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한단고기(桓檀古記)기사/오성취루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김영사> 박창범저 2002.11.20 발행

유위자 2025. 10. 10. 06:43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1_01 : 한단고기_오성취루]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김영사> 박창범저 2002.11.20 발행 책 소개 국내최초 천문기록을 사료로 끌어들여 단군조선의 실존여부, 삼국의 강역과 '삼국사기'의 진위여부 등을 파헤친 책. 한국사에 남겨진 천문기록들과 그 속에 숨겨진 역사해석의 열쇠들은 하늘로 떠나는 흥미진진한 역사여행이 될 것이다. 출판사 서평 우리나라는 중국과 함께 세계에서 유일하게 2000년 이상 꾸준히 천문현상을 체계적으로 관측하여 방대한 기록을 남긴 천문왕국이다. 서구의 천문관측의 역사가 기껏해야 약 300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천문관측의 역사가 매우 유구함을 알 수 있다 (이미 서기전 5000년경부터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 등을 새긴 고인돌이 북한 지역에 남아 있으며, 태양흑점에 관한 기록은 서양의 갈릴레이 갈릴레오보다 1000여 년 앞선다). 우리나라의 천문기록들은 중국의 기록에 비해 전체적인 양은 적으나 특정 현상에 경우 기록이 더 풍부한 경우가 있고(1747년까지 조사된 중국의 오로라 기록은 292개에 불과한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국제적으로 알려진 것만도 711개에 이른다), 특히 그 관측 사실의 신빙성이 중국에 비해 일반적으로 높고 안정되어 있다 (『삼국사기』 초기 일식기록의 실현율이 89%인데 비해 『한서』와 『후한서』의 일식기록의 실현율은 78%에 불과하다). 이러한 천문현상은 정연한 물리법칙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에 천문역학적 계산을 통해 그 사실성을 검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측시점, 관측자의 위치, 과학의 발달 수준 등을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고대사 연구에 매우 유용하다.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는 『단기고사』『단군세기』『삼국사기』『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일식과 오로라, 달과 혜성의 움직임, 유성과 운석의 낙하 등 천문기록을 과학적·체계적으로 분석하여 기존의 학설과를 다른 고대사를 제시하고 있다. 목차 1부 천문과 역사의 만남 1.왜 고천문학연구를 시작했는가?/12 2.우리역사가 남긴 천문자산/16 2부 천문과 우리역사 3.천문기록으로 찾아간 단군조선/24 4.삼국시대 천문기록이 밝혀준 고대역사/35 5.일본의 고대 일식기론은 사실인가?/68 3부 하늘을 사랑한 민족 6.우리의 옛별이름/81 7.고인돌 별자리를 찾아서/89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_박창범 저 참한역사신문 20-07-28 19:57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트위터로 공유하기 네이버로 공유하기 카카오스토리로 공유하기 밴드로 공유하기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 * 천문기록에 담긴 한국사의 수수께끼 <참한역사신문> 박창범 저 | 김영사 2020. 07.28 청동기시대 고인돌에 새겨진 별자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정체는 무엇인가? <삼국사기>에 기록된 사실은 모두 조작된 것인가? 한국의 고대사는 그 유구한 역사에 비해 연구의 기본 토대가 되는 사료의 부족으로 이러한 물음에 제대로 답을 할 수 없었다.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는 고대 사서에 기록된 천문현상을 천체역학적 계산을 통해 그 기록의 진위 여부를 과학적으로 밝혀, 고대사 사료가 매우 부족한 상황에서 고대사의 여러 문제들을 풀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주고 있다. 