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훈민정음(訓民正音)/가림토문기원설

정인지 서문, 최만리 상소문을 통해 본 자방고전(字倣古篆) / <무명씨>

유위자 2025. 11. 14. 21:30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4_2 : 훈민정음 가림토문기원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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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림토문자 겸 표음문 상음문 실례 2) 음독으로 읽는 상형문자의 예 <참한역사신문> 바로가기

* 가림토문자 겸 표음문 상음문 실례 3) 훈독의 원래 상형문자의 예 <참한역사신문> 바로가기

* 정인지 서문, 최만리 상소문을 통해 본 자방고전(字倣古篆) / <무명씨> 훈민정음의 가치 우리말을 국제화 해야 한다는 한글학회와 다른 단체등의 말은 글쓴이는 할 수도 없거니와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즉, 각자 민족은 그들 나름대로의 말을 발달시켜왔는데, 그 말을 지금 우리 말로 바꾸게 한다는 것은 남의 제사에 감 놔라 대추 놔라가 아니라 남의 여편네를 달라는 것과 같이 무모하다. 따라서 나는 남의 나라 말을 우리말로 바꾸자 할 게 아니라 우리 훈민정음을 세계 공용문자를 만들자는 것이고, 이는 우리 훈민정음 가지고는 세계 어느 민족 말도 못 적을 말이 없으니 가능하고, 또 아주 쉽기 때문에 머리 좋은 놈은 하루 아침에 훈민정음을 다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지금 쓰는 한글이 아니고 꼭 훈민정음이어야 하는 것은, 지금 한글은 세종보다 더 잘난 학자들이 훈민정음을 다 망쳐놓아 우리 글자로 우리말도 다 적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훈민정음으로 세계 공용문자를 만들고 사실상 우리 땅인 간도를 총 한 방 쏘지 않고 되찾을 수 있으며, 우리 민족이 이 훈민정음 자판으로 천조 원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자세한 이론은 이미 간도찾기협의회 연설문에 있고, 이 카페에 무수히 올려있다. 훈민정음 서문 國之語音,異乎中國,與文字不相流通.故愚民,有所欲言,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 予,爲此憫然,新制二十八字,欲使人人易習,便於日用耳 (우리나라 말이 듕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잘 통하지 아니한다. 이런 까닭으로 우매한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것을 가엽게 생각하여 새로 스물 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쉬이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이상이 훈민정음 공식 창제 동기이다. 그러나 글쓰는 이의 생각은 다르다. 누구보다도 천재적인 충령은 당시 쓰던 우리의 한자음이 중국음과 거의 같으나 그렇다고 중국인과 대화는 할 수 없다는것을 알았다. 즉, 당시 사람들은 한자음을 中國은 듕귁, 朝鮮은 됴션등으로 거의 중국인과 같은 발음은 했으나 그렇다고 통역이 없이는 중국인과 통할 수 없어서 정확한 중국음을 알기 위해 대표적 중국 발음사전인 <홍무정운>이란 중국 명나라 태조 홍무 8년(1375)에 악소봉(樂韶鳳) 등이 왕명에 따라 펴낸 운서. 양나라의 심약(沈約)이 제정한 이래 800여 년이나 통용되어온 사성의 체계를 모두 북경 음운을 표준으로 삼아 개정한 것으로,《훈민정음》과 《동국정운》을 짓는 데 참고 자료가 된 15권짜리 책이다. 그러나 충령은 이 책으로는 한자의 음을 제대로 알기도 어렵고, 또 누구에게 가르쳐 알리기도 많은 제한이 있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즉, 중국인이 하는 발음을 녹음기처럼 녹음해서 다른 사람에게 알린다는 것은 이따위 책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것이다. 