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3_4 : 남해 양아리 각석]* 5 천년전 하늘에 편지 <무명씨>1. 개천절을 알리는 5 천년전 하늘의 편지, 남해군 낭아리 석각본 해독
필자는 동북공정을 막기위해 원래 중국대륙은 우리 땅 이었고
지금 한자의 원조인 금문(金文)도 애초 우리 민족이 만들었다는 금문 해독의 글을 연재로 독자님께 보내고 있었다.
즉 지금으로 부터 대략 5~ 6 천년전 신석기 문명이 끝이 나고 청동기 문명이 시작될 무렵
지금 바이칼호 부근에는 북방계 몽골리안 일족이 살았는데
그들은 해 를 숭상하여 환한 부족 이라는 환족(桓族)의 무리었고 그 무리의 지도자가 바로 환한님인데
이 환한님이 화나님 > 하나님 > 하느님이라 했으며 또 환님이라고도 했는데 이 환님이 환인(桓因)이라 했다.
이 환족은 차츰 인구가 늘자
그 무리(庶子部)아드님 환숫(桓雄)께서 나라를 세우고자 지금 앗선(첫조선) 유적지로 내려 오셨다 했다.
그 환족 사람들은 마치 신선과 같이 이심전심으로 살았으니
구차한 말이나 글자까지 없어서 개국을 하려는 환숫께 내린 천부경 조차 말로 전하는 구전지서(口傳之書)라 했다.
그리고 환숫께서는 이 위대한 하느님 말씀 천부경을 잊지 않으려고
신하 신지(神지)에게 명 하여 말을 보관하는 방법을 만들라 하였고 이에 신지는 사슴 사냥을 나갔다가
사슴이 도망가자 그 발자국을 보고 만든것이 인류 최초의 문자가 되니 이를 신지녹도전자(神誌鹿圖篆字)라 한다 했다.
그러나 차츰 인구가 늘고 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부족한 말과 글자를 보충하기 위해 그림으로 그려 쓰시던것이 금문(金文), 갑골문(甲骨文)이고
이것을 중국인들이 가져다 자기네 말과 맞추고 발전 시키어 진시황때 대전(大篆), 소전(小篆),
그리고 지금쓰는 한자가 됬다는것을 입증하기 위해 금문해독을 하여 독자님들께 보내 드렸었다.
그리고 이 금문이란 우리 조상이 만들었으니 반드시 우리가
우리 상식과 우리 말로 해독해야지 중국인이나 다를 외국인은 할래야 할 수가 없다는 증거까지 제시 했었다.
이렇게 금문을 해독, 독자님께 보내던중 독자님의 낭하리고각 해독 질문을 받고 이를 해독해 보니
이것도 신지녹도전자, 금문, 갑골문, 스메르 쐐기문자의 어머니 우르 문자와 그림이 혼용된 것이므로
이것부터 먼저 해독하여 조금이나마 중국의 동북공정 대처에 보템이 되려하는것이다.
아래 낭하리 고각( 古刻 - 옛날 석각) 그림은 옛날 부터도 그랬지만
지금도 흔히 서석이나 그간 고고학계, 사학계에서 무엇인지 몰라 궁굼해 하던 것이었고 그 설도 분분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해독해 보면 이 그림, 글자는 그림이 글자로 발달하는 과정이 나타나고 있으므로
우리 역사는 물론 세계 인류문화 유산이 된다고 생각되고, 또 꿈같은 기대인지는 모르나
우리나라 진도등지에서만 나타나는 모세의 기적처럼 초사흘 달이 금성과 만나 물그림자에 비치는 날,
이런 환상적인 날이 개천절을 알리는 하늘의 편지이고
이를 낭하리 바위에 새겨 놓았다면 우리 조상의 천문관측 수준은 더 말해 무엇하랴?
이를 자세히 분석해 보고 이를 설명한다.
아래 화면은 흔히 인터넷 상에 뜨는 그림이다.
* 왼쪽그림이 낭하리 고각이고
다음은 평양 법수교 아래에 있었다는 신지녹도 전자인데
이는 필자가 해독해본 바에 의하면 천부경이 아니라 자식을 많이 낳게 해 달라는 일종의 기천문(祈天文)으로
필자 카페 ' 신지녹도 전자 천부경 해독' 에서 이미 해독해 놓은것이며
다음은 지금 중국 산동성 백수현에 있는 창성조적서 비문으로
이도 필자의 카페 ' 신지녹도전자 천부경 해독'에 해독한 글자들인데
이는 중국인들이 자기네 글자를 만든 창힐이 한자 만든 과정을 적은것으로 알고 자기네 국보로 알고 있으나
실은 창힐은 신지한데 6년간이나 글자 만드는 법을 배운자로 환숫(황웅)이 배달(培達-밝달) 나라 세우는 기틀을
만드는것을 보고 적은 일종의 견문록으로 이는 중국의 국보가 아니라 실로 우리의 귀중한 국보인것 이다,
다음 위는 질그릇 만든 사람의 자기 싸인으로 불(火)과 나무(木)이고 그 아래는 갑골문.
