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문자의 기원/언어와 문자

언어라는 수수께끼와 문자(文字)

유위자 2025. 11. 7. 07:20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3_6 : 언어와 문자]

* 인천 송도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알아보기 / 황금박쥐 2025.01.07

* 언어라는 수수께끼와 문자(文字) 언어라는 수수께끼 인류의 역사는 몇 개의 막으로 이루어진 연극이 아닐까? 그 시작은 적어도 100만 년에서 많게는 50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연극은 1만 년 전쯤에 있었던 농경문화의 등장으로 절정을 맞는다. 수백만 년 동안 돌멩이를 깨뜨리기만 하던 사람들이 마침내 그것을 갈아서 쓰기 시작했고, 수백만 년 동안 음식물을 보관하는 데 애를 먹던 사람들이 그것을 담아둘 질그릇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인류가 컴퓨터를 만들 수 있기까지는 채 1만 년도 걸리지 않았다. 인간에게 언어가 없었다면 이러한 놀라운 발전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인간은 언제부터 언어를 가졌을까? 인간의 최초 조상들은 과연 언어라는 것을 만들어 사용했을까?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자의 기록은 기원전 4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사는 수메르 사람들이 점토판에 남긴 글자로 대부분 숫자 계산과 같은 내용이었다. 이렇게 보면 문자의 나이는 약 6000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셈이다. 말보다 글이 훨씬 후대에 생겨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문자 이전에 인류에게 존재했을 언어는 그야말로 베일에 싸여 있는 신비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베일에 싸인 언어의 기원은 언어를 신의 은총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언어는 신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며, 언어는 이 세상이 시작될 때 함께 등장했다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성서》는 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창조주인 신은 이 세상의 모든 들짐승과 새들을 만든 다음 그가 창조한 첫 인간인 아담을 시켜서 그들에게 이름을 붙이도록 한다. 그리고 '바벨탑' 이야기는 인간의 언어가 지금처럼 여러 개의 말로 나누어지게 된 기원을 들려준다. 바벨탑 인간이 하늘을 향해 바벨탑을 쌓자, 이에 노한 신이 인간을 분열시키기 위해 서로 언어를 다르게 만들었다는 믿음도 전해진다. 16세기 바카누스(J.G.Bacanus)라는 독일인은 '전능하신 신은 완전한 언어를 사용했을 것이고, 가장 완전한 언어인 독일어가 신의 언어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17세기 스웨덴인 캠케(Andre Kemke)는 신의 언어는 스웨덴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중세 유럽인들은 조상들이 신의 선물인 언어로써 신과 대화했을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자국어만이 완벽한 언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19세기를 전후하여 자연과학적인 사상과 방법이 학문의 대세를 잡기 시작하면서 이처럼 소박하고 신본주의적인 생각은 산산이 부서지게 되었다. 우선 그 유명한 《종의 기원》이 출간되면서 인간 자체를 보는 눈이 창조론에서 진화론으로 급선회하였다. 그리고 모든 학계의 관심은 인간의 진화 과정을 밝히는 데 집중되었다. 온갖 논쟁과 추측이 뒤섞인 인간 진화론의 중심에는 언어 발생에 관한 문제가 있었다. 언어의 발생과 인간의 진화? 이 둘의 관련은 소리와 의미의 이원적 체계를 갖는 언어의 특성에서 비롯한다고 할 수 있다. 의미의 습득을 가능케 하는 두뇌의 진화와, 소리의 실현을 가능케 하는 발성기관의 진화는 언어 발생의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 인간 진화의 행로에서 잉태된 언어의 탄생을 같이 지켜보자. [네이버 지식백과] 언어라는 수수께끼 (우리말의 수수께끼, 2002. 4. 20., 김영사) 소리의 탄생 호모 에렉투스 시대까지 인류의 조상들은 간단한 의식주 생활을 꾸려나가기에도 하루가 모자랄 정도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손짓만으로 간단한 의사표시를 할 수 있었지만, 점점 생활이 복잡해지자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어려움이 생겼다. 따라서, 보다 쉽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그 결과가 바로 소리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소리를 이용하면서 의미 있는 소리의 체계가 점점 더 다양해지면서 인두라는 호흡기관은 유연하고 길게 진화했다. 