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부도지(符都誌)/김시습추기원문해설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제1장∼제6장)

유위자 2025. 10. 3. 06:21
부 도 지(符 都 誌)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제1장∼제6장) 제1장(第一章) 김시습이 징심록을 접하다 제2장(第二章) 김시습이 태고(太古)의 일을 논하다 제3장(第三章) 천웅도(天雄道)의 전수자(傳授者) 제4장(第四章) 관설당(觀雪堂)을 칭송함 제5장(第五章) 통관(通觀) 제6장(第六章) 허실견백(虛實堅白)에 대한 古今의 論及 《징심록(澄心錄)》은 3교(敎) 15지(誌)로 되어 있다. - 상교 : 부도지(符都誌), 음신지(音信誌), 역시지(曆時誌), 천웅지(天雄誌), 성신지(星辰誌) - 중교 : 사해지(四海誌), 계불지(禊祓誌), 물명지(物名誌), 가악지(歌樂誌), 의약지(醫藥誌) - 하교 : 농상지(農桑誌), 도인지(陶人誌), 식화지(食火誌), 궁성지(宮城誌), 의관지(衣冠誌) -《부도지》외에 음신지, 역시지, 천웅지, 성신지 등을 복원했다고 하나 일반에 전해지지 않는다. - 금척지 : 박제상의 아들(일설) 백결선생 박문량이 썼다고 하며 박혁거세의 신물 금척에 관한 기록으로 추정, 《징심록(澄心錄)》에 추보(追補) 했다 함. - 징심록추기 : 복원된 《부도지》에는 조선초 대학자 김시습이 영해박씨 집안 박효손으로 부터 전해 받고, 고대어에서 당시의 문장으로 적으면서 내력과 느낀 점을 덧붙였다. 김시습(金時習)은 조선 초기의 학자·문인(1435∼1493)으로 말년에 징심록을 보고 느낀바를 징심록 추기로 전한 것인데, 지금으로 부터 불과 520여년 전의 일이다. - 요정징심록연의후기 : 박금씨가 《징심록》을 복원하면서 느낀 점을 기록하였다. - 부도지(符都誌)라는 말은 "하늘의 뜻 (天符)을 받드는 도읍(都)에 관한 기록(誌)"이라는 뜻. □ 제1장(第一章) 김시습이 징심록을 접하다 ‘징심록(澄心錄)’은 운와(雲窩)2) 박공(朴公)집안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책으로, 그 비조(鼻祖)3)이신 관설당(觀雪堂) 제상공(堤上公)4)이 지은 것이다. 후대 종가의 여러 후손들이 복사(필사)하여 전한 것이 천여년이 되었으니, 그 귀하고 소중함이 어떠한가? 슬프다! 우리 가문 선대의 복호공(卜好公)5)께서 일찍이 공의 큰 은혜를 입은 지 천년이 지난 후에, 또 공의 자손과 이웃이 되어 한집처럼 오가며 가족같이 만나보고, 나는 또 훌륭한 가문에서 수업하고, 지금 세로(世路)의 말(末)을 당한 것을 연유6)로, 공의 후예와 더불어 다시금 ‘세한지맹(歲寒之盟)7)’을 맺어, 천리 밖으로 유랑의 흔적을 같이 남기게 되니, 이것이 바로 천명이란 것인가. 기나긴 고금의 일을 생각하고 회포를 펼치니 슬프고도 슬플 뿐이다. 오늘 이 책(징심록)을 읽으니 홀연히 천년전 옛날로 돌아가 공을 뵈옵는 것 같고, 더욱 우리 가문 선대의 조상들을 우러러 사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할 뿐이다. 澄心錄者 雲窩朴公家世傳之書 징심록자 운와박공가세전지서 其鼻祖觀雪堂堤上公之所述也 기비조관설당제상공지소술야 後代宗嗣諸人 復寫相傳千有餘年 其珍重如何哉 후대종사제인 복사상전천유여년 기진중여하재 噫 吾家先世卜好公 曾受大恩於公而千載之下 희 오가선세복호공 증수대은어공이천재지하 又作隣於公裔之家 來往如一家 接遇如同族 우작린어공예지가 래왕여일가 접우여동족 余又受業于高門而當 此世路之末由 여우수업우고문이당 차세로지말유 與公之裔更結歲寒之盟 浪跡於千里之外 此天耶命耶 여공지예갱결세한지맹 랑적어천리지외 차천야명야 想緬古今 展懷惻惻 상면고금 전회측측 今讀此書 忽然在於千載之上 금독차서 홀연재어천재지상 如謁於公而尤不勝感慕於吾 家先世之羅代也. 여알어공이우不승감모어오 가선세지라대야. 주석 해설) 1) 김시습(金時習) : 조선 초기의 학자·문인(1435∼1493), 생육신의 한 사람. 본 징심록 추기를 썻다. 자세한 소 개는 마지막으로 미룬다. 2) 운와(雲窩) : 박제상(朴堤上)의 후손인 운와((雲窩) 박효손(朴孝孫, 1428~1459)을 이름이다. 김시습(金時習)에 게 징심록(澄心錄)을 전하고, 이를 읽은 김시습(金時習)이 징심록(澄心錄)의 유래와 내용에 대해 자세히 기록한 것 이 바로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이다. 박효손은 조선 단종때 형조참판을 지냈다. 3) 비조(鼻祖) : 원래 시조 이전의 선계조상 중 가장 윗사람을 말함. 시조와 동일하게도 쓰임 4) 박제상(朴提上) : 신라 눌지왕때 충신(363~419). 삽량주 간으로 있을 때, 전에 보문전 태학사로 재직할 당시 열 람할 수 있었던 자료와 가문에서 전해져 내려오던 비서(秘書)를 정리하여 징심록을 저술하여 전하였다. 최근에는 저자가 없는 증심록(證心錄)의 존재가 소문으로 전하고 있다. 징심록의 존재를 부정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으나 진 본이 나오면 순식간에 그 흔적들을 감출 것이다. * 징심록(澄心錄) 본래 이름은 저자가 없는 증심록(證心錄)이다. 후대에 안전하게 전하기 위해 제목을 바꾼 것이다. ① 상교(上敎) 5誌 - 부도지(符都誌) :‘마고 - 궁희 - 황궁 - 유인 - 한인 - 한웅 - 단군’으로 이어지는 천손 역사를 담고 있으며, 징심록 전체의 줄기를 요약해 서술하고 있다. - 음신지(音信誌) : 부도지에 나오는 율려 등에 대한 설명서로 탄생 數理의 의미를 세부 설명한 책으로 보여진다. - 역시지(曆時誌) : 하늘의 역법에 대해 세부 설명한 책으로 보여진다. - 천웅지(天雄誌) : 하늘 세계의 계보 및 역사를 세부 설명한 책으로 보여진다. - 성신지(星辰誌) : 하늘의 별자리를 세부 설명한 책으로 보여진다. ② 중교(中敎) 5誌 - 사해지(四海誌) : 지리에 관하여 세부 설명한 책으로 보여진다. - 계불지(禊祓誌) : 수계제불(修禊除祓) 즉 수련방법에 대해 세부적으로 설명한 책으로 보여진다. - 물명지(物名誌) : 세상만물의 이치를 설명한 책으로 보여진다. - 가악지(歌樂誌) : 하늘의 소리를 이땅에서 표현하는 방법을 세부적으로 설명한 책으로 보여진다. - 의약지(醫藥誌) : 인간의 몸을 하늘에 비추어 원초적 상태로 되돌리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한 책으로 보여진다. ③ 하교(下敎) 5誌 - 농상지(農桑誌) : 하늘에 천제를 지낼 수 있는 제물을 마련하기 위한, 농사짓고 양잠하는 방법을 설명한 책. - 도인지(陶人誌) : 하늘에 천제를 지낼 수 있는 제기를 제작하는 방법에 대한 세부 방법을 설명한 책으로 보여진다. 나머지 3誌는 본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제보내용이다. - 식화지(食火誌) : 제사음식, 각종 먹거리의 가공 및 조리법, 장과 술등 발효음식 담그는 법 등을 기록한 책. - 궁성지(宮城誌) : 터 잡는법(풍수), 각종 집 짓는법, 도성 산성 축성법, 현대 토목 및 건축기술을 망라한 책. - 의관지(衣冠誌) : 각종 복식, 관모, 실뽑는법, 짜는법, 염색법 등을 기록한 책으로 보여진다. 5) 복호공(卜好公) : 내물왕의 아들, 눌지왕의 동생, 412년 고구려에 인질로 갔다가 418년 박제상의 노력으로 귀국했다. 6) 세로(世路)의 말(末) : 김시습 선생이 말년에 세상을 등지고 방랑을 떠났던 시절을 말함이다. 7) 세한지맹(歲寒之盟) : 김시습과 박계손 사이에 맺은 약속 -----------<<<이하 부산 민박사님 https://cafe.daum.net/myh1117>>>----------- 징심록추기(김시습) 제1장, 부도지 별책 13.09.09 澄心錄追記 金時習 第一章 澄心錄者 雲窩朴公家世傳之書 其鼻祖觀雪堂堤上公之所述也 後代宗嗣諸人 復寫相傳千有餘年 其珍重如何哉 噫 吾家先世卜好公 曾受大恩於公而千載之下 又作隣於公裔之家 來往如一家 接遇如同族 余又受業于高門而當此世路之末由與公之裔更結歲寒之盟 浪跡於千里之外 此天耶命耶 想緬古今 展懷惻惻 今讀此書 忽然在於千載之上如謁於公而尤不勝感慕於吾家先世之羅代也. 