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훈민정음(訓民正音)/훈민정음탐구_김슬옹

31.《훈민정음》 끝소리글자의 과학성

유위자 2026. 5. 21. 23:27
.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4_22 훈민정음 탐구_김슬옹] * 31.《훈민정음》 끝소리글자의 과학성 / 김슬옹교수 <충청리뷰> 2024.09.05 31. 《훈민정음》 끝소리글자의 과학성 '종성부용초성' 대원칙...쉽게 배우기, 애민 정신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김슬옹의 훈민정음 해설] 입력 2024.09.05 어린 시절 받아쓰기 추억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받아쓰기에서 자주 틀리곤 했던‘받침’, 쉽다고 생각했던 한글이 갑자기 어렵게 느껴지게 했던 받침. 소리로는‘끝소리’또는‘종성’이라 부르고, 글자로는‘끝소리글자’또는‘종성자’라고 부르는 받침에 훈민정음의 과학성, 창제 정신, 세종의 온갖 고뇌가 서려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꽤 많다. 한국어는 유달리 받침(종성)이 발달되어 있고 그 받침을 정확한 문자로 표기할 수 있게 한 이가 세종대왕이다. 이웃나라인 일본어는 거의 종성이 없고 중국어는 아예 종성에 대한 개념조차 없다. 중성과 종성을 하나의 단위(운모)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유럽어도 이탈리아말은 일본말과 거의 비슷하게 받침이 거의 없고, 영어도 받침은 있지만 그것이 체계적인 문자나 표기법으로 되어 있지 않다. 중국어와 한국어 음절 짜임새 차이 한국어는 “가강/고공/과광” 등과 같이 받침이 있고 없고에 따라 다양한 소리와 글자를 만들어내니 그만큼 표현이 폭넓고 다채롭다. 세종은 이렇게 다채로운 받침을 적는 문자를 어떻게 만들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자 차원의 결론은 간단했다. 《훈민정음》 해례본(1446)에서 세종이 직접 저술한‘정음편’에서“終聲復用初聲(초성부용초성) [정음3ㄴ:6_어제예의] 끝소리글자(종성자)는 첫소리글자(초성자)를 다시 쓴다.”라고 한 문장으로 나타냈다. 끝소리글자를 따로 만들지 않고 첫소리를 그대로 쓴다는 것이다. 한글의 간결성과 과학성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소리로 보면 끝소리는 첫소리와 조금 다르다. ‘각’하면 똑같은 소리로 인식하지만, 사실은 첫소리 ㄱ[기]는 터져 나오는 소리이고 끝소리 ㄱ[윽]은 터졌다가 닫히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자 모양을 얼마든지 다르게 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 세종은 ㄱ[기]를 이리저리 변형하려 했을 것이다. 받침글자를 따로 만들지 말라!! 이리저리 고심하던 세종은 또 다른 우리말의 특성을 발견했다. 그것은 ‘각+이→가기’와 같이 모음이 붙으면 ‘ㄱ’이 다시 살아나는 특징이었다. 세종은 애초부터 하루아침에 배울 수 있는 쉬운 문자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간결해야 했다. 받침글자를 따로 만들 경우 당연히 받침이 발달되어 있는 우리말의 특성상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첫소리글자를 그대로 쓰자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이것은 기적이었고 문자과학, 문자혁명의 완성이었다. ‘종성부용초성’규정은 받침 문자 만들기에 대한 규정도 되지만, 받침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맞춤법 규정도 된다. 그러니까 두 가지 뜻을 가진 중의적인 규정이다. 현대 한글로 보면 첫소리에 쓰이는 19자가 끝소리에서도 모두 쓰이게 한 규정이다. 첫소리를 끝소리로 다시 쓰기 현대 도형. (김슬옹 글/강수현 그림, 《누구나 알아야 할 훈민정음·한글 이야기》 28, 68쪽) 이러한 받침 규정에 대해 세종과 해례본 지은이들은 만물이 순환하는 철학적, 생태학적 이치를 부여했다. 곧 하나의 바탕 기운이 두루 흘러 다하지 않고, 사계절 바뀜이 돌고 돌아 끝이 없으니 만물의 거둠에서 다시 만물의 시초가 되듯 겨울은 다시 봄이 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제자해). 첫소리글자가 다시 끝소리글자가 되고 끝소리글자가 다시 첫소리글자가 되는 것도 역시 이와 같은 뜻이다. 그런데 첫소리에 오는 모든 글자가 아니라 단 8자만 써도 된다는 규정이 신하들이 풀어쓴 ‘훈민정음 해례’종성해에서는“然ㄱㆁㄷㄴㅂㅁㅅㄹ八字可足用_정음해례18ㄱ:5-6_종성해”라고 나온다. 곧‘ㄱㅇ(옛이응)ㄷㄴㅂㅁㅅㄹ’의 여덟 글자만으로도 끝소리글자를 적기에 넉넉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 표기로 하면‘배꽃’으로 적는 것이 원칙이지만, ‘배꼳(15세기는 ᄇᆡᆺ곶)’이렇게 발음나는 대로 적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높고’를 ‘놉고’로 적어도 좋다는 의미다. 일종의 허용 규정이다. 첫소리글자를 끝소리 글자에 모두 써라 지금 만일 이런 받침 쓰기를 발음나는 대로 적으라고 하면 맞춤법의 근간이 흔들리고 표기법의 대혼란이 오게 된다. 사실 맞춤법은 쓰기 위주라기보다 읽기 위주다. 발음나는 대로 쓰게 되면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같은 뜻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래서 1933년에 제정된 한글맞춤법은 이른바 원형 밝히기, 곧 형태음소 표기를 대원칙으로 정했다. ‘높고’에서‘높’이 소리(음소)로는‘놉’이지만‘높’이라는 원형대로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형 밝히기가 중요한 것은 소리나는 대로 적을 경우 가장 중요한 뜻 전달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 똑같은 뜻의 낱말 표기가 사람마다 달라져 큰 혼란이 올 수 있다. 그렇다면 세종대왕은 왜 원형 밝히기(종성부용초성)라는 대원칙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래서 그런 규정을 만들었음에도 신하들이 풀이한 곳에서는 그 원칙보다 발음 위주의 8종성법을 허용한 것일까? 그 이유는 물론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필자가 추측컨대 그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백성들이 일단 쉽게 배우고 쉽게 쓸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처음 문자를 만들었는데 만일 그 규정이 어렵거나 까다로우면 새 문자에 대한 진입 장벽은 당연히 높다. 새 문자를 빨리 보급하려는 애민 정신이 반영된 허용이라 할 것이다. 다만 세종은 언젠가는 원형 밝히기로 해야 함을 잘 알고 있었고, 직접 지은《월인천강지곡》(1449)에서는 8종성법이 아닌 ‘종성부용초성(종성자는 초성자를 다시 쓸 수 있다는 규정)’의 예를 선보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