록 인간세상 풍파의 가운데에서도 이는 배태되어 있으니, 숨어있는 가운데 그 징조가 있다.
생민이 처음 시작한 역사는 길고도 오래다.
하지만 세대를 통하여 은밀히 전하여 끊어지지 아니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고요하고 쓸쓸하여 들을 수가 없다.
길고 긴 세월 가운데 제상공의 후예 및 그 일가는 참으로 천고의 오래된 세상 밖의 일족이라 할 것이다.
세세로 대를 이어 그 흔적을 남기지 않는 인재를 배출해 왔으니, 이는 진실로 우연이 아니라 하겠다.
이로부터라도 가히 백결선생의 도풍과 가법을 볼 수 있으며,
또 족히 상고대 시절, 도가 있던 세상의 일단과 그 양태를 엿볼 수 있다.
곧, 읍루씨가 입산 불출하여 혼탁한 세상과 그 인연을 끊은 것 역시
바야흐로 그 까닭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청한자 씀
드디어 징심록추기의 마지막 14장입니다. myh1117 13.11.19
옛 글을 읽으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사람의 도리가 무엇인지 생각나게 하는
부도지와, 이에 대한 독후감 형식으로 기록한 청한자 김시습 선생의 지난 일을 생각해 봅니다.
벌써 5개월이 다 되어 가는 부도지 번역도 이제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오르고 무언가 해야 되겠다는 심정에 쫓기듯이 서두르다가
또 중요한 일들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두렵기만 합니다.
잃어버린 민족의 과거 이야기야 또 다시 살아가면서 찾아보면 되겠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동포들의 현실은 어디쯤에 와 있을 지 또 궁금하기만 합니다.
남과 북이 갈리고 정파가 나뉘고, 이념이 조각나고 지역이 분열되어 있습니다.
통화사해를 말하는 부도의 이념은 세상 어디에도 찾기 힘든데,
게다가 청년들은 개인주의로 무장하고 자본주의의 냉혹한 세상을 전투를 벌이듯 바라보고 있습니다.
민족을 말하는 단체는 많은데, 스스로를 희생할 생각은 조금도 없고....
청한자는 말합니다. 박씨세가의 길고긴 연리의 일을...그리고 또 더 옛날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읍루씨가 이 혼탁한 세상을 등진 또 다른 사연을...
하지만 뜻 있는 사람마다 또 그런 일마다 모두 떠난다면 이 혼탁한 세상은 또 어찌 되겠습니까?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 있고, 또 누군가는 하지 않아야 할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과연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이 세상에 결정되어 있는 것이겠습니까?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이 있으면 할 뿐이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면 당연히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하늘의 법도와 천지의 뜻과 세상살이의 이치, 그리고 사람의 길이 반드시 같은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니 오늘 세상이 말하는 사람으로서 해야할 일이
옛 어른들이 말씀하신 그것과 과연 같은 것인지도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당연히 세상살이의 법칙 또한 변했겠지요...
그러나 변하는 가운데 변하지 않는 이치가 있고, 변함 없는 가운데 변하는 법칙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민족의 길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비록 세상사의 어려움 가운데 그 길이 어둡고 혼미하여 차마 성큼 나서기는 어려울 지 모르나,
하늘이 정하고 땅이 따르며, 사람이 힘써 행할 일은 남아 있다고 말입니다.
저 북쪽의 동포가 같은 하늘 아래에 살고, 사랑하는 일가 친척 또한 같은 하늘 아래 있습니다.
그리고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또 다른 사람들 역시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가는 중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살다가 언젠가는 떠나게 될 것입니다.
남은 인생의 단 하루라도 의미 있음을 알고, 함께 했음으로 행복하였다고 말하고 싶은 날들이 이어지기를 바래봅니다.
□ 후기(後記)_부도(符都) 복건(復建)이 실패하다
후기
이는 청한(淸寒) 김시습 선생의 “징심록 추기”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거의 우리집에서 지내셨다.