제1장 <징심록>은 운와 박공 집안에 대대로 전해져 온 책으로, 그 비조이신 관설당 제상공이 지은 것이다. 후대를 이은 종사의 여러 인물들이 필사하여 서로 전한 지 천년이 넘었으니, 그 귀하고 중함이 과연 얼마이겠는가? 아! 우리 집안 선세 복호공께서 일찍이 제상공에게 큰 은혜를 입은 지 천년이 지난 후에, 또 공의 후예 되는 집안과 이웃을 하게 되어, 왕래하기를 한 집안처럼 하고 동족처럼 서로 만나 지내었다. 나는 이 같이 훌륭한 집안에서 일찍이 수업을 받았는데, 지금 이 세상의 길 끝에서 곤란을 당하게 됨으로부터, 공의 후예와 다시금 ‘세한지맹’을 맺고 천리 밖으로 유랑의 흔적을 같이 남기게 되었다. 이것은 하늘의 뜻인가 아니면 운명이라 할 것인가. 옛날과 지금을 면면히 이어 온 것과 심중의 회포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본다. 지금 이 책을 읽으니 홀연히 천 년 전으로 돌아가 공을 배알한 것과 같고, 또 선세 우리 집안 신라 때의 그리움과 감흥을 가히 이길 바가 없다. 청한자 김시습! myh1117 추기로 부도지를 증언합니다 13.09.09 <징심록 추기>. 추기란 대개 추모 또는 추억이란 뜻과 함께, 추적하여 기록한다는 말입니다. 곧 징심록을 대하여 읽고, 그 글을 기억하며 되새겨 해제하였다는 뜻입니다. 청한자 김시습 선생이야말로, 조선조 최고의 지식인이면서 동시에 조선단학과 한국신선낭가의 맥을 상호 연결 시켜 주는 분입니다. '5세 신동'이라는 말과도 같이 초기 조선의 양심이자, 유불도를 통섭한 분이지요. 청한자의 추기가 있어, 비로소 <부도지>의 본 뜻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조선 최대의 학인답게 그 글 또한 유려하고 군더더기 없이 사실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당신과 집안의 이야기를 선세의 사례들과 더불어 관설당 제상공과의 인연을 설명하고 있네요... 세한지맹이란 유명한 말이 나오는데, 왕권을 둘러싼 추악한 권력다툼을 목격하고 홀연히 속세를 떠난 당시의 의리를 읽을 수 있습니다. 결국 바른 길이 아니면 가지 않겠다라는 강력한 의지의 표상인 셈인데요... 오늘 저의 의지는 어떤 지 새삼 부끄러워 지기도 하고, 옛 어른들의 기개를 새삼 읽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내용은 큰 줄기에서는 약간 벗어나 있는 셈이나, 이후의 기록들은 역사와 금척과 만파식적 같은 옛 고사들을 기억하는 중요한 시발점이 된다 하겠습니다. 선생의 <잡저>는 유불도 삼교를 관통한 철학적 내용으로도 무한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만큼 박학다식하였다는 것이지요... 새삼 공부에 소홀한 저 자신이 부끄러워지면서...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 봅니다. □ 제2장(第二章) 김시습이 태고(太古)의 일을 논하다 ‘징심록’의 기록이 멀리는 태고(太古)의 일1)에 관계하고, 넓게는 우주(宇宙)의 일에 관여하여 그 광대함(浩汗)은 진실로 말할 수가 없으며, 우리 동방창도(東方創都)2)의 역사와 하토변이(夏土變異)3)의 기록은 사람으로 하여금 참으로 숙연하게 한다. 통칭 그윽한 의미(奧義)가 선도(仙道)와 불법(佛法)과 비슷하나 같지 아니하다. 당시 신라에는 잠시도 선(仙).유(儒).불(佛)이 침투해 오지 않았으니, 이는 고사(古史)에 근거한 것이 분명하다.4) 그 신시(神市)왕래의 설5)과 유호씨(有戶氏)6)의 전교(傳敎)의 일이 진실이니, 고금천하(古今天下)의 모든 법이 모두 여기서 나와 잘못 전해져 변해버린(轉訛變異)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같지 않음이 유불(濡佛)의 세계(世界)에 용납되지 아니하며, 또 제왕의 관경(管境)으로부터 배척을 당한 것은 진실로 당연하다. 기록 중에서 말하기를, 이 책은 광명(廣明)의 시대(時代)7)부터 있었다고 하였으니, 그 시대는(時代)는 과연 어느 시절(時節)인가. 錄中記事 遠涉于太古 록중기사 원섭우태고 廣于於宇宙 其浩汗固不可言 광우어우주 기호한고불가언 而我東方創都之史 夏土變異之記 誠使人肅然也 이아동방창도지사 하토변이지기 성사인숙연야 通篇奧義 似仙道佛法而非 통편오의 사선도불법이비 當時新羅 姑無仙儒佛之浸來則 此根據於古史者明也 당시신라 고무선유불지침래칙 차근거어고사자명야 其神市來往之說 有戶氏傳敎之事 기신시내왕지설 유호씨전교지사 眞則古今天下之諸法 皆出於斯而轉訛變異者矣 진칙고금천하지제법 개출어사이전와변이자의 然則是書之不同 不能容於儒佛之世 연칙시서지불동 불능용어유불지세 又受斥於帝王之境者 固當然也 우수척어제왕지경자 고당연야 錄中有曰此書自有廣明之時云 其時何時耶. 록중유왈차서자유광명지시운 기시하시야. 주석 해설) 1) 태고(太古)의 일 : ‘마고-궁희-황궁-수인-한인-한웅-단군’의 역사를 말함이다. 2) 동방창도(東方創都) : 티벳 수미산 마고대성 → 천산산맥 → 종남산 → 태산 → 하얼빈 백산으로 이어지는 부도 이동의 역사를 말함이다. 결국 그 사서는 이땅에서 보관하고 있으니 이땅의 영험함의 의미를 스스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종교의 천국 대한민국... 왜 그러한지를... 3) 하토변이(夏土變異) : 부도에 역행한 도요와 순의 역사를 말함이다. 4) 고사(古史)에 근거 : 티벳 마고대성에서 황궁씨를 통해 전수된 수증복본(修證復本)의 수련법을 말한다. 석가는 수미산에서 수증복본의 수련법을 익혀 득도하였다. 5) 신시(神市)왕래의 설 : 배달국 즉 한웅시대의 도읍지를 신시(神市)라 하였다. 6) 유호씨(有戶氏) : 유소씨(有巢氏)의 오기로 단군왕검의 현자이자 특사, 큰아들이 유순(有舜)이고 둘째가 유상 (有象)이다. 유순이 도요의 두딸을 밀취하여 부도를 배반하자 둘째 유상을 보내 응징하였다. 7) 광명(廣明)의 시대(時代) : 배달국(한웅)이나 단군시대일 것이다. * 부루태자, 유소, 유순, 유상, 도요, 우 임검씨의 태자 부루가 도산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산동성에 들려 태산에서 삼신께 천제를 올렸다. 도요는 잘못된 오 행으로 혹세무민한 죄를 물어 단군의 특사 유소씨에 의해 감옥에 가두었는데 도중에 감옥에서 옥사하였고, 도요를 응징하러간 유소씨의 아들 유순은 도요의 꾐에 넘어가 도요의 두딸 아황과 여영을 밀취하고 부도를 배반하자 유소 씨는 둘째아들 유상을 보내어 응징하니 유순은 호남성 동정호 아래 창오에서 죽고 부도를 마지막에 배반한 우는 모 산에서 항거하다 죽임을 당하였다. 이상이 잘못된 하토 역사의 대강이다. -----------<<<이하 부산 민박사님 https://cafe.daum.net/myh1117>>>----------- 부도지, <징심록, 제2장> 13.09.11 第二章 錄中記事 遠涉于太古 廣于於宇宙 其浩汗固不可言 而我東方創都之史 夏土變異之記 誠使人肅然也 通篇奧義 似仙道佛法而非 當時新羅 姑(固)無仙儒佛之浸來則 此根據於古史者明也 其神市來往之說 有戶氏傳敎之事 眞則古今天下之諸法 皆出於斯而轉訛變異者矣 然則是書之不同 不能容於儒佛之世 又受斥於帝王之境者 固當然也 錄中有曰此書自有廣明之時云 其時何時耶. 