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1_12 : 위서론반론]* 환단고기와 천부경은 위서이다.[1] 반론 <박수부대> 2003.03.26
■ 환단고기와 천부경은 위서이다.[1] / 참조:디지털 창비 독자마당
글쓴이: 박수부대 추천수 12 등록일 2002년 04월 24일
제목 환단고기와 천부경은 위서이다. 조회수 155
환단고기는 위서이다. 역사학계의 정설이다.
위서를 위서라고 하면 식민사관을 비호하는 친일분자로 매도하던 시절이 있었다. 90년대였다. 국수주의적인 민족주
의자들과 민족이라면 만병통치약으로 처방하던 일부 운동권들의 떼거지였다. 매카시 현상이었다. 이를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뜻있는 학자들은 혀를 차며 입을 다물었다.시비에 말리기 싫어서이다. 환단고기에 의하면 우리역사가
10,000년이 넘는단다. 인류 최고의 문명 이집트와 수메르의 역사라 해 보았자 그들의 선사까지 다 합쳐도 7,000년
이 되지 않는다. 문명의 역사가 10,000년이 넘는다는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일제시대를 살았던 몽상적인 재야
역사가 계연수의 말이 있을 뿐이다.
천부경 역시 환단고기에 언급된 계연수의 창작이다.
계연수가 이를 대종교에 제출하여 1975년 대종교에서 정식 경전으로 채택하였다. 천부경은 신라말기 최치원이 바위
비문에서 발췌하였다고 하나 원문은 없고 최치원의 행위에 대한 구전만 전해 졌을 뿐이다. 환단고기에 실린 천부경
역시 진서라고 입증할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현재 대종교의 지각있는 간부들은 이 문제로 고민한다고 들었다.
이미 경전으로 채택은 했으나 위서로 판명이 나 버린 가짜문서를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떨감씹은 표정이라
는 것,
한문에 조예가 깊은 재야 역사가에 의해 창작된 주문 비슷한 숫자 놀음을 두고 이 게시판에서 요상한 해석을 기하
는 일이 일어 났다. 그걸 신화라고 우기며 쪼대로 읊어 버린 것이다. 미신 비슷하고 판타지 수필 비슷한 수군작의
글은 그야말로 코미디이다. 개량한복을 입고 기철학이니 뭐니 하며 떨빵한 애들이나 현혹시키고자 똥폼을 잡는 무
리들이 하는 행색과 똑 같다. 그 아까운 시간을 몇 년씩이나 허비하여 연구한 것이 고작 그것이라는 말인가? 올바
른 학을 양심에 어긋나지 않게 피력하라는 김흥년 님의 지적은 뼈 아픈 것이었다.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이 드나드
는 이 게시판, 뭐가 부족하여 이제는 헛소리에다 미신까지 받들어야 하는가? 해프닝도 이런 해프닝은 없을 것이다.
그만 웃고 말자.
환단고기가 위서라는 글을 옮겨 본다. 독자 여러분들은 아래의 퍼온 글을 읽어 보시고 왜 천부경이라는 것이 주문
에 불과한 헛소리인지를 확실하게 느끼시기 바란다.
박수부대.
환(한)단고기에 대한 견해들을 올립니다.
우선, 반대론자의 글로서 하이텔 한국사동호회의 이문영(nymphal)님의 글을올립니다. 이문영님의 글은 환(한)단고
기, 규원사화에 대한 비판을 체계적으로 해 주셨습니다. 이보다 논리적인 글을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글을 갈무리
해서 오타수정 등을 해서 올리지만, 되도록이면 원문에 충실하도록 했습니다. 문단 등은 새로 편집했습니다. 일단,
이문영님의 글을 올린 후에 그 글에 대한 저의 생각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문영님의 글은 환(한)단고기에 대한
부정론적인 입장인데, 찬성론에 대해서는 당분간 기다려보고, 글이 올라오지 않으면 제가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
다. 이 글에 대한 토론은 여기 게시판이나, 아래 3번 게시판(역사해석 이래도되는가?)에 올려주셔도 됩니다. 게시
판의 활성화를 위해서 제게 편지로 반론을 제기하시는 분의 의견에 대해서는 여기 게시판에서 대답을 하도록 하겠
습니다. 그럼, 안녕히...
