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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4_22 훈민정음 탐구_김슬옹]* 35. 훈민정음은 문학의 원천 / 김슬옹교수 <충청리뷰> 2024.10.09
35. 훈민정음은 문학의 원천 /《훈민정음》 해례본은 문학의 집
[김슬옹의 훈민정음 해설] 입력 2024.10.09
우리 겨레가 우리 민중들이 오랫동안 부르고 보듬어온 이야기와 노래와 시가 있었다.
수많은 전설과 설화가 그렇고 백제 가요가 그렇고 신라의 향가, 고려 말에 형성된 시조가 그랬다.
“아리아리 아라리요.”“얄리얄리 얄라” 등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소리들이 세종대왕이 한글(훈민정음, 언문)을 반포할 때까지
집글을 찾지 못해 입에서 입으로 떠돌았다. 입으로 떠돌고 입으로 나누기에 깔 맞춤한 소리요 말이지만,
머물 집이 없으니 때로는 허공 중에 사라져갔다. 대다수는 살기 바빠 사라져간 줄도 몰랐다.
일부는 한문으로 번역해 적기도 하고 일부는 한자의 훈과 음을 빌려 억지로 적기도 하였으나 온전치 못했다.
우리 집이 없으니 진정한 우리 문학이 있을 리 없었다.
일부 상류층은 아예 중국식으로 이야기를 짓고 시를 지어 한문학을 즐겼다.
이 또한 우리나라 사람이 지었으니 우리 문학임은 분명하지만, 당연히 진정한 우리 문학이라 할 수 없었다.
우리의 소리가 우리의 느낌과 이 땅의 섬세한 감성들을 반은 빼버린 반쪽 문학이기 때문이다.
훈민정음 덕에 글꽃으로 피어난 시조, 가사, 이야기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은 한문학, 이를테면 박지원이 지은
<열하일기>, <양반전> 등이 국문학이냐 아니냐 논쟁이 있었으나 부질없는 논쟁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정서를 바탕으로 지었으니 그것이 중국식 한문으로 적혀 있다고 해서 우리 문학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어(한문)로 번역된 번역문학으로서의 국문학일 뿐이다.
훈민정음 반포 이전에 한문으로 문학 활동을 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박지원 같은 대문호가
18~19세기에 우리 글이 있는데 굳이 모든 작품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문학 활동을 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문학 가치는 크게 세 가지로 짚어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바로 훈민정음이라는 우리다운 문자로
우리말과 소리를 온새미로 적게 하여 온전한 문학이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래서 사라져갈 뻔한
신라 향가, 백제 노래, 고려 가요 등이 안다미로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더욱 오달지게 꽃피게 되었다.
둘째는 완벽한 소리문자, 음소문자로 누구나 문학 활동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지은“金樽美酒 千人血(금준미주 천인혈)”로 시작하는 한시를 양반들이 즐겼다고 하나
그런 시를 실제 지을 수 있는 이는 과거 시험을 볼 수 있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지금 말로 하면 “사랑하고(괴여), 사랑받아(괴ᅇᅧ)”,
“콩, 뱀, 범” 등 맛깔스럽고 감칠맛 나는 우리 일상어가 124개(조사 포함 126개)가 실려 있다.
당연히 남녀노소 우리 겨레가 몇천 년 어쩌면 몇만 년 써온 말들이다.
누구나 문학가가 되는 길이 열린 것이다. 물론 소설 같은 경우는 타고난 재주가 있어야겠지만
시나 수필은 타고난 재질이 없어도 노력으로 창작이 가능하다.
문학을 즐기는 것이 어찌 창작에만 있을쏜가.
읽고 나누는 문학 활동이야말로 누구나 함께 즐기고 나누는 것이니 그 또한 소중하지 아니한가.
타고난 재주에 따라 문학을 갈라치기로 하자는 것은 아니라 누구나 문학이라는 달보드레한 감성 세계에
참여할 수 있다는 평등과 민주스러운 문학 활동.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필자가 훈민정음에 나오는 낱말로 개발한 한글 옷. 배경은 해례본 낱말 124개의 청농 문관효 한글서예가 글씨.
