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부도지(符都誌)/부도지개요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09_1 : 부도지 개요]

유위자 2025. 10. 2. 07:43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09_1 : 부도지 개요] * 부도지(符都誌) / 위키백과 바로가기 * 부도지(符都誌) / 위키백과, 나무위키 * 부도지(符都誌) 개요 / 치악산, 2024/05/23 * 징심헌과 징심록 이야기 / <디지털양산문화대전> 이종봉

* 부도지(符都誌) / 위키백과 바로가기

* 부도지(符都誌) / 위키백과, 나무위키 부도지(符都誌)는 신라 눌지왕 때 박제상이 저술했다는 사서인 《징심록》의 일부이다. 1953년에 그 후손인 박금(朴錦)이 그 내용을 발표함으로써 일반에 공개되었고, 1986년 번역본이 출간되어 널리 알려졌다. 조선 시대에 김시습에 의해 번역되었고, 그 필사본이 보관되고 있었다고 하지만 확인할 수 없다. 현존하는 《부도지[1]》의 내용은 원본의 내용을 연구했던 기억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시인 김지하는 고서인 《부도지(符都誌)》가 신라의 충신 박제상(朴堤上)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 보고, 《부도지》에서 언급한 마고성(麻姑城)을 인류 시원(始原)의 문명이라고 규정한다. 마고성은 21세기 현재에서 1만 4천 년 전(1만1천년 +7천년 = 1만8천년) 파미르고원에 있었다고 한다. 또 단군조선이 개국하기 이전 시대인 신시(神市, 신시배달국)도 중요시한다. 고대로 돌아가는 원시반본(原始返本)의 정신으로 현재의 위기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군이 실존인물이라고 믿으며, 율려가 생활 속에 가장 순수하게 살아있던 때가 단군시대이며 한민족의 역사 속에 실제로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1) 발표자 박금(朴錦)의 본명은 박재익이며, 박제상의 55세손이다. 1895년 함경남도 문주(지금의 문천)에서 태어났다.[박제상 저, 《부도지》, 김은수 번역·주해, 가나출판사, 1986년] 1930년대(1925년~1934년)에는 동아일보 기자로서 활동했으며, 만보산 사건을 취재하기도 했다. 2) 징심록 《징심록(澄心錄)》은 3교(敎) 15지(誌)로 되어 있다. - 상교 : 부도지(符都誌), 음신지(音信誌), 역시지(曆時誌), 천웅지(天雄誌), 성신지(星辰誌) - 중교 : 사해지(四海誌), 계불지(禊祓誌), 물명지(物名誌), 가악지(歌樂誌), 의약지(醫藥誌) - 하교 : 농상지(農桑誌), 도인지(陶人誌), 식화지(食火誌), 궁성지(宮城誌), 의관지(衣冠誌) -《부도지》외에 음신지, 역시지, 천웅지, 성신지 등을 복원했다고 하나 일반에 전해지지 않는다. - 금척지 : 박제상의 아들(일설) 백결선생 박문량이 썼다고 하며 박혁거세의 신물 금척에 관한 기록으로 추정된다. - 징심록추기 : 복원된 《부도지》에는 조선시대 생육신 중 한 명인 김시습이 《징심록》의 원본을 고대어에서 당시의 문장으로 적으면서 내력과 느낀 점을 덧붙였다. - 요정징심록연의추기 : 박금씨가 《징심록》을 복원하면서 느낀 점을 기록하였다. 3) 개요 - 시대는 짐세, 선천, 후천의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선천(先天)의 시대가 열리기 이전에 짐세(朕世)라는 시대가 있었으며, 후천의 말기에 임검씨(단군)가 등장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 각 지방의 전설로 남아 있는 ‘마고’가 민족의 시조로서 등장하고 있으며, 소리에 의해 세상이 창조되고, “오미의 화”로 말미암아 12부족이 나뉘게 되는 과정, 대홍수, 황궁·유인·환인·환웅씨의 계승과, 요와 순 임금에 의해 동방(단군조선)과 화하(하나라)가 분리되는 과정이 자세하게 서술되었다. 단군조선의 치세는 1천 년 간이며, 1천 년에 걸쳐 각 부족이 자리잡은 이후로 ‘단군조선을 포함한 치세’가 7천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즉, 《부도지》에 기록된 한민족의 기원은 1만 1천 년보다 이전이 된다.[2] 아직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우리 민족의 창세신화인 부도지가 있습니다. 신라시대 박제상(朴堤上)이 쓴『부도지 (符都誌)』는 우리 민족의 가장 오래된 사서(史書)이다. 또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뜻 깊은 창세(創世) 기록이기도 하다. 4) 내용 『부도지』에 의하면 천지창조의 주인공은 율려(律呂)이다. 율려가 몇 번 부활하여 별들이 나타났고, 우주의 어머니인 마고(麻姑)를 잉태했다. 