다른 포유동물의 인두는 작다. 인두가 길어지면 음식을 먹을 때 음식이 호흡기관으로 들어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인두가 길어졌기 때문에 음식물과 공기가 서로 교차해서 통과하게 되어 자칫 음식물이 호흡기관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우리가 보통 '사레들렸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다. 그러나 사람은 이러한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인두를 발달시킨 결과 언어 사용이라는 열매를 얻은 것이다. 반면, 다른 포유동물은 언어를 얻지 못한 대신 편안히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언어를 선택하고 동물은 음식을 선택했으니, 서로가 무엇을 원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심을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 주장대로라면 에렉투스도 네안데르탈인도 충분히 진화된 언어를 갖지는 못한 셈이다. 그들에게는 모음을 만들 수 있는 인두가 없을 뿐만 아니라, 속사포같이 연달아 소리를 발음할 수 있는 신경회로도 없었다고 하니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리적인 진화가 반드시 언어 탄생을 염두에 두고 진행 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물고기의 부레가 허파의 전신이듯이, 이미 있는 기관을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필요에 적응시켰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인류의 시작에 대한 설명이 이처럼 진화론 쪽으로 기울고 나면 언어의 기원에 대한 논의도 신화나 사변적인 이야기에서 보다 과학적인 이야기로 바뀌어야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구체적인 증거물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인데, 언어의 기원에 대한 근거는 수메르나 이집트, 중국 옛 문자의 유적이 전부다. 그나마 이들 증거마저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말과 글은 별개의 것이며, 또한 문자가 있기 훨씬 전에 이미 말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소리의 탄생 (우리말의 수수께끼, 2002. 4. 20., 김영사) 지구여 아듀 우리가 만일 외계인을 만나면, 그들과 어떻게 대화할 수 있을까? 외계인도 고등동물이라면 인간처럼 의사소통의 체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과 영어로 소통할 수 있을까 아니면 한국어로 소통할 수 있을까? 그런데 지구에서도 지구인들 간에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외계인이 사용하는 언어와 지구인이 사용하는 언어가 동일하지 않다면, 의사소통은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이 안타까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에 대해서 우리 인간이 제시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외계의 지적 생명체에게 보낸 그림 위의 그림은 문학자이며 저술가인 칼 세이건이 제안하여 파이어니어 10호에 실린 것이다. 칼 세이건은 1997년에 개봉된 〈콘택트(contact)〉라는 영화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그림의 상단 왼쪽부터 '수소 기체의 표시/우주선의 모양/8을 2진법으로 표시한 것'을, 하단 왼쪽부터 '은하계 중심에서 태양계 표시/태양계의 행성과 2진법의 상대 거리'를 의미한다. 칼 세이건은 그림을 이용하여 지구에서 온 생명체란 것을 알리고, 지적 능력이 있음을 전달하려고 했다. 미지의 대상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기 위하여 그림을 이용하였듯이 이와 유사한 상황을 선사 시대에서도 적용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선사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현실세계를 재현하고 의사소통을 했을까. 바로 대상의 시각화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지구여 아듀 (우리말의 수수께끼, 2002. 4. 20., 김영사) 그림 속에 소리를 담다 새로운 표현방식의 등장 인간이 말을 하게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이 종(種)이 지구상에서 지배자가 될 수 있는 밑바탕을 마련했다. 인간은 발성기관을 통해서 그들이 갖고 있는 생각을 '소리'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이제 인간이라는 종은 의미 있는 소리를 만들어 냄으로써 사냥이나 채집 등의 일을 이전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는다. 