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문자의 기원/문명과 구조물

스톤헨지(Stonehenge) <나무위키> 2025.06.17

유위자 2025. 10. 31. 08:32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3_1 : 문명과 구조물] * 스톤헨지(Stonehenge) <나무위키> 2025.06.17 1. 개요 스톤헨지(Stonehenge)는 원형으로 늘어선 거석군, 즉 '환상열석(環狀列石)'을 가리키는 영어 보통명사이나, 다른 수식어 없이 쓰일 때는 영국 잉글랜드 사우스웨스트 잉글랜드주 솔즈베리 평원에 있는 대표적인 열석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쓰인다. 본 문서에서는 영국의 문화재인 후자의 스톤헨지를 다룬다. 솔즈베리 스톤헨지는 원형의 흙 구조물 한가운데 거대한 바위들을 여러 형태로 세워 배열한 선돌(입석, 立石) 유적지이다. 이 거대한 구조물은 폭이 6미터, 깊이 1.4미터인 도랑에 둘러싸인 원형 광장의 형태를 띄며, 둥근 고리 모양으로 서 있는 거대한 열석과 동북 방향으로 U자 형태로 펼쳐진 돌무리로 구성되어 있다. 원의 지름은 약 98미터이다. 스톤헨지 1900년 조사도 1900년 12월 30일 작성된 선돌 및 돌무리의 배열 위치와 형태를 나타낸 그림. 색이 채워진 부분은 서있는 돌, 실선으로 칠해진 부분은 누워 있는 돌무리들이다. 2. 형성 스톤헨지(Stonehenge)라는 영어 명칭은 중세 시대에 붙었다. 솔즈베리 스톤헨지 외에도 이와 비슷한 돌기둥 무리가 영국과 아일랜드 각지에 분포한다. 고인돌과 비슷하다. 솔즈베리 스톤헨지의 터는 스톤헨지를 건설하기 이전부터 중요한 곳이었던 듯하다. 기원전 8천 년 무렵에 나무 기둥들을 세운 흔적이 발견되었고, 이후 스톤헨지는 3단계로 건설되었다. 사슨석(Sarsen stone)과 청석으로 이루어진 스톤헨지는 바깥쪽 원을 셰일 서클, 안쪽 원을 블루스톤 서클이라고 부른다. 사슨석으로 만든 원은 기원전 1500년경에 세워졌고, 블루스톤(청석)으로 만든 원은 기원전 2000년경에 세웠다고 한다. 바깥쪽 셰일 서클은 사슨석을 30개 세운 다음 그 위에 돌을 가로로 눕혀서 원을 그리도록 배치하였는데, 현재는 30개 중 17개만 남았다. 세일 서클 바깥쪽에는 Y홀, Z홀이라 불리는 작은 구덩이들이 동심원을 그리듯 배열되었는데, 이중 Z홀이 안쪽, Y홀이 바깥쪽에 있다. Y홀과 둑 사이에는 '오브리 구덩이(Aubrey holes)'라고 불리는 구덩이가 56개 있었지만 지금은 그중 절반 정도는 메워졌다. 오브리 구덩이에서 사람을 화장하고 남은 뼈가 발굴되었는데, 방사성 연대측정 결과 중앙의 돌기둥이 세워지기 500여 년 전으로 나타났다. 스톤헨지 일대는 신석기시대의 대규모 화장 유골 매장지였던 것이다. 다만 이곳에서는 시신을 화장한 장소가 발견되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 화장한 후 여기로 시신을 옮긴 것이다. 유골의 성분 검사 결과 스톤헨지에 묻혔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스톤헨지 근방 출신이 아니라 영국 전지역에 걸쳐 있었는데, 영국 웨일즈 서쪽 지방 사람들이 많았다. 오브리 구덩이 위쪽에는 작은 선돌 두 개가 작은 입석이 정반대 방향으로 놓였다. 두 선돌 가까이에는 원형 무덤이 있는데, 입석과 무덤을 더해 '포 스테이션(네 개의 측점석測点石)'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안쪽의 청석들은 돌을 세우거나 눕히지 않고, 바깥쪽의 셰일과 비교해 크기가 작고 형태도 불규칙한 돌들을 사용해서 만들었다. 블루스톤 서클 안에는 말발굽 형태(입석 두 개 위에 돌을 가로로 눕혀놓은 형태)로 배치된 셰일 삼석탑(三石塔)이 다섯 기 있다. 그 안쪽 중앙에는 편평한 제단석이 놓여 있다. 스톤헨지라는 명칭은 바로 이 삼석탑에서 유래하였는데, 고대 영어에서 '위에 올려놓은 돌'을 의미하는 말이다. 