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훈민정음(訓民正音)/훈민정음기원설

正音에 얽힌 우리 조상들의 어문 궤적(대종언어 연구소)

유위자 2025. 11. 14. 06:22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4_1 : 훈민정음 기원] * 正音에 얽힌 우리 조상들의 어문 궤적(대종언어 연구소) 단군 때의 正音정음과 세종대왕께서 강조한 正音에 대한 중요한 내용이 신라시대 朴堤上박제상 저『澄心錄징심록』제 1지 符都誌부도지 및 金時習김시습(1435∼1493) 저『징심록추기』에 들어있어 주목된다. 대강의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선천의 시대에... 오직 팔려(八呂)의 음만이 하늘로부터 들려오니 실달성과 허달성이 모두 이 음 중에서 나왔으며, 마고대성과 마고 역시 이 음 중에서 생겨났다... 마고는 궁희와 소희라는 두 딸을 낳아 그들로 하여금 5음7조의 음절을 관장하게 했다... (부도지 제 2장 중에서; 필자 新解) 분거한 여러 족속이 각 주에 당도, 터를 잡은 지 어언 천년이 흘렀다... 제 족속이 이미 정착·거주한 이래 바다와 험한 산으로 가로막혀 있어 서로 왕래가 거의 단절되었다... (부도지 제 9장) 황궁씨가 天山주에 도착하여 모든 의혹을 풀고 근본을 회복할 것을 서약하고 많은 이들에게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사실을 증명하는 일에 힘쓸 것을 권하였다. 이에 장자 유인씨에게 명하여 인간세상의 일을 밝히게 하고, 차자·삼자에게는 여러 주를 돌아보게 하였다. 황궁씨는 이에 天山에 들어가 돌처럼 확고부동한 자세로 바르게 조율된 음을 계속해서 널리 알림으로써 인간세상의 의혹되는 부분을 일체의 여지없이 모두 제거하려고 노력한 결과, 기필코 마고대성 회복의 서약을 성취하였다. 이에 유인씨가 천부삼인을 이어받으니 이는 곧 천지 본음(本音)의 상으로 그것은 진실로 하나가 근본임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유인씨는 천년 치세 후 천부를 자손 환인씨에게 전하고... 환인씨는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인간세상의 진리증명 작업을 대대적으로 행하니... 본성에서 멀어져 괴이하게 된 사람들의 상(相)이 차츰 그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였다... (제 10장 중에서) 환인씨의 아들 환웅씨는 날 때부터 큰 뜻을 품어 천부삼인을 계승하고... 바다에 띄운 배에 올라, 사해를 순방할 새 천부를 비추어 증명함으로써 제족의 신뢰를 구축하고 제족이 서로 소식을 주고받게 하며 근본을 잊지 말 것을 호소하였다... 환웅씨가 돌아와 8음2문을 다스리니... 가히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였다... (제 11장 중에서) 환웅씨가 임검씨를 낳을 당시 세상의 제족은 천부의 이법을 익히지 아니한 결과 스스로 미혹에 빠져 그로 인해 인간세상은 고통스럽게 되었다. 임검씨는 천하에 깊은 우려를 품고 천웅의 도를 닦으며... 천부삼인을 이어받았다... 널리 사해를 답사하고 제족을 두루 방문하니 백년 사이에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천부에 의거하여 증명함으로써 제족의 신뢰를 쌓고, 의혹해소와 근본회복을 맹서하며 부도 건설을 약속하니, 이는 각 지역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소식 두절로 인해 제족의 언어풍속이 점차 변하여 서로 달라지게 된 관계로 함께 모여 화합하는 자리에서 천부의 이법을 익히고 분명히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제 12장 중에서) 임검씨가 돌아와 부도를 건설할 땅을 고르니 곧 동북의 자방(磁方)이었다... (제 13장 중에서) 이에 황궁씨의 후예 6만명이 그곳을 지키고, 나무를 베어 뗏목 8만개를 만들어 신부(信符)를 새겨 천지(天池)의 물에 떠내려보내 사해 제족을 초청케 하였다. 제족이 그 신부가 새겨진 뗏목을 보고 차례차례 모여들어, 박달(朴達)나무 숲에 신시(神市)를 크게 열고 악심을 다스려 마음을 정화한 다음 천상(天象)을 살펴 마고의 계보를 정리하고 그 족속의 근원을 밝힘과 아울러 천부의 음에 준하여 어문을 정리하였다... 