제2장 <징심록> 중의 기사들은 멀리 태고적 일들을 섭렵하고 넓게는 우주의 일에 통하고 있어, 그 넓고 깊음은 진실로 말하기가 어렵다. 더욱이 우리 동방에서 도읍을 세운 역사와 저 중국 변이의 기록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실로 숙연하게 한다. 전편을 통한 그 오묘한 뜻은 선도나 불법과 유사하나, 같지 아니하다. 일찍이 당시 신라에는 선유불의 사상 전래가 없었음이 확실한 것이니, 이의 근거는 참으로 옛 역사에 있음이 명확하다. 저 신시 내왕의 이야기와 유호씨가 가르침을 펴신 일들이 진실이라 하면, 곧 고금과 천하의 모든 이법들이 다 여기에서 유래하여, 다시금 바뀌고 변화하여 달라진 것일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이 같지 않다는 점, 곧 유불과 다르다는 점은 세상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또 제왕의 영토 내에서는 다시금 배척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 역시 진실로 당연한 것이다. <징심록> 중에서 말하기를, 이 책은 광명의 시대 때부터 있어 왔다 하였으니, 그 시대는 과연 어떤 시절이란 말인가. 징심록추기, 청한자 김시습 선생께서도 놀라고 계시네요... myh1117 13.09.11 아득한 그 옛날은 어떠했을까요.... 과연 동인과 동국의 옛 이야기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역사의 진리와 철학적 진실... 그리고 사람의 길이란 과연 어떠할지요... 더 바르고 더 곱게 아름다운 나라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요? 아마도 사람사는 세상, 우린 더 연구하고 노력해야 할 것 같군요! □ 제3장(第三章) 천웅도(天雄道)의 전수자(傳授者) 삼가 모든 역사를 자세히 살피어 이리저리 상세히 참고하건대, 당시의 세상 사람들은 제상공(堤上公)을 천리(天理) 연구가(硏究家)라 하였으니, 그것은 신자천(申自天) 공의 말로도 더욱 분명하다. 혁거세왕의 증손에 형제가 있었다. 그때의 사람들은 큰아들이 작은아들의 신성(神聖)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 작은아들이 바로 파사왕(婆娑王)1)이요 공의 5대조다. 소위 신성(神聖)이라는 것은 비단 기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요, 역시 그 이치(理致)와 도리(道理)가 어떠한지를 가리키는 것이다. 공(公)의 할아버지 아도공(阿道公)2)은 124세까지 살았으며, 아버지 물품공(勿品公)3)은 117세까지 살았고, 후대에도 역시 백 세까지 산 사람이 많이 있었으니, 공(公)의 집안 전통이 반드시 특별한 이치가 있는 것 같다. 이는 혹 옛날 천웅도(天雄道)의 전수자(傳授者)이기 때문이 아닌가. 공(公)의 징심헌시(澄心軒詩)4)에 이르기를, 아지랑이 초초하게 흐르는 걸 바라보니 나그네의 마음도 가을처럼 지는구나 세간의 견백(堅白)5)도 유유한 일도 징강(澄江)6)을 대하고 앉아 근심을 잊는다 고 하였으니, 여기에서 공(公)이 품은 도(道)의 일단(一端)을 알 수 있는 것이다. 謹案諸史 會通詳考則當時之堤上公 근안제사 회통상고칙당시지제상공 世稱之爲硏理之家 其於申自天公之言尤明也 세칭지위연리지가 기어신자천공지언우명야 赫居世王曾孫 始有兄弟 時人曰 第一不及於第二之神聖云 혁거세왕증손 시유형제 시인왈 제일불급어제이지신성운 則其第二者卽婆娑王而公之五代祖也 칙기제이자즉파사왕이공지오대조야 其所謂神聖者 非但氣品之謂而亦指其理道之如何矣 기소위신성자 비단기품지위이역지기리도지여하의 公之祖阿道公 享年百二十四歲 공지조아도공 향년백이십사세 考勿品公 享年百十七歲 고물품공 향년백십칠세 後代亦多百歲之人則公家傳統 必若有特理 후대역다백세지인칙공가전통 필약유특리 此或非昔世天雄道之傳守者也 차혹비석세천웅도지전수자야 公之澄心軒詩曰 공지징심헌시왈 煙景超超望欲流 연경초초망욕류 客心搖落却如秋 객심요락각여추 世間堅白悠悠事 세간견백유유사 坐對澄江莫說愁 좌대징강막설수 云 운 於斯 確然知公之抱道之一端也 어사 확연지공지포도지일단야 주석 해설) * 박제상 생전의 영해박씨 문중은 수증복본의 수련법을 대대로 전수하여 장수한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본다. 1) 파사왕(婆娑王) : 신라제 5대왕 재위 80~112년, 유리왕의 둘째아들 2) 아도공 : 휘(諱)는 대선(大善). 추대하여 갈문왕이 되었다. (영해 박씨 세감) 3) 물품공 : 휘(諱)는 천보(天寶). 호는 물품(勿品)이다. (영해 박씨 세감) 4) 징심헌시(澄心軒詩) : 이 시는 신라 눌지왕 2년에 박제상이 왜국에 들어갈 때 지은 것이라고 했다.(영해박씨 세감) 5) 견백(堅白) : 중국 춘추전국시대 공손룡(公孫龍)이라는 사람이 내건 일종의 궤변. 단단하고 흰 돌은 눈으로 보 면 흰 것을 알수 있으나 단단한 것은 모르며, 손으로 만지면 단단한 것만 알수 있을 뿐 흰줄은 모르므로, 단단한 것과 흰 것은 다르다는 이론. 곧 억지를 써서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그른 것을 옮다 하며, 같은 것을 다르다고 하 는 궤변. 견백석(堅白石)과 같은 말이다. 6) 징강(澄江) : 징심헌(澄心軒) 앞에 앞에 흐르는 강. 박제상 생전 당시의 신라영토는 무궁화 자생산지(근화향)와 관련이 있고 그 지역은 양자강의 중심 도시 무한 인근이다. 징강이 어디인지는 연구대상이다. 징강이 한강(漢江)이나 장강(長江)으로 바뀌면 모든게 해결된다. 그 유명한 황학루가 있지 않은가? 여담이다. 단지 한단고기는 북방으로 부도지는 남방으로 전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 (참고) 신라의 혼이 살아 숨쉬는 호북성 무한(武漢) 황학루(黃鶴樓) --------------------------------------------------------------- 황학루는 호남 악양의 악양루(岳陽樓)와 강서 남창의 등왕각(騰王閣)과 함께 강남의 3대 명루(名樓), 천하절경(天 下絶景)이라 일컬어 지는 곳이다. 1,700여년을 내려 오면서 이곳은 7번 소실되고 7번 중건되었는데, 지금의 모양은 제일 마지막에 중건된 1985년의 것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 내릴 수 있는 최신식의 누각이다. 황학루는 삼국 오나라 황무 2년에 무창 사산(蛇山)에 처음 세워졌으며, 꼭대기에 동탑이 앉은 약 28m의 3층 건축물이었다. 여러 전란을 지나 청대의 양식으로 새로 건설한 황학루는 더욱 웅장한 모양의 것으로 총 높이가 51.4m인 5층 높이가 되었다. 이곳은 누각을 중심으로 정자와, 회랑, 비방(牌坊), 시비(詩碑), 고전상무서비스가(古典商務服務街)로 구성되어 있다. 새로 지어진 지층은 예전 것에 비해 넓이가 배로 늘어난 30m로, 아래에 펼쳐진 무한의 시내전경을 여유롭게 즐기기에 좋다. 황학루는 사산위에 있으면서 장강을 바라보고 있어서 주변의 경관이 아름답고 운치있다. 그 때문인지 이백(李白), 백거이(白居易), 육요(陸游), 양신(楊愼), 장거정(張居正) 등의 많은 문인과 시인이 이곳을 시로 읊었는데, 기록에 남아있는 것만 300수 이상이다. * 황학루의 유래 삼국시대 오나라 손권시대에 이 곳에서 신씨(辛氏)라고 하는 사람이 주막을 하고 있었다. 