다음글은 야후에 올라있는 글이고 또 모든 사학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내용이다.
우선 옛 기록인 환단고기에 나오는 이야기 부터 알아 본다.
* ...亦嘗聞南海道 郎河里 之溪谷及鏡珀湖先春嶺與夫烏蘇里以外巖壁之間時或有發見彫刻非梵非篆人莫能曉此
非神誌氏之所作古字 ...太白逸史神市本記
(또한 소문을 듣건데, 남해도 낭하리(郎河里) 의 계곡과 경박호(鏡珀湖) 선춘령(先春嶺)과 오소리(烏蘇里) 바깥의
암벽 사이에서 언젠가의 조각을 발견하였는데, 범자(梵字)도 아니고 전자(篆字)도 아니어서
사람들은 알수가 없는것 이라 했으니 이것이 신지씨가 만든 옛 글자가 아닌지 모르겠다.)
* 大辨說註曰 南海縣 郎河里 之溪谷巖上有神誌古刻 其文曰 桓雄出獵致祭三神 又曰 大始傳古只憑口舌久而
後乃形以爲畵 又復畵變而爲之字盖文字之原...
(대변설大辯說>>의 주에 말하기를 “남해현 낭하리의 계곡 바위 위에 신시의 고각이 있다.
그 글에 <한웅이 사냥 나왔다가 제를 삼신께 드리다>라고 되어있다”고 했다. 또 가로대 “대시 大始에 옛것을
전함에 있어 다만 입으로 전해오는 이야기에만 의지한 지 오래이다.
나중에 형상을 그림으로 그렸고 또다시 그림이 변하여 문자가 되었다.)
* 진시황때 서불(徐示)이 불로초를 구하러 다닌 흔적이라는 서불제명각자(徐市題名刻字)
또는 "서불이 이곳을 지나가다"라는 의미의 서불과차문(徐市過此文)이라 불리어 왔다.
또 인터넷에 올라 있는 글을 보면
* ....이 신지 전자의 초기 모습이 바로 위 그림 맨 왼쪽의 낭하리 암각화다.
환단고기에 인용된 대변설의 주에 이르기를 “남해현 낭하리에 계곡 바위 위에 신시의 고각(古刻)이 있다.
그 글에 환웅천황께서 사냥 나왔다가 제를 삼신께 드린다고 했다”고 하였다.
그 개량된 형태가 1942년에 발행한 영변지에 실려 있다. 환단고기의 저자 계연수 선생이 평안북도
영변군 묘향산에서 천부경이 새겨진 옛 비석을 발견한 내용과 더불어 신지 전자(篆字)를 옮겨 놓은 것이다.
환단고기를 세상에 공개한 이유립 옹도 저서 대배달민족사에 평양 소재 법수교 고비(古碑)라고 밝히면서
신지 전자(篆字)를 소개해 놓았다. 그밖에 구한말 서예의 대가인 김규진이 저술한 서법진결과
백두용(白斗鏞) 편, 해동역대명가필보(海東歷代名家筆譜)에도 신지 전자가 실려있다.
*또한 "최치원(崔致遠)이 일찍이 신지(神誌)가 새겨진 옛비석을 찾아 . . . 즉 낭하리(郎河里)의 암각(岩刻)이
그것(神誌)의 실제 흔적(痕迹)인 것이다." 등으로, 과거부터 여러 문헌에서 보이고 있다. (이하 생략)
* 이상 글들은 필자가 낭하리 고각을 해독해본 결과로는 과연 환단고기의 말은 진실이 된다.
또 이 그림 글자는 어쩌면 개천절에 천제를 지내던 기록일수도 있고
이 날을 잊지 말라는 하늘의 멧세지 나 달력일 지도 모른다.
따라서 아직도 위서 취급을 받는 환단고기의 기록이 위서가 아니라는 또하나의 입증도 된다.
그러나 서불이 자신의 행적을 알리기 위해 그림,
또는 글자를 써 놓았다거나 최치원이 와서 보고 천부경 81자로 번역했다는 말은 모두 속설이며 허구이다.
즉 이 그림하고 서불과는 관계가 없다. 즉 진시황때는
이미 대전(大篆) 소전(小篆) 등 한자가 있었기때문에 서불이 흔적을 남겼다면 전자로 남겼어야 한다.
또 최치원도 이 그림글자를 보고
신지녹도전자 천부경을 번역할 수 없다는 것은 신지녹도전자 천부경이나 이 낭하리 석각을 해독해 보면 안다.
