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부도지(符都誌)/부도지전승내력

한국선도 고유의 존재론을 바탕으로 한 경사일체론적 역사 인식 / 정경희

유위자 2025. 10. 2. 17:07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09_2 : 부도지 전승 내력] * 한국선도 고유의 존재론을 바탕으로 한 경사일체론적 역사 인식 / 정경희 마고신화의 뿌리를 찾아서 6) 『징심록』속의 사론史論과 ‘복본사관復本史觀’ 2015.01.04 정경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과 교수 앞에서 본 바와 같이「부도지」의 제1부 마고성시대의 첫머리에는 ‘마고 → 궁희·소희 → 4천녀·4천인’의 과정을 거쳐 현상(물질)세계가 창조되는 과정이 나타나 있는데, 이후에는 이러한 창조 과정에서 생겨난 인류가 마고성이라는 곳에서 생활하는 내용이 나온다. 「부도지」의 연대 산정법에 의하면 인류가 마고성에서 생활하던 시기는 B.C. 7,000여년 이전에 해당한다. 「부도지」에서는 마고성 출성出城 이후 황궁족黃穹族의 수장인 황궁씨黃穹氏가 마고성의 북쪽 천산天山 일대로 옮겨간 이래 마고성의 전통은 ‘황궁씨 → 유인씨有因氏 → 환인씨桓因氏 → 환웅씨桓雄氏 → 임검씨任儉氏 → 부루씨夫婁氏 → 읍루씨浥婁氏’ 의 7세 7천년간 이어진 것으로 바라본다. 이중 임검씨는 고조선의 왕검, 부루씨는 임검씨의 아들, 읍루씨는 고조선의 마지막 왕으로 설명되고 있는데, 고조선이 와해된 시점은 대체로 선도사서에서는 B.C. 238년, 일반적으로는 B.C. 108년 한 무제에 의한 왕검성의 함락 및 한사군의 설치가 기준이 되고 있으니 이에 의거할 때 마고성시대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B.C. 7,000여년 이전의 시기가 되는 것이다. 「부도지」에서는 마고성시대를 이상시하는데, 이유는 당시의 사람들을 이상시하기 때문이다. 「부도지」에서는 마고성시대의 사람들이 "四天女·四天人 8人이 律呂를 통하여 天地의 本音을 맡아서 다스렸으나 本音을 響象으로 증명해주는(修證) 자가 없었기 때문에 만물이 잠깐 사이에 태어났다 잠깐 사이에 없어지며 조절이 되지 않았다. 麻姑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四天人·四天女에게 명해 겨드랑이를 열어 출산하게 하였다. 이에 四天人과 四天女가 결혼하여 각각 三男·三女를 낳았는데, 이들이 지상에 처음으로 나타난 인간의 시조(人祖)로서 곧 각각 3천명으로 늘어났다. 최초의 人祖 12人이 각각 성문을 지키고 나머지 자손은 響象을 나누어 관리하며 修證하니 비로소 曆數가 조절되었다. 마고성의 사람들은 품성이 純正하여 능히 調和를 알고, 地乳를 마시므로 혈기가 맑았으며 귀에 烏金이 있어 天音을 듣고, 길을 갈 때 능히 뛰고 걸을 수 있으므로 오고감이 자유로왔다. 특히 그들은 性體를 보존하여 魂識이 일어남에 따라 소리를 내지 않고도 능히 말하고 때에 따라 魄體가 움직여 형상을 감추고도 능히 행동하여 地氣중에 퍼져 살면서 그 수명에 한이 없었다.(縮譯) "고 하여 ‘성품이 순정하여 능히 조화調和로왔다’고 설명한다. 또한 ‘존재계의 생성 이후 만물이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등 조절이 되지 않았으나 마고성의 사람들이 천지의 본음本音을 향상響象으로 받아 실천(수증修證)하니 비로소 역수曆數가 안정되었다’고 하였는데, 이를 앞서 제시한 ‘천부조화론’으로써 해석해보면 사람들의 내면에 자리한 ‘일기(삼기)〔천부〕’가 온전하게 유지되고 발현됨으로써 사람들의 품성이 순정하여 능히 조화로웠고 이에 세상까지도 조화로워졌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존재론의 핵심 교훈인 ‘천부조화론’이 인간론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고성 사람들의 조화로운 품성은 ‘오미五味의 화禍’를 계기로 변질된다. 곧 마고성내에서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자 지유地乳가 부족해지게 되었고, 사람들 중에서 포도를 먹는 사람이 생겨났다. 포도를 먹은 사람들은 포도속의 오미가 지닌 독으로 인해 성품(성性)과 모습(상相)이 변이되어 더 이상 마고성에서 살 수 없게 되었다. 「부도지」에서는 이 사건을 ‘오미의 화’라 하여 인세 최초의 변고變故이자 후천 변화의 일대 전기轉機로 인식한다. 