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단재(丹齎)신채호(申采浩)/조선사론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03_8 : 조선사론(朝鮮史論) 개요]

유위자 2025. 9. 24. 19:33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03_8 : 조선사론(朝鮮史論) 개요] 목 차 제1장 사(史)의 정의와 조선사의 범위 제2장 사(史)의 3대 원소(元素)와 조선 구사(舊史)의 결점 제3장 구사(舊史)의 종류와 그 득실 제4장 사료와 수집과 선택 제5장 사(史)의 개조에 대한 의견 1946년 4월 김송규(金松圭)를 발행인으로 한 서울 광한서림(廣韓書林)이『조선사론(朝鮮史論)』제 1집-「단재 신 채호선생 유고」를 간행했는데, 이는『조선사』의 제 1편인 총론을 따로 떼어서 단행본(4.6판, 61쪽)으로 묶은 것 이다. 필자 미상의‘머리말’에는“선생의 탁월하신 인격, 고매하신 식견, 홍박심원(弘博深遠)하신 학식, 표현할 수 없이 열렬하신 애국정신을 우리는 배우고 본받아 건국의 원동력을 얻읍시다. 이 유고는 우리 조선사를 바로잡는 가장 정확한 역사학론인 만큼 특히『조선사』를 논술 저작하며 일반이나 생도에게 가라치며 또 연구하시는 이들은 꼭 재독삼독(再讀三讀)할 필요가 있다고 믿습니다”라고 써 놓았다. 1946년에 발간된 신채호(유고집)<조선사론>에 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비아(非我)를 정복하여 아(我)를 드러내면 투쟁의 승리자가 되어 미래 역사의 생명을 잇고, 아(我)를 없애어 비아(非我)에 공헌하는 자는 투쟁의 패망자가 되어 과거 역사의 묵은 자취만 끼친다 (3페이지). * 조선사론(朝鮮史論) 개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신채호가 우리나라 상고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 학술서. 1946년에 발간된 신채호(유고집)<조선사론>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비아(非我)를 정복하여 아(我)를 드러내면 투쟁의 승리자가 되어 미래 역사의 생명을잇고, 아(我)를 없애어 비아(非我)에 공헌하는 자는 투쟁의 패망자가 되어 과거 역사의 묵은 자취만 끼친다’ (3페이지).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실례를 들고 있다. "김석문(金錫文, 1658~1735)은 300년 전에 지원설(地圓說) (땅이 둥글다는 것)- 을 앞장서서 주장한 조선의 학자이다. 그러나 그의 지원설은 브루노(1548~1600)의 지원설과 같은 역사적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 왜냐하면 브루노의 학설은 유럽 각국의 탐험 열을 높이고 또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김석문의 지원설은 그러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또 정여립(鄭汝立, 1546~1589)은 400년 전에 군신강상설(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을 타파하려 한 동양의 위인이지만, 그를 「민약론」을 쓴 루소와 같은 역사적 인물이라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정여립의 주장에 영향을 받은 검계나 양반 살육계 등은 한 부분에 국한된 짧은 한때의 활동에 불과했지만, 루소의 「민약론」은 이후 파도와 같이 널리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정여립은 승자 독식 역사의 희생자였지만 한국사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역사적 선구자다. 일찍히 단재 신채호는 그를 평가하기를 '이미 400년 전에 군신강상설(君臣綱常說)을 타파하려 한 동양의 위인' 이라 칭했고, '존군모화(尊君慕華)(중국의 왕과 문물과 사상 을 숭상하여 섬 김)의 유교적 존왕주의에 반기를 든, 말하자면 인민주권(人民主權)의 혁명가' 로 높이 평가했다. 