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4_1 : 훈민정음 기원]* 훈민정음(訓民正音)의 기원(起源)문자의 기원을 찾아서...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세종대왕과 이순신을 꼽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폐에까지 등장시키며 지난 독재 정권들이 장기 집권과 무관의 정당성을 국민에게 주입한 혐의는 있지만,
그 두 인물의 업적을 감소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발명하여 언어 표현과 기록의 바른 길을 열어주었고
이순신은 거북선을 만들어 수 백 척의 왜선을 섬멸시키며 나라를 위기에서 구했다. 임금과 신하,
문과 무의 차이는 있지만
남들이 생각할 수 없는 아이디어로 상상을 넘는 변화와 결과를 가져 다 주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발명은 정말 그 두 사람의 머리 속에서 처음 만들어지고 발전된 것일까?
미국의 디자이너 허브 루발린은 모방의 필요성에 대해 솔직하게 말했다.
“디자인은 일상 속에 편재해 있는 것이지 하늘에서 어느 날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기만의 독창적인 세계는 보다 많은 것을 관찰하고 머리 속에 그것을 담아두는 데서 시작된다.”
거북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무렵에 이순신에 의해서 고안된 철갑선 정도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문헌에는 그보다 200여 년 가까이나 거슬러 올라간 이조 초기에 거북선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다른 배가 이를 공격하기 어렵게 견고하다는 이 거북선의 모양과 구조는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거북선이 100% 이순신 장군의 머리에서 나오지 않은 것만은 짐작할 수 있다.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 역시 세종대왕이 문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불현듯 떠오른 영감에 의해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만일 그렇게 우연하고 갑작스럽게 떠오른 아이디어였다면
후세의 많은 사람들이 칭송하듯 그렇게 과학적인 문자로 만들어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수없이 기나긴 세월을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다듬어지고 변해 가는 다른 모든 언어와 문자의 발전에 비하면
너무도 짧은 기간에 한 사람의 발의와 결단, 그리고 몇 사람의 집념어린 노력에 의해
완벽에 가까운 기능을 가진 문자가 탄생했다는 것이 위대한 것이지
그것이 한 천재의 머리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는 신화적인 것을 우리가 추앙하려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보면, 한글은 옛 고전(古篆)을 본떠 만들었다는 말이 적혀있다.
문제는 그 고전(古篆)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이것은 한자의 해서체처럼 붓의 힘에 따라 획의 굵기가 바뀌는 서체 모양이 아니라
지금의 딱딱한 고딕 모양을 가진 전서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글자를 쓰는데 있어서 이렇게 기하학적인 형태를 땄다면 그것은 획의 끝 모양만을 두고 이야기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만들어진 글자는 붓으로 쓰게 마련이고 그렇다면 전자(篆字)의 마무리 형태를 유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결국 획 끝의 모양 따위 보다는 직선적인 전체 구조를 의미할 가능성이 높고
그것은 한자의 형태에서 가져오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옛날 우리 겨레의 활동 무대가 엄청나게 넓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이런 위대한 민족이 글자를 가졌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한글 이전의 글자는 모두 한자를 빌려 쓴 것뿐이다.
신라시대에는 온통 우리말을 한자로 적었다.
그 이후로는 오히려 한자말을 많이 섞으면서, 토씨 같은 것만을 한자로 덧붙여 표기하는 수준이 되었다.
우리말에는 이처럼 토씨나 어미의 변화가 있기 때문에 한자만으로 우리말을 다 적을 수 없었다.
한자를 빌어 우리말을 적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처음 훈민정음의 각 낱글자 이름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가령 ㄱ, ㅅ, ㄷ이 니은, 리을처럼 기윽, 시읏, 디읃으로 표기되었어야 하지만 이와 같은 소리를 가진 한자를 찾을 수 없었고
우리말에서도 윽, 읏, 읃은 별다른 뜻을 가지지 못해 그 뜻에 해당하는 한자를 가져다 댈 수도 없어
결국 ㄱ은 기역(役)으로 ㅅ은 시옷(衣, 옷을 의미하는 한자)로 ㄷ은 디귿(末, 끝을 의미하는 한자)로 변통하여 적게 되었다.