[22] 제목 : [갈무리/이문영] 환단고기 반론 1편
안녕하세요? 이문영입니다.
사료비판에 대한 논문 두편을 올릴 생각이었지만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아 다음으로 미루고 저일해서 올리는 방법
을 택했습니다. 규원사화 등에 대한 학계의 견해는 아래 논문들에 나타나 있습니다.
송찬식, 위서변, 월간중앙, 1977년 9월호
이도학, 재야사서 해제 <환단고기>, 민족지성, 1986년 11월호
조인성, <규원사화> 논첨보, 경대사론3, 1987
이순근, 고조선 위치에 대한 제설의 검토,성심여대학보,1987년 5월 15일
(이 논문은 고조선은 과연 만주에 있었는가,역사비평,1988겨울호에 수정, 보충됨)
조인성, 현전 규원사화의 사료적 성격에 대한 일검토, 이병도구순기념한 국사학논총, 1987
박광용, 대종교 관련 문헌에 위작 많다 - 규원사화와 환단고기의 성격에 대한 재검토, 역사비평, 1990 가을호
이 논문들 중에 이순근님의 논문과 박광용님의 논문에는
이 사서들이 친일파 지식인에 의해 내선일체와 대동아공영론을 위하여 저술된 것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적혀 있습
니다. 그리고 이 저서들이 돌연 80년대에 일대 바람을 탄 것은 일본의 극우파 사학자 카시마(鹿島昇)가 일본에 고
대사의 연결성을 중시하여 번역 소개하였는데 일본에서 대히트를 치자 국내에 역수입되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습
니다. 이 저서가 친일파에 의한 위서라는 박광용님의 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환단고기>에서 환웅에게는 일본과 같은 천황이라는 용어를 쓰고 그 이후 임금에게는 <제왕운기> 등에 나오는
대로 천왕이라는 개념을 씁니다. 그런데 중국에 대한 우월성을 이야기하며 이후 중국의 황제는 제후로 칭하면서도
우리는 한단계 낮은 왕으로 쓴다는 것은 일본의 천황을 의식한 때문입니다. 즉 일본-조선-중국의 등급을 설정한 것
입니다.
2. <규원사화>는 중국이 춘추 이래로 우리를 오랑캐로 취급했다고 분개하며(단군기) 특별히 중국과의 점령, 지배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규원사화 만설에는 “지금 세상사람들은 모두 전쟁에 힘쓰지 않는 것을 옳다고
하면서도 동쪽을 배척하고 서쪽도 배척하여서, 나라를 다시 부강한 곳으로 만든다는 것인가?”라고 씁니다.다시 이
런 부분도 있습니다. “청나라 황제에게 조상이 같음을 말하고 이해관계를 진언하여, 조선과 함께 요동, 만주, 유
주, 영주의 땅에 웅거하도록 유세하고, 북쪽으로 야인을 끌어들여 선봉을 삼고, 동쪽으로 왜와 연합하여 남쪽 울타
리를 둘러싸게 한 다음에야, 조선의 강함을 회복하고 중국의 교만함을 꺾을 수 있다.” 이 글이 정말 숙종 당대에
쓰여진 것이라면 청나라 황제와 북쪽의 야인이 구분되지 않던 때이니만큼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구절임에 분명합
니다. 당시 중국은 곧 청이었는데 그러면 중국이 중국의 교만함을 꺾는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논리에 맞자
면 북쪽 배척이라야 맞습니다. 그래서 효종연간에 북벌이라고 말들 했던 것입니다. 이글이 1920년대에 저술된 것이
라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1894년 이래 일본은 조선, 만주, 대만의 운명공동체론을 주장해왔습니다. 즉 同文同種이
라는 논리입니다. 이 논리는 친일적 지식인에 의하여 알려지면서 최경환의 <대동역사>에서도 등장하고 있으면서 독
립협회 회원들 사이에 널리 읽히기도 했습니다. 즉 스스로는 애국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한 것입니다. 1894년 전후로 일본은 대동아공영론을 주장했는데 그것은 조선, 일본, 만주가 대동 단결하여 함께 번
영하자는 이야깁니다. 바로 <규원사화>에 나타난 사항과 일맥상통합니다. 조선, 만주, 일본이 단결하여 중국의 콧
대를 꺾자는 것이니까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청은 1910년 신해혁명으로 멸망했고 1920년대부터 일본은 만주국 건
설 공작을 합니다)
3. <환단고기>는 1911년 계연수가 썼다고 하는 범례에서부터 이상한 점을 알게 됩니다. 그는 이를 베낀 이유로
“하나는 세계인류가 대등하게 모여서 함께 존재함을 축하하기 위해서이다” 라고 쓰며 단군세기 서문에도 "세계만
방과 더불어 같이 베풀고 함께 즐겼다” 라고 하는 동일한 구절이 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일제 무단통치 아래