일찍이 신분해방을 주장한 사람들은 그 자신의 신분이 하층민인 경우가 많았다. 고려조의 만적, 망이, 망소이등, 그들은 천민, 노비 계층으로 신분제의 폐단을 스스로 느꼈던 이들인데 반해 조선의 정여립은 스스로가 양반 사대부였고, 신분차별의 설움을 느낄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신분 타파를 주장하였다. 실제로 그가 세운 대동계내의 무사, 승려, 농민, 천민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은 대동이라는 기치아래 평등 세상을 이루었다. 정여립의 사상은 천하공물설(天下公物設)과 하사비군론(何事非君論), 그가 남긴 두 글귀에서 가장 극명히 드러난다. 천하가 공물이라는 것은 천하가 반드시 임금의 것이 아니며 양반 사대부의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일각에서는 정여립을 서양의 올리버 크롬웰보다 반세기 앞서는 한국사 최초의 공화주의자라고 평가하는데, 그의 천하공물설에서 군주의 절대적 지배권을 부정한 것은 원시적 형태의 인민주권설이기 때문이다. 그가 충군사상을 부정하여 군신관계가 수직적 관계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 것 또한 이러한 맥락이다. 하사비군론은 '누구를 섬기든 임금이 아니겠는가?' 라는 말인데, 이는 곧 왕위 세습을 부인하는 혁명적 발상이다. 그는 중국의 성인인 요, 순, 우가 그들의 자식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고 당대의 현자에게 왕위를 계승케 한 것을 매우 높이 평가하였다. 그는 천하의 제위는 혈연이 아닌 능력에 따라 이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능력을 무시한 채 무조건 혈연에 따라 왕위가 계승되다보면 능력없는 한낱 필부가 왕위에 오르고, 또한 이러한 때 난세를 맞이한다면, 국가의 운명은 또 어찌되겠는가? 그런 그를 우리는 어떻게 배웠는가? 역적이라고 배우지 않았던가! 그는 또 그의 책 44페이지에서 역사왜곡을 준엄하게 꾸짖는다. "연전에 김택영(金澤榮)의 역사집략(歷史輯略)과 장지연(張志淵)의 대한강역고(大韓疆域考)에, 일본의 신공여주(神功女主) 18년에 신라를 정복했다는 것과, 수인주(垂仁主) 2년에 임나부(任那府)를 설치하였다는 것을 모두 일본서기(日本書紀)에서 그대로 따다가 적고 그 박식함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신공 18년은 신라 내해왕(奈解王) 4년(서기 199)이요, 내해왕 당년에는 신라가 압록강을 구경한 이도 별로 없었을 터인데, 이제 내해왕이 아리나례(阿利那禮 : 압록강)을 가리키며 맹세하였다 함이 무슨 말이며, 수인주는 백제와 교통하기 이전의 일본의 임금이니, 백제의 봉직(縫織)도 수입이 안 된 때인데, 수인주 2년에 임나국(任那國) 사람에게 붉은 비단[赤絹] 2백 필을 주었다 함은 어쩐 말인가? " 모두 아(我)를 없애어 비아(非我)에 공헌하는 짖이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우린 무엇을 배웠는가? 정말 정말 화가 난다. 나라를 빼앗기고 이제와서는 독도까지 자기네들 땅이라고 해도 한마디도 못하는 우리나라. 그의 말대로 <투쟁의 패망자>가 아닌가? 정직하게 배우고 싶다. 있는 그대로 배우고 싶다. 신채호.1880년 12월 8일 ~ 1936년 2월 21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적 아나키스트, 사학자이다. 구한 말부터 언론 계몽운동을 하다 망명,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으나 견해차이로 임정을 탈퇴, 국민대표자회의 소집과 무정부주의 단체에 가담하여 활동했으며 사서 연구에 몰두하기도 했다. 1936년 2월 18일, 그는 뤼순 감옥 독방에서 뇌일혈로 쓰러졌고 사흘 뒤 감방안에서 혼자 있을 때에 사망하였다. 뇌일혈 및 동상, 영양실조, 고문 후유증 등의 합병증이었다. 향년 57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