이로부터 매 10년마다 필히 신시를 여니 이에 어문이 통일되고 천하가 하나로 평정되어 인간세상은 크게 화합하였다... (제 14장 중에서) 임검씨의 아들 부루씨가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세상천지가 하나의 이치에서 비롯되었고 인간의 태어남이 한 족속에서 비롯되었음을 증명하여 크게 부친과 선조의 도를 발흥시키고 널리 천웅의 법을 행하여 인간세상의 이치를 밝히는 일에 전념하였다. 일찍이 운해족(雲海族)과 긴밀히 하(夏)나라 땅이 하나로 돌아오기를 시도하고자 하였으나 이도(異道)가 점점 성하여 그 뜻을 끝내 이루지 못하였다. 부루씨는 천부를 아들 읍루씨에게 전하고 입산하였다. 읍루씨는 나면서부터 대자대비의 바램이 있어 천부 삼인을 이어받았다. 하(夏)족이 도탄에 빠진 것을 애처로이 여기고 진리가 사단(詐端)의 땅에 떨어진 것을 비통해 한 나머지, 마침내 천부를 명지(明地)의 단(壇)에 봉쇄하고 입산하여 근본회복이라는 대원만을 염원하며 백년 동안 세상에 나오지 않으니 남아있는 무리들이 대성통곡하였다... (제 26장 중에서; 이상 필자주) 이상은 부도지에 기록된 天符천부 및 그 어음[본음]에 관련된 내용으로 우리 민족의 시발지이자 인류의 시원지인 마고대성에서의 분거 이후, '마고→황궁→유인→환인→환웅→임검→부루→읍루'로 이어지는 수만년 동안의 천부의 전해짐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오랜 분거로 인해 본음이 변화한 것을 알고 임검씨를 비롯한 천부의 정통 계승자들이 사해의 족속들을 모두 한 곳에 모이게 하여 천부의 음, 즉 정음에 따라 어문을 정리하였다는 기록, 그리고 그로 인해 어문이 통일되고 천하가 하나로 평정·화합하였다는 내용 등을 보고, 그로부터 수천 년이 흐른 지금 우연히도 어지러워진 세상의 어음을 정리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옛날에 이미 우리 조상들에 의해 그러한 작업이 수 차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남다른 감회와 함께, 그동안 가졌던 몇 가지 사항에 대한 의문이 풀림과 동시에 원인이 없는 결과란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부도지를 보고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 옛날 우리의 조상들이 세계 어문을 정리할 때 어떤 방법으로 정리를 했으며, 또 그 정리한 천부의 정음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상세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 복구되지 않은 징심록 중 音信誌음신지, 物名誌물명지, 四海誌사해지 등이 발견된다면 조상들의 작업을 대강이나마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읍루씨에서 그 대가 끊어진 천부의 도는 사해 종주민족인 우리에게서 완전히 잊혀진 것은 아니었다. 박제상의『小부도지』및 김시습의『징심록추기』편에는, 천부의 도를 되찾아 그 옛날 마고대성의 지상낙원을 재건설하려는 우리 조상들(박혁거세→왕건→세종 등)의 집념 어린 행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혁거세씨는 그 성품이 신과 같았고, 슬기는 가히 성인의 경지였다. 또한 어진 왕비 알영을 맞이하니 당시 사람들은 두 사람을 일러 '이성(二聖)'이라 하였다. 능히 여러 부족을 통솔하여 위대한 선조들의 도를 행하며 제시(祭市)의 법을 부흥하고 천부 소도(小都)를 남태백(南太白)에 건설하였다... 동해에 피하여 산지 천여 년 사이에 제시의 모임을 개최하지 못하여 피차간에 내왕이 오랫동안 두절하고... 제족이 각자 나라를 칭하고 유구한 세월동안 전란을 거듭하니 겨레는 종횡으로 나뉘고 언어는 잡다하게 와전되었다. 천부에 대한 일은 거의 망각하여 혹 사실을 아는 자가 있어도 모두 변형되어 음이 다르니 마랑(馬郞; 모든 것은 하나가 근본임을 설파하기 위해 먼 이국 땅에 파견된 신라의 젊은 사도들의 직명)의 원행은 심히 어렵게 되어 순교하는 이가 많았다. 그러나 마랑들은 만리타국에서도 충절을 지켜 능히 굳은 의지를 가다듬고 온갖 고난을 극복하여 마침내 사명을 완수하니 그 풍모와 자태는 진실로 호탕하고 영매(英邁)하였다... 고려 왕건 태조는 박제상 공의 종사(宗嗣) 집에 사신을 파견하여 옛적 부도의 일을 상세히 알아내고... 조선시대 세종대왕께서 제위에 올라서는 영해(寧海) 박씨 가문을 매우 정중히 대하고 박제상 공의 문중을 두루 거두었다. 또한 혁거세왕의 능묘를 세우고 공의 종가·차가 두 집에 명하여 서울 반궁(泮宮; 성균관) 부근에 이주케 하며 장로로 하여금 편전에 입시토록 명하여 그 은고(恩顧; 은혜로 보살핌)를 매우 두텁게 하고 차가의 후예 창령공 부자를 불러 등용하였다... 