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달력에 새겨진 한글의 빛, 보셨나요 / 김슬옹 <오마이뉴스> 2026.04.29
유위자2026. 5. 24.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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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4_21 : 훈민정음 關聯기사]* 100년 전 달력에 새겨진 한글의 빛, 보셨나요 / 김슬옹 <오마이뉴스> 2026.04.29
26.04.29 100년 전 달력에 새겨진 한글의 빛, 보셨나요
식민의 어둠 속에서 우리 글이 피어난 자리 '개벽병인력' / 김슬옹(tomulto)
▲1926년, '개벽병인력'(開闢丙寅曆) 달력 ⓒ 국립한글박물관
29일 국립한글박물관이 새로 수집한 한글문화유산 한 점을 박물관 누리집과 누리소통망을 통해 공개했다.
1926년 1월, 잡지 <개벽>의 부록으로 발행된 달력 '개벽병인력'(開闢丙寅曆)이 그것이다.
꼭 100년 전, 식민의 한가운데에서 우리 선조들이 한 해를 어떤 글자로 시작하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귀한 자료다.
이 달력을 처음 펼쳐 보았을 때, 솔직히 한자가 압도적으로 많아 가슴이 먼저 답답해졌다.
절기(節氣), 연기표(年紀表), 조선도부군일람(朝鮮道府郡一覽) 같은 정보들이 모두 한자로 빼곡하다.
1926년이라는 시대의 무게가 그대로 느껴진다.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이 달력은 한글 중심 자료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표기 비중으로 보면 한자가 압도적이고, 한글이 쓰인 부분도 대부분 한자와 섞여 있는 국한문 혼용 형식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자료에서 한글이 어디에, 어떻게, 얼마만큼 자리를 차지했는지를 정밀하게 살피는 일이 의미가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달력의 정중앙이다.
가장 크고 또렷한 글자가 놓인 그 자리에, 한자가 아닌 한글 세 글자가 박혀 있다.
<어린이> 좌측 상단의 붉은 한자 표제 <新女性>(신여성), 우측의 <開闢>(개벽)과 나란히,
그러나 한복판에 자리 잡은 것은 순우리말 한글 '어린이'다.
개벽사가 발행한 세 자매 잡지 <개벽> <신여성> <어린이>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두 잡지는 한자 제호로, 한 잡지는 한글 제호로 표기된 셈이다.
잡지 <어린이>의 제호 자체가 순우리말이었으니 당연한 표기이기도 하지만,
그 한글 제호가 달력의 시각적 무게중심에 놓였다는 점은 짚어둘 만하다.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라는 말을 새로 만들어 잡지명으로 내건 것이 1923년이니,
이 새 한글 표기 낱말이 1926년 달력의 심장부에 자리한 것이다.
식민지 문체 정책의 그림자
이 달력의 문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당시 일제가 우리글에 어떤 정책을 펴고 있었는지 먼저 알아야 한다.
필자가 신한준 선생과 함께 번역 출판한 <조선통치 회고와 비판>(이노우에 외 90인, 가온누리, 2023)은
1936년 조선총독부가 식민통치 25주년을 기념해 기획·집필한 자료집이다.
이 책에 따르면, 일제는 조선 식민지의 주요 문체 정책으로 일본식 국한문 혼용체를 적극적으로 획책했다.
일본어 문체 구조를 본뜬 국한문 혼용, 즉 명사·동사 어간은 한자로 쓰고 조사와 어미만 한글로 다는 방식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표기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조선인의 문자 의식을 일본어 문장 구조에 길들이려는 치밀한 동화 정책이었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대표적 사례가
바로 최남선이 기초한 '기미독립선언문'(1919)이다.
"吾等은 茲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민족의 독립을 선언하는 그 장엄한 글이,
정작 문체로는 일본식 국한문 혼용체의 틀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깊은 성찰 거리를 던진다.
독립을 외치는 목소리조차 식민의 문체로 발화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였다.