마고는 홀로 선천(先天)을 남자로 하고 후천(後天)을 여자로 하여 배우자가 없이 궁희(穹姬)와 소희(巢姬)를 낳고, 궁희와 소희도 역시 선천과 후천의 정을 받아 결혼하지 아니하고 네 천인(天人)과 네 천녀(天女)를 낳았다. 율려가 다시 부활하여 지상에 육지와 바다가 생겼다. 기(氣), 화(火), 수(水), 토(土)가 서로 섞여 조화를 이루더니 풀과 나무, 새와 짐승들이 태어났다. 麻姑는 율려를 타고 지구를 삶의 터전으로 만들었으며, 천인과 천녀들은 하늘의 본음(本音)으로 만물을 다스렸다. 네 천인과 네 천녀는 麻姑의 뜻에 따라 서로 결혼하여 각각 3남 3녀를 낳았다. 그리고 그들이 또 서로 결혼하여 몇 대를 지나는 사이 1 만 2 천 명의 무리가 되었다. 그들은 지구상의 가장 높은 곳에 '마고성(麻姑城)'이라는 이상적인 공동체(符都)를 이루고 살았다. 그들은 품성이 조화롭고 깨끗하며, 땅에서 나오는 지유(地乳)를 먹고살아 혈기가 맑았다. 그들의 귀에는 오금(烏金)이 있어 하늘의 소리를 듣고 율려를 체득하여 자신이 바로 우주와 하나임을 깨달았다. 우주의 원리인 율려에 의존하여 살았기 때문에 유한한 육체의 한계를 넘어 무한한 수명을 누렸다. 그들은 만물에 깃들인 마음의 본체를 읽는 지혜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 마음의 본체를 운용하여 소리를 내지 않고도 말을 했고, 마음먹은 곳은 어디든지 갔으며, 형상이 없이도 행동할 수 있었다. 그들 중에 지소씨(支巢氏)라는 사람이 어느 날 지유(地乳)를 마시려고 유천(乳泉)에 갔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아 마시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배가 고파 어지러워서 쓰러졌다. 지소씨는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소(巢)의 난간의 넝쿨에 달린 포도열매를 허겁지겁 따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귀가 윙윙거리고 혀가 아려오고 온 몸의 피부가 가렵고 코가 맹맹해졌다. 어쩔 줄을 몰라하던 支巢氏는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시간이 흘러 支巢氏는 정신을 차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눈앞에 펼쳐진 세상이 전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온 세상이 색색으로 물들어 있고, 꽃에서는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귀에는 물 흐르는 소리와 새의 노래가 들려왔다. 支巢氏는 "넓고도 크구나 천지여! 하지만 내 기운을 능가하지는 못하는구나. 이 모두가 포도의 힘이로다."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포도를 권했고, 포도의 다섯 가지 맛을 알게 된 사람들은 번잡하고 사사로운 욕망과 감정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오미(五味)의 변(變)이다. 麻姑城의 사람들은 깜짝 놀라 사람들이 포도를 먹지 못하도록 금지하기에 이른다. 마음의 본체, 즉 본성이 하고자 하는 대로 살던 麻姑城의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인위적인 금지법이 생긴 것이다. 아무런 구속과 강제 없이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던 자재율(自在律)이 파괴된 것이다. 결국 포도를 먹은 이들뿐 아니라 포도를 먹지 못하도록 지키는 이들도 율려에 의존하여 살 수 없게 되었다. 포도를 먹은 이들은 몸이 이상하게 변했다. 또한 포도를 먹은 것을 창피하게 생각해 거짓말을 하고, 점차 남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어두워져서 마침내 천성(天性)을 잃어갔다. 오금(烏金)은 흙으로 변해 더 이상 하늘의 음을 들을 수 없었으며, 마음의 본체를 볼 수도 운용할 수도 없었다. 사람들은 유한한 육체의 한계 속에 갇혀 육체의 감각인 오감에만 의존해서 살아야 했다. 여러 사람들이 支巢氏를 원망하자 그는 부끄러운 나머지 사람들을 이끌고 麻姑城에서 나가 숨어버렸다. 천성을 잃은 다른 사람들도 이곳 저곳으로 흩어졌다. 麻姑城의 제일 어른이었던 황궁씨(黃穹氏)는 떠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간곡하게 말했다. "그대들의 마음이 심하게 흐려져 마음의 본체가 변하니 어쩔 수 없구려. 그러나 스스로 하늘의 이치를 깨달아 마음이 다시 맑아지면 자연히 천성을 되찾게 될 것이니 노력하고 또 노력하시오." 