이에 비하면 일본말은 한자로 모두 표기할 수 있어서 별 어려움 없이 한자를 가져다 쓰게 된 것과 비교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처럼 우리말을 한자로 적기 어려워 갈 길은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는 한자가 아닌 다른 글자를 빌려 쓰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길이었다. 하지만 조선 시대 당시
중국 문화에 젖은 지식인들이 중국 이외의 다른 나라 글자를 빌어다 사용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남은 방법은 새 글자를 만드는 것뿐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왜 하필이면 그 때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야만 하느냐는 의문이 생기고
이는 최만리 등이 상소문을 통해 주장된 내용이기도 하다.
세종대왕이 새 글자를 만들기로 한 것은 훈민정음 전문에 잘 표현이 되어 있고,
결국 새로운 글자는 그러한 의도에 따라 음절글자가 아닌 음소 글자가 되는 것은 정해진 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세종대왕은 처음 글자를 만들 때 어떤 글자의 모양을 참고했을까?
훈민정음 해례의 설명대로, 발음할 때의 입모양을 처음부터 그리면서 글자를 만들기 시작했을까?
단지 입 모양만 연상했다면 그렇게 간단하고 기하학적인 패턴의 파생보다는 오히려 곡선적인 글자 모양이 만들어지지는 않았을까?
‘ㄱ’이나 ‘ㄴ’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ㄹ’이나 ‘ㅅ’도 발음할 때의 입 속의 모양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세종대왕은 어떤 글자의 모델에 입모양을 결합하는 논리로 글자를 설명한 것은 아닐까?
이러한 의구심과 그에 따른 몇 가지 한글 글꼴의 원형에 대한 가설들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이것이 세종대왕의 치적과 위대함을 훼손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글자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다는 단순한 사실만을 자랑삼기보다는
좀더 시야를 넓게 함으로 우리 글의 위상과 특성을 이해하는데 보탬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싶다.
훈민정음의 기원에 대한 논란은 오래 전부터 여러 가지로 제기되어 왔다.
이렇게 설이 구구했던 이유는 1940년 훈민정음 해례본이 나오기 전까지 훈민정음의 기원에 대한 기록이라고는
세종실록에 「자방고전(字倣古篆:글자는 고전을 본떴다)」이라는 한 구절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고전」은 글자 그대로 옛날 한자의 전서체로 보는 고전기원설을 낳았다.
이것은 단지 「전서체의 각이 진 모양(角形)」을 본떴다는 글자의 형태에 국한시킨 견해이다.
그 다음으로 등장한 것이 인도의 산스크리트 문자를 닮았다는「범자(梵字)기원설」이다.
조선 성종 때 성현은 『용재총화』에서 『초, 종성 8자, 중성 12자의 글자 모양은 범자에 기대어 만들었다』주장했다.
그 후 이수광이 『지봉유설』에서 『우리나라 언문글자의 모양은 모두 범자를 본받았다』고 했다.
파스파 문자 기원설이란 것이 있다. 파스파 문자는 훈민정음보다 약 1백70년 앞선 원나라 세조 때 제정된 문자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파스파 문자 기원설을 주장하는 내용이 있다.
『세종께서 한글을 처음 만드실 제 명나라의 학사 황찬이 귀양살이를 하는지라,
성삼문 등을 보내 질문하게 하였는데 13번이나 왕래했다. 이때가 원이 망한 지 겨우 79년이 된 즉,
황찬이 우리에게 전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몽고글자에 대한 지식이었다』.
유희의 『언문지』에서도 한글의 기원이라고 언급되는 파스파 문자는 세종 당시 이미 잘 알려진 창제문자라는 점,
자형이 정사각형이고 특히 「ᄀ ᄃ ᄇ ᄉ」 등의 글자가 비슷한 점,
문자의 구성원리와 운용이 유사하다는 점 때문에 이러한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1940년 경북 안동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된 이후에
각종 기원설이 힘을 잃고, 지금 우리가 알고있는 대로 초성의 기본 글자는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으며,
중성의 기본 자는 천ㆍ 지ㆍ인의 3재(三才)를 본떠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이후에도 한글의 기원설은 이따금씩 나오고 있다.