어느날 노인이 찾아와서 술을 달라고 하여 한잔을 드렸더니 더 큰잔으로 달라고 하여 여러잔을 마시고는 돈도 내지 않고 떠났다. 며칠후에 또 다시 찾아와서 술을 달라고 하니 신씨는 싫은 기색이 없이 계속 술을 주기를 6개월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 느날 그동안 밀린 술값을 값겠다고 하며 노란 귤껍질로 벽에다가 학을 그리니 황학도가 되었다.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면 학이 튀어 나올터이니 이것이 그동안의 술값이다"라고 떠났다. 그러자 신씨는 손뼉을 치고 노래를 하니 정말로 노란학이 튀어나와 춤을 덩실덩실 추는 것이었다. 이 소문을 듣고 많은 손님들이 찾아와 서 신씨는 돈을 많이 벌 게 되었다. 10년후 노인이 다시 나타나자 술을 대접하려고 하니, 술은 필요 없고 학을 데려가겠다고 하면서 피리를 부니 노란 학이 나타나 구름위로 휠훨 날아가고 나서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을 보고 신씨는 주막을 헐 고 그 자리에 정자를 지어 노인과 학을 기리기 위해 황학루(黃鶴樓)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 노인은 비문위(費 文褘)라는 선인 이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 황학루는 오나라 시절에는 파수대 역할을 하기도 하면서 오늘날까지 수 많은 문인들이 찾아와 시를 남기고 갔는데 당나라 시인 최호의 황학루가 제일 유명하다. * 황학루(黃鶴樓) - 최호(崔顥) 昔人已乘黃鶴去(석인기승황학거) 옛날에 신선은 이미 황학을 타고 날아가 버리고, 此地空餘黃鶴樓(차지공여황학루) 지금 이 땅에는 그저 황학루만이 남아 있다. 黃鶴一去不復返(황학일거불복반) 황학은 신선을 태우고 간 뒤 돌아올 줄 모르고, 白雲千載空悠悠(백운천재공수수) 흰 구름만 천년동안 변함없이 하늘에 떠있다. 晴川歷歷漢陽樹(청천역역한양수) 맑은 양자강 건너편에 한양거리 나무들 보이고, 芳草妻妻鸚鵡洲(방초처처앵무주) 강 가운데 앵무주에는 향긋한 풀이 무성하다. 日暮鄕關何處是(일모향관하처시) 해 지고 고향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둘러보니 煙波江上使人愁(연파강상사인수) 강 위에 저녁 안개 서리고 시름만 더해진다. 그후 시선(詩仙)이라 불리우는 이백(李白)이 황학루에 왔다가 이 시를 보고 더 이상 좋은시를 지을 수가 없어서 황 학루에 관한 시 짓는 것을 포기하였다고 한다. 훗날 황학루에서 맹호연을 보내며 라는 칠언절구의 시로서 대신했다 고 한다. * 黃鶴樓送孟浩然之廣陵(황학루송맹호연지광릉) 황학루에서 맹호연이 광릉으로 가는 것을 보내며 - 이백(李白) 故人西辭黃鶴樓(고인서사황학루) 옛 친구는 이 황학루에서 이별 고하고, 烟花三月下揚州(연화삼월하양주) 꽃피는 삼월에 배타고 양주로 내려갔다 孤帆遠影碧空盡(고범원영벽공진) 외로운 돛단배 먼 그림자 푸른 하늘로 사라지고, 唯見長空天際流(유견장공천제류) 뵈는 것 아득히 하늘에 닿은 장강물 뿐이어라 황학루 1층에는 전설의 노인이 노란 학등에 앉아 피리를 불려 구름위로 날아가고 황학루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춤을 추며 환영을 하는 벽화가 모자이크 벽돌로 그려져 있다. 황학루 경내에는 수많은 시와 시비들이 전시되어 있 는데 학교에서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왕희지, 조맹부등의 명필이 돌에 새겨져 있고, 이백을 비롯한 유명한 시인들이 시가 돌에 조각이 되어 전시되어 있다. -----------<<<이하 부산 민박사님 https://cafe.daum.net/myh1117>>>----------- 징심록 제3장, 부도지 별책 13.09.15 第三章 謹案諸史 會通詳考則當時之堤上公 世稱之爲硏理之家 其於申自天公之言尤明也 赫居世王曾孫 始有兄弟 時人曰 第一不及於第二之神聖云 則其第二者卽婆娑王而公之五代祖也 其所謂神聖者 非但氣品之謂而亦指其理道之如何矣 公之祖阿道公 享年百二十四歲 考勿品公 享年百十七歲 後代亦多百歲之人則公家傳統 必若有特理 此或非昔世天雄道之傳守者也 公之澄心軒詩曰 煙景超超望欲流 客心搖落却如秋 世間堅白悠悠事 坐對澄江莫說愁 云 於斯 確然知公之抱道之一端也 제3장 삼가 여러 역사를 자세히 살피고 이리저리 상고한 즉, 당시 ‘제상공’은 세상에서 칭하는 연리의 가문, 곧 이법을 연구하는 집안의 사람이라, 이는 ‘신자천공’의 말에 따르더라도 명확한 사실이다. 혁거세왕의 증손에는 형제가 있었는데,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첫째는 둘째의 신성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둘째가 파사왕인데, 공의 오대조이다. 여기서 소위 신성하다고 한 것은 단지 그 기품을 일컬은 것만은 아니고, 또한 그 천리와 법도가 어떠한 가에 따른 것이다. 공의 할아버지인 아도공은 124세를 누리셨고, 아버지인 물품공은 117세를 사셨다. 후대에도 역시 100세를 넘기신 분이 많으니, 이것은 공의 집안 전통이 되었다. 여기에는 필시 특별한 이치가 있음이 틀림없으니, 혹 그 옛날 천웅도의 전수자인 까닭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공이 지은 징심헌시에 이르기를, “아지랑이 초초하게 흘러감을 바라보자니, 나그네의 마음 또한 가을처럼 가라앉는 구나, 세간에서 말하는 견백의 일 또한 유유한 일이요, 징강을 대하고 앉아 근심을 말하지 아니할 뿐…”이라 하였다. 이로부터도 공이 품은 깊은 도의 한 자락을 확연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연리의 집안과 천웅의 도 myh1117 13.09.15 철학을 공부하고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결국 세상의 이치를 찾아 바른 길을 가고자 하는 때문이라고 생객해봅니다. 이것은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면의 수양과 지혜를 길러 단 한 번 밖에 없는 인생에서 의미 있는 그 무엇을 만나기 위한 인간 개개인의 노력의 과정이라 하겟습니다. 달리 말해, 공수래공수거라! 어차피 왔다 가는 인생에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겠지요... 오늘의 팍팍한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또 많은 것을 욕구하기도 하지요... 저 역시 너무나 많은 상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것인가 하면 저것을 그리워하고, 저것인가 하면 이걸 욕심내고 있는 것이지요... 언제쯤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동안에 처자식들은 징징대고 있는데... 별 달리 해 줄 능력도 재주도 없다보니, 매일 산다는 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우기기만 하고 있네요... 청한자 김시습은 세조 파천의 시대를 보고 저것들과는 어울려 놀지 않겠다하고 권력자들을 멀리 합니다. 관설당 제상공은 고구려와 일본을 넘나들며, 계림의 충절을 전하였습니다. 두 분 다 살아가는 어느 한 날 자신들의 삶과 행위를 결정하신 것이지요.... 