신음하던 때인데 민족절멸의 위기에서 한가로이 세계만방(일본을 포함한)과 즐기고 축하하기 위해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민족주의자가 이책을 과연 썼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이것은 당시의 적극적인 투쟁을 희
석화하려는 의도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4. 고려 우왕 말기까지를 기록한 태백일사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왜구와의 싸움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이 없습니다.
5. 태백일사에는 도가사상을 단군 이래의 신교와 맥을 이어놓고는 이 사상적 맥을 이은 서불(서복)이 중국인의 통
치에 염증을 느껴 일본으로 도망쳐 일본인의 조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의 전통사상인 신도도 단군신교와 뿌리
가 같은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한일문화동원론이며 바로 그 끔찍한 동조동근론이 연상됩니다.
6. 단군세기에는 단군시대에 천하가 삼한으로 나뉘어지고 이후 3세 단군으로부터 흉노, 몽고 등 여러 종족으로 갈
라져 나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소시모리의 반란을 기록하면서 이후 그 후손이 해상의 3도를
거점으로 하여 천왕을 자칭하였다는 서술이 있습니다. 이 대목은 일본의 건국신화에 나오는 소잔명존을 염두에 두
고 만들어진 것입니다. 바로 일선동조론에 이용될 소지가 충분한 서슬입니다. 실제로 앞서 말씀드린 카시마가 이
책을 번역해 일본에 소개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니 정말 가공스러운 일입니다. 즉 <규원사화>나
<환단고기>는 단군을 표면에 내세워 민족해방투쟁 시기에 대동아공영론을 바탕으로한 자치론적 민족개량주의의 입
장에서 다른 민족주의를 비판했던 책인 것입니다. 정리가 잘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은
역사비평을 구해서 읽어보십시오.
전말이 본도된 것 같지만 왜 위의 사서들을 위서로 보는가 하는 근거를 정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규원사화의 원본은 발견되지 않았고 지금 나와있는 영인본은 1940년 손진태가 양주동이 가지고 있던 것을 필사
시킨 것입니다. 규원사화가 처음 인용되는 글은 1928년 김황의 <대동사강>이 처음입니다. 환단고기는 1949년 이유
립이 오형기로 하여금 정서시킨 것이라 합니다. 원 환단고기는 계연수가 편찬하고 이기가 감수하여 1911년 인쇄했
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인쇄본은 찾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오형기의 정서본을 1979년 이유립이 영인하여 전해집니
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이 책의 저술연대는 세조3년(1457년)이 됩니다. 그러나 1979년 이전에 환단고기를 인용하는
책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조인성은 환단고기를 이유립이 쓴 것으로 생각합니다)
2. 규원사화 단군기에 “고려사 광종 10년에 ‘압록강 밖의 여진을 백두산 밖으로 몰아내어 살도록 하였다’고 하
였는데, ‘백두산’이란 이름이 여기에서 비로소 나타난다.”고 하고 개마산이 백두산과 같은 산임을 언어학적 방
법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1823년 <해동역사>의 지리고를 쓴 한진서도 같은 견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똑같
은 방법으로 백두산과 개마산이 동일함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둘 다 성종 10년을 광종 10년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두 책은 어느 것이 어느 것을 베낀 것이 틀림없습니다. 규원사화는 해동역사가 베낀 것이다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규원사화는 근대에 들어와서야 알려졌으며 해동역사는 전거 문헌을 모두 제시하고 있는데
규원사화는 그 이름에 없습니다.’따라서 규원사화는 1823년 이후에 작성된 것입니다.