그러나 성밖은 기(氣), 화(火), 수(水), 토(土)가 서로 부딪치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만물은 서로를 시기하고, 불신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다퉈 성밖의 세상은 점점 혼란스러워졌고, 나중에는 麻姑城까지 위험하게 되었다. 이에 黃穹氏가 모든 사람들 가운데 어른이었으므로 마고의 앞에 사죄하여 오미(五味)의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고 복본(復本)할 것을 서약하였다. 제족들과 의논한 결과 麻姑城을 완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마침내 성문을 닫고 모두가 성을 떠나 이주할 것을 결심한다. 黃穹氏는 麻姑城에 살던 네 무리 중 한 무리의 3 천 명을 이끌고 가장 춥고 위험한 북쪽의 천산주(天山洲)로 향했다. 다른 세 무리도 각각 동, 서, 남쪽으로 향했다. 黃穹氏는 天山洲에 도착하여 해혹하여 복본(複本)할 것을 서약했다. 또한 사람들에게 수증(修證)하는 일을 열심히 하도록 일렀다. 큰아들인 유인씨(有因氏)에게는 하늘의 징표인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주어 세상을 밝히게 하고, 둘째와 셋째 아들에게는 天山洲 일대를 순행(巡行)하도록 하였다. 아들에게 후일을 도모하도록 한 뒤, 黃穹氏는 스스로 천산(天山)으로 들어가 긴 소리를 토하는 돌이 되었다. 돌을 통해 律呂의 음을 울려 오감과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마음을 다스려서 그들이 율려를 회복하는 일을 도왔다. 큰아들 유인(有因)씨는 黃穹氏에게 물려받은 天符三印으로 사람들에게 만물의 근본이 하나임을 깨닫게 하였다. 또한 불을 일으켜 어둠을 밝게 비추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음식을 익히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후일 有因氏는 아들 한인(桓因)에게 천부를 정하고 산으로 들어간다. 桓因은 天符三印을 이어받아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밝히고, 햇빛을 고르게 비추고, 기후를 순조롭게 만들었다. 마침내 만물이 평정을 되찾고 사람들의 괴상한 모습이 점차 본래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이는 黃穹, 有因, 桓因 3 대에 걸쳐 3 천 년 동안이나 수증을 한 정성 덕분이었다. 4) 평가 책 전반에 도교적 색채가 깔려 있고 한국 신화를 정리하려고 한 것으로 추정되며, 초반부에 창세신화에 대해 상당히 자세히 언급하고 있는데, 내용은 성경과 무속의 전승들을 적절히 혼합한 듯한 느낌이 상당히 강하다. 선악과와 같이 사람들이 포도열매를 먹고 그 맛에 욕망과 같은 감정을 깨닫는다거나 왕을 세울 것이냐 말 것이냐 논의하는 장면이 사무엘 상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든지. 마고성은 에덴동산을 연상케 하는 등. 기독교의 영향을 상당히 강하게 받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마고성이라는 명칭과 그에 대한 이야기는 국내 여기저기에 남아있는 마고성이라는 성터나 지명, 마고성 지방에 있던 소국이 단군에게 귀화했다거나, 마고할미가 거느리는 마고족이 단군이 거느리는 박달족에게 패해 복종했다는 전설[1]과 매우 닮아 있는 등, 성경을 베이스로 무속의 전설들을 욱여넣은 것이라 내용만 보면 훌륭한 동서양 퓨전 판타지소설이다. 한민족이 파미르 고원에서 기원했다고 서술되어 있어서 소위 파미르기원설의 원류가 된다. 그 외에도 무한한 떡밥을 양산할 수 있는 능력은 있으나 전반의 신화 포스에 밀려 후반부 내용은 잘 언급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이 책도 환단고기처럼 원본이 없으며 구술에 의해 작성되었다는 것. 부도지가 포함되어 있다는 징심록도 실존했는지의 여부가 불분명하다. 구술에 의해 작성된 것은 그렇다 쳐도 내용이 상술했듯 너무나 의도적일 정도로 기독교적이다. 게다가 읽어가다 보면 점점 더 환빠적 색채가 묻어나오고 있다. 확실히 위서이지만 일단 뭔가 몽환적으로 쓰인 데다 그다지 주목도가 높지 않아서 역사학계에서는 까지도 않는다. 환단고기처럼 대놓고 특정 단체에서 경전이나 진서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일부에서 인용하거나 언급하는 수준이라 그냥 무시할 뿐. 한편, 단월드 등 환단고기 활용 일색이던 이쪽 종교 계열에서는 유독 부도지를 많이 활용하는 편이다. 미국 세도나에 거대한 마고상을 세웠다가 철거당하기도 했다. 