그런데 화자의 입을 통해서 생산된 소리는 청자의 귀를 통해서 해독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의사소통상의 여러 가지 제약에 부딪히게 된다. 말이 한 사람의 입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귀로 전해지려면 화자와 청자가 같은 시간, 같은 곳에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이를 청각화로 인해 생기는 문제라고 이해할 수 있다. 시공간적 제약이 없는 경우에도, 어떤 사실이나 생각을 전달하려면 개개인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청각화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지금이 아닌 나중에 전달하는 데 한계성을 드러낸다. 또한, 개개인의 기억에 의존하기 때문에 각 개인의 기억 능력 차이로 인해서 정보 전달에 불균형이 초래될 수 있다. 청각화로 생기는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인간은 언어를 시각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지금' '여기에' '말할 수 있는 입'과 '들을 수 있는 귀'를 항상 갖추어야 하고, 한 번 생산된 소리는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잘못 들은 사람에게는 다시 그 소리를 들려 주어야 한다. '들을 수 있는 귀가 없어도'. '한번'이 아닌 '여러 번' 반복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들 수는 없을까? 이에 대한 선사인들의 해결책은 바로 언어의 '시각화'였다. 언어를 '손으로 그려서' '눈으로 보게 함'으로써 청각화의 문제점을 대부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그려진 것은 소리처럼 허공으로 사라지지도 않고, 내일도 볼 수 있고, 그린 사람이 없어도 보는 사람만 있다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선사인들은 구어가 갖는 한계를 인식하고 시각화(=그리기)라는 새로운 표현 방식을 찾아냈다. 그들은 이제 직립으로 인해서 두 손이 보다 자유로워졌다. 이로 인해 도구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면서 현실세계의 대상을 선이나 면으로 재현할 수 있게 된다. 드디어 인류는 그림 속에 소리를 담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인류가 소리를 통해서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류 언어사에서 '제1대 사건'이라고 명명한다면, 이는 '제2대 사건'이라 할만하다. 이제 선사인들은 '고래'라는 대상을 소리쳐서 말하지 않고도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말하지 않고도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다니! (물론, 무언의 몸짓으로도 의사소통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지만 이는 시공간의 제약을 갖는다.) 그것도 지금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어떤 이에게! 시각화 방식은 처음에 대상의 윤곽을 1차원의 선으로 그리고, 이러한 방식이 좀더 세련되면 2차원의 면으로 대상을 그리는 발달 과정을 거친다. 선사인들의 시각화 과정은 어린이가 대상을 표현하는 단계와 비교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그림 속에 소리를 담다 - 새로운 표현방식의 등장 (우리말의 수수께끼, 2002. 4. 20., 김영사) 문자의 조상, 암각화 선사인들은 무엇을 그려서 동료나 후손에게 남기고 싶어했을까? 심미적 관점에서 대상을 재현시키기보다는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즉,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먹을거리(사냥감, 사냥 방법), 생산성 증대(다산, 풍요)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 등을 그려서 남기고자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 시대 또는 청동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들이 경상남도에서 발견되었는데, 울주군 언양면 〈반구대암각화〉와 그에 인접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암각화〉, 영주 부근 〈칠포리 암각화〉 등이 있다. 여기에는 거북, 고래, 물개, 들소, 배, 호랑이, 멧돼지, 사슴, 개 및 이름을 알 수 없는 동물들과 사람들의 다양한 형상이 보인다. 대상을 사실 그대로 그리고 있어 아직 추상화의 과정까지 나아가지 못한 단계이다. 이 그림들은 수렵을 주로 한 선사인들이 풍요와 다산을 비는 주술적 의미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반구대 암각화 국보 제285호. 