그리고는 천 년의 인연을 건너와 서로 만나고, 저 역시 하늘의 도움으로 선배들을 뵙고 있는 중이라 하겠습니다. 동북공정이 진행되고 있고, 남과 북은 형제의 의를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보수와 민주가 서로 원수가 되어 살고 있고, 자본과 경제는 먹고 사는 한 수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가진 자들은 더 가지려 하고, 없는 분들은 좀 나누자고 아우성입니다. 균평의 원리가 정치의 요체요, 政은 곧 正이라, 정치란 바른 것을 찾는 것이라 하였는데, 바른 것이 무엇인지 자꾸만 헤갈리고 있습니다. 부도지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바른 것은 곧 자유롭고 평등하게, 하늘을 따르고 사해통화와 해혹복본의 길을 찾아가 보는 것이지요... 나라에도 운명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천운일 것입니다. □ 제4장(第四章) 관설당(觀雪堂)을 칭송함 가만히 생각하면 연경(아지랑이)은 티끌 같은 세상(塵世)1)의 풍조요, 객심(客心, 나그네의 마음)은 자아(自我)의 잡념(雜念)이다. 연기처럼 일어난 먼지(煙塵)2)와 잡념이 피차 떨어져 나가 한 점의 찌꺼기도 없으니, 오직 있는 것은 맑은 가을 징강(澄江)의 본원(本原) 뿐이다. 그렇게 한 후에 견백석(堅白石)3)이 고금의 증리(證理)에 통하기 어려운 것을 징강(澄江)을 대하고 앉아 근심을 말하지 않으니, 소위 징강(澄江)을 대하고 앉는다는 것은 철저하게 전체를 통하여 내려다본다(通觀)4)는 뜻이요, 또 소위 근심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고금(古今)의 세상사람들이 당면한 일에 집착(執着)하는 데 국한하고 전체를 통찰하지 못하여 스스로 문란(紊亂)에 이른다는 뜻의 근심이요, 그것을 슬퍼하는 것이 깊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한 수의 시(詩)는, 가히 공(公)이 깊은 깨달음(證覺)의 경지에 서 있어, 근심스러운 인간세상과 깊이 단절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일은 또 공(公)의 칭호가 세 번 변한 것에서도 볼 수 있다. 처음에 호를 도원(桃源)이라 한 것은 반드시 시조왕(始祖王) 탄생처(誕生處)인 선도산의 뜻이요, 다음에 석당(石堂) 이라고 한 것은 말하지 않아도 견백(堅白)을 통찰한다는 뜻이요, 세 번째로 관설당(觀雪堂)이라고 한 것은, 즉 남김없이 녹아 없어져 깊은 깨달음을 다한 곳이라는 뜻이다. 하물며 생명(生命)을 바쳐 절개를 세우고 불에 타서 눈으로 변하는 기우(奇遇)6)를 몸소 실천한 분임에야. 그러므로 징심록(澄心錄)을 쓴 근본(根本)이 고사에 근거하여 증각자(證覺者)에게서 나온 것이 분명하다. 그 고사는 비단 한 문중에 전해진 것만이 아니요, 공(公)이 보문전(寶文殿)7) 이찬(伊飡)8) 10년(十年) 사이에 반드시 그 상세한 것을 얻었을 것이다. 念煙景者 塵世之風景 념연경자 진세지풍경 客心者 自我之雜念 객심자 자아지잡념 煙塵雜念 彼此流落 연진잡념 피차유락 無一點殘滓則唯存者 淸秋澄江之本原而已 무일점잔재칙유존자 청추징강지본원이이 然後 堅白石之古今證理 難通者 연후 견백석지고금증리 난통자 坐對澄江而莫說憂愁 좌대징강이막설우수 其所謂坐對澄江者 徹底通觀之意也 기소위좌대징강자 철저통관지의야 又所謂莫說憂愁者 古今世人 執着於當面之局限 우소위막설우수자 고금세인 집착어당면지국한 未得於全體之通察 미득어전체지통찰 自紊致亂之意憂愁而愁之而深故 莫說也 자문치란지의우수이수지이심고 막설야 此一首詩 可以見公立於證覺之境地 憂愁人世之深切者也 차일수시 가이견공입어증각지경지 우수인세지심절자야 此事又見於公之稱號三變之間 차사우견어공지칭호삼변지간 初曰桃源者 必始祖王誕生處仙桃山之意也 초왈도원자 필시조왕탄생처선도산지의야 次曰石堂者 卽此黙識而通觀堅白之意也 차왈석당자 즉차묵식이통관견백지의야 三曰觀雪堂者 卽消融無餘證覺之盡處也 삼왈관설당자 즉소융무여증각지진처야 況其滅生立節 炎死化雪之奇遇躬行者乎 황기멸생입절 염사화설지기우궁행자호 然則澄心錄記述之本 根於古史 出於證覺者明也 연칙징심록기술지본 근어고사 출어증각자명야 其古史者 非但家傳而公在寶文殿伊飡十年之間 必得其詳矣 기고사자 비단가전이공재보문전이손십년지간 필득기상의 주석 해설) 1) 진세 : 티끌이 있는 세상. 곧 이세상을 가리킨다. 진속(塵俗) 2) 연진 : 연기같이 일어나는 티끌 먼지. 세상속사(俗事) 3) 견백(堅白石) : 중국 춘추전국시대 공손룡(公孫龍)이라는 사람이 내건 일종의 궤변. 단단하고 흰 돌은 눈으로 보면 흰 것을 알수 있으나 단단한 것은 모르며, 손으로 만지면 단단한 것만 알수 있을 뿐 흰줄은 모르므로, 단단한 것과 흰 것은 다르다는 이론. 곧 억지를 써서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그른 것을 옮다 하며, 같은 것을 다르다고 하 는 궤변. 4) 통관 : 전체를 통하여 내다봄. 전체에 걸쳐서 한번 흝어봄 5) 증각 : 깊이 깨달음 6) 기우 : 이상한 인연으로 만남 7) 보문전 : 동국열전에 박제상을 보문전 태학사에 임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8) 이찬 : 신라 때 17관등 가운데 둘째 위계. 진골이 하던 벼슬인데, 3대 유리왕 9년 서기 32년에 설치함 -----------<<<이하 부산 민박사님 https://cafe.daum.net/myh1117>>>----------- 징심록 제4장, 부도지 별책 13.09.19 第四章 窃念煙景者 塵世之風景 客心者 自我之雜念 煙塵雜念 彼此流落 無一點殘滓則唯存者 淸秋澄江之本原而已 然後 堅白石之古今證理 難通者 坐對澄江而莫說憂愁 其所謂坐對澄江者 徹底通觀之意也 又所謂莫說憂愁者 古今世人 執着於當面之局限 未得於全體之通察 自紊致亂之意憂愁而愁之而深故 莫說也 此一首詩 可以見公立於證覺之境地 憂愁人世之深切者也 此事又見於公之稱號三變之間 初曰桃源者 必始祖王誕生處仙桃山之意也 次曰石堂者 卽此黙識而通觀堅白之意也 三曰觀雪堂者 卽消融無餘證覺之盡處也 況其滅生立節 炎死化雪之奇遇躬行者乎 然則澄心錄記述之本 根於古史 出於證覺者明也 其古史者 非但家傳而公在寶文殿伊飡(湌,餐)十年之間 必得其詳矣 제4장 가만히 생각해본다. 연경(아지랑이)은 속세의 풍경이요, 객심(나그네의 마음)이란 자아의 잡념이다. 연진과 잡념이 떨어져 나가고 한 점 흔적도 남아 있지 않으면, 오직 남게 되는 것은 맑은 가을 징강의 본원일 뿐이다. 그런 뒤, 고금의 이치를 증명하려는 견백석의 일은 원래 통하기가 어려운 문제인데, 징강을 대하고 앉아 우수를 말하지 않는다 하였다. 여기서 징강을 대하고 앉았다고 하는 것은 진리를 철저하게 통관하겠다는 뜻을 말한 것이다. 또 소위 우수를 말하지 않는다 함이란, 예나 지금이나 세상 사람들은 당면한 문제에 국한해서 집착하고 전체적인 통찰을 얻지 못하여 스스로 어지러워지고 혼란에 이른다는 뜻의 근심과 시름이다. 곧, 이러한 근심이 오히려 깊은 까닭에 다시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이 한 수의 시를 보아도, 가히 공께서 이룬 깨달음과 깨우침의 경지 및 근심과 시름이 깊은 인간 세상과의 단절과 그 초연함을 알 수가 있다. 이 같은 일은 공의 칭호가 세 번 변한 것에서도 또한 찾아볼 수 있다. 처음에 호를 도원이라 한 것은 시조왕 탄생처인 선도산의 뜻이요, 다음에 석당이라 함은 곧 굳이 말하지 않아도 견백을 통관하여 안다는 뜻이다. 세 번 째로 관설당이라 한 것은, 즉 의심이 남김없이 녹아 사라지고 그 깨달음 곧 증각의 다함을 이룬 곳이라는 뜻일 것이다. 