셰일 서클 바깥쪽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힐스톤(발뒤꿈치 돌)이라 불리는 돌이 홀로 서 있다. 하짓날 태양이 힐스톤을 통과하여 스톤헨지의 중심 중앙제단을 비춘다고 한다. 그리고 이 돌과 사슨석 구조물 사이에는 슬로터스톤(도살석屠殺石)이라 불리는 돌이 있다. 슬로터스톤은 현재 옆으로 누워 있지만 옛날에는 똑바로 서 있었다고 추정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구멍들을 파고 그 구멍에 작은 돌들을 넣어 테두리가 형성된 형태였으나, 기원전 2800년 무렵 스톤헨지를 둘러싼 도랑과 둑, 그리고 정북을 가리키는 힐스톤을 더했고, 그로부터 800년 후 원을 그리는 청석(靑石) 표석들을 세워 스톤헨지의 모습을 갖추었다. 여기서 청석(靑石)이라고 번역한 단어가 영어로는 Bluestone이기 때문에 '청석'이 파란색을 띠는 특정한 암석 종류라고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여기서 Bluestone은 '(스톤헨지 인근에서) 나오지 않는 외래外來 돌'이란 뜻이다. 실제 스톤헨지에서 '청석 표석'의 구체적인 암석 종류는 스무 가지가 넘는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웨일즈의 프러셀리(Prescelly)산에서 나온 것들이다. 아마도 비커(Beaker)인들이 육로를 타고 인력으로 끌고 온 듯하다. 몇몇 청석들은 프러셀리산이 아닌 웨일즈의 다른 곳에서 가져온 듯하다. 학자들은 암석들을 비교하여 옛 사람들이 프러셀리산의 정확히 어느 장소에서 돌을 채취하였는지 특정하기까지 하였다. 마지막으로 기원전 1500년 무렵에 사슨석(Sarsen石)[5]으로 삼석탑(三石塔)을 세웠는데, 웨식스(Wessex) 문명의 소산이라고 추정한다. 스톤헨지 리버사이드 프로젝트(Stonehenge Riverside Project)를 주도한 마이크 파커 피어슨(Mike Parker Pearson)[6] 교수는 프러슬리산에서 운반해온 청석 돌기둥을 처음에는 바로 오브리 구덩이 위에 세웠다고 주장했다. 즉, 청석 표석의 본래 용도는 묘비(墓碑)였는데, 후일 돌기둥들을 안쪽으로 옮겼기 때문에 오브리 구덩이만 움푹 패인 흔적을 남긴 채로 남았다는 말이다. 파커 피어슨 교수는 스톤헨지 인근에서 발견된 우드헨지(Woodhenge)와 더링턴 월스(Durrington Walls) 유적지가 스톤헨지와 관련이 깊고, 우드헨지와 더링턴 월스는 산 사람, 스톤헨지는 죽은 사람을 위한 종교적 공간으로 기능했다고 주장한다. 스톤헨지 리버사이드 프로젝트로 확인한 고고학적 연구 성과 덕에 크게 주목받는 학설. 2020년 7월에 스톤헨지의 사슨석이 북쪽으로 불과 25 km 떨어진 곳에서 옮겨진 것으로 확인됐다.# * 30t 무게 스톤헨지 거석 비밀 풀렸다…"25km 북쪽서 옮겨져" <연합뉴스> 입력2020.07.30. 1958년 복원작업 중 유출된 사르센석 돌 기둥 반환…고고학자들 분석 작은 크기의 블루스톤은 200km 이상 떨어진 웨일스 지역에서 유래 영국 선사시대 유적 스톤헨지 [잉글리시 헤리티지 제공. 로이터=연합뉴스] (런던=연합뉴스) 박대한 특파원 = 최대 무게 9톤(t), 9m 크기의 스톤헨지 사르센(sarsen)석(石)은 북쪽으로 불과 25km 떨어진 곳에서 옮겨진 것으로 확인됐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선사시대 유적 스톤헨지는 영국 남부 윌트셔주 솔즈베리 평원에 있으며, 용도와 목적 등 많은 부분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힌다. 스톤헨지는 약 4천500년 전 140 마일(약 225km) 떨어진 웨일스 북부 펨브룩셔의 프레슬리 산으로부터 가져온 청회석 사암인 블루스톤(bluestone)과 이보다 더 큰 사르센석 등 두 종류의 돌로 만들어졌다. 