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훈민정음(訓民正音)/훈민정음關聯기사

소헌왕후 서거 580주기에 올리는 글 / 김슬옹 <오마이뉴스> 2023.02.01

유위자 2026. 5. 24. 23:32
.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4_21 : 훈민정음 關聯기사] * 소헌왕후 서거 580주기에 올리는 글 / 김슬옹 <오마이뉴스> 2023.02.01 26.04.28 소헌왕후 서거 580주기에 올리는 글 떠난 그 자리에 남은 <월인천강지곡>... 인류 전체의 유산 될 수 있을까 / 김슬옹(tomulto) 오늘은 1446년 음력 3월 24일, 양력으로는 4월 28일. 소헌왕후께서 세종 임금 곁을 떠나신 지 꼭 580년이 되는 날이다.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그날의 슬픔이, 580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지금 이 봄 날의 책상 앞까지 환하게 닿아온다. 훈민정음은 세종 단독 창제가 분명하지만 그것은 임금으로서 수많은 인재들, 가족 많은 주변인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1443년 창제, 1446년 반포로 이어지는 대업 한가운데에는, 임금의 학문과 정치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묵묵히 받쳐 주신 소헌왕후의 손길이 있었다. 8남 2녀를 기르며 궁중을 다스리시면서도, 친정아버지 심온이 누명으로 사약을 받고 광평·평원 두 아드님을 먼저 떠나보낸 그 깊은 슬픔조차 임금의 일에 그늘이 되지 않도록 안으로 삼키신 분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다. 왕후께서 떠나신 그 자리에서, 한글 보급의 가장 결정적인 두 책.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이 태어났다. 성리학을 국시로 삼은 조선에서 임금이 불경을 한글로 펴낸다는 것은 본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대부들의 반대는 거셌고, 임금의 권위로도 쉽게 누를 수 없는 벽이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왕비를 잃은 임금의 인간적 슬픔 앞에서 그 벽은 조용히 무너졌다. 왕후의 죽음이 사대부들의 입을 다물게 했고, 그 침묵 속에서 새 문자는 비로소 백성의 삶 한복판으로 걸어 나올 수 있었다. 한글이 단순한 '발명품'에 그치지 않고 백성의 문자가 된 그 결정적 전환점에, 왕후의 자리가 있었던 것이다. 특히 세종 임금께서 친히 지으신 <월인천강지곡>(1447~1448)은 한글 문헌사에서 비길 데 없는 책이다. 무엇보다 한자보다 한글을 대략 2배 반 크게 앞세워 적은 곧 "언젠가는 한글이 주류 문자가 되리라"라는 임금의 꿈을 활자의 크기로 새겨 놓은 책이다. 부처님의 말씀이 천 개의 강에 달이 되어 비치듯, 한글이 온 백성에게 두루 비치기를 바라는 그 간절함이 한 글자 한 글자에 박혀 있다. 그리고 그 '천 개의 강을 비추는 달'의 첫 자리에는, 임금이 그토록 그리워한 왕후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월인천강지곡>은 한글 찬불가 책이자, 동시에 임금이 왕후께 올린 가장 큰 추모 노래였던 것이다. 지금 <월인천강지곡> 소장자인 미래엔교과서박물관과 추진 기관인 세종시는 이 책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일에 마음을 모으고 있다. 이 일은 단순한 학술 사업이 아니다. 한 임금이 한 여인을 사랑한 마음, 그 사랑이 한 민족의 문자가 되어 백성에게 흘러간 그 '큰 사랑의 기록'을 인류 전체의 유산으로 모시는 일이다. 580년 전 봄 날에 떠나신 왕후의 슬픔이 헛되지 않았음을, 그 슬픔이 도리어 온 인류의 보배가 되었음을 세계 앞에 증언하는 일이다. 마침 올해 2026년은 훈민정음 반포 580돌, 한글날 제정 100돌이 되는 '한글580·100'의 해이다.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다시 걸자는 시민들의 외침이 거세지고, 해례본의 정신을 다시 새기려는 손길이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 봄에 왕후의 580주기를 맞는 일이 결코 우연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580년의 시간이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우리에게, 왕후의 자리를 똑바로 바라보라 이르고 있는 듯하다. 세종 임금을 기리는 만큼, 이제는 소헌왕후를 기려야 할 때이다. 여주 영릉에 두 분이 함께 잠들어 계시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서 왕후의 자리는 여전히 임금의 그늘에 가려져 있다. 한글이 임금 한 분의 위업이 아니라 '두 분의 사랑이 빚어낸 문자'였음을 우리가 또렷이 새길 때, 비로소 한글의 역사는 온전해진다. 세종 임금께서 580년 전 봄날 한글 보름달을 바치셨다면, 오늘 <월인천강지곡>이라는 또 하나의 보름달을 왕후의 품에 올린다. 이 달이 인류의 하늘에 더 높이 떠오르도록, 남은 길을 다해 받들 것을 왕후의 580주기 봄날에 다짐한다. 소헌왕후시여, 580주기를 맞아 추모시를 바치오니 부디 평안하시옵소서. 즈믄 가람에 비친 달빛의 노래 셋 -소헌왕후, 부처님, 그리고 훈민정음, 월인천강지곡 세종대왕의 노래 하나. 즈믄 가람에 비친 그리움 - 소헌왕후 그대여! 훈민정음 해례본 완성을 앞두고 그대 떠난 병인년(1446년) 봄 임금의 붓끝에 눈물이 맺혀 정음 하나하나가 그리움이 되었네 하늘에 오른 그대는 달이 되고 즈믄 가람 위에 고이 내려앉아 물결마다 그대 얼굴 어리누나 노래를 지어 부르면 그대 들으실까 오백 곡 넘는 가락 속에 차마 못다 한 사랑이 넘치네 가람은 흐르고 흐르건만 달빛은 밤마다 돌아오니 임금의 그리움도 그러하였으리 둘. 즈믄 가람을 비추는 말씀 - 달빛처럼 빛나는 부처님 가르침 하나의 달이 즈믄 가람에 고루 비치듯 부처님의 말씀도 백억 누리에 두루 퍼지네 깊은 골짜기에도 넓은 들판에도 달빛은 가리지 않고 내려앉으니 덜 밝은이 더 밝은이 낮은이 높은이 말씀 앞에 모두 한가지라 물이 맑으면 달이 밝고 마음이 고요하면 가르침이 비치나니 즈믄 가람이 아니라 온누리 모든 마음이 가람이로다 셋. 즈믄 가람에 띄운 스물여덟 빛, 아아! 훈민정음 1426년 한자 모르는 백성들의 어두운 눈빛에 밤잠 못 이루더니 1443년 창제까지 열일곱 해를 품은 꿈이 있었네 글을 모르는 이의 막힌 목소리 억울한 이의 펴지 못한 마음 임금은 홀로 빚었네 스물여덟자의 빛을 한자라는 높은 담 너머 가 닿지 못하던 배움의 길에 쉬운 글자로 다리를 놓았네 큰 글자로 새긴 달 노래처럼 한글이 크게 앞서고 한자가 오종종 뒤따르니 이것이 임금의 꿈이었네 하나의 달이 즈믄 가람에 비치듯 스물여덟 글자가 만백성에게 스미어 누구나 배워 누구나 쓰게 하라 그 꿈은 다섯 온 여든 넘은 해가 넘어 오늘에야 비로소 온누리를 밝히고 있네 *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월인천강지곡>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학술분과 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