국내 최초 고대 사서에 수록된 천문기록을 사료로 끌여들여 현재 한국 고대사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단군조선의 실존 여부, 삼국의 강역, <삼국사기>의 진위 여부 등을 철저히 파헤치고 있다. 별자리와 혜성, 운석과 유성 등 수천 년 전의 천문현상을 추적, 완벽하게 재연해낸 이 책은 독자들에게 하늘로 떠나는 흥미진진한 역사여행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한국사에 남겨진 천문기록들과 그 속에 숨겨진 역사해석의 열쇠들 우리나라는 중국과 함께 세계에서 유일하게 2000년 이상 꾸준히 천문현상을 체계적으로 관측하여 방대한 기록을 남긴 천문왕국이다. 서구의 천문관측의 역사가 기껏해야 약 300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천문관측의 역사가 매우 유구함을 알 수 있다 (이미 서기전 5000년경부터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 등을 새긴 고인돌이 북한 지역에 남아 있으며, 태양흑점에 관한 기록은 서양의 갈릴레이 갈릴레오보다 1000여 년 앞선다). 우리나라의 천문기록들은 중국의 기록에 비해 전체적인 양은 적으나 특정 현상에 경우 기록이 더 풍부한 경우가 있고(1747년까지 조사된 중국의 오로라 기록은 292개에 불과한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국제적으로 알려진 것만도 711개에 이른다), 특히 그 관측 사실의 신빙성이 중국에 비해 일반적으로 높고 안정되어 있다 (『삼국사기』 초기 일식기록의 실현율이 89%인데 비해 『한서』와 『후한서』의 일식기록의 실현율은 78%에 불과하다). 이러한 천문현상은 정연한 물리법칙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에 천문역학적 계산을 통해 그 사실성을 검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측시점, 관측자의 위치, 과학의 발달 수준 등을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고대사 연구에 매우 유용하다.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는 『단기고사』『단군세기』『삼국사기』『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일식과 오로라, 달과 혜성의 움직임, 유성과 운석의 낙하 등 천문기록을 과학적·체계적으로 분석하여 기존의 학설과를 다른 고대사를 제시하고 있다. (삼국시대 천문기록 연구에 대한 학계의 반응, 그 이후) 삼국시대 천문 기록에 대한 나의 연구 결과가 발표된뒤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중의 하나는 "이 발견에 대한 학계의 반응은 어떻냐"는 것이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요즘도 같은 질문을 던지는 분들이 많다 역시 궁금해할지 모를 분들을 위해 그동안 반응을 덫붙여 두고자 한다 자연과학자들은 논문을 쓰면 으레 그 분야의 다른 학자들에게 논문을 보내 사적인 검증 절차를 거친다 이는 동료학자들의 의견을 먼저 구함으로써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 했을 때 발생 할지도 모를 논문에 대한 시비거리를 미리 걸러내고, 스스로도 자신의 연구 방향과 결과에 대해 보다 강한 확신을 다지기 위해서다 나는 먼저 천문학과의 다는 교수들에게 조언을 구했고, 얼마 뒤 천문학회 학술대회에서 단군조선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 다음 단국대 윤내현 교수에게 단군조선과 삼국 시대 논문을 보여주었는데, 윤교수는 삼국시대 일식 관측지에 대한 나의 연구 내용중 백제의 최적 관측지가 발해만 유역이라는 사실이 백제의 요동 경략설에 부합함을 지적했다 반면에 신라의 경우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입장이었다. 