충령은 왕세자가 아니었기에 궁궐밖 상것들과 어울리기가 쉬웠다. 그런데 그들은 역시 상것들이나 쓰는 글자를 땅바닥에 그려가며 말했고, 당시 선비들은 이 글자를 언문(諺文)이라 했다. 충령도 물론 그 언문이 쉬우니 알고 있었는데, 한자를 홍무정운으로 제대로 표시할 수 없는 마당에 이 언문을 다시 한 번 살펴보니 이 불완전한 모음이 붙어있는 언문의 모음을 체계 있게만 고친다면 자신이 생각하던 녹음기와 같은 발음사전을 만들수 있으리란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결국 세종은 훈민정음 반포후 자신의 꿈이었던 그 정확한 발음 사전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동국정운(東國正韻)이다. 즉, 충령은 왕이 된 후에도 겨우 딸이나 아들등 가족과 그 언문 글자를 자방고전(字倣古篆) 하고 발음 구조를 바꿔 훈민정음을 만든다. 그러나 세종은 옛 조상들이 쓰던 엉터리 발음을 없애지는 않았다, 즉 검둥이, 감둥이가 같이 발음되는 글자를 아래 아 점으로 남긴 것이다. 세계 석학은 말한다. 그렇게 훌륭한 문자가 한 사람의 생애에 한 사람에 의해 창제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는 그 의문은 바로 세종이 이 언문을 참고하여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하면 의문이 풀린다. 단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바로 훈민정음 서문의 予爲此憫然新製二十八字. 즉 새로 28자를 지었다는 말과, 그리고 정인지 서문의 正音之作 無所祖述 而成於自然, 즉 '정음을 지은 것은 조상이 지은 것이 아니라 자연속에서 지은 것이다' 하는 말과 또 世宗御製訓民正音 등이다. 이것을 오해하면 세종은 전연 무에서 28자를 친히 지었으므로 훈민정음 창제 전 원시한글은 있을 수 없다는 반론도 많은데, 이는 다음과 같은 말이다. 즉,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처음 만든다. 그 비행기는 겨우 프로펠러를 붙이고 날개를 단 것뿐이다. 그러나 지금 보잉 747기는 그 원리가 아니다. 제트추진원리로 하늘을 난다. 그럼 보잉747기는 요즘 사람이 창작한 것이다. 그러나 하늘을 나는 원리, 즉 공기를 앞에서 빨아 뒤로 밀고 날개로 나는 원리는 라이트 형제의 비행원리를 모방한 것이다. 세종의 字倣古篆(옛 전자를 모방해서 글자를 만들었다) 는 세종 말씀이나, 또 정인지의 象形而 字倣古篆(그 형상은 옛 전자를 모방해서 글자를 만들었다)는 말은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정말 반론자들처럼 세종 전 언문이 있을 수 없다면 다음 질문에 답해야 한다. 1. 字倣古篆, 또는 象形而字倣告篆이란 세종 말씀이나, 정인지의 말이 순 거짓인가? 세종이나 정인지는 과연 거짓말쟁이일까? 2. 최만리 상소문에 옛부터 글자나 언문이 있었다는 말이 다음과 같이 여러 번 나오는데 그 <세종실록>이 위서인가? 언문(諺文)이 세종 전부터 있었다는 최만리 상소문중 엣 글자가 있었다는 부분 * 언문은 다 옛자를 근본으로 했으므로 새로운 글자가 아니라 하시는데, 글자의 모양은 비록 옛것을 모방했다고 하나 소리를 사용하는 것이나 글자의 조합은 옛것과 달라서 실로 근거한바가 없사옵니다.” (諺文皆本古字非新字也則字形雖倣古之篆文用音合字盡反於古實無所據) * 전 조정 때부터 있었던 언문을 빌려 썼다고 하나 지금 같은 문명의 치세에는 오히려 글자를 분별하여 도에 이르게 하는데, 뜻을 두어야 하는데 지나간 것을 따르려 하시오니까? (借使諺文自前朝有之以今日文明之治變魯至道之意尙肯因循而襲之乎) * 대왕께서 상소문을 다 보시고 최만리들에게 말씀 하셨다. "너희들이 말하기를 소리를 사용하는 것이나 글자의 조합이 옛것과 다르다 했는데, 설총의 이두 역시 소리가 다르지 않더뇨?" (上覽䟽謂萬里等曰汝等云用音合字盡反於古薛聰吏讀亦非異音乎) * 지금 언문은 모든 (옛)글자를 합하여 아울러 쓰고 그 소리의 해석만 변경하였으니 (한문)글자의 형태가 아닙니다. (今此諺文合諸字而並書變其音釋而非字形也) * 전 조정 때부터 있었던 언문을 빌려 썼다고 하나... (借使諺文自前朝有) * 하물며 언문은 문자(한자)와는 맹세코 서로 아무런 상관됨이 없는 시골 것들이 전용하는 말일 뿐이옵니다. (况諺文與文字誓不干涉專用委巷俚語者乎) 이상 세종 전에 언문이 없었다면 세종이 거짓말쟁이인지, 또 세종실록이 위서인지 두 가지만 답해주어야 한다. 