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1_06 : 한단고기_아랍이스라엘* 잃어버린 부족 구하기, 아세르 나임 지음 / 이종인 역, 시대의 창 펴냄 2003/12월
1860년대에 에티오피아 전역을 순회하며 선교하던
영국의 선교사들이 깜짝 놀랄만한 한 종족을 만났다.
오지에서 낯설은 부족 하나 만나는 자체가 `놀라운 일은 아니겠으나,
여기 영국 선교사들이 만난 이 종족은 ‘유대교’의 바로 그 모습이었다.
에티오피아 산지에 사는 유대인(?), 저들은 두말이 필요없는 유대인들이었다.
피부색만 까맣지 오히려 본토 유대인들보다 더 전통과 격식에 충실했다.
선교사들은 생각했다.
솔로몬 왕을 만나러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시바 여왕이 생각났고,
사도행전의 에티오피아 내시 간다게가 떠올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수백 년 또는 수천 년 전에 이스라엘 신앙을 물려받은 것이 아닐까?
그들은 북부 에티오피아의 바위가 많은 지대 깊숙한 곳,
시미안 산맥의 준봉들이 눈 안에 들어오는 곳에서
농사를 짓거나 토기를 만들어 주변 사람들과 거래를 하는 수준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팔라샤”라고 불리우는 이 종족은 수천 년 동안 외부와 단절된 환경에서 살았다.
선교사들이 저들을 개종시키려는 과정에서 발견한 사실들은
저들 팔라샤들이 고대 유대교 신앙을 실천하면서
안식일, 또는 정결의식 등 히브리인들과 똑같은 관습을 지켜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저들은 솔로몬과 시바 여왕 사이에서 태어난 적통 이스라엘이라고 전해진다.
저들은 정통 `이스라엘 가문' 이라 하여 `베타 이스라엘'이라고 호칭한다.
베타 이스라엘(팔라샤)이 선교사들과의 대화를 기피하자,
선교사들은 조셉 할러비(Joseph Halevy)라는 유대인 학자를 내세웠다.
할러비가 저들 지도자를 만나서 자신은 예루살렘에서 왔으며
오직 아도나이(주님)만 믿는 유대교 신자라고 하자
저들은 의심을 풀고 말하기를 백인 중에 유대인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할러비에게 `당신이 예루살렘, 축복받은 도시에서 왔단 말이오?
그래, 당신 눈으로 시온산, 이스라엘 주님의 집, 거룩한 성전을 보았단 말이오.
라헬 할머니 묘소를 안다는 말이오?'
팔리샤들은 언젠가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는 꿈을 가지고
수천 년 동안 에티오피아 산지에서 살아남아 있었던 것이다.
지난 1991년 에티오피아는 내전 상황이었는데
그때 팔라샤가 표적이었으며 대학살이 예고되었다.
`아디스의 백정'이라는 별명을 가진 독재자 멩기스투는 베타 이스라엘을 담보로
이스라엘과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얻어내기 위해 줄타기 외교를 하였다.
저들 요구에 응해 주지 않으면 베타 이스라엘을 모조리 죽이겠다고 겁을 주었다.
이 책의 저자 아셰르 나임은
베타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하여 주 에티오피아 대사로 부임,
독재자 멩기스투와 협상을 하여 이른바 `솔로몬 작전'을 통해
정확히 25시간 안에 1만 4천여 명의 베타 이스라엘을 탈출시켜
`아버지의 땅'이라 하는 예루살렘까지 데려온 내용이
〈잃어버린 부족 구하기〉에 담겨 있다.
이 책은 흥미진진한 스릴이 있으며
기독교인들은 `구속' 또는 `대속' 이라는 용어에 익숙해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 아, 이것이로구나 하는 힌트를 얻게 된다.
앞서 말한대로 미국과 이스라엘은 독재자와 힘든 외교전을 했다.
결국 돈이 필요했다.
베타 이스라엘의 몸값이 자그마치 3천 5백만 달러나 되었다.
이 돈이 없으면 3천년 동안 조국, 아버지의 나라,
믿음의 조상들이 살아온 거룩한 땅을 소원했던 팔라샤들이 집단 학살로 죽어가야 한다.
이 많은 돈 3천 5백만 달러,
이 돈을 미국인 100명이 사흘 안에 기부하여 탈출 작전은 성공을 한다.
3천 5백만 달러가 베타 이스라엘 1만 4천명의 목숨 값이다.
이것이 대속이다. 대신 갚는다, 대신 속죄한다,
“대신 죽는다”의 뜻을 담은 예수의 십자가를 기독교인은 여기서 배우게 되며,
유대인들의 동족애가 얼마나 뜨겁고 간절한가를 볼 수 있다.
동족애가 얼마나 강했으면 수천 년 유랑을 거듭해온 저들이
오늘의 세계를 움직이는가를 눈여겨볼 수 있는 내용들이다.
현대판 모세의 기적이라고도 하는 1992년의 대작전,
비행기 10대로 정원의 열 배를 태우고 대탈출(대구출)을 시도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에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지혜와 용기가 들어 있다.
에티오피아와 예멘의 싸움
솔로몬의 아이를 잉태했다고 전해지는 시바의 여왕,
그녀는 어떤 인물이었기에 에티오피아와 예멘 두 나라가
서로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주장하는가?
그러나 두 나라의 어디에서도 그녀에 대한 유적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그녀는 진정 누구인가?
미인의 대명사로 혹은 현명한 통치자의 대명사로 쓰이는 말이다.
그 시바여왕의 탄생지를 놓고 에티오피아와 예맨이 서로 연고권을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악숨이란 지역을 통치한 마케다 여왕을
시바의 여왕으로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에티오피아인들은 그녀가 이곳의 장본인이라고 주장한다.
1974년 군인들에 의해서 왕위에서 축출된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자신이 바로 솔로몬 왕과 시바 여왕의 직계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솔로몬과 시바 여왕 사이에 “메네리크라”는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가 기원전 1270년에 세워진 에티오피아의 솔로몬 왕조의 선조라는 것이다.
1931년에 제정된 에티오피아 헌법에는 "솔로몬 왕과 시바의 여왕 사이에 태어난 아들
“메네리크”의 직계 자손이 에티오피아의 황제이다."라고 명기되어있다.
그러나 예맨은 “무슨 헛소리냐”고 반복한다.
마리브지역을 통치한 빌키스 여왕이 진짜 시바의 여왕이라는 것이다,
코란에는 빌키스 여왕이 이곳의 왕국을 다스렸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주민들은 그녀의 무덤이 곧 마리브에서 발견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예맨의 한 관광 여행 가이드에는 시바 여왕이
마리브의 고대 댐을 세웠고
그녀의 이름을 딴 두 개의 사원이 남아 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