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한단고기(桓檀古記)기사/아랍이스라엘

유태.아랍갈등 중동에 '한 핏줄' 조상 스토리

유위자 2025. 10. 12. 04:43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1_06 : 한단고기_아랍이스라엘 * 유태.아랍갈등 중동에 '한 핏줄' 조상 스토리 <유태.아랍갈등 중동에 '한 핏줄' 조상 스토리> 난마처럼 얽혀있는 중동문제를 지켜보다 보면 이스라엘의 정치학자인 야론 에즈라히의 '슈퍼스토리이론'이 생각난다. 대충 이런 것이다. 인간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인간의 인식은 문화적ㆍ역사적 렌즈로 세상을 여과해서 본다. 야론 에즈라히는 이 렌즈를 '슈퍼스토리'라고 명명한다. 어떤 신화나 이야기, 즉 슈퍼스토리가 특정 지역이나 특정 민족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이 같은 스토리는 일반 대중들에게 막연한 사랑과 분노를 느끼게 하는 동인(動因)으로 작용한다. 수천 년 전 조상의 갈등이 후손들의 눈을 가려버리고 있는 것이다. 갈등관계에 놓여있는 상대방 민족을 공격하고 학살하는 사람들은 원래부터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는 한 명의 교사였고 은행원이었던 사람들이다.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슈퍼스토리에 의해 학살자가 되어간다. 어제까지 어깨동무를 하고 맥주를 마시던 사람들이 슈퍼스토리 앞에서는 원수가 되는 것이다. 조상들의 슈퍼스토리 때문에 비극적인 사랑을 해야 했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말이다. 이 같은 학설은 난마처럼 얽혀있는 지금의 중동문제를 푸는 중요한 열쇠다. UPI통신사 기자로 세 번이나 퓰리처상을 수상했던 토머스 프리드먼도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창해 펴냄)에서 슈퍼스토리 이론을 거론한다. 재미있는 건 긍정적인 관계는 슈퍼스토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 둘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갈등 스토리 훨씬 이전에는 같은 조상을 가진 형제민족이라는 스토리를 공유한다. 성서를 통해 추정하면 아담의 10대 손이 노아이며, 노아의 3형제 중 셈(Shem)의 후손이 아브라함(Abraham)이다. 그들은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다. 아브라함과 본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이삭(Issac)이 유태민족의 조상이고 아브라함과 후처 하갈 사이에서 태어난 이스마일(Ishmael)이 아랍족의 조상이다. 즉 그들은 이복형제의 후손으로 같은 핏줄인 셈이다. 이슬람을 창시한 마호메트도 이스마일의 직계 후손이니 결국 그들은 한 핏줄인 셈이다. 기원 전 11∼10세기 경 이삭의 후손 다윗(David)은 현 팔레스타인 지역의 예루살렘에 있는 지온(Zion) 언덕에 왕궁을 세워 당대의 번영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 왕국은 기원 전 406년에 바빌로니아왕에 의해 멸망되었다. 이후 유대인들은 분산되었으며 뚜렷한 국가건설을 이룩하지 못하였다. 도무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그들에게 5000년 전의 슈퍼스토리를 다시한번 들려주고 싶다. Ⅰ. 개 요 성경에 보면 노아에게 세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야벳과 셈과 함이었다. 홍수 이후에 셈족은 메사(Mesha : 페르시아만의 북서 끝에 위치한 바스라 지역)에서 세발(Sephar : 남서 아라비아에 있는 산)에 이르는 지역에 살았다. 이 두 지역은 모두 욕단부족이 사는 지역의 동쪽 변경에 위치하고, 세발은 욕단부족의 국경에 있는 산이었다. 셈은 아랍인과 히브리인의 조상이 되었고, 욕단은 셈의 5대손(셈의 넷째 번 자손)이었다. 욕단의 아버지는 에벨(Eber)인데, 에벨은 Heber로서 히브리인들의 조상이다. 욕단은 카흐탄(Kahtan) 또는 예크탄(Yektan)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랍인들은 그를 아랍인의 가장 오래된 조상으로 여긴다. 