하물며 그 생명을 바쳐 절개를 세우고, 불에 타서 죽은 것이 눈[雪]으로 변하는 기이함을 몸소 실천하여 보여준 분이심에야. 그런 즉 <징심록>을 기술한 근본이 비록 고사에 근거하고 있으나, 이는 깨달은 자의 밝음에서 연유한 바라 아니할 수 없다. 또 그 고사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집안에서 전해져 내려온 것만이 아니라, 공이 보문전에서 이찬으로 재직하던 10년 사이에 그 상세한 사실을 얻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한가위 복 많이 받으시고, 세상의 어려움이야! 다 지나갈 것. myh1117 13.09.19 최근에 법률적인 문제와 학교 강의가 겹쳐서 여러모로 정신이 없습니다. 대학들마저 정신이 없는데, 어떻게 이 사회가 제대로 흘러 갈런지... 서로 미워하지 말고, 싸우려 들지 말고, 같이 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다투어도 어차피 세월은 가고, 피해갈 수 없으면 즐기는 것이고....웃으며 ㅎㅎㅎ 학문을 하는 곳에서 자주 거론되는 것이 <서지증명>과 같은 위서논쟁의 근거와 추론이 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 세상을 혹세무민해서는 안 된다는 추상같은 불문율에 근거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가장 많이 사기와 도둑질이 난무하는 곳, 역시 학문하는 곳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어줍쟎은 지식으로 엄청나게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떠들어 대는 것이지요... 알고보면 한 줌도 안 되는 지식을 갖고,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 이런 것을 지적 사기라고 부르곤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가운데도 혹 진실과 사실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식이 넘쳐나는 곳에서도 분별할 줄 아는 지혜가 언제나 요구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안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앎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려줄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오늘은 청한자가 관설당 공의 기록과 그 앎이 어디에서 비롯하고 있는지를 추론하고 있습니다. 이는 당대의 비밀서적을 입수하여 열람하고, 그에 관한 사실의 기록을 추적하는 오늘의 서지학적 작업과 유사한 것입니다. 이러한 작업의 결과로, 청한자는 자신의 기록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저 역시 이러한 청한자의 작업을 따라가면서 부도지의 기록과 그 철학을 배워가는 것이기도 하구요... 어제 <관상>이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의 시대가 세조 파천의 시기인데, 그 시대를 살았던 당대 최고의 지성 그가 바로 청한자 김시습입니다. 인생에서 목숨을 걸만한 일이 얼마이겠습니까만은 어차피 하늘이 알고, 제가 안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인지 생각해보려 합니다. □ 제5장(第五章) 통관(通觀) 대저, 세상사람들이 다만 해가 동쪽을 따라 서쪽으로 향하는 것만 알고, 서쪽을 따라 동쪽으로 향하는 것은 모르니, 이는 소위 ‘징심록’이 말하는, 눈이 너무 밝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늘이 곧 빛을 없애고 밤을 만들어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어둡게 하여, 해가 서쪽을 따르는 이치를 증명하게 하는 것이다. 지금 한 사람이 밤중에 눈을 감고 해의 뒤를 따른다면, 반드시 이 해가 서쪽을 따라서 동쪽으로 향하는 것을 볼 것이니, 이에 곧 편견을 버리고 또 대지와 산천이 (공중에) 떠서 함께 도는 것을 볼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동쪽이 바로 서쪽이요, 서쪽이 바로 동쪽이 되어 마침내 동서의 구별이 없는 것이다. 이 때에 곧 원만(圓滿)한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눈을 감고 돌을 만지면 다만 그 견고(堅固)한 것만을 알고, 만지지 않고 보기만 하면 다만 그 흰 빛만을 알게 될 것이니, 이는 표면의 감각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표면과 이면 두 감각의 오고 감(交推)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고 만지는 감각을 모두 갖춘 후에야 곧 그 전체를 얻을 것이요, 비록 표면의 감각만이라도 그 오고가는 이치를 알면 역시 그 전체를 얻을 것이니, 그렇게 되면 단단한 것이 흰 것이요, 흰 것이 단단한 것이 되어 끝내는 단단한 것과 흰 것의 차이가 없어지므로, 이것을 가리켜 통관(通觀)이라 하는 것이다. 大抵世人 但知日之從東而向西 대저세인 단지일지종동이향서 不知日之從西而向東 부지일지종서이향동 此澄心錄所謂眼明故也 차징심록소위안명고야 故 天乃廢光設夜 使人眼暗而證其日從西之理也 고 천내폐광설야 사인안암이증기일종서지리야 今有一人 在於夜半 廢目而循日之踵則 必見此日從西而向東 금유일인 재어야반 폐목이순일지종칙 필견차일종서이향동 於是 乃廢偏見 又見大地山川 浮在於斡旋之中而同軌 어시 내폐편견 우견대지산천 부재어알선지중이동궤 然則東卽是西 西則是東 終無東西之別 연칙동즉시서 서칙시동 종무동서지별 此時 乃得圓覺也 차시 내득원각야 故廢見而撫石則 但知其堅 廢撫而見石則但知其白 고폐견이무석칙 단지기견 폐무이견석칙단지기백 此重於表感而不知表裏雙感之交推故也 차중어표감이부지표리쌍감지교추고야 故見撫具感然後乃得其全 고견무구감연후내득기전 雖表感知其交推之理則亦得其全 수표감지기교추지리칙역득기전 然則堅則是白 연칙견칙시백 白則是堅 終無堅白之差 백칙시견 종무견백지차 是謂之通觀也. 시위지통관야. -----------<<<이하 부산 민박사님 https://cafe.daum.net/myh1117>>>----------- 징심록 제5장 13.09.30 第五章 大抵世人 但知日之從東而向西 不知日之從西而向東 此澄心錄所謂眼明故也 故 天乃廢光設夜 使人眼暗而證其日從西之理也 今有一人 在於夜半 廢目而循日之踵則 必見此日從西而向東 於是 乃廢偏見 又見大地山川 浮在於斡旋之中而同軌 然則東卽是西 西則是東 終無東西之別 此時 乃得圓覺也 故廢見而撫石則 但知其堅 廢撫而見石則但知其白 此重於表感而不知表裏雙感之交推故也 故見撫具感然後乃得其全 雖表感知其交推之理則亦得其全 然則堅則是白 白則是堅 終無堅白之差 是謂之通觀也. 제5장 대개 세상 사람들이 해가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을 향하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서쪽을 따라서 동쪽으로 향하는 것은 알지 못한다. 이것은 <징심록>에서 말하는 바, 소위 눈만 너무 밝은 까닭이다. 그러므로 하늘이 곧 빛을 감추고 밤을 만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눈을 어둡게 하여, 저 해가 서쪽을 따르는 이치를 증명한 것이다. 