블루스톤의 경우 분석 결과 프레슬리 산의 함유물 및 석영 등과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사르센석의 경우 어디서 유래했는지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30일(현지시간) 일간 텔레그래프, BBC 방송에 따르면 스톤헨지 등을 관리하는 영국 잉글리시 헤리티지(English Heritage) 재단과 셰필드 대학의 고고학자들은 스톤헨지 사르센석이 북쪽으로 15 마일(약 25km) 떨어진 말버러 다운스의 웨스트 우즈(WEst Woods)에서 유래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고학자들은 그동안 사르센석이 말버러 다운스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해왔지만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최근 잉글리시 헤리티지에 스톤헨지 사르센석에 구멍을 내면서 나온 원통형 돌 막대가 반환되면서 고고학자들은 X레이 분광분석을 통해 유래를 조사해왔다. 이 돌 막대는 1958년 스톤헨지 복원작업 중 나온 것이다. 당시 균열이 발견된 사르센석을 보강하기 위해 금속 봉을 집어넣는 과정에서 108cm 길이의 원통형 돌 막대가 나왔는데, 이를 작업에 참여했던 영국인 로버트 필립스(89)가 아무 생각 없이 기념품으로 보관해왔다.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필립스는 자신이 죽으면 이 돌 막대가 어딘가로 사라지게 될 것을 우려해 이를 잉글리시 헤리티지에 반환했고, 이후 고고학자들이 이를 분석했다. 1958년에 진행된 스톤헨지 복원 작업[출처: 더 히스토릭 잉글랜드 아카이브(The Historic England Archive)] 고고학자들은 돌 막대의 지구화학적 특징을 영국 내 20곳의 사르센석 바위와 비교했다. 그 결과 스톤헨지에 사용된 사르센석의 대부분이 불과 북쪽으로 15 마일 떨어진 곳에서 유래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그동안 평균 20t, 최대 30t에 이르는 사르센석을 블루스톤처럼 20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옮기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다만 블루스톤이 유래한 곳보다는 훨씬 가깝지만 역시 거대한 사르센석을 20km 이상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만큼 일정 구간 이동에 강이 이용됐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잉글리시 헤리티지의 사학자인 수전 그리니는 "블루스톤과 달리 큰 돌들(사르센석)은 꽤 균일하고 큰 덩어리여서 어디서부터 유래했는지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다"면서 "가장 크고 견고한 사르센석을 원했던 만큼 가능한 한 가까운 곳에서 이를 구했다는 것이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브라이턴 대학의 데이비드 내시 교수는 "21세기 과학과 선사시대를 연결하는 것은 매우 흥분되는 일"이라며 "우리는 마침내 고고학자들이 수백 년간 논쟁해온 것에 대한 답을 얻게 됐다"고 밝혔다. 3. 조성 주체와 배경 가설 기원전 2000년경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 거석의 용도에 대해서는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존하는 문서들 중 스톤헨지에 대해 언급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130년 헌팅던의 헨리(Henry of Huntingdon)가 쓴 『앵글인들의 역사(Historia Anglorum)』인데, 여기서 저자는 "누가 무엇을 위해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유적"이라고 언급했다. 예부터 숱한 사람들이 스톤헨지에 관심을 가져 그것의 기원, 용도, 목적을 궁금해하였다. 