그래서 아랍민족은 노아의 둘째 아들 셈을 조상으로 하여 그 후손을 다음과 같이 두 혈통으로 나눈다. 첫째, 아브라함과 하갈의 아들이었던 이스마엘의 후손 아드난에 뿌리를 둔 북부 아랍인. 둘째, 에벨의 아들 욕단과 동일시되는 카흐탄에 뿌리를 둔 남부 아랍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아드난계보다는 카흐탄계 자손이 아랍인으로서 순수성이 있다고 하기도 하고, 또 셈족의 자손들이 쓰는 언어를 통칭하여 셈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셈어가 사용되는 지역이 아라비아 반도와 북부 아프리카인 점에 착안하여 어떤 학자들은 셈 함어 또는 함 셈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용어는 함어가 셈어와 대립된 어족으로 잘못 인식되는 인상을 남기므로, 언어적 친족관계를 지리적 부분이나 인종적 구분보다 우선하여 아프리카·아시아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심지어 이라크인 학자는 셈어가 아라비아 반도에서 주로 쓰이므로 '반도의 언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셈어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언어학자들은 아라비아 반도 또는 저지(低地) 유프라테스 또는 아르메니아나 아프리카라고 하지만, 이 가운데 가장 유력한 견해는 아라비아 반도와 아프리카이다. 그리고 오늘날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쓰이고 있는 셈어는 다음과 같다. 1. 아랍어 : 아라비아 반도, 북부 아프리카 등 2. 에티오피아어 : 에티오피아 3. 히브리어 : 이스라엘 4. 아람어 : 이란, 이라크, 시리아의 마을룰라 지역 등 Ⅱ. 셈어의 종류 보통 셈어는 동부 셈어와 서부 셈어로 나뉜다. 서부 셈어는 북서 셈어와 남서 셈어로 구분되며, 원 셈어(proto-semitic)의 가장 중요한 어파는 남서 셈어의 북부 아라비아어, 남부 아라비아어, 그리고 에티오피아어이다. 1. 동부 셈어 동부 셈어에는 아카드어(기원전 2500-3000)가 대표인데, 이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언어로서 원 셈어의 고향을 떠 나 가장 먼 거리를 여행하여 셈어를 쓰지 않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 중에 수메르인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인류문명의 가장 오래된 언어가 수메르어이다. 이라크 땅에 들어온 셈족은 이라크 남부에 살던 수메르인과 의 구별을 위해 바벨의 북쪽 셈족이 살았던 도시 아카드의 이름을 따서 그들의 언어를 아카드어라고 했다. 수메르 인들은 바닥이 삼각형인 얇은 나뭇가락으로 진흙판을 눌러서 글자를 썼는데, 이 글자가 쐐기같다고 해서 쐐기문자 라 한다. 수메르인들은 그들의 말을 쐐기문자(설형문자)로 나타냈으며, 당시의 아카드인들은 쐐기문자 쓰는 법을 수메르인에게서 배웠다. 수메르인이 창안한 쐐기문자는 기록을 위한 수단이 됨으로써, 그 후 여러 민족이 이를 모 방하여 글자를 만들어 썼다. 수메르인의 쐐기문자는 소리에 바탕을 두고, 낱말은 음절단위로 나누어 각 음절마다 표기하는 글자가 따로 있었다. 아카드어는 앗수르어(기원전 1950-600)와 바빌론 방언(기원전 1950-600)으로 나뉘 는데, 이들은 각각 고·중·신의 세 단계로 나뉜다. 2. 북서 셈어 북서 셈어는 가나안어와 아람어가 있는데, 학자에 따라서는 가나안어파에 가나안어, 우가리트어, 히브리어, 페니키 아어, 분어, 모압어로 구분하고, 지리적으로는 북부 가나안어(우가리트어), 중부 가나안어(페니키아어), 남부 가나 안어(히브리어와 모압어)로 나누기도 한다. 우가리트어는 우가리트 도시국가의 언어인데, 기원전 1400년경에 쓰인 쐐기문자로서 분절음 단위로 모음없이 자음만으로 쓰였다. 역사상 최초로 알파벳 글자로 쓰인 우가리트어는 아랍어 처럼 원 셈어에 가깝다. 2-1. 가나안어 기원전 1500년경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빌려 쓸 때 이집트어의 의미는 버리고 그 발음만을 따다 쓴 페니키아어는 기 원전 12세기에서 서기 196년까지 쓰였다. 비문에 따르면 페니키아어는 팔레스타인, 시리아, 레바논에 분포되었고, 페니키아 민족은 해상무역에 종사하여 지중해 여러나라에 걸쳐 있었다. 페니키아어는 22개의 글자로 이들 모두가 자음이며, 모음은 표기되지 않았다. 음절문자인 페니키아어는 기원전 9세기경 마그립 지방까지 이르렀는데, 그 곳 에 쓰인 페니키아어는 분어라고 한다. 