또 단군조선 연구의 내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한국상고사학보"에 실었는데, 당시 심사를 했던 서울대 최몽룡 교수는 이 논문이 새로운 역사 접근법을 시도한 점을 뜻있게 평가해 게재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 뒤 한 재야 사학단체로부터 단군조선 연구에 대한 강연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재야단체에서의 강연은 매우 호의적인 반향을 얻었는데, 무엇보다 단군조선을 확고한 국가로 설정하고 있는 많은 재야사학자들의 입장과 나의 연구 결과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강연 말미쯤에 이르러, 단군조선 시대의 일식기록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지 못한 점을 강조하다가 결국 아직 발표가 안된 삼국 시대의 일식기록 분석 결과까지 잠시 언급하게 되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일식들을 가장 잘 볼수 있는 지역이 한반도가 아니라 오늘날의 중국 대륙 동부라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러자 청중들은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중 김씨성을 가진 노인 한분은 "내 조상이 그럼 뙤놈이라는 말이요?"라고 항의하여 나를 곤혼스럽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오재성이라는 분이 찾아왔다 그는 얼마 전 재야 사학단체 모임에서 강연을 들은 한 사람으로부터 내 얘기를 전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역시 재야사학자 중 한사람이었는데 여러모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었다는 그는 햇볕에 그을린 피부에 텁수룩한 외모로 전형적인 농민의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는 역사에 심취해 생업을 버리고 인생을 역사 연구에 바쳐온 감동적인 사람이었다 역사를 대하는 그의 정열과 애정의 깊이는 놀라웠다 나는 역사가 이렇듯 사람들에게 큰 매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가져운 연구의 결과였다 그 역시 나름의 방법을 통해 신라와 백제의 강역을 추정하고 있었는데 그가 이끌어낸 두 나라의 강역이 나의 최적 일식 관측지와 매우 비슷했다 그는 삼국사기의 지명, 교역품, 인물 등을 길잡이 삼아 연구를 했다고 했다 이는 나의 연구배경과 너무 다른 것이라 그의 연구결과를 검증할 수 없었지만 어쨌던 그 내용은 내게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다 삼국시대 천문기록에 대한 연구 또한 학과 교수들의 검토를 거친뒤 천문학술대회에서 발표했다 과학사학회의 학술대회에서도 구두 발표를 통해 공개했다 이에 대한 천문학자들과 과학사가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학술진흥재단에 건의해서 우리나라 학문 분류에 고천문학이란 분야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또 몇몇 천문학자들은 고천문학 연구를 시작하겠다며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고대사를 전공한 서울대 국사학과의 노태돈 교수와 송기호 교수가 보여준 학문적 격려와 지적도 잊을 수 없다 특히, 노태돈 교수는 내 연구가 과학적 접근이란 점에 많은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었다 "한국과학사학회지"에 투고를 권한 것도 그였다 한편으론 현재 고대사학계에서 이같은 연구 결과를 수용하기에는 많은 상충점이 있음을 지적해 주었다 송기호 교수 엮시 같은 의견이었다 또한 송교수는 나의 연구내용중 상대 신라의 최적 일식위치가 양자강 유역이라는 결과와 관련해, 가야의 허 황후가 양자강 유역의 허씨 집성촌과 관련이 있다는 설과 후대 신라방이 설치된 곳이 양자강 하구 근처라는 사실 정도가 지금까지 신라와 양자강 유역을 연결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의 전부라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결론적으로 고대사 분야의 역사학자들에게 나의 연구방법은 신선하고 기대되는 바가 적지 않으나 그 결과에 있어서는 상충되는 점이 많아 앞으로 더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나의 연구 결과도 다른 연구자에 의해 재검증되어야 할 것이다 언젠가는 후속 연구를 통해 나의 분석 결과가 설명될 수 있는 내용으로 고대사 일부가 재구성되거나 "삼국사기"의 정체가 밝혀질 것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천문역사학, 천문고고학, 고천문학과 같은 분야에 많은 학자들의 관심과 연구가 있기를 기대한다 나는 역사와 관련된 이 논문을 쓰려고 할때 처음에는 이를 국제 학술지에 기고할 생각이었다 국내 학술지 어디에 기고해야 할지 