고전기원설에 대한 생각 당연히 훈민정음의 기원설중의 하나로서 이 고전기원설이 존재합니다. 조선후기의 실학자였던 형암 이덕무가 자신의 저서인 (청장관전서)에서 바로 이 고전기원설을 주장했는데 한 번 보시죠. [훈민정음에 초성․종성이 통용되는 8자는 다 古篆의 형상이다. ㄱ ‘古文의 及자에서 나온 것인데, 물건들이 서로 어울림을 형상한 것이다.’ ㄴ ‘匿자에서 나온 것인데, 隱과 같이 읽는다.’ ㄷ ‘물건을 담는 그릇 모양인데, 方자와 같이 읽는다.’ ㄹ ‘篆書의 己자이다.’ ㅁ ‘옛날의 圍자이다.’ ㅂ ‘전서의 口자이다.’ ㅅ ‘전서의 人자이다.’ ㅇ ‘옛날의 원자이다.’ 또 ㅣ‘위 아래로 통하는 것이니, 古와 本의 번절이다.’ 翻切 ‘세속에서는 언문으로 反切이라 하여 反자를 배반한다는 反자로 읽고 反切의 反자 음이 翻인 줄은 알지 못한다. 1행에 각각 11자이다.’ 모두 14행인데 글자를 좇아 횡으로 읽으면 ‘가(可)․나(拿)․다(多)․라(羅)의 유와 같다.’ 자연히 梵呪와 같다. 대체로 글자의 획은 篆籒(전주)보다 더 좋은 것이 없으니, 성인이 아니면 어떻게 여기에 참여 할 수 있겠는가] 좀 억지스럽단 느낌입니다. 그렇지만 실록에 분명히 고전(古篆)이라 기록되어있고 또 조선조에 고전(古篆)이라 부르던 글자가 존재했다는 점에서 이 설이 나온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덕무가 과연 훈민정음해례라는 책을 봤을지 보지 못했을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전 한글학회장이셨던 허웅선생께서는 독특한 해석을 내놓으셨습니다. 허웅선생은 「세종실록」에 나타난 글이나 정인지의 「훈민정음해례」 서문의 글의 뜻은 훈민정음이 바로 고전 글자에서 왔다는 것이 아니라, 꼴을 본떠서(象形) 글자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 象形한 것이 古篆의 글자와 비슷한 모양이 되었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이 설을 가장 지지하는 입장입니다. 이 가설이야말로 훈민정음해례속에 나타난 창제원리와 실록에 나타난 기록을 동시에 만족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훈민정음해례에 적힌 창제원리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정교하게 씨줄과 날줄이 얽혀 아름다운 비단이 만들어지듯 해례의 창제원리는 천의무봉 그 자체입니다. 인간의 사고력으로 어떻게 이런 상상조차 하기힘든 이론을 창조할 수 있었는지 정말 경이로울 따름입니다. 따라서 모든것은 바로 이 해례의 창제원리를 근본으로 삼고서 그 주변정황을 추정해나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며 그런 점에서 허웅선생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어보입니다. 허웅선생의 가설을 살펴보면 말 그대로 훈민정음은 해례에 기록된 창제원리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만들어놓고보니 그 형상이 한자의 초기형태인 고전(古篆)과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이 가설역시 실록에 나온 고전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객관적 증거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절대적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훈민정음해례라는 절대적인 증거가 있으므로 이 가설이 매우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간혹 가림토를 주장하시는 분들이 최만리상소문을 들먹이며 그것이 가림토의 증거라고 말하지만 한문을 잘 모르시는 분들도 조금만 주의깊게 살펴보면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허황된 주장인지 금방 아실 수 있습니다. 