분어는 대부분 튀니지 평원에서 쓰였고, 146년 분국의 정치적 실권이 약화되 자 분어도 자취를 감추었다. 기원전 9세기 그리스인들은 우가리트어와 관련된 페니키아어 알파벳을 페니키아인과의 잦은 접촉 속에 배우게 되었 다. 그리스인들은 페니키아이과 다르게 낱말 속에 모음을 나타내는 글자를 넣고, 글자의 방향도 왼쪽에서 오른쪽으 로 하였으며, 이에 따라 페니키아어의 인후음도 필요없게 되었다. 그러나 페니키아 음절문자에서 빌린 문자가 남았 는데, '?lef가 성문 파열음을 떼고 ?lef로, he가 성문 마찰음 /h/를 떼고 e로, '?yn은 인두 마찰음 없이 oyin으로 부르게 되었다. 음소문자였던 그리스어는 모음을 추가하여 로마인의 라틴문자가 되었다. 2-2. 아람어 셈어중 아람어는 언어 분류상 서로 대단히 유사한 방언들을 포함하고 있다. 샴 지방과 이라크 지역에 다양한 방언 들이 퍼져 있었으며, 아람어가 고대중동에서 국제 교통어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아람어에는 여러 유사한 방언들이 있었다. 이미 기원전 3000년의 앗수르 비문에 아람인들이 언급되었다. 그러나 아람어는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에야 글자로 기록되어끨. 그래서 오늘날 전해 내려오는 가장 오래된 아람어의 비문으로는 기원전 10세기의 것이다. 그 후 아람어는 복잡한 역사의 단계를 거쳤다. 아람어가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고대중동의 제국과 연관되었는데, 예를 들면 기독교 복음전파의 도구로서, 그리고 그리스의 학문을 아랍문명에 옮기는 수단으로서 아람어의 한 방언 이 존재했다. 그것이 시리얀어인데 시리얀어는 중동 문명사에서 큰 역할을 한 아람어의 한 방언이었다. 그러나 아 람어의 사용은 이슬람의 도입과 동시에 후퇴하였다. 그 후 아람어는 여전히 이라크 북부와 이란, 시리아의 여러 마 을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되어 사용되고 있다. 역사를 거치면서 다양한 아람어의 방언들에 대한 여러 이름들이 붙여졌다. 가장 중요한 아람어 방언 중에는 고대 아람어, 국제 아람어, 시리얀어, 유대 아람어와 나바트어, 그리고 만다이 아람어 방언 및 현대 아람어 방언 등이 있다. 아람어는 앗수르 국가에서도 광범위하게 쓰여졌다. 기원전 625년 앗수르 국가가 망했을 때 페르시아 제국의 관할하 에 이라크가 놓이자 이곳에 아람어를 도입하였다. 페르시아인들은 아람어를 국가전역에서 공식어로 인정하였다. 이 로써 아람어가 이란에도 도입되었으며, 또 아람어는 페르시아의 영향과 함께 고대 중동전역에까지 도입되었다. 기 원전 7세기부터 아람어는 국제어로 쓰여 페르시아 지역 사람들과 비페르시아 지역 사람들 간에 상업적·정치적 교 류와 고대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사용되었다. 이에 대한 많은 비문들이 이란과 이라크, 샴지역과 북부 알제리, 그리 고 이집트의 아스완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소아시아에서도 이중언어 비문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 일부는 그리스어 와 아람어로 되어 있었다. 아람어는 크게는 동부 아람어와 서부 아람어로 나뉜다. 서부 아람어에는 나바트어(기원전 1세기-서기 1세기), 팔미 라어(기원전 1세기-서기 3세기), 시나이어(기원전 1세기-서기 4세기)와 성서 아람어(갈대아어로 잘못 불림), 팔레 스타인 탈무드의 유대 아람어, 그리고 기독교인 팔레스타인 아람어(기원전 5세기-서기 6세기)와 사마리아어(기원전 3세기-서기 4세기) 등이 있다. 그러나 서부 아람어는 9세기에 아랍어에 그 자리를 넘겨 주었다. 무슬림이 정복하기 전 시리아, 팔레스타인, 레바논에서 쓰였던 서부 아람어 방언은 오늘날 거의 사라졌지만, 동부 아람어 방언은 제한적으로 이라크, 이란, 터키의 남동부, 그리고 구소련의 극히 일부지역에 쓰이고 있다. 서부 아 람어 방언의 구어체 변이형은 다마스쿠스의 북쪽 50km에 위치한 마을룰라 산간지역에서 약 6천여 명이 쓰고 있다. 아람어는 알파벳이 전해 내려오지 못하고, 다만 구두로 쓰일 뿐이며, 이라크의 투르 아비딘과 모술, 그리고 북서 이란내에 우르미아, 구소련의 게오르기아의 기독교 공동체에서 쓰인다. 구약의 다니엘서 등에 쓰였던 아람어는 국가 아람어였고, 가장 중요한 아람어는 시리얀어이다. 아람인들은 기독교 를 받아들인 후 자신들을 시리얀인이라 불렀다. 옛 민족이름이 불신자를 나타냈으므로 그들에게 좋지 않다고 여겼 다. 