3. 단군기에는 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만약 지금 언서를 함께 쓴다면 반드시 이런 폐단이 없을 것이며 초야의 우부도 또한 (단군이 박달임금임을) 쉽게
깨닫게 될 것이니 文化의 계발이 또한 빨라질 것이다.” 여기서 문화는 숙종 연간이라면 文治敎化의 뜻이어야 합니
다. 그러나 여기서는 저자가 이미 앞에서 고유성의 보존을 역설한만큼 현대적인 의미의 culture로 쓰인 것입니다.
culture의 번역으로 문화라는 단어를 쓴 것은 일본인들이며 20세기초의 일입니다. 또 이 책에는 국가, 전세계, 민
중 등의 근대용어가 여러 곳에 등장합니다.(이런 말들은 아주 많습니다. 철학, 자유, 평등 등이 모두 일본에 의해
만들어진 번역어입니다)
4. 규원사화 만설에서 이런 대목도 주의해 보아야 합니다. “나라의 흥망은 뒤바뀜이 무상하니 지금 조선의 불행은
앞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실마리가 아니겠는가. 내가 인심이 분열되고 민기가 가라앉은 것을 보니 붓을 던지고 길
게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슬프다 환인이여, 슬프다 환인이여. 지금 한조각의 진역과 한줄기의 유민은 장창 어찌
될 것인가.” 나라의 흥망과 조선의 불행이란 조선이 멸망했다는 뜻으로 새기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때(1675년)
특별히 조선에 불행한 일은 없었는데(병자호란이 지난지 50년이나 뒤입니다. 거의 2세대가 지난 것이지요), 지금
조선의 불행이란 무슨 뜻일까요? 또 나라가 망했는데 앞으로 행복해질 실마리가 된다는 것도 저자의 사상을 의심하
게 합니다.
5. 만설에 경주의 첨성대는 천수백년이 지났는데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첨성대는 632-646년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다른 학설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천수백년을 더해봅시다. 일제강점기가 됩니다. 1675
년에 쓰여졌다면 천년이 지났는데 라고 쓰는 것이 맞습니다. 다른 연대 추정부분은 모두 맞는데 왜 첨성대 건만 틀
릴까요? 또
“우리 선조의 옛땅이 적국에 들어간지 이미 천년이 지나서” 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발해가 멸망한 것은 양력으로
927년, 여기에 천년을 더하면 1927년으로 소화 2년입니다.(지금 임금님이 등극하신지 2년이라는 북애자의 말은 그
러면?)
6. 규원사화의 저자 북애자라는 인물은 1901년 황성신문 논설에 나타납니다. (’애’가 崖와 涯의 차이가 있을 분
입니다.)
7. 임진왜란을 임진지역으로 쓰는 것도 일본식 방식입니다.
8. 조판기와 태시기에 보여지는 천지창조는 혼돈 - 빛- 하늘과 땅 - 해와 달과 별 -바다와 땅 - 만믈 – 인간이며
기독교 성경과 동일합니다.(혼돈을 물과 어둠으로, 땅을 땅과 식물로만 바꾸면 됩니다.) 인간의 창조이유도 구약
창세기와 동일합니다.
9. 환단고기 단군세기 33세 단군 감물의 기사에는 영고탑이라는 지명이 나옵니다. 태백일사 마한세가 하편에도 보
입니다. 영고탑이라는 지명은 청나라에 의해 만들어진 지명입니다.