아무튼 중요한 문제는 서적 내용의 진실성과 저자(로 주장되는 사람)와 저서의 연관성이 확실한가의 여부인데, 환빠들은 난데없이 박제상을 시조로 하는 영해 박씨(寧海 朴氏) 족보를 들고 와서는 박제상이 있었으니 이 책도 진짜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단 영해 박씨 문중에는 박금이 복원한(또는 제작한) 초안 복사본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다만, 이런 주장 자체가 훌륭하게 논점을 빗나가고 있다. 왜 논점 이탈이냐면, 예를 들어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가 쓴 '네크로노미콘의 역사'에는 네크로노미콘이 1228년 중세 시대에 덴마크의 올라우스 워미우스가 라틴어 번역본을 만들었고, 1232년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이들은 둘 다 실존 인물이지만 네크로노미콘과 관련된 것은 어디까지나 러브크래프트가 창작한 크툴루 신화의 설정에 불과할 뿐 역사적 사실은 결코 아니며, 애당초 그레고리오 9세가 네크로노미콘을 금서로 지정했다는 기록조차 없다. 비슷하게 박제상이 실존인물이라는 것과 부도지의 진서 여부는 아무런 연관도 근거도 없으며, 박제상이 썼다는 기록도 없음에도 박제상의 저서라는 주장만으로 부도지를 진서라고 주장하는 건 훌륭한 논점 이탈이자 억지주장이라는 것. 그 사람이 실존 인물이라는 것과 실존 인물의 행적이니 사실이라는 주장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부도지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히는 것이 한국 무속의 신화소를 성경이라는 서구 신화에 섞어 오염시켰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마고 신앙만 해도 각종 지역 무속 등의 마고 신화와가 짬뽕되어 있고, 북한에서 채집된 신화를 보면 마고성의 마고족이 단군의 박달족에게 패했다는, 부도지에서 묘사하는 내용과 상당히 유사한 느낌을 받는데 이런 유사성 자체가 마고 신앙이 부도지로 인해 오염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후술할 영화 마고처럼 부도지의 창세신화를 기반으로 창작물이 나오는 등의 부작용이 있어 경계가 필요하다. 근대 중국의 정치학자 및 근대화론자인 량치차오가 주장한 위서를 판단하는 법[2]에 따르면, 이 책은 확실한 위서이다. 량치차오의 위서 판단법 중 제 1번인 "그 책이 전대(과거)에는 저서 속에 보이지 않거나 혹은 결코 다른 사람이 인용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나타난 것은 10중 9는 거짓이다."에 따르면, 한국사에 남겨진, '진서'로 취급받는 그 어떤 문헌에서도 부도지라는 책을 인용한 바가 없다. 1950년대에 박금이 자기 조상님이 쓴 책이라며 '기억에 따라 내용을 복원'해서 내놓기 전에는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쐐기가 바로 삼국유사에 부도지가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금의 '주장'에 따르면, 김시습이 부도지를 읽고 그것을 '당시의 한문'으로 해석하였다고 하는데 [물론, 김시습이 부도지를 해석했다는 것도 박금의 유사역사학적 주장에 불과하다. 김시습을 언급하는 그 어떤 신뢰받는 문헌에서도 금오신화 저술 이외의 행적을 기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홍길동전이 허균의 저술이라고 인정받는 이유는 이식의 시문집인 '택당집' 에 허균이 그 책을 썼다는 대목이 나오기 때문이다. 설공찬전은 오랫동안 소실된 줄 알았다가 극적으로 어느 집의 책 뒷면에서 부분적으로 발견되었다고 하기에 위서일 가능성이 있지만 저자인 채수가 이 책을 써서 조정으로부터 제재받았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으며, 따로 발견된 것도 아니고 안방준의 '묵재일기' 에 수록된 형태로 나왔다], 그 말은 김시습 이전, 일연이 삼국유사를 쓸 때도 부도지가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삼국유사에는 단군 신화를 포함해 한반도에서 있었다는 수많은 초자연적, 신화적 행적들을 총망라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정작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김제상'[4]이 왕족인 미사흔을 구하러 일본으로 갔다가, 고문을 당하고 죽었다는 이야기만 해놓았을 뿐 박제상/김제상의 부도지라는 책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는다. 부도지가 존재했다면 일연이 그 책의 내용을 인용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