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4_4 : 훈민정음 상세알아보기]* 조선어학회(朝鮮語硏究會)와 한글날(가갸날) / <조선일보> 2006.10.16
[이희용의 글]
조선어연구회 [朝鮮語硏究會]
선구적 한글학자인 주시경(周時經)의 영향을 받은 임경재(任璟宰), 최두선(崔斗善), 이규방(李奎昉),
권덕규(權悳奎), 장지영(張志映), 신명균(申明均), 이상춘(李常春), 김윤경(金允經), 이승규(李昇圭) 등
15, 16명이 1921년 12월 3일 휘문의숙에서 국어의 정확한 법리(法理)를 연구할 목적으로 조직하였다.
간사장은 임경재, 간사는 장지영·최두선이었다. 역사상 최초의 국어연구학회로
학문연구뿐 아니라 주시경의 학문과 정신을 이어 말과 글을 통해 민족정신을 고취하고자 노력하였다.
이 단체는 1908년 8월 31일 주시경·김정진 등을 중심으로
우리 말과 글의 연구·통일·발전을 목표로 조직된 국어연구학회를 모체로 하여 탄생하였다.
국어연구학회는 1911년 9월 3일 '배달말·글모음'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913년 3월 23일 '한글모'로 개칭하였다가 1921년 조선어연구회로 변경·조직되었다.
1931년 1월 10일에는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고쳤다가 1949년 9월 25일 이후 한글학회로 정해져 오늘에 이른다.
1926년,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정하였는데 지금의 한글날에 해당한다.
1927년 2월부터는 기관지 《한글》을 간행하여 한글의 보급과 선전에 힘썼으나
재정난과 일제의 탄압으로 1928년 10월 제9호를 내고 휴간하였다가 1932년 속간되어 오늘에 이른다.
1931년부터 한글강습을 시작해 민족의식 고취에 크게 이바지하였으며,
1933년 10월 29일 한글날 기념식에서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발표하였다.
1936년 표준말의 정리와 체계를 세워 사정(査定)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발표하였고,
1940년에는 외래어 표기법을 발표하여 혼란된 표기 현상을 통일하였다.
1942년 10월 일제는 이른바 '조선어학회사건'을 일으켜
회원 33명을 반일(反日)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하여 8·15광복 때까지 학회활동이 완전히 중단되었다.
8·15광복 후 조선어학회는 '한글학회'로 이름을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가갸날과 한글날(10월 9일)
1926년 11월 4일(음력 9월 29일), 당시 민족주의 국어학자들의 단체인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가 주동이 되어 세종대왕의 훈민정음(訓民正音) 반포 48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식을 가지고, 이날을 제1회 '가갸날'로 정하였다.
《세종실록(世宗實錄)》에 따르면, 1446년(세종 28) 음력 9월 훈민정음이 반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당시 음력 9월의 마지막 날인 29일을 한글이 반포된 날로 추정하여 '가갸날'로 정하고,
신민사(新民社)와 공동 주최로 한글반포 8회갑(八回甲:480년)을 기념하였다.
이듬해인 1927년 조선어연구회 기관지 《한글》이 창간되고부터 이날을 '한글날'로 고치고 계속 음력으로 기념하다가,
1932년 음력을 율리우스력으로 환산하여 양력 날짜로 환산, 10월 29일에 기념 행사를 가졌다.
다시 1934년 정확한 그레고리력으로 환산 적용하여 10월 28일로 정정하였고,
1940년 7월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이 발견되어 정인지(鄭麟趾) 서문의 "正統十一年九月上澣"에 근거하여
반포일이 9월 '상한(上澣)'으로 나타났으므로, 상순의 끝날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1446년(세종 28) 10월 9일로 1945년부터 10월 9일로 확정했다.
1970년 6월 15일, 대통령령으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제정·공포하여 공휴일로 정했다.
그러나 1990년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 기념일로 바뀌었고, 2006년부터 법정 공휴일이 아닌 국경일로 지정되었다.
한글날을 전후한 주간에 정부·학교·민간단체 등에서 세종문화상을 시상하고
세종대왕의 능인 영릉(英陵)을 참배하는 등 세종대왕의 높은 뜻과 업적을 기리고
한글의 제정을 경축하며 전국에서 학술대회 및 각종 백일장을 거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