셋째는 해례본 표현 자체가 문학적 수사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제자해 갈무리 시에서 아래아(·)를 묘사하기를
“·는 하늘을 본떠 소리가 가장 깊으니 둥근 꼴이 총알 같네.”라고 글자를 총알에 비유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비유인가?
또 ‘ㄱㅋㄲ ’에 대해서는
“ㄱ[기]는 나무가 바탕을 이룬 것이고,
ㅋ[키]는 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것이고, ㄲ[끼]는 나무가 오래되어 굳건해진 것이니,
이는 한결같이 모두 어금니를 본뜬 데서 비롯된 것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예사소리, 거센소리, 된소리의 모양새를 나무에 빗대 찰진 문학 표현으로 기술해
같은 곳에서 소리나는 글자의 짜임새와 생김새를 비유적으로 표현해 놓았다.
획을 더한 거센소리 글자는 나뭇가지가 무성한 나무요
탁한 된소리는 고목 같은 굳건한 나무라 하였으나 이보다 더 멋진 표현이 어디 있을까?
해례본은 모두 366문장으로 이루어졌다.
우연인지는 모르나 고대 역학에서 1년을 366일로 보았으므로 아마도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 순환의 이치가 온전히 담긴 1년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일부러 366문장으로 맞춘듯하다.
그래서인지 366번째 마지막 문장이 가슴 벅찬 감흥으로 다가온다.
“무릇 동방에 나라가 있은 지가 오래지 않음이 아니로되,
만물의 뜻을 깨달아 모든 일을 온전하게 이루게 하는 큰 지혜는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문학은 배달문학을 연구하고 꽃피우셨던 김수업 선생님 말씀처럼 말꽃이다.
말이 말답게 꽃을 피우게 한 훈민정음!
그래서 우리의 소리와 이 땅의 모든 풍경, 토박이들의 그 풍성한 감성들과 울고 웃는 애환들,
우주를 품을 수 있는 이야기와 그 이야기의 꽃이 된 상상들이 글꽃을 피우게 되었으니
그것이 어찌 큰 지혜의 누리가 아니던가? 문학 없이 사람다운 누리를 가꾸고 보듬을 수 없다.
문학이 있어 우리의 삶은 살가운 삶이 되고 사랑을 나눌 수 있고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다.
시옷이란 글자는 날카로운 직선으로 우리 곁에 왔으나
그것은 “사람, 사랑, 삶”과 같은 말들을 누구나 쉽게 적으며 서로를,
그리고 지식과 지혜를 사랑하며 살라는 세종대왕의 백성사랑과 백성존중의 간곡한 정성이 깃든 직선이었다.
문학은 직선을 바탕으로 직선의 가치를 곡선의 아름다움으로 표현하고 나누는 일이다.
형식으로 수정ㆍ보완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 이 글은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의 2023년 복간본의 필자 해설서인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의 탄생과 역사≫(가온누리)”를 신문 연재 방식으로 다듬은 것이다.
김슬옹 :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한국외대 교육대학원 객원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간송미술관 요청으
로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을 직접 보고 최초 복간본을 해설했다.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훈민정음 해례본만의 순
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훈민정음학과 세종학 연구 업적으로 세종문화상 대통령상(학술)과 외솔상(학술), 연
문인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세종학과 융합인문학’ 등 우리 말글 관련 111권(70권 공저)을 집필했다.
* 안다미 : 이 단어의 어원은‘안담(按擔)’이라는 한자어가 있는 것으로 보아‘按擔-이’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이보다는 오히려 우리말‘안[內] + 담-[藏] + -이’에 의하여 만들어진 고유어‘안다미’(안에 담는
것)를 한자로 차자한 것이‘안담(按擔)’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이에 따라 우리 사전에서는 고유어인‘안
다미’에 대해서 한자 차용어로 굳은‘안담’을 별개의 표제어로 인정하여 유의어로 처리하였다. 이 말은‘안에 무
엇을 담기 위해 입구를 넓게 하여 만든 것’이라는 의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 안다미조개 : 꼬막.
* 안다미로 : 담은 물건이 그 그릇에 넘치도록 많게.