이 맥락에서 솔직하게 인정해야 할 것이 있다. 1926년의 '개벽병인력' 역시,
그 문체의 큰 틀은 '기미독립선언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국한문 혼용체다.
명사는 한자로, 조사와 어미는 한글로, 일본식 국한문 혼용 문체 흐름 안에 이 달력 또한 놓여 있었다.
잡지 <개벽> 자체도 본문 표기에서 국한문 혼용을 기본으로 삼은 매체였다.
이같은 국한문 혼용체 안에서도 '개벽병인력'이 보여준 한글 사용의 결을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첫째, 잡지 제호의 시각 배치다.
한자 제호 <新女性> <開闢>과 한글 제호 <어린이>가 나란히 놓이되,
한글 제호가 가운데 자리에서 시각적 중심을 차지했다. 이는 적어도 한글로 된 제호를 한자 제호와 동등한,
혹은 그 이상의 무게로 다루겠다는 편집 의지의 표현으로 읽을 수 있다.
둘째, 좌측 상단 <新女性> 아래로 흘러내리는 세로쓰기 설명문이다.
이 부분도 엄밀히는 국한문 혼용이지만,
한자 비중이 본문 다른 부분보다 눈에 띄게 낮고, 한글 풀이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녀성의 새로운 세계를 여러 나가는" 같은 구절에서 보듯, 한글로 풀어 쓴 흐름이 살아 있다.
당시 표기법이 지금과 달라 "녀성", "여러" 같은 옛 형태가 보이지만,
한자에 의지하지 않고도 뜻을 전달하려 한 노력이 묻어난다.
셋째, 잡지 <어린이>의 한글 제호를 그대로 살린 것이다.
일본식 국한문 혼용체의 압력 속에서 한글로만 된 제호를 만들고
그것을 달력 정중앙에 배치한 것은, 비록 작지만 의미 있는 선택이었다.
이 달력의 한글은, 식민지 문체 정책의 거대한 흐름을 거스른 영웅적 저항이 아니라,
그 흐름 한가운데에서 우리 글의 자리를 조금씩 넓혀 나가려 한 조용한 시도였다.
거창한 평가는 사실을 가리지만, 그 작은 시도조차 외면하면 역사의 결을 놓치게 된다.
표제의 '병인'(丙寅)은 1926년의 육십갑자다.
이 해는 6월 10일 만세운동이 일어난 해이자,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의 제자들이
조선어연구회(이후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한글 정리 사업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같은 해 11월 4일에는 가갸날(현 한글날)이 처음 제정되었다. 그러니까 이 달력은
우리 민족이 한글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다시 세우려 분투하던 바로 그 해의 첫머리에 만들어진 것이다.
달력 한 장이 단순히 날짜를 알려주는 종이가 아니라,
한 시대의 문자 의식을 담는 그릇이라는 사실을 이 자료는 말없이 증언한다.
그 의식은 아직 미완이었고, 일본식 국한문 혼용체의 틀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그 안에 한글의 자리를 마련하려는 작은 의지가 분명히 깃들어 있었다.
식민의 문체를 넘어 오늘의 한글로
광복 후 우리 사회에서 한글 전용 운동이 그토록 치열했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단순히 한자가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일본식 국한문 혼용체로 길들여진 우리의 문자 의식 자체를 우리 글로 되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1926년의 이 달력은 그 긴 여정의 한 지점, 그것도 매우 초기의 한 지점을 보여준다.
2026년은 훈민정음 반포 580돌, 한글날 제정 100돌이 되는 해다.
이 달력 '개벽병인력'은 100년의 거리를 두고 우리에게 묻는다. 식민의 문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걸어온 길은 어디까지 왔으며, 우리는 오늘 우리 글에 어떤 마음을 새기고 있는가.
광화문 한글 현판 운동을 비롯해 우리말 살리기에 마음을 쏟는 모든 분들께 이 자료를 권하고 싶다.
국립한글박물관 아카이브 누리집(https://archives.hangeul.go.kr)에서 누구든 직접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