사람들의 성품과 모습이 변이되니 존재계의 질서 또한 어그러져 기·토가 마주치어 질서가 교란되고 수·화가 조화를 잃어 핏기 있는 것들이 모두 시기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이를 ‘천부조화론’으로써 해석해보면 포도속의 오미로 상징되는바 물질(몸)적 감각이 중심이 되면서 사람들의 내면에 자리한 본질인 ‘일기(삼기)〔천부〕’가 온전하게 발현되지 못하여 사람들이 본연의 조화로운 성품을 잃어버리게 되고 나아가 이러한 사람들로 인해 세상까지도 조화로움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오미를 맛본 사람들은 차츰 마고성을 빠져 나가게 되는데, 1차로 마고성을 나간 사람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복본復本’〔마고성시대 사람의 원모습(본本), 곧 ‘일기(삼기)〔천부〕’가 온전히 발현되던 상태를 회복함〕 하려는 목적에서 지유를 얻고자 마고성의 성곽 아래를 파헤쳤다. 그러자 마고성이 파손되어 지유천地乳泉이 사방으로 흘러내려 마실 수 없게 되었다. 성안에 지유가 고갈되니 나머지 사람들도 동요하여 다투어 풀·과일을 취하게 되었다. 사태를 수습할 수 없을 정도가 되자 마고성내의 4종족 (황궁씨 중심의 황궁족· 백소씨白巢氏 중심의 백소족白巢族· 청궁씨靑穹氏 중심의 청궁족靑穹族· 흑소씨黑巢氏 중심의 흑소족黑巢族) 중에서도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있던 황궁족의 수장 황궁씨는 백모白茅를 묶어 마고 앞에 사죄하고 언젠가는 마고성에서의 원래 모습을 회복하겠다는 서약, 곧 ‘복본의 서약’을 하였다. ‘오미의 화’가 인세 최초의 변고로 강조된 만큼 ‘오미의 화’를 돌이키려는 ‘복본의 서약’ 또한 그만큼의 비중으로 강조되고 있다. ‘복본의 서약’ 이후 황궁씨는 논의 끝에 사람들이 현재 모습으로는 마고성에서 살 수 없으므로 종족들에게 복본을 위한 신표信標로서 천부(천부삼인)을 나누어주고 칡으로 식량을 삼는 법을 가르쳐 마고성에서 분거分居해가도록 하였다. 이에 청궁족은 동문으로 나가 운해주雲海洲로, 백소족은 서문으로 나가 월식주月息洲로, 흑소족은 남문으로 나가 성생주星生洲로, 황궁족은 북문으로 나가 천산주天山洲로 흩어져 갔다. 여기까지가 제1부 마고성시대이다. 이처럼「부도지」에서는 마고성시기를 이상시한다. 사람속의 ‘일기(삼기)〔천부〕’가 온전하게 발현됨으로써 사람들은 물론 세상까지도 조화로왔던 시기를 인류사의 궁극적인 이상향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하므로 사람들이 마고성에서 분거해 나온 이후의 역사를 서술할 때에도 한결같이 ‘복본’이라는 기준을 적용하게 되었는데, 복본이라는 용어만으로도 마고성시대를 이상시하는 역사인식이 잘 나타나 있다. 이처럼「부도지」에서는 마고성 출성 이후의 역사를 바라보는 기준으로서 ‘복본’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인식은「부도지」전반에 철저하게 배어 있어 ‘복본사관’으로 이름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여러 선도사서속에 드러난 선도사관 중에서도 복본사관의 경우처럼 한국선도의 존재론적 인식과 깊이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시종일관 ‘복본’이라는 하나의 관점을 철저히 고수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선도사관 중에서도「부도지」의 복본사관은 가장 선명하고 강렬한 사관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상에서 제1부 ‘마고성시대’에 나타난 복본사관을 살펴보았는데, 이는 제2부 및 제3부에도 한결 같이 적용되고 있다. 제2부 ‘마고성 이후~고조선시대’는 마고성 분거 이래 천부인(천부삼인)이 전승되던 고조선시대까지의 역사이다. 제1부에서 복본의 기준이 명확하게 제시되었던 만큼 여기에서는 마고성에서 분거해 나간 4종족 중에서도 특히 복본의 사명을 자임하였던 황궁족계의 역사가 중심이 되고 있다. 황궁족계의 역사 중에서는 ‘복본’과 관련된 부분, 곧 ‘마고성시대 사람의 원모습(본) = 사람속의 일기(삼기)〔천부〕’를 의미하는 천부인(천부삼인)의 전승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마고성시대 사람의 원모습(本) = 사람속의 一氣(三氣)〔天符〕’를 상징하는 ‘天符印(天符三印)’은 물론 물질적 상징물로서의 ‘天符三印’이겠지만 그 실제적인 의미는 사람속의 ‘一氣(三氣)〔天符〕’를 유지하게 하는 ‘선도수행법’이 될 것이다. 천산주로 간 황궁족은 음音을 수증修證함으로써 깨어진 존재계의 질서를 바로잡아 갔는데, 무엇보다도 복본의 사명을 잊지 않고 계속 지켜가기 위하여 황궁족의 수장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천부(천부삼인)을 전승하였다. 