다시 세한(歲寒)의 맹세를 맺고 함께 운림(雲林)1)으로 들어갔다.
이는 당시의 사세(事勢)에 연유한 것이었다.
어느날 부도를 복건할 대업에 뜻을 세우고 동분서주 남정북래하며
사람을 찾아 왕성하게 도모하고 일생의 정력을 기울여 쏟더니,
이징옥(李澄玉)2)과 이시애(李施愛)3)의 두 차례에 걸친 실패에 당하고는
마침내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이는 무여의 도를 몸소 실천하기 위한 것이였다.
그러므로 선생이 우리 가문 선대의 일을 익히 알아,
행장(行狀)4)을 쓰거나 족보를 만드는 일이 거의 선생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선생은 우리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이번에 본문을 어수선하고 시끄러우며 이산(離散)중에 기억하여 쓰니,
혹 군더더기를 붙이고 뼈를 없애는 한탄이 없을 수 없겠으나,
선생의 본문이 이산(離散)중에 완성되었으니
시대의 추세(時色)가 우연히 들어맞고(偶合) 사세가 일치하였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시는 선생의 영혼이 반드시 불쌍하게 여겨 이를 용서하고,
장차 저승에서 이 세상에 천부의 이치를 드러내어 밝히는 것을 도울 것이다
금당(琴堂)5) 삼가 씀
후기(後記)
此 淸寒金時習先生澄心錄追記也
차 청한김시습선생징심록추기야
先生 自幼至長 殆奇於吾家
선생 자유지장 태기어오가
更結歲寒之盟而同歸雲林
갱결세한지맹이동귀운림
此當時事勢之末由故也
차당시사세지말유고야
一朝立志於符都復建之大業
일조입지어부도복건지대업
東奔西走南征北來 尋人逞謨而傾注一生之精力
동분서주남정북래 심인령모이경주일생지정력
及基李澄玉李施愛兩次之失敗 遂晦跡乃己
급기이징옥이시애양차지실패 수회적내기
此爲躬行無餘之道也
차위궁행무여지도야
以故 先生 熟知吾家先世之事
이고 선생 숙지오가선세지사
記狀修牒 殆成於先生之手
기상수첩 태성어선생지수
無異於吾家同族
무이어오가동족
今次本文 億記於騷亂離散之中
금차본문 억기어소란이산지중
或不無贅附指沒之嘆
혹불무췌부지몰지탄
先生之本文己成於離散之中則時色 偶合 事勢相同
선생지본문기성어리산지중칙시색 우합 사세상동
然則先生在天之靈 必憫察而怒之
연칙선생재천지령 필민찰이로지
且將冥助天符之理之闡明於世矣
차장명조천부지리지천명어세의
금당(琴堂) 삼가 씀
주석 해설)
1) 운림 : 문천 운림산
2) 이징옥 : ?~1453. 조선 세종때의 무관. 스스로 대금황제(大金皇帝)라 했으나 정종(鄭種)에게 붙잡혀 살해되었다.
3) 이시애 : ?~1467. 조선 세조때 무관. 대대로 길주에서 살아온 호족 출신이며 이주, 이운로 등에게 살해되었다.
4) 행장 : 사람이 죽은 뒤 그 평생의 지낸 일을 기록한 글
5) 금당 : 박금(박재익)씨의 호.
-----------<<<이하 부산 민박사님 https://cafe.daum.net/myh1117>>>-----------
부도지별책, 징심록추기. 후기근고(박 금) myh1117 13.11.23
此 淸寒金時習先生之澄心錄追記也
先生 自幼至長殆奇於吾家 更結歲寒之盟而同歸雲林 此當時事勢之末由故也 一朝立志於符都復建之大業
東奔西走南征北來 尋人逞謀而傾注一生之精力 及其李澄玉李施愛兩次之失敗 遂晦跡乃已
此爲躬行無餘之道也 以故 先生熟知吾家先世之事 記狀修牒 殆成於先生之手 無異於吾家同族
今次本文憶記於騷亂離散之中 或不無贅附指沒之嘆 先生之本文 已成於離散之中 則時色偶合事勢相同
然則先生在天之靈 必憫察而恕之 且將冥助天符之理之闡明於世矣
琴堂 謹書
이것은 청한자 김시습선생의 <징심록추기>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장성할 때까지 거의 우리 집안에서 지내셨다.