* 안다미 : 남의 책임을 맡아 짐.
* 안다미씌우다 : 자기가 맡은 책임을 남에게 넘기다. [준말] 다미씌우다.
*´안다미[안 : 다미] 씌우다.´란 말과 ´덤터기´씌우다´란 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 ´안다미´란 말은 남의 책임을 맡아 진다는 뜻의 말입니다.
동사로 쓰일 때는´안다미하다´가 됩니다. 따라서 ´안다미 씌우다.´라고 하면
자기가 말아야 할 책임을 남에게 넘긴다는 말입니다. 준말로는 ´다미를 씌운다.´라고 합니다.
때때로, ´안다미 씌운다.´를 ´안다미 시킨다.´라고 말하는 일이 있지만, 그것은 비표준어입니다.
´안다미 씌운다.´만이 단수표준어로 인정 되고 있습니다.
- 이 ´안다미´는 ´안다[안 : 따]´라는 말에서 왔으리라 생각됩니다.
˝힘에 겨운 일을 안고 있다.˝라고 하면, 힘에 겨운 일을 책임지고 있다는 말이 되어,
˝제 구실도 못하는 주제에 남의 일을 안고 나서네.˝, 또는 ˝친구의 일까지 안아 맡아서 처리해 준다˝에서
´안다미´가 된 것은 아마도 한자말 按擔과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按擔´이란 말의 뜻은 책임을 진다는 뜻이어서 ´안다미´의 뜻과 유사한 데가 있습니다.
그러기에´안다미´를 지역에 따라서는´안담이´로 쓰기도 합니다만 그것은 표준어로 인정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 이 ´안다미 씌우다.´와 비슷한 듯하나 약간 차이가 있는 말에 ´덤터기 씌운다.´란 말이 있습니다.
´덤터기´는 남에게 넘겨 씌우거나 또는 남에게서 억울하게 넘겨 맡는 걱정거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따라서 ´덤터기를 쓴다.´라고 하면, 남의 걱정거리를 넘겨 맡거나,억울한 누명이나 오명을 쓴다는 뜻이 되고
´덤터기를 씌우다.´라 하면 남에게 걱정거리를 ´넘겨 주거나, 누명을 씌우는 것이 됩니다.
´씌운다´는 말이 사역형이기 때문에 남으로 하여금 어떻게 하도록 만든다는 뜻이 되는 것은 같으나
´안다미 씌우다.´는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고,´덤터기 씌우다.´는 걱정거리나 누명을 남에게 떠넘기는 것
- 대화(부부간)
(여) : ˝회사 일을 혼자 안아 맡으셨어요. 매일 같이 집에까지 가지고 와서 하시게?˝
(남) : ˝내가 할 일을 남에게 안다미 씌울 수야 없지 않소?˝
(여) : ˝그렇게 힘든 일이면 나누어 할 것이지, 왜 혼자 안고 애를 쓰시느냐 말이에요?˝
(남) : ˝예상 외로 시간이 많이 걸릴 뿐이지 어려운 일은 아니오.˝
(여) : ˝뼈 빠지게 일하시고도 기한까지 못 댔다고 덤터기 쓰는 건 아니겠죠?˝
(남) :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하려고 이렇게 밤일을 하는게 아니겠소?˝
* 여러분 잠깐만! *
- ˝국수를 안다미로 담아 주세요.˝라는 말에서 ´안다미로´는 어떤 뜻으로 쓴 말일까요?
´그릇에 넘치게´라는 뜻으로 쓰인 말. 이´안다미로´란 부사와´안다미´란 명사는 그 뜻이 현저하게 다른 말.
* 오달지다 : 허술한 데가 없이 야무지고 알차다.
- 비슷한 의미의 단어: 오지다 올지다
- 예문 (이희승, 딸깍발이 선비의 일생)에서
- 아람 밤톨같이 오달지고 단단하던 월파는 지금 천상백옥경에서 아래를 굽어살피고 있는 것이다.
- 그가 살아온 길지 않은 세월 중에서 가장 오달지고 걱정이 없었던 때는 양 진사 댁 종노릇을 하면서
큰소리치고 보수세 받으러 다녔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