황 궁씨는 유인씨에게, 유인씨는 환인씨에게 천부(천부삼인)을 전하였는데, 이들의 수증 노력으로 햇빛이 고르게 비추이고 기후가 순조로워지는 등 세상이 현저히 안정되고, 사람들도 점차 본래 모습을 찾아가게 되었다. 환인씨로부터 천부(천부삼인)을 전해 받은 환웅씨는 천웅도天雄道를 수립, 배를 타고 사해를 순방하여 천부를 잊지 않을 것을 호소하고, 궁실·주거·화식의 방법 등도 가르쳤다. 환웅씨의 천부(천부삼인)은 임검씨에게로 계승되었다. 임검씨는 마고성을 본딴 ‘부도符都(천부사상의 중심 도읍)’을 건설하여 사해의 제족諸族에게 천부의 법을 전하는 중심 근거지로 삼았다. 임검씨대에 이르러 중원지역의 요가 부도의 명령을 거스르고 천부의 법에 반하는 이론을 만들어 웅거한 이래 그 세력이 점차 커져가자 유호씨를 파견해 치죄하기도 하였다. 임검씨의 천부(부도)는 부루씨를 거쳐 읍루씨에게로 이어졌다. 읍루씨는 요 이래 중원의 하족夏族에 의하여 천부(부도)의 진리가 왜곡된 것을 슬프게 생각하여 마침내 천부(부도)를 봉쇄하고 입산하였다. 이렇게 제2부에서는 마고성 이래 마고성시대를 상징하는 천부(부도)가 ‘황궁씨 → 유인씨 → 환인씨 → 환웅씨 → 임검씨 → 부루씨 → 읍루씨’로 전승된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 이를 ‘천부정통론天符正統論 또는 부도정통론符都正統論(부도론符都論)’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곧 마고성시대 또는 마고성을 정통正統의 시발점으로 잡은 이후 마고성 출성 이후 황궁씨부터 읍루씨까지는 비록 마고성시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마고성시대를 상징하는 천부(부도)가 지속적으로 전승되었던 시기로서 마고성시대의 정통이 계승되었다고 보았다.〔‘천부(부도)전승기’〕 반면 읍루씨 이후의 시기는 천부(부도)가 단절됨으로써 마고성시대의 정통이 끊어졌다고 보았다.〔‘천부(부도)망실기’〕 이러한 ‘천부정통론 또는 부도정통론(부도론)’은 한국선도의 ‘선도정통론仙道正統論’으로서 크게 주목된다. 제3부는 ‘신라 건국사’이다. 고조선의 읍루씨 이후 천부(부도)가 망실되었지만 그 전통이 제한적이나마 신라로 이어졌다고 보고 ‘천부(부도)의 전승’이라는 관점에서 신라건국사를 정리하였다. 특기할 것은 제3부가 ‘소부도지小符都誌’로 명명되고 있는 점이다. 고조선까지는 ‘부도의 시대’, 고조선 이후 신라는 ‘소부도의 시대’로 바라본 것으로, 고조선을 마지막으로 천부(부도)의 전통이 단절되었다고 보기에 신라가 비록 한반도 한쪽 구석에서 천부(부도)의 전통을 이어갔지만 제한적인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2부 및 제3부는 마고성 출성 이후 신라 건국초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을 다루었기에, 서술 방식에서 구체적인 역사 사실들을 체계적으로 조목조목 나열하는 방식이 되지 못하고 제1부에서 제시된 복본사관의 기준에 의거해서 가장 전기가 될 만한 사건을 선별, ‘사평史評’을 붙이는 방식을 취하였다. 결국 ‘사실史實’ 보다는 ‘사평’이 중심이 되고 있으니, 「부도지」는 전형적인 사서史書 형태라기보다는‘사론집史論集’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부도지」는 형식면에서 전형적인 사서로서의 체계는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지만, 사론을 중심으로 하여 복본사관만은 극히 뚜렷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부도지」첫머리에는 존재론에 이어 상고사의 시원이자 선도 정통의 시발점으로서 마고성시대가 제시, 마고성시대를 역사인식의 기준점으로 삼는 ‘복본사관’이 나타나 있다. ‘복본사관’에서는 마고성시대를 선도 정통의 시발로 보기에 마고성시대 이후의 역사는 마고성시대를 상징하는 천부(부도)의 전승에 초점을 맞추어 ‘천부정통론 또는 부도정통론(부도론)’이라는 선도정통론적 인식을 보였다. 선도정통론에서는 고조선을 마지막으로 천부(부도)의 정통이 끊어진다고 보기에 신라가 천부(부도)의 전통을 계승하였음을 명시하면서도 그 제한적인 의미 또한 분명히 하였다. ‘복본사관’ 및 ‘천부정통론 또는 부도정통론(부도론)’은 한국선도 고유의 존재론을 바탕으로 한 경사일체론적經史一體論的 역사인식으로 선도사관 중에서도 가장 시원적인 형태로 볼 수 있다. 정경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과 교수 hsp3h@ikoreanspiri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