상단 중앙에 성기를 노출한 남자, 그 왼쪽 옆에 세 마리 거북이, 그 아래 새끼 밴 고래, 작살 맞은 고래, 울타리 등이 보인다. 앞 그림에서 상단 중앙에 성기를 노출한 남성은 반구대 마을의 샤먼이나 추장 등으로 추정되는데, 종족의 번창과 사냥할 때 보이는 남성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그 왼쪽 옆에 세 마리의 거북이가 있다. 거북이는 성적 상징을 갖는데, 거북이 머리는 남성의 성기를, 움츠린 모습과 몸통은 여성의 성기와 자궁을 상징한다. 거북이 머리는 한자로 귀두(龜頭)인데, 이는 남자의 성기를 뜻한다. 또 새끼를 밴 어미 고래는 사냥감의 풍요함을, 작살에 찔린 고래의 그림은 사냥할 때 손쉽게 고래를 잡을 수 있게 해 달라는 주술적 의미에서 그려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성적 의미가 담긴 그림들은 선사인들의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기원전 15,000~기원전 10,000년경의 구석기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스페인 북부 피레네의 알타미라(Altamira) 동굴 벽화에도 동일한 해석이 가능하다. 프랑스 도르도뉴의 라스코(Lascaux) 동굴 벽화에는 구석기인들이 말, 들소, 순록, 사슴 등의 동물 그림을 바위 표면에 선각(線刻), 채색 등의 방법으로 그려놓았다. 동굴 벽화가 동물의 형상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과 주거 공간과 비교적 멀리 떨어진 곳에 그려진 점, 나아가 그림 위에 계속 중첩해서 동물을 그려놓은 점을 볼 때, 동굴을 장식하거나 본능적인 표현 욕구의 발로가 아니라 동물과의 투쟁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마술적·주술적 맥락에서 그렸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하루하루 먹을 것을 걱정해야 했던 원시인들이 들소, 순록, 사슴 등과 같은 야생동물을 벽과 천장에 가득 그려놓고 그것들을 잡을 수 있게 빌었다는 해석이다. 결국, 선사인들의 그림은 대상의 재현이자 그 자체(=현실 세계)이며, 소망의 표현(=이루고자 함)이자 소망의 성취(=이룸)로 볼 수 있다. 이제까지 대상을 구체화된 그림으로 표현된 것들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천전리 암각화에서는 대상을 추상화한 단계로 나아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여러분들은 아래 그림이 무엇을 뜻한다고 생각하는가? 사실 추상화된 그림은 오늘날 그 의미가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지 단정지을 수 없다. 동심원은 태양을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생명과 풍요의 상징인 비와 물을 나타낸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전자로 해석하면 동심원이 태양신과 연결되고, 후자로 해석하면 농경사회에서 풍요를 가져다주는 물을 뜻하므로 비가 오기를 기원하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천전리 암각화 국보 제147호. 세 겹 동심원의 추상적인 기호는 그 뜻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구체적인 대상 묘사에서 한 걸음 나아가 태양신이나 풍요의 기원 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주술적 의미로 보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문자의 조상, 암각화 (우리말의 수수께끼, 2002. 4. 20., 김영사) 어떻게, 어디에 그릴까? 그리기는 대상을 시각화하는 일반적 방식이다. 알타미라나 라스코 동굴 벽화는 이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그런데 반구대나 천전리의 암각화는 그린 것이 아니라 새긴 것이다. 상형 문자를 뜻하는 'hieroglyph'에서 'hiero'는 그리스어로 '신성', 'gluphien'은 '새기다'의 의미로 '신들의 글자'를 가리킨다. '새기기'는 선사인들이 즐겨 쓰던 표현 기법이다. 낙서를 뜻하는 'graffito'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sgraffito', 이탈리아어 'graffito'이다. 즉, '긁다, 긁어서 새기다'라는 의미로 선사인의 동굴 벽화를 의미하는 말로 시작된 것이다. 우리말 '글'의 어원을 '긁다'나 '긋다'에서 나온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니, 동서양이 서로 상통하는 바가 있지 않은가. 바위 벽이나 큰바위에 선이나 윤곽을 쪼아 내거나 새긴 것을 암각화(岩刻畵)라고 한다. 새긴다는 면에서는 조각으로, 그 내용을 선이나 면으로 처리한 점에서는 그리기로 볼 수 있다. 선사인들은 정면성에 의한 표현 방식을 주로 이용했다. 정면성에 의한 표현이란, 그리기 쉽고 또 이미 알고 있는 부분만을 골라 그리는 방식이다. 어린이의 그림에서도 이와 같은 방식을 많이 볼 수 있다. 