이 그림, 글자가 매우 오래됬다는것은 꼭 과학적 검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그 그림, 글자 해독만으로도 맞는 말이다. 최소한 단군때나 그 이전 그림, 글자로 5~6 천년 이상은 될것이다.
그렇다면 당시는 철이 생산되기전 신석기나 청동기 때라 청동으로된 정 등
시원치 않았을 연장을 가지고 당시 누가 그 애를 써가며 이렇게 아무도 알아먹지 못할 그림을 그려 놓았을까?
글자던 그림이던 그리는것은 누가 보고 알아보라고 그리는것이다.
그렇다면 그간 우리 고고학계 사학계에서는 왜 아직 이 그림을 해독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이 그림이나 글자를 그저 신비하게 볼뿐이었고 또 그간 누가 해독하여 보려 했어도
이 그림을 해독할려면 우선 천부인으로 만들었을 수 밖에 없는 ㄱㄴㄷ...ㅎ 속의 뜻이나
신지녹도전자, 금문, 가림토 또는 수메르의 우르문자 등 해독하는 방법을 모두 알았어야 하기 때문인데
강단사학등에서는 그것을 연구해 보기는 커녕 아직 신지녹도전자나 가림토의 존재 부터 부정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지금까지 공개된 탁본이나 사진들은 모두 위아래가 뒤바뀐, 거꾸로 된 것이다.
환단고기를 번역하신 임승국 박사의 '한단고기 48 쪽에도 이 그림이 있는데 역시 거꾸로되 있으며
이 그림 설명을 서불제명각자라고 추정하고 있다.
우선 이런 서적등에 나타는 그림은 위 아래가 거꾸로 된것을 모르니 그대로 올린것이다.
이것을 우선 바로잡아 보자.
2.개천절을 알리는 5 천년전 하늘의 편지, 남해군 낭아리 석각본 해독
인터넷에 뜨는 암각화(남해군 낭아리 고각), 남해도 석각
여기 위 사진 아래 보이는 天 자는 그 예리한 조각으로 보아 쇠로된 정이 생겼을때 누군가가 새긴 낙서로 본다.
필자는 이 그림을 보고 이 그림이 뒤집혀있음을 알고 바로잡아 해독한것이 아래 그림이다.
필자가 바로 잡아본 그림
다음은 수레 같은것이 있는데 수레 앞에는 상징적인 바퀴까지 그려 놓았다. 그리고 그 수레에는
어떤 사람이 타고 있는데 이 사람은 그림의 비율로 보았을때 과장되게 큰 것으로 보아 높은 사람이다.
이것은 글자가 아니라 그냥 그림인데 이 그림은 위 대변설 주에서 말하듯이 환웅이 사냥을 나왔다는 것을
추상적으로 그렸을 수도 있고 환웅을 높히기 위해 올라 가는 그림이 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뒤에서 天 자 같은 것이 수레를 밀고 있는데
이 수레가 수평이 아니고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이 수레 뒤의 나무는 정상적 수직으로 서 있는데
앞의 나무는 암벽에 붙은 나무라 약간 경사져 있다.
즉 뒤의 나무가 수직으로 선 것으로 볼때 이 수레는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수레를 밀고 올라가는 天자는 금문으로 볼 때 사람이다.
즉 초기금문에서 사람을 天자로 그린 예가 많았었는데
그 이유는 大자 처럼 네 활개를 편 사람은 항상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기 때문에 天자 같이 그렸다.
위 그림의 정확한 해독과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 금문과 갑골문을 비교하며
그 변하는 과정을 설명한 ' 甲骨文字形字典- 北京長征出版社 발행' 에 올려있는
중국 책자를 인용하여 설명하는데 이는 비단 그 책 뿐 아니라 중국의 금문을 설명한 책이 거의 그렇다.
* 天자. 금문 > 갑골문의 그림
天 자 설명문 이지만 夫 자 같은 글자도 많고
아래에는 아예 사람 머리까지 그려 놓았는데 어떤 사람머리는 口 자 같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이 그림들은 금문에서
갑골문, 그리고 대전(大篆),소전(小篆)으로 변하는 순서대로 정리해 놓은것이 아니다.
즉 우리 민족이 만든 초기 금문은 하늘 천부인 ㅇ 모양대로
맨아래 그림과 같이 사람은 머리인 ㅇ에 아래 大 를 쓰고 땅은 보통 땅 천부인대로 口를 쓰지만
지나족들은 머리가 ㅇ 이면 개성이 없는 멍청이라 하여 머리도 口 자를 썼다.
따라서 아래 글자중에 머리를 口 자로 그린 것은
우리 조상이 만든 글자가 아니라 후세에 중국인들이 제멋대로 그린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