지금 한 사람이 있어, 그로 하여금 야반에 눈을 가리고 해가 가는 종적을 따르게 한다면, 그는 반드시 해가 서쪽을 따라 동쪽을 향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에 곧 편견을 버리고 대지와 산천을 본다면, 이들이 공중에 떠서 같은 궤도로 함께 돌아가는 것을 볼 것이다. 그런 즉 동쪽이 곧 서쪽이요·서쪽이 곧 동쪽이 될 것이니, 마침내 동서의 구별마저 없어질 것이다. 여기에 이르면 가히 원만한 깨달음을 얻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눈을 감고 돌을 만지면 다만 그 딱딱함만을 알 것이요, 만지지 않고 돌을 보기만 한다면 다만 그것이 희다는 것만을 알 뿐이다. 이것은 다만 표면적인 감각만을 중시한 것이요, 안과 밖의 두 감각이 서로 교차하여 추리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고 만지는 감각을 두루 갖춘 뒤에라야 비로소 그 전체를 얻을 것이다. 또 비록 표면적인 감각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교차하여 추리되는 이치를 안다면 역시 그 전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단단한 것이 곧 흰 것이요, 흰 것이 곧 단단한 것이 되어 마침내 단단한 것과 흰 것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말하기를, 통관이라 한다. 벌써 열흘이 넘었고,,, 견백론과 통관이라.. myh1117 13.09.30 개인적으로 대학교와 다툼을 벌이고 있다가, 변론 답변서를 보고 까무러쳐서 재답변서를 작성하다 늦었습니다. 세상의 일이 이토록 말 많고 탈 많은 것인 줄 진즉에 알기는 하였습니다만, 막상 자신의 일이 되니, 역시 사람은 닥쳐 보아야만 안다고 하는 말이 거짓이 아니네요... 최근에 영화 <관상>이 김내경을 내세워 인기를 얻었더군요.. 그런 계유정난 세조 파천의 시기를 청한자 선생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선생은 이미 도를 얻어 세상의 일과 진리의 일을 나누기로 하신 분이라... 더 이상 출사하지 않고, 오직 <이소경>을 읽고 시문을 쓰면서, 산수와 더불어 세상을 희롱하기로 결심하신 것 같습니다. 숱한 문집과 금오신화와 같은 소설 역시 이런 선생 자신의 결심을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도 있을 것 같구요.... 이런 가운데 징심록을 지어, 조선 역대의 역사와 당시 왕조의 패륜을 함께 보며 논하고자 하십니다. 우선 이 앞부분들은 제상공 관설당의 학식과 인품을 주로 거론하는 부분이 되고 있는데, 뒤를 이어 후반부로 가면, 청한자 자신의 사론과 같은 철학적 내용들이 가미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지금 인터넷 상에서는 이 부분들을 확인하시기 어려울 것 같은데... 마지막까지 남김없이 확인해 보도록 하지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이 <징심록>은 세조 때의 수서령과 더불어 당대를 살았던 김시습선생의 소회가 같이 숨어 있는 것으로 판단되기도 합니다. 결국 한민족, 우리 고대사의 숨겨진 비사들이 세상에 무엇을 말하게 될 지는 알 수 없으나, 저는 늘 새로운 인류문화의 시발과 재출발에 대한 단서를 여기에서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길은 여전히 사해통화, 부도복본, 천인합일의 길이 아닐까 하는 것이지요.... □ 제6장(第六章) 허실견백(虛實堅白)에 대한 古今의 論及 무릇 사물(事物)은 모두 겉과 속이 있다. 속이 빽빽하면 충실(充實)하고, 드물면 구멍이 뚫린다. 겉이 빽빽하면 색(色)이 모이고, 드물면 없어진다. 이는 허실(虛實)1) 공색(空色)2)의 교추(交推, 오고 감)인 것이다. 또 실(實)이 빽빽하면 견고(堅固)하고, 드물면 기(氣)가 빈다. 색(色)이 빽빽하면 질(質)을 만들고, 드물면 흰색으로 돌아온다. 이는 기질견백(氣質堅白)의 교추(交推)인 것이다. 그러므로 색질견실(色質堅實)3)(한 것)은 바탕(相)이 있어서 밝히기에 족하고, 허백기공(虛白氣空)4)(한 것)은 이름은 없으나 조짐(兆朕)이 있다. 정(情)은 바탕이 있는 데서 나와, 금석수토(金石水土)5)와 비잠동식(飛潛動植)6)의 형상(形象)이 밝혀진다. 도(道)는 무명(無名)에서 나와 은현생멸(隱現生滅)과 소장성쇠(消長盛衰)의 세력(勢力)이 조짐(兆朕)을 나타내니, 우주(宇宙) 만상(萬象)이 곧 이루어진다. 도(道)는 하나의 궤도(軌道)로 크게 뭉치고 형(形)은 천(千) 가지로 서로 다르니 (도자道者는 일궤대동一軌大同하고 형자形者는 천태상수千態相殊하니), 이에 성인(聖人)이 일으키어 온 누리에 통공(通空)7)하는 관음(管音)8)을 조음(調音)9)하여 그 대동(大同)의 정(情)을 살피고, 허실(虛實)의 척도(尺度)에 따라 그 서로 다른 세력(勢力)을 조사하니, 이는 진실(眞實)로 사물(事物)을 성찰(省察)하여 증리(證理)하는 진법(眞法)과 신라가 금척(金尺)과 옥적(玉笛)10)을 쓴 그 유서가 상고지세(上古之世)에 연유하고 있음이 분명한 것이다. 대저 소밀(疏密)은 일체(一體)요. 기질(氣質)도 일체(一體)요. 공색(空色)도 일체(一體)요. 견백(堅白)도 일체(一體)이며, 각기 양쪽에 있는 것은 장차 교추상자(交推相資)11)하여 성물성사(成物成事)하고자 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천하(天下) 만물(萬物)이 반드시 빈 구멍(虛竅)에서 이름을 이루어 위치가 견고(堅固)하게 되고, 천하(天下) 만사(萬事)가 반드시 실(實)이 교차(交叉)하는 데서 바탕을 보여 흔적이 하얗게 되니, 이는 태고(太古) 불역(不易)의 진전(眞詮)12)이다. 그러므로 허실견백(虛實堅白)에 대한 고금(古今)의 논급(論及)은 모두 상세(上世)에서 기원(基源)하였으나 그 바른 것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가 제상공(堤上公)의 근심과 한탄을 깊고 통절하게 한 까닭이다. 凡事物 皆有表裏 裏密則充實而疏則空通 범사물 개유표리 리밀칙충실이소칙공통 表密則色聚而疏則衰虛 此虛實空色之交推也 표밀칙색취이소칙쇠허 차허실공색지교추야 且實密則堅固而疏則氣冲 色密則質造而疏則還白 此氣質堅白之交推也 차실밀칙견고이소칙기충 색밀칙질조이소칙환백 차기질견백지교추야 故色質堅實者 有相而足徵 虛白氣空者 無名而可朕 고색질견실자 유상이족징 허백기공자 무명이가짐 情生於有相 金石水土飛潛動植之形 徵焉 정생어유상 금석수토비잠동식지형 징언 道生於無名 隱現生滅消長盛衰之勢朕焉 宇宙萬象乃成也 도생어무명 은현생멸소장성쇠지세짐언 우주만상내성야 道者 一軌大同 形者 千態相殊 도자 일궤대동 형자 천태상수 於是 聖人作調通空之管音 察其大同之情 어시 성인작조통공지관음 찰기대동지정 準虛實之尺度 審其相殊之勢 준허실지척도 심기상수지세 此誠證理省事之眞法 而新羅之用金尺玉笛 其緖 차성증리성사지진법 이신라지용금척옥적 기서 由於上古之世者 明也 유어상고지세자 명야 大抵疏密一體也 氣質一體也 空色一體也 堅白一體而各有兩般者 대저소밀일체야 기질일체야 공색일체야 견백일체이각유양반자 將欲支交推相資而成物成事故也 장욕지교추상자이성물성사고야 故 天下之物 必成各於虛竅而位堅 고 천하지물 필성각어허규이위견 天下之事 必示相於實叉而痕白 此太古不易之眞詮也 천하지사 필시상어실차이흔백 차태고불역지진전야 故 古今論及於虛實堅白者 皆源於上世而未得其正 고 고금논급어허실견백자 개원어상세이미득기정 此堤上公之所以愁嘆之深切者也 차제상공지소이수탄지심절자야 주석 해설) 1) 허실 : 음양론과 대비되는 허실론. 