이집트의 벽화를 보면, 얼굴은 정면보다 옆면을, 눈은 옆면보다 정면을, 어깨를 중심으로 한 상체는 옆면보다 정면을, 다리는 정면보다 측면을, 곧 그리기 쉬운 부분만을 골라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선사인들은 동굴 벽이나 돌, 바위 등에 그리거나 새기기 시작했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까지 인간은 실로 다양한 곳에 정보를 기록하였다. 죽간(竹簡), 목독(木牘), 밀랍, 비단, 목면, 마, 점토판, 파피루스, 양피지, 거북등, 동물뼈, 사람뼈, 어패류의 껍질, 청동기, 철, 옥, 도자기, 아연판, 구리판, 파초잎, 자작나무 껍질, 사람가죽 등과 같은 곳에 인간의 생각을 기록한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어떻게, 어디에 그릴까? (우리말의 수수께끼, 2002. 4. 20., 김영사) 가장 보편적·효율적 전달 방식, 그리기 문화 시각화를 통한 의사소통 방법은 비단 선사 시대뿐만 아니라 중세나 현대에서도 여전히 이용된다. 문자가 발명된 이후에도 중세 사람들의 대부분은 읽고 쓸 수 없었다. 이들을 위해서 그림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이 널리 이용되기도 했다. 지구상에는 현재 6,000여 개의 언어가 존재하는데, 인류의 절반이 문맹이다. 상이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끼리 잦은 문화적 접촉을 해야 하는 현대인에게는 오히려 시각화된 의사소통 방법이 폭넓게 이용된다. 시각화로 의사소통을 하는 예로는 아이콘, 이모티콘, 아이소타입 등이 있다. 아이콘(icon)은 원래 히브리어 'eikon'으로 '그림'이라는 뜻인데, 예수나 성자 등의 그림으로 사용되고, 숭배 대상으로까지 발전하였다. 우상파괴론자(iconclast)는 'icon'과 'clast=파괴하다'로 만들어진 어휘이다. 아이콘은 오늘날 만국 공통언어로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 자동차의 등장이 아이콘의 부활을 가속화했다고 한다. 또 현대인들은 인터넷의 발달로 채팅을 통해서 의사소통을 하는데, 문자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자판의 기호를 이용한 이모티콘(emoticon=emotion+icon)을 만들어 감정 표현에 사용하고 있다. 유럽의 화장실 표지판 원은 여자화장실, 세모는 남자화장실을 뜻한다. 이는 암각화의 성적 표현 방식과 유사하다. 아이소타입(ISOTYPE=International System Of Typographic Picture Education)은 오스트리아의 옷토 노일러가 어린이의 시각 교육을 목적으로 창안한 국제적 기호 언어로 간결하게 표현한 그림언어이다. 1920년대에 2,000개 이상의 기호를 포함한 시각사전을 작성해 일종의 시각언어와 그 문법을 설명했다. 최근에는 그림책을 비롯 교과서나 백과사전 등에서 사실이나 지식의 이해를 시각화하는 방법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아이소타입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픽토그램(pictogram)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가장 보편적·효율적 전달 방식, 그리기 문화 (우리말의 수수께끼, 2002. 4. 20., 김영사) 그리기에서 쓰기로 역사 시대를 향하여 일반적으로 수학자들은 '두 마리의 고래'에 대한 인식이 대상인 고래로부터 벗어나 정수 '2'가 되는 지점에서 수학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인식이 바로 추상화 과정이다. 언어에서도 '고래'라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린 그림에서 벗어나 추상화된 형태로 표현할 때 비로소 효율적 문자 기능을 갖는다. 상형 문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집트 상형 문자와 한자 상형 문자를 다음에 살펴보게 되는데, 왜 이집트 상형 문자는 오늘날 사용되지 못하고 한자 상형 문자만 사용되는 것일까? 이는 이집트 상형 문자가 단계적인 추상화 과정을 거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상형 문자도 대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단계에서 점차 추상화 과정을 거친다. 우리는 이제까지 본 동굴 벽화의 들소나 암각화의 고래, 동심원 등에 언어라는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다. 원시 시대의 그림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서 점차 구체성에서 추상성을 띤다. 즉, 회화성이 없어지고 기호화, 부호화함으로써 문자의 체제를 갖추게 된다. 물건을 그림이나 추상적인 상징으로 표현하던 것이 발전하여 문자가 되었다는 주장에 많은 학자들이 동조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그리기에서 쓰기로 - 역사 시대를 향하여 (우리말의 수수께끼, 2002. 4. 