옛 사람들이라고 다르지 않았으므로 스톤헨지를 소재로 한 여러 가지 전설이 생겼다. 그런 전설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서 왕 전설에 나오는 영국의 유명한 마법사 멀린이 스톤헨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몬머스의 제프리(Geoffrey of Monmouth)는 아서 왕의 전설을 최초로 문헌으로 기록한 1136년 저서 『브리타니아 열왕사』에서 멀린이 사자(死者)를 기리는 기념비를 만들기 위해 스톤헨지를 아일랜드로부터 가져왔다고 전한다. 이 전설은 스톤헨지의 재료가 되는 돌들이 바다 건너 다른 곳에서 수입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시사한다. 그뿐 아니라 파커 피어슨 교수의 이론대로라면 스톤헨지는 죽은 자를 위한 종교기념물이므로, 이 전설은 생각보다 역사적 사실을 많이 반영한 것이다. 리스(Rhys) 박사는 스톤헨지가 종교적 의식을 위한 자리였고, 그곳에서는 뮈르딘(Myrddin. 멀린의 웨일즈식 이름)을 숭배하는 의식을 치렀다고 주장한다. 스톤헨지의 구조는 특정한 시간을 표시하도록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알려져 있던 사실이다. 로마의 역사가 디오도루스 시쿨루스(Diodorus Siculus)는 스톤헨지가 19년마다[7] 그곳을 방문하는 태양의 신을 위해 지어졌다고 서술했다. 보스턴 대학의 제랄드 홉킨스(Gerald Hawkins) 교수 등이 디오도루스 시쿨루스의 학설을 더욱 발전시켜 스톤헨지의 구조와 시간의 흐름, 그리고 천체(天體)의 움직임이 밀접하게 연관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1963년, 영국의 저명한 과학잡지 〈네이처〉지에 천문학자 제럴드 호킨스가 기고한 논문이 수록되었고 스톤헨지는 고대의 천문대였다는 것이다. 우선 거석과 구덩이의 배치를 이용해 하짓날 일출 시간과 동짓날 일몰 시간을 계산할 수 있고, 28일 주기로 차오르는 달의 운행과 돌의 배치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컴퓨터 계산으로 확인하였다. 그러나 왜 거석을 사용했는지 여부는 알 수가 없다. '스톤헨지에서 바치는 제물'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부터 많이 이야기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소문은 거의 근거가 없고, 실제로 스톤헨지에서 희생제가 행해졌을 가능성은 무척 적다. 스톤헨지에서 제물이 바쳐진다는 이야기는 주로 후대에 브리튼 섬으로 건너온 민족[8]들의 민간 전승에 기반된 것인데, 그것은 최근까지도 '살육의 제단'이라 불렸던, 길게 눕혀진 돌에 근거를 두었다. 그 돌이 마치 제단처럼 보여서 그 위에 희생물을 눕혀 놓고 숨을 끊기에 알맞다고 생각들 한 것이다. 현대에 '돌제단'이 사실은 제단이 아니라 스톤헨지를 이루고 있던 '돌기둥'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그 돌은 처음부터 제단 같은 모양으로 눕힌 것이 아니라, 다른 돌들처럼 세로로 서 있던 돌기둥이 쓰러져 우연히 제단과 비슷한 형태가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스톤헨지의 제단'에 근거한 모든 전설은 그저 전설일 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스톤헨지에 있던 돌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집을 지을 목적으로 가져가서 돌기둥 여러 개가 빠졌다. 2010년대 들어 주목받는 설은 스톤헨지가 '죽은 자를 위한 성역'이라는 것이다. 스톤헨지 북동쪽으로 스톤헨지와 구조가 거의 똑같은, 다만 돌이 아닌 나무로 만든 구조물이 있었기에 그 터를 '우드헨지'라고 부르는데[9], 우드헨지를 산 자의 공간, 스톤헨지를 죽은 자의 공간으로 삼아 특정한 절기에 사람들이 모여 스톤헨지와 우드헨지를 오가며 종교적 행위를 했다는 설이다. 