허실론은 홍대용의 ‘의산문답’에서 나타난다. 2) 공색 : 공과 색. 비어 있으면 색이 없으므로 공과 색은 대비가 된다. 3) 색질견실 : 색이 차면 질을 만들고 실이 차면 견고하다. 색과 질, 그리고 견과 질 4) 허백기공 : 색이 비면 하얗게 되고 실이 드물면 기가 없다. 허와 백, 그리고 기와 공 5) 금석수토 : 여기서는 단순한 물상을 말할 뿐 원소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6) 비잠동식 : 새와 물고기와 동물과 식물 7) 통공 : 모든 공간에 통함 8) 관음 : 피리소리 9) 조음 : 소리냄, 부도지의 제관조음 10) 옥적 : 나중에 소개한다. 11) 교추상자 : 서로 밀어서 서로 도움 12) 진전 : 진법(眞法) -----------<<<이하 부산 민박사님 https://cafe.daum.net/myh1117>>>----------- 징심록추기 제6장 13.10.03 第六章 凡事物 皆有表裏 裏密則充實而疏則空通 表密則色聚而疏則衰虛 此虛實空色之交推也 且實密則堅固而疏則氣冲 色密則質造而疏則還白 此氣質堅白之交推也 故色質堅實者 有相而足徵 虛白氣空者 無名而可朕 情生於有相 金石水土飛潛動植之形 徵焉 道生於無名 隱現生滅消長盛衰之勢朕焉 宇宙萬象乃成也 道者 一軌大同 形者 千態相殊 於是 聖人作調通空之管音 察其大同之情 準虛實之尺度 審其相殊之勢 此誠證理省事之眞法 而新羅之用金尺玉笛 其緖 由於上古之世者 明也 大抵疏密一體也 氣質一體也 空色一體也 堅白一體而各有兩般者 將欲交推相資 而成物成事故也 故 天下之物 必成各於虛竅而位堅 天下之事 必示相於實叉而痕白 此太古不易之眞詮也 故 古今論及於虛實堅白者 皆源於上世而未得其正 此堤上公之所以愁嘆之深切者也 제6장 무릇 사물에는 모두 표리가 있다. 그 안이 조밀한 즉 충실하고, 성근 즉 비고 또 통한다. 그 밖이 조밀하면 색이 모이고, 성글면 쇠퇴하고 허해진다. 이는 허실과 공색이 서로 교대하여 대체하는 것이다. 또 내실이 조밀한 즉 견고해지고, 성글면 기가 비게 된다. 색이 조밀하면 그 질을 만들어내고, 성근 즉 흰 것으로 돌아간다. 이것은 기질과 견백이 서로 교체함이다. 그러므로 색과 질이 견실한 것은 그 형상이 있어서 징험하기에 족하고, 허하고 희며 기氣가 빈 것은 이름마저 없으나 그 조짐이 있다. 형상이 있음에서 정이 생하여, 금석수토와 비잠동식, 즉 날고 헤엄치며 움직이고 심어 자라는 동식물의 형태를 부르는 것이다. 도는 무명에서 생하여, 은현생멸 즉 감추고 드러내며 생하고 멸함과 소장성쇠 즉 줄고 늘고 번성하고 쇠퇴하는 기세의 조짐을 나타내니, 우주만상이 이에 이루어진다. 도는 한 가지로 크게 같은 것이나, 나타나는 형태는 천태만상으로 서로 다르다. 여기에 성인이 만공에 통하는 관음 즉 피리 소리를 조율하여, 그 크게 하나 되는 성정을 관찰하고, 또 비고 차는 허실의 척도를 기준으로 삼으며, 다시금 서로 다른 기세들을 깊이 심리하였으니, 이것이 참으로 사물을 성찰하고 이치를 증명하는 참된 이법이다. 곧 신라에서 사용한 금척옥적이 바로 그것이요·단서이니, 이는 상고 시대로 부터 유래하였음이 분명한 것이다. 대저 소밀도 일체요, 기질 역시 일체며, 공색 또한 하나요, 견백도 하나일 뿐이다. 그럼에도 각기 양쪽이 있음은 이들이 장차 교추상자, 즉 서로가 인연생기하여 만사만물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하 만물이 반드시 허규에서 비롯하여, 그 이름을 이루어 존재를 굳건히 하고, 천하만사가 반드시 실함이 교차하는 데서 그 형상을 드러내어 흔적을 밝히는 것이니, 이것이 태고에서부터 비롯한 바꿀 수 없는 참된 법칙이다. 그러므로 고금에서 논란해 온 허실견백이란 것도 모두가 저 상고대에서 유래한 것일 따름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 바른 것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제상공이 말한 바, 깊고 통절하다는 근심과 한탄의 까닭이라 하겠다. 기질과 견백의 교체, 유명한 견백론을 말합니다. myh1117 13.10.03 견백론이란 장자와 같은 시절에 활동했던 제자백가 중 명가에서 나온 바의 유명한 명제입니다. 곧 굳은 것은 흰것이 아니다. "흰 말은 말이 아니다"와 같은 언어논리적인 명제를 다룬 논변이기도 합니다. '혜시'라는 '장자'의 친구가 남화경(장자)에는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둘은 늘 말로 갖고 티격태격하는 것이 자주 나옵니다. 바로 그런 종류의 논변을 이 장에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실 논리로서야 웃기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막상 이걸 언어로 말할라 치면, 사실상 쉽게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언어란 것이 바로 그와 같이 문제가 많다는 것이지요... 우리의 삶의 진실과 진리가 말하고자 하는 언어도단의 세계와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이를 토대로 청한자 선생은 금척과 공색일여의 대단히 복잡한 형이상학의 세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허실견백이 다 하나일지라도 현실의 어긋남은 천리처럼 멀어지게 됩니다. 부도복본, 사해통화, 마고 허실의 옛 역사가 있다 하여도, 지금 청한자의 시대는 계유정난을 맞이하여 뜻 있는 지사들은 다 음지로 숨고, 이치는 없는 것이 힘만 앞세워 세상을 농단하고 있는 시절입니다. 이런 시대에 관설당 공과 같이 계림의 신하로 죽은 그 기개와 의리를 청한자 김시습인들 어찌 버릴 수 있었겟습니까? 옳고 그름은 그 자체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지금 세상의 대세가 민족의 과거를 무시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심지어 그런 역사를 매도하는 세태를 만나 있습니다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단의 역사와 부도 복본의 길, 이 모두가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한 옛 선조들의 지혜의 속삭임 아닐까 합니다. 다만 어리석은 후손들이 이 같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제 몸 하나 살아 생전에 유지할 것만을 노리는 때문일 것입니다. 민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보고 역사를 왜곡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건 왜곡이란 것이 무슨 뜻인지를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오히려 더 가까이 진실에 가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잃어버린 역사 속에 헤매고 있는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덕 볼 일도 없는데도, 이와 같은 길에 함께 하는 것은 다름아니라, 바로 이것이 진실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