그 중 많은 관심을 끌었던 것이 1983년 제기된「가림토 문자설」이다.
가림토 문자 기원설에 따르면, 고려 말기의 학자 이암이 쓴 「단군세기」에 3세 단군 가륵이 재위 2년(서기전 2181년),
삼랑 을보륵에게 명해 환웅 천황시절 신지(神誌), 혁덕(赫德)이 사슴의 발자국을 보고 짐승가죽에 문자화했던 옛 기록을 정리하여
정음 38자의 가림토 문자를 만들었는데 가림토 문자 38자 속에는 한글 28자가 거의 다 원형 그대로 들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림토’란 사물을 분별하고 뜻을 분명하게 해주는 ‘가림’과 ‘토’를 합친 단어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오랑캐 정도로 알고 있는 여진이나 거란 몽고족은 사실은 가림토 문자를 사용하던 우리 민족이라고 한다.
시베리아에 거주하던 쥬신족의 일부도 가림토 문자를 사용하였는데
이들이 베링해를 거쳐 아메리카로 진출하여 아메리카 인디언의 기원이 되었고,
놀라운 것은 이들 아메리카 인디언의 유적 중에서 가림토 문자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대문명 발상지 중 하나인 인도의 구자라트 지방에서도 우리가 뜻을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한글과 대단히 유사한 문자가 사용되고 있는 것 역시 가림토 문자 기원설을 뒷받침하는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은 국어학계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문자는 일반적으로 그림문자와 상형문자의 단계를 거쳐 표음문자로 발전하는 것이 원칙인데,
수메르상형문자와 이집트상형문자 정도가 존재할 무렵인 BC 2181년에 음소문자가 존재했다는 것은
문자학의 상식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1911년 계연수가 편찬한『한단고기』에 들어 있는 가림토문자의 출전
『단군세기』가 고려시대의 원본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도 이 주장의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가림토 문자 기원설을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짚고 가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일본에서 발견된 고대 문자가 그것이다. 일본 미에현에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700년 전인
1세기쯤에 지어진 일본 최초의 신궁이자 모든 신사의 본종인 '이세신궁'이 있다. 이세신궁에는 외부에 잘 공개하지 않는
보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일본인들이 '신대문자(아히루 문자)'라고 부르는 문자가 새겨진 거울과 문헌이다.
신대문자란 일본에 한자가 전파되기 전에 이미 존재했던 문자인데, 이것의 생김새는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과 닮았다.
때문에 과거 일본은 한글이 일본의 신대문자를 베낀 것에 불과하며 이는 고대 일본이 한반도를 점령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많은 인력과 비용을 들여 신대문자의 정체를 파헤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전면 중단하고 연구 결과를 비밀에 부쳤다고 한다.
아마 자신들에게 절대로 불리한 역사적 사실이 밝혀졌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한 역사 다큐멘터리가 밝힌 바에 의하면, 이 문자는 일본 큐슈 지역의 신사와 비석 등을 중심으로 100 군데 넘게 흔적이 남아있으며
발음도 현재 한글과 유사하다고 한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세종실록이나 정인지 해례본에 나오는
옛 전자(篆字)는 한글의 모델이 된 문자가 분명 존재했다는 것을 말해주는데,
그 '옛 글자'와 한글, 그리고 일본의 신대문자의 관련성은 흥미로우면서도 중요한 것이 될 수 있다.