20., 김영사) 그림 속에서 문자를 끌어내다 암벽에 새겨진 수수께끼 형상들 제작 시기나 그 목적도 알 수 없지만, 같은 기호를 반복 사용한 것으로 보아 고대 사회의 약속된 의미 체계로서 의사 소통에 이용했다고 생각된다. 미술관에 걸린 추상화를 보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어떤 그림이 놓여 있을까? 가슴속에는 어떤 감정이 출렁이고 있을까? 도대체 화가는 무슨 생각으로 무엇을 그린 것일까? 이런 그림들이 얼굴의 솜털까지도 그린 중세의 그림이나 인상파 화가의 그림에서 발전했다고 볼 수 있을까? 발전이라면 무엇을 뜻하는가? 미술관에 걸린 그림들은 동굴벽화에 그려진 알 수 없는 기호만큼이나 숱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원시동굴 벽화에는 현실 속에 보이는 대상들이 직접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간혹 알 수 없는 기호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점과 선과 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기호들은 벽화 전체의 메시지를 어렴풋이 간파한 사람들에게나 속뜻의 한자락을 살짝 비칠 뿐이다. 바위에 새겨진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순한 그림, 그리고 점과 선들은 우연히 새겨진 흔적처럼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장구한 시간 동안 인류는 진정한 문자를 만드는 실험을 진행해 왔다. 이 과정에서 추상적인 기호의 발명은 현실 사물과 기호를 분리하는 계기가 되면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되었다. 현실 사물과 기호의 분리란 무슨 의미일까? 세상의 사물은 무한정으로 널려 있고, 사물을 대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이 모든 것을 명실상부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말이 얼마나 복잡해지는지 생각해 보라. 그런데 이것을 상징적인 그림만으로 표현한다고? 표현량이 늘어나고 정교해지면 이미지와 사실을 표현한 상징적인 그림은 의사 소통의 주류 기호에서 물러날 준비를 하게 된다. 현실 사물과 기호의 분리는 더욱 가속화하고, 문자는 자의적(恣意的)인 기호로서 의사 소통의 주류 기호가 된다. 현실 사물과 기호의 분리는 문자의 신비화를 부추기는 한편, 유한한 기호를 통한 무한한 표현 가능성은 의사 소통 과정에서 문자의 기능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신과의 소통을 매개하는 수단은 현실과 분리될수록 신비로움을 더해 가고, 추상화된 기호는 공동체의 의미 부여와 사회적 약속을 전제함으로써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시켰다. 이집트의 상형 문자 이 과정에서 현실 사물을 묘사한 이전의 그림 문자는 상당 부분 그대로 문자 체계 속에 승계되었다. 기존의 그림 문자를 결합하여 더 큰 개념을 나타내거나, 그림 문자가 점점 단순화되면서 현실과 관련 없는 새로운 기호로 재탄생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하나의 개념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그림 문자가 개념의 확장 과정에서 그 수가 늘어나기도 하고 통일된 의사 소통을 위해 그 수가 제한되기도 하면서, 문자의 발전 과정에 합류한 것이다. 이때 문자 기호의 자의성은 문자 형태를 고정시키고, 문자의 수를 제한하며 이를 목록화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통일된 의사 소통을 위한 기반이 갖추어진 것이다. 체계적인 기호로서 문자는 생각이나 느낌을 분명하게 나타낼 수 있어야 했으며, 모든 구성원들은 문자를 통해 그 생각과 느낌을 공유할 수 있어야 했다. 보다 정교한 문자에 대한 공동체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문자는 변화를 거듭하게 된다. 추상화된 문자를 통한 사물의 형상화에는 그런대로 만족했지만, 사물들의 관계와 그 사물들이 빚어내는 수많은 사건들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겪는 많은 사건과 우리가 느끼는 수많은 감정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우리끼리야 말로 하면 되지만, 신께서는 우리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셨을까? 지금 일어나는 사건들과 그 의견을 후세에 이야기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실제 내뱉는 말을 문자와 연결시키려는 노력은 이러한 문제 제기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항상 생각이나 느낌을 말로 표현하며 살고 있고, 이러한 사실은 고대인들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생각이나 느낌을 나타내려는 문자가 말을 형상화하는 것은 당연했다. 