최만리가 상소문에서 말하는 고전(古之篆文)은 이분들이 주장하는 가림토가 아니라 바로 위에서 설명드린 초기의 한자인 고전(古篆)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 분들이 말하는 가림토의 증거는 바로 이것입니다. 상소문의 첫머리에 나오는 구절인 [曰 諺文皆本古字 非新字也 則字形雖倣古之篆文 用音合字 盡反於古 實無所據] 이 구절을 인용하며 위에서 붉은 글씨로 표시한 옛글자(古字) 와 옛글자 전(古之箋文)이 바로 가림토를 말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이 게시판에서도 지겹게 보셨을거라 생각합니다. 위 구절을 해석하면 [말씀하시기를 언문은 모두 옛글자를 근본으로 삼은 것으로 새로운자가 아니라고 하신다면 곧 글자모양은 옛글자 전(古之篆文)을 본떳다 하더라도 용음과 합자는 옛글자와 다르니 실로 근거가 없습니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편의상 용음은 소리내는법, 합자는 글자조합법 정도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약간 다른 의미가 있지만 크게 문제될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저 위의 옛글자와 옛글자 전은 같은 글자를 가리킨다는 것은 금방 아실 수 있을실 거며 또 훈민정음이 그 글자들의 모양을 본떳다는 것을 최만리가 말하는 것으로 보아 가림토가 아닐까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잘 음미하시면 저 옛글자란 것은 결코 가림토가 될 수 없음을 금방 아실 수 있습니다. [말씀하시기를 언문은 모두 옛글자를 근본으로 삼은것으로 새로운자가 아니라고 하신다면]이란 구절을 음미해 보십시오. 최만리의 훈민정음에 대한 반대가 얼마나 극렬했는지는 다 아실겁니다. 그래서 세종께서는 최만리를 설득할 필요가 있었을겁니다. 위의 문장이 바로 세종께서 최만리를 어떤 방법으로 설득하셨는지를 보여줍니다. 세종께서는 최만리가 왜 한자를 놔두고 새로운 글자를 만드셨냐는 물음에 훈민정음은 옛글자를 근본으로 삼았으므로 새로운 글자라고 할 수 없다라고 설득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죠. 그 밑에 [곧 글자모양은 옛글자 전을 본떳다 하더라도]라는 구절까지 본다면 세종께서 훈민정음이 옛글자의 모양을 본떳으므로 옛글자를 근본으로 삼은 것이며 그러므로 새로운 글자라고 할 수 없다라고 최만리를 설득하신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만약 가림토를 믿으시는 분들의 주장대로 이 옛글자가 가림토라면 도대체 말이 되지를 않습니다. 한자이외에는 어떤 글자도 용납하지 않는 최만리에게 [훈민정음이 가림토의 모양을 본떳으니 새로운 글자가 아니다. 그러니 괜찮지 않느냐]라며 설득하시는 세종의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이 무슨 코메디입니까? 세종께서 가림토의 모양을 본떳으면 최만리가 훈민정음의 창제를 인정하리라 생각하셨을까요? 말도 안되는 주장이란걸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또 그 뒤의 최만리의 말을 마저 보겠습니다. [곧 글자모양은 옛글자 전을 본떳다 하더라도 용음(소리내는 법)과 합자(글자조합법)는 옛글자와 다르니 실로 근거가 없습니다]라는 구절입니다. 여러분도 가림토를 이 게시판에서 많이 보셨겠지만 세월이 흘러 도대체 어떻게 변했길래 모양만 비슷하고 소리내는 법이나 글자조합법이 근거가 없을 정도로 달라졌을까요? 가끔 이 게시판에 가림토의 음가라며 시중에 떠도는 표가 가끔 올라오던데 보면 지금의 한글과 음가가 별로 다르지 않더군요. 그런데 왜 최만리는 근거가 없을 정도로 다르다고 했을까요? 현재의 한글과 소리내는법이 근거가 없을 정도로 달라보이는 분 있으십니까? 또 저 위의 음소들을 어떻게 조합하길래 훈민정음과 근거가 없을 정도로 달랐을까요. 볼 때마다 느끼지만 무엇을 근거로 저 음소들의 음가를 알아냈는지 정말 신기하기만 합니다. 