만일 가림토 문자의 존재가 부정된다면 자칫 한글이 신대문자를 모방했다는 주장을 반박할 근거를 다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림토 문자의 흔적들이 이처럼 일본, 인도, 몽고 등에 풍부하게 남아
단군 조선 시대와 그 영향력을 우리에게 증언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세종의 치적을 다소 변질시킬 수도 있으나
다른 의미로는 오히려 우리 민족의 문자가 세계사의 가장 오래된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획기적인 사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가림토 문자는 중국에 와서 살던 유태인들의 히브리 문자를 모방한 것이며,
따라서 훈민정음은 이 가림토 문자를 바탕으로 중국 음운학과 히브리 문자. 히브리어 음운학을 참조해서 창제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1997년 5월 신동아에 기고한 조철수 서울고전고대문헌연구소 곧문헌담당소장의 주장으로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훈민정음이 본떴다는 고전은 가림토 문자이며 이 가림토 문자는 기원전이 아니라
11-15세기 중국에 와서 집단을 이루어 살던 유태인들의 문자를 기초로 만들어진 것이고
훗날 집현전 학자들이 중국을 여러 번 왕래하며 중국의 성운학을 기준으로 히브리어 음운체계와 비교하여
다시 훈민정음과 그 해례를 만들었다고 가정한다.
중국의 유태인들은 서기 9세기 무렵부터 무역을 위해 서역 길을 따라 중국에 와서 정착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 그들은 고등교육을 받고 공직에 기용되기도 하면서 중국 사회에 깊숙이 자리잡으면서
자연스럽게 유태교도 중국에 알려지고 그들의 문헌과 성경도 전해졌다.
중국유태인들이 사용한 히브리어 모음 부호는 ㆍ _ ..| ‥ ∵ 등이고 이는 ㆍ | _를 기본으로 만들어졌다.
훈민정음의 모음은 가림토 문자 첫 11개의 부호와 같고 이 모두 히브리어 모음 부호와 기본 구조가 유사하다.
전세계에 알려진 알파벳 모음부호 중 히브리어 모음과 훈민정음 모음처럼 비슷한 것은 없다.
또한 히브리어의 모음부호 ㆍ의 음가는 [o]이며 한글 방점 ㆍ의 음가 역시 [o]와 [a] 사이 정도의 음으로 대단히 유사하다.
하지만 위의 내용은 한 학자의 주장일 뿐 아직 충분한 증거를 가진 것은 아니라는 평을 받고 있다.
몇 몇 글자의 모양과 모음과의 모아쓰기 등이 매우 유사하고, 당시의 히브리 음운서가 표방하고 있는
후,구개,설,치,순(喉,口蓋,舌,齒,盾)의 5가지의 음운체계가 발음기관을 순서에 따라 후아설치순(喉,牙,舌,齒,盾)으로 설명하는
훈민정음의 제자해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상당수의 글자꼴이 서로 다르고
그 사이의 점진적인 변화의 증거가 없다는 점을 들어 이 주장은 논란의 여지와 연구의 과제를 남긴 정도로 간주되고 있다.
이외에도 한글의 기원설로는 서장문자기원설, 고대문자 기원설,
창호상형기원설, 태극사상기원설, 거란여진문자 기원설, 이론 신대문자 기원설, 팔리문자 기원설 등 갖가지가 제기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가설들이 반드시 세종대왕의 치적과 위대함을 깎아 내리는 일이라고 볼 이유는 없다.
그 중 어느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은 글꼴의 차용에 대한 부분일 뿐이고
한글의 과학적 원리와 그로 인해 우리말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조금도 달라질 것이 없다.
한글의 우수성은 누누이 강조되어 왔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재산이며 스스로의 얼굴이다.
이것이 정치적인 용도가 아니라면 무조건 영웅적인 위치에 놓여야 할 이유는 없다.
수백 년을 무시되어 왔던 것처럼 또다시 무조건 추앙되는 것 역시 또 다른 실수가 될 수도 있다.
성경의 창세기에는 천지 창조의 순서가 1장과 2장에 서로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바는 사람이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2장에는 오히려 다른 생물들 보다 먼저 창조된다.
대부분의 기독교 신자들은 자신들의 신앙에 불필요한 이러한 모순된 기록에 대해 무지하거나 굳이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첫 머리부터 만나는 이 같은 모순을 피해서 얻는 신앙의 깊이는 과연 얼마나 가치 있고, 신에게 떳떳한 모습일까?
모든 언어는 서서히 세월 속에서 변해 간다. 세종대왕의 뜻이 그렇다고 해서
지금도 여전히 그 모양과 용법을 고수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뜻도 우리는 다 알지 못한다.
무책임한 파괴나 실험이 아니라면 문자 변화를 직시하는 일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