그런즉 영묘(세종대왕)께서 박제상 공 집안 후예를 정중히 대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며, 하물며 훈민정음 28자를 박제상 저『징심록』의 기록 중에서 그 근본을 취했으니 더 물어 뭐하겠는가? ― (원문 생략; 필자주) 이상의 내용, 특히 김시습의 증언을 토대로 미루어볼 때, 세종대왕께서는『징심록』과『단군세기』등의 고서를 심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내용에 따라 선대의 부도를 재건설하기 위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였음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 조선의 다른 왕들과는 달리, 궁내에 正音廳정음청을 설치하고 훈민정음을 재창제한 일, 朴堧박연(1378~1458)을 통한 雅樂아악 및 불완전한 악기 調律조율의 정리, 그리고 노예 신분의 蔣英實장영실을 특명으로 발탁, 천문의·혼천의·자격루 등을 제작케 함으로써 과학발전에 힘쓴 일 등은 단순히 그가 성군이었기 때문이 아니라,『징심록』등을 통해 우리 민족이 세계의 종주민족임을 확신하고 제왕으로서 선대의 이상국가[부도]를 재현코자 한데서 비롯된 것임이 분명하다. 세종의 둘째딸 정의공주는 왕명에 따라 널리 토착음과 변음을 조사해 올렸는데, 이 때의 토착음은 '훈민정음'의 '정음'을 의미하며, 정음은 곧 원음이자 본음이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동국정운에 표기된 각 문자에 대한 음은 세종 당시의 국어표준음이 아니라 유사이래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우리 종주민족의 정음이자 고음[부도음]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鐵철의 현대중국음 tie는 물론 고대중국음 tiet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영어 steel의 정체를 밝힐 수 없지만, 우리의『동국정운』에 표기된 鐵철의 정음 텰(텷)의 된소리 ㅅ뎔[styoul]만 알고 있으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구나 다 영미인을 붙잡고 steel의 어원을 설명해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역사언어학적으로 사실은 이러저러하다'라고 그들을 교육·감복시킬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자체 내에 문제가 있음 또한 사실이다. 엄밀히 말해 철(鐵)이란 음은 현재는 표준음으로 교육되고 있지만 본음[정음] 텰이 변질된 변음이다. 만약 선대 이래의 정음을 중시하는 세종대왕께서 살아계셨더라면 훈민정음이라는 명칭에 담긴 깊은 뜻을 파악치 못하고 '한글'로 개명하고, 鐵을 텰이 아닌 변음 철로 부르는 우리 후손들을 보고 크게 꾸짖었을 지도 모른다. 앞서『桓檀古記』및『징심록』그리고 세종대왕에 관한 이야기 등에서 알 수 있듯, 우리 민족은 세계인류의 종주로서 예로부터 '變변(邪사)'이 아닌 '正정'을 중시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일종의 변형자인 일본의 약자나 중국의 간자를 우리 민족은 생래적으로 탐탁찮게 여기는 것이다. 또한 다른 나라들처럼 음을 길게 늘이지 않고 동방문자 1자 당 1음절 원칙을 고수하는 민족은 세계에 우리 밖에 없다. 우리 민족의 역사상, 세종대왕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크다. 만약 세종께서 마고 이래의 바른 음을 정리하지 않고 훈민정음을 완성치 않았더라면 필자는 물론 그 누구도 우리 음을 가지고 세계 어음의 근원을 밝히지 못했을 것이다. ...중략... 비록 수많은 고서들이 내외의 적들에 의해 방화·약탈·분실·백안시되었으나, 다행히도 뜻있는 지사들에 의해 보존된 '징심록·桓檀古記·훈민정음·동국정운·홍무정운역훈' 등의 자료들로 인해 부도·세계종주국의 맥은 끊어지지 않게 되었다. 세종대왕의 공덕으로 훈민정음과 동국정운의 자료만 가지고도 영어를 비롯한 서방제어의 정체를 능히 파악할 수 있으니 이는 우리 민족의 홍복이 아닐 수 없다. (한국동란의 와중에서 세계적 역사서인『징심록』제 1지 '부도지'를 복원한 영해 박씨 후손 고 朴錦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