그러다 다시금 세한의 맹세를 맺고 다 함께 운림으로 돌아갔다.
이는 당시 파천황의 세상일로 말미암은 까닭에 그리한 것이다.
그리고 어느 하루 부도 복건의 대업에 그 뜻을 세우고, 동분서주 남정북래하며 사람들을 찾아서
왕성하게 일을 도모하면서, 일생의 정력을 바치게 되었다.
하지만 이징옥과 이시애의 두 차례에 걸친 실패를 당하여 마침내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는데,
이는 결국 여한을 남김없이 그 도를 몸소 실천하기 위함이었다.
이로부터 선생은 우리 집안 선세의 일을 깊이 숙지하면서 그 행장을 쓰고 보첩을 만드셨는데,
이러한 일들은 거의 선생의 손에서 다 이루어졌다. 실로 선생은 우리 집안의 동족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그 본문을 소란하고 이산하는 중에 기억하여 쓰게 되니,
혹 군더더기를 붙이고 손마디가 부서지는 한탄이 없지는 않겠지만,
선생의 본문을 이산하는 가운데 마침내 완성하였다.
이는 곧 그 때가 서로 맞아 떨어지고, 세상의 일들이 서로 함께 한 덕분이다.
그런 즉 하늘에 계신 선생의 혼령이시라도 반드시 이를 불쌍히 여기시고, 또 이를 용서하실 것이다.
또한 비록 명부에서라도 장차 천부의 이치를 세상에 천명하는 것을 도우실 것이다.
금당, 삼가 씁니다!
징심록추기에 대한 박금씨의 근서가 따라옵니다. myh1117 13.11.23
참으로 부도지와 관련된 기사의 내용은 오늘로써 다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 남은 부분은 <정요 징심록연의 후기>인데요...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설명하게 되겠구요
오늘의 기사는 징심록추기와 청한자 김시습 그리고 이 모든 서책의 편집자라 할 박금씨의 후기가 실렸습니다.
세한의 맹세와 운림으로 함께 이주한 일 등,
박씨세가와 김시습 선생 간의 인연에 대한 여러 이야기와 기사가 설명됩니다.
이징옥 이시애의 난도 말해지고 있는데요...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부도 복건의 일과 과거 한국사 역대의 일들에 대한 소회이며,
다시금 남기는 기록에 대한 고증의 의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기록을 남기는 박금씨는, 보다 상세한 저간의 사정에 대해 이어지는 정요 편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 부도지도 최종적인 정리 단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사실 부도지의 기록들은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기 어려운 놀라운 일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어느 누가 이민족, 곧 한민족인 배달겨레가 하늘의 뜻을 이은 존재로,
황궁씨 이래로 마고대성의 장자의 자손임을 밝힌 문헌이 있었는지, 불학 과문의 필자로서는 들은 바가 없습니다.
오직 여기 부도지의 기록만이 이를 증언하고 있는 셈이지요...
천부의 뜻과 부도복본, 해혹과 수계제볼 등,
참전의 계로서 사람 살이의 뜻과 이유를 이만큼 잘 설명하고 있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신라 중심의 역사기록으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부도지의 이해는
한국사학에 있어서는 또 다른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고 하겠지요...
아마도 이에 대한 개인적인 이해와 해명이 이루어진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또 다른 미래의 일들을 예견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곧, 이 민족의 거룩한 사명과 운명 같은 것이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