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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14_22 훈민정음 탐구_김슬옹]* 27. ≪훈민정음≫‘정인지 서문’의 진실과 감동 / 김슬옹교수 <충청리뷰> 2024.08.01
27. 《훈민정음》 세종 서문의 감동
108자의 잔잔한 울림, 세상을 밝히다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김슬옹의 훈민정음 해설] 입력 2024.08.01
세종이 직접 지은‘어제 서문’은 사실 편의상 그렇게 부르는 명칭이고 엄격히 말하면‘정음 취지문’이다.
왜 훈민정음을 창제했는지에 대한 동기, 목적, 내용, 가치를 밝힌 것이기 때문이다.
백성들의 종교요 문화요 생활이었던 불교에 기대 백성들이 한자·한문을 못하여 겪는 번뇌와 고통을 씻어주려는
세종대왕의 자비심을 담아 해례본에서는 54자요, 우리말로 번역한 언해본에서는 108자로 풀어 서원하였다.
글자 하나하나에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마음을 담느라 밤잠을 설쳐가며 조율한 글자 수였다.
세종의 이런 마음, 훈민정음에 담긴 그 마음을 잇고자 필자도 현대 한국어로 108자 번역문으로 다듬어 보았다.
15세기 세종과 세종을 도왔던 이들의 간절한 마음을 어찌 후손으로서 잇지 못하겠는가?
그렇다면 간결하고 명쾌한 세종 서문에서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진정성은 무엇인지 현대 번역말의 핵심어로 짚어보자.
첫 문장에서는“달라”라는 표현이다. 15세기에 세종의 이 말은 혁명적인 선언이었다.
당시는 황제가 있는 나라 중화(중국)와 같아지거나 닮으려고 해야지 다름을 생각해서도 꺼내서도 안 되는 시대였다.
지식인과 지배층들은 중국말과 우리말이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이런 터에 다름을 천명한 것이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과학 정신, 자주정신이 있었기에 새 문자는 탄생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제 뜻을 펼치지”라는 표현이다. 이때‘뜻’은 지식과 정보뿐만 아니라 마음과 감정까지 아우른다.
‘뜻[情]’은‘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곧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한자를 모르거나 어렵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할 수 없었던 백성들이 자신의 감정, 뜻, 하고 싶은 말 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문자를 만들겠다는, 만들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와 연결된 표현이“가엾게”이다.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맹자가 얘기한‘측은지심’이지만,
이는 단순한‘측은지심’이 아니다. 이 말에 한자라는 절대적인 문자를 두고,
왜 훈민정음을 만들었는지가 다 녹아 있다. 한자·한문을 잘 못함으로써 맞을 수밖에 없는 백성들의
사회적 지위와 백성들의 고통, 한자를 빌려 억지로 우리말을 담아야 하는 문자 생활의
오랜 모순과 불편함, 그 모든 사실과 느낌이 응축된 말이다.
해례본의 세종서문(한문)과 현대말 108자 번역(왼쪽) 108자로 이루어진 언해본의 <세종서문>(글씨:문관효)
15세기는 임금이 새 문자를 만들었으니 쓰라고 하면 되는 세상이었다.
그런데 굳이 이런 표현을 직접 써가며 새 문자 반포에 대한 세종의 간절한 마음을 온전히 드러냈다.
고등학교 다닐 땐 이 말의 무게와 여기에 담긴 세종의 깊은 뜻을 알지 못했다.
그저 권력 많고 똑똑한 한 임금이 베푸는 마음 정도로만 여겼다.
이해도 가벼웠고 느낌은 그냥 스쳐 가는 바람이었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세종대왕은 흠모하지만, 그 마음과 이 말이 연결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맘껏 적을 수 있는 문자, 그런 문자는 단순한 말의 기호가 아니라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맘껏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문자였다.
그래서 우리말은 우리말답게 문학은 문학답게 표현될 수 있었고, 훈민정음은 사람다운 세상의 바탕이요 길이 되었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맘껏 펼치는 문자가 되기 위해서는“쉽게 익혀” 쓸 수 있는 문자여야 했다.
서당에 갈 수 없는 평민이나 여성들도 집에서 쉽게 익히는 문자여야 했다.
예사롭게 여기지 말아야 할 말이 또 있다.
“내가 이것을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予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라는 표현이다.
당연히 가엾게 여긴 주체가 훈민정음을 만든 주체가 되어야 한다.
즉 가엾게 만든 주체도 세종이고 새로 만든 주체도 세종임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모든 국민이 배우는 이 말을 부정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훈민정음은 공동 창제물이고 결국 세종의 이 말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학자로서 통곡할 노릇이다.
집현전 학사든 다른 양반들이든 그 누구도 한자 모르는 우리의 언어모순을 인지하지 못했고,
한자 모르는 백성들을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으니
가엾게 여기는 마음 또한 없고 창제를 같이할 필요도 없고 그럴 수 있는 세상도 아니었다.
〈세종 서문〉은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반포한 이가 직접 쓴 글이라 그런지 쉽고도 간결하고도 명쾌하다.
군더더기가 없다. 무슨 위압적인 임금으로서의 위엄과 권위가 있는 글도 아니다.
우리말과 중국말이 다르다는 평범한 사실과 진리를 담담하게 말하면서,
새 문자를 만든 목적과 취지를 가장 평범한 말로 남기고 있다.
모든 백성들이 ‘날마다 쓰는 데 편안하게 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편리한 문자로 편안하게 쓸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다면서
백성들의 까막눈을 뜨게 하는 새 문자를 공표한 것이다.
이 글은 2023년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 최초 복간본의 필자 해설서인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의 탄생과 역사≫(가온누리)”를 대중용으로 수정 보완한 것임을 밝혀둡니다.