사람들이 스톤헨지와 우드헨지를 오갈 때 사용했으리라 추정하는 길의 일부가 지금도 스톤헨지에 남아 있다. 또한, 스톤헨지의 구조가 동지, 하지에 해가 뜨고 지는 위치를 중요하게 표시하는 것으로 보아, 역시 동지/하짓날에 모여 이러한 의례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 스톤헨지에는 고대인들이 만든 길이 있는데, 동짓날 해질 무렵에 이 길에 서서 스톤헨지를 바라보면 길의 방향과 일몰 지점, 스톤헨지가 정확히 일치한다. 그 길을 파보면 도랑이 나오는데, 길은 인공적으로 만들었지만 도랑은 먼 옛날 빙하시대에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다. 즉 오래 전 빙하기 때 자연적으로 도랑이 생겼고 우연히 동짓날 해 지는 방향과 일치했고, 훗날 스톤헨지를 세운 시기에 사람들이 이걸 보고 "어? 이거 방향 좀 봐라? 신비한데?" 하며 도랑이 끝나는 부분에 죽은 자를 위한 종교적 장소로 스톤헨지를 세우고 도랑을 덮어 길도 만들었다는 것이다. 2019년 4월에는 DNA 조사 결과 이 거석들을 세운 이들은 기원전 4000년쯤 아나톨리아(지금의 터키)로부터 지중해를 건너 영국에 이른 농민들의 후손으로 확인됐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 당시 아나톨리아 지역은 기원전 1만년 전부터 괴베클리 테페 같은 석조 건축물을 지어왔던 곳이다. *“스톤헨지 제단석 750㎞ 떨어진 스코틀랜드서 유래”<조선일보> 2024.08.22. 英·호주 공동연구팀 논문 발표 / “바다 통해 운반됐을 확률 있다” / 김효인 기자(조선일보) NASA가 지난 12일(현지 시각) 공개한 스톤헨지와 유성우 사진. 영국의 천체 사진 작가 조시 듀리(Josh Dury)가 지난 9일 밤에 촬영한 40여 장의 사진을 합성한 것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최근 공개한 영국의 고대 유적지 사진이 화제가 됐다. 거대한 돌기둥들 상공에 은하수가 펼쳐져 있고, 수많은 유성우가 떨어지는 장면을 포착한 사진이다. 영국의 천체 사진 작가 조시 듀리(Josh Dury)의 작품으로 약 3시간 30분 동안 촬영한 사진 40여 장을 합성한 결과물이다. 커다란 돌기둥들은 영국 남서부 솔즈베리 평원에 있는 ‘스톤헨지’다. 이는 ‘위에 올려놓은 돌’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스톤헨지는 기원전 3100~1600년에 세 번에 걸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누가 어떤 이유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파종, 수확 시기를 알려주는 계절 시계라는 주장도 있고, 묘지 또는 환자들의 순례지였다는 가설도 있다. 과학계의 오랜 관심사였던 배경이다. 영국과 호주 공동 연구진이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스톤헨지의 제단석은 약 750㎞ 떨어진 스코틀랜드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종전에는 이 제단석이 100여㎞ 밖의 웨일스 지역에서 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보다 훨씬 먼 곳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제단석은 스톤헨지의 중심에 놓여 있는 돌이다. 스톤헨지의 다른 돌들과 달리 사암(砂岩)이어서 그동안 출처가 불분명했다. 호주 커틴대가 주도한 이번 국제 공동 연구진은 스톤헨지 제단석 조각의 지르콘과 인화석 등 성분을 분석했다. 이 결과를 토대로 영국과 아일랜드 일대의 퇴적층과 비교했다. 