시리얀어는 13세기까지 하란 근처 에데사(Eddssa)지역에서 페르시아 지역까지 퍼져 갔다. 시리얀어는 3세기까 지 번역에 쓰여졌는데, 특히 그리스 문명을 아랍문명에 접목시키는 도구가 되었다. 그리스 철학, 수학, 의학 등의 서적이 메소포타미아 에데사의 네스토리우스파 학원, 시리아의 기독교 단성론자 학원, 나중에는 페르시아 준디사푸 르 학원에서 아람어 또는 아랍어로 번역되어 이슬람 세계에 전해졌다. 5세기에는 기독교 교파에 따라 동부 네스토리우스파(경교)와 서부 야곱파로 나뉘었다. 네스토리우스파는 431년 에 베소 회의에서 이단으로 낙인찍혀 추방되었는데, 페르시아 보호 아래 당나라에 전파되었고, 신라에도 들오온 것으 로 전한다. 결국 동부 아람어는 기원전 9세기부터 아카드 지역에서, 기원전 5세기에는 바빌로니아에서 쓰였고, 심 지어는 인더스강 상류까지 퍼져 나가 중국서부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중앙 아시아의 몽골 문자체계와 인도의 데 바나가리(Devanagari)문자는 시리얀어의 후손이라고도 하며, 아람어는 아랍어, 터키어, 쿠르드어 등에 섞이게 되었 다. 나바트어는 나바트인들이 썼던 아람어 방언인데, 나바트인들은 시리아 남쪽과 아라비아 북쪽 끝에 살았던 아랍민족 이다. 그들의 교통어는 아람어였는데, 아람인에게서 아랍어 글자를 배워 나바트 글자를 만들었다. 오늘날 아랍어 글자는 나바트 글자를 본떠 만든 것이며, 나바트 글자는 우가리트 글자와 간접적으로 관련된다. 그래도 가나안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언어는 히브리어이다. 시리얀어(Syriac)가 이전에 그리스어와 아랍어를 연결 시켜 주었던 것처럼, 히브리어는 아랍어와 라틴어를 연결지어 주는 가교역할을 했다. 구약의 대부분은 고대 히브리 어로 쓰여졌으나 창세기 31:47, 예레미아 10:11의 두 낱말과 다니엘 2:4-7:28, 에스라 4:8-6:18, 7:12-26 문장들 은 아람어로 쓰였다. 고대 히브리어는 기원전 2000년부터 기원전 4세기까지(드보라의 노래, 사사기 5장 등) 쓰였 고, 구약의 대부분은 기원전 9세기-기원전 6세기 사이에 쓰였다. 기원전 536년 바빌론 포로에서(왕하 25:11) 돌아오는 길에 유대인들은 아람어가 팔레스타인 지역에 두루 쓰였음을 발견한다. 그런데도 히브리어는 사라지지 않고 탈무드 히브리어의 바탕을 이루었으며, 2세기부터 이슬람이 발흥하 는 7세기까지 계속되었다. 탈무드는 구약성서의 주석으로 기원전 300년-서기 500년 사이에 쓰여진 것인데, 이는 히 브리어 원문인 미쉬나(Mishna)라는 부분과 히브리 원문의 아람어 주석인 게마라(Gemara)라는 부분으로 되어있다. 미쉬나는 구약성서의 원문이고 게마라는 미쉬나의 주석이다. 중세 히브리어는 교육과 종교어로 쓰였고, 유대 민족 주의와 더불어, 특히 팔레스타인에서는 현대 히브리어로 부활되었다. 3. 남서셈어 남서 셈어에는 북부 아라비아어와 남부 아라비아어, 그리고 에티오피아어가 있다. 북부 아라비아어는 지역적으로 근접한 아람어나 히브리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서로 침입하고 무역을 하거나 곡물을 서로 나누면서 많은 아람인 과 히브리인들이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인과 섞이게 되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북부 아라비아어와 남부 아라비아어의 지리적 구분이 어디까지인지 그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고 하면서 이런 구분이 아랍어 방언의 생성과 어떻게 결부될 수 있느냐고 의아해한다. 하여튼 북부 아라비아어에는 리흐얀어(Lihyanian, 기원전 2세기-서기 4세기)와 타무드어(Thamudian), 사파이어 (Safaitic, 서기 1세기), 그리고 아랍어가 있는데, 아랍어는 쿠란의 언어로서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아랍어 최초의 비문은 서기 328년으로 되어 있고, 리흐얀어와 히자즈 북부의 타무드어, 시리아 사막지대의 사파이어는 사 어가 되었다. 남부 아라비아어에는 해안가의 미나어(Minaeans), 마으립의 사바어(Sabaean), 아랍만에 이르는 카타 반어(Qatabanians), 그리고 하드라마우트어(Hadramautian)가 기원전 8세기부터 서기 6세기까지 쓰였다. 남부 아라 비아에 있는 방언으로는 마흐리(Mahri), 하루수시(Harsusi), 사흐리(Shahri), 카라위, 소코트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