상소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위의 문장은 이런식으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최만리가 세종께 한 말의 의미는 [전하께서 언문이 옛글자 전(古篆)의 모양을 본떳으니 새로운 글자가 아니라 하시지만 소리내는 법과 글자조합법이 옛글자와 근거가 없을 정도로 다르니 언문은 옛글자를 근본으로 삼은 글자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언문창제는 부당합니다]라는 의미입니다. 만약 저 위의 고전(古篆)이 가림토라면 최만리의 말은 이런 의미가 될 겁니다. [전하께서 언문이 가림토의 모양을 본떳으니 새로운 글자가 아니라 하시지만 소리내는 법과 글자조합법이 가림토와 다르니 언문은 가림토를 근본으로 삼은 글자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언문창제는 부당합니다]라는 말이 될 겁니다. 마치 최만리는 훈민정음이 가림토와 많이 다르기 때문에 훈민정음의 창제를 반대하는 모양새입니다. 철저한 모화주의자이며 한자이외의 글자는 글자로 취급도 않았을 최만리가 훈민정음이 가림토와 다르기 때문에 창제를 반대하는 상황이 상상이 가십니까? 이상에서 보듯 최만리 상소문에 나오는 옛글자(古字)와 옛글자 전(古之篆文)은 바로 조선조때 말하던 한자의 초기형태인 전서(篆書), 즉 고전(古篆)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위의 모든 코메디같은 상황은 사라지게 됩니다. 세종께서는 훈민정음이 초기의 한자인 고전(古篆)의 모양을 본떳으니 한자와 전혀 관계없는 새로운 글자라 할 수 없다라고 최만리를 설득하셨을 것이며 최만리는 훈민정음이 비록 고전(古篆)의 모양을 본떳다 하더라도 소리내는 법과 글자조합법이 한자인 고전(古篆)과는 근거가 없을 정도로 다르니 훈민정음은 한자와 무관한 글자다라고 세종께 반박하는 지극히 당연한 상황이 만들어짐을 여러분도 느끼실 수 있으실 겁니다. 참고로 한자에 무슨 글자조합법이 있을까라고 의문을 가지시는 분이 계시면 '반절법(反切法)'이란 것을 조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자의 음을 표시할때 다른 한자 두개를 조합하여 하나의 발음을 표시하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東(동)이란 글자를 보면 잘 아시듯 (동)이란 발음을 가집니다. 그런데 훈민정음이 없던 시절에 저 東의 발음을 어떻게 표시했을거라 생각하십니까? 德洪切이라 표시했습니다. 첫번째 글자인 (덕)의 자음부분인 (ㄷ)과 두번째 글자인 (홍)의 (ㅎ)을 제외한 (옹)의 발음을 합하여 (ㄷ + 옹 = 동)이란 발음을 표시했던 겁니다. 마지막의 절(切)은 앞의 두 글자가 (동)의 발음을 반절법으로 표시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것을 반절법이라 부르며 한자의 음을 책에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보면 한글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느끼실 겁니다. 최만리가 말한 용음과 합자는 바로 이 반절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한자의 용음합자인 반절법이 훈민정음의 용음합자와는 실로 근거가 없을 정도로 다름은 여러분도 금방 아실수 있겠지요. 이상에서 보듯 실록과 상소문 그리고 해례의 정인지서문에 나타난 古篆은 바로 한자의 초기형태인 전서(篆書)를 의미한다고 보며 허웅선생의 말씀대로 해례의 창제원리(자음은 발음기관을 상형하고 모음은 천.지.인을 상형)에 따라 훈민정음을 창제했는데 하고보니 古篆과 닮은 점이 있었다 라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추가로 저의 개인적인 생각을 하나 덧붙여 본다면 그 당시 집현전학사들의 엄청난 반대를 걱정한 세종께서 일부러 훈민정음이 고전의 모양을 본떳다라고 하셔서 훈민정음이 한자와 무관한 글자가 아님을 들어 신하들을 설득하려 하신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 본적이 있습니다. 실제 최만리상소문에 세종께서 최만리에게 훈민정음이 한자와 무관하지 않음을 말하시며 설득하신 정황이 있음을 여러분도 보셨으니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