분석 결과 제단석은 스코틀랜드 북동부의 오르카디안 분지에 있는 암석과 구성·연대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행 연구에서 주장했던 웨일스 지역의 암석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 것이다. 제단석은 6t에 달하는 무거운 돌이어서 어떻게 2600년 전에 750㎞나 떨어진 곳에서 옮겨왔는지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지형적 특성을 고려했을 때 육로를 이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스코틀랜드 북동부에서 영국 남부까지 바다를 통해 운반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논문의 공동 저자인 크리스 커클랜드 호주 커틴대 교수는 “이렇게 큰 돌을 바다로 운송했다는 것은 고대 공동체의 기술력을 보여준다”며 “지금까지 추정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조직과 장거리 교역망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2022년 3월에는 스톤헨지가 태양력 계산을 위한 도구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런 유명한 선사시대 유적들이 으레 그렇듯 스톤헨지 역시 그 기원이나 용도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상상력의 소재가 되어 대중매체에서 다양하게 이용된다. 사실은 오래전에 외계 문명이 세운 거라든지... 어떤 사람들은 외계인들이 자신들의 우주선 동력을 공급하려고 만들어놓았으나 훼손되었고, 에너지 업계의 이해관계 때문에 복구되지 않는다는 음모론을 들고 나온다. 스톤헨지가 영국이 이집트, 중국, 인도 등 유구한 역사에 유적들이 넘쳐나는 나라에 열등감을 품고는 국가적으로 조작한 결과물이라고 주장하는 부류들도 있다. 100년 전까진 바위들이 쓰러진 것을 다시 세웠다거나, 또는 그냥 없던 곳에다가 신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에 쓰이는 '영국 정부가 스톤 헨지를 만드는 장면'이라는 사진들은 실은 흐트러진 스톤헨지를 정비하는 과정을 찍은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스톤헨지가 지금 자리에 지금과 거의 같은 모습으로 있었음은 전설은 물론 여러 고서, 외국인이 영국을 관광한 뒤 쓴 책의 삽화로도 확인되므로, 이런 주장들은 귀담아 들을 가치가 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스톤헨지가 로마인한테 쫓겨난 영국 남부의 켈트족들이 세운 유물이라고 주장했으나 완전히 틀린 말이다. 스톤헨지는 켈트족이 영국에 들어오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만든 사람들은 켈트족 같은 인도유럽어 계통이 아니라 오늘날 북아프리카 혹은 중앙아프리카에서 기원하여 영국으로 이주해 온 이베리아 인종이라는 주장이 가장 유력하다. [이 이베리아 인종은 작은 키와 갈색 피부와 긴 목에 검은 색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지녔는데, 큰 키와 하얀 피부와 짧은 목에 노란색의 머리카락과 파란 색 눈동자를 지닌 켈트족 같은 인도유럽어 계통 인종과 대비되는 외모를 가졌다.] 2024년 8월, 호주의 커틴 대학교(Curtin University)와 영국의 런던 대학교 공동 연구진이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를 통해서 "스톤헨지의 제단석은 약 750㎞ 떨어진 스코틀랜드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관련 기사관련 논문 2024년 12월 20일,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고고학연구소와 애버리스트위스대학 공동 연구진은 최근 