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훈민정음(訓民正音)/훈민정음적용작품

동국정운(東國正韻) / [위키백과]

유위자 2025. 12. 23. 11:51
.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4_14 : 훈민정음 적용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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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무정운역훈(洪武正韻譯訓) / <나무위키> 바로가기

* 동국정운(東國正韻) / [위키백과] 1. 개요 《동국정운》(東國正韻)은 한자음을 바로잡아 통일된 표준음을 정하려는 목적으로 간행된 책이다.[1] 1448년(세종 30년)에 반포된 한국 최초 표준음에 관한 책이자 운서(韻書)이다. 한자음을 훈민정음으로 표기하였다. 그 시대에 통용되던 한자음을 충분히 고려치 않았기 때문에 국가적인 장려에도 불구하고 실용성이 떨어지는 관계로 잘 사용되지 않다가[2] 16세기 들어서는 '동국정운식 한자음'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3] 1) ≪동국정운≫에서, 당시의 한자음을 중국의 ≪홍무정운≫의 음을 참고하여 새롭게 고쳐 훈민정음으로 표기하여 규정하여 놓은 음. 당시 조정에서는 이것을 사회적으로 장려하고 규범화하려고 하였으나, 우리나라 한자음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주관적이고 사대주의적이며 복고주의적인 성격이었으므로 실현될 수 없었다. 2)「동국 정운」은 편집 방침과는 달리 송나라 등운학과 명나라 「홍무 정운」의 언어 정책을 지나치게 따랐으므로 현실음과 거리가 있는 규범적인 우리 한자 발음 사전으로 남게 되었다. 「동국 정운」의 한자음은 불경 언해서의 한자음 표기를 위해 주로 사용되었다가 16세기 초기부터는 아예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3) 세종의 언어정책의 일환으로 당시 혼란상태에 있었던 우리나라의 한자음을 바로잡아 통일된 표준음을 정하려는 목적으로 편찬, 간행되었다. 1447년(세종 29) 편찬이 완성되었고, 이듬해인 1448년 10월에 간행되었다. 2. 설명 《동국정운》은 훈민정음 반포한 다음 해인 1447년 음력 9월에 완성하고, 1448년 음력 10월에 반포했었다.[4][5] 편찬은 신숙주, 최항, 성삼문, 박팽년, 이개, 강희안, 이현로(李賢老), 조변안(曹變安), 김증(金曾)이 담당하였다. 신숙주가 동국정운의 서문을 통해 책을 지은 이유를 밝혔다. 《동국정운》은 중국의 운서인 《홍무정운(洪武正韻)》(1375년)에 관한 동국(즉 한국)의 표준적인 운서라는 뜻에서 그 이름을 지었다. 3. 동국정운식 한자음 《동국정운》에서 제시된 한자음은 예로부터 한반도에서 써온 현실 한자음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이 한자음을 일반적으로 동국정운식 한자음(東國正韻式漢字音)이라 부른다. 《동국정운》 편찬자들은 현실 한자음을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여 이상적인 표준 한자음을 동국정운식 한자음으로 제시한 것이다. 《동국정운》 서문에 따르면 현실 한자음의 ‘잘못’은 아래와 같다. 1) 계모(溪母; [kʰ])의 대부분이 견모(見母; [k])에 들어가 있다. 2) 계모의 일부가 효모(曉母)에 들어가 있다. 3) 탁음이 없다. 4) 성조에서 상성(上聲)과 거성(去聲)이 구별되지 않는다. 5) 입성 중 단모(端母; [t̚])로 끝나야 할 것이 내모(來母; [ɾ])로 끝난다. 6) 설두음(舌頭音)과설상음(舌上音), 중순음(重脣音)과경순음(輕脣音), 치두음(齒頭音)과정치음(正齒音)이 구별되지 않는다. 4. 체계 동국정운식 한자음 체계에서 특징적인 것은 한자음을 초성, 중성, 종성 세 부분으로 나눈 점이다. 이는 중국 음운학에서 한자음을 성모(聲母)와 운모(韻母) 두 부분으로 나눈 것과는 다르다. 또 한국어 표기와 달리 한자음 표기에는 초성, 중성, 종성 세 부분이 모두 갖춰져 있고 종성이 없는 한자음이 없는 것도 동국정운식 한자음의 특징 중 하나다. 동국정운식 한자음은 중국어 중고음(中古音)의 음운 체계를 이상적인 것으로 하면서도 《고금운회거요(古今韻會擧要)》(1297년)나 《홍무정운(洪武正韻)》(1375년)의 체계, 그리고 현실 한자음의 음형(音形)도 고려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5. 동국정운식 한자음의 사용 동국정운식 한자음은 한자음의 규범으로서 매우 중요하게 보았으며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을 비롯하여 한글 문헌은 모두 이 동국정운식 한자음에 따라 주음(注音)되었다. 그러나 현실 한자음을 반영하지 않은 이 한자음은 급속히 쓰이지 않게 되어 《동국정운》 반포 28년 후에 간행된 《오대진언(五大眞言)》에서는 홍무정운식 한자음에 따라, 《육조법보단경 언해(六祖法寶壇經諺解)》(1496년)에서는 현실 한자음에 따라 주음되고 16세기에 이르러서 동국정운식 한자음은 아예 쓰이지 않게 되었다. 6. 대한민국의 문화재 1) 간송미술관 소장본 동국정운<권1,6> 국보 (구)제71호(1962년 12월 20일 지정) 조선 세종(1448년) 간송미술관 이 책은 세종 29년(1447) 9월에 완성되자 간행하라는 임금의 명이 있었고, 이듬해인 세종 30년(1448) 11월에 성균관, 사부학당 등에 보급되어, 이 책이 간행되고 보급되었던 시기를 알 수 있다. 현재 이 책은 전 6권 가운데 1권과 6권만이 남아있다. 내용을 보면 본문의 큰 글자는 나무활자이고, 작은 글자와 서문의 큰 글자는 갑인자이다. 글자체는 큰 글자가 진양대군의 글씨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한자음을 우리의 음으로 표기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국어연구자료로서의 중요성도 『훈민정음』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또한 한자음의 음운체계 연구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의 글자를 만든 배경이나 음운체계 연구에 있어서 기본자료가 된다. 2) 건국대 박물관 소장본 이 부분의 본문은 동국정운 (국보 제142호)입니다. 동국정운 국보 (구)제142호(1972년 3월 2일 지정) 조선 세종(1448년) 건국대학교박물관 소장 동시 출간된 국보 제71호『동국정운』과 비교하여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첫째, 개장(改裝) 당시 책은 실로 짠 천이나 종이(紙)를 약간 절단해 냈고, 둘째, 제목은 다같이 목판인쇄이나, 그 서체가 서로 다르다는 것. 셋째, 책의 순서로 예, 악, 사, 어, 서, 수를 묵서했는데 국보 제71호에 없는 것으로 봐서 이것은 뒤에 한 것으로 보인다. 1) 종이: 저지(楮紙). 2) 크기: 세로 31.9센티미터, 가로 19.8센티미터. 3) 판광(板匡): 반엽(半葉) 세로 23.3센티미터, 가로 16.2센티미터, 사주단변(四周單邊), 무계(無界), 상하 내향 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 4) 반엽의 행수, 자수: 서문은 반엽 9행, 1행 15자, 본문은 반엽 7행, 1행 11자. 5) 활자: 서문은 초주 갑인자(소자), 본문 표제자는 갑인자(대자) 목활자임. 본문 한글 자체(字體)는 훈민정음 해례에서 쓰인 것과 같음. 6) 권수: 6권.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의 권차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