망설여져서였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 국내학술지에 싣기로 결정했다 전문가의 연구란 그 학문과 관련된 전문학계에서 먼저 소화, 검증된 뒤에 일반인에게 알려지는 것이 올바른 단계라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국사에 대한 연구결과는 누구보다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알 권리가 있고, 여기에서 우선 검증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국내학계에 먼저 발표하기로 한 것이다 이 논문들을 발표한 지도 여러해가 되었다. 이때의 나의 판단이 과연 옳은 것이 었을까? 한편 이 연구를 하면서 고대 사서에 실린 천문현상 기록들을 하나씩 재연해 보는 일은 내게 커다란 즐거움 이었다 수천년 전에 선조가 남긴 기록과 나의 계산이 꼭 들어 맞을 때, 그리고 켬퓨터 화면을 통해서나마 당시의 하늘을 바라볼때면 마치 초등학교 시절 소풍에서 보물찾기를 할때 꼭꼭 숨겨져 늘 찾지 못했던 보물을 이제야 찾은 듯한 기분이었다 머나먼 시간을 뛰어넘어 옛사람과 한곳에 나란히 앉아 같은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흐믓해지기도 했다 고천문학 속에 펼쳐진 하늘은 이렇듯 시대와 시대를 이어주는 따스한 세계였다 요즘은 아주 먼 엣날까지 천체의 운동을 계산하여 하늘의 모습을 보여주는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나와 있다 여러분도 직접 옛 기록을 거슬러 올라가 당시의 밤하늘을 재연해 보기 바란다 그리고 빛나는 별등 아래 서 있었을 고대인들의 모습도 상상해 보기를 바란다 (참고지도 : "가라" 추청지역) (일본학자들의 주장이 그릇된 이유) 이쯤되면 일본 학자들이 그동안 "삼국사기"의 실측 기록들을 중국의 것을 베끼거나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해온 이유가 궁금해진다 일본 학자들이 제시한 근거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신라의 경우 일식을 포함한 천문 현상기록들이 대부분 서기 3세기 이전과 8세기 이후 양분되어 있어 그 시대별 분포가 이상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앞시대의 천문 기록은 가공의 신라초기 역사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하여 꾸며 넣은 장식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둘째, 삼국의 일부 천문 기록들이 중국 사서의 기록과 표현이 같은데다 그 중에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것도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중국의 기록을 무작정 베끼다 보니 실제가 아닌 일까지 옮겨 적게 된것이라 해석하고 있다 "삼국사기" 천문기록에서 보이는 특이점을 이렇게 해석해야 할까? "삼국사기"가 쓰여질 당시 신라 1,000년의 역사를 충실하게 기술한 참고 사서가 있어야 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불합리한 논리로 보인다 만약 그랬다면 "삼국사기"를 새로 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당시 신라나 고구려, 백제의 역사는 여러 사서로 나뉘어져 기술되어 있었을 것이고 역사 변천에 따라 사서 내용의 질이 변하고 양이 빈약해진 시대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삼국사기" 연표에는 이같은 고대 사료의 부족문제에 대해 한탄하는 글이 남아 있다 편찬자 김부식은 고려 인종에게 올린 표에서 "우리 나라의 옛기록인 고기에 많은 사적이 빠지고 없어졌으며, 중국의 사서들에는 우리 나라에 대한 기록이 자세히 실리지 않았다"고 통탄하고 있다 특히 고구려와 백제에 대한 기록은 "연대가 구원하고 기록이 분명하지 않다"며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또 고기, 화랑세기, 사기, 한서, 후한서, 북사, 양서, 당서, 신당서, 수서, 책부원구풍속통, 통전, 사이술, 고금군국지 등의 여러 국내외 사서들이 인용되고 비교된 점을 보면, "삼국사기" 편찬자에 사용된 참고문헌 내용의 분량과 질이 시대에 따라 일관적일 수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의 천문현상 기록수가 시대별로 크게 변하는 