10. 태백일사 고구려 본기에 눌현은 지금 상춘 주가성자이다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상춘이라는 지명은 단군세기 9
세 단군 아술때에도 나옵니다. 주가성자가 있는 곳은 상춘이 아니라 장춘입니다. 이것은 잘못 베낀 것이라 생각되
는데 장춘이라는 지명은 청의 가경연간(1796-1820)에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11. 환단고기에도 역시 근대용어인 문화, 원시국가라는 용어가 사용(단군세기 2세 단군 부루, 태백일사 고력국 본기)
남녀평등 - 환국본기부권 – 신시본기, 이보다 더 세세한 비평은 처음에 적은 논문을 앍어 보시기 바랍니다.
단순한 대목으로 말씀드리기 어려운 부분은 적지 않은 것입니다.
제 글을 끝까지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추신:올리고나니 빠진 부분이 있습니다.
규원사화는 저자가 주장하는 바를 따르면 1675년(숙종2년)에 저술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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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인물과 사상 쟁토방
[진서예요] 상고사 사이트에 가면 이에 대한 반론이 수도 없이 나오고 민족사관 사이트에 가면 완전한 상고사를 모
두 보실수 있어요. (05월24일14시38분)
[김기백] 진서?? 같은소리하고 있군... 자네나 철석같이 믿으시게...천부경따위는 그야말로 골수민족주의자인 신채
호선생 조차 인정안해..왜그럴까?? (05월24일14시45분)
[김기백] 어떤 책이 진서=역사로 인정받으려면 국제적으로 통용될만한 확실성이 있어야 한다는거 모르나?? 꼭 중
국.일본 아니라도 그따위 만화를 누가 인정 해줄것 같니?? (05월24일14시46분)
[아찌가 믿] 는 역사는 어떤 서적에 근거한 것입니가? 그리고 국제적인 통용?^^ 아찌 세계사가 언제부터 쓰였
죠??^^ 그리고 그거 누가 썻읍니까?역사 길게 보세요..^^ (05월24일15시10분)
[그리고] 단재선생은 북방민족을 우리 민족으로 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뭐 당시의 시대적인 한계였지만요... (05
월24일15시16분)
[김기백] 역사를 아주 길게보면 예수쟁이식으로 가면 결국 아담과 이브밖에 더나오니? 현대과학적으론 결국 모든
인간의 발상지가 아프리카라는게 정설이고... (05월24일15시24분)
[김기백] 일본놈들 얘기대로 하면 천조대신... 중국짱궤들에의하면 반고가 모든인간의 조상밖에 더되는거니?? (05
월24일15시26분)
[김기백] 그니까 아찌말은 결국 태고적얘기... 상고사는 저마다 각각일수밖에 없고.. 전세계누구도 장담할수 있는
놈은 하나도 없고...그래서도 안되고 그럴필요도 없다는거지... (05월24일15시28분)
[김기백] 따라서 우리는 그나마 고래적부터 전해져온 단군기원... 반만년민족사쯤으로 적정선을 지키는데 가장 합
리적이고 옳다는 얘기지.. 뭐 잘못된거 있나??? (05월24일15시30분)
[옳으신 ] 말씀입니다,그렇지만 그렇게 모호하게 하면 민족의 근원을 밝히는데 상당히 곤란한 점이 있지 않을까
요..전에 쓴글인데요 그냥 참고만 하세요....답글 하나 올립니다, (05월24일15시31분)
[김기백] 이사람아... 어느나라 어느민족이나 상고사는 애매모호하기 마련이고 그럴수밖에 없어... 그래서 신화시
대와 역사시대로 나누는것 아닌가?그건결코 부끄러운일이 아니지.. (05월24일15시34분)
[김기백] 문제는 신화를 역사라고 우기고 별놈의 어거지에 가설을 동원해서지들멋대로 역사시대로 강제편입해놓고
는 남들에게까지 믿으라고 강요하는 따위의 국수적발상이지... (05월24일15시37분)
[김기백] 그런부류들은 그따위 작태를 대단한 겨레사랑,나라사랑으로 착각들 하지만 천만에 만만의 말씀이지... 그
건 오히려 크나큰 해독이라는거 모르나? (05월24일15시3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