말의 형상화를 위한 조건은 대체로 만족할 만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추상화된 기호는 무한한 약속을 가능하게 하였고, 무한한 사물과 사건을 표현할 수 있는 유한한 틀로 활용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서는 말의 내용과 관계없이 소리를 문자와 대응시킬 수 있게한 것도 추상화된 기호의 역할이었다. 말의 형상화와 기호의 목록화라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우리는 이를 진정한 의미의 문자라 부른다. 쐐기 문자와 상형 문자를 진정한 문자의 출발로 보는 것은 이러한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발음을 문자화하기 시작하면서 문자의 획기적 전환을 모색하게 된다. 발음의 문자화는 음절 문자에서 시작했는데, 이는 모음이 단순한 수메르와 이집트어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수메르와 이집트인들은 자음만을 문자화하여 음절 문자를 만들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그림 속에서 문자를 끌어내다 (우리말의 수수께끼, 2002. 4. 20., 김영사) 의미 있는 부호에서 무의미한 부호로 문자의 발달 문자의 시작은 그림이었지만, 이미지와 사실 표현에서 말의 형상화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문자는 의미 있는 부호에서 무의미한 부호로 바뀌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문자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그 대강은 문자의 자의성이 어떤 이유에서 어떤 과정을 밟아 진행 되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결국, 문자가 현실 사물에서 독립하는 과정은 문자가 소리를 표현하는 단계에 이르러 완결된다. 문자의 음성화는 대략 기원전 3000년경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출발은 수메르 문자다. 수메르 문자는 그림 문자의 변형으로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물과의 관련성은 없어지고 음절 문자화하면서, 문자 자체가 독립하여 존재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이집트의 상형 문자 또한 그림과 문자가 병행하는 체제였으나 결국은 음절의 표현으로 귀착되었다는 점에서 그 발전의 흐름은 수메르의 쐐기 문자와 같다. 중국의 갑골 문자는 한자의 원형이라고 생각되는 것인데, 중국에는 갑골 문자 이전부터 황하유역에 고문자의 원형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그림 문자와 깊이 관련하고 있으나 이 역시 복합적인 사고의 표현이나 고유명사의 표현 등에서는 대상과의 의미적 관련성이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집트 상형 문자 : 회화처럼 아름답지만 엄밀한 부호체계 이집트인들은 모든 자음들에 대한 부호를 발전시켰지만 모음에 대한 부호는 없었다. 이는 이집트어 맨 앞에 모음이 오는 단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집트의 음절 문자는 약 24개의 비의미적 부호들을 갖고 있어서 이것들이 하나의 모음 앞에 오는 최초의 자음을 지시했으며, 자음들의 쌍과 임의의 모음의 쌍을 지시하기 위해 약 80개의 부호들을 갖고 있었다. 이집트인들은 이러한 음절 문자를 단어 문자들과 함께 사용했다. 그러나 문자의 사용 양상은 엄밀한 약속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 상형 문자는 문자라기보다는 회화라고 할 만큼 아름답지만, 각각의 문자가 어떤 색깔로 칠해질 것인가가 거의 정해져 있었다는 것은 이집트 상형 문자의 엄밀한 체계를 보여주는 한 예다. 이때, 고유명사를 표현하는 과정은 음절 단위로 문자를 재창조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수메르 문자와 이집트의 상형 문자가 음절 문자로 추상화되는 과정이 그렇고, 중국의 한자가 음절 문자의 출현에 있어서 기원이 된 것 또한 이러한 과정의 발전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수메르의 가장 오래된 그림문자 앞으로 우리는 우리말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자 속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 속에서, 문자의 발전과 전파 과정을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전 대륙을 관통하는 문자의 물줄기는 동과 서 혹은 남과 북으로 수많은 지류를 갈라 놓았으며, 그 지류에 모여든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 태어나게 된다. 그러나 그 흐름은 결국 의미 있는 부호에서 무의미한 부호로 문자의 자의성을 강화시키면서, 그 속에 소리를 담아 내는 과정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의미 있는 부호에서 무의미한 부호로 - 문자의 발달 (우리말의 수수께끼, 2002. 4. 20., 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