까닭도 사료의 변동에서 찾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또 천문 현상 기록중 일부가 중국측의 기록과 같다는 사실은 "삼국사기"가 중국의 기록을 베껴 원래 없던 기록을 보충한 증거라고 볼 수 없다 편찬자가 에로부터 전해 오는 삼국의 기록을 여러 참고 사서와 비교하다가 동일한 기록이 있으면 참고 사서의 표현을 빌어 고쳐 썼을 수는 있다 실제로 이러한 가능성이 천문기록에서 보인다 예를 들어 중국 사서에 없는 혜성 기록의 경우 하늘에서 혜성이 나타난 위치가 거의 팔방위로 "삼국사기"에 표현되어 있는데 중국 사서에 함께 나타나는 기록에서는 혜성의 위치가 대부분 중국식 별자리로 묘사되어 있다 이것은 중국의 참고 사서와 옛기록을 비교하다가 동시 기록이 없는 혜성기록은 그대로 두고 중국측 기록이 있는 경우에는 혜성의 위치를 팔방위 대신 보다 정확하다고 판단되는 별자리 이름으로 표현 한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공동기록은 이와 같이 동시에 관측하여 기록한 것일 수도 있고, 중국사서에 가끔 쓰여 있는 대로 중국이 주변국의 기록을 전해 들어 적은 것일수도 있다 또 일식의 경우 당시의 부정확한 일식 계산법에 근거하다 보니 중국과 삼국이 함께 실수를 범해서 일어나지 않은 일식을 일어 났다고 썼을 수도 있다 일식을 빠트리지 않고 관측하여 왕에게 보고하는 일은 당시 천문학자들에겐 목숨과 직결된 중대 임무였기 때문에 실제로 볼 수 없었던 일식도 예상만으로 관측했다고 보고 했을 수 있다 그렇기에 또 일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일어나지 않았던 일식이 고려와 조선 시대에 까지도 한중일 사서에 적잖이 수록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일어나지 않은 일식이 "삼국사기'와 중국사서에 공동으로 나오는 이유를 단지 베꼈기 때문이라고만 해석 할 수는 없다 어려운 대학수학 문제를 똑같이 틀리게 푼 두 초등학생의 답안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무작정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베꼈다고 단정 할 수 있을까? 엄격히 말하자면 일식기록에 관한 기존의 일본 고천문학자들의 연구는 결론을 내리는 과정이 과학적이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결론은 "삼국사기"의 일식 기록이 대부분 같은날 중국 사서에도 나온다는 단순 비교와 신라의 일식기록 분포도가 "이상하다"는 심증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 치밀하게 수행된 일식 계산 결과는 사실상 일본 학자들이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서 별반 참조되지 않았다 그들의 주장은 사서 비교를 통해 얻는 단순한 주관적 판단이지 "삼국사기"일식 기록이 중국 기록의 차용인지를 객관적으로 분석·검증한 과학적 결과가 아니다 과학이 학문으로서 공신력을 지니는 까닭은 주어진 자료에 대해 객관적이고 반복 가능한 분석을 통하여 결론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달과 행성의 근접 현상 관측 기록에도 그랬지만, 일본 학자들은 미리 주관적 결론을 세워 놓고 과학적 분석이 가능한 천문 기록에 대해서 의도적으로 부분적인 분석만 하거나 비과학적 논리를 앞세워 결론을 합리화하려 했다는 혐의가 짙다 ("삼국사기"의 일식 관측지는 한반도가 아니었다) 어느 나라가 일련의 일식 기록들을 남겼을 때 이 기록으로부터 어떻게 최적 관측지를 찾을 수 있는가? 일식이 일어나면 지구에는 달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어떤 곳에는 달의 온 그림자가 드리워져 해가 달에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일식을 볼 수 있다. 그 주변 지역에는 달의 반그림자가 드리워지고, 해의 일부만이 달에 가려지는 부분일식이 일어난다. 달이 해에서 좀더 비껴 지나가는 경우에는 부분일식만 일어난다. 어떤 경우이든 어느 한 일식은 지구상의 어느 특정 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 동북아시아를 놓고 이야기하자면, 어떤 일식은 한반도와 그 이서에서는 볼 수 있지만 동쪽에서는 볼수 없다 또 한반도와 그 이북에서는 볼 수 있지만 남쪽에서는 볼 수 없는 일식도 있다. 만약 어느 나라가 한반도에서 꾸준히 일식을 관측했다고 하자. 