스톤헨지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건설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진은 “스톤헨지가 만들어진 5000년 전에는 영국, 스코틀랜드, 웨일즈라는 ‘세 나라’가 개념적으로 존재하지는 않았지만, 같은해 스톤헨지를 구성하는 돌들중 스코틀랜드로부터 가져온 돌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토대로 스톤헨지를 구성하는 돌들이 ‘세 나라’를 대표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스코틀랜드 북부의 신석기인들이 솔즈베리 평원에 사는 사람들에게 돌을 기부 또는 선물의 목적으로 가져왔을 수 있다. 영국에서는 스톤헨지 투어 상품을 꽤 많이 파는데, 스톤헨지의 이름을 들어본 관광객이라면 기꺼이 따라가서 바람이 세게 부는 평원에 덩그러니 놓인 높이 8미터의 돌덩어리들을 감상한다. 4. 기타 1) 영국인들은 비교적 도시와 가까운 곳에 있을뿐더러 온천도 있는 바스와 함께 관광하는 편을 추천한다. 2) 솔즈베리에서 출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일단 런던 워털루 역에서 솔즈버리로 가는 열차가 30분에 한 대꼴로 적지 않게 있을뿐더러 솔즈베리 자체도 솔즈베리 대성당 등 문화재가 적지 않고, 시내도 런던 같은 대도시와는 다른 중세풍의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느끼기에 나쁘지 않다. 더구나 역에서 스톤헨지까지의 거리가 바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깝다. 다만 역에서 바로 가는 대중교통편이 없어서 투어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입장료 포함임을 감안해도 워낙 비싼 편이다. 대신 스톤헨지와 솔즈베리 대성당, 올드 새럼을 모두 입장할 수 있고, 오디오 코멘터리도 꽤 알찬 편이다. 3) 최근 문화재 보호[11] 및 고고학적 발굴 및 연구활동 때문에 스톤헨지 주변에 울타리를 쳐서 일반인 출입을 금한다. 그래도 돌 밑으로 걸어다닐 수 없을 뿐 상당히 가까이까지 다가갈 수 있다. 스톤헨지 주변은 땅도 매우 푸르고, 공기도 매우 맑아 먹구름만 끼지 않는다면 풍광이 아주 훌륭하다. 4) 스톤헨지가 영국 정부 소유가 된 지는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스톤헨지가 있던 영국 솔즈베리 평원은 에임즈버리 수도원이 소유했는데, 헨리 8세가 가톨릭 수도원들을 해산시키면서 이 땅도 왕실에 압수되었다. 헨리 8세는 셋째 아내 제인 시모어의 형제 허트포트 백작 에드워드 시모어에게 하사했다. 이후 여러 가문들을 거치다가 안트로부스 가문에게 넘어갔지만, 이 가문의 후계가 제1차 세계 대전 때 전사하여 맥이 끊기고 가문의 소유물들이 경매에 넘어오게 되면서 스톤헨지도 경매에 부쳐졌다. 어느 미국인, 또는 다른 외국인이 낙찰받을 뻔했지만 변호사 세실 처브가 막판에 6600파운드[12]를 불러 낙찰받았다. 세실 처브는 이후 1918년에 스톤헨지의 소유권을 영국 정부에 귀속하겠다고 선언하였고, 영국 정부는 이를 치하하는 뜻에서 준남작 작위를 하사하였다. 5) The Fox로 유튜브 유명인사가 된 노르웨이 가수 듀오인 일비스 (Ylvis)는 노래도 만들었다. 자뻑부터 시작해서 중간엔 갑자기 혼다 시빅 광고를 하는 등 가사는 참으로 병맛인데 노래는 쓸데없이 고퀄이다. 6) 이젠 실로폰이라는 설까지 나오고 있다(...) # 7) 뉴욕 맨해튼서는 빌딩숲 사이로 해가 지는 것을 관측할 수 있는 기회가 1년에 두번 있는데 이를 '맨해튼 헨지'라고 부르며 당일날에 이를 보려는 사람이 몰려든다.# 8) 2024년 6월 19일, Just Stop Oil 환경보호단체 회원 2명이 스톤헨지에 주황색 분말 페인트 테러를 한 뒤 체포되었다. 자세한 건 스톤헨지 훼손 사건 문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