그 나라가 기록한 일식 모두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지역은 어디겠는가? 바로 한반도이다. 그 나라가 기록한 일식 중에는 주변국에서 볼 수 없거나 보기 힘든 일식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최적 일식 관측지는 바로 이러한 일식의 성질을 이용하여 찾는다. 그렇다면 실제로 삼국이 각기 일식을 관측한 지점은 어디였을까? 이것을 알 수 있다면 삼국이 정말 독자적으로 천문 관측을 했는지, 또 관측을 한 위치가 어디인지를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나의 일식 관측지 추정 방법의 신뢰도를 확인하기 위해 고려와 한·당·양나라가 남긴 일식 기록들에 대해 최적 관측지들을 추적하고 이를 각 나라의 강역과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가 실제 역사적으로 이미 확인된 강역과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삼국의 최적 일식 관측지를 찾아보았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수록된 일식 모두를 가장 잘 관측할 수 있는 지구상 위치는 발해만 유역이다. 그리고 서기 2~3세기에 주로 나오는 고구려의 일식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위치는 만주와 몽고에 이르는, 백제보다 북위도의 지역이었다. 신라의 일식 기록은 서기 201년 이전과 787년 이후로 양분되어 있다. 그중 서기 201년 이전 상대(上代) 신라의 일식 최적 관측지는 양자강 유역으로 나타났다. 서기 787년 이후에 나오는 하대(下代) 신라에선 한반도 남부가 최적 관측지로 밝혀졌다. 즉, ≪삼국사기≫에는 신라 초기에는 남쪽으로 지나가는 일식이 주로 기록되어 있고, 고구려에는 북쪽으로 지나가는 일식이, 백제에는 그 사이로 지나가는 일식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매우 심상치 않은 결과이다. 중국의 기록을 베꼈다면 당시 중국 나라들이 기록한 최적 일식 관측지와 삼국이 기록한 최적 일식 관측지가 평균적으로 모두 같은 위치로 나와야 이치에 맞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식 기록을 분석한 결과 삼국의 관측지가 나라마다 매우 다른 위도상으로 각각 떨어져 나타나고 있다. ≪삼국사기≫가 중국의 기록을 무분별하게 베꼈다면 이런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삼국사기≫의 편찬자인 김부식 등이 고도의 천체 역학적 계산을 통해 중국 일식 기록을 선별한 다음, 북위도로 지나가는 일식은 <고구려본기>에, 저위도로 지나가는 것은 <신라본기>에, 그 사이의 것은 <백제본기>에 나누어서 삽입하는 등 주도면밀한 편집을 했을리 만무하다. 이 정도의 계산을 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천체 역학적 지식과 첨단의 컴퓨터를 이용한 방대한 수치계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라본기>, <고구려본기>, <백제본기>의 일식기록은 각각 서로 다른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관측하여 나온 자료라고 결론지을 수있다. 이를 확률적 계산으로 증명할 수 있다. 컴퓨터를 이용해 중국 사서의일식 기록을 임의로 뽑아 <신라본기>, <고구려본기>, <백제본기>에 나누어 싣는 모의실험을 수천번 해 보면 삼국의 최적 관측지에 이 정도의 위도 차이가 발생할 가능성은 사실상 0임을 알수 있다. ≪삼국사기≫ 의 일식 기록은 중국 기록의 모방이 아니라, 서로 다른 위치에서 실측했던 기록인 것이다. 한편 신라와 백제가 한반도에서 일식 관측을 했음에도 '우연히' 최적 관측지의 경도가 모두 중국 대륙으로 나올 확률도 사실상 0이다.(기존 발표 논문 참조). 이들의 일식 기록은 우연히 최적 관측지가 중국 대륙 동부로 나온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실측한 기록인 것이다. 요컨대 삼국의 일식 관측지를 살펴보면 ≪삼국사기≫의 일식 기록이 중국측 기록을 베낀 것이라는 기존의 결론이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재야학자들과 "협잡운운"마라 박교수의 연구결과는 대륙삼국을 밝히는데 일부분일 뿐이다. 그는 천문학적인 관점에서 정사의 기록을